동양의학혁명

  (사암도인 침술원리 40일 강좌 외)


  총론


  전11권 중 제1권


  강론:금오 김홍경

  도서출판 신농백초


@[    I 총론@]


  유즉시무  있는 것이 없는 것이오

  무즉시유  없는 것이 곧 있는 것이니

  약불여시  만약 이 같지 않거든

  필불수수  모름지기 지킬 바가 아니로다.

  "삼조승찬 신심명중에서"


@[  1. 머리말@]


@[(1)머리말@]

  이 강좌는 때로는 항간에 나도는 통속적인 이야기도, 때로는 학문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한방의 이야기도 때없이 등장합니다. 동양의 이야기가 나오면 곧바로 서양의

이야기가, 고대의 시가 등장하는가 하면 현대의 성 문제에 관한 이야기가 전개되기도

합니다. 물론 여러분들에게 도움이 될 많은 책들의 내용도 담았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내용에는 일관되게 흐르는 맥락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수많은

고의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여러분 자신에게 눈을 돌리라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한 공부가 바로 사암도인 침술원리 40일 강좌의 전부입니다.

  그것은 자기고착으로부터의 해방입니다. 그 해방을 위해서 의사가 할 수 있는 것은

결정적인 체험에 이르려는 병자의 길 가운데 막아선 방해요소를 제거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정신치료는 명상적 방법으로 치료영역의 확대가

가능하다는 것이 일관된 저의 논지입니다. 그러므로 이 강좌는 한의학에 관한

강좌라기보다는 보다 더 미묘한 종교적인 명상의 단계를 밟아가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리고 총론의 각 부분별로 제목을 정하는데 적지않은 불편을 겪었음을

여러분들께서는 유의하셔야 합니다. 한방은 결코 얼음이나 무우를 자르듯 어느 하나를

따로 떼어내어 분영하게 독립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모든 부분 부분이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유없이 어렵고 딱딱한 논문적인

종래의 틀에서 벗어나 생의 본질에 대한 직접적인 성찰을 통해 새로운 한의학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바로 그 방향제시로 념화약방문과 부록으로 "소설"등을 실었습니다. 그동안 제가

여러잡지나 의학지에 실었던 글들을 모으고 다듬은 혼신의 결정체임을 이해하시어

세간과 출세간의 많은 이들에게 크나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것으로 하여 스승

혜암선사로부터 받은 하늘같은 은혜를 만분지일이나마 갚을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앙망하나이다.


@[(2) 강좌개설대의명분론@]

  제가 사암침법 40일 강좌를 개설하는 데에는 4가지 명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7정(희 노 우 사 비 공 경 등 정신정지의 7종 표현을 말함)으로부터의 자유를 얻는

'내혁'이 첫째요, 자기 마음을 관조하는 '일심'의 중요성이 그 둘이며, 우리의 근본인

한방의 원전으로 돌아가 연구하자는 '귀원'이 그 셋입니다.  끝으로 이러한 모든 힘과

능력으로 천하를 화평하게 해야 한다는 '요익창생'이 넷입니다.

  사암도인(원래 사암도인은 스님이었다. 그래서 그 본성대명은 알길이 없고 다만

석굴 속에서 득도하였다 해서 사암이라고 한다. 그러나 일설의 구전에 의하면

임진왜란 당시의 유명한 사명당 대사의 수제자라고 하며 본성은 황씨이고 대명은

정학이라고 알려지고 있을 뿐이다. 또 사명당 자신이라는 말도 있다)의 침술원리는

바로 이처럼 육체만을 대상으로 하는 단순한 침술의 기술을 벗어나 인간의 내면을

꿰뚫어 그 마음에 일침을 가하는 '마음의 침술'임을 전제하면서 이제 강의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1 내혁@]

  '내혁'이란 쉽게 이야기 하면 '마음을 혁명하자'라는 뜻입니다. 우리 한방에서는

질병의 원인을 '외감내상'이라고 합니다. '외감'이라는 것은 풍 한 서 습 조 화라든가

심지어 음식을 먹고 체한 것도 엄밀하게 따져 보면 외감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음식을 먹고 있을 때 옆에서 잔소리를 한다거나, 역거운 말을 들어 기분이 나빠서

체했을 경우, 즉 신경에 관계되거나 마음에 관계되는 것을 '내상'이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강의하고자 하는 기초적 관건은 바로 내상에 있습니다. 이 내상의 문제를

여하히 다루느냐가 바로 '내혁의 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이 점을 명심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나는 '나'이외의 어떠한 외부적인 현상이나 형식 또는 정치, 경제, 문화, 예술 등을

시비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먼저 변해야 하는 것은 나 자신이며, 내 안에

있는 그 무엇이기 때문입니다. 사암도인의 서문에 보면 "심칠정지부침이라 의자는

의야니...(칠정(희 노 우 사 비 공 경 등 정신정지의 7종 표현을 말함)의 뜨고

가라앉음을 아주 세밀히 관찰해야하나니 가히 의라고 하는것은 곧 뜻을 얻어야

하나니...)"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남의 희 노 애 락 애 악 욕을 잘 관찰할 수 있어야

올바른 진료관에 도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태까지 여러분들은 외부에서 어떤

이론이 주어지면 그에 따르는 수동적인 공부를 해 왔지만, 지금부터 하고자 하는

공부는 스스로의 오성에 의해 능동적인 자세로 움직이지 않으면 안되는 공부인

것입니다.

  그래서 '내혁'이라고 하는 것은 항상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감정, 즉 칠정을

관하는 것, 또는 칠정으로부터 자유로와지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요즈음 크리슈나무르티 선생이 '지식으로부터의 해방', '의식으로부터의 해방',

'과거로부터의 자유'등과 같은 해방, 자유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이것 또한

'칠정으로부터의 자유', 혹은 '칠정을 관한다'라는 말과 같은 의미입니다.

크리슈나무르티 선생은 항상 의시법, 법시법을 권하고 또 이야기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와지지 않으면 내혁을 이룰 수 없는 것

입니다. 즉, 혁명은 안에서부터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왜 혁명을

밖에서부터 하려고 하는가? 그것은 핑계를 바깥으로 돌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모든 일의 원인은 여러분들 스스로에게 있는 것입니다. 바로 여러분들의 마음

속에서 미묘하게 움직이는 시기, 질투, 욕망, 분노, 비열감, 교만감 등 내면의 어떤

음양상태, 즉 긍정적 상태와 부정적 상태의 분별이라고 하는 모든 질병의

원인으로부터 자유로와지지 않으면 안되며 또한 그것을 혁명화할 싯점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사암침법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그것은 사암침법의 요체가 되는

오운육기 체계를 관찰하기 전에 먼저 나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생각을 관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어느 날 미팅에서 어떤 여학생이 마음에 들었는데, 옆의

친구가 그 여학생과 친한 것을 보고 마음 속에 불쾌한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합시다.

그 사람은 자기 자신의 욕망에 눈이 어두워 그저 시기, 질투만 일으킵니다. 이렇게

마음이 동하는 시초의 동기를 관찰하지 못하게 되면, 불쾌한 마음의 원인을 알 수

없음은 당연한 일입니다. 또한 이런 사람은 마음 속으로 자기와 친구를 비교합니다.

이런 것들이 모두 칠정의 장난이며, 바로 내상의 원인이 됩니다. 내상이란 한마디로

감정으로부터 오는 병입니다. 지금 이 시대의 사람들은 감정으로 인한 병을 치료하는

데에 전념해야 할 때입니다. 요즘에는 전염성 질환이나 못 먹어서 오는 질환 따위는

많이 해결이 되었으나 갈수록 이상한 병들이 많이 생기고 있습니다. 에이즈같은

음양의 부조화에서 오는 병이 생겼는가 하면, 2차 대전의 희생자 600만명에 상당하는

인구가 1년 동안에 암으로 죽어 가고 있습니다. 이 암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하여

서양의 많은 의학자들이 연구를 하여 그 학설이 분분(콜타르, 불고기 탄 것, 된장...)

하더니 결국 요즈음에는 이 질병의 원인이 스트레스라는 새로운 학설이 등장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바로 이 스트레스는 곧 칠정에서 오는 것입니다.

  외감병을 치료하는데는 여러분이 알고 있는 체침법(침으로 신체각부의 경맥혈위를

자하는 침자요법을 말한다. 이는 이침에 상대해서 하는 말이다)이나 기타 처방으로

치료를 할 수 있지만, 내상병에는 바로 이 사암침법을 활용해야 그 사고의 범위가

넓어질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환자가 뚱뚱한지 말랐는지 살펴보는 것과 이외에도

그 사람의 평소 습관적인 성격을 들여다볼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저도 사실 옛사람의 가르침을 겨우 3% 정도밖에는 얻지 못했으나, 그것으로

여러분들에게 힌트를 드리는 것입니다. 어쨌든, 이런 지혜를 터득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자신부터 변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의학적인 근거가 없지 않겠느냐고 묻는다면 천만의 말씀입니다.

"의학입문"(AD 1624년 명대 이정의 저작이며 8권으로 되어있다. 내용은 장부도, 명대

이전의 의가에 대한 간단한 소개, 경락, 장부, 진단, 침구, 본초, 외감, 내상, 잡병,

부유, 외과, 용약부, 고방가활, 급구, 괴병, 치법, 습의규격 등으로 되어 있다)의

서문을 보면, "주역을 배운 뒤에라야 가히 의학을 말할 수 있으니, 괘서를 배우고

효상을 배우는 것이 아니다"라고 한 것입니다.

  물론 주역을 다 배우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어디 주역이 그리 쉽습니까? 공자

주역을 통달하기 위해서 가죽끈이 세 번이나 끊어지도록 공부하였는데 말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어느 외국인이 주역을 샤마니즘이 아니냐고 하기에 한참 동안을

야단쳐 돌려보낸 적이 있습니다만 주역은 샤마니즘이 아니고 우리 마음의 어떤

심리적인 움직임, 기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것과 외부를 관찰하는 것, 즉 유심적인 관

찰과

유물적 관찰과의 전체적인 어떤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일 중요한 것

이므로

앞으로 계속 이야기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의도를 좀더 알고자 한다면 경희한의대

학생회에서 발간한 "의인"지에 "동양의학혁명속"라는 것이 있는데(부록 수록)그것을

참조하여 보시길 바랍니다. 이 사암침술법의 이론에는 사명당의 스승인 서산대사로부

사명대사, 사명대사로부터 사암으로 내려 오는 선법의 정통성이 있습니다. 서산대사가

"선가귀감"(불교에서 선법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귀감이 될 만하다해서 써 놓은 책)의

맨 첫머리에 동그라미 하나를 턱하니 그려놓고 "자! 석가도 몰랐거니 가섭이 어찌

전하랴"고 했거든요. 아무리 염화미소의 정법을 얻은 가섭일지라도 석가가 몰랐던 것

가섭이 어찌 전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 서산대사의 말씀입니다. 동그라미하나 그려놓고

그 가운데 획이 있느냐? 효가 있느냐? 하신 것입니다. 획이니 효니 하는것은

주역의 양(길다란 한개의 선),음(가운데가 빈 선)을 말합니다. 이미 타계하신 어떤

주역학자께서는 '길다란 선'은 남자의 근을 상징한 것이고, '가운데가 빈 선'은

여자의 옥문을 상징한 것이라 노골적으로 표현하신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는 양의 상징, 하나는 음의 상징입니다. 그러면 동그라미안

무엇이 있는가? 이것은 여러분들의 본심안에 무엇이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

본심에는 원리와 원기가 휘합하여 간격이 없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음양 이전에는

태극이 있습니다.

  그러면 '태극은 무엇이냐?', '음양 이전에는 무엇이 있었는가?', '태극 이전에는

무엇인가?'등등의 질문을 합니다.(선가에서는 이런 것을 공안이라 한다).

태극(태극이란 말은 최대최광한 무상의 근본원리란 의미이다. 이 태극이란 우주생명의

주이며 또 생명의 원리가 된다. 이러한 태극의 분석적인 해석이 우주의 삼라만상이

된다)이란 바로 '천을 생하고', '지를 생하고', '인을 생하고', '물을 생하는 것'

입니다. 생을 희양하는 자가 이것을 알게 되면 곧 자연히 분을 징계하고 욕심을

막을 수 있게 됩니다. 특히 '분을 징계하고 욕심을 막아서'라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내혁하자는 것을 간단히 말하면, 바로 '분을 징계하고 욕심을 막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맞는 일을 극단으로 끌고 가면 욕망이 생기게 되며, 마음에 맞지

않는 일이 극단으로 가게 되면 분노가 생기는 것입니다.

  여기서 잠깐 여러분의 기존의 관점에 다소 혼란을 주게 될지도 모르는 음양관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밝고 명랑한 기분을 양, 우울하고 슬픈 기분을

음이라 알고 있으며 따라서 하늘은 양이고 땅은 음이라고 알고 있지만, 음양이론의

암기에만 집착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어떤 관점이나 기준이 없는 음양관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앞으로 시도하는 방법은, 건네줄 수도, 나눠줄 수도 없는 '깨달음'이라는

것으로 과연 이것이 무엇인가?를 여러분과 같이 연구하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기존의

관점에 많은 혼란을 유발시킬 이 혼돈요법으로 인해 여러분의 음양관에 혼란이

오더라도 그냥 수용해 주기를 바랍니다.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저는 '욕심'을 음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음이란 외부에 있는 것을 안으로 취하고

싶어하고, 또 순환적인 차원에서 보면 물이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좋은 대상을

보면 욕심이 일어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자 할 때 입 안에 침이 고이듯이 물은

음이고 불은 양인 것입니다. 분노가 일어나면 눈에 불꽃이 튀고 얼굴이 상기됩니다.

그래서. 저는 분노를 양으로, 욕심을 음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는 성충동이 일어날 때 열이 오르고 기분이 상기되는데, 이 욕심은

양이지 않느냐고 하는데 이것은 옳은 말입니다. 그러므로 누가 어떤 것을 음양이라

했을 때 여러분들은 그것을 그대로 이해하지 마시고, 자기의 기준에서 보았을 때

음인지 또는 양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어쨌든 분노를 징계하고 욕심을 막는다는 것은 우리 마음이 갖고 있는 양면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마음의 양면성 분리도가 크면 클수록 질병이 심화되는 것입니다.

  수는 승하고 화는 강해야만 서로 사귀어서 태평해지듯이 우리는 태평해야 합니다.

이것을 알게 되면 곧 자연히 사물을 판별하는 방법이 정하여져서 침체된 질병이 곧

회복됩니다. 인삼, 백출, 백복령, 감초로 된 사군자탕도 아니고, 오행침의 시술도

아니지만 침체된 질병이 금방 나아버린다면 이 무슨 꿈같은 얘기냐고 하시겠지만

그것이 바로 이 선천도로 상징되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원이라는 것은 그 원 안에 무슨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의 상징입니다.

그러므로 이 원을 그려 넣을 수밖에 없었던 그 사람도 아마 답답했을 것입니다.

이런식의 어떤 본체에 대한 깨달음이 있으면 사람을 정확히 판단할 수가 있게 됩니다.

  여러분과 나중에 식물관찰법을 공부하겠지만 옛날 신농씨(중국 전설속의 제왕

'맹자'에서 처음 나오며 농업의 시조로 알려져 있다. 뒤에 '역경'에는 농업의 신,

의사 및 악사의 신으로도 되어있다. 구리의 제조법과 술 담는 법을 가르치는 등

상업의 신으로도 되어있다. 중국의 삼황오제중 삼황의 한사람이다.)같은 분은 식물과

대화를

했다고 합니다. 즉 사물을 보는 방법을 알았던 것입니다.

  "이것을 책머리에 둥글게 그려서 글자를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편리하게 하고...

책을 열면 숙연하여 지극히 간단하고 지극히 쉬워서 완색하면 취미가 있게 한

것이다. 감히 또한 희황의 심지상에 착력하여서 간기의 미의를 찾아냈다고

하겠는가? 이것으로 설명하노라"

  참으로 내혁의 길을 위한 좋은 말입니다. 괘상을 긋고 주역을 만든 복의씨(중국고대

전설의 제왕, 태라고도 한다. 삼황오제중의 최초의 왕이다. "역"의 팔괘를 만들었으며

그물을 발명하여 고기잡는 법과 사냥을 가르쳤다)와 같은 황제들을 우리가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과분한 일입니다. 내경(황제내경소문.영추경 이서를 포괄한다.

B.C722--221년(?)작. 모두 18권으로 되어있고 현존하는 최고의 한의학 이론저작이다.

이는 춘추전국시대이전의 의료경험과 이론지식을 총괄한 것이다)에 나오는 황제와

기백(황제의 신하로 발명오행하고 맥리를 상세히 논함으로써 경론을 삼았다. 황제와

더불어 의를 논하였고 소문영추의 내경 18권을 이룬 의서의 시조이다)의 뜻을

조금이라도 제가 아는 체 한다 해도 제가 알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제 자신도 무엇을

알아서 설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어떻게 하면 우리 한방을 부흥시킬 것인가,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방향 설정을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아주 미세한

부분에서부터 저는 짚어나갈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글자나 문자나 어떤 이론을 배경으로 공부하던 것을 이제는

직관법으로 들어가 보고자 합니다. 그런데 심리적인 진행상황을 조용히 주시하는

관심법 즉 직관법이란 결국 분노를 억제하고 분노를 극복 할 수 있는 탁월한 방법이란

말입니다. 직관법을 공부하다 보면 저절로 마음이 맑아지게 되며, 모든 사물의 판별이

쉬워집니다.

  내혁의 의지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칠정으로부터 자유로와지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칠정의 근본인 분노와 욕심을 징계하고 억제해서 참으로 태평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중에 병이 있거나 번뇌가 많은 사람, 욕심이 많은 사람, 분한 마음이 많은

사람은 모두 내혁의 본심부터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진아를 찾아야 합니다. 본심과

진아를 찾고자 하는 운동을 여기서 제가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게서 명상적인

직관법을 공부하고 수련하면서 임상에 임해보니 병이 잘 낫더라고 여러 학생들로부터

편지가 날아옵니다. 글자 몇을 몰라도 이렇게 참나를 찾는 사람은 한층 위대한 의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2 일심@]

  이 '일심'은 목적의식을 가진 일심이 아니고, 바로 내혁을 통해서 이루어진 결과의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를 먼저 개혁해서 칠정으로부터 자유로와진 다음

일심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일심이란, 깨달음의 상태, 마음을 관조할 수 있는 상태, 자기 내부의 생각이

일어남을 들여다볼 수 있는 상태 등을 말합니다.

  일심으로 가기 위해 제가 이 강의를 통해 줄곧 강조하는 것이 '관심일법이

총섭제행'입니다. 이 말은 달마대사가 깨달은 후에 제일 먼저 대갈일성한 것으로

'마음을 관하는 한가지 법이 모든 수행을 다 섭수한다'는 뜻입니다.

  마음의 괴로운 상태를 그대로 두고 차분히 그것을 들여다 볼 생각은 하지 않고 소위

불평만 합니다. 그러한 사랑하거나 계량하고자 하는 마음, 계교 등으로 자꾸 어떻게

어떻게 되고자 하는 심리적인 노력은 내던져버려야 합니다. 이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마음을 관해야지'생각을 하면서도 쉽사리 관할 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아! 마음을 관해야지, 그런데 마음을 어떻게 관하지?'하는 질문을 합니다.

  이것은 질문이 나오는 자체가 벌써 사량임을 생각지 못하고 답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알고보면 질문만이 사량이 아니라 그에 대한 대답 또한 사량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량분별의식까지도 몽땅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에덴동산에서 하느님은

"이것만은 따먹지 마라. 너희가 이것을 먹으면 지혜로와질진 모르나 정녕코 죽게

되리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자 사물의 선악을

판별하는 지혜는 생겼는데 오히려 그 때문에 불행해져 버렸습니다. 이 "구약성서"

"창세기"가 바로 주역 이야기와 일맥상통합니다. 바로 음양 이전의 소식인 것입니다.

  에덴동산이 상징하는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이브가 바로 지금의 여러분입니다.

걸핏하면 저것은 우리편, 이것은 너희편, 누구는 좋은 사람 혹은 나쁜 사람, 이건

옳고 저건 그르다는 식의 선택과 판단을 하게 됩니다. 선택과 판단의 마음은 이미

동그라미를 떠난 마음입니다.

  한 여자는 아주 부자인데 못 생겼고, 다른 한 여자는 아름답지만 너무 가난하다고

할 때 우리 마음은 갈등을 일으키게 됩니다. 석가는 이런 경우를 일컬어 한 손에는

뜨거운 것, 다른 손에는 차가운 것을 잡고 있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이런 것을

일컬어 갈등이라고 합니다. 특히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질 때 이 갈등은 더욱

심화됩니다. 요즈음의 젊은이들 대부분이 이와 같은 이중성의 마음을가지고 있습니다.

오직 한 마음을 갖는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무척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이 일심에 관한 아름답고도 애처로운 이야기가 하나 있어 여러분들에게 소개할까

합니다.

  이백, 두보와 함께 중국 당나라 시대의 3대 시인으로 불리는 왕유는 독실한

불교신자로도 유명하여 그를 시불이라고도 칭합니다. 나는 언제나 시간이 나면 당시나

선시를 즐겨 읽는데, 그 중에서도 왕유의 시를 좋아합니다. 물론 그의 시 곳곳엔

속세인으로서 불도를 향해가는 진실된 모습이 그대로 나타나 있기 때문입니다.

  시문뿐 아니라, 그림도 잘 그리고, 비파도 잘 타는 다재다능한 미청년으로서,

왕후와 귀족들이 다투어 그를 연회석상에 초대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제후 중에는

영왕의 세력이 가장 왕성해서, 첩을 몇 십 명이나 둔 호색가였습니다. 그는 미인만

보면 남의 유부녀도 강탈해서 첩으로 삼는 폭군이었습니다.

  그는 호떡장수의 아내가 아름다운 것을 보고, 권력과 금력으로 빼앗아다가 자기에

대한 그 여자의 애정의 정도를 알아보기 위해서 잔인한 시험을 했습니다. 즉 1년 만에

전남편인 호떡장수를 불러서 여러사람들이 보는 공개 석상에서 대면시켰던 것입니다.

  이때 그 여자는 천한 직업의 전남편을 보자, 눈물이 주르르 흘러서 볼을

적시었어요.

영왕의 악취미도 애첩의 그런 표정에 질투를 느꼈으나, 그것도 하나의 애정 유희처럼

고소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좌중에 있던 문인들에게 이 정경을 시로 읊어 보라고

청했습니다. 이 잔인한 장면을 미화시켜 보려는 권력의 악취미였지요.

  이 자리에 있던 왕유가 맨 먼저 한 수 읊었습니다. 어느 자리에고 솔직담백했던

왕유는 그들 불행한 부부의 사정을 동정한대로, 영왕의 기분도 염두에 두지 않고

읊었던 것입니다.


  오늘의 총애를 받더라도,(모이금시)

  옛날 남편의 은혜는 잊지말라.(능망구일사)

  꽃을 보아도 눈물만 흘리면서(간화만안누)

  초왕과는 말도 하지 않는다.(불공초왕언)


  옛날의 고사를 비유하여 읊은 이 시의 뜻이 너무도 진실했고 작품이 묘했으므로

영왕의 마음은 물론 모여있던 모든 사람들의 마음까지 감동시켰습니다. 영왕은

그 자리에서 그들 부부에게 위자료를 주고 함께 돌려보냈습니다. 이때 왕유의 나이가

20세에 불과했는데, 여자의 심정을 이처럼 잘 이해한 것입니다. 장차 이나라

한의학계를 짊어지고 나갈 여러분들께서는 이정도의 시심은 되지 않아도 그 십분의 일

만이라도 여자의 마음을 이해하는 식견이 있어야 합니다. 물론 그 식견은 생활을

하는데나 학문을 하는데도 필수적이 되겠지요. 여러분 모두 일심이 되어야 합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계속적으로 주장하는 요체가 바로 일심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어쨋든 중앙토(오행을 각기 그 방위에 배치시킬때 목은 동, 화는 남, 금은

서, 수는 북 토는 중앙에 해당하는데 이는 약 5천년전 중국의 황하강에서 발견된

하도수에 근거한다. 따라서 중앙토는 땅에 있어서는 흙의 작용을 이루며 흙에서

식물이 나오게 되고 지에 있어서는 생각하는 단계 즉 사에 해당되고 장부로 보면

음식을 소화해서 몸의 각부분으로 운반하는 비위에 해당하는 것이다)의 발달이

안된 사람, 비장의 발달이 잘 안된 사람은 매사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처음에는 분노와 욕심만을 징계하라고 했지만 여기서는 선도 악도 아닌

중앙토에 해당하는 사량의 갈등을 추가합니다.

  그러나 필경에는 중앙토라는 것까지도 벗어 던져야 합니다. 목화토금수 오행 모두에

심리적인 의미가 배속되어 있습니다. 일심이란 그 어떤 심리적인 면에 속하지

않으면서도 양극성이 아님은 물론, 어떤 중간적인 의미조차도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이것마저도 관해야 하므로 일심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입니다.

  거듭 말씀드리거니와 일심에는 선악도 없고 중간적인 의미의 사량분별도 없는

것입니다. 즉 무선악, 무비교의 상태를 말합니다. 여러분에게 원하는 일이 생기면

여러분들은 그것을 성취하려고 심리적으로 노력을 하게 됩니다. 이 노력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항상 불행할 뿐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또 하나 일심을 흐리게 하는 것으로 '분리성'을 들 수 있습니다. 미래에 되고자

하는 나와 아직 되지 못한 현재의 나 사이의 분리상태, 그리고 마음과 육체를 갈라

놓는 양극적인 사고방식은 분리성을 잘 나타내 줍니다. 이것은 의학마저도

황폐시켰습니다. 바로 이 분리성에서 시간이 창조됩니다. 심리적인 시간이 없어져야

우리는 일심으로 갈 수가 있습니다.

  "대학지도는 재명명덕하며 지어지선"이라고 했습니다. 큰 학문의 도는 밝고 밝은

덕을 밝히는 것이며, 그것을 지극한 선에 이른다는 뜻입니다. 밝고 밝은 덕이란

일심의 세계를 일컫는 것이며 지어지선이란 지극한 선에 이르는 것인 바 지어지선한

사람은 선악의 분리가 없습니다. 일심이란 시간이 없는 것이며, 현재의 나와, 되고자

하는 미래의 나와의 노력을 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이 강의를 들으면서

명의가 되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할 것입니다.

  시간이란 현재의 내가 미래에 되고자 하는 나와의 어떤 중간적 과정에서 일어나는

심리적인 시간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굉장히 이해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저

크리슈나무르티의 책을 몇 번 읽어가지고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와지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아! 이것 참 이해하기 힘든데 우선 적어 놓고 나중에 집에 가서 생각해

봐야지"한다면, 이것이 바로 사량분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성정을 관해야 비로소

일심으로 돌아갈 수가 있습니다.


@[#3 귀원@]

  하느님을 부정하는 어떤 사람이 목사에게 "하느님이 눈에 보입니까? 그 존재를

설명해 보시오"하자, 목사가 말하기를 "당신은 부인을 사랑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물론 사랑하지요" "그렇다면 그 사랑하는 마음을 어디 좀 내 놔 보시오" 그 때 그

사람은 크게 느끼고 종교에 귀의했다고 합니다.

  의학과 종교의 기본요건은 무조건 믿어야 합니다. 제가 대학교 다닐 때, 원전을

위주로 가르치던 노교수님들은 전부 쫓겨나고, 말만 교묘하게 연결 잘하는 세력있는

교수들이 우리를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저는 학문이란 원전을 위주로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작게는 한의학에서부터 크게는 인류 전체가 다시 고전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은 원전보다는 한방해설서를 읽기를 더

좋아할 것입니다. 그리고는 몇 자 보지않고서 골치 아프다고 던져 버리고 말 것입니다

원전의 도가 그 정도에서 쉽게 드러난다면 왜, 주역을 가지고 입산을 하겠습니까?

하다 못해 성명철학 운운하는 점장이들도 10년 입산수도를 한다는데, 우리는 왜"내경"

한장 붙들고 10년 입산수도하는 사람이 없습니까?

  옛날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참으로 아름다왔습니다. "내경"에 나오는 황제와 기백의

대화를 보십시오.


  "이것을 가르쳐야 될 사람에게 가르치지 않는 것도 죄이며, 또 가르치지 말아야 할

사람에게 가르치는 것도 죄다. 금궤에 넣어 깊이 잘 보관하라"


  이러한 기백의 이야기를 듣고 기뻐하는 황제의 모습에서 진리가 서로 상통하는 어떤

법열을 느낄 수 있으며 이러한 법열은 진리에서만이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진리를 어디에 써

놓았습니까? 그것은 원전, 즉 경인 것입니다. 아무리 상한론(AD 190--204년간에 동한

(후한) 장기(자 중경)가 저술한 것이다. 상한론은 주로 외감인 상한을 예증으로 들고

있으나 동시에 내과 전반에 걸친 잡병에 대해 논한 것이다)이 훌륭하지만 론 이상의

명칭은 붙일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 조한 기운에 상했다 한다면 상한론이라 이름

붙일 수 있겠지만, 감히 경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경은 바로 거룩한 성인의 말씀입니다. 따라서 원전으로 돌아가자는 것은 바로

전체로 돌아가자는 말인 것입니다.

  성직자가 "나는 깨끗하고 속인인 너희들은 더러워"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그는

일심으로 돌아간 것이 아닙니다.

  진실한 도인이라면 마음 속에 분리가 없고 시간성도 없는 전체성을 품을 수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성스러움이란 전체성이지 비천한 것과 비교했을 때 자기의 높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원전으로 돌아가자는 것은 성인의 경전을 연구하자는

뜻이며, 바로 전체성을 깨닫자는 이야기입니다. 바로 이것이 귀원인 것입니다. 선택을

하지 말고 전체를 사랑하십시오, 부분이 아닌 전체성이란, 마음을 보았으면 육체를

보는 것이고 육체를 보면 또한 마음도 보게됨을 말합니다.

  주역팔괘(태극에서 음양이 나누어지고 음양에서 사상이 나누어지고, 사상에서

팔괘가 생하는데 팔괘는 각 세개의 효(획)로 이루어져 있다. 유물적인 상징과

유심적인 상징이 하나의 괘에 포함되어 있다)를 보면

"건 태 이 진 손 감 간 곤"이 있는데, 이것은 유심적, 무형적,

기형적이어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고, 하늘, 물, 불이라고 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하는 강좌는 전적으로 유심적인 한방론에

속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유물론적인 것은 너무나도 많이 파헤쳐져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이 둘을 합해야 전체가 되지 유물 혹은 유심의 어느 하나를

아무리 깊이 공부한다고 해도 그것은 결코 전체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태극, 음양,

사상, 팔괘 중 어느 하나만 논한 것은 그저 논일 따름입니다. 주역의 논리가 그러하듯

옛 성현의 경전에는 전체성이 들어 있습니다. "황제내경"을 보면 궐음풍만 언급한

것이 아니라 태양한수까지 육기를 모두 이야기했습니다. 또 육기만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육기의 물질적인 차원과 유심적인 차원도 이야기가 되어 있습니다. 맛도

오미가 다 들어 있고, 색도 오색이 다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바로 전체성을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혹자는 "색이 수십 종인데 어찌 오색이 전체가 됩니까?"하고 질문을 합니다. 그러나

그 수십종의 색은 기본색에서 나온 것임을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진리에는 항상 상대성이 있습니다. '전체성과 상대성'이 두 가지의 의미는 진리를

논한 경전에는 어디에고 담겨져 있습니다. 주역의 64괘, 32괘는 흉한 괘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길, 흉, 화, 복'이 무상하다는 이야깁니다.

  전체성과 상대성 외에 무상성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변하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무상성의 진리입니다. 주역의

역자가 '쉬울 이'자로도 쓰이지만 사실은 '변할 역'자이지요. 오행이라는 것도

변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모든 것은 변해간다는 것이지요. 그리이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사람은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라는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여러분들도 조금 전 강의 시작 때와 지금은 또 달라져 있습니다. 시시각각

변하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들의 고정관념과 기억만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석가는 깨닫고 나서 "이 세상 다할 때까지 변하지 않는 어떤 법인이 있는데 그것은

곧 제행무상이다"라고 갈파했습니다. 모든 것은 무상하여 항상된 것이 없다는 탁월한

진리만이 항상된 진리라 했습니다. 전체성과 상대성 그리고 무상성에 대한 탁월한

인식을 이 40일 동안 가지고 살도록 하십시오.

  사람의 병도 변하고 성격도 변하고 사회도 변하고 우주도 변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열심히 관찰해야 할 것은 여러분의 심리상태가 변하는 것을 끝까지

놓치지 않는 일입니다. 예민하고 날카롭게 깨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무상성과

상대성에 대한 인식을 "황제내경"을 통해서 공부하게 되면 5운6기(운기라고 약칭함.

"운"은 목 화 토 금 수의 5단계의 상호추이를 뜻하고 "기"는 풍 화 서 습 조 한의

6종의 기후변화를 말함 "5운"은 5행을 의미한다)는 참으로 쉽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주역팔괘라는 것은, 64괘로써 우주만물의 모든 변화상을 알기 쉽게 하여, 후손들로

하여금 도로 들어가게 하는 방편인 것입니다. 5운6기법만 하더라도 갑자, 을축, 병인,

정묘...가 있는데, 갑자라는 두 글자 안에 포함하고 있는 의미만 해도 엄청난

것입니다. 예를 들어, 5운6기를 공부한 사람들은 을축년 여름쯤 되면 습하고 열이

많아서 습 열쪽의 병이 많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예측도 할 수 있는 겁니다.

우리에게 현재 일을 미루어 봐서 미래 일을 예측하는 예지능력이 있다는 것은 바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위대한 자산인 것입니다.

  경전이 갖는 의미 중에는 전체성, 상대성, 무상성 다음으로 무아성이 있습니다.

즐거움 중에서도 최고의 즐거움은 무아의 즐거움입니다. 인간의 성적인 면을

따져보아도 무아를 제일로 여기지요. 그런데 이것은 육체적인 무아가 아니라, 내가

없는, 즉 나의 실체가 없는 것입니다. 상대적이고 또한 항상된 나(아)가 없는 무상의

나를 나라고 주장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31페이지 도표참조)

  이 도표를 잘 보십시오. 이 안에 전체성, 상대성, 무상성, 무아성이 다 들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 열두 가지 동물이 뜻하는 바가 무엇이냐? 그것은 '인간은 어디에

속하는가'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옛날사람들이 쥐에서 돼지까지 공연히 배열시켜 놓은

것은 아닐 것입니다. 갑자 을축...왼쪽으로 돌아가니까 무상성이 있고 자와 오는

소음군화(화에는 군화와 상화 두가지가 있다. 상화는 외부에서 비춰지는 빛과 같은

것이고 군화는 지구 내부의 용암과 같은 인체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2차적인 욕망에

의한 화열을 말한다. 하늘의 6기 중에서 소음은 5행의 화에 속하는데 그중에서 화음은

군화에 해당하는 것으로 소음군화라 한다)로서 상대적이고, 또한 묘와 유가

상대적입니다. 간지, 동서남북, 오행...이 모두는 상대적인 무상성으로 이야기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나'라고 일정하게 지칭할 것은 없는 것입니다. 거듭 말씀

드리거니와 상기의 4가지 특징을 모두 함유하고 있는 경전으로 돌아가주시기 바랍니

다.

  "불경","성경","황제내경","외경('한서 예문지'에 내경과 함께 외경이라는 언급이

있으나 지금은 소실되어 그 내용을 알 길이 없다)","의학입문"...을 공부하십시오.

그렇게도 잘 써놓은 "의학입문"도 제목을 입문이라고한 이 겸손을 보십시오. 요즈음엔

경전에 대한 논을 쓰는 사람도 없고 대만에서 베껴온 것을 가지고 무슨 총서니 어쩌고

하더니 급기야는 경전 자체를 부정하는 세상이 되었으니 말입니다. 원전을

부정한다는 것은, 곧 내가 나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귀원을 하자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드린 말씀을 요약하겠습니다.

  첫째, 나를 개혁하자는 것입니다. 개혁하여 무엇을 찾느냐? 바로 참다운 나를 찾기

위해서 7정(희 노 애 락 애 악 욕)과 분노, 욕심 등으로부터 자유로와지자는 것입니다

  둘째는 일심입니다. 일심을 어떻게 터득하느냐? 그 방법은 관심법입니다. 자기

마음을 관하는 이 관심법은 항상 자기가 어떤 생각이나 어떤 행동을 하든지, 하지

말라는(남성적) 것이 아니고 깨어 있으라는(여성적) 말입니다. 물고기가 노는 것을

물끄러미 쳐다보듯이 자기에게 일어나는 생각을 망연히 관찰하십시오, 인식의 세계는

물론 무의식적인 세계까지도 들여다봐야 될른지 모릅니다. 따라서 이것은 엄청난

각성을 필요로 하는 작업입니다. 그리고 일심의 특징은 선악의 비교가 없으므로

선택성이 없으며 무시간성입니다. 선가에서 "지도는 무난하니 유혐연태이라(지극한

도는 어렵지 아니하니 오직 연택하는 것을 혐오한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로지

선택하는 마음을 버리십시오.

  나중에 주역을 강의 할 때 나오는 '5손풍'을 보면, '손'자에 책받침만 가하면

선택할 '선'이 됩니다. 따라서 '선'이란 손(수)에서 나온 것이며, 5손풍은 바람이라는

뜻이 아니고 유심적인 상황에서 나온 의미입니다. 그런데 어떤 무엇을 뽑느냐 하는

것은 차차 공부하기로 하겠습니다.

  저의 선실 입구에 걸려 있는 사진을 보십시오. 제일 왼쪽이 제 사부이신 혜암노선사

(1886--1985 속명은 순천. 성은 최씨. 11세에 출가. 26세 때 성월스님으로부터 화두를

간택 받은 후, 만공 혜월 용성선사 등을 차례로 모시고, 근6년의 운수행각과 좌선끝에

오도견성했다. 35세 되던 해에 당시 수덕사 조실 만공선사로부터 전법게를 받고

법통을 이었다. 1956년 수덕사 조실로 추대되었고, 1984년 덕숭총림의 제1대 방장으로

추대되었다. 스님은 1985년 102세로 입적하셨다), 그 옆이 제 사부의 사부이신

만공스님(1871--1946 전라북도 태인읍 사인리에서 송씨가문의 장남으로 출생.열한살때

하동 쌍계사의 진암노사를 찾아 공부하였으나 득도의 삶을 만들지 못하였다. 그러던중

경허스님을 만나 "만법귀일" 어두를 통해 경허스님을 계사로 하여 득도의식을 마칠 수

있었다. 1946년 스님은 정혜사에서 입적하셨다), 그 다음이 제 사부의 사부의

사부이신 구한말 그 유명했던 경허선사(1849--1912 경허스님은 광주 청계사에서

주허화상에 의해 출가의 요식을 행하였으며 만화스님 밑에서 정진을 하였다. 1872년

만화강백의 법좌를 얻고 31세 되던 1880년 '콧구멍 없는 소(무비공우)'라는 말을 듣고

깨달았다. 경허스님은 한국 선종사에서 중흥조라 할 수 있으며 수 많은 기행과 일화를

남기시고 1912년 산수갑산에서 입적하였다)입니다. 아주 기인에다 걸출한

분이셨습니다. 제가 바로 그 분의 증손자뻘 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것을

'Ego의 동일시현상'이라고 합니다. 위대하신 분들과 동일시함으로써 나를 높이는

행위이죠. 그러나 이러한 행위는 일견 좋은 면도 가지고 있습니다. 자꾸만 가중되는

일상의 타락으로부터 그분들은 언제나 저를 지켜주는 방패막이 구실을 하기도

하니까요.

  어쨌든 그 경허선사가 하루는 자기 스승이 "자비를 베풀라, 착해져라, 계율을

지켜라, 고기를 먹지 말라, 어떻게든 아름다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대중 앞에서

이야기를 마치자, 경허스님이 갑자기 일어나 올라가더니 자기 스승한테 "스님께서,

착해져라 아름다와져라 하시지만 저는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대중과 스님들은 깜짝 놀랬어요. 경허스님은 또 "창녀는 창녀대로, 도둑놈은

도둑놈대로, 조약돌은 조약돌대로 다 쓸 데가 있다고 여깁니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들 엄마나 누나를 보십시오. 술집여자나 창녀를 보면 "더러운 년, 저런

애들하고 아예 가까이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데 욕을 하는 그 입을 정숙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더러운 생각을 일으킨 자기 자신이 더러운 것입니다.


  "부녀가 구하는 것은 남성이며 마음 돌리는 곳은 장식품, 화장품이며, 의지하는

곳은 자식이며, 집착하는 것은 남편을 독점하는 것이며, 궁극의 목표는 지배권이다"


  아함경에 담긴 부처님의 말씀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여자는 이토록 아집과 집착으로

싸여 다루기가 몹시 힘들다는 얘기가 되겠지요. 요즈음에 이것은 비단 여자들에게만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지요. 대부분의 남성들도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이 범주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지요. 선악을 비교하고 더불어 무엇은 '옳다

그르다'자기 중심적인 방법으로 선택을 수시로 하고 있습니다.

  무시간성! 우리는 뭐가 되고 싶어서 안달을 합니다. 이곳에 사암침법을 배우러 온

것도 뭐가 되고 싶어서 온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근원만 지적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본래 완전한 존재인데 더 무엇이 되기를 원합니까? "엄마! 나 이 다음에

커서 임금이 될래" 그러면 그 다음에는 무엇이 되는 것입니까? 이게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무엇이 되고 싶어서 안절부절 못합니다.

  그리고 셋째로 귀원입니다. 상대성, 무상성, 무아성, 전체성 등이 포함된 경전이

우리 한방 동양철학의 근간을 이루는 사상입니다. 아니 그저 그 자체가 이야기의

부분이기 때문에 사상이라고 얘기할 것도 없습니다. 만약 이 모든 것을 깨달아서

지인이 되고 진인이 되고 또 성인이 되면 굳이 제미십팔탕(처방의 발음이 묘하여

강의중 우스개 소리의 일종으로 등장한다. 처방내용은 온갖 맛의 열여덟 가지 약물이

배합된 것으로 십전대보탕과 팔물탕에 지렁이 갈비, 모기 뒷다리 등이 들어간다고

강사 금오가 해학적으로 창한 탕명이다)을 안 먹어도 됩니다. 침 맞을 필요가 없읍니

다. 제일 낮은 차원의 방법인 약과 침을 왜 씁니까. 그런데 마음을 한 번 자꾸

비교하는 쪽으로 신경을 써 보십시오. 그러면 금방 병이 옵니다. 과거의 기억에 자꾸

집착하면 마침내는 중풍이 오게 됩니다. 중풍은 바람 맞아서 걸리는 것이 아닙니다.

옛날에 제가 종로 5가에 있을 때 중풍 걸린 한 부인의 예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어느 날 한 부인이 미장원에서 머리를 하고 있는데, 입술과 손톱이 새빨간 젊은

여자들이 들어와서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야! 그 김사장 말이야 팁을 20만원씩이나 주고 가더라 얘, 양기도 없게 생긴

사람이 돈으로 날 유혹하려고 하잖니"

  별 이상한 소리를 다 하면서 떠드는 소리를 듣고, 그 부인은 속으로

  "김사장이라는 참 골빈 사람도 있구나..."

하며 계속 들어보니,

  "아 그 김사장, 대머리에 똥배 나온 사람 말이지?"

  "그래 --물산 김사장 말이야"

  그 순간 이야기를 듣고 있던 부인의 입이 그만 확 돌아가 버렸어요. 김사장이 바로

남편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것을 바람 맞았다고 합니다. 아시겠어요? 그 말을 딱 듣는 순간 왜 고혈압이

되었겠습니까. 그 상황을 이겨내지 못한 거지요. 그런데 양방에는 치료의 한계가

있습니다. 온갖 방법으로 중풍 치료를 해도 "글쎄요. 안되겠는데요" 이것이 바로

양방입니다. "어떻게 해야 될까요?"하고 환자 가족이 물으면 "글쎄요. 한의원에나 가

보세요" 그러거든요. 아니! 한의원은 자기네들이 포기한 환자를 보는 곳 입니까?

장의사 옆집이 한의원입니까? 이렇게 이 모든 병의 원인은 모두 마음에서 비롯된

장난인데도 불구하고 마음을 들여다볼 생각은 않고 병의 겉면에만 매달려 있는 것이

바로 양방의 맹점인 것입니다. 오늘날 그 많은 질병 중 원인을 모르는 Unknown이란

병명이 얼마나 많습니까? 양방이 가진 이 허물, 간디도 양방을 '악마의 의술'이라

했습니다. 고기를 썰고 실로 꿰매고 하는 것은 여자들도 잘 합니다. 그건 일종의

기능사일 뿐입니다.

  우리는 지인이 되는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지인이라고 하는 것은 무시간성,

무선악성, 무비교성, 무분리성을 공부하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공부를 하고 난 뒤에

약을 다룹니다. 사물탕은 비쩍 말라서 혈이 부족한 데에 쓰고, 뚱뚱한데 기운이

없으면 사군자탕을 쓰고, 맥주 먹고 체했을 때 티밥이나 웨하스 먹으면 금방 속이

가라 앉습니다. 오운육기를 공부하면 이런 것들이 사실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이러한 모든 것을 배우고 익혀 중생을 이롭게 하는 요익창생의 길이

있습니다. 이런 것을 익힌 다음에는 창생을 이롭게 해야지요. "요익창생"의 거창한

명제를 가지고 제가 이 강의를 하는 것입니다. 내혁을 해서 창생들을 이롭게 하자는

것이 바로 이 사암침법 강의의 명분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사암침법을 배워 사람들을

풍요롭게 하고 이익되게 해야지요.

  설령 미래의 부귀를 위해서 한의대에 입학했다 하더라도 이제부터는 마음을 크게

가지십시오. 저희들 공부할 때는 줄만 서면 입학을 했을 뿐 아니라 정말 공부

안했습니다. 지금은 그것을 철천지 한으로 생각하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다릅니다. 성적도 우수하고, 날카로운 지성을 갖고 현실에 대한 많은 의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의학자로서 현재의 의학풍토에 의문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기타의 의문들은 그것을 전공하는 사람들에게 맡기십시오.

  크리슈나무르티가 모든 도의 출발은 먼저 의심하는 데에서부터라고 하였듯이 의심할

수 있는 지성을 갖고 학문에 접근해야 합니다. 안으로 나를 개혁해서 7정으로부터

자유스럽고 일심으로 돌아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나의 마음을 읽을 줄 알며 원전으로

귀의하여 요익창생하여야 합니다.

  자! 이제 이 네 가지 명분을 가슴에 새기고 공부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ff


@[  2. 태극 음양@]

  (1)

  주역팔괘는 반드시 외워두어야 합니다. 그 까닭은 제가 지금부터 말씀드리는

음양관이 조금 낯설다 하더라도 8괘를 일단 외운 상태에서 서로 연결이 되는 어떤

상황을 추론시키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연결시키는 것이 다소 무리가 있다

하더라도 한 번 잘 생각해 보시면 "그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겠구나", "연구자료로써

제공할 정도는 되는구나"하고 인정하시리라 믿습니다. "의학입문" 서문에 '주역을

배운 뒤에라야 가히 의학을 말할 수 있다'고 했으니 의학을 이야기하기 전에 주역을

먼저 이야기하겠습니다. 그리고 나서 음양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태극에서 음 양으로 나뉘고 다시 태음, 소양, 소음, 태양으로 나뉘어 집니다.

음에서는 태음과 소양이 나뉘고, 양에서는 소음과 태양이 나뉘어져 나갑니다. 양은

기본적으로 길다랗게 한 개의 선으로 표시하고 음은 가운데가 빈 선으로

표시합니다. 그런데 태극에는 형상이 없습니다. 태극의 상태란 무엇을 상징한

것인가? 음양분리 이전의 상태, 즉 우리 마음의 상태이므로 형상으로 표시할 수

없습니다. 태극 이전을 무극(태극이전의 상태를 가르키는 말)이라 하면 무극이전은

무엇이겠습니까? 이 모든 것을 다 근본이라고 한다면 아래와 같이 설명할 수가

없겠으나 그래도 상징적으로 표현해 보겠습니다.

  하나는 양이 나가게 됨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또 한 번 변화를 하여 양괘가 하나

더 겹쳐 있는 것을 태양이라고 합니다. 즉 괘상으로는 이렇게 두 번 변화한 것을

태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양괘를 기본으로 두고 음괘가 위로 올라가

있는 것을 소음이라 이름하며, 음괘가 두 개 겹쳐 있는 것을 태음이라 하고,

음괘를 기본으로 하고 양괘가 있는 것을 소양이라고 합니다(참고:괘상의 태양 소양

소음 태음은 경락학에서의 그것과 전혀 별개의 것입니다).

  동무 이제마 선생의 태양인, 소음인, 소양인, 태음인 등 4가지 분류에 의한

'사상의학'이 탄생한 기본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사상이라고 하는 것은 일생 동안

거의 변하지 않는 어떤 본질 같은 것, 선천적인 것을 뜻합니다.

  또 하나, 제가 사암침법강좌를 이끌어가는 기본 이론의 근본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8괘입니다. 양괘가 연달아 세 개 겹치고 음과 양이 다시 분리가 되고, 그리고 양괘가

아래에 두 개, 음괘가 위로 하나 이런 식으로 변한 것을 8괘까지 변화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8괘는 각각 곱해져서 64괘가 되는데 이건 매우 어렵습니다.

  "사암침법"을 보면 족소음신경을 보하면 허리가 낫는다는 것은 이해가  가는데,

요통문에 보면 수양명대장경이 요통을 고친다고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들 생각에

대장이란 수분을 흡수하는 것 쯤으로 밖에 더 생각을 하겠어요? 또 여자들 경도불순에

수태양소장경을 쓰라고 하는 데에는 머리를 한 대 얻어 맞은 듯 아찔 할 것입니다.

사암침법의 어려움은, '허한 것은 보해 주고 실한 것은 깎아주면 된다'는 사암침법의

내용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진단법 상의 어려움을 일컫는 말입니다. 제가 이

강의를 시작할 때 책을 구하려고 행림서원에 갔더니 사암침법 책이 절판이 되었다나요

이유를 물으니 어려워서 책이 팔리지를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의학에 조금이나마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한 권씩은 다 갖고 있는 이 사암침법 책이 왜 먼지

구덩이 속에 머물러 있었겠습니까? 이까짓 60혈을 가지고 '허즉보기모 실즉사기자'

원칙에 따라 하자면 머리 좋은 사람은 하루면 끝낼 겁니다.

  아무튼 여러분 우선 60혈은 다 외워야 합니다. 그런 다음 60혈을 가지고 곱하기

나누기 하는 것은 별로 어려울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수양명대장경을 보하는데 어떻게 허리가 나을 수 있느냐"는 겁니다. 또

장궁노현(머리가 땅에 닿을듯이 등이 굽는 증세)에 수태음폐경을 쓰라고 했거든요.

폐는 호흡기인데 어떻게 그런 경우에 쓸 수가 있을까요?

  사암침법이 어렵다는 이유는 바로 진단법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진단법! 사암도인이

어째서 그걸 썼는지 진단상의 이해가 가지 않으면 사암침법의 집침법자체가 우습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아무 것도 모르고 썼는데도 기가 막히게 듣는 경우가 있습니다.

제가 대전에서 개업을 하고 있었는데 아주 멋있는 곳에 간호원을 4명 씩이나 두고

종합한방병원의 꿈을 꾸고 있었지요. 갓 졸업한 사람이, 그것도 졸업한 해에 간호원을

넷 씩이나 두고 했으니 아주 어린 나이에 시작한 셈이지요. 그런데 요즘 말로 척추

디스크라는 환자가 왔어요(아참! 척추 디스크라는 말이 나왔으니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 한의사들은 양방병명으로부터 자유로와져야 합니다).

그 환자의 요통이 잘 낫지 않아서 답답하던 차에 사암침법 책을 펴 보게 되었어오.

'척추나 근골이 끊어지게 아플 때에는 수양명대장경을 써라' 이렇게 써 있더군요.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 수양명대장경의 보사법이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고 아주 가는

일본 침을 대롱에 넣고 쿡 찔러 놓고는 보사를 한다고 튕기기도하고 좌삼삼, 우삼삼

돌려보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렇게 대충 했는데도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정말 사흘만에 걸어다니더라구요.

그래서 '아하! 여기에 확실히 무엇이 있는가 보다'하고 그 다음부터는 허리만 아프다

하면 수양명장경을 썼는데 하나도 낫질 않더군요. 그것 참 이상하데요. 그래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사암도인이 스님이었으니 스님노릇하면 가르쳐 주나 보다 하고 얼른 머리

깎고 절에 들어갔습니다. 저는 아주 행동파였거든요. 일전에 제가 요통환자를 낫게

한것은 소가 뒷걸음 치다가 쥐 잡은 격이었지요.

  그런데 사암도인이 쓴 사암침법의 이론이란 것이 어찌된건지 읽으면 읽을수록 혼란

뿐이었어요(여기 본과 3, 4학년 되신 분들은 아실겁니다). 한국의 한의학계에 있는

사람들중에 사암침법 책 안 읽어본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런데 몇 장 넘기지 않아서

정지가 됩니다. 예를 들면, 위장병에 족태음비경을 쓰는 것은 이해가 가고, 호흡에

이상이 있을 때 수태음폐경을 씀은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과 일치 되므로 이해가

가는데, 여자월경불순에 수태양소양경을 쓰거든요. 바로 이 부분에서 딜레머에 빠지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신장과 소장의 예를 들어봅시다. 신장의 양방적인 사고방식은 소변을 걸러내고,

어쩌고 하지만 우리 한방에서는 오행상 수라고 6년내내 가르칩니다. 그렇죠?

여러분들이 사암침법의 신을 보하는 침을 배웠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경거, 복류를

보하고 태백, 태계를 사하면 신경을 보하게 되는 것인데, 신경을 보함은 몸이 찬

사람에게 써야 될까요? 몸이 더운 사람에게 써야 될까요. 아하! 신장은 오행으로 보면

수니까 당연히 건조한 사람, 몸이 더운 사람, 소위 열성병에 써야 되겠구나! (이거

외우면 큰일 납니다. 뭔가 모순을 제기하기 위한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신경락을

보함은 열성병에 써야 합니다. 그렇지요?

  일반적으로 소장경을 보한다고 하는 것은 소장 자체가 오행상 화니까 거꾸로

이야기하면 한병에 써야 하겠죠? 그러나 오행상의 성립 논리만으로 상황판단을 하려고

하니까 혼란에 빠지고 마는 것입니다. 가령, 여자들 월경불순에 '소장정격을 써라'

라고 했는데 뚱뚱하거나 말랐거나 간에 하여간 몸이 찬 사람에게 쓰게 됩니다. 그런데

도대체 소장경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저 그 사람 몸을 좀 더웁게 하자는

것 입니까? 신장을 보한다면 몸에 물을 넣어주자는 것입니까? 그러한 단순한 오행적인

관점만 갖고는 사암침법 책 몇 페이지도 읽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행적인

관점 외에 육경이라는 것을 대입시켜 풀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외기를 일컫는 육기

즉 풍 한 서 습 조 화는 나중에 대비시켜서 풀도록하고 먼저 육경부터 풀어

나가겠습니다).

  인체 경락에서는 궐음,소음,태음,소양,양명,태양이라는 육경이 있는데 그 육경 중

신장은 무슨 경락이 될까요? 본과 1학년 이상은 이 육경을 배울 것입니다. 그것은

족소음 입니다. 여기서 일단 족이라는 말을 빼면 소음이라는 말은 풍 한 서 습 조 화

육기상 무엇이라고 부릅니까? 소음은 군화라고 하지요. 또 소장은 무슨 경락에

해당합니까? 예과생은 아직 잘 모르시겠지만 소장은 수태양소장경이라고 합니다.

이때의 태양은 육기상 한수에 속하지요. 출석카드의 태양조를 한수조라고 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족소음신경을 예로 들어봅시다. 신은 오행상 수이고, 경락상 소음은 군화인데

어떻게 수와 화가 한 경락 안에 공존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족소음신경을 보한다고

했을 때 경락을 보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각 경락의 이름이 붙어 있는 육경(궐음,

소음,태음,소양,양명,태양)의 육기적 지식없이 그저 오행적인 지식만으로는 어림도

없다는 생각을 하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선 육기적인 차원, 육경적인 차원을 깊이

공부해 보자는 것입니다.

  오행을 중요하게 여기면, 소장경은 몸이 찬 사람에게 써야 될 것(오행상 소장은

화이니까)이나 수태양소장경에서 만약 태양한수라는 말을 중요시 한다면 소장경은

몸이 더운 사람에게 써야 될 것 같은데, 소음군화로 본다면 신경은 몸이 찬 사람에게

써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오행적인 관점만 일으키고 육기적인 관점이 없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아무튼 신이라는 개념은 오장육부적인 관점 즉 오행적인 관점과, 육기적이고

육경적인 관점과 상호 교차점이 있는게 아닐까 하는 이야기입니다. 지금까지는

여러분들이 주로 오행적인 관점으로 생각을 해왔기 때문에 오행적인 관점에는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런데 제 강의를 일컬어 어떤 교수는 "그것 별거 아니야

육기강의야! 그 사람 육기파야!"라고 합니다. 어떻게 우리 한방에 오행파와 육기파가

존재할 수 있습니까? "황제내경" 오운육기편에 보면, '오행은 형의 성쇠를 의미하고

육기는 기의 다소를 일컫는다'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러면 오행적으로 보는 것과

육기적으로 보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사실 같은 것도 아니고 또한 다른 것도

아닙니다.

  예를 들어 여기에 컵이 있고 물이 있다고 합시다. 컵은 물을 담기 위한 용기이지요.

하나는 그릇이고 하나는 내용물인 질입니다. 잘 들으세요. 지금 여러분의 음양관과

사고에 혼란이 오게 될른지 모르니까 일단 의문을 제기해보자는 이야기입니다.

  용기를 표기하려면, 이 유리컵이라고 가정한 것을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목,화,토,

금,수 오행 중 무엇으로 할 수 있겠습니까? 토에 가깝습니까? 아니면 금에

가깝습니까?  그러나 이러한 것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니 그냥 토라고 합시다. 그러면

물론 내용물은 수이겠지요? 그런데 컵안에 담긴 질을 설명하기 위해서 질을 담고 있는

컵을 토라 하고, 질을 수라고 한다면 이것을 올바르게 표현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할 수 없이 '컵에 담겨진 물이다'라는 복합적인 표현이 되지 않을 수

없겠지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내용물인 질인 것입니다. 족소음신의 경우 '지금까지는

오행적인 이해만을 해 왔으며 소음이라고 하는 어떤 질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지

않았나'하는 것이 저의 첫번째 의문이었습니다.

  '족소음신을 보한다' 몸을 더웁게 한다고 하면, 소음군화로써 더웁게 하는데,

여러분들은 "신은 오행상 수인데 그게 가능할까? 이건 말도 안돼" 그러시겠지요. 또

수태양소장경도 같은 식이라고 앞에서 설명했었지요. 이리하여 혼란에 빠지게 되는

것이 우리네 학문풍토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육기파도, 오운육기파도 아닙니다. 그냥 동의학자 내지는 동의학도일

따름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방법론의 접근에 있어서 너무 오운 쪽으로

치우쳐 있기 때문에 저는 육경적인 것을 설명하는데 거의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음양관 중에 '가벼운 것은 양이고 무거운 것은 음, 하늘은 양,

땅은 음이다'라는 것이 있지요. 여기에 지구가 있고 가운데 축이 있다고 합시다. 축을

중심으로 지구가 도니까 자연히 바람이 일기 시작하지요. 여러분이 지구본을 놓고

돌릴 때 세게 돌리면 바람이 많이 일므로 대기권이 많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살살

돌리면 대기권이 조금 생기구요. 그러니까 '비인다중풍'이라. 뚱뚱한 사람은 조금만

움직여도 바람이 많이 일므로 중풍이 많은 것입니다.

  지구 가운데를 화로 보고(뜨겁고 더우므로), 양극은 차니까 수로 보고, 지구체를

금, 대기권의 바람을 목(풍목이므로)으로 보았으나, 중앙 토는 제가 빼버렸습니다.

이런 식으로 대비를 시키면 입체감각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음양관을 평면적으로

이해하던 사람이 입체적으로 이해하기란 다른 차원의 세계를 이해하는 것 만큼이나

어렵습니다.

  점을 0차원이라 한다면 직선은 1차원, 전후좌우가 있는 평면은 2차원, 벽이 생겨서

입체가 된다면 3차원이 되겠지요. 오로지 지상(2차원세계)을 기어다니가만 하는

동물이 있다고 할 때, 공중(3차원세계)의 새가 날아와서 부리로 쪼았다고 한다면,

이 동물로서는 전후좌우 아무리 둘러봐도 무엇이 그랬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4차원의 세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면 3차원의 사람들은 그것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그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보면, 4차원의 세계란 3차원의 세계에 속도가 가미된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가장 고차적인 동양철학을 기본으로 한 우리 한방이 혹시 그런 정도의

세계가 아닐런지요?

  그러므로 우선 여러분들의 평면적인 사고방식을 입체적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북방을 수라고 하는데 무엇을 기준으로 하겠습니까? 찬물이 많고, 춥고, 무얼 장하는

성질이 있는 곳을 북방이라 한다면, 북방은 남극, 북극 양 쪽에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하늘은 양이고 땅은 음이다"라고 이야기하는데, 하늘은 뭔가 가벼워

보이니까 양이라 하고, 땅은 무거워 보여서 음이라 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원심력을 이야기 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돌을 실에 묶어서 돌릴 때 무거운 것(돌) 일수록 바깥으로 나가고자 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지구의 자전하는 특성 때문에 소위 오존층이 지구보다 훨씬 무거울지도

모를 일입니다...이것은 금오의 역설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지구보다 대기권 부분이

더 무겁다고 여기는 사람입니다. 경 중을 여러분들은 그저 막연하게 형이상학적으로,

육안적(너무나 신빙성이 없는 인간의 눈)으로 가늠하겠지만 실제 질량으로 따져본다면

제 말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어떤 관점에서 보았느냐 하는 것에 촛점을 맞출

일이지 막연한 음양관을 갖고 이건 음이고 저건 양이다 라고 딱 잘라 단정하지 말라는

얘깁니다.

  옛날에 우리에게 주역을 가르쳐주셨던 선생님께서 "하늘은 음, 땅은 양"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우리가 반문하자 "형이상학적으로만 생각지 말고 한의학적으로 생각을 해

보라"하시더군요. 그래서 학생들이 "하늘은 따뜻하고 땅은 하늘보다 더 찬데요"라고

하자"그건 지금 우리가 숨쉬고 있는 요 상황에서만 그렇지 만일 태양이 지구를 덥게

했을 때 높은 산에 올라가면 낮은 곳보다 태양열을 많이 받으니까 더 뜨거워져야 되지

않은가? 그런데 높은 산에 오를수록 더 추워지거든. 그러니까 실제로 한열상 하늘은

춥고 땅은 덥다"

  이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따라서 음양이라는 것은 편의상 갈라 놓은 것인만큼

천으로 나누든 만으로 나누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므로 어떤 기준을 갖고 나누었느냐

하는 관점을 날카롭게 주시해야 합니다. 같은 물이라 하더라도 수증기처럼 된 물은

양적이라 할 수 있지만 드라이 아이스같이 냉각되어 있고 기화되는 것은 한열적인

차원에서 음이 되는 것이지요. 이것은 육안적 차원에서 벌어지는 어떤 일도 운동성이

가미되었을 때의 공간적 차원을 상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치병적 차원에서의 신장은

육기적, 육경적 차원에서는 질에 해당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질이라는 것이

유리컵에 담긴 물처럼 기라는 차원과 아주 분리가 된다면 좋은데, 그게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제가 내용물을 좀더 중요시 여기면서, 용기(=기)와 내용물(=질)을 마치

유리컵에 물을 부었다가 따를 수 있는 것 처럼 설명을 했지만 우리 인체라는 것은

이렇게 기와 질로 분리시킬 수가 없습니다. 만약 우리 인체를 기와 질로 분리시킬 수

있다면 얼마나 알기 쉽겠습니까. 그러므로 족소음신이라 할 때, 소음군화와 신수의

어떤 복합체에 대한 개념, 이 복합체에의 접근방법을 여러분들은 지금부터 공부하셔야

합니다.

  나누어질 수 있는 기준을 정하는 즉시 음양분리가 되는 것이지 기준이 없으면

음양도 없다는 전제조건 하에서,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장기론은 무형학적인

기질론과 유형학적인 기로 구분됩니다. 따라서 오행이라는 것은 형의 성쇠이고,

육기라는 것은 기의 다소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린 인체가 형과 기의 복합체라고

한다면 기학적인 면은 왜 여태까지 공부를 안했느냐 하면 경락학 시간에 마치

양방학적으로 무슨 병에는 무슨 혈, 무슨 병에는 무슨 탕 이런식으로 외우게만

가르쳤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족소음신경에 어떤 기운이 흘러 들어간다고 일러주면 족소음신경 자체의 기운을

이해하게 되고, 그 기운을 이해하게 되면 그 기운을 보했을 때 어떤 현상이 일어날

것인가를 예측할 수 있지 않겠어요? 또 족태양방광경에 흐르고 있는 에너지 전체를

이해하면, 방광경이 가진 에너지를 물이라(태양한수이므로)가정할 때 그 물은 어떤

부분에 가서는 수증기처럼 되기 쉬운 상태도 있고, 어느 부분에 가면 맑은 바닷물과

같은 상태도 있을 것이고, 혹은 강물, 혹은 빗물과 같은 상태가 될 수 있을 것이나,

물이라는 본래의 속성은 유지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경락 안에 흐르고 있는 에너지가 무엇인가를 일러준다면 경락학 전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아니겠어요. 그러면 왜 그런 강좌가 없느냐? 그것은 바로

강좌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왜 어려운가? 문자로 전달할 수 있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경락학이란 것은 우리 인체내에 흐르는 미묘한 기운이므로 관해 보지

않은 사람은 그 내용을 설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 강의는 음양관, 오행관, 육기관을 공부하기도 하지만 결국은 육경강의가

중요한 골자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제 강의를 이해하시기에 다소

무리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선 일단은 섭수를 하시고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보면

활용하는 차원이 훨씬 넓어질 것입니다. 제게서 공부를 하고 가신 분들 중에는

"선생님께서 여기까지 생각하신 것은 좋운데 이것이 좀 아쉽지 않습니까?"라고 할 정

도로

연구를 많이 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처음 얘기와 같이 한 3% 정도,

즉 비유를 하자면 '문을 살며시 열어 보니까 기화요초가 만발하더라. 들어가서 꽃을

따기에는 힘이 겨워 문을 다 열지 못했고, 결국 들여다보기만 했는데 좋기는 참으로

좋더라'라는 정도만 알고 있는 셈입니다.

  문제의 요점은 경락의 내용물이지 신이나 간 등의 장부론을 중요시 여기는 것이

아닙니다. 즉 신이 아니고 족소음경이며, 간이 아니고 족궐음경이라는 말입니다.

경락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지닌 어떤 한 생각의 통로이다'라는 전제조건 하에서

출발한다면 각 육경의 생각이 무엇인가를 추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바로 이것이

증거를 드리고자 주역팔괘, 음담패설 또는 제가 엉터리로 꾸민 육장육부이야기 등을

등장시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것이 어떤 이론으로 굳어버리기 전에 그러한 우리의

심리적인 상황 전체를 이해 한다면 여러분들이 실질적으로 장부를 이해하는데 굉장한

도움이 될 것입니다.



  (2)

  요컨대 문제는 형에 있지 않고 질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내혁과 무슨 연관이

있는가? 질을 파악하는것이 결국 우리의 생각을 파악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생각과

경락이 어떻게 연결이 되느냐? 어떤 상황을 유발시키는가? 이런 문제들을 여러분들과

함께 연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사암선생에 대한 소개를 하겠습니다.


"사암도인 침구요결"을 보면, "침도의 첩법최기는 이른바 난자경락하여 출혈여분에

있는 것이 아니요..."라고 적혀 있습니다. 요즘 침 놓는다는 사람들을 보면 그저

경락을 난자해서 100개 정도씩이나 꽂아보는 겁니다. 두통이 안 낫는다 하면 열결이

좋다니까 열결도 놨다가, 또 족삼리혈에도 그런 말이 있었던 것같으니 족삼리도

놨다가, 합곡도 슬쩍 꽂아보고, 태충혈 통곡혈도 꽂고, 사람이 용기가 없는 것같으니

용천혈도 꽂는 등 생각나는대로 막 침을 놓습니다.

  본래 사상방이라든가 상한론방 같은 묘방들은 '방다이효소'라고 즉 방이 많으면

효가 적다고 했습니다. 체침법 배우신 분들, 족삼리가 치료할 수 있는 치료병명을

찾아보면 약 3만여가지가 되지요. 그러니 못고칠 병이 어디 있겠습니까? (족삼리혈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고, 자침의 무분별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또 태충혈, 외관혈과

같이 치료할 수 있는 병명이 많은 혈을 50개씩 100개씩 선택을 해서 취혈을 해서야

되겠습니까(이것은 다방이 되는 결과입니다)? 여러분들 중에서 무의촌 봉사를 가

보신 분은 알 것입니다. 환자가 잘 낫지 않으면 음양한열허실로 구분 짓는 것이

아니고 선후배를 막론하고 그저 생각나는 대로 자꾸 플러스(+)시키다가 나중에는

머리가 혼란해져 손을 드는 경우가 있었을 것입니다.

  사암침법은 참 묘합니다. 여러분들에게 혼란 대신에 원리체계를 세워주고 그에 대한

토론도 가능하게 해 줍니다. 예를 들어 어떤 환자가 왔는데 그를 소양지기로 봤다고

합시다. 이것은 마치 불(소양상화)을 끌 때 물만 쓰는 줄 알고 모래를 끼얹는 방법을

잊은 편협성과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용약법에도, 꼭 숙지황, 생지황, 황련, 황금,

황백만으로 불을 끄는 것이 아니고 용골, 모려도 염두에 두셔야 하는 것입니다. 가령

기름불이 있다고 합시다. 거기에 물을 부을 수 있습니까? 그럴 때는 숨을 죽이는

방법, 모래를 끼얹거나, 두꺼운 보자기를  씌우는 방법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요.

그러므로 용골, 모려를 언제, 어떤 불을 끄는 데 써야 하는 지 올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렇듯 세속적인 일상생활을 면밀하게 관찰할 수 있는 두뇌가 필요하고, 사람의

본성을 통찰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바로 한방의 어려운 점인 것입니다.

  어떤 부인이 남편이 외도한다는 소문을 듣고부터 가슴이 울렁울렁하더니 제부동계가

(배꼽노리가 펄떡펄떡 뜀) 있다고 합시다. 제부동계에는 용골두여탕을 쓴다고 했으나

숙지황을 쓰지 않고 용골, 모려를 쓰는지 이해해야 합니다. 열을 가라앉히는 데

숙지황, 생지황을 쓰는 경우, 향유를 쓰는 경우, 황련 황백을 쓰는 경우, 용골 모려를

쓰는 경우 등을 잘 알아서 불의 성품에 맞추어서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장작불은

물로 끄고, 기름불은 모래로 끄는데, 가령 촛불을 끄면서 물을 한 대야 들이부었다고

가정합시다. 그러면 불은 꺼졌지만 과다한 물로 인해 화를 부를 수도 있고 몸 전체가

냉해 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수극화라는 오행설을 외웠더라도 불을 모래로 끄는

경우는 토극화가 되므로 기존의 상생상극법이 들어맞지 않게 됩니다. 앞의 경우

촛불은 입으로 불어서 끌 수 있으므로 목극화(궐음풍목이므로)가 됩니다.

  이제까지 여러분들은 논리로써 우주를 배워 왔지 사실을 관찰해서 논리를 유추하는

법을 공부하지는 못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사실을 먼저 깨닫고 그 사실을 열심히

공부하는 가운데에서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있는 어떤 논리를 찾을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 '사암오행침은 오운육기침'입니다. 따라서 단순한 오행적인

사고방식은 버리고 백지상태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한 가지 더 예를 듭니다. 방에 물을 쏟았다고 합시다. 그 물을 분필이나 흙가루로

말린다면 토극수가 되고, 전기드라이어로 말린다면 화극수가 되겠지요. 또 통풍을

시켜 말린다면 목극수가 되고, 다르게는 물길을 터서 물을 제거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니까 병을 고치는 것은 결코 한 가지 논리만으론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고정된

논리만을 외운 의사는 자신의 처방에 잘 낫지 않는 환자를 보고 "의학입문에 보면

분명히 이 처방으로 낫게 돼 있는데 왜 안 낫지? 자네 병이 잘못 된거야. 가서 병

고쳐와!" 이러더군요. 제 강의는 사암침법의 실질적인 효과를 알려드림에 목적이

있습니다. 어떤 이론만을 주장하여 궐음풍목은 신 맛이고 권력욕이고 명예욕이고

어쩌고 하는 것을 결코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매일의 현실 속에서 일어나는

확실한 각성의 상태가 여러분에게 필요합니다. 사암침법의 묘미는 나중에 치료법에서

얘기하겠지만 아주 기묘합니다. 그 기묘함이란, 많은 것을 필요로 하지 않고, 그

경락이 갖는 에너지를 알아 사지의 팔관절, 무릎관절 이하에 있는 혈만으로 병의

근본을 조정해 주는 데 있습니다.

  "사암침구요결"을 보면"본서의 원저자 사암선생은 그의 존성대명을 밝힌 바 없고

그저 도호'사암'이라 하였을 뿐인데 세간에서는 석굴속에서 득도했기 때문이라고

하며, 승려본질이 속성발표를 기하는 것이 통칙이고 보니 추고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으나 최근 비서공간의 보를 접하고 전위상락한 강원도일노의의 전하는 바에 의하면,

사암은 즉 별인이 아니라 사백십수년 전인 임진왜란 당시에 승병을 지휘하여 많은

전공을 세우고 군사로 일본에 건너가 여러가지 이적을 나타내어 왜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저 유명한 사명당 송운대사(1554--1610 법호는 송운 명운 유정. 선조때의

도승으로 임진왜란을 당함에 승병을 지휘하여 많은 전공을 세웠으며 지력과 기지가

있어 난중에도 군사로 양편진중에 왕래하였고 난이 끝난 후에 일본에 건너가 여러가지

이적을 나타내어 왜인들의 간담을 서늘케하였다. 그의 이름은 내외를 통하여 생불로

알려졌었다)의 수제자라 한다"고 쓰여 있는데 혹자는 사명대사가 사암이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여간 이 기이한 책이 시중에 필사본으로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밝혀져

사암이 유명해졌는데, 불교계율 중에는 친히 자신의 법을 내지 말라는 율법이 있어서

이름은 커녕 아무런 행적도 알 수 없고, 다만 집 "사"자, 바위"암"자만이 남아

있습니다. 특히 굴 속에서 공을 들이고 관심을 한 침법인 까닭에 일반 침법과는 다른

것입니다.

  치료하는 방침은 "황제내경"과 같지만 병을 보는 관점은 획기적인 것입니다. 그럼

무엇이 다른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족소음신이라 할 때 신은 오행적으로 수라는

차원이지만 소음은 군화를 일컫는 것이며, 족소양담경은 목이라는 개념외에도

상화지기를 담고 있고, 상화는 팔괘상 어디에 해당하며, 정신적 물질적으로는 어떤

것이 취상되겠는가 하는 점 등을 추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사람은 요점만

간추린 것을 보고 사암침법을 이해하려고 하는데, 이 총론부분의 강의를 듣지 않으면

안됩니다.

  제 강의 요약집을 보면 유심적, 유물적 취상을 하면서 '족궐음간경은 피리다.

족소음신경은 수중 Sex다'라는 말장난을 해 놓았는데, 그것은 여러분들에게

오운육기를 이해시키기 위해서이며 또한 최대한의 상상력을 충분히 활용하기

위함입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육기적인 개념과 오행적인 개념이 서로 복합되었을 때

추론할 수 있는 여러분의 상상력을 유발시키기 위한 표현이므로 때로는 그것들이

여러분들의 기분을 상하게 할지라도 이해해 주십시오. 그런데 제 강의의 간추린 것만

보신 분들은 제게 전화를 많이 합니다. '어째서 음이 쾌락이고 양이 분노라는 것이죠?

가설이 엉터리가 아니냐?'하는 항의를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간추린 것만 보는

공부는 이 강의의 전체적인 모습을 볼 수도, 이해 할 수도 없습니다. 그만큼

사암침법은 난해합니다. 석굴 안에서 몇 십년 수도한 결과에서 나온 내용을 그리 쉽게

알 수가 있겠습니까?

  저는 그 분이 공부했던 방법이 가장 궁금합니다. 옛날 선가에서는 비술로 이

사암침을 공부했는데 오늘날 스님들은 이 공부를 하다가 중도에 포기한다고 합니다.

만약 여러분 중에 이 사암침법을 공부하고 나서 '나는 사암침법파'라고 섣부른 속단을

한다면 그 사람은 크게 오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암도인의 가풍이

사명당의 가풍이고 곧 서산대사의 가풍이고, 서산대사의 가풍은 달마의 가풍이며,

달마의 가풍은 석가의 가풍이고 그것은 곧 역대 모든 성인의 가풍인데 성인의 가풍에

어찌상이 있겠습니까? 상이 있을 수가 없지요. 

  일본의 유명한 선사의 시는 이러한 성인들의 가풍을 잘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푸른산은 흰구름의 아버지

  흰 구름은 푸른 산의 아들이다.

  서로 의존함이 없이 온종일 서로 의존하지만

  흰구름은 언제나 흰구름이고

  푸른 산은 언제나 푸른 산이다.

  이미 이 정도의 경지에 오르면 모든 것을 섣부르게 판단하는 인간사의 오류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들 중에 사암도인의 오운육기만을 배워서 빨리 성공해 보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각성하시고 오운육기의 천지면목을 깊이 이해하는 것이 성공의

비결입니다. 이것이 도에 이르는 길입니다. 사명당대사 책을 아무리 보아도 오운육기,

궐음, 소음, 태음 등의 말은 한 마디도 없으니 증거할 수는 없으나, 비록 문자를

달리 썼다고 하더라도 오운육기를 보는 눈이나 선을 보는 눈은 천진하지 않았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분이 제자들을 어떻게 공부시켰는지 알 수 있다면 우리도 그런

식으로 공부를 한다면, 따로 오운육기를 가르치지 않더라도 절로 오운육기법을

깨우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때문에 그 분의 가풍을 공부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강의를 하게 된 동기는 서산(휴정 1520--1604 조선 중기의 고승.

속성은 최씨 호는 청허자 또는 서산 1549년 승과에 급제, 봉은사 주지가 되었다가

56년 사퇴하고 명산 대찰을 찾아 수도에 전념하다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73세의

나이로 승병을 총지휘하여 서울 수복에 공을 세웠다. 그는 조선 불교를 선종인

조계종으로 통합하고, 또한 동양의 3대 종교인 유 불 도교가 결국은 일치한다고

주장함으로써 3교 통합론의 기원을 이루었다) -> 사명 -> 경허 -> 만공 ->

혜암으로 내려오는 참선법을 공부하는데 어느날 문득 마음의 매듭이 몇 개

풀려나갔습니다. '아하! 이렇게 한의학을 보면 되겠구나'. 그 때 3%정도 풀린

것입니다. 그래서 D대학교에 내려가서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 때는

사암침법에 대해서는 강의를 안했고 원리론에 대해서만 상당히 장황하게 이야기 했고,

크리슈나무르티의 "의식으로부터의 해방", "지식으로부터의 해방", 라즈니쉬의 "성과

명상" 같은 책들을 읽어오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구약성서의 선악과에 대해서

논하라', '불경의 어느 부분을 읽어와라' 이런 식으로 정신과 강의를 했습니다.

그런데 우스운 얘기지만 정신과 시간에 학생들을 데려다 놓고 정신병자를 만들어

버렸습니다. D대학교 1기생들은 잘 알 것입니다. 한 번 강의를 하기 시작하면 다섯

시간씩 강의를 했으니까요. 왜 제가 그런 강의를 했느냐? 사실은 그런 강의를 통해서

어떤 법에 대한 안내를 하려고 했던 것이지요.

  그후 연분이 있어서 이 강의를 시작하게 되었고, 이렇게 100명 200명, 또 테이프를

들은 사람들까지 합한다면 상당한 수의 한의과 학생들이 강의를 들었습니다. 그러면

이 많은 사람들이 왜 이 강의를 듣느냐? 그 기본은 바로 우리 마음을 닦는 수심공부,

도심을 익히는 공부, 천진한 면목, 절대자의 존재에 대한 탐구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동양철학의 근본은 태극이라든가 아니면 우주의 근본이 되는 신선공부가

아니겠느냐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한방의 정면이 너무나 장중하고 위엄이 있는

가파른 벼랑과 같을지도 모르므로 방과 술은 멀리하고 먼저 도부터 닦아보자하는

마음에서 저는 굉장히 많은 세월을 우회해 왔습니다. 무언가 가르침을 얻기 위하여

여기 저기 침술의 대가와 처방의 대가라는 사람들을 찾으면 그 대가들은 나를 여러

방법으로 시험하면서 "음양관하나 얻으려면 40살 넘거든 찾아오게", "한 10년 이 처방

저 처방 쓰다가 40넘거든 한 두어가지 처방을 쓰게나" 그러더군요. 여러대가들의

말씀도 결국은 저 깊은 내면의 수신공부를 강조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의과대학은 면허증만 따서 나가는 곳이 아니라 도 닦는 수련도장으로 성장되어져야

합니다.

  사암도인이 굴 속에서 몇 십년 도를 닦아서 연구한 것만 똑 따먹으려 하지 말고

그 분의 마음을 알아서 그 분이 못다한 사명을 우리가 이루고자 노력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각론에 가면 사암침법을 강의하게 되는데, 저는 사암침법 임상 예를 여러분들에게

외우라고 하지를 않습니다. 왜냐하면 고정된 것은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옛날에는

족태음비경을 많이 썼으나 지금은 다른 경락을 많이 써야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우주는 변하고 있습니다. 사암선생이 살았던 때와 지금은 인심이나. 대기나, 삶의

수준 등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그러므로 터득한 원리를 응용해서 써야지

양방병명 처럼 외워서 쓰는 어리석음은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제가 이 강의를 하는 배경이 무엇인지, 그 마음이 어떠한지 알고 싶다면

제가 알고 있는 공안법을 모두 통과해야 합니다. 1700가지 공안을 다 통과해야 "아하!

이런 것이었군. 결국은 불여우같이 우리를 갖고 놀았군" 하고는 한바탕 웃을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 강의에서 거론되는 임상 예를 중요시하지 말고 천진면목을

기르라는 것입니다. 임상예의 암기보다는 그 분의 행적에 대한 소설을 먼저 읽으세요.

문제는 그 분의 눈이지 그 분의 행실이 아닙니다.

  제 사부님이신 혜암선사께서 제 한의원에 오셨을 때, "무얼 드시겠습니까?"하니까.

"시원한 맥주나 가져와라, 닭고기 하고"

"아니 스님께서, 더군다나 생불이라고 소문이 나신 분이 어떻게..."

"그러면 어떠냐? 맥주는 시원해서 좋고 닭고기는 쫄깃쫄깃해서 좋지 않느냐?" 시원한

것을 그저 시원한대로 먹고 있는데, 나(금오)는 자기가 먹은 술이 풀장을 가득 채울

만큼이나 되는 주제에 어쩌다 한잔 먹는 것을 보고 계율이 어쩌고 자격이 어쩌고 하며

입방아를 찧습니다. 이 선사의 행위가 자칫 방종으로 보일지 모르나 행동보다 그

사람의 바른 소견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바른 소견, 곧 '정견'이지요. 이 바른

소견 하나만 얻으면 오운육기를 강의하는 제 말에 끄달리지 않고 여러분 스스로

오운육기를 굴릴 수가 있게 됩니다. 여러분에게 시 두 편을 소개하면서 미흡하나마

이렇게 사명당과 사암의 소개를 마치겠습니다.

  한가로이 앉아 있는 것이 곧 나의 일이 아니요.

  본래 계급이 없으니 길의 고저가 없도다.

  금까마귀가 한 밤 중에 하늘 바다를 가로질러 지날 때

  혼자 승상에 의지하고 앉아 새벽 닭소리를 듣노라.

  이 시는 사명당이 그의 제자에게 공부의 자세를 가르칠 때 지은 것으로 제 호를

여기에서 따서 저의 사부님께서 지어 주셨는데 금오란 동양에서는 흔히 태양을

상징하고, 불가에서는 깨달음을 상징하지요.

  참선에는 많은 말이 필요가 없으니

  단지 심상하게 자신을 묵묵히 관조하는데 있느니라.

  조주(778-897. 스님의 속성은 학씨. 120세까지 재세했었음. 법명은 종념

산동성 조조부에서 출생. 남천보원의 법을 이었다. 조주고불이라 할 정도로

수 많은 일화를 남기었고 법을 널리 전파하였다. 조주끽차라는 화두가

대표적이다)무자와 더불어 세상사를 잊고 공부를 한다면

  비록 입이 있어 말을 안한다 하더라도 내가 너에게 간섭을 하지 않겠다.

  나의 스승은 천축국의 금선씨(천축은 인도의 이명, 금선씨는 부처님)인데

  곧바로 발이 부르트게 옛뜰로 돌아가라.

  내가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지 돌아간 즉 너희는 얻을 것이라.

  달이 푸른 계수나무에 임했는데 바로 원숭이가 우는 구나.

  이 시는 사명당이 그의 제자에게 준 시입니다. 조주는 스님이름이며, 무자란 어떤

사람이 만물에 불성이 있다는데 개에게도 있는지 없는지 물었을 때 "없다"라고 대답한

선가의 화두입니다.

  모든 종교적인 깨달음의 방법에는 믿음(긍정)과 의심(부정)의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교학적인 방법은 믿고 긍정하고 들어가는 것이고, 선가적인 방법은 의심과

부정과 반항을 통해 깨달음에 이르는 것입니다. 크리슈나무르티도 의심과 반항의 정열

없이는 깨달음에 이를 수 없다고 했습니다(이 때의 의심은 번뇌 망상에 속하는 의혹이

아닙니다). 여러분! "청소년을 위하여"라는 책을 꼭 읽어보세요.

  여러분! 우리 한민족의 약점인 사대사상이 더욱더 팽배해진다면 한의학을

공부하려고 유럽이나 중국으로 유학간다는 말이 나올지 모릅니다.

  앞으로 중공과 문호가 개방된다면, 중공에 가서 공부하고 온 것을 자랑으로 삼아서

중공의 어느 한의원 앞에서 찍은 사진을 영업장 안에다 대문짝만하게 붙이는 그런

일이 생기게 되지나 않을까요? 한방에 종주국이 어디에 있습니까? 뭐하러 중공에

유학을 가요? 중공사람들이 배우러 오도록 만들어야지요. 중공의 개방주의 정책에

따라 문호가 넓어지자 한방을 배우기 위해 많은 수가 들어간다고 합니다.

동양철학이나 모든 근본이 중공에 있는 줄 알지만 아마 그동안 중공의 몇몇 눈 밝고

마음 밝은 사람들은 산 속으로 도피해서 살기 바빴을 것입니다. 공산주의라는 조직과

통제로 사람을 획일화 시키는 그런 사회에서 무슨 도와 선의 꽃이 피겠습니까?

  독일에서 몇 년 유학해서 독일어 좀 알고 칸트의 책을 번역 좀 했다고 그것이

유명한 칸트학자입니까? 이렇게 해야 인정을 해 주는 사회라면 그 사회는 학문적

민주주의가 없는 사회입니다. 자유분방히 참으로 정도를 공부하는 사람을 인정해 주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중공에 가서 공부를 해야 한방을 잘할 수 있지

않겠느냐 하는 학문적 사대주의, 한문을 주절주절 잘 엮어낼 수 있어야 한의학자가

되는것이 아닙니다. 우리 한글로도 얼마든지 진리를 드러낼 수 있어야 합니다. 진실로

깨달은 사람은 문자의 구애를 받지 않습니다. 표현보다는 그 뜻이 중요하지요. 바로

그 뜻을 알아야 합니다.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란 책을 쓴 김용옥 교수는 '5천년 전에 쓰여진

"황제내경"의 말은 그 당시엔 평상언어가 아니었겠느냐'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때의 언어감각으로 돌아가면 되는 것이지. 그것을 한자자전적으로 아무리 풀이를

잘 했다 하더라도 만족할 수 없는 거지요. 따라서 지금 우리네 고전 공부에도

제기되어야 할 이론이 참으로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당귀(승검초의 뿌리)가 토끼의

간에 미치는 영향' 이런 식의 얄궂은 석사, 박사논문보다는, 차라리 고전 한 페이지를

잘 번역한 사람, 현대용어로 획기적인 번역을 한 사람에게 학위를 주는 풍토를

만들어야 합니다. 토끼 간이 어쩌구, 쥐가 어쩌고 하는 이런 작태가 계속된다면

한방은 결코 발전할 수가 없습니다. 한 페이지의 고전에 온 정열을 바쳐서 참으로

알기쉬운 말로 번역을 해 낸 사람에게 학위를 줄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 한방은

찬란한 꽃을 피울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이번에는 사명당께서 쓰신 '각몽가'를 소개합니다. 깊이 한 번 새겨 보시기 바랍니


  인생천지비세간이 묘창해지일속이라.

  부유같은 우리 인생 조부모석세도로다.

  야래풍우정급되어 화락다소염녀로다.

  한서침에 경기하니 장생인가? 호첩인가?

  공왕(석가)불미출세에 삼계대몽 꿈을 일워 깜짝 놀라 일어나니

  추야월 둥근달이 중천에 밝았더라.

  월색이 괴괴하고 만산은 적적한데

  무현금 높이 타니 이 소식 누가 알리.

  삼독주에 대취되어 무명장야 잠이 깊어

  꿈을 길이 꾸노라고 구경할 줄 모르오니

  이 아니 불쌍한가?

  방편으로 수행하여 내 먼저 성불한 후 중생제도 하여보세.

  태고라 넓은 천지 일간토굴 삼어 두니 자심성은 광명일월에 비할 소냐?

  서해수심광하야 불증불멸하오시니 정혜수이 아니며

  인아업산 깊은 곳에 수미산고묘하니 원각도장 이(시) 아니며

  송백은 불변하여 사시장청하였으니 상주설법 이(시) 아닌가?

  청산은 청정하고 백운은 무심한데 적적한 산수간에 무심히 홀로 앉아

  허공마를 빗겨 타고 반약혜검 높이 던져 법성사를 찾아들어 주인공을 벗을 삼고

  행주좌와되어 어묵동정 소요자재 수용하니 각수담화만발한데 영상에 우는 새는

관음조 이 아니며

  녹수는 잔잔하니 조주청다 이(시) 아닌가? 이 어떠한 경계런고? 라라리라리로라

태평가를 기리부세.

  두견새 울음소리 종일무심 종야무심 무심객이 되었구나.

  심산무인도에 다만 래자오작이라, 낮에는 해가 오고 밤에는 달이 오니

  비록 적막공산이나 주야벗이 산수로다.

  유시에는 염불로서 무공저를 빗겨 불고 주장자를 의지하여 다성일편이루오니

적멸락현전일세.

  유시에 영두암상배회하여 관월하니 운무심이 출수하고 수류의이곡난이라.

  봄이 오면 꽃을 보고 겨울 되면 눈을 보니 대장부 살림살이 다시 무엇 구하리요.

  자수법락 무위진락 저버린 자 누구던고?

  생사장야 잠든 사람 오욕락에 심윤하여 무량고 받지 말고 자타수용하여 보세.

  자박자승불상하다. 방변 돗대 손에 잡고 생사바다 넓은 물에

  반약용선 노를 저어 저 바다를 얼른 건너 동왕극락하여 보세.



  (3)

  저는 여러분에게 지혜를 알려드리고자 이 강좌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제 어느

후배가 말하기를, "신농백초 거쳐간 사람들은 교수 애먹이는 데 선수라면서요?"와

같은 소문이 들립니다. 여러분! 자기 자신도 아직 성숙되지 못한 상태에서 교수들

너무 면박주지 마세요. 그 사람들 쫓아내면 누가 핀치히터로 등장합니까? 제 말 잘

들으세요. 사람들은 몸이 아프면 먼저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야 합니다. 왜? 의사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또 의사 처방전 가지고 약국에 가서 약도 복용해야 합니다. 왜?

약국의 약사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그러나 그 약은 개천에 확 내버려야 합니다. 왜?

나도 살아야 되니까...

  오늘날의 모든 쓸모없는 강좌는 이와 같습니다. 듣고 나서는 모두 잊어버려야

합니다. 그렇다고 그 사람들 생명줄을 끊어 놓으면 안되지요. 교수들도 먹고 살아야

되잖아요? 너무 그 사람들 공박하지 마세요.

  학교 강의의 기초가 관심법이라든가 도에 입각하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 행해지기

때문에 거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어디서 양방얘기를 조금 잘 주워들은 그런 차원과,

도학적인 차원과는 전혀 다른 별개의 것입니다. 먼저 내혁하세요. 질문을 자주해서

교수들을 당황하게 하는 쾌감을 느끼는 것도 일종의 승부욕이올시다. 부처님께서도

승부욕(승기)이 많으면 도를 이루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이기고자 하는 기운이 많으면

도를 이룰 수 없습니다. 그것도 일종의 자기 거만이며 자기 확대입니다.

  "교수님! 수태음폐경에 흐르는 에너지가 어떻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런 질문을 해

놓고 "글쎄 --잘 모르겠는데"라는 대답에 쾌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각성하세요. 제가

얻은 것이 고작해야 3%정도일 뿐인데 여러분들은 얼마나 더 얻었겠습니까?

그러니 우선 자기자신을 충분히 성숙시키십시오.

  자! "사암침구요결"원문은

  책 중간에 있는 임상예라든가, 뒤쪽에 나오는 낙랑노부시침가와는 달리 이

원서만큼은 사암선생이 직접 쓰신 것으로 생각됩니다.

    

  "사암도인 침구요결원서"

  개문천지개벽에 조분산천지기하고 인시물자에 극배동정지형이라. 동서는 일월이오. 

남북은 성신이라 양의일묘운어용화하고 오행이 병행어귀명이라 사상이 득로하고

팔괘종령이라. 기수현어백일이나 이필빙어현명이라 유현사지선강이니

기우부지감촌가 부기부어인자 일유백해구규하고 형착어병자일유천사만령이라

근골맥락은 변화무궁이오 생왕휴수는 운행부정이라 시고로 고인이 복보사지리에

유기리의나 무기사러니 후철이 저온랑지서하여 전어후하고 이행어세로다 황지는

시약지지문답하고 화편은 수침구지전즉이라. 입군신좌사하여 이치한열하고

용보사영수하여 이구한냉이라 체작삼재지동랑하고 혈위오행지문정이라

포일신지호실하고 심칠정지부침이라 의자는 의야니 어심필응이오 병자는 허야니

유수시령이라 한냉상승은 유폐현지흑백이로 풍화호동은 자간심지홍청이라

습장유어비원하고 열항선어흉국이라 담필생자는 소장야오 장가산자는 폐경이라

삼초는 산거하고 방광은 함이라 인기혈귀어임맥에 이기회합오행이라 목무보어화자에

심병이 자전이오. 토관약어수신에 신수생이폐수극이오 심거남향에 북수극이

동수생이라 상생자는 가보오 상극자는 필사이며 허가보요 실가사니 신의지병

가견호로되 괴지언은 막청하라


  해설

  그 뜻인 즉 '천지가 개벽함에 산천지기가 비로소 나뉘고 인물이 비로소 남(시)에

동정지형이 능히 배합되었도다. 동서는 일월이요, 남북은 성신이라. 음양은 용마의

그림(하도)에 묘하게 운행되어 보이고, 오행 또한 신령스런 거북의 새김(낙서)에

아울러 운행되 보이며' 용마의 그림, 거북의 새김이란 하도와 낙서를 일컫는 데,

하나는 상생도, 하나는 상극도라고 합니다. 하도는 우측으로 회전(상생:목 -> 화 ->

토 -> 금 -> 수)하고, 낙서는 좌측으로 회전합니다. 원보방사(원은 보완하는 것이고,

방은 토해내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침을 놓을 때 우회전하여 우측으로 원을

그리면 보가 되는 것이니 외부의 기운을 안으로 넣어주는 것입니다. 한편 침을 약간

들어서 왼쪽으로 돌려주면 사가 됩니다. 여러분 나사를 박을 때는 우측으로 돌리지요.

좌측으로 돌려서 박는 나사는 이상하게도 금방 풀려버립니다. 이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닌 것입니다.

  '사상이 길을 얻으니 팔괘가 좇아 나뉘어지도다. 기는 백일하에 드러나 있지만

이치는 가운데에 의지하나니, 현명한 선비의 강의로 말미암음이 마땅할지언즉 이것을

어찌 어리석은 사내가 감히 헤아리겠는가? 무릇 기가 사람에게 부여된 것으로

백해구규가 있고, 형상이 병에 부착된 것으로 천사만령이 있는데, 근 골 맥 락은

변화가 무궁하고 생 왕 휴 수는 운행이 멈추지 않는다.

  백해란 백 가지의 뼈, 골수 등을 일컫는 것이니 전체성을 의미하고, 구규는 사람

몸의 구멍을 말합니다. 남자는 9개, 여자는 10개를 갖고 있는데 남자는 9개로

양수이기 때문에 불안하므로 항상 움직이게 돼 있고, 여자는 10개이기 때문에 완성된

수이지요. 그러므로 남자는 동적이고 여자는 정적입니다. 천 가지 삿된 기운과(천사)

만 가지의 귀신(만령)이 있도다. 귀신이란 '기견 즉 괴야라' 즉 기가 모여서 귀신이

됩니다. 애당초 음심이 없으면 귀신이 될 까닭이 없는 것입니다. 오기든, 욕심이든,

어리석은 마음이든지, 무엇이건 모이면 귀신이 되는 겁니다. 이것은 저에게 주역을

가르쳐 주셨던 선생님이 들려주신 말씀입니다. 조그만 일에도 화를 내는 사람, 욕심이

많은 사람...모두 한이 많습니다. 바로 생 왕 휴 수는 오행의 법칙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이런 연고로 보사의 이치를 올바로 전하는 바가 없더니 후에 현명한 사람이 훌륭한

책을 만들어 후대에 전함으로써 세상에서 행해지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제가 맨 처음에 말씀드린 귀원, 곧 원전으로, 경전으로 돌아가라는

말과 같습니다.

  '황제, 기백께서는 약석에 대한 문답으로 우리를 깨우쳐 주셨고, 화타와 편작께서는

침구의 법칙을 드리워 주시니, 군신좌사를 세워 한열을 치료하고 보사영수를 이용하여

한냉을 구하도다.'

  군신좌사! 이건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은 음식에 양념을 잘 쓰면 훨씬 맛이

있는 것과 같이 여러분들이 이 육경공부를 끝내게 되면 요리에도 일가견을 가지게

됩니다. 새로 맞이한 며느리가 요리 전공이라 해서 한 번 시켜보니 양념까지 저울에

달아가면서 했는데도 맛이 신통치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만 이 세상의 모든 할머니들은

조리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지만 요리를 그렇게 잘 할 수가 없습니다. 약을 짓는 것이

음식 만드는 것과 똑같습니다. 책에 있는대로 썼다고 해서 병이 쉽사리 낫는 것이

아닙니다. 열이 있는 환자에게 활석, 망초, 대황, 황백, 황련 다 좋아요. 그런데

이렇게 한약만을 썼을 때도(열이 있는 환자인데도) 맨 끝에 살짝 열약인 육계나

건강이 들어가야지요. 아시겠어요?

  냉면집 가면, 면에다 쇠고기 편육 몇 조각, 회도 몇 점, 배도 조금 썰어 넣고,

설탕과 참기름도 조금 넣었는데 왠지 맛이 없을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겨자가 빠졌기 때문입니다. 기껏 2g(반과)정도 밖에 안 넣었는 데도 이렇게 큰

차가 나는 겁니다.

  숙지황 산약 산수유같은 것이 들어갔으면 백복령 목단피 택사 같은 사약이 들어가게

됩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육미지황탕입니다. 이 안에는 군신좌사가 다 들어

있습니다. 세상에 육미지황탕이나 사물탕보다 좋은 성인의 처방이 있습니까? 라면은

끓여 놓고 좀 느끼하니까 신김치를 넣어 먹지요. 또 돼지고기에는 마늘, 고추, 곰삭은

새우젓을 얹어 상추쌈을 싸 먹으면 맛있습니다. 그러나 아침, 점심을 굶은 사람에게

기름기 있는 음식을 먹이고자 하는데 라면을 끓여 그 속에 마요네즈를 넣는다면

이론은 그럴듯하지만 이것은 말이 안되겠지요.

  우리가 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음양의 이치입니다. 돼지고기

편육에서 돼지고기가 군이라면 상추가 신이 되고, 마늘 고추는 좌, 새우젓은 사가

됩니다.

그런데 군신좌사 중에 제일 쓸모없는것 같은 사가 제일 중요합니다. 여러분이 한의원

개업을 멋있게 하여 약사와 간호원을 두었더라도 청소하고 심부름하는 아이가 없으면

그 한의원이 엉망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한방을 "경험의학이다", "다 경험해 봐서 아는 것이다"라고 하는데, 약뿌리를

찾을때 아무 관 없이 닥치는대로 다 먹어보고 한약으로 정한 것은 아닙니다. 사물의

특성을 철저히 파악하여 약효를 설명한 것입니다. 생김새나 냄새 혹은 만져만 봐도

이건 어디에 써야 좋은지 곧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한방입니다. 바로 직관의

학문이지요. 그런데 간혹 한방의 특성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한방을

경험의학이라 합니다. 이것은 미국에서 '알로에'가 들어와서 책을 찾아보니 노회라고

되어 있고, "무슨 무슨 작용이 있고 금기 사항은 무엇이다"라고 한다면 어리석은

본초학자일 뿐입니다. "알로에? 무슨 약인지 몰라도 한번 가져와 보게. 내가 맛을

보고 냄새를 맡아보면 당장 알 수가 있어. 이것은 사람들이 양기에 좋다고 하지만

뚱뚱한 사람이 먹으면 안돼!" 한의사라면 이 정도의 직관은 있어야 합니다.

  담배는 "황제내경"에 나오질 않는데 어떻게 "동의보감"(조선 선조 때 의관인 허준이

왕명으로 편찬한 책. 25책으로 되어 있으며, 광해군 때(1613년)에 간행되었다. 이

서는 동양의학 서적을 널리 탐독하여 집대성한 책으로 한의학계의 귀서중 하나이다)

이나 "방약합편"(혜암 황도연이 이조말 고종20년에 펴낸 책으로 의종손익의 부록으로

쓰여진 책이다. 이 책은 의서중에서 상용이 가한 방제를 합해서 편성한 것으로 근대에

발간된 서적 중 첫손을 꼽을 만한 한의학의 매우 중요한 책이다)에 나올까요? 산지를

알고, 냄새를 알고, 맛을 알고 있다면, 그것이 어느 경락으로 입경하는지 알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경전의 새로운 창조자가 되어야지, 경전에

없기 때문에 모른다는 식의 사고는 지극히 어리석은 것입니다. 이 강좌가 끝나면

여러분들도 맛을 보고, 냄새를 맡아보면 이것이 어느 병에 효과가 있겠는가를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들 중에는 친척들에게 약을 지어주고 용돈을 버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때, 몸이 더워서 찬약을 썼는데 아무래도 불안한 생각이 들면 더운 약을

조금 넣어 보세요. 혹은 몸이 뚱뚱해서 반하 남성 택사 목통 차전자 등심을 많이 넣어

이뇨를 시켰는데, 어째 좀 불안하다 싶으면 맥문동이나 천문동을 살짝 넣어 주세요.

그러면 절대 부작용이 없습니다.

  한약을 많이 썼으면 열약을 조금 넣고, 열약을 많이 넣었으면 한약을 조금

넣으세요. 이것이 바로 사입니다.

  "아니? 처방대로 했는데 왜 자꾸 부작용이 생기지? 요즘 환자들이 이상한 거 아냐?"

하는 사람은 아직 한방의 묘미를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부자를 1량 썼다면

황백이나 황련을 살짝 가미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음양의 이치를 맞추어

맞물려 돌아가게 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저는 이 이치를 깨우치기

위해 10년을 공부했습니다.

  '몸은 삼재의 동량을 만들고 혈은 오행의 문정이 되나니 일신의 허실을 널리

관찰하고 칠정의 부침을 깊이 살펴야 한다.'

  팔강(음양 표리 한열 허실)을 못 보면 한의사가 될 자격이 없습니다. 비쩍 마른

위궤양 환자에게 삼출건비탕에다 반하를 넣고 창출을 배로 넣어보십시오. 혹은 뚱뚱한

사람에게 숙지황을 많이 넣어보세요. 이렇게 약을 쓰면 병이 낫지 않습니다. 마른

사람의 위궤양에는 숙지황을 1량 넣은 육미지황탕을 써야될지도 모릅니다. 우리

한방은 환자가 말랐는지 뚱뚱한지 음양부터 봐야 합니다. 이렇듯 여러분들은 제가 늘

강조하듯이 자유로와져야 합니다. 병명은 누가 붙인 겁니까? 제가 음양을 공부하게 된

동기가 바로 병명에 매달려 있다가 어느 돌팔이 할아버지에게 호되게 야단맞고 생각을

달리 한 것입니다.

  여러분! '칠정의 부침을 깊이 살펴야 한다'라는 말에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사람의 희 노 애 락 애 악 욕이 뜨고 가라앉음을 깊이 관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사암침법이 가지고 있는 특징입니다. 이것은 기술이나 몇 가지 지식으로

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여러분은 도를 공부해서 관을 하고 뜻을 얻어야 되는

사람입니다.

  '의자는 의야라' '의라는 것은 의이니 심중에 반드시 응해야 할 것이오. 병이라는

것은 허란 뜻이니 오직 상수만이 깨달아 알 수 있는 것이다. 한냉이 상승함은 폐와

신의 흑백을 말미암음이요. 풍화가 서로 동함은 간과 심의 홍청으로써이며, 습은

비원에 널리 흐르고 열은 항상 가슴에 성하도다. 담이 반드시 생하는 것은 소장이요,

비가 가히 생산하는 것은 폐경이라. 삼초는 흩어져 머물고, 방광은 모여서 성하니

기혈을 이끌어 임맥에 돌아감으로써 두기운이 오행과 화합하도다.'

  '목이 화에 보해 주는 것이 없을 때에 심병이 스스로 낫고 토관이 수신에 따지면,

신이 회성하고, 서관이 금기를 억제해 주면 간담이 편안해지고, 목이 평해 주면

비위가 건전 장수케 되리라.'

  이런 오행의 상생상극설(오행이란, 목 화 토 금 수를 지칭하며, 이는 고인이 오행이

가지는 속성의 추상개념에 의거하여 오행의 상생상극의 관계로써 사물간의 상호 관계

및 그 생성의 변화규율을 해석하기 위한 방법론적 이론의 수단이다. "상생"중 '생'에

는 자생.조장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고 "상극"중 '극'에는 억제.저지의 의미가 포함되

어 있다)은 일단 제 강의에서 제외 합니다.

  "간이 동방에 제 위치를 바로잡음에 신의 생함을 받고 폐의 극함을 받으며, 심이

남향에 거함에 북수극이 동수생이라, 상생자는 보함이요. 상극자는 반드시 사하며, 허

보하고, 실은 사하니, 의원에서 병을 치료함은 가히 좋은 결과를 볼 수 있으리라는

말은 믿을 수 있으되 귀신의 말은 듣지 말라"

  '허즉 보하고 실즉 사하라'하는 "황제내경"에 있는 원칙이 사암침법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습니다.

  허할 때는 그 어머니를 보하고, 실할 때는 그 자식을 사하라는 것에 상극자까지

포함시킨것이 이 오행침입니다. 그리고 이때의 의원이란 칠정의 부침을 아는 의원,

즉 진리를 깨달은 의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여기에서 '귀신'이란 기이한 술수를

부리는 사람을 지칭한 것입니다. 대도에 입각하여 공부한 사람의 말을 믿되 기묘한

방술, 기이한 비법을 좋아하는 사람의 말은 믿지 마세요.

  처방 하나 내 달라고 하면, 가령, 가미사물탕, 가미십전대보탕, 이런 좋은 처방을

두고, 가미흥양상화제미 십팔지랄발광탕 이러거든요. 기이한 것보다는 평범한 것을 많

익히다가 점점 기이한 것을 연구해 보세요. 사암선생의 원서는 이것으로 끝내고

소동파의 시를 하나 음미합시다.


  만약 가야금에 소리가 있다고 한다면

  어찌하여 필중에 있을 때에 스스로 울지 못하고,

  만약 소리가 가야금치는 손가락 끝에 있다고 한다면

  어찌하여 너의 손가락 끝에서 소리가 나지 않는가?

  이건 소동파가 지은 시인데, 마치 어린애같은 질문으로 되어 있습니다. 만약

손가락 끝에 소리가 있다고 한다면 가만히 있어도 소리가 나야 될 것이고, 만약

가야금 자체에 소리가 있다고 한다면 어째서 스스로 소리가 나질 않느냐는 이야기

입니다.

  옛날에 일자무식인 육조대사(638--713 중국스님.선종의 제6조. 남해 신흥사람.

어느날 장터에서 어떤 스님이 '금강경 읽는 소리를 듣고 마음에 열린바가 있어 제5조

홍인에게 찾아가 선의 깊은 뜻을 전해 받음. 676년 남방으로 교화를 하려다가

조계산에 들어가 대법을 선양함. 당나라 현종 개원1년에 76세로 입적)라는 분이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다가 어느 절에 들어섰는데, 마침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는 걸

보며 수도승 둘이 싸움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유인즉, 한 수도승은 깃발이 스스로

움직인다고 하고, 또 한 수도승은 바람이 깃발을 움직이게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야! 임마 바람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데 깃발이 없으면 바람이 어떻게 움직일 수 있냐

자식아!" 하면서 물어 뜯고 야단이 났습니다.

  육조대사가 가만히 보다가 그건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고 하니까

"아니! 그럼 무엇이 움직인단 말이요?"

"바로 너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고 했답니다.

  거문고에도 손가락에도 소리가 없다는 이 소동파의 시 속에는 선지(선에 대한

기지)가 가득 들어 있습니다.

  @ff

@[  3. 경락 팔괘@]

  (1)

  "사암도인침구요결원서" 보기로 하겠습니다.

  ^3456,1,3456,124^ ^3456,12,3456,1245^ ^3456,14,3456,125^ ^3456,145,3456,24^란

수가 나와 있는데 이것을 상생도라고 합니다. 그리고

구궁수라는 것이 있는데 가운데에 5자를 집어 넣고 ^3456,1,3456,124^

^3456,12,3456,1245^ ^3456,14,3456,125^ ^3456,145,3456,24^를 좌회전해서

가만히 돌아가보면 ^3456,1,3456,124^은 수, ^3456,12,3456,1245^은 수극화니까 화,

^3456,14,3456,125^는 화극금에서 금, ^3456,145,3456,24^은 금극목에서 목이 됩니다.

  5가 가운데 들어가서 1과 6이 어째서 외수가 되느냐 하는 것을 천천히 깊이 연구해

보아야 합니다.

  하여간 ^3456,1,3456,124^ ^3456,12,3456,1245^ ^3456,14,3456,125^ ^3456,145,345

6,24^가

거꾸로 돌아가면, 모두 합해서 15가 되는 희한한

모양이 생기게 되지요. 그림2에서 우측으로 돌아갈 때는 화생토, 화와 금사이는

우상방 허하게 되고, 낙서의 그림(그림4)은 수, 화, 금, 목, 토니까 좌하방이 허하게

됩니다. 그러니 그림을 그려보면 바퀴가 ^3456,145,34,3456,1^정도 잘려진 것처럼 됩

니다.

  아무튼 이 상생도, 상극도 안에 천지의 이치가 다 들어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저의

짧은 견해와 짧은 지혜로 이것을 다 설명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앞에서

이야기한 좌회전, 우회전하는 의미를 깊이 음미하셔서 어떻게 회전을 하는 것인지

눈에 잘 익혀두시기 바랍니다. 일단은 보지 않고 그릴 수 있을 만큼 하도, 낙서,

구궁수를 익혀 놓으면 큰 이득이 있을 것입니다. (64페이지 그림참조)

  여러분들이나 저에게 필요한 공부를 하는 데 있어서 방법을 크게 두 가지로

구별할 수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주역" 64괘를 다 공부하는 '궁리법'과 저에게

주역을 가르쳐 주셨던 선생님의 말씀대로 하도, 낙서나 팔괘도 하나만 걸어 놓고

명상을 하는 '진성법'이 그것입니다. 지구의를 갖고 음양을 설명하는 것보다는

덜 입체적일지라도 이러한 도표 그림은 어떤 이론을 약간 입체화시킨 것입니다.

진성법이란 참선법과 유사한 방법(몰록 깨닫는 방법)이며, 궁리법이란 수학적으로

공부하는 것과 같습니다. "의학입문", "상한론", "본초학", "내경" 이런 걸 열심히

보며 공부하는 것이 궁리법입니다. 저는 어느 방법이 옳다고 주장하지는 않으나

궁리법을 일반적으로 많이 하고 있으니까 궁리법도 다소 얘기는 하지만, 진성법 쪽을

본체에 접근하는 방법으로 삼습니다.

  이상의 도표에 대해서 제가 설명을 잘 하지 않습니다. 제가 잘 모르기도 하거니와

안다고 하더라도 설명할 수 없고, 여러분 또한 의미를 깨달았더라도 그 깨달음이 말로

되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불가피하게 이렇게 도표화시켜 놓은

것이겠지요. 황제의 이야기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황제가 그의 제자와 대신을 모아 놓고, "나는 알았고 얻었는데 너희에게 이야기

해 줄 수가 없구나"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야기를 할 수가 없지요. 말로

할 수 있다면 그건 도가 아닙니다. 성인이 형상으로 표현한 것은 말로 나타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이 도표는 엄청난 창조력에 의해서 그려진 상징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이것을 가지고 명상자료로 삼으세요.

  여러분들이 명상을 할 수 있는 복팔괘방위도를 하나 더 소개해 드립니다.

  일건천, 이태택, 삼이화, 사진뢰, 오손풍, 육감수, 칠간산, 팔곤지를 우에서 좌로

나가는 평면적 관찰보다 이 복의팔괘도에서는 다소 입체적으로 관찰할 수 있습니다.

  위에서 좌로 일건천, 이태택, 삼이화, 사진뇌까지 반원을 그리고, 우로

오손풍, 육감수, 칠간산, 팔곤지를 그리면 태극마크 비슷하게 되는데 8자를

그리면서 돌아가지 않습니까? 옛날에 제갈공명이 적들로 하여금 밤새도록 미로를

헤매게 한 것도 팔괘진법에 해당하며 요즘 쿵후에도 팔괘진법이 있습니다. 이 팔괘가

무엇을 뜻하는지 명상해 보세요.

  그림 6은 제가 만든 그림입니다. 여기에 남자니 여자니 하는 것은 아주 쉬운

얘기일 뿐아니라 원이나 입체적으로 된 그림은 여러분들의 좋은 명상재료라고

생각합니다. 우선은 이 그림을 무조건 외우시고 때때로 그 의미를 곰곰이

새겨보십시오. 눈앞에 선하게 떠올려 놓고, 버스를 타든, 기차를 타든, 자꾸 명상을

하십시오. 일부 주역 수행자 중 갑자기 깨달았다는 성인은 바로 이'진성법'으로

공부한 것입니다. 갑자기 깨달을 수 있지만 그만큼 큰 고통이 수반되는 방법입니다.

처절한 자기와의 싸움이지요. 만해 한용운선생이 처음 참선을 할 때 머리에서 고름이

터져 나왔다고 합니다. 약 석달 동안 화기가 오르고 상기되어서 그랬던 것이지요.

(66페이지 그림참조)

  옛날 한 선승이 공부를 하는데 아침이면 까치소리, 낮에는 농부들의 밭 가는 소리

등으로 시끄러워 공부가 되지 않는다고 산 속으로 들어 갔으나, 그곳 역시 짐승들의

울음소리와 바람소리 때문에 공부가 되지 않습니다. 못난 놈이 환경 탓 한다고 세속과

산을 오르내리기 30여년, 공부는 한 것이 없고 마음에 불만만 가득, 너무도 한심하여

징검다리에 앉아 흐르는 냇물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는데 자라 한 마리가 머리를 쑥

내밀더니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피며 물가로 올라왔습니다. 이 때 저만치서 개가

한 마리 달려와 자라를 덥썩 물었는데 목을 쏙 집어넣은 자라를 먹을 수가 없어서

한 참 실랑이를 벌이다가는 포기하고 어디론가 가 버렸습니다. 그것을 재미있게

쳐다보던 선승이 내가 만약 '개'라면 어떻게 했을까 곰곰이 생각하는데, 주위가

조용해 진 것을 알고 자라가 고개를 쏙 내밀어 좌우를 살펴보더니 물속으로 퐁당

들어가더래요. '옳거니 그거다' 그리고는 그 길로 산 속으로 들어간 선승, 3년

용맹정진 끝에 대오각성했다고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개라면 어떻게 해서 자라를

잡아 먹을 수 있을까요. 이런 것이 공안 즉 화두입니다.

  원래 공안은 파설하는 것이 아닌데(파설하면 파설한 자나 들은 자 다 지옥간다고

함) 이건 화두같지 않은 거니까 가르쳐 드리지요. 자라 옆에서 조용히 기다렸다가

자라가 목이 나올 때 얼른 나꿔채면 되지요. 그것은 '가만히 정관'하라는

깨달음이었지요.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자라목과 같은 번뇌와 습관이 슬그머니

일어날 때 그 때 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여러분들의 마음은 조금 있으면 뭐하고,

그 다음엔 저것하고, 또 이것도 해야하고 등 수 많은 계획들로 마음이 어두워져

있으므로 내 무의식 속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 깨닫지를 못합니다. 가령 여러분들이

인생의 길을 잃었을 때 스승과 선배를 찾고,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하면 더욱 어렵고

외로와집니다.

  그러나 사흘이고 나흘이고 가만히 있어 보세요. 그러면 묘안이 떠오릅니다.

산 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에도 큰일났다고 당황하여 이리저리 설치게 되면 설령

나중에 길을 찾는다 해도 힘이 빠져서 죽기가 쉽지만, 현명한 사람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가만히 있어 보면 별을 본다거나 달의 기울어짐을 보고 길의 방향을 찾게

됩니다. 집안에 들어온 새가 조금만 진정하면 들어온 구멍을 찾을텐데 당황하여

여기 부딪치고 저기 부딪치고 살려주려고 해도 도망을 치다가 죽어 버립니다.

우리 인생도 이와 같습니다. 정좌하고 묵상하고 참선하는 시간이 너무나도

부족합니다. 나는 전혀 나쁜 생각을 품지 않았는데, 문득 내 속에 내가 모르는 나쁜

생각의 촉수가 무럭무럭 자라오름을 느낍니다. 이런 마음을 느끼고 들여다보기가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이런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 볼 수 있는 마음을 '무의심'이라

합니다.

  간과 이미 끝(파)나니, 득실 또한 공이라.

  초자의 시골노래를 부르며, 아동의 야곡을 불(취)며,

  몸을 소 등에 올려놓고 하늘(운소)을 쳐다보며,

  불러도 돌아보지 않고 끌어내도 서지 않는다.


  자성을 탐구하고 마음을 닦는 과정을 열단계로 나누어 해설한 십우도 중의 이

기오귀가(십우도중 여섯번째로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는 내용. 십우도는 우리의

본래면목을 소에 비유하여, 소를 찾고 얻는 순서와 이미 얻은 뒤에 주의할 점을

설명한 것이다)는 무의심의 극치랄 수가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 구조에는 1, 2, 3차 욕망이 있습니다. 또한 일정한 리듬도 있습니다.

1차적인 욕망은 의 식 주에 관한 것이고, 2차적인 욕망은 성적, 미학적, 예술적

충동을 말하며, 3차적인 욕망은 명예욕, 권력욕, 지식욕 등을 말합니다. "의학입문"

서문에 '분을 징계하고 욕망을 다스려서...'라고 되어 있는데 내 마음에 맞다고

여기는 것이 욕망의 원인이고, 마음에 맞지 않다고 여기는 것이 분노의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성욕, 권력욕, 사치욕 등 여러 욕심과 욕망으로 나를

내세웁니다. 어느 순간 내 속의 그런 욕망의 내재됨을 알고 깜짝 놀랍니다. "나는

깨끗한 줄 알았는데 음담패설 책 따위를 보면 왜 마음이 이상해지고 흥분이 될까?"

하고 당황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는 그것을 누르려고 합니다. 욕망을 억제하거나

욕구를 갈구하는 것은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닙니다.

  욕망이 갖고 있는 긍정성과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의 부정성, 즉 욕망과

분노는 항상 서로 쫓아다닙니다. 예를 들어보면, 어느 날 미팅에서 굉장히 아름다운

여학생을 보았습니다. 그 여학생도 잘 생긴 나를 쳐다 보았습니다. 아주 순식간에

둘의 눈이 딱 마주쳤습니다. '부처님! 저 여학생이 내 파트너가 되게 하소서...'

추첨 결과 그 여학생은 친구 파트너가 되어 버렸고, 나는 뚱뚱한 여학생과 파트너가

되었습니다. 그 여학생은 시간이 지날수록 친구와 친밀하게 얘기하면서 내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습니다. 아! 그러자 가슴 밑바닥에서 무엇이 치받혀 올라오면서

그 친구와의 우정이고 뭐고 가슴이 덜컹거리기 시작합니다.

  '나는 그렇지 않겠지'하고 착각마세요. 아닌 척 하는 사람일수록 더 안절부절

못합니다. 젊었을 때 강압적으로 공부에 눌려 살던 지식인이 40--60대 쯤 되어서,

'아유-- .나도 부룩 실즈 같은 여성과 교제를 해 보면 여한이 없겠는데...' 인간이

가지고 있는 다양성이란 이상한 것입니다. 술을 오래 두면 식초가 되듯이 지식욕이

해묵어 성욕으로 변할지 모르는 일입니다. 인간의 마음이란 애착이 가면 증오가

생기고 좋아하면 싫어하는 마음도 아울러 생기게 됩니다. 한때는 퉁퉁한 스타일의

사람이 믿음직스럽고 좋았는데 이번에는 마른 스타일의 사람이 센티하고 절개가

있어 보여 좋다고 하다가, 마른 사람은 너무 예민하고 신경질적이라 다시 싫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애착을 탓하지 않고 그 대상만을 평가합니다. 욕망의 변화란

참으로 다양합니다. 공자께서는 '20대는 색을 조심하고, 40대는 싸움을 조심하고,

늙어서는 물욕을 경계하라'했습니다. 그런데 재물욕, 성욕, 명예욕 등 이런 것들

전부가 이해되어져야 그것들의 반작용으로 일어나는, 예를 들면 돈을 떼었을 때

일어나는 초조감, 애인을 잃었을 때 오는 시기심과 질투심, 낙선되었을 때 오는

패배감 등의 다양한 형태의 감정들을 이해할 수 있겠지요. 따라서 그때 그때 발생하는

열도 양명열, 소양열, 태양열이 각각 다릅니다. 그러므로 감정의 상태를 예민하게

주시하면 꼭 결론은 아니더라도 우리가 공부의 실마리를 잡을지도 모릅니다.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에 보면 앞으로는 정치, 경제, 종교 등 모든 분야에서는

개인 각자에게 관심을 두어야 한다고 강조되어 있습니다. 그가 벌인 운동의 내용은

지금까지 산업사회 위주, 집단 위주로서 집단 전달 체제의 발전은 이룩했지만, 너무

개인의 창조능력을 제한시켜버렸다는 것입니다. '제3의 물결 운동'의 핵심은 개인

창조능력의 개발에 있습니다.

  저는 많은 분들을 모시고 강의하는 기회가 자주 있습니다. 약 130여명이

한 집단으로 모여 있지만 집단적 의미로서의 전체보다 각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관심을 갖습니다. 오늘날의 대학도 단체, 그룹, 가풍 등을 중요시 여길 것이 아니라,

각 개인이 개개인의 특성과 장점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자유스런 영적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런 교육체제가 필요합니다.

  몇 백명씩 모아 놓고 적당히 시험이나 쳐서 순위를 가리는 이런 제도는 인간의

창조능력향상에는 별로 효과가 없습니다. 창조적인 선각자들은 절대로 이런 교육을

받지 않았습니다. 여기 모인 여러분 중에 학교에서 열등생이었지만 졸업 후 월등한

우등생이 되신 분이 있을 것입니다. 학교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은 외우는데 능하고

정리하고 분석하는데 능합니다. 그러나 '깨닫는'데는 늦습니다.

  심리학에도 이런 테스트가 있습니다. 큰 쇠구슬을 묶은 실 끝에 못이 달려

있습니다. "이 못을 이 벽에 좀 박아다오"하면 얼른 망치를 찾습니다. 그 쇠구슬로

바로 박으면 될 것을 '못은 망치로...'하는 틀 속에 갇혀서 눈 앞의 현장을 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한 가난뱅이가 사또를 찾아왔습니다. 온 가족이 굶어 죽게 되었으니 좀 살려달라고

간청하자 사또가 말하기를, "좋다, 따라 오너라" 사또는 가난뱅이가 늘 다니는

다리 건너편에 가난뱅이를 세우고 다리를 건너오게 했습니다. 가난뱅이는 순식간에

다리를 건너왔습니다. "아니! 너는 다리를 건너오면서 다리 중간에 놓아둔

황금보따리를 못 보았는고?" "제가 늘 건너다니면서 한번도 보지 못했던 황금보따리가

오늘이라고 있을 턱이 없지 않습니까요?" 바로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오늘에, 현장에

답이 있는 줄 모르고 사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깨어있음이란, '현장의 답'을 찾아

내는 열린 눈을 말합니다. 앨빈 토플러의 자유스런 영적 분위기란 곧 '깨어있는

현장 분위기'를 일컫는 것입니다.

  강요되어진 규율에서 오는 공포나 위축감은 오히려 역효과를 연출시킵니다.

활달하고 명랑하게 깨어 있는 분위기는 의외로 폭발적인 창조효과가 있지요.

집단적 의식이나 행사에서는 미묘한 안락감과 의지성의 쾌감이 있습니다. 또한 마음이

깨어있지 못하고 우둔하게 반복되는 언어는 다소의 안락함, 편안함을 줍니다.

술 먹으면 정신이 없고 깨어나면 현실로 돌아오는 것처럼 종교의 잘못된 측면은

술이나 마약처럼 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종교가 주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고

확실하게 깨어 있는 정신 즉 현장정신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의식이나 예배나

몇 가지의 주문을 통해서 마음이 평안해진다면 좋은 경치를 찾아가서 마음을

편안히 함과 다를바 없지요. 이것은 일종의 심리적인 미묘한 쾌락일 뿐 종교가

추구하는 경지가 아니지요. 안락감이나 의지성은 그저 공포나 불안으로부터

도피된 것일 따름입니다. 크리슈나무르티의 정의에 의하면, 진실한 교육은,

인간 개개인의 심리적인 속성과 그것의 진행과정을 이해하게 하여 주는 것으로,

이것이야말로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여러분들은 바로 이런 것을 배워야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통로는 예로부터 신비한 '제3의 순환체계'로 표현되어

왔습니다. 고대의 명철한 성인이 개발해 놓은 이 경락의 생리 체계는 실제로

동양의학에서 모든 진단과 치료에 응용됩니다. 경락의 순환체계를 이해한다는 것은

곧 인간 심리의 진행상황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 제3의 순환체계는 크게 몇 개의

레일과 같은 통로로 되어 있는데 그곳에는 수백 개의 주요한 역이 있습니다. 이 역을

경혈이라고 하는데 흔히 침술 치료나 진단상 병의 반응점으로 쓰이지요. 이 14개의

통로 가운데 임맥과 독맥을 뺀 12경은 아주 중요한 기혈 또는 반응의 통로여서

일반적으로 12경락이라고 부릅니다. 이 레일들은 모두 서로 상대적으로 짝을 이루고

있는데 심리적 긍정과 부정의 상반된 에너지의 흐름을 나타냅니다.

  인간의 욕망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인간의 욕망은 1차, 2차, 3차 욕망으로

나뉘어지는데, 1차와 2차적인 욕망을 유애라고 합니다. 있는 것, 즉 눈에 보이는 것을

사랑하는 것이고, 3차적인 욕망은 무유애로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크게 셋으로 나뉘는 이 욕망들을 충분히 이해했다가 여러분들 마음 속의

끊임없는 욕망을 잘 관찰하라는 것입니다.

  12경락이 우리 마음 속 에너지의 통로라면 인간이 가지게 되는 마음의 구조는

만족과 불만족의 반작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세 가지 욕망이 갖는

특징으로써 우리 인체 내의 경락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공포를 느끼면 등골이

오싹해진다거나 추위를 느끼는데, 이 공포라는 감정과 차다고 하는 감촉은 각기

물질과 마음이지만 결국은 하나인 것입니다. 그러면 공포는 어디서 생기는가?

이런 것을 조사해보면 어떤 욕망의 반작용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와 같은 유추가 생소할지 몰라도, 여러분들이 심리적인 진행상황을 관찰하는데

분명히 도움이 되리라고 확신합니다. 그러므로 개개인의 심리적인 속성과 진행과정을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오운육기법을 공부하러 모여서, 인간이 가진

1차, 2차, 3차 욕망을 조사하게 되고 나아가서 심리적인 자기 마음의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다면, 설령 경락학적인 지식이 좀 모자란다고 하더라도 이미 자기가

가지는 감정을 이해하기 시작했으므로 도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의 욕망이 빚어내는 오류는 너무도 다양하고 처참합니다. 설령 그 오류가

개인적, 주관적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사건이라 하더라도 물욕에 수반되는 빈곤감,

정욕에 따르는 배신감, 명예욕에 따르는 패배감과 수치심, 이런 것을 스스로

만들어 놓고 그 자신 스스로 패배의식에 물드는 이 지구촌은 결국 엄청난 과보를

치르고야 말 것입니다.

  순진하게 자라야 할 어린이가 반장선거에서 떨어졌다고 자살을 하는 세상입니다.

"엄마는 무슨 협회장, 동창회장 하다못해 꽃꽂이 회장이라도 하는데 너는

그 모양이냐? 엄마, 아빠를 좀 보아라. 이 멍청한 놈 어쩌고 저쩌고..." 훌륭한

부모형제를 가진 아이는 불행합니다. 비교를 당하기도 하거니와 자기 스스로도

그 비교의식의 울타리 속에 갇히기 쉽습니다. 비교감이 낳는 부작용은 망상,

파괴의식의 실천 등 무수히 많습니다. 그런데 주목할 일은 지식인들이 비교를

더 많이 한다는 사실입니다. 불만족이나 고통과 같은 마음의 부정적인면과 만족과

기쁨에 따르는 마음의 긍정적인 면이 인체 내에서 작용하는 현상을 바이오리듬

학설에서는 신체리듬(Physical Rhythm), 감성리듬(Emotional R.),

지성리듬(Intellectual R.)으로 분류합니다. 서양에서 100년 가량

연구된 이 바이오리듬을 오늘날은 기업에서도 응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동양의

경락체계는 이것을 좀 더 세밀하게 분류할 뿐 아니라 그 에너지의 통로까지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구체적으로 보면, 태음 양명경락은 신체리듬, 소음 태양경락은 감성리듬,

궐음 소양경락은 지성리듬으로 결부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서양에서는 근래에 와서야

겨우, 그것도 그저 3가지 특성만을 다루고 있는데 5천년간 개발해 온 경락체계를

거기에 결부시킨다는 것을 슬프게 생각합니다.

  원칙은 우리의 경락체계를 서양인들이 받아들여야 되겠지요. 저는 경락의 순환체계

이론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여러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바이오리듬

이론을 소개한 것입니다. 어쨌든, 인간의 제1차적인 욕망인 의 식 주에 대한 만족과

불만은 태음경과 양명경의 작용이며, 제2차적인 성적, 미학적, 예술적 충동 등의 만족

불만은 소음경 태양경의 작용이고, 제3차적인 명예욕 지식욕 권력욕 등의 만족과

불만은 궐음경 소양경의 작용입니다. 즉 사람이 일으키는 1차, 2차, 3차 욕망의

성쇠는 그에 해당하는 경락 에너지의 성쇠를 결정합니다. 그런데 만족과 불만의

흐름에 따라 결정되는 경락의 허실은 그 정도가 지나치면 자동조절기능을 상실하여

질병이 되고 맙니다. 제 강의의 배경이 이런 이론입니다.

  가령, 어떤 사람의 족태음비경을 보해야 하는 경우라고 하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신체적 리듬'의 어느 부분이 허하니까 보하는 것입니다. 이런 전제조건으로

경락학설이 연구된 것은 어떤 문헌에도 없었고 어떤 강의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저는 다행하게도 운이 좋아서 수십명의 스승을 만날 수 있었는데,

여러분이 처음에는 듣기에 무리한 것같다고 느끼실 수도 있겠지만 잘 새겨보면 깊은

뜻이 들어 있을 것입니다. 도를 열심히 닦으면 경락이 보인다고도 하고, 슬픔으로

인해 가슴이 찢어지도록 아플 때는 폐경락이 엄지손가락으로부터 쭈욱 지나감을

느끼거나, 노궁혈이 피로한 것을 느끼는 등의 부분적인 느낌은 알 수가 있으나

전체적인 경락을 이해시켜 주는 이런 강의는 과거에는 없었습니다. 스스로 자랑스럽고

보람스럽다고 느끼는 것은 이런 것을 하나 찾아내고 결부시키기 위해 많은 세월을

고생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경락 자체가 가진 흐름의 에너지는 우리가 가진 1차,

2차, 3차적 욕망의 만족과 불만족에 따르는 에너지의 흐름이라는 이 사실을 참고하여

혼자서 더욱 깊이 연구하고 관심할 수 있는 계기로 삼도록 하십시오.

  넘치면 다시 모자라게 되고, 빈 것은 어느 덧 차고, 얻은 것은 잃어지고, 낮은 것은

높아지는 등 끊임없이 균형을이루는 이 자연의 순리가 곧 인간의 '제3의 순환 생리'와

같습니다. 최근 연구가 활발해진 바이오리듬 즉 '생체리듬'학설에 의하면, 각 리듬의

교차일이 위험한 날이고, 고조기에서 저조기로 전환하는 날은 극히 위험한 날로 경고

하고 있습니다. 한편 신체 감성 지성리듬의 주기는 각기 23일, 28일, 33일이라고

합니다. 인간 활동의 커다란 흐름인 이 3가지 리듬활동의 복합적인 상호관계가

인생의 길 흉사를 이룬다고 합니다. 각 리듬 주기의 곱, 즉 대순환 기일이

@m23*28*33=21252@e일, 즉 58년 67--69일간인데 이는 묘하게도 우리네의 60년

환갑기일과 거의 일치합니다. 우리 동양학은 여기에 천 지의 리듬이 추가되므로 조금

다르지요. 물론 60주년 주기를 가진 우리가 훨씬 더 정확합니다.

  리듬에는 인체내의 생리적인 리듬 뿐만 아니라 자연계의 리듬도 있습니다.

춘하추동, 계절의 월별 리듬과 매년 바뀌는 연별 리듬이 있지요. 동양에서 쓰이는

갑자년, 을축년, 병인년 등의 명칭은 바로 연별 리듬의 표시입니다. 소위

오운육기학이라 불리우는 자연계의 리듬 학설은 동양 최고의 의학경전인 "내경"에

상세히 나타나 있습니다. 자연계의 리듬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서,

옛 성인들이 예방의학적 차원에서 만들어 놓은 것이 오운육기입니다. 여러분들이

열심히 공부한다면 앞으로 정묘년, 무진년...등의 연별 리듬을 예측할 수 있는 지혜를

조금이나마 얻게 될 것입니다. 동양의 지혜를 미신으로만 비웃던 현대인들이 이제

흥망성쇠의 리듬 학설을 신봉하고 연구하게 된 사실로 미루어 서양학이 진리로의

행진에 조금씩 동참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같은 리듬 학설의 근본바탕은 '무상'에 있습니다. '만물에는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탁월한 인식이 곧 항상된 진리 인식입니다. 석가세존께서 일찍 갈파하셨던

'제행무상'의 진리는 모든 순환리듬의 실체없는 변화성을 의미합니다.

계절이 변할 때마다 앓는 몸살감기와도 같은 인생의 패배감, 공포감, 절망감,

초조감 등의 심적 충격을 담담히 응시할 수 있는 힘이 곧 깨달음입니다. 세상운수도

변하고, 나도 변하고, 사회도 변하고, 우주도 변합니다. 물결치는 오탁시대의 리듬

한 가운데 리듬없는 한 물건(일심, 귀원)의 각성이 정말 시급한 세대입니다.

  서양의 분리주의적, 합리적, 과학적 두뇌가 낳은 인류의 비극이 이제 동양적,

통일적 조화의 가슴으로 승화되어야 할 때입니다. 문란한 성생활로 인한 에이즈라는

괴질, 매년 6백만명의 희생자를 내는 암이라는 괴질, 최근 국내의 괴저병 등은 단순한

전염성이나 물리적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어떤 예측을 불허하는 괴질이라도

아무 조짐없이 찾아오지는 않습니다. 슬기의 부족, 평등성과 사랑의 결핍, 경쟁,

분리, 폭력풍토의 조장은 탐욕과 분노의 변형된 독소이자 모든 괴질의 원천이며,

자연계 리듬의 영향을 쉽게 받는 면역불능 체질의 원인이 됩니다. 아주 미세한

리듬의 징조라도 즉시 파악할 수 있는 민감성이 특히 요구되는 세대가 오늘날입니다.

눈과 눈썹이 너무 가까와서 서로 보지 못한다고 하는데 우리는 우리 품속의 진주를

찾으려고 너무 멀리 여행하고 있지는 않는가 살펴볼 시간인 것입니다.


  즐거워하되 음탕하지 말며, 슬퍼하되 상하지 말라.

  이 공자의 교훈은 영적인 제3의 순환에 표적을 맞춘 적절한 충고인 것같습니다.

  여러분들이 약석으로 경락을 조절한다고 하나 마음을 조정치 않고 어떻게 경락을

조정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마음 다스리는 법이 첫째입니다. 또한 욕망의

만족과 불만족을 잘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은 약이나 침이 없어도 되는, 이미 지인,

진인, 성인의 경지에 가 있는 사람입니다.


  (2)

  그러면 지금까지 장황하게 설명드렸던 여러 이야기의 학문적 근거는 어디 있는지,

그리고 또 주역 팔괘에는 어떠한 증거가 있는지 한번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팔괘를 반으로 접게 되면 서로 상대적으로 되어 있습니다. 일건천과 팔곤지,

이태택과 칠간산, 삼이화와 육간수, 사진뇌와 오손풍 이렇게 상대적입니다.

그러므로 인체를 보면, 하늘(머리)은 둥글고 몸은 모나다고 하는 것은 하나는 양이고

하나는 음이라는 말입니다. 동물의 예를 보면 쥐는 머리에 비해 몸이 크니까. '음--

너는 음적이겠구나!'말이나 사자처럼 몸집에 비해 머리가 큰 것은 양적이겠구나 하는

짐작을 금방 할 수가 있겠지요. 식물도 이렇게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상이란 선천적인 것이라 했습니다. 얼굴을 보면 눈, 코, 귀, 입 이렇게 7개의

구멍이 뚫려있지요. 그 눈, 코, 귀, 입 4가지 상을 취상(12경락은 각각 그 경락에

해당하는 괘상을 가지게 되며, 이 괘상은 오행과 육기의 양면적 성질을 띠게 되는데,

이때 오행과 육기의 두 성질을 함께 나타내는 어떤 대상을 취하게 되는 것을

취상이라 함. 예를 들어 족궐음간경은 오행적으로는 목(나무), 육기상으로는

풍(바람)에 해당하므로 '대나무 피리'로 취상을 하게됨)하는 것을 사상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선천적이고 거의 불변하는 체질을 일컫는 체질의학인데 이것은

일생동안 잘 변하지 않습니다. 소음인이 소양인이 되고 태양인이 태음인이 되는

그런 경우는 드뭅니다. 그것을 변화시킬 수 있다면 대단한 도력을 가진 사람일

것입니다. 팔괘란 바로 사상(눈, 코, 귀, 입) 밑에 있는 어떤 흐름이지요. 예를 하나

들어봅시다.

  '어! 저 여자 어디서 많이 봤는데... 옛날 미팅에서 봤나? 친구 동생인가?

사돈 팔촌인가? 아하! 그래 미팅에서 봤군. 꽤 괜찮은데 한 번 교제해 볼까?' 처음엔

보다가 뜻이 생기고, 다음에는 마음이 짙어지게 됩니다.

  이렇게 최초에는 본다는 데서 출발하는데 궁극에는 이것까지도 들여다 보아야

됩니다. 그런데 그게 어렵거든요. 보고, 듣고, 맛보고나서 좋고, 싫은 마음이 분리가

되는데 먼저 해야될 것이 보는 공부입니다. 특히 마음을 관찰하기 편리한 것은

우리 마음에 불현듯 떠오르는 감정입니다. 그런데 이 팔괘라는 것은 사상을(눈, 코,

귀,

입) 제외한 소위 6장6부(몸통)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6장6부에 대해서는 우리가 약간

진한 감정을 읽을 수 있으므로 조금 쉽지요. 그래서 6장6부에는 6경락이 흐르는데

이 6경락이 결국 3음3양인 것입니다.

  사상을 머리의 운동이라면 팔괘는 몸통에 해당한다고나 할까요. 좀 맑은 인식을

사상이라고 한다면 다소 둔탁한 인식이 팔괘입니다. 우리 인체에 12가지 경락이

흐르고 있다고 하나 실제는 거기에 임맥, 독맥을 합한 14경락이지요. 우리가

오행침법을 공부함에 필요한 것이 6경락이지만, 여기에도 임맥과 독맥이 포함됩니다.

기경팔맥의 8가지 경맥과 함께 이 팔괘가 결국은 경락과 일치가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경락과 팔괘를 일치시키기 전에 먼저 팔괘의 의미를 알아 봅시다. 건 태 이

진 손 감 간 곤은 유심적, 무형적이고, 천 택 화 뇌 풍 수 산 지는 유물적, 유형적

기운의 취상이라고 저는 이야기 합니다. 못(택), 우뢰(뇌), 물(수) 등은 눈에 보이는

것이고, 건, 태, 이 등은 쉽게 그 의미를 끌어올 수 없게 해놓았습니다.

  '건은 건실한 것이요, 곤은 유순한 것이며, 진은 움직이는 것이요, 손은 들어가는

것이고, 감은 빠지는 것, 이는 고운 것, 간은 머무는 것, 태는 기뻐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또한 건은 하늘(아버지), 곤은 땅(어머니)을 말하며, 진(천둥)은 장남, 용,

푸른 대나무를 의미하고, 손은 바람, 장녀, 먹줄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감은 물,

도랑, 숨어 엎드리는 것, 마음의 병, 귀가 아픈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태는 소녀,

무당, 입과 혀, 첩을 의미합니다. 추가하자면 건은 하늘이요, 원이요, 임금, 아버지,

금, 늙은말이고, 곤은 땅이요, 어머니요, 가마솥이요, 인색한 것이요(유심적 차원)

등... 이 많은 말들을 공자도 쓰다가 지쳤다고 하지만 이것이 뜻하는 것을

여러분들은 이해하셔야 합니다. 앞으로, '어떤 괘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취상해

보시오'하면 그 괘에 해당하는 이미지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택화혁 괘를 보면 물과 불이 만나서 서로 싸우는 모양인데 무엇이

혁명된다는 것인지? 중건천괘는 건괘가 두개가 겹쳐서 된 하늘이므로 유물적 취상이

되는데, 택화혁의 혁이란 인생의 정신적인 문제, 마음이 움직이는 상태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건천의 '종일건건는 석양...'이란 의미는 '군자는 종일

건건찝질해야 하는가 보다'가 아니고 건건하다는 말 이면에는 군자가 지켜야 할 어떤

정신적인 태도 즉 씩씩하면서도 근엄하고 또 약간 강건한 것을 의미합니다. 곤은

어머니로서 유순하면서도 항상 모든 걸 받들어 주고 음덕을 키우는 것이죠. 그래서

주역 64괘에는 모두 인간이 지켜야 될 예절과 같은 인간관계가 담겨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한 집안에 8식구가 산다고 가정할 때 바로 주역팔괘가 이루어지는

것이며, 이러한 여덟 사람이 이루는 음양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남녀 궁합이 아무리

잘 맞는 경우라 해도 나와 내 마누라가 한 이불을 덮고 자지, 마누라를 팽개치고

어머니와 한 이불을 덮지는 않지요. 같은 음양이라 하더라도 서로 부딪칠 것이 있고

또 서로 친할 것이 따로 있는 법입니다. 병이 일어나는 원인도 나에게 있을 수도

있고, 마누라 혹은 아버지, 어머니에게 있을 수도 있는 등 무궁무진합니다. 이렇게

서로 부딪치는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어떤 무형의 취상을 혁이라 표현한 것이며,

무형적인 인간의 심리상태를 유형적으로 표현하고자 택, 수, 화등을 도입한

것이겠지요.

  화가 난 마음을 그림으로 그려보라 했더니 A는 뿔을 그렸습니다. B는 뿔로는

부족해서 칼을 그려서 죽이고자 하는 뜻을 나타냈습니다. 화가 나서 죽이고 싶다는

분노는 소양지기(일종의 소양화기)인데 그 표현을, 화가 치미는 것을 김이

모락모락나게 그리거나 칼을 그렸을때, 전자를 '음! 만두를 먹자는 거로구나' 후자를

'칼로 과일을 깎아먹자는 것이로구나'하고 바보같은 해석을 해서는 안되겠지요.

옛 사람이 남긴 유물적인 취상을 보고 그 마음을 안다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이제 이 시점에서 팔괘에 대한 기존의 의미를 잊어버리세오. 그 관념으로부터

자유로와지세요. 다만 그것이 여러가지로 해석되는 이유를 이해하면 되는 것입니다.

화가 난 것 하나로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것, 불, 칼 따위로 그릴 수 있듯 1차, 2차,

3차로 감정이 격화됨에 따라 그림도 감정적이 됨을 알 수 있습니다.

  물을 그린다고 할 때, 명경지수를 연상해서 거울을 그릴 수도 있고 폭포수나 얼음을

그릴 수도 있지만, 어느 하나를 일컬어 물의 전부라고 할 수는 없지요. 웅덩이라면

물이 고일 수 있는 환경이 될 것이고, 피라고 한다면 그 특성을 말하는 것으로 물이

가지는 변화의 여러가지를 표현해 본 것이지 전부는 아니므로 미루어 짐작하라는

말씀입니다. 아무튼 물이 가지고 있는 속성을 모두 이해하고나서야 이 육감수괘를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경전 중에 제일 먼저 들어가는 것이 바로 "시경"(상고의 시를 모은 책으로 오경

중의 하나. 원래는 삼천여 수인 것을 공자가 첵제하여 삼백 십일편으로 함)입니다.

주역팔괘나 64괘는 약간 시적입니다. 여러분들도 시인이 되어야 합니다. 아주

예민하고 날카로와야 합니다. 공자께서 "주역"을 일컬어 어느 성인이 세상을

염려하여 남겨 놓으신 것이라고 하셨답니다.

  팔괘와 64괘를 복희가, 괘효사를 주문왕이, 십익을 공자가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들

3인이 아득한 시대차로 생존했던 점을 미루어 주역의 성립이 그만큼 긴 세월에 걸쳐

이루어졌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 주역으로써 제 문제를 풀어나가는 기본적인

의미는 인간에 대한 일종의 경종, 인간의 지혜에 대한 교육, 흥망성쇠의 리듬에

대한 것 등으로 인간을 제도함에 있습니다. 제도를 하면 무엇을 제도한다는 것인가?

결국은 감정처리를 제도하고자 한 것이 아니겠어요? 이것을 설명하고자 유심적인 것과

유물적인 것을 다 빌어다가 인용하였습니다. 그것의 유심적인 구조를 살펴볼 수

있는 것이 태괘와 간괘인데 오직 이것에서만이, 그 발자취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태괘 옆에 마음심변을 붙이면 즐거울 열자가 되고, 간자에 마음심변을 붙이면 괴롭고

한을 품을 한자가 됩니다. 팔괘를 반으로 접을 때 이 둘은 서로 상대가 됩니다.

천과지가 서로 상대되고 택과 산이 서로 상대되는 유물적 차원이 아닌 유심적 차원,

기형학적인 차원의 사고가 결국 위와 같은 의미를 유추시켰습니다. 이런 것은 주역이

우리 인체내에 일고 있는 유심적 차원, 유물적 차원을 모두 담고 있다는 증거지요.

특히 주역의 각 괘는 각각의 특성(유심적 특성)이 무엇(여러가지 다른 유심적인 상황)

과 만난 장면임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청은 동방 목이요, 적은 남방 화라고 알고 있는데 그러면 보라색은 오행상 어디에

속합니까? 회색이나, 누르팅팅하거나, 벌거죽죽하거나, 혼합색 등 오행에 없으나

우주 속엔 온갖색이 다 있습니다. 중간자적이거나 입체적이거나 복합적인 모든 것을

이해 하도록 주역을 열어 놓은 것은 매우 중요한 사실입니다. 나의 어떤 기분과 너의

어떤 기분이 만나서 어떤 상황을 이루게 되는가 하는 것에 대해 대상을 붙여 놓은

것이 팔괘입니다. 그런데 무형학적인 괘상을 붙여 놓았기 때문에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마음을 관찰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어렵지 않겠어요? 주역 64괘를

공부하면 귀신도 잡는다는 말은 아마도 거짓이 아닐 것입니다. 저는 주역 괘상까지

강의할 실력은 없습니다만 이렇게 태옆에 마음심변을 붙이면 즐거울 열이 되고 간옆에

마음심변을 붙이면 괴로울 한이 되는 것으로 미루어 건과 곤, 감과 이, 손과 진도

각각 어떤 감정상의 만족과 불만족의 상징이 서로 상대적으로 된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추리가 되지요.

  음은 모든 것을 취하는 욕망을 좋아하는 성질이 있고, 양은 버리는 것으로 분노를

싫어하는 성질이 있는데, 이런 감정적 차원에서 음괘와 양괘를 분류할 수 있습니다.

기분이 좋다거나 만족한 상태가 되면 입안에 물이 고이고 숨을 들이마시게 되지

않습니까? 여자들이 쇼 윈도우에 진열된 많은 보석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숨을 깊이

들이 마셨다가 경제적인 능력이 없음을 깨닫고는 한숨을 내쉽니다. 입으로 공기를

들이마시면 입 안에 찬 기운이 고이고 밖으로 내 쉬면 더운 기운이 생깁니다. 이런

경우는 감정적인 음양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건괘, 태괘...의 팔괘는

음양괘로 구분되는데, 음괘는 우리 기분의 만족도를 의미하는 것으로 1차적 욕망

(식욕), 2차적 욕망(재물욕), 3차적 욕망(명예욕)이 음괘에 해당한다는 추론이

가능합니다.

  우선 주역이 제시하고자 하는 우주의 통찰을 몇 가지 독특한 주관적 측면에서

바라보고자 합니다.

  태극은 음양을 낳고 음양은 사상을 낳고 사상은 팔괘를 낳는다고 하는데 우선

팔괘적인 측면에서 관찰되어진 우주의 실상을 보고자합니다. 팔괘라고 하는 것은

'일건천, 이태택, 삼이화, 사진뇌, 오손풍, 육감수, 칠간산, 팔곤지'라고

하는 여덟 가지의 구성요소를 얘기하는 데 이 여덟가지의 구성요소는 두 가지 용어로

접합이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덟 가지의 요소와 여덟 가지 요소의 쌍방

교차작용인 64괘의 복잡한 상황을 깨닫는 것은 심히 난해한 학문체계라고 동양에서는

알려져 있습니다. 64괘의 천착 이전에 팔괘 각각 성품의 연구가 선행되어야만 64괘의

각론을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선 두 가지 용어로 표현된 괘상은 다분히

상징적인 것입니다.

건, 태, 이, 진, 손, 감, 간, 곤의 여덟 가지 면칭과 천, 택, 화, 뇌, 풍, 수, 산,

지의 여덟 가지 명칭이 결국 같은 괘상의 이명입니다.

  주역의 연구가들은 팔괘의 해석에 심히 곤혹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데, 어떤 특별한

방법이 존재해서 우주의 실상을 이렇게 나눈 것이 아니라 실은 오히려 가장 가깝고

단순한 것을 표명한 것이라는 것이 저의 주장입니다. 지금부터 표명하려는 저의

견해는 단지 저의 사견이기 때문에 하나의 주장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좋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단, 단순히 하나의 학자적인 주장에 불과하여 실제로 이론적인 배경만

가지면서 오히려 실천적 측면으로서는 아무 가치가 없다면 저의 이론 역시 무용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사려 깊은 응용을 바라며 저의 옅은 소견을 피력하고자

합니다. 먼저 주역 팔괘의 구성은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의 두 가지 이명이

존재한다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즉, 전자 건에서부터 곤에 이르는 여덟 가지는

정신적인 것이요, 유심적인 것이요, 기능적인 것이요, 감정적인 것이요, 후자

천에서부터 지에 이르는 여덟 가지는 물질적인 것이요, 가시적인 것이요, 육체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문자적 증거로는 제2괘에 해당하는 이 태택과 칠 간산에서 증거를 보일 수

있습니다. 팔괘의 특징은 일과 팔, 이와 칠, 삼과 육, 사와 오로 서로 상대적인 괘로

이루어졌습니다. 못(택)과 산괘의 물질적 명칭인 산과 못이 어째서 상대적인지

그 이름만으로 상대성을 인정하기는 좀 우스꽝스럽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일 명칭인

태와 간을 주의 깊게 관찰하면 좀 더 쉽게 기능적인 차원 내지는 유심적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태란 괘 제일 명칭 옆에 심방변인 마음심변을

붙이면 열자가 되고, 간괘 역시 마음심변을 붙이면 한자가 됩니다. 제일 명칭 중의

하나는 우리 마음의 긍정적인 상태에서 오는 즐거움이요, 하나는 우리 마음의

부정적인 상태에서 오는 괴로움의 표현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실제로 태괘가

들어간 64괘의 해설을 보건대 태는 즐거움이니 희열이니 하는 유심적 해설 장면들이

많이 나옵니다. 역시 간은 괴로움, 곤란이니 하는 인간이 갖는 감정의 부정적 내면을

상징하여 괘를 풀이한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우주의 실상을 외형적,

가시적인 어떤 구성요소로서 판단되어진 것으로 나타낸 것이 하나요, 내면적인 감정

인식의 세계를 나타낸 것으로 보는 것이 또 하나입니다. 즉, 물질과 마음이 둘이 아닌

차원에서 관찰 표현되어진 것이 주역의 팔괘 철학이론이 아닌가 합니다.

  그렇다면 건과 곤도 역시 어떠한 마음의 긍정적인 상태와 부정적인 상태로 표현한

것이요, 이와 감, 손과 진들 역시 긍정과 부정적 상태로 표현한 것임을 추리하여

볼 수 있습니다. 요컨대 옛 선인들은 인간 내면의 감정세계를 탐사하여 그 상대성인

어떠한 원리로 나타내어 이곳에 은밀히 상징해 놓았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인 증거로는 64괘의 표상을 몇 자 안되는 함축되어진 단어로써 취상할 때

그 단어가 취상 되어질 수밖에 없는 기초적인 상황 원인을 우리는 찾기가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산과 택괘가 만나서 산택손의 손자가 취상되어 졌는데 산과 택이 만나서

손해를 본다는 그러한 어떤 인간사에서 등장되어지는 유심적 세계의 언어가 등장되어

진 것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산이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의미 간, 택이 가지고 있는 태의 의미가 기능적인 차원, 유심적인 차원에서

관찰되어진 후 이 두 요소의 복합상황을 추리해 내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산과 못이 만나서 손해를 이룬다는 유물적인 차원의 접근은 좀 난해합니다. 그러나

좀 더 용이한 방법으로는 그 괘상이 가지고 있는 두 가지의 특징을 유심적인 차원의

복합적인 상황으로 종합해 보자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어떤 두 가지의 복합된 상황이므로 해석이 어렵습니다. 한 가지

한 가지가 어떤 유심적 상황을 얘기 했느냐? 그런데 어떤 경락이 여기에 배당이

되느냐? 하는 것을 알면 그 경락의 특징을 알 수 있잖아요? 그러면 그 경락에

물질적인 어떤 상황이 생기느냐? 가령 흰색이 많은 사람은 양명경락이 실하겠구나

그 경락을 사해 주자? 이런 식으로 질병의 진단과 치료에 응용이 됩니다. 그러므로

팔괘와의 유심적인 연결이 사실 이 강의의 시작이자 끝입니다. 결국은 누가 더

관찰력이 좋으냐 하는 것입니다.


  금까마귀가 동에서 일어나서 어느 쪽으로 날아가느냐? (금오동기향가방)

  남산이 아니면 북쪽 언덕이 아니겠느냐.(불시남산여북강)

  금년 다가도록 다른 길이 없으니(의세종년무이로)

  금년에는 산봉우리 위에서 광명을 보겠구나.(금년우견령두광)

  "뇌옹" (1320--1376 고려 공민왕 때 승려 혜륵의 법호. 속성은 아, 당호는

원혜로 영해사람. 중국 원나라 북경에서 지공을 뵙고 계오한 바 있었고, 그의 법의와

불자를 전해 받다. 1376(고려 우왕 2년)년 세수 57세 법랍 38세를 일기로 입적)


  금까마귀란 애초에 없는 물건인데 그것을 노랗다, 검다 할 수 있습니까? 없는

존재를 두고 남산으로 날아갔다, 북산이다 하는 시비지심과 분리의식을 일으키게

하는 이 시의 말 끝에 속으면 안되지요.

  이 강의는 이론을 풀어헤치기 전에 근본에 대한 망각을 일깨워주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앞에서는 팔괘가 유심적으로 어떻게 연결이 가능하다는 암시만 드렸지만 이제부터

구체적인 부분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인간이 지닌 1차, 2차, 3차적인 욕망은 어떤 충동에 만족된 상태와 불만족된 상태를

띠게 되는데, 그것을 주역에서 찾는다면 바로 태괘와 간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잠깐

여러분의 상생, 상극 사고방식을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 목, 화, 토, 금, 수나 사계

상생은 변하지 않습니다. 순환의 진리이지요. 그러나 육기는 상생상극과 무관하게

아무 곳이나 막 끼어듭니다. 봄날씨가 아주 차거나 습할 때가 있는가하면 겨울이 아주

포근할 때가 있지요. 그러므로 육기공부를 할 때는 상생, 상극을 일단 잊어버려야

합니다.

정신차리고 잘 들어 주세요. 상극인 수극화를 여러분은 물이 불을 꺼 주는 것으로

알고 있지요? 그건 그저 반 정도만 이해한 겁니다. 사주를 볼 때도 여자가 수이고

남자가 화라면, 돌팔이 사주쟁이는 "어! 그 여자 물장사나 술장사를 해야되고 남자를

괴롭힐 여자입니다. 조심하십시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명리공부를 잘 하신 분은

" 천만의 말씀입니다. 여자가 남자를 잘 돕고 북돋아줄 상입니다"라고 합니다. 똑같은

사주의 해석이 이렇게 달라집니다. 여러분들은 해석을 함부로 하지 마세요. 물이 항상

불을 이기는 것은 아닙니다. 기름등잔의 경우는 수생화가 되지요. 또, 전기는 더운

기운인데 에어콘과 냉장고가 존재 하지요. 그러므로 사주의 해석도 일률적으로 상생,

상극의 이론에 맞출 수는 없는 것입니다.

  뚱뚱한 사람이 밤새도록 헤엄치고, 물 마시고, 비 맞는 꿈을 꾸었다면 "아무래도

당신 병이 심해지겠습니다"라고 말해주고, 비쩍 마른 환자가 같은 꿈을 꾸었다면

"아하! 이제 당신 병이 낫겠군요"라고 해석해 주어야겠지요. 뚱뚱한 사람은 몸에 습이

많은데 물놀이를 해서야 되겠습니까. 이건 흡사 뚱뚱한 사람을 치료할 때 숙지황

1량에 맥문동, 천문동을 넣고 돼지고기와 마요네즈를 먹으라는 것과 같은 말이

되겠지요. 같은 꿈이라 하더라도 음양이 있는 것입니다. 고정관념으로 상생, 상극을

보면 안됩니다.

특히 많이 외워오신 분들일수록 국한된 사고방식에 빠지기 쉽지요. 신장이

허하다고 할 때, 신은 수니까 금생수의 원칙에 의해서 금인 폐만 건드려 주면

되느냐 하면 그렇지가 않지요. 육경을 접함에 우선 상생, 상극의 선입견을

떨어버리시기 바랍니다.



@{

  동양의학혁명

  (사암도인 침술원리

  40일 강좌 외)

  총론


  전11권 중 제2권


  강론:금오 김홍경

  도서출판 신농백초


  점역처:대한적십자사

  서울특별시지사 점자도서실

@}

@[  4. 오운 육기@]

@[(1)@]

  인간이 지닌 욕망에 1, 2, 3차로 세 가지가 있고, 천지에는 오운과 육기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풍 한 서 습 조 화의 육기와 우리 마음이 일으키고

있는 어떤 감정(1, 2, 3차 욕망의 만족과 불만족)과 육경(궐음--태양)의 흐름이 서로

연결되는 하나의 공식이 있다면 우리가 병을 보는데 큰 도움이 될지도 모르지요.

  이 팔괘를 가만히 들여다 보면 하늘과 땅 사이에 못과 불과 우뢰와 바람과

물과 산이 있지요. 그러므로 천지 사이에 육기가 돌아가는 표정이 역력합니다.

천밑에 감독할 독자를 쓰고, 지밑에 임신의 임자를 쓰십시오. 택밑에는 태음을 쓰고,

택과 반대되는 산밑에는 양명을 쓰십시오. 화밑에는 소음이라고 쓰고 그 반대인

수밑에는 태양을 쓰고, 뢰밑에는 소양을 쓰고 그 반대인 풍밑에는 궐음을 쓰세요.

건괘는 세 개가 모두 양입니다만 태괘를 보면 양효2, 음효1이지요. 그런데 이 태괘

전체를 일컬어 음이라 해야 할지 양이라 해야 할지가 문제입니다.

  남자를 상징하는 괘는 간, 감, 진(삼남, 즉 간은 소남이고, 감은 중남, 진은

장남입니다). 여자를 상징하는 괘는 태, 리, 손(삼녀, 즉 태는 소녀이고,

리는 이녀 즉, 중녀이며, 손은 장녀)입니다. 상 중 하의 둘이 양효이면, 당연히

하나는 음효가 되고, 둘이 음효이면 하나는 양효가 됩니다(건과 곤은 예외임).

  이 때 둘인 괘는 무시하고 하나인 괘를 보고 그 괘의 명칭을 정합니다(이 하나인

효를 움직이는 괘라고 함). 태괘를 예로 들어보면, 양괘 둘을 무시하면 상에서

동하는 음효가 바로 이 괘의 명칭을 결정지어 줍니다. 즉 소녀인 태괘지요.

음이둘 양이하나를 예를 들면, 위의 음효, 둘을 무시하면 맨 아래의 양효가 이

괘의 명칭을 결정지어줍니다. 맨 아래 하나만 하면 양효인 것은 장남인 진괘이지요.

그러니까 동하는 것이 음이면 음괘이고 양이면 양괘입니다. 그리고 건괘는 양이

셋이므로 양괘이고, 곤괘는 음이 셋이므로 음괘가 됩니다. 팔괘 중 건과 곤을 제외한

나머지 여섯 괘가 바로 육기와 육경의 근거입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주워

듣는 데에는 대학교 졸업후 거의 6년 가까운 세월 동안 공을 들여야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육경을 팔괘에 결부시킨 것이 학계에 논란이 많이 되고 있습니다.

다른 교과서에는 이런 식의 연결(결부)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건괘 밑에 독신을,

곤괘밑에 임신을 쓰게 한 까닭은 차차 설명드리겠습니다.

  경락상 태음은 수족으로 구성되는 수태음폐, 족태음비로 되지요. 하나는 토,

하나는 금인데 같은 태음에 속하지요. 어떻게 토와 금이 같은 태음경에 속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들에 대해 정신을 바짝 차리고 머리 속에서 생각하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책을 읽을 때는 오행상의 관점은 잊으세요. 나중에 다시 접합을

해드립니다.

  궐음, 소음, 태음, 태양, 양명, 소양을 심리적으로 표현해서 육음이라고 하는데,

가령 바람에 상해서 입이 비뚤어졌다고 한다면 육기에 상했다고 하고, 속에서

오르는 욕망 때문에 화가 동해서 상했다고 하면 육음에 상했다고 합니다. 즉

내상적으로 볼 때 육음이라는 표현을 하지요. 그런데 6이라는 숫자를 상대적인

개념으로 구성 되었다고 본다면 긍정적인 3과 부정적인 3이 되겠지요. 그런데 이

3이란 무엇이냐? 인간이 지닌 각각 리듬이 다른 세 가지 욕망으로 봅니다.

바이오리듬에서도 신체리듬 감성리듬 지성리듬의 주기가 23일, 28일, 33일로

다릅니다. 허기와 배신감과 불안감이 모두 욕망의 부정적인 상태이나 각기 괴로움의

모양이 다른 것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겠지요. 아무튼 이렇게 셋씩으로 나눠놓고

또 수족으로 구분시켜 놓은 것입니다.

  이런 상황 아래에서 여러분은 순간순간 변하는 욕망을 잘 판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가령 폐를 예로 들어 봅시다. 폐란 육변에 시자를 붙인 것이지요. 시장이란

무엇이 왔다갔다하고 물건이 교환되는 곳이지요. 따라서 폐가 하는 일의 질적인

차원을 육경적인 차원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시장 시자가 들어간 이면에는

무엇인가의 상징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책의 포인트입니다. 뜻밖의 이야기나

황당무계한 학설로 전락할 수 있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이런 내용의 주장을 하는

이유는, 이 책을 읽고 난 뒤 여러분들이 어떤 이론가가 되기 보다 그때 그때의

상황을 판별하여 느낌을 분류할 줄 아는 지혜를 드리기 위함인 것입니다.

  화가 났을 때 열이 나고 눈에 핏발이 서는데 이런 현상은 성충동이 일어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둘 다 열이지만 그 속성은 전혀 다릅니다.

또 지구내부에서 발생되는 열과 태양으로부터 비춰지는 열도 전혀 별개의

것이지요. 전자가 '화염'쪽이라면 후자는 '광명'쪽에 가깝다할 수 있겠지요.

이와 같이, 우리가 느끼는 심리적인 반응도 다양하지만 크게 세 가지로 대별할 수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것이 곧 1차적인 욕망, 2차적인 욕망, 3차적인 욕망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물질적으로, 육기적으로 유추를 시켜 그것을 세 가지

욕망과 연관을 지을 수가 있습니다. 이 연관을 짓기에 앞서 육기와 육경과의

종합관계를 먼저 살펴봅시다.

  수는 한에 가깝고, 풍은 그대로 풍, 택은 습, 화는 군화가 되고, 뇌는 상화, 산은

조가 되지요. 그리고 이 풍, 화, 택, 뇌, 산, 수는 궐음, 소음, 태음, 소양, 양명,

태양인 육경과 결합 되어서 궐음풍목, 소음군화, 태음습토, 소양상화, 양명조금,

태양한수가 됩니다. 이것은 여러분들이 반드시 외우셔야 합니다. 이리하여 육기와

육경과의 관계가 대체적으로 구분 되었습니다. 제가 음을 욕망이라고 했으므로

음을 ^26^(플러스)로 보고 양을 ^35^(마이너스)로 본다면 ^26^는 마음의 긍정적인 상

태,

^35^는 마음의 부정적인 상태가 됩니다.

  우리가 마음 속에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음이 들어 있는 경락은 마음의

긍정적인 상태, 즉 뭔가 좋아서 취하려고 하는 상태입니다. 1차욕망(신체리듬)은

이태습(태음경)에 속하고, 2차욕망(감성리듬)은 삼리화(소음경)에 해당하고,

3차욕망(지성리듬)은 오손풍(궐음경)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칠간산(양명경)은 1차욕망(신체리듬)의 부정적인 상태가 되고, 육감수(태양경)는

2차욕망(감성리듬)의 부정적인 상태, 사진뇌(소양경)는 3차욕망(지성리듬)의

부정적인 상태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겠지요.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태음경 즉 수태음폐경과 족태음비경은 우리 인체 내

신체리듬의 긍정적인 상태를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수 족으로 나누었느냐

하는 것은 전체적인 이해를 한 후에 다루기로 하겠습니다.

  신체리듬의 긍정적인 상태가 배부름, 부유함이라면, 신체리듬의 부정적인 상태는

허기, 빈곤감 등이 되겠지요. 이렇게 서로 상반되는 개념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또한 여러분들은 칠정의 심판을 보아야 하는 사람들이므로 예민하게 주위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이해해야 합니다. 돈이 많은 사람의 눈빛과 행동, 권력자의 모습,

예술가나 문필가의 분위기가 각각 다 다른데 이것을 날카롭게 읽어 내는 눈이

있어야 됩니다. "나이 40이면 제 얼굴에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는 공자의 말은

참으로 시사적이지요.

  길거리를 가다가 깡패를 만났다고 합시다. 옆구리에 손을 척 걸치고 시비를 걸어

올 때 아직 맞지는 않았지만 그 때 감지되는 느낌이 있지요. 공격적인 자세는

주로 옆구리에 손을 얹게 되는데 옆구리에 손을 얹게 되면 족소양담경의 에너지가

흐르게 되지요. 이런 이야기 처음 듣지요? 정말 기가 막힌 겁니다. 무심코 하는

행동에 따라 어떤 경락의 에너지가 흐르게도 되고 그치게도 된다는 사실은 권하기

전에는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수궐음심포가 심장을 싸고 있는 막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는데 그런 사람이

심포경에 어떤 에너지가 흐르는지 알 리가 있겠습니까? 요즘 한의학자들은 이런

공부는 안합니다. 물론 자기관찰을 한 사람도 없지요. 불쌍합니다. 정말 그들을

위해 기도해주어야 합니다.

  배가 고플 때에는 그에 해당하는 표정을 짓게 되고, 뭔가 잘못 되었을 때는

손으로 이마를 짚게 되지요. 여러분들은 이런 태도를 유심히 보아야 합니다. 이런

것들을 모르면 경락에 흐르는 기운을 알 수가 없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1차 리듬의 긍정적인 차원이 태음이라면 부정적인 측면은 양명,

2차 리듬의 긍정적인 차원이 소음이라면 부정적인 측면은 태양, 3차 리듬의

긍정적인 차원이 궐음이라면 부정적인 측면은 소양으로 나눌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양명경락은 태음경합의 부정적인 측면이므로 좀 못 먹고,

못 입고, 집이 없다든가 하는 의식주문제가 좋지 못할 때 일어나는 불만감의 표시가

아니겠느냐? 하는 거지요. 어떤 지식욕이라든가 권력욕 또는 명예욕이 만족되었을

때는 수궐음심포경이나 족궐음간경에 에너지가 강하게 흐를 지 모를 일입니다.

이것은 이해를 해야 됨은 물론 각 경락의 성격이나 종류 등을 모두 외워야 합니다.

사람들이 보통 간이 크다고 얘기할 때의 간이 크다는 뜻 이면에는 어떤 경락학적인

암시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쪽에서 제가 구체적으로 경락의 리듬을 설명드리지요. 

어째서 경락이 유심적인 차원과 연결이 되는지 그 증거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황제내경"에서 특히 강조 되어지고 있는 오운 육기법은 동양 최대 최고의

이론입니다. 오운(목 화 토 금 수의 상생상극작용)과 육기적인 차원에서

우주의 모든 실상을 파악해 보려는 일련의 시도가 지극히 주도면밀하게 이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외면을 당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일부

운명론자들이나 운명감정사들의 미신적인 도구로 전락되어 버린 듯한 오운 육기에

대한 재조명과 철저한 탐구는, 동양의학의 독특성과 전체적인 관찰을 증명함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것입니다.

  오운 육기적 차원에서 '인체는 소우주'라는 생리 병리를 관찰해 온 고인들의

탁월한 안목과 관점은 놀라울 정도로 세밀합니다. 인체 내에 흐르고 있는 모종의

리듬과 천지간을 흐르고 있는 리듬을 구분짓지 않고 두 리듬의 통일성을

추구했음은 참으로 큰 의미이지요. 더구나 갑자, 을축, 병인 정묘... 이런 식으로

상호 교차적이고 복합적인 만남 속에서 우주의 리듬을 파악한 것은 경이적인

관찰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가 청강생 여러분들에게, 보라색은 오행상 어떻게 표현이 되나요? 하고 묻는다면

여러분들은 "그런 건 없어요"하거나 "모르겠어요"하고 대답을 합니다. 분명히

존재하는데 어떻게 없다고 합니까? 이렇듯, 우주가 생긴 후 오운 육기가 대두

되었지 오운 육기 이론이 전제되고 우주가 형성된 것은 아니지요. 그러므로

현상관찰을 먼저 해야 됩니다. 이론은 남에게 설명을 해 주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맥주를 먹었는데 왜 웨하스를 먹으라고 하십니까"하고 질문을 하는데, 맥주 먹고

난 뒤 웨하스를 먹기까지는 어떤 이론적 배경을 갖고 있습니다. 이것은 먼저

맥주와 웨하스가 생기고 나서 그것에 대한 종합적인 눈이 생긴 것이지 이론이

먼저 나온 것은 아니지요. 알코올은 물과 소음군화의 복합체입니다. 술이 몸을

차게 하느냐 덥게 하느냐 하는 것은 역대 모든 의사들의 논쟁거리였습니다.

먹었을 때에는 분명히 몸을 데우는데 나중에는 냉하게 하거든요. 그것은 술이

체내에서 한의 작용을 일으켜 몸을 축축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한의 작용 때문에 맥주를 많이 마시고 나면 몸이 찌뿌둥합니다. 따라서

양명조금에 해당하는 스폰지와 같은 퍽퍽한 것을 먹으면 좋지 않겠느냐 하는데서

그 이론이 나온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오운 육기학을 오래 공부하다 보면 모든

상황을 상대적으로 파악하기 시작합니다. 그리하여 질병치료방법이 저절로 나오게

됩니다. 뚱뚱한 환자가 왔다면 일단 병증을 불문하고 반하를 써야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마른 환자에게는 숙지황을 써야 합니다.

  반하는 건조한 땅에서 재배해야 합니다. 습기 있는 진흙땅에 재배하거나 물을

많이 주게 되면 반하 재배는 망치고 맙니다. 반하나 패모같은 것은 모래땅처럼

수분이 잘 흡수 되는 곳에 심어야 합니다. 약초나 식물의 특성을 보면 그것이

나온 땅을 알 수 있게 마련입니다.

  맥문동이나 천문동, 숙지황과 같이 습기가 많은 약초들이 모래땅처럼  건조한

땅에서 나왔을 리가 있겠어요? 그러므로 맛을 보거나 모양만을 보고도 그것의

특성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모밀국수를 먹을 때, 매운 맛을 내는 데 겨자 대신

고춧가루를 넣는다면 그 모밀국수 맛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겨자와 고춧가루는 같은

양명조금에 속하는 매운 맛이지만 오운 육기로 일일이 다 설명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장의 맛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백작약, 계지, 감초에 엿을 넣는 소건중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어린애들 배

아플 때 이것처럼 좋은 약이 없지요. 여기에 엿 대신에 설탕을 넣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단 맛이 태음경이지만 꿀과 설탕, 조청 등이 다 다르듯이 분류를

한다면 그 수가 엄청나게 많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체험만이 그 해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이론이 없어지는 장면입니다.

  가정학과나 요리학과를 졸업한 사람에게 배추를 소금에 절여보라고 하면 "배추

1킬로그램에는 소금 몇 그램"하면서 앞 뒤 볼 것없이 섞어 버립니다. 산에서 자란

배추와 들에서 자란 배추가 다르고 그 중에서도 억센 것과 부드러운 것이 또한

다른데 위와 같은 방식으로 하면 되겠습니까? 이런 미묘한 점들은 여러분들이

체험을 통해서 알아야 합니다. 이론으로는 안됩니다. 어느 선을 넘어서면 이론은

사라지고 맙니다. 오운 육기를 흔히 사주를 보고나 인간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데

사용하는 예지의 학문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물론 오운 육기에

예지능력에의 갈망은 대단한 것이므로 그런 인간의 갈망에 따르는 부작용 역시

심각합니다. 어떤 욕망에 대한 욕구충족의 한 방편으로 오운 육기학을 공부한다면

이것은 직관적인 깨달음을 기본으로 하는 학문연구 태도가 아니고, 현학적 내지는

지적인 쾌락을 목표로 공부하는 것일 따름입니다.

  여러분들이 오운 육기학과 사암침법의 내용만을 외워서 많은 성취감을 얻어 가려

한다면 하나의 지적인 쾌락, 즉 궐음경락의 병사만을 한아름 안고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전에는 못 듣던 이야기를 많이 들었으므로 무척 얻은 것이 많은 듯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지적인 쾌락만을 가지고 간다면 여러분들도 결국은 교만한 학자밖에는

될 수가 없습니다. 거듭 강조드리지만 이 자리는 상대적인 세계의 모든 조화, 한

생각 이전의 마음의 깨끗함을 배우고 가는 자리여야 합니다. 환자가 왔는데

사주를 말하면 그 사주를 컴퓨터에 넣고 작동시키면 --탕, 제미십팔탕...하고

툭 튀어 나옵니다. 이렇게 하는 한의사도 있습니다. 인간이란 이렇게 사주팔자로만

분석되고 결정되는 존재가 아니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오운 육기학도 그저 대입식의

암기나 산술적 계산만으로 풀어내는 학문이 아닙니다.

  각각의 환경을 무시한 채 그저 "사주팔자만 똑 같으면 같은 병이 온다"고 해서야

어떻게 한의학을 공부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환자가 고열인데도 사주

컴퓨터가 "사주팔자에 냉하게 되어 있으니 부자를 한 양 쓰라" 한다 해서 부자를

한 양쓰면 환자의 병이 낫겠습니까? 사주팔자에 아무리 수기가 많고 냉하다

하더라도 머리에 열이 끓는 현장을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들 '기본게임(Before Game)'에 산술적인 계산이나 대입식의 암기능력이

필요합니까? 그저 현장에 답이 있을 따름이지요. 뚱뚱한 사람의 몸을 가볍게 해

주는 약으로 정수가 있지요. 그런데 굉장히 몸이 마른 환자에게 컴퓨터가

조제해 준대로 정수를 많이 넣어 준다면 기가 가벼운 이 환자가 다음날 한의원에

들어올 때는 발이 땅에 닿지 않아서, 둥둥떠서, 날아들어 올 것입니다.

  현재의 리듬은 과거의 리듬을 들여다 봄으로써 알 수가 있고, 미래의 리듬은

현재의 리듬을 통해서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 이 삼세를 공히

정리할 수 있는 오운 육기리듬 학설을 엄밀하게 따져보면, 우리 일생이 결코

고착적인 리듬의 반복이 아니라는 암시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이

진실로 깨달아야 합니다.

  만약 60년을 주기로 한 그 리듬이 항상 꼭같은 반복을 한다면 아마도 인생은

예측하기가 쉬울 것입니다. 그러나 커다란 흐름을 우리가 예측할 수 있다하여도

커다란 흐름 속의 까다로운 변화는 역시 직관적인 안목을 가지고 수시로 파악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황제내경"에서 강조되고 있는 오운 육기학의 기본정신은 통치자로서 백성을

염려하는 충정에서 비롯된 이론뿐만 아니라, 전체 우주와 조화를 도모하고자

하는 수행자적, 구도자적인 가르침인 성인의 뜻도 담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 서양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바이오 리듬의 연구가 오직 인간자체

내에 있는 리듬의 연구에 그치고 있음은 유감이지만, 그런대로 서양 생리학적

연구의 진보를 뜻한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신체에 있는 모종의 리듬과

우주 리듬을 상호복합적으로 관찰해 온 동양의 오운, 육기학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습니다. 오운 육기학에 접근함에 있어서 먼저

필요한 방법론은 역시 외부적인 운기의 대표적 모습인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기온과 풍 한 서 습 조 화의 기후 변동을 관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신체적, 감성적, 지성적 리듬 조건을 주도면밀하게 관찰하는 법이 꼭 뒤따라야

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소위 십이경락 체계로 불리는 경락의 신비를 탐사하기 위해서는 우선 십이경락의

근원인 육경 즉, 궐음, 소음, 태음, 소양, 양명, 태양으로 불리는 그 언어의

배경을 살펴봄도 한 가지 방법이 될 것입니다. 이 육경은 풍 한 서 습 조 화의

육기와 아주 긴밀한 상관관계를 갖고 있는데, 동양의 고전인 "내경"에 다분히

상징적이고 난해한 용어로써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궐음이 재천하여

산미를 이룬다고 했는데, 흔히 우리가 시다고 느끼는 맛은 궐음의 기운이 재천하여

이루어 진다는 것입니다. 이 재천의 의미는 많은 고찰을 필요로 하는 난해한

용어 중의 하나지요. 이렇듯 모든 맛과 색깔과 길흉, 모든 질병에 이르기까지 모두

육기적, 육경적 체계로 설명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것은 또한 오행적인

차원과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하여 인체 내에 흐르는 어떠한 기운,

즉 어떠한 무형의 흐름, 어떤 기능적인 상황, 나아가서 어떤 감정적인 배경,

더욱 더 나아가서는 바이오 리듬과의 연관성 등을 유추해 볼 수 있는 도표를

여러분들께 제시한 것입니다.

  어떠한 형태를 가지고 정기적으로 순환하는 신체, 감성, 지성이라는 세 리듬이

반드시 정확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지금 서양에서 활용하고 있는 것을 빌어서

설명한다는 사실이 썩 내키지는 않으나 여러분의 이해를 돕고자 할 수 없이

도입한 것일 따름입니다. 동양의 옛 성인들은 궐음과 소양, 태음과 양명, 소음과

태양을 짝지어서 어떤 리듬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어떤 용어의 정의를 내리기 전에 먼저 광범위한 마음의 탐사작업을

해야합니다.

 

@[(2)@]

  그러면 경락 체계라고 불리는 이러한 리듬체계를 어떻게 연구할 것인가?

김용옥 교수의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 인용하여 문제점을 제시해 보고자

합니다. 김용옥씨는 심포에 대한 의문을 예로 들어 자신의 주장을 피력하고 흔히

심포를 해부학적인 측면으로 연구 파악하려는 경향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하였습니다.


  "산림경제" 제1권 P.50에 포락으로 된 번역문에 주를 달기를 (포락:심장을 싸고

있는 얇은 막, 즉 심장막이다)라고 하여, 포락을 심장막 곧 심포와 동일시하고

있는데, 대체적으로 문의를 크게 벗어나고 있지는 않다고 할 것이나 포락을 곧

심장막과 동일시하는 것은 많은 곡해를 유발시킬 우려가 있다. 고세식의 설을

따르자면 포락의 포만으로 심포의 뜻이 되며, 포락이란 정확하게는 심포의 락맥을

설명하면서 그 중 일경으로 '심주수궐음심포락지맥'을 들고 있는데, "영추"가

한대의 고경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꽤 오래 전부터 심포와 심포락은 동일한

의미로 쓰인 것임을 알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대의 주석에 의존치 않고

"내경"의 원의에만 즉하여 해석할 때 '포락절'의 '포'가 과연 심포를 정확히

의미했는지는 매우 의심스럽다. 왜냐하면 "황제내경소문"권제3 영란비전논편 제8에

십이장지상사(십이장부의 서로 부림)를 논하는 곳에서 십이경맥의 하나로서

심포에 해당되는 장기를 심포라 하지 않고 단중이라고 하고 있기 때문에 심포와

단중이 동일한 것인가 아닌가 하는 데에는 많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다시 말해서 "내경소문"이 씌어진 그 당시 심포라는 장기의 개념이 정확히

성립하고 있었는가 하는 것 자체가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그리고 심포를 심장막이라고 해설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심장막이라고

하면 현대어로서는 꼭 심장의 판막을 의미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앞에 '심장을 싸고 있는 얇은 막'이라는 단서가 붙었기 때문에 그러한 오해가

발생치 않는다고 변명할 수 있겠으나,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일반 독자들에게

심포의 해설로서 '심장을 싸고 있는 얇은 막'이라는 해부학적 정의 자체가 적합치

못하다는 것이다. 심포라는 장기가 한의학에서 차지하는 총체적 의미가 먼저

밝혀졌어야 했을 것이다.

  심포는 결코 심장을 싸고 있는 얇은 막이라는 심장의 부속기관적 해부학적

실체가 아니다. 심포는 심장과 독립된 별개의 독립 장기이다. 즉 한의학의 인체론의

최기본인 십이경맥 중에서 오장육부를 제외한 나머지 하나의 경맥으로서 육부의

삼초에 부응하는 하나의 독립장기가 곧 심포이다. 심포가 과연 실체적으로 무엇을

지칭하느냐 하는 것은 역자의 해설처럼 그렇게 간단치 않다. 오늘날까지 심포의

실체에 관해서는 논란이 많기 때문이다. 우선 심포라는 장기의 개념 성립 과정이

심포라는 해부학적 실체가 먼저 발견되고 거기에서 시작되는 경맥이 상정되었다고

보기보다는 십이경맥이 먼저 성립하고 난 후에 십이경맥 중 하나에 해당되는

어떠한 기능적 단위로서의 장기가 상정되었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발생론적 고찰은 중국의학 술어에 대한 매우 중요한 일반가설을

성립시킨다. 즉 한의학에서 말하고 있는 장기의 명칭이 실체적 규정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기능적 규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한의학의

장기들은 오늘날 서구 의학에서 발달시킨 병리해부학적 인식 위에서 성립한 실체가

아니라 경락상의 기능을 담당하는 어떠한 개념적 단위로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한의학에서 말하는 신은 곧바로 오늘날의 신장(kidney)이라는

실체와 동일시되기 힘든 면이 많다. 신은 신장 그 자체라고 보기보다는 선천의

원기가 모이는 곳이며, 생식기능과 관련되어 있는 어떠한 기능상의 기관으로,

오늘날의 서양의학적 해부학적 실체로 말하자면 부신과 성선의 복합적 기능을

상징하는 그 무엇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또 비도 오늘날의 비장(spleen)과 전혀 무관한 것이다. 현대 서양의학에서

취급하는 비장은 일종의 조혈기관으로, 여기서 적혈구가 파괴되고

헤모그로빈(Hemoglobin)이 유리되어 간으로 수송되어 빌리루빈(Bilirubin)으로

전화하는데, 이 임파성 기관은 한의학에서는 독립장기로 확연히 인식된 적이 없고

개념적으로 간의 개념 속에 포섭되는 종속된 그 무엇이었을 것이다.

내경학에서부터 명시되고 있는 비는 오늘날의 의학술어로는 췌장(pancreas)을

의미한다. 췌장 중에서도 외분비(즉 랑게르한스섬의 기능을 제외한) 관계의

소화효소분비 기능을 지칭하며, 위라는 부와 상응하는 장이다.

  우리 속말에 '그 녀석 비위도 좋다'라고 할 때 비와 위는 모두 토에 속하며 모두

소화관계 기관이다. 이 때 비는 물론 비장(spleen)이 아니라 췌장(pancreas)이다.

고전 속의 비를 '비장'으로 번역하는 것은 문자적 동일성 때문에 개념적 동시성을

파괴하는 좋은 일례 중의 하나이다. 이러한 장기의 실체성에 관한 문제 또한

번역과정에서 생겨나는 문제이다. 우리 고전상의 한의학 개념을 서양의학 개념과

대비시키는 작업은 일본의 난학자(란가쿠샤)들이 화란에서 수입된 의학서적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이며 췌장의 췌란 말도 중국글자가 아니라

일본인들이 만들어낸 의자이며, 그들이 Spleen을 낮을 비자가 들어간 췌로 번역하고

pancreas를 새롭게 발견함에 따라 모인다(집, 취)의 의미를 갖는 췌자를 고기 육변에

붙이어 새로이 만들어 pancreas를 지칭하게 하였다. 췌장의 해부학적 인식은 유명한

난학자 삼전현백(스기타 겐파구 1733--1817)에 의하여 이루어졌으며, 그 후 우다가와

겐신(우전천현진 1768--1834)의 "의범제요" (1805)에 췌라는 글자로 최초로 등장한다.

서양에서도 팽크리아스의 기능을 발견한 것은 최근의 일이며, 19세기 중엽에나

프랑스 병리학자 베르나르(Claude Bernard 1813-1878)의 토끼 해부로 인하여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사실들을 역사적으로 검토해 볼 때 우리가 한의학의 술어들을

번역할 때도 함부로 오늘날의 개념으로 단순한 문자상의 동일성으로 인하여

대입시킬 수 없다는 새로운 인식을 불러일으킨다. 인체에 대한 개념의

토포로지(topology 사전적 의미로는 지형 지세학을 뜻함. 여기서는 상징적으로 인간이

가진 개념의 지도를 뜻함. 곧 오운육기란 것이 인간이 가진 하나의 개념의 지도라고

볼 수 있음)가

전혀 다른 가설적 기반 위에 서 있다는 확연한 인식이 없이 그 문의의 정확성이

기술될 수 없을 뿐만아니라 오늘날 한방의 많은 오류가 이러한 개념적 혼동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임상적 현실 또한 지적됨이 마땅하다.


  아마 여러분들 중에서도 '심포와 심장막은 같은 것이다'라는 말을 들으신 분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양방에서 통용되는 해부학적인 용어와 우리가 사용하는

무형적, 기능적, 경락학적인 이름과의 동일시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말하자면

양방에서 말하는 기관적(organ)이름인 Kidney가 한방의 족소음신경과 동일하다는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암침법강의를 40일간이나 듣고도, 양방에서

신장염이라고 하니까 "음! 족소음신경을 보해야 되겠군" 혹은 위궤양이라니까

"음! 족양명위경을 놓으면 되겠군"하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 당장 한의학을

그만 두십시오!

  모짜르트는 피아노를 배우러 오는 사람에게 "전에 피아노를 배우신 적이

있습니까?" 하고 질문을 하여 배운 적이 있다는 사람에게는 수강료를 두 배로 받고

전혀 배운 적이 없다는 사람에게는 반만 받았다고 합니다. 일본 바둑계의 명인인

사까다 역시 "바둑이 무엇인지 모르고 오는 사람은 단기간 내에 초단으로 만들어

줄 수 있지만 바둑을 좀 알고 오는 사람을 초단으로 만들기는 참으로 많은 기간이

소요된다"고 했습니다. 한의학이라는 이상한 학문을 배우기 위해 들어온

여러분들에게도 오운육기에 대한 선입견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 강의의 총론이

끊임없는 잔소리의 연속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여러분들의 선입견을

배제시키기 위해서이지요. 잡초가 없는 땅이라면 그냥 씨를 뿌리면 됩니다. 그런데

지금 여러분들의 마음 속에는 많은 자갈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자갈을

제거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게 되는 거지요. 이렇게 40일을 듣다 보면 "아-- 모든

원인은 나에게 있군!" "내 마음을 관찰해야 되겠군" "경락은 모두 쌍을 이루고

있군" "마음은 상대성을 갖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역대의 모든 성인이 말씀하신 경전과 "내경"의 원리올시다.

  도를 팽개치고, 학문도 제대로 연구하지 않고 마냥 양방의 해부학적인 명칭에

이끌려 병명을 동일시하거나 기관(organ)과 기능을 동일시해서는 안됩니다. 바로

이것을 김용옥교수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한의학자가 아닌 분의 이야기를 인용하게

된 것을 저는 수치로 생각합니다. 그것은 권위가 있는 사람이나 옛 성인의 말씀을

비유해야만 인정하려고 하는 여러분들의 사고방식 때문입니다. 김용옥교수의

책을 읽어보면 그는 심포를 깊이 아는 대가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한의학자가 아니니까요 저로서는 오히려 "심포의 개념은 참선학적으로 이렇게

이렇게 보아야 합니다"라고 건의를 드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러나 공부를 하는

여러분들에게는 그분의 학문태도를 본받으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그분은 의문이

많지요. 미국, 중국, 일본 등지로 다니며 공부를 해 보아도 우리나라 학문은 역시

우리말로 해야 된다는 것을 그분은 인식한 것이지요. 저 역시 의문과 반항과

정열의 학문적 정신을 존중합니다. 괴테를 이야기할 때 반드시 독일어로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바로 나의 생각입니다.

  그분은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책에서 우리 동의학자들이 해야 할

"내경"의 영역을 마구 침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합니까? 옳으니 받아들여야

지요.

  김용옥교수는 "산림경제(조선 후기 실학자의 한 사람인 홍만선(유암, 1643--1715)의

저작으로 농업과 의학에 대한 연구서)"라는 책에서 번역상의 결점을 발견하고, 이

글을 쓰게 된 것이지요. 산림경제란 책은 의학서적이 아니고 '민중 속의 생활, 지혜

안내서'

정도로 씌여진 책이라고 합니다. 그분은 상당히 탁월하다고 하는 고전의 책 속에서

오역을 발견한 것입니다. 지금 중공이나 대만에서도 터무니 없는 번역을 많이

하는데, 그러한 중공이나 대만 책만 번역하면 권위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은

깨끗이 버려야 합니다. 그 쪽에도 양방 물이 들어 있는데다 자체적 결함이 없지

않은데 우리는 그저 그것을 번역해서 그들의 뒤만 쫓아가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참으로 주체성 없는 어리석음이지요.

  "심포는 심장을 싸고 있는 얇은 막이라는 심장의 부속기관적, 해부학적인 것이

결코 아니라 심장과 독립된 별개의 장부이다"라고 "내경"을 공부하는 한의학자도

하기 어려운 말을 동양철학을 하는 사람이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김용옥 교수의 제자 한 사람이 우리집에 놀러 왔는데 "동양철학을

하려면 반드시 내경을 이해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동양철학의 몇 구절도

해석하지 못할 것이다" 라고 김용옥교수가 역설했다고 합니다. 기가 막힌

이야기입니다. 김용옥교수도 심포의 정확한 지칭은 못했지만 그게 심장을 둘러싼

막이 아님은 간파했습니다.

  "아닌 것을 제거하다 보면 사실이 드러나게 된다"고 크리슈나무르티 선생은

진리에 접근하는 방법을 일러주었습니다. "사랑이 무엇입니까? 어떻게 사랑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물으면  "이건 사랑이 아니지 않겠나" 하는 것을 제거해 보라고

대답합니다. 저는 김용옥교수가 심포의 개념을 설명은 못했지만 기존의 개념을

틀렸다고 지적해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있습니다.

  심포라는 장기의 개념 성립 과정이, 심포라는 해부학적 실체가 먼저 발견되고

나서 심포에서 시작되는 경맥이 상정되었다고 보기보다는, 십이경맥이 먼저

성립되고 난 후에 십이경맥 중 하나에 해당되는 어떠한 기능적 단위로서 심포가

상정되었다고 본다는 김용옥교수의 견해에 어느 정도 동감을 하고 있습니다.

쉽게 이야기 하면, 화를 많이 내다 보니 그 에너지가 축적될 수 있는 창고가

필요했던 것이지, 화보다 창고가 먼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심포를 유명무형 또는 무상유용이라고 합니다. 막연하게 나마 권력욕,

지식욕, 명예욕 등 어떤 무형의 욕망을 간직하고 있는 장기가 아니겠느냐는

이야기는 했지요.

  옛날 사람들은 심포를 알았는데 우리가 모를 이유가 없지요. 그것에 대한

이미지를 탐사해 들어가 보기로 합시다.

  옛말에 "심보가 더러운 놈... 저 놈은 심보가 고약해!"이런 말이 있지요. 머리핀

하나 머리카락 하나의 증거를 가지고 날카롭게 수사를 해 들어가는 수사관과도

같은 날카로운 번득임이 있어야 됩니다. 옛날에 부산에 사시던 어떤 선생님은

제게 "수사관 노릇 3년만 하고 와라. 그러면 내 제자 만들어 주겠다" 이런 말을

했습니다. 수사관 노릇 3년만 하면 한의학이 금방 이해가 된다는 그 말 뜻을 그

당시에는 이해를 못했었지요. 여러분 김용옥교수의 얘기들을 잘 새겨 들어야

됩니다. 정말 멋있는 말이지요. 논문 중에 최고의 논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김용옥교수가 한방의 옆구리를 호되게 걷어찬 겁니다. '한방혁명 같은 소린 하지도

마라' 하고 한방 꽝 걷어찬 것이지요. 차마 눈뜨고 한국 한의학을 보아줄 수

없어서 오역된 것을 비판함으로써 서양과학의 똥이나 빨고있는 우리의 실상을

호되게 질타한 것입니다. 지금 우린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열심히

공부해서 참으로 수치스런 이런 일을 당해서는 안됩니다. 사회적으로 인정을

못 받으면 학문적으로라도 인정을 받아야 되는데, 지금 한의학자들은 어느 한 쪽도

인정을 못 받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무면허 돌팔이도 덩달아 대학교육을 얕잡아

보고 있는 현실이지요.

  어쩌면 한의대 나온 사람들이 오유혈(사지의 원단(상지는 주부이하, 하지는

슬부이하)에 있는 상용혈위의 총칭으로, 이들 혈위는 임상상 거의가 비교적 상용되고

있는 유효한 혈위이다)도 못 외우고 십전대보탕(이 방은 인체의 기혈, 음양, 표리,

내외가 모두 허한 경우에 사용하는 것으로 사군자탕과 사물탕에 황기와 육계를 보태

열가지 약물로 이루어짐. 십전대보탕이 치료할 수 있는 증상으로는 전신쇠약, 빈혈,

심장쇠약, 위장장애, 몸이 약한 경우, 맥이 약한 경우 등)도 못 외우느냐고

합니다. 이건 정말 문제입니다. 반성해야 됩니다. 이 모두는 선배들이 뿌린 업인데

지금 그것을 불쌍하게도 여러분들이 받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들은 그래선

안되겠지요. 학문적으로 혁신이 된 눈으로 새로운 이론체계, 새로운 관점을

후배들에게 제공해 드리세요. 그리하면 서서히 세대교체가 일어나면서 한방이

개혁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저는 김용옥교수가 주장하는 관점에 전적인 동감의 의견을 표명하는 바 입니다.

그러나 심포를 추적하는데 있어서 삼초와 상응이 되는 기관이라고 하는 것

만으로는 불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오운육기학과 경락학적인 개념을 혼합시켜 얘기를 하면, 심포란 오운상 화요,

육기상으로는 수궐음, 즉 궐음이라는 장기의 개념이며, 삼초 역시 오운상 화이며

육기상으로는 수소양삼초, 즉 소양이라는 개념의 장기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오운상으로만 관찰해 보면 심포, 삼초는 물론 심장, 소장이 모두 화에 속하게

되지요. 그러나 육기적으로 따져보면 같은 화라도 소양상화와 소음군화가 다르고,

오행상의 심장, 소장의 화와 심포, 삼초의 화가 별개의 개념으로 분리되어 있다고

추리할 수 있습니다. 심장과 소장이 오운상 둘 다 화이지만 육기와 서로 어울려

돌아갈 때는 수소음심경과 수태양소장경으로 표현이 됩니다. 그러므로 육기적인

관찰에 들어가서는 소음군화와 태양한수라고 하는 전혀 상반된 개념이 심장과

소장 경맥의 상황을 표현해 주게 됩니다. 이 차이점, 이 딜레머의 극복은

육기개념의 해석으로써만이 가능합니다. 오행상 같은 화라 하더라도 위의 경우처럼

육기상의 개념을 활용하지 않으면 그 경맥의 흐름을 추론할 수 없다는 것이 제

주장입니다.

  예를 한 가지 들어본다면, 여러분은 흔히 신장을 오행상 수라고만 알고 있는데

육경적으로 보면 족소음신이 됩니다. 그렇다면 신을 생장화수장, 춘수화동,

상생상항에 해당하는 오행상의 개념인 수로만 판단하느냐, 아니면 소음군화의

개념으로 판단하느냐는 무척 어려운 문제입니다. 또 소음군화만 하더라도 경맥상

수소음과 족소음으로 나뉘어 존재하므로 이렇게 둘로 나뉘어 존재하는 근거는

더욱 더 세밀한 분석을 필요로 하게 되지요. 이러한 고찰이 되고 있지 않는

기존의 한의학은 다리가 불구자인 상태로 한의학에 접근을 하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감정적인 차원에 있는 육경과 현대적으로 언급되는 리듬(신체, 감성, 지성)

그리고 육기적인 관찰과 유물적, 유심적 관찰을 도표화 시킨 것을 일단 배정을 하고

외우셔야 합니다.

P.31 도표를 보면 돼지(해)부터 시작하면 궐음 -> 소음 -> 태음 -> 소양 -> 양명 ->

태양으로 변해가지요. 그러나 이 순서가 실질적으로는 얼마든지 다른 양상으로 변해갈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를테면 명예욕이나 지식욕을 많이 가진 사람(궐음지기)이

나이가 들었을 경우, 반드시 색을 밝히거나 쾌락을(소음지기) 추구하게 된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요. 다만 그렇게 되기 쉽다는 것일 따름이지요.

  그런데 명예욕, 지식욕, 혹은 색을 밝히는 것이나 재물에 집착하는 것 등의

이런 모든 것을 일컬어 소유욕, 즉 '먹는 행위'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어렸을 때 엄마 젖을 충분히 먹지 못하고 자란 사람은 성장후 담배를 많이

피우지 않으면 욕구불만 되기 쉽답니다. 또는 담배를 피우지 못하면 아쉬운대로 자기

혓바닥이라도 빨게 됩니다. 그래서 관상학상 자기 입술을 자꾸 빨아대는 사람은

음탕하다고 되어 있습니다. 여자들이 길을 가다가 멋진 남자를 보면 깊이 숨을

들어마시지요. 이것 역시 소유욕의 범주에 속합니다.                         

  왜 담배가 몸에 해로운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피워대는지 아십니까? 계속해서

밥만 먹고 변을 보지 않으면 그 사람을 변비증 환자라 하지요. 그런데 계속 지식만

얻고 망각을 모르는 사람을 두고는 변비증 환자라 하지 않고 오히려 '유식하다',

'기억력이 좋다'고 합니다. 도가에서 볼 때는 이또한 병자입니다. 이렇듯 앎을

저축시킬 뿐, 망각의 통로로 배설하지 못하는 현대인들은 자신도 모르게

수소양삼초경으로 들어가는 담배같은 것을 피우게 되지요. 그것은 변비증 환자가

자기가 먹은 음식에 비하여 아주 조금 변을 보는 것이나 같지요. 바로 약물의 힘을

빌어서 삼미에 빠지는 것입니다.

  육경 중에도 음이 붙은 것은 대체로 취하는 성질이 많습니다. 먹기만 하고 배설할

줄 모르는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불행이 싫으니 태음경락만 발달되었으면

좋겠어. 양명경락(태음경의 반대개념)은 없으면 좋겠어", "나는 그냥 만나기만

하면 좋겠어, 이별은 싫어!", "난 무엇이든 알고만 싶어, 모르기는 싫어, 기억력이

남들보다 월등하면 좋겠어!"

  바로 이런 사람들이 바보지요. 마음의 상대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지식은 얻어서 쓰고 나면 버리세요. 헤어짐에는 고통이 따른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나에게만은 이별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이나 욕심은 무상(일정하게 고정되지 않음)합니다. 그래서 석가께서는

제행무상이라 하시며 모든 것은 항상된 것이 없다고 갈파하셨던 것입니다. 노처녀는

신랑감을 얻고자 갈망하다가, 되지 않으면 그 구하고자 하는 욕심(소음욕)이 빵,

우유, 아이스크림, 커피, 과일을 먹어치우는(태음욕) 쪽으로 전변되기 쉽습니다.

노처녀가 곧잘 살이 찌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또한 지식욕이나 권력욕,

명예욕을 가진 사람이 나이가 어느 정도 들어 어느날 전혀 엉뚱하게 색을 밝히는

경우가 많습니다(궐음욕이 소음욕으로 바뀌었다고 해도 될런지...) 이상의

여러 욕심들은 표현만 다르게 되었을 뿐 근본은 다 하나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가 가진 욕망을 스스로 잘 알지 못할 뿐더러 무의식 중에

감추며 살아 갑니다.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저는요. 여자만 보면 지레

몸이 움츠러드는 사람입니다" "저는 학문 빼면 쓰러지는 사람입니다" 그로부터 10년

후...(오운육기를 보면 어쩔 수 없이 12년 내에는 변하게 됩니다. 그래서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을 하지요.

짧은 주기로는 6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선생! 여자맛이 어이 이리 좋소. 거참!

신통하지..." 하다가 얼마후에는 "순수이성이고, 비판이고, 칸트, 헤겔이 다

무슨 소용입니까" 하더니, 그로부터 10년 후... "저는 이 세상을 유토피아로 만들

자신이 있습니다. 저에게 한표를..." 아 글쎄 권력자가 되어 있습니다. 웃기는

이야기지요. 인간이란 이렇게 가변성의 동물입니다. 그로부터 또 10년 후...

"세상 사는 재미란 그런 게 아니야 그저 돈 모으는 재미가 최고지..."  --은행,

xx은행... 아침 일찍부터 그저 은행을 들락거리며 돈이란 돈은 모두 통장에

저축하기가 바쁩니다. 이게 인간이 가진 대표적인 욕망의 변형이올시다.

  어느 뚱뚱한 친구 하나는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저는 도무지 욕망이 불만을

수반한다는 말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저 먹을 것만 있으면 아무 바램이

없어요. 저는 또 생전 화를 내 본 적이 없습니다. 욕망이 불만을 수반한다는 따위의

말씀은 화 잘내는 저 사람에게 나 하세요" 그런데 이 뚱뚱한 친구가 맛있게 먹는

음식을 한 번 빼앗아 보세요. 그 누구보다도 격분하여 화를 냅니다.

  "저는요. 성질이 조금 급하긴 해도 절대로 욕망은 없습니다"라고 이야기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인간은 미묘한 동물이므로 식욕이나 색욕이 없다 하여도

자존심은 있기 마련입니다. 이 사람에게 자기가 연구한 학문체계를 한 번 부정해

보세요. 혹은 그 사람의 종교관을 부정해 보세요. 천벌 받을 놈이라고 밤을 새워

욕을 하고도 분을 못 풀 것입니다. 아니면 기도를 합니다. "주여! 저 불쌍한 사람을

용서하세요..." 말로만 용서지, 속에서 끓는 화를 억지로 눌러 두고 있는 거지요.

이게 바로 위선입니다. 우리 마음 속 저 깊은 곳에 자리한 종교적 Ego, 정치적 망상,

... 이런 것들까지 이해해야 하므로 상상할 수 없으리만큼 깨어있지 않으면 마음의

무상성, 상대성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론적으로는 쉽지만 실제로는 참으로

어렵지요. 여러분들도 지금 웃고 있지만, 그것은 여러분들 마음 속의 어떠한

위선을 감추기 위한 속임수로서의 웃음인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자! 그러면 이 심포와 삼초, 비와위, 간과 담, 심장과 소장, 폐와 대장,

신과 방광이 갖고 있는 일반적인 감정적 측면이 무엇인가를 고찰해 보기로 합시다.

 

  (식정, 식정의 육경적 관점, 악, 악의 6경적 관점의 순)

   식  심포  불식  삼초

   의  비  실망 좌절  위

   희  간  노  담

   애  심  악  소장

   (쾌)락  폐  애  대장

   욕  신  공  방광

   음  긍정  양  부정

  위에 있는 이 도표는 외우면 안 됩니다. 이것은 마음의 전체성을 설명하기 위해

도입한 것입니다. 우선은 위 도표를 개의치 말고 제 이야길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주인공이 되어 제 이야기에 출연해 주시기 바랍니다.

  같은 과 학생하고 자주 만나면 헛 소문이 떠도니, 어느 명문대학 애들과 미팅을

하고자 어울린 한의대 여학생 한 무리가 있다고 하는 데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주:이 이야기는 마음의 전체성과 미묘한 심리변화, 욕망 등을

포착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꾸민 --강사 금오가 지어낸-- 것일 뿐입니다).

  남학생 열 다섯명, 여학생 열 다섯명이 다방에서 만났습니다. 서로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눈은 다소곳이 내리깔고는 얌전한 모습들을 하고 있지만 실상은 이미

다 훑어봤습니다. 그런데 유수한 명문 대학생이라 해서 기대가 컸었는데 막상 보니

실망이 커요. 15명 모두 한결같이 마음에 들질 않아요. "오늘 실망이다. 얘!"

"대강 놀다가지 뭐" 고개 푹 숙이고 수줍어하는 척 하면서 속으로는 온갖 생각을 다

하고 있습니다. 그 사이 파트너가 정해졌습니다. "저는 경상도 안동의 양반으로서...

미래에는 어쩌고..." "저는 술도 안 먹고...  담배도 못하고..." 대답은 "네.

네..." 하면서도 속으론 "남자 자식이 술 담배도 않고 무슨 재미로 사냐? 웃기고

있네" 합니다. 기분이 나지 않으니 차 맛도 없고, 그저 심드렁하니 돌아오는 길에

굳이 묻지도 않은 하숙집 전화번호까지 손에 쥐어 줍니다. 다음날 친구들과

어울려 종로에 나갔는데 어디서 뛸듯이 반가운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하는

인삿말이 들리고, 그 지겨웠던 어제의 파트너가 등장을 합니다. "여기 어쩐

일이십니까?" "실례지만 누구신데요?" "예에? 어... 어제 미팅에서 만났던..."

"전 기억이 안나는데요?" (기억이 안나기는 그냥 모르는 체 무시하는 거지)

  이런 상황은 저(금오)와 여러분 사이에서도 종종 생깁니다. 밖에서 우연히 대폿집

같은 데에서 만났을 때 "안녕하십니까? 금까마귀 선생님!" 하면 "저는 모르겠는데요"

합니다. "제가 선생님 강의를 들어서 선생님을 아는데요..." "글쎄. 전 잘

모르겠군요"라고 대답합니다(사실 여러분이 제 무엇을 안다는 겁니까?) 자!

이쯤 되면, 여러분 심경에 어떤 생각이 들어가게 됩니까? 금새 기분이 틀어지지요.

안다는 사실이 가진 쾌락을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 자네. 기억하지.

강의때마다 맨 앞에 앉아서 파편(침) 많이 맞았지"라고 말하면 자기를 내가 알고

있다는 그 단순한 사실 하나로 마음이 감동으로 물결칩니다. 안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건 우리 심중의 작은 감정 하나에 불과합니다. '식정'이라고

하지요(주의를 기울여서 강의를 들어야 합니다). 자! 한글자(*을과 지로 합성된

글자)를 써볼까요!

  (안다는 것은 위의 글자 입니다) 여러분! 이게 무슨 자입니까?

(독자 여러분도 알아 맞춰 보세요). '을'자, '지'자? ... 무슨 자? ...(대답이 가지가

입니다). 이때 한 친구가 말하기를 "모르겠는데요" 예! "모르겠는데요"가 정답입니다.

이런 한문은 옥편에 없습니다. 제가 처음 써 본 글자이니까요. 그런데 여러분은

모른다고 말하기는 싫고, 모른다고 하면 왠지 수치스럽고 해서 자꾸 답을 주워

섬기려 합니다. 이 마음은 어디서 나온 것입니까? 그 마음은 여러분들이 집착하는

'앎'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아까 중단되었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모르겠노라고 그럴듯하게 시치미를 떼자,

당황해 하던 그 남학생은 고개를 푹 숙이고, 청바지에 손을 깊이 넣고는 자신의

매력없음을 한탄하며, 어깨까지 축 늘어뜨리고 힘없이 걸어 갑니다. 그 순간

여학생의 가슴이 찡하게 아파왔어요. "내가 순진한 남자를 너무 희롱했나봐" 이번엔

그의 장점이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여보세요. 돌석씨"하고 불렀어요. "예?

예!" 이 친구가 되돌아 봅니다. "아이-- 미안해요. 여자가 처음부터 아는 척 할 수

있나요?" 모성애가 발동을 했는지 남자 사기를 돋워 주는 사이 두 사람은 조금 아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이 안다는 사실, 이것은 참으로 미묘하고도 다양한 감정을

연출시킵니다.

  코미디언이 "지금부터 지리공부를 시작하겠습니다. 인도의 수도인 런던에서

어쩌고 저쩌고..." 하면 사람들은 와-- 하고 웃습니다. 청중들이 왜 웃습니까?

서너살 된 애들은 웃지 않는데... 인도의 수도가 런던이 아님을 아는 사람들의

'아는체'하는 의식을 역 이용하는 사람이 바로 개그맨 부류의 직업인 입니다.

  제가 어느 대학교 강의 첫시간에, 바지를 양말에 집어넣고 Y사쓰를 바지 밖으로

빠져나오게 해서 입고 들어갔습니다. 학생들이 웃느라 정신이 없더군요. 웃든

말든 저는 계속 강의를 했습니다. 웃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기들의 보편성,

상식을 초월한 옷차림을 했다는 것이 이유이겠지요. 코미디언들도 마찬가집니다.

실수나 불완전성을 연출하는 거지요. 너무 완벽하면 매력이 없거든요. 아주 잘

생기고, 달변이고, 돈도 잘 쓰고 하면 여자들이 좋아하지를 않습니다. 머리칼이

좀 부수수하거나, 눈꼽이 끼었다거나, 이 사이에 고춧가루가 하나쯤 끼어 있어야지,

몸에서 향수 내음이 나고 온통 유명메이커 옷으로 치장을 한 사람은 꺼립니다.

옛날 서양의 왕궁에서는 광대를 두고 있었습니다. 어느 사회나 단체 내에도 웃기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이 반드시 있습니다. 오늘날 왜 그렇게도 많은 수의

개그맨들이 인기를 얻을까요? 어린아이들은 왜 그렇게도 개그맨을 좋아할까요?

어째서 실수하는 사람들을 묘사하는 코미디언이 인기가 좋겠습니까? 이것은 아는

일에 지친 사람들에게 상대적인 것을 배려한 신의 조화입니다. 아는 일 만큼이나

모른다는 것이 중요함을 여러분은 아셔야 합니다.

  어쨌거나 위의 두 사람은 안다, 모른다의 시비를 넘어선 사이가 되었습니다.

여학생이 곰곰히 생각해 보니 자기도 뭐 그리 남다른 데가 있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그래! 저정도 남자면 한 번 교제를 해 봐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어떠한 뜻을 세우게 되면 어떤 차원을 지나게 됩니다. 제가 강의를

한다고 했을 때 여러분들은 들어볼까 말까하고 마음의 갈등을 일으켰을 것입니다.

선배들의 조언도 구해 보고 40일 동안의 투자에 대해 손익계산서 작성도 해

보았을 것입니다. 결정을 내릴때까지 많은 생각을 해보고 이 강좌를 듣기로

결정했을 것입니다.

  여학생 역시 어제까지는 마음이 없다가, "한번 교제를 해 볼까?" 하고 뜻이

서려하자 그 못생기고 밉상이던 상대가 조금씩 달라보이기 시작합니다. '명문대학을

다닐 정도면 공부도 꽤 했을 것이고, 마음 중심도 서 있을거야. 힘없이 돌아서던

모습으로 보아 의외로 순진한 것 같애. 그래 사람이 너무 실리적이어도 곤란해'

아직 연민, 사랑, 그리움 등의 단계는 아니지만 만남의 시작에 해당하는 '뜻'이

일어나는 단계에 이른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보세요. 돌석씨"하고 불렀을 때

반가와서 어쩔 줄 몰라하던 돌석의 모습이 이제는 밉기는커녕 슬며시 흐뭇해지기

시작합니다. 바야흐로 두 사람은 서로의 전공에서부터 시작하여 취미, 인생관까지

서로의 뜻을 이야기 합니다. 그러는 가운데 서로가 조금씩 확인을 하기

시작합니다(벌써 이 단계에서 소유감각이 개입됨을 아셔야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 하나가 이 여학생에게 돌석이에 대해 질문을 합니다.

"얘. 돌석씨란 사람 어때?" "응. 그저 그래" 별 사심없이 말합니다. "나 파트너가

필요한데 내일 하루만 파트너로 하면 안되겠니?" "뭐? 뭐야" 친구의 그 말을 듣는

순간 여자의 마음 속에서 원인모를 거부반응이 일어납니다. 개인적으로는 별

욕심이 없었던 것 같은데 '내가 아는 사람을 네가 알려고 해?' 하는 상황에 이르자

소유욕이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툭 하고 튀어 나왔습니다. "얘. 별 사이도

아니라면서 뭘 그러니?" "얘! 그래도 네가 그럴 수 있니?" 시기 질투를 느끼진

않지만 주기는 아깝고 자기가 갖기는 또 좀 그렇고 한 이 식정의 단계에 벌써

미묘하나마 소유감각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럭저럭 두 사람은 사귀기 시작했습니다. 이젠 각자 자기네 친구들에게 자랑도

하게 됩니다. "야! 난 6년 후면 무위도식해도 또 내가 술먹고 병이 나도 다

고쳐줄꺼고..."  "음악을 좋아하는 것 같으니 레코드 음반을 선물해야겠는데

재즈가 좋을까, 클래식이 좋을까?" 어떻게 서로의 마음을 사로잡을까 친구와

연구도 하게 됩니다.

  결국 베에토벤 Symphony 5번 디스크를 사서 여자에게 선물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선물이 여자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었습니다(상대방에게 정확히 맞는

선물을 한다는 것은 여러 의미와 시사성이 내포된 것입니다). 아주 만족해 하는

여자를 보고 돌석이 말하기를 "말자씨가 기뻐하시니 저도 기쁩니다. 그런 뜻에서

제가 오늘은 disco hall에 가서 한 잔 사겠습니다. 춤이나 한 번 추실까요?"

"숙녀에게 무슨 실례의 말씀이에요? 나는 디스코 출 줄 몰라요" 이렇게 하는 사이에

둘 사이는 점점 깊어갑니다. 이름과 성을 알고 난 뒤에는 '육감(안 이 비 설

신 의)'의 접촉이 시작됩니다. 이게 바로 12인연론입니다. 사람들은 이 여섯

감각기관의 접촉에 의해 인식하고 뜻을 세우게 됩니다. 결혼 동기를 예로

들어보면, 얼굴이 예뻐서, 목소리에 반해서, 그 여자의 향수가 어릴 적 어머니

분냄새 같아 마음이 편안해져서...이렇듯 접촉에는 뜻이 따르게 되고, 뜻이

생기면 갈등을 하다가 좌절감 또는 성취감을 느끼게 됩니다. 뜻에 뒤따르는

상대개념으로, 뜻을 이룬 성취감을 비주사, 비주의로 본다면, 뜻을 이루지 못한

실망감 좌절감은 위가 주한다고 할 수 있겠지요(육경적으로 이해하셔야 됩니다)

  그럭 저럭 정이 깊어져 뻐드렁니도 늠름해 보이고 빈대코도 화통해 보이게 되자 그

남학생을 생각함에 가슴 울렁거리는 즐거움이 동반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일전에 돌석이를 파트너로 빌려 달라던 여자가 돌석이와

어딜 놀러갔다 왔다고 자랑을 합니다. 격분한 말자는 당장에 돌석을 만나러

갔습니다. "아니? 이럴 수가 있어요?"  "어! 말자씨 모르셨군요. 그 친구(말자친구)가

말자씨 허락을 얻었노라고 하도 간청을 해서..."  "그런 적 없어요" 화가 난

말자를 바라 보며 돌석은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짓습니다. 돌석은 빙그레 미소하며

"말자씨에게 그런 성격이 있는 줄 몰랐는데요!"  "뭐예요? 화난 사람 약올리는

거예요?"  "아-- 아닙니다. 성낸 말자씨 얼굴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사실은, 그 날

저는 나갔다가 제 친구를 소개 해주고 바로 돌아턛습니다. 말자씨를 두고 제가

어찌..." 이 말을 듣고 말자의 마음은 봄눈 녹듯 풀렸습니다.

  이 상황이 세 번째 단계인 '희'와 '노'. 즉 기쁨과 슬픔의 단계입니다. 이때의

분노는 아직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지요. 다만 이 날의 일을 계기로 서로의

소유감각이 좀 더 짙어졌을 뿐. 이날 이후로 두 사람은 손목과 팔짱을 넘어섰습니다.

손목 -> 팔짱 -> 어깨 -> 허리로 손을 두는 위치가 바뀌어갔습니다.

  "말자씨 우리 어디 여행이나 한 번 가실까요?" 이런 제의가 자연스러워지던

어느 날 두 사람은 1박 2일 코스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무슨 놈의 차가

그리도 복잡한 지 말자 히프를 이 놈도 툭 건드리고 저 놈도 툭 건드리는데,

보면서도 말리지 못하는 돌석은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미칠 지경이었어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돌석은 말자를 다그칩니다. "아니! 여자가 그렇게 둔해서

어떻게 해?"  "난 자기하고 얘기하느라 몰랐어" 그래도 화를 진정치 못한 돌석은

"말자는 내가 얼마나 속을 태웠는지 모를거야!" 말자는 '드디어 돌석씨가 나에

대한 사랑에 빠졌구나' 전에는 바닷가에 가면 생선회 생각밖에 안나더니 이젠

상대방이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이 때쯤이면 자기 파트너가

지나가는 남자나 여자와 눈만 마주쳐도 속에서 화가 치밉니다. 바야흐로 두 사람은

죽고 못 사는 사이가 됩니다(도가에서는 점차 위험해 진다고 하지요). 만나기만

하면 으슥하고 어두은 공원 구석을 찾게 되고, 남들이 종로 2가를 팔짱만 끼고 가도

욕하던 사람들이 허리를 껴안고 몸의 거의 절반을 밀착하고 걸어가는 파렴치한이

됩니다.

  바로 '애'와 '악'의 단계에 이른 것입니다. 이젠 하루만 못 봐도 견딜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함께 걷던 오솔길, 노을이 붉게 물든 바닷가, 그가 들려주던 시,

이 모든 것들이 알알이 추억으로 아로 새겨지기 시작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자신의

소유인 양 생각하고 있던 어느날, 사건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약속 장소에 말자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었어요. 당황한 돌석은 어쩔 줄 몰라합니다. "약속장소가

틀렸나?"  "아닌데"  30분, 1시간, 2시간이 지나고...  그런데 저만치서 말자 동생이

헐레벌떡 달려옵니다. "언니가...흑흑...언니가 백혈병으로 --종합병원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어요" 이젠 눈물이 등장할 차례가 되었습니다. 애간장을 끊는

애절함. 이 애절함은 어디서 나온 것입니까? 그것은 쾌락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쾌락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애와 악의 중간에서 일어나는 부작용이올시다.

  그런데 일이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죽지 않고) 더 진전이 되어 서로 결혼을 하는,

즉 바로 욕망의 단계입니다. 결국, 이 지상세계는 곧 욕망의 세계입니다. 불교의

삼세론에 보면 욕계 위에 색계, 색계위에 무색계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곧잘 자기

소유를 강조합니다. 내 아내, 내 남편, 내 자식...어떻게 내 아들이 될 수

있습니까? 그저 부모의 몸을 잠시 빌어 태어났을 뿐인데 어떻게 부모의 소유가

될 수 있습니까? 죽으면 한 줌의 흙도 못 되는 이 장래의 시체를 누구 것이라고

소유를 밝히는 것은 우스운 일입니다. 옛날 일곱 현녀가 숲을 거닐다가 한 구의

시체를 발견했는데 한 여자가 "시체는 여기 있는데 주인은 어디로 갔는고?"

이 말에 일곱 사람은 일제히 깨달음을 얻었다고 합니다.

  아무튼 앞의 두 사람과 같이 애절함과 슬픔이 지대하다 보면 폐기가 되고, 또한

기가 소멸되어 중병이 생기게 되고 더불어 공포가 수반됩니다. 그래서 욕망과

공포는 상대적입니다. 배우자에 대한 욕망이 너무 크게 되면 의처증과 의부증이

생기게 되어 구타와 구속의 공포를 초래하게 되고, 소유욕이 강한 사람일수록

집 주위를 삼엄하게 경비합니다. 이런 것의 근본이 바로 공포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참고로 정리를 해 보면 마음이 움직이는 앎의 성정은

심포경에 해당하고, 모른다고 하는 마음의 움직임은 삼초경에 해당이 됩니다.

어떤 일에 뜻을 가짐의 심적 상황은 비경, 그 뜻의 좌절은 위경, 기쁨의 마음은

간경, 분노는 담경, 사랑의 감정은 심경, 싫어하고 꺼리고 경계하는 것은 소장경,

이렇게 설명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각론에 가면 상세히 다룹니다. 그리고

왜 이런 식으로 장황히 설명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이 책을 읽어가면서

차차 이해하시게 될 것입니다.

  처음엔 미미하게 얼굴을 익힌 정도에서, 뜻을 가졌다가, 차차 서로 즐기며

기뻐하다가, 사랑하게 되고, 그 다음엔 아주 즐김을 탐(쾌락)하다가, 급기야 욕심을

내게 되는 여섯 단계의 마음 유동의 '무상성'을 깊이 공감하면 굳이 장부와

결부시키지 않아도 충분히 마음의 변화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오늘 예로 들어

드린 이 이야기는 앞으로 여러분이 어떤 사람과 어떠한 관계에 있을 때 스스로

잘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길잡이가 될 것입니다. 그때 그때 상황이나 표현형식은

다 달라도 그것들은 이 여섯 단계의 마음 변화 속에 다 포함이 될 것입니다.

옆집 처녀에게 연모의 정을 품고 있는데 오느날 그 여자가 시집을 갔다는 말을 듣고

가슴이 아파 며칠씩 술을 마신다거나, 오드리헵번을 열렬히 사모하여 방안에

그 여자 사진을 붙여 놓았다가, 다른 영화에서 어느 남자 배우와의 키스신을

보고는 그 여자의 사진을 뜯어내며 이틀밤을 울었던 저의 경우, 그저 이미지만을

대상으로 했음에도 이렇게 질투가 동하는 법입니다. 하물며 자기 자신이 주인공인

이 현실에서야 말할 나위가 없겠지요.

  감정의 소용돌이가 일어나면 그것이 일게 된 배경을 찾아 보세요. 애초에 내가

이 일을 접하여 알지 못했더라면 어떤 결과가 생기게 되었을까 하는 의문을 갖고

원점으로 돌아가 보세요. 시중에 유행하는 T M명상술의 첫 수련과정이 어떤 생각의

처음을 관하라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도로 향하자고 하는 것은 식정, 즉

소위 안다, 모른다 하는 식정에서부터 욕망과 공포에 이르기까지를 모두

관찰하고자 하는데 그 뜻이 있는 것입니다. 수행이 잘 된 사람일수록 욕망과 공포가

없어 얼굴이 맑지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욕계이므로 질병이 많이 생깁니다. 공포로 인해

몸이 냉해지고, 부질없는 시기, 질투로 인해 담에 결석이 생기고, 쓸데없는

의심, 생각이 너무 많아 비가 약해지고 소화기능이 약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현상은 유심적인 부분과 밀접하게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강의를 그저 웃음으로 넘기지 말고 전체적으로 깊이 살펴보시면 여러분들

스스로 그 주인공들과 조금도 다른 사람이 아님을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나 역시도 상정에 매여 있구나! 나 역시도 견물생심인 걸 보니 내게도 도둑놈의

기질이 있구나! 아, 내가 연애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은 나 역시도 배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구나! 왜? 여러분들 몸 속의 경락이 모두 그것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태까지 사용하지 못한 경락을 없는 것으로 알고 '나는 그렇지 않다'

하며 스스로 예외의 존재인양 착각하지 마십시오. 깊이 느끼고 알아서 인정하게

되면 상정, 도성, 연애...등 모든 것으로 부터 자유스러워질 수 있습니다.


@[(3)@]

  주역은 인간사이므로 주역팔괘를 공부하다 보면 인간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에

대한 보이지 않는 불문율을 공부하게 됩니다. 인간이 대체적으로 음과 양으로

분류된다고 하더라도 남편과 아내의 경우와, 남편과 시어머니, 아내와 시아버지

사이는 아주 다른 것입니다. 특히 대가족일 때는 그 집안 사람 사이의 예절, 혹은

불문율이 얼마나 복잡해 지겠습니까. 소음군화인 사위와 태양한수인 며느리는 다른

혈통에서 들어왔으므로 그 집안 내의 엄청난 변수로 작용하게 됩니다(그래서

사위나 며느리는 잘 맞아 들여야 한다는 것이지요). 천지가 있는데 해와 달이

중간에서 온갖 조화를 다 부림과 같지요. 태극기의 천지일월 4괘도 인간관계와

꼭 같이 비유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며느리 한 사람을 중심으로 볼 때에도 며느리와

아들, 며느리와 시누이, 며느리와 시아버지... 등 무수한 관계가 있는데 가족구성원

서로 서로의 관계는 얼마나 복잡하고 또 경우가 많겠습니까. 그렇지만 이러한 관계!

이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면 불행하게 됩니다. 이 관계의 기초훈련을 시켜주는 것이

바로 주역입니다.

  만두나 찐빵을 손으로 눌러보면 그 알속이 약한 부분으로 터져 나오듯이 우리

인체내의 12장부 중 하나만 이상이 생겨도 몸 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부인이

아프다고 합니다. 그러면 남편이 먼저 우울해집니다. 남편이 우울하니 남편의

어머니가 또 우울해집니다. 다시 아버지도 우울해집니다. 한편 부인에게 병이

생긴 원인도 남편으로 인해서 혹은 시어머니, 시누이, 시아버지 등 다양해 집니다.

이렇듯 복잡하고 다양한 것입니다. 부인이 병이 났다는 사실 하나로부터 파생되는

일이 이러한데 복잡다단한 인간사에서야 오죽하겠습니까.

  간장병의 원인이 꼭 쓸개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요. 다만 쓸개로부터 오기 쉽다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장병! 목에 병이 생겼으면 수생목이니까 신장만

보하면 되겠군' 이런 식으로 착각하지 마세요. 인체는 평등한 유기체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디서, 어떤 원인으로 병이 왔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오행이론이나 지금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육기이론도

중요하겠으나 결국은 여러분이 깨어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2경락 중 보와 사를 선택할 수 있는 경우는 24이지요. 이 중 하나를 선택하는

확률은 ^3456,12,145,34,3456,1^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환자에게 적합한 하나의 방법

택하기까지 여러분이 깨어 있지 않고는 힘들다는 말입니다. 몇 가지 공식만을 막연하

외워서 쓰는 방법과는 아주 다릅니다. 확률이 ^3456,12,145,34,3456,1^이므로 저 역시

끊임없이 토론과 그룹미팅을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에게 이런 상황에서 반드시

필요하고 요구되는 것은 '깨어있음'입니다. 우주가 그러하듯 순간순간의 변화가 극심

우리 인체의 병변을 여러분이 이해하려면 반드시 깨어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간장병이 발병했을 때 쓸개, 소장, 심장 등 12가지 상황과 치법상의 복합적인

상황을 보아야 합니다.

  "방약합편" 중통의 6번 령선제통원을 보면 "치지절... "'습에 풍한이 겹쳐 습열이

나는데 이것이 지절사이로 유주할 때 일어나는 통증을 다스린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풍은 궐음(궐음풍목), 한은 태양(태양한수), 습은 태음이므로 위의 병은

3개의 경이 혼합된 것이지요. 색으로 볼 때 빨강, 파랑만 있는 것이 아니고

보라색도 있다는 것이지요. 또 풍습이 합쳐질 수도 있고, 한열이 서로 교차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TV에서 과학자와 의사가 대담을 하는 데 한약이나 생약으로

치병하지 말고 모든 것을 과학으로 해결하라더군요. 과학은 분류이고 이론

아닙니까? 병을 치료 하는데 있어서 이론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여러분들은

이론과 지식으로부터 자유로와야 합니다. 한 순간이라도 깨어 있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질병이 나타날 수 있는 원리와 실제로 질병이 서로 연관되어 나타남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다시 팔괘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주역팔괘를 인간세계에 대비시켜

운동성이 없는 평면적인 관찰을 했습니다. 2차원적 평면관계로 보았지요. 2차원에

공간적 요소를 첨가하면 3차원이 되고, 공간에 시간(운동성)을 부여하면 4차원이

되지요. 운동성 차원인 4차원까지는 못본다 할지라도 우리 인체를 뒤돌아 살펴보면

항상 천과 지로 나뉘어집니다. "황제내경" 오운육기 편 첫머리에 보면 '좌우는

음양지도요, 천지는 만물의 상하이다. 수화는 음양의 상장이고, 금목은 생성의

시종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시종, 상징, 상하, 좌우, 표리 등이

음양입니다. 이렇게 음양을 나눈 것은 음양자체를 일정한 기준으로 나눈 것이

아니라 그냥 전체적으로 나눈 것입니다.

  "내경"오운육기 편에 기백이 말하기를 '그러하오나 얼핏 보아서 다른 두 개의

법칙을 합하여 생각하면 거기엔 일정한 규칙이 있습니다. 대체로 음양을 두 가지로

분류하는데 이것을 넓혀서 만가지로 분류한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리하여 오운육기의 음양이치가 상식적인 음양오운의 법칙에서

벗어나 있는 것처럼 보여도 그것은 그것대로 좋은 것입니다. 요컨대 병은

우주만물의 현상이며 이 현상이란 어떠한 것에 대한 상대적인 부조화이므로 어떤

것이 상대인가를 추측할 수 있으면 되는 것 아닐까요? 그러므로 제가 설명하는

오운육기 법칙이 오행의 법칙에서 벗어나 있다고 하더라도 여러분들은 일단

의심하지 말아 주십시오. 이렇게 설명하는 이것대로 좋은 것이니까요.

  '좌간우폐'라는 말이 있습니다. 간은 인체의 오른쪽에 있는데 왜 좌측이라고

하는가? 장부론으로 볼때는 우간이지만 좌우에 각기 대표적으로 들어가는 것이

혈과 기론이지요. 바로 우기좌혈론에서 좌간우폐론이 나온 것입니다. 좌간우폐론은

경락학적으로 이해해야지 장부가 붙은 위치나 모양으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유심적으로 본 팔괘유추를 보십시오. 오른쪽은 기, 왼쪽은 혈이라고 씌어

있습니다. 우리는 기와 혈에 대한 이야기를 참으로 많이 합니다. 기는 양, 혈은

음입니다. 또 한방에서는 정 기 신 혈이란 말이 많이 나오는데 이 강의의 기본은

'한방에 나오는 어떤 언어라도 그것은 인간이 일으키고 있는 생각이다'라는

전체조건하에 진행이 되기 때문에 그 의미가 다소 생소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인체는 전체가 기와 혈로 뭉쳐져 있는데 보편적으로 여성은 혈이 실하다고

보고 남성은 기가 실하다고 봅니다. 물론 어떤 남성은 혈이 실하고 기가 약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생각을 많이 일으키면 기가 실해지고 어떠한 생각을

많이 일으키면 혈이 실해지겠습니까? 취하는 쪽은 음적이니까 혈이 실하다 할 수

있고, 주는 쪽은 양적이므로 기가 실하게 되겠지요. 남자들은 주길 좋아하고

여자는 받기를 좋아합니다. 이것이 음양의 조화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Egoist입니다. 이 Ego에는 '나' '너'라는 생각이 숨어 있습니다.

그러다가 '우리'가 되지요. '나'가 '우리'가 된 것은 Ego의 확대일 뿐이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들 관념의 최고의 분리의식입니다.

나라고 하는 상태, 나를 위주로 생각하는 사람은 음적인 사람이고, 남을 위주로

생각하는 사람은 양적인 사람입니다. 남녀가 함께 살다보면 느낄 수 있습니다만

남자는 여자의 속성을 이해할 수 없고 여자는 남자의 속성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남녀를 공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성인이나 도인이지요.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 밤을 새워 바둑을 두는 남자들을 여자들은 이해할 수 없지요.

여자들은 돈이 생긴다면 어떤 일이고 다하지만 실리가 없으면 안합니다. 그런데

남녀가 데이트를 할 때, 남자는 주위를 두리번 거리지만 한 번 사랑에 빠진 여자는

남자에게 기댄 채 도취가 되어서 누가 보든지 말든지 아예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이것이 지구상의 음양이 만나게 되는 아프지 않은 형벌이자 사랑이 일어나는

동기입니다. 이 음양의 조화로, 그 힘에 의해서 각각 서로 다른 에너지가 만나서

그 무언가 모르는 세계에 도달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을 성적으로는 오르가즘, 또는

무아라고 합니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깨달음이란 무아의 오르가즘과 동일한

것입니다.

  예수님께 율법학자가 와서 하는 말이 "형이 죽으면 형의 부인을 동생이 취처하고

그 동생이 죽으면 또 밑의 동생이 물려받고 해서 한 여자를 칠형제가 물려받았을 때,

죽어 하늘나라에 가면 어느 남자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하고 교활한 함정이

들어있는 질문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에는 결혼이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율법학자는 결혼이 없는 세상은 생각지 않고 오직 누구의 마누라가

되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자기 남편 이외의 섬김을 간음이라고 설법했던 예수님

말씀에 꼬투리를 잡으려는 이 교활함. 이것은 깨달음의 세계를 몰라서 그렇습니다.

지상세계와 비교될 수 없고, 분리되어 있지 않으며, 나도 아니고 너도 아닌

어떤 세계, 그것이 바로 도인 것입니다.

  인간이 마음 속에 가진 '나', '너'라고 하는 상. 이것은 아주 고질적인 상입니다.

'나', '우리'를 너무 강조하면 음적인 것이 발달되고, 혈이 발달된다는 얘깁니다.

그러므로 좌측은 '나'를 많이 강조한 사람이고, 우측은 '너'를 많이 강조한

사람입니다. 이런 식의 유심적인 결부는 잘 생각해보면 근거가 있는 이야기임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옛날 대가족제도에선 자식교육을 할아버지, 할머니가 시켰습니다. 이 교육은

전적으로 자유교육입니다. 즉 가만히 지켜보는 교육이지요. 그런데 요즘 부모들의

자식교육은 부모의 야심을 주입시키는 교육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인생을

관조할 수 있는 지혜, 이것이 없으면 국가도 흥할 수 없고 학문도 흥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연세 많은 분들의 한방 경험을 고리타분하다고 무시를

하고 배척을 합니다. 실험을 해서 화학적인 성분 분설을 해야 옳고 바른 줄 알고

있습니다. 노인의 지혜, 단순하게 보는 지혜를 터득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오 미 신 유 술 해는 좌측에 해당하여 여름에서 겨울까지 가는 음이 되고,

자 축 인 묘 진 사는 양이 됩니다. 오 미 신 유 술 해는 후천, 자 축 인 묘 진

사는 선천이라고 합니다. 지금 시각이 12시 5분 전이라면, 선천에서 후천으로

바뀌려는 때입니다. 그러므로 수소음심경의 화기가 강하기 때문에 옛날 인류

5천년의 변화가 지금은 한 달이면 가능한 것도 있다고 합니다.

  앞에서 건괘는 독맥, 곤괘는 임맥에 해당한다고 말씀 드렸는데 이것은 '유심적인

한 생각이 경락을 이루고 있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는 좋은 증거이므로 이렇게

따로 장을 만들어서 말씁드리는 것입니다. 독맥과 임맥은 우리가 지닌 경락의

유심적인 통로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도구라는 거지요. 남자의 임맥은

회음에서 출발 하는데 반해 여자들은 거꾸로라고 합니다. 독맥은 천이고 임맥은

지기를 감독한다고 하는데 얼굴로 비유를 해봅시다. 상하운동을 하는 것으로

눈과 입이 있는데 눈은 윗눈까풀이 움직이고 입은 아래턱이 움직이지요. 또 얼굴의

구멍 중 2개는 들어가고 2개는 밖으로 나와 있지요. 밖으로 나온 코와 귀는

양이고 들어간 눈과 입은 음입니다.

  호상이라거나 이목구비가 수려하다는 것은 얼굴의 조화가 좋은 것을 말합니다.

눈은 아주 작은데 코가 갈구리같은 메부리코라면 성질이 급한 사람이 틀림없으며

남 흠잡는데 능한 사람입니다. 한편 눈은 쌍꺼풀지고 코가 납작하면 남녀

불문하고 색을 밝히는 사람입니다. 어린애가 사람을 보고 참 예쁘다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린애가 어떻게 예쁜걸 알까요? 그건 음양의 조화에 대한 직감입니다.

가장 쉬운 관상법은 입술을 보는 것입니다. 윗 입술이 천(독맥)이고 아랫 입술은

지(임맥)입니다. 그런데 '임'자는 일임한다, 신임한다, 믿고 맡긴다는 뜻이고 여기에

계집 녀 자를 추가하면 회임한다, 임신한다, 품는다는 말이 됩니다. 한편 '독'자는

앞에 감(볼) 자를 붙여 "감독한다, 나는 너를 의심한다"는 말이 됩니다. 즉 임맥은

긍정적인 상태, 독맥은 부정적인 상태를 의미하지요. 앞으로는 사람을 대할 때

입술 끝만 보고 이야기를 하세요. 그러면 그 사람의 진의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속이 상해서 "에이 콱 죽어버리고 싶다"고 할 때 윗입술이 아랫입술을 덮은 입모양이

되지요. 즉 하나는 생, 하나는 사에 관한 것입니다. 그러나 만족스러울 때의

표정은 아랫 입술이 윗 입술을 덮으며, "으응" 합니다. 만족과 신뢰로 긍정할 때는

임맥이 작용합니다. 대화 중 말로는 "예예" 하면서 윗 입술이 아랫 입술을 자꾸

덮으면 그 사람은 내 말을 믿지 않고 있는 증거입니다.

  입술이 교차되는 곳은 천지기운이 교차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입술만 보아도

병의 반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남자들(독맥의 성질)에게 감독하고 의심하라 하면

잘 하지만 믿으라면 잘 듣지 않지요. 그러나 여자들(임맥의 성질)은 터무니 없이

잘 믿지요. 임맥과 독맥이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데에 촛점을 맞추십시오.

선천적으로 독맥이 발달된 사람은 감독하는 일을 잘 하므로 작업장 감독관을

시키면 딱 맞습니다. 듬직하게 생긴 사람이 아랫 입술이 나와 있다면 그 사람과는

함께 일을 해도 무방합니다. 그런데 아랫 입술이 너무 올라간 사람은 터무니

없이 믿으므로 도둑놈도 믿고, 강도도 믿고 따르는 어리석은 신심의 소유자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여러분이 경락의 개념을 깨닫거나 여러분의 마음을 관찰할 수 있게

하는 좋은 예입니다. 나머지 여섯 경락도 모두 이런 식으로 관찰할 수 있습니다.

그저 예민하게 관찰하지 못해서 모를 따름이지요. 그러므로 여러분은 모든 사물의

본심을 통찰해야 합니다.

  날으는 새의 예를 들어보면, 독수리의 부리는 윗부리가 아랫부리를 덮고

있습니다. 즉 독맥이 발달되어 공격적이고, 의심이 많고, 경계심, 복수심이

강합니다. 반면에 펠리칸과 같은 새는 아래턱이 발달되어 있어서 아래부리 속에

새끼를 넣고 다닙니다. 선천적으로 임맥이 발달된 게지요. 저하고 공부를 잘하고

나면 새 관상, 토끼 관상, 물고기 관상까지도 볼수가 있지요. '저 물고기를

먹으면 몸이 냉해지겠구나!' 혹은 , '더워지겠구나!' 하는 것을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습니다.

  상어를 보세요. 독맥이 발달되어 있어서 성질이 사납습니다. 경계심, 의심이

많고, 공격적이고 양적이므로 머리쪽이 발달되어 있습니다. 가령 우리가

이 상어고기를 많이 먹는다면 어디가 발달될까요? 독수리의 경우는 머리가 작은

반면 깃털의 발달이 좋으므로, 성질이 나면 상체쪽으로 에너지가 쏠리므로 털이

꼿꼿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명태는 윗턱보다 아랫턱이 훨씬 더 많이 나와

있습니다. 제사에 명태를 쓰는 까닭은 명태의 이미지를 선택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상어와 명태 중 어느 쪽이 알이나 새끼를 많이 낳겠습니까? 물론 아랫턱이

(임맥)이 발달된 명태가 임신에 능하겠지요. 이렇게 임맥과 독맥만 관찰하여도 그

자체의 성품을 반은 간파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한의학도라면... )이런

이야기에 충격을 받으셔야 합니다. 본과 3, 4학년 중에 많은 고민을 해 본 사람은

충격을 받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기 쉽게 아무리 설명을 해도 감사할 줄을

모릅니다.

  건괘는 '군자가 종일 건건하여... ' 군자는 하루종일 기분좋게 누굴 믿으라는

말이 아니고, 종일 근신하고, 경계하여 삼가고, 나를 깍고, 자기를 죽여서

살신성인할 생각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곤괘는 '항상 유순하고 부드럽고... '

무엇이든 받쳐주고 믿으라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부덕과 모덕을 취상해 낸 것이지요.

엄부. 자모의 이 두양친의 조화는 중요합니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자식이

버릇이 없다고 하는데 그것은 일방적으로 임맥의 영향만 받았기 때문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남을 감독하고, 의심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남편이 전에는 일찍

귀가를 했는데 요새는 매일 밤 12시 넘어서 들어오는데 고민이 있어 보이면

"사업이 잘 되지 않아서 그런가? 내가 어떻게 돕지?" 이런 의심을 해 봐야

합니다. 무조건 믿고"당신이 알아서 하세요" 하면 남편은 멀지 않아 지겨움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너무 독맥만 발달되어 의심이 많아도 곤란합니다. 임맥과 독맥이

서로 조화가 맞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임맥과 독맥을 각각 심리적인

상황으로 나눠서 설명하는 강좌는 우리 한방계에 처음 있는 일입니다. 환자가

왔을 때, 그 환자의 아래 윗입술이 평등하면 다른 데에서 원리를 찾지만 만일

그렇지 않으면 독맥과 임맥을 자극시켜주면 됩니다.

  아무리 유명한 한의사를 찾아가도 실제적인 경락과 심리적인 특성을 결부시켜

이야기해주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어떻게 하면 환자의 특성에 맞춰 질병을

치료할 수 있을까 하는 많은 방황과 갈등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한방의 새로운 접근방법을 찾게 될 것입니다. 아시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D대

P교수님과 제가 학교 다닐 때 함게 하숙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분은 히프가 커서

'오리 궁둥이'란 별명을 가졌는데, 밖으로 나가는 것을 싫어해요. 그저 자고

쉬는 것만을 좋아합니다. 이런 분들은 음덕이 있습니다. 인내심이 강하고 주위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줍니다. 반면 머리가 크고 몸통이 작은 사람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합니다. 양적인 사람은 몸에 비해 머리가 크고, 음적인 사람은

몸집에 비해 머리가 작습니다. 독맥과 임맥으로 표현되는 이 두 특성은 기본적인

마음의 어떤 긍정적인 상태와 부정적인 상태를 의미함을 알아야 합니다.

  주역이 경락으로 있음을 일건천, 이태택, 삼리화, 사진뇌, 오손풍, 육감수,

칠간산, 팔곤지, 임맥 독맥의 예로써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방이란 참

오묘한 학문입니다. 환자를 보고 "임맥을 보해야겠군", 혹은 "독맥을 사해야겠어"

하고 이야기하는 것은 장부상태라든가 관형찰색도 했겠지만 그 환자의 성격이

어떻겠구나를 간파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칠정의 부침을 알지 못한다면 이것은

절대로 알 수가 없습니다. 환자가 오면 그 환자의 긍정적인 차원과 부정적인 차원,

자기 위주로 생각하는가 아니면 남을 위주로 생각하는가, 욕심이 많은가, 분노가

많은가를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체내의 경맥이 서로 상대적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상대성이란 곧 우리 마음의 상대성을 일컫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대성을 예민하게 관찰해야 각 경락이 지닌 특징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교육은 거의 주입식 교육이지요. 자신의 알고 있는 바를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는 형식인데 저는 그런 식으로 교육시키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본래

갖고 있는 것을 재확인하고, 확대 해석을 통해서 보다 큰 눈을 뜨고 올바른 길을

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 속의 기쁨과 슬픔, 긍정과 부정, 적극과

소극... 들을 권해야 임맥과 독맥을 깊이 인식할 수 있듯 여러분 마음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갈등의 상태까지, 그 갈등의 작은 부스러기까지 깨달아야 한다는

것을 거듭 강조하는 바입니다. 자신의 마음을 관찰함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지금까지 대체적으로 음양 사상 팔괘 오행의 움직임과 육경을 이야기 했고,

특히 육경의 상관관계를 알기 위해서는 직관을 터득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병이란 엄청나게 다양하고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이므로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황제내경"을 보면, '가까운 것을 빌어 먼 것을 얘기하고, 안을 터득해서

바깥을 안다. 몸 가까운 일을 충분히 장악하고 있으면 신변에서 먼 일까지 반드시

추리할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긍정과 부정은 천지문제이고, 나와 너는

기혈문제이므로 이러한 상태의 에너지를 잘 관찰하면 임맥, 독맥이 갖는 병환까지도

관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 모든 것은 모두 자기 자신을 관찰하는 데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 하는 공부를 자기 관찰없이 남의 이론만 등장

시켜서 하는 자들을 경계하라고 "내경"에도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 뛰어난 학술을

이용하는 자는 점점 번영하고, 경멸하여 돌아보지 않으면 멸망하게 될 것이다. 이

학술의 정도로 가지 않고 억측을 멋대로 하여 엉터리 학술을 논하는 자는 하늘의

벌을 받을 것이다' 라는 경고를 "내경"은 여러 차례하고 있습니다. '사물의

첫머리를 알면 끝도 완전하고 명백하게 제지할 수 있다' 사물의 첫머리란 사물을

볼 때 일어나는 여러분들의 인식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이요 마음입니다. '이러한

정연한 조리를 가미하되 빠진 것 없이 영원히 보존토록 하라' 고 학문에 대한

지침을 주고 있습니다.

  경희 학회지 "의인"에 '동양의학혁명소고'란 제목 하에 한의학의 문제점을

제시해 놓았는데 여러분이 그 내용을 참조해 보시면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 속의 내용을 한 마디 인용해 보면 '건강한 동양의학자라면 "본초강목"에 없는

국내 처음으로 수입된 약초라도 그 성분을 알아낼 수 있어야 된다'고 주장합니다.

여기엔 건강한 동양의학자라는 전제가 붙습니다. 입이 쓰디쓴 담배 골초에서 맛을

보라고 한다면 (감별하라고 한다면) 문제가 있겠지요. 맛을 제대로 본 후에라야

무슨 경락에 입경하겠는가를 알아 낼 수 있겠지요.

  "방약합편"의 구성은, 맨 윗편은 본초에 대한 지식, 상통은 보하는 약, 중통은

화해하는 약, 하통은 사하거나 치는 약으로 되어 있습니다. 가령 행림서원판

182페이지 136번 부자를 보면 부자의 약성, 사경 등을 알 수가 있습니다. 설사약은

설사시키는 약 입니까, 설사를 멎게 하는 약 입니까? 후자지요. 해열제는 열을

식히는 약인데 약성이 덥겠어요? 차겠어요? 이것은 어린아이 같은 질문이지만

육경은 이렇게 쉬운 논리로 추론해 들어갑니다. 두통은 주로 화열에 의한 것이므로

두통약의 성분은 차겠지요? 두통약의 70%정도는 차가운 성분이라는 것이 우리

한방의 추리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두무냉통, 복무열통', '머리는 차가와서

아픈 법이 없고, 배는 뜨거워서 아픈 법이 없다' 이건 치료의 대원칙입니다. 이번엔

이뇨제를 봅시다. 이뇨제는 맛이 어떨까요? 담담하지요. 그러면 왜 이뇨제의 맛이

담담할까요? 이론상 담미는 행기시키고 이한다고 하지요. 목통 택사 차전자 등심 등

일체의 이뇨제는 그 맛이 담담합니다. 그런데 같은 이뇨제라 해도 차전자는 몸이

허한 사람의 몸기운을 깎지 않고 이뇨를 시키고 싶을 때 쓰고, 목통은 성분이

강하기 때문에 좀 건강한 사람에게 쓰는 겁니다. 담미가 행기시키고 이뇨시키는

작용이 있지만 그저 담미 하나로만 외워서는 곤란합니다. 그 담담한 맛중에서도

경중을 가릴 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부자를 먹으면 몸이 더워진다는데 그렇다면 궐음 소음 태음 소양 양명 태양의

육경 중 어디로 들어가겠습니까? 소음 또는 소양으로 들어갑니다. "방약합편"에서

부자의 약성을 보면 (수소음명문삼초야... )이라 설명하고 있습니다. 명문, 삼초는

소양입니다. 이렇게 부자는 소음경과 소양경으로 들어가므로 몸을 덥게 하는 성질을

가진 약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소음경으로도 들고 궐음경으로도 든다면 이건

덥기도 하고 풍기도 있겠구나 하고 추리할 수 있지요. 어떤 약의 약성이 시큼하기도

하고, 짜기도 덥기도 한데다, 또 감미도 있다면 4가지 경락에 들어가겠지요.

신농씨의 혀와 오늘날 건강한 우리의 혀와 다르지 않을텐데 우리 왜 이런 것을

추리하지 못하는가? 그 까닭은 육경과 사상이 기본적으로 이해되지 못한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여러분은 어떤 것은 수태양소장경으로 들어가고, 어떤 것은 수태양과

족태음으로 입경하는 지에 대하여 의문을 가져야 할 것이며, 기와 미와 성이 그

경락의 성질과 어떻게 유사한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약은 약성이

냉한데도 소음경으로 들어간다고 해 놓은 것도 있습니다. 그것은 그 경락을

치료한다는 뜻으로 붙여 놓은 것인데 "본초강목"에도 잘 설명을 못하고 있는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 잘 새겨 들어야 합니다. 소음경으로 들어간다는

말은 소음경락을 치료한다는 말입니다. 즉 해열제나 설사약이라는 말은 똑 같습니다.

  고전의 내용을 풀이하다보면 난해한 부분이 많은데, '의사는 의야라' 의사는

그 뜻을 얻어야지 문자에만 매달리면 참된 공부를 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려면 네 부모형제를 버리고 나를 따르라"고

했고 한편으로는 "네 부모를 하느님같이 공경하라" 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은 이율배반적이라고 비판합니다. 한번은 예수님이 율법학자들과 성전에서

열띤 토론을 하고 있는데  예수님의 어머니가 오니까 "저 여자가 누구냐?"라고

했어요. 그러자 어느 신학자가 예수님을 불효자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은

근시안입니다. 이런 것을 방편설이라고 하는데 여러분들이 방편설을 이해하지 못하면

어떤 상황을 접함에 관할 수 없습니다. 또한 그 때의 상황을 이해하기 전에는

결코 방편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교만은 겸손으로 치고, 너무 열등감에 젖어 있는

사람에겐 자신감을 넣어주는 식으로 상황에 따라 방편을 달리해야 하는데 하나는

섭수하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절복하는 방법입니다. 받아들일 것이 있고, 그렇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실한 건 깎아주고 허한 것은 보해 주는 것입니다. 한 사람은

성질이 급하고 날카로와서 치고 부수는 특징이 있고 또 한 사람은 너무 온후하고

나약해서 남을 살리되 자신을 죽인다면 이 두 사람은 모두 결함이 있는 사람입니다.

'무유정법이 불법이라'澾습니다. 일정한 법이 없음이 깨달은 자의 법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의 법은 단지 불법만으로 제한되지 않고 "황제내경"의 법도 되는

것입니다. 세상사에 일정한 법이란 없습니다. 더운 것은 차게, 찬 것은 덥게, 또는

이열치열도 있습니다. 산에 불이 났는데 오히려 다른 쪽에 불을 지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렇게 일정한 법이 없음을 앎이 바로 깨달은 자의 모습입니다.

태양경이다, 소양경, 혹은 궐음경이다 하는 이미지를 이해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비로소 동의학자라 할 수 있습니다.

  동양의학의 기본철학적 구조는 인생을 유쾌하게 사는 데에 그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유태인의 상술을 보고, "당신은 일하기 위해 먹는 거요. 아니면 먹기

위해 일하는 거요?" 하고 질문을 하면, 유태인들은 이구동성으로 먹기 위해서

일한다고 대답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지 않지요. 식사 중에라도 책이나 서류를

봐야할 때가 있는가 하면, 식사를 마치자 마자 소화도 되기 전에 책상에 앉기도

하고, 마치 쫓기듯이 허겁지겁 식사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유태인은 아무리

바쁘더라도 식사는 유유하게. 한두어시간씩 즐깁니다. 여러분은 먹기 위해

공부하십니까? 공부하기 위해 먹습니까? 공연히 의무감 속에서 공부하지는 마세요.

학문 그 자체가 즐거워서 공부를 해야 합니다. 지금 이 자리엔 학점도 없고, 아무런

권위의식도 없고 시험의 공포도 없습니다. 이렇게 여러분이 자발적으로 찾아온

이 기백은 일단 학문하는 태도에서는 100점입니다. 그만큼 학문하는 태도는

즐거워야 합니다. 세상 고민을 다 짊어진 듯한 의연하지 못한 학문태도는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4)@]

  내가 "음양은 무엇입니까" 하고 물으면 음양이란 "황제내경"에는 어떻게 씌어 있고,

"의학입문"에는 어떻고, 어떤 책에는 어떻고...  지금은 말들이 너무 어려워요. 또

너무 현학적입니다. 어렵게 이야기할 필요가 없는데도 말입니다. 용어의 난해성을

즐기려는 태도, 고답적인 모우션 등은 학자적인 생의 괴로움만을 연출합니다.

고인들의 교수방법에 등장하는 수많은 예와 일화 등은 진리를 단적으로 드러내

주는 재치 넘치는 이야기지요. 사라져 가는 교수방법의 개발은 매우 시급합니다.

동양학이 재미 없는 학문이라고 섣불리 단정해서는 안됩니다. 쉬운 전달 방법을

찾지 않는 가르침은 교사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우선 음양과 사랑에 관한 여러분들의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

단편적이나마 동서양의 견해를 레이 탄나힐 여사의 "성의 역사(Sex in history)"라는

저서를 통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중국편

  중국에서는 음양이 서로 조화를 이룬 상태를 도라고 일컬었다. 도의 개념을

중심으로 발전된 철학이 도교이다. 도교 사상가들은 인위적으로 짜여진 인간사회에

속박되지 않고 자연과 완전한 조화를 이룸으로써 장수와 행복, 심지어 영생까지도

얻을 수 있다고 믿었고 지금도 믿고 있다. 이것을 달성하기 위해서 인간은 각자의

존재 속에서 자연 속의 음양 조화와 같은 조화를 자기속으로 이룩해야 하며

자연에서와 마찬가지로 서로 접촉하고 서로 흡입함으로써 음양의 두 요체를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로 상반되는 두 힘인 음과 양은 여러 자연현상 속에서

볼 수 있다. 달과 겨울은 음이고, 해와 여름은 양이다. 이것을 사람에게 적용하면

여자는 완전한 음이 아니라 '소음'이며 남자 또한 완전한 양이 아니라 '소양'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서방에서는 물론 중국에서도 여러가지 오해가 퍼져 있다. 그것은

다시 말하면 가장 수동적인 여자에게도 양의 요소가 있고 가장 능동적인 남자에게도

음의 요소가 있다는 심리적 측면의 진리를 인식한데서 나온 결론이었다.) 남녀

다같이 이 보조적인 요소가 원래적 요소를 보완하고 강화한다는 생각은 도교와

성에 관한 중국인들의 모든 사고를 발전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인도편

  카마수트라(Kama sutra 인도말로 Kama는 사랑을 뜻하고 Sutra는 경전을 뜻하는 말로

인도의 성에 대한 경전이다)에서 사용된 '사랑'이란 단어는 한숨과 그리움, 요염,

가짜 열정, 또는 오비디우스에서처럼 호색적인 거래를 위한 계산된 책략같은 게

아니었다. 뭔가 그 이상의 거창한 것이었다. 철인 바챠야나(카마수트라를 편찬한

사람이 다른 사람이라도 마찬가지다)는 분명히 오묘한 감정의 뒤얽힘도 인정하긴

했다. 하지만 그는 더 나아가 사랑이란 말 속에서 남녀간의 화학적인 반응을

인식했다. 그 반응이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과 신경을 몽땅 사로잡아 그 밖의 것을

일체 받아들이지 않는 상태를 뜻했다. 그것은 사랑을 할 때는 언제나 일어나는 현상일

뿐만 아니라 사랑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현상이었다. 이 철인은 성교본을

써가는 도중에도 이른바 어떤 규칙이란 게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적용되지 않는다는 걸 여러번 강조했다. 그는 또 아내가 갖추어야 할 조건을

떠나서 남자는 반드시 '사랑받는 여자'와 결혼해야 한다는 걸 지적했다(3장 1절).

카마수트라는 연인들에게 등급을 따지지 말라고 건의하면서도 사랑 자체를 분류하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지 못했다. 하지만 사랑을 만족할 만큼 분류하지는 못했다.

카마수트라에 따르면 사랑에는 4개의 유형이 있었다. 우선 성교만을 목적으로하는

단순한 사랑, 이는 습관이나 약물과 같은것으로 도박군이 도박을 사랑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다음엔 키스 포옹 구강섹스처럼 특정 행위에만 집착하는 사랑이

있다. 다음엔 두 사람이 자석처럼 서로 이끌리는 사랑, 이것은 본능적이고

자발적이며 소유적이다. 마지막으로 상대의 아름다움에 한없이 빨려 들어가는

일방적인 사랑이 있다(2장 1절).


  유럽편

  유럽궁정식 사랑의 대표적인 인물로 길뎀(Guilhem)을 들 수 있는데, 그는

서방기독교권에서 가장 강력한 귀족이었다. 그는 아랍의 영향을 받은 스페인의

연애시와 사랑의 철학에 조예가 깊었다. 그는 관능과 유혹적인 생활에 익숙했기

때문에 그것을 깊이 고민하면서 그 문제에 대한 숙고의 결과를 시로 표현했다.

그는 주장하기를 '사랑은 굴종이 아니라 의기의 고양이요, 더러운 죄악이 아니라

신성한 신비요, 사랑의 선물을 받은 귀부인은 찬양받아야 할 여신'이라고 했다.

몇몇 학자들은 그의 이같은 관점의 변화에서 빈정댄 듯한 편의주의의 낌새를

배제하기는 쉽지 않지만, 어쨌든 마음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믿고 있다.

  성문제에 대한 이런 불확실성은 사회적 정치적 상황이 복합되어 나타난

결과이다. 자주 논란이 되고 있지만 성에 대해 지나치게 강조하는 시기는 풍요를

구가하는 시대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목적을 갖지 못하는 시기임을 역사는 보여주고

있다. 성이 지나치게 중요시되던 때는, 더 이상 정복할 곳이 없어진 국가의

'황금시기'였다. 로마제국 굽타제국 중국의 청대 루이 14세 때의 프랑스 영국의

후기 빅토리아기가 그 예이다. 그런 한가한 시기에 사람들의 관심이 성적인 데로

쏠리게 되면 어떤 이들은 그것이 도덕적인 타락의 징조라고 개탄한다. 많은

사람들은 성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때로는 전부인 양 행동하기도 한다.

그리고 20세기가 되면서, 역사상 최초로 나타난 매스컴의 영향으로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이상에서 우리는 동서양이 가지고 있는 사랑과 음양에 대한 인식을 고찰해

보았습니다. 결코 어려운 문구로 된 심오한 사상이라든가 논리가 아니라 일상적인

생활에서의 습관 풍습 등이 진실을 이해하는데는 오히려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서

여러분들에게 간략히 소개한 것입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평범하고 통속적이랄수도

있는 이런 생활사에서 인생의 진실을 캐기 위해서는 직관의 개발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직관의 개발을 위해서는 예화가 필요합니다.

  여러분들이 학교에서 음양관을 배울 때 굉장히 어렵지요? 상생이 어떻고 상극이

어떻고 하는 것은 순전히 말장난입니다. 그런데 저희들이 개인적으로 선생님을

찾아 공부할 때는 그러질 않았습니다. 약간은 고지식하게 설명하시더군요. "선생님,

활석이 왜 변비에 좋고, 또 애기를 낙태시킵니까?" 하고 학생이 질문을 하자,

"먹어봐, 만져봐, 미끌미끌 하잖아. 지가 어디로 가겠어? 대장에서 활동을 잘 할

것아냐, 그러니까 매끄러울 활자를 쓴 거 아냐? 고인들이 미쳤다고 미끄러울 활자를

썼겠어?" 그러자 학생들은 그 말을 들으며 "어휴! 저러니까 한방이 개화가 안되고

시대에 뒤진다고 하지" 했습니다. 그런데 만약 유기화학시간처럼 C.H.O가 어떻고

이렇게 육각형도 그려넣고 했으면 여러분들은 귀가 솔깃했을 것입니다. 이런

것들로 무얼 하자는 이야기입니까? 이런 것은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탄소원소와

금강석의 원소는 똑 같습니다. 원소가 같은 것이라 성분이 밝혀지는 것(다 밝힐

수도 없지만)은 아무런 의미가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에겐 실험 분석

기구보다 더 뛰어난 눈 코 귀 입 그리고 직관이 있습니다. 컴퓨터가 아무리

뛰어나도 사람보다는 못합니다. 직관은 바로 여러분 자신입니다. 여러분의

순진무구한 눈, 생각 이전의 소멸, 깨어 있는 마음, 지식이 개재되지 않은 마음,

공포나 위협에 굴복하지 않는 마음, 미래의 희망에 들뜨지 않는 마음, 겸손한 마음,

교만하지 않은 마음... 이런 것입니다.

  그런데도 유기화학식으로 설명을 해주면 잘 아는 것처럼 인식이 되고, "먹어봐!

매끌매끌 하잖아. 그런데 애기가 안 나오겠어?" 이런 식으로 설명하면 우습게

생각을 하지요. 그런데 옛날 선생님의 그러한 설명들이 한 10년 뒤에는 이해가

가더군요. 단순한 논리이지만 이렇게 인생의 진리가 숨어있는 예화를 많이 들으면

차차 심오한 음양 감각에 익숙해집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허준(조선 중기의 한의학자이며 선조때의 전의. 선조의

명으로 의서 편찬에 착수 광해군2년(1610) "동의보감"25권을 완성. 이 책은 동양

최대의 의학서로서 당시 일본 중국에서도 널리 익힘)선생님은 말년에 낚시를

좋아했습니다. 그 분이 살생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우리나라 향토에 있는 약초를 발굴하기 위해서 낚시를 핑계로

전국을 돌아다녔지요. 하루는 제자를 데리고 수원근처에서 낚시를 즐기고 있는데

동네 사람들 사이에 명의가 왔다고 소문이 좌악 퍼졌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낚시에 바늘도 달지 않고 음풍농월을 즐기거든요. 여러분! 허준선생님을 가볍게

생각지 마십시오. 그 분은 도인이셨습니다. 그 유명한 "동의보감"을 저술하시면서도

옛 사람의 말을 한가지라도 바꾼 것이 있습니까? 한 마디도 바꾼 것이 없습니다.

스스로 깨닫고 보니까 옛 사람의 표현방식이 딱 맞는다는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하루는 허준 선생이 있던 수원 근처의 낚시터로 어떤 부인이 시름에

찬 얼굴로 상담을 하러 왔습니다. "선생님께서 참 용하시다는데 제 소원을 좀

들어 주십시오" "무엇이오?" "결혼한 지 3년이 지나도록 애기가 없는데 애기를 가질

방법이 없을까요?" 그러자 선생은 그 여인을 한 번 쓱 보더니 "이슬을 하루 한되씩

100일 동안 잡수시오" 그랬거든요. 그래서 그 여인은 100일 동안 이슬을 먹고

난 10개월 후 애기를 낳았습니다. 임신 못하는 사람들은 너도나도 이슬을 먹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임신을 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1년 후 허준 선생이 전국을 한 바퀴 돌다가 그 동네를 다시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임신 못한 아낙네들이 몰려와서 "아니, 선생님! 우리는 왜

임신을 못합니까? 선생님 처방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하고 항의를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허준 선생이 "무슨 이슬을 잡수셨소?" 하고 물으니 "애기 낳는게 제

소원이라 새벽이슬을 먹었습니다" "그럼 새벽 이슬을 잡수셨단 말이오?" "네

물론입니다" "저녁이슬을 잡수셔야지 새벽이슬은 안됩니다"라고 점잖게 말하고

되돌아 갔습니다. 이런 걸 우화라고 합니다. 혹시라도 좋은 처방 배웠다고 써 먹지

마세요. 우화란 그 속에 들어 있는 비유만 이해하면 되는 것입니다. 새벽이슬은

풀 끝에 달렸다가 태양이 뜸으로 해서 막 발산되려는 이슬이고, 저녁에 맺힌 이슬은

하루의 생성과 성장이 모여 드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임신과

그 의미가 같은 것이지요.

  임신을 시키는 데에 신맛이 좋겠읍니까? 단맛이 좋겠습니까? 아직 여러분 육경의

맛에 대해 아무런 공부를 안 했지만 그냥 생각해 봐도 왠지 신맛이 적당하겠다는

생각이 들지요. 그러나 이것을 뚱뚱한 사람에게 가르쳐주면 큰일납니다. 신맛은

거두어 들이고 매운 맛은 발산을 시키지요. 그러므로 해삼장사들이 해삼을

싱싱하게 보이게 하려고 식초를 뿌립니다. 신맛이 마른 사람에겐 좋지만 뚱뚱한

사람에게 쓰면 안되지요. 오미자가 불임병에 좋다고 하는데, 오미자나 목과 같은

신 약을 마른 사람에게 쓰는 것은 좋으나 뚱뚱한 사람에겐 조심을 해야 합니다.

습이 많은 신맛으로 물을 더 넣어주면 큰일이지요. 뚱뚱한 사람은 물꼬를 내고

이수를 시켜 물을 빼주어야지요. 옛날에 조조가 적군에게 쫓길 때 군사들이 심한

갈증으로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고 저 산만 넘어 가면 살수(신맛)가 있다고 하자

병사들의 입안에 침이 고이게 되어 잠시 갈증을 잊고 무사히 산을 넘어 후퇴를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사실을 사실대로 보는 것이 '한방'입니다. 이것이 바로

'음양관'이고요. 그런데 이런 것을 외우거든요. 이치만 알면 아무것도 아닌데

외워서는 결코 깨우치지 못합니다.

  어느 날 허준선생에게 한 여인이 달려와서 "우리 며느리가 애기를 낳고 있는데

애기가 나오질 않습니다. 살려 주십시오" 하자 이끼 낀 여울목의 돌을 한 솥

삶아서 그 물을 먹이라 했지요. 그랬더니 글쎄 순산을 했습니다. 이걸 보고 제자가

"석실비록(청나라 진사탁(우경지, 호원공, 산음인)의 저서로 모두 6권으로 되어 있음.

주된 사상으로는 128법을 나누어 방들을 열거하고 있는데 보신 보비 서간에 치중

하고 있음), 상한론, 황제내경 어디에도 없는 처방인데 어찌 제겐 가르쳐주지

않으셨습니까?" 하자, "너에게 수없이 가르쳐 주었건만 네가 관이 없어서 스스로

깨우치지 못한 것이다"라며 꾸짖으셨다 합니다. 또 한 여인이 달려와서 "선생님

우리 며느리도 애가 나오지 않습니다"고 하자 그 집에 가서 산모를 보더니 "이것

참 큰일났군"하고는 산모의 머리채를 풀어서 입에다 넣었어요 그러자 여인이 구토를

하더니 또한 순산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들이 무턱대고 이렇게 따라 하면

큰일 납니다.

  앞의 부인은 양수부족(요즘 말로는 조기파수)이므로 빠르게 흐르는 여울목에 낀

이끼(매끄러움의 극치)의 매끄러운 성분을 썼던 것이고, 두 번째 경우는 산모의

복암부족이므로 구토법을 썼던 것입니다. 첫번째 것은 양의사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두번째에 대해선 아무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방약합편" 하통 82번에 우공산이라는 게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불구시복

소시이계령탐토담지...' '닭 깃으로 목구멍 담을 뒤져서 최토시켜라'라고 씌어

있지요(우공산의 상세한 내용은 뒤에서 다룸). 인체는 마치 관처럼 되어 있어서 위를

뚫어주면 아래로 나오게 되어 있지요. 옛 사람들은 이 자연의 이치를 이용했던

것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대롱에 물을 넣고 위를 막으면 물이 밑으로 나오지

않지만, 위를 열어주면 대롱 속의 물이 주르르 흐르거든요. 그래서 옛날

서양산부인과 의사들 가방에는 언제나 닭털(구토용)이 들어 있었습니다. 또 변비에

걸렸을 때 우리 인체의 맨 위에 있는 백회혈에 침을 놓는 것이나 설사를 할 때

백회혈에 뜸을 뜨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바둑을 둘 때의 병법이 환자들 치료하는 방법과 유사한 것이 많습니다.

'탐불득승(탐욕하면 이길 수 없다)'라는 말처럼, 병을 고치겠다고 너무 욕심을

내면 병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남의 경계에 들어갈 때에는 완만하게

들어 가라' 라는 것도 있습니다. 중병이라고 하여 처음부터 약을 너무 강하게

쓰면 안됩니다. 약은 서서히 써야 됩니다. 열병에 대황이나 망초 같은 약을

조심없이 쓰면 마구 타오르는 불에 어설프게 물을 잘못 붓는 격이 되므로 훈기가

올라서 죽게 되는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병을 치료하는 데는 작전이 필요합니다.

암을 치료할 때, 암 세력이 강한데 무조건 이기려고 하면 되겠습니까? 적당하게

조화를 시켜줘야 합니다. 사소한 병이 중병으로 되기까지에는 하루 이틀 걸렸겠어요?

손자병법에도 '적의 10배가 되면 공격하여 죽이고, 두 배면 시기를 보고, 적과

비슷하면 화해하고, 적보다 수효가 적으면 도망가라!'고 되어 있습니다. 36계

줄행랑은 손자병법의 맨 마지막에 있는 방법입니다. 못고치는 병은 못고치는

것입니다. 무턱대고 다 고치겠다는 욕심은 금물입니다.

  맛(산 고 감 신 함)과 소리 (궁 상 각 치 우)와 형상이 육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한 나라 언어의 성조를 듣거나, 노래를 듣거나, 어떤 사람의

행동상의 특징을 미루어, 각기 어떠 어떠한 기운(어떤 경락)이 많이 작용하고

있겠구나 하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군가와 사랑노래, 교가가 각기 다른 분위기인

것은 각기 가진 기나 기운의 종류와 강약이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가수의

노랫소리만 들어도 '음-- 당신은 어떤 기운이 강하겠구나!' 하고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한의사입니다. 이것이 올바른 동양의학자입니다. 이렇듯

약초의 맛, 냄새를 딱 보고서 추리할 수 있고, 목소리를 듣거나 형상, 모습을

보고서도 알 수 있는 추리력을 길러야 합니다. 그래야 오운과 육기가 혼합되는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겠지요. 그러면 달마대사(중국 선종의 초조. 남인도 향지국왕의

셋째아들로 본명은 보데다라. 520년(양나라 보통1년) 중국으로 건너와 소림사에서

면벽9년하고 2조인 혜가에게 법을 전한 뒤 영안1년의 10월 5일에 입적함. 당나라

대종이 원각대사라고 시호를 내림.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보리달마"라 불림) 시 한

편을 소개하겠습니다.


  외부에 있는 일체의 모든 인연을 쉬고 (외식제연)

  안으로 헐떡거리는 마음을 쉬어라.(내심무천)

  마음이 마치 장벽과 같이 단단하면(심여장벽)

  가히 도로 들어간다.(가이입도)



@[(5)@]

  여러분들은 모든 인연을 끊어야 합니다. 의사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어찌 도를

닦지 않는지요. 몇가지 잔꾀만 부려가지고 인간을 간파할 수가 있을까요?

옛말에 '추운 겨울을 나지 않으면 매화 향기가 코를 찌르지 않는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일체의 인연을 일단 쉬라는 얘기입니다. "황제내경"한 페이지를 품고

입산을 한다든가 스승을 구하려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는 이런 최소한의 구도심은

있어야 합니다. 어쩌다 로맨스 영화를 보면 주르르 눈물을 흘리고, 키스신에선 

가슴이 쿵쿵 거리고, 조금만 잘생긴 남자를 보면 좋아 어쩔 줄을 모르고,

어깨라도 슬며시 만지면 그저 좋아하는 여자들이나, 조금 반반한 여자가 끼어들어도

친구의 의리를 저버리는 남자들이 많은 세상입니다. 이런 말법시대에 도를 모르거든

덕이라도 길러 남에게 베풀라고 제 사부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또, "의리가 없으면

교활하긴 하나 지식이라도 길러라. 지식이 없으면 순종이라도 할 줄 알아라... "

도에 뜻을 둔 사람은 그 뜻이 마치 산과 같아야 된다고 했습니다. 단단히 뜻을 세워

쉬는 사이 없이 정진을 하면 어느 순간 한 생각이 확 트이면서 담이 시원하게

뚫리게 됩니다.

  "당신은 모든 것과 관련되어 있다. 그러므로 주고 받는 법칙은 삶에 있어서

변치 않는 하나의 길이 된다. 태양이 당신에게 생명을 주고 있는 것처럼 당신은

다른 길에서 태양에게 생명을 주어야 할 지도 모른다"

라고 라즈니쉬는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태양에게 뭘 주고 있는지를 모르듯이 여러분의 사소한 재채기 한 번이

저 우주에 있는 어떤 별의 운명을 변화시킬지도 모릅니다.


  "만물은 서로 관련이 되어 있다. 사람은 달의 먹이이다 라는 말은 그 속에 진리를

품고 있다. 보름달은 사람들을 열광시키고, 사람의 감정을 압도하므로, 인간의

자각을 먹이로 한다. 자각을 보름달에게 뺏긴 사람은 보름달에 대한 열정과 열광으로

반쯤 미치광이가 되기 때문이다. 보름에 바닷물이 거칠어지듯, 70% 이상이 물이며,

바닷물과 같은 염분 비율을 가진 사람의 육체와 영혼이 열정을 갖게 됨을 당연하다"

  시인은 보름밤에 더욱 아름다운 시를 노래하고, 연인은 더 한층 낭만적이 됩니다.

옛날에 여자들이 남자들을 유혹하여 동침을 요구할 때 "달이 오늘 참 밝지요?"라고

했습니다. 이런 것들은 달의 주기와 감성리듬의 주기, 여성의 생리주기가 28일로

같음과 상관이 있습니다.


  "우리는 사과를 먹는다. 어느날은 사과나무가 우리 육체를 먹을 것이다. 당신의

육체는 비료가 될 것이다. 당신이 사과를 먹고 있을때 그 사과속에 당신의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또 어느날은 당신의 아이들이 당신을

먹을 것이다. 모든 것은 관련되어 있다. 이 관련되어 있음에 도라는 말이 뜻하는

어떤 것이 있다. 어느 누구도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Ego는

불합리하다. 오로지 전체성으로만이 나를 말할 수 있다. 부분들로 나를 말 할 수는

없다. 만일 부분들로 나를 말하려 한다면 그것은 단지 언어적인 형식에 불과하다.

그 부분들은 결코 나를 표현하지 못한다.... "

  이렇듯 여러분들 현재의 모든 상황은 먹고 먹히는 상대적인 것이라는 점을 잘

생각해야 됩니다.


  "모든 종교가 침략적, 남성적임에 반해서 도는 실로 여성적이며 묵종적이다.

기억하라, 진리는 여성적인 자각의 상태에 있을 때만이 온다. 당신은 진리를

정복할 수가 없다. 진리를 정복하려는 생각조차도 어리석다. 부분이 어떻게 전체를

정복하겠는가? 부분은 단지 허락될 뿐이다. 집착으로 인해 그릇된 개념을 갖게

된다면 그것으로 인해서 당신에게 진리가 허락되어 들어가는 것조차 막히게 된다"

  이에 대한 좋은 본보기의 우화가 있습니다.

  제비들이 가을날 남쪽으로 날아가자, 모든 짐승들은 제비와 남쪽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도 내년에는 남쪽으로 가야지!' 하고 암탉들도 회의를

했습니다. 이듬해, 제비가 남쪽으로 떠날 때 암탉 한마리가 그 뒤를 따라서 양계장

밖으로 달려 나갔습니다. 그리고는 날개를 퍼덕거리며 계속 달렸습니다. 며칠 후,

남쪽으로 떠났던 암탉이 돌아왔습니다. 많은 차들, 넓고 긴 도로, 사람들의 무리와

마을 등을 자기가 본대로 이야기 했습니다. "야! 굉장하구나" 다른 닭들은 그

암탉을 부러워하며 숭배했습니다. 이듬해 쯤 남쪽에서 다시 제비가 돌아왔을 때,

남쪽 바다와 따사로운 햇볕을 이야기 하는 제비들을 암탉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그 암탉의 주장은 정당했습니다. 자기로서는 갈 수 있는데까지 가다가 지쳐서

돌아오기까지 본 것들을 주장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암탉은 결국 자기가 살고 있는

도시 밖으로 나가보질 못했던 것입니다.

  지식은 한 마리의 암탉과 같습니다. 여러분들은 남쪽을 좀 안다고 폼 잡고 다닌

암탉에 불과합니다. 아시겠습니까?

  장자의 제자들이 모여서 '장자가 죽으면 어떻게 할까' 의논을 한 끝에 땅 위에

두면 짐승이나 새의 밥이 될 것이므로 땅 속 깊이 묻기로 결정을 보았답니다.

이 말을 들은 장자가 깔깔 웃으며 "야! 이 미친놈들아, 네 놈들 지금까지 엉터리로

공부했구나. 땅속에 묻으면 구더기의 밥이 되지 않겠느냐? 이놈들 헛공부했구나"

이렇게 꾸짖었답니다. 우리도 죽으면 먹이가 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지식은 한 마리 암탉처럼 멀리 가지 못합니다. 암탉은 자기가 본 것이 남쪽의

전부인 줄 알기 때문에 더 이상 남쪽으로 멀리 갈 이유가 없고, 또 불가능 합니다.

남쪽을 전혀 몰랐다면 모험심이라도 있을텐데, 그 앎이 방해가 되어 평생 그 범주를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지식을 버려라! 그렇게 하더라도 당신은 잃는 것이 없다' 여러분! 아는 것을

다 버리세요. '그렇게해도 당신은 그저 당신의 허위만 앓을 따름이다. 그리하면

당신은 아주 남쪽까지 갈 수 있다. 비로소 당신의 원천인 넓고 푸른 바다가

펼쳐질 것이다' 우리는 지식을 죽여야 합니다. 도는 죽음과 동시에 출발하는

것입니다. 한 번 죽기 전에는 결코 깨달을 수 없습니다. 과거의 지식과 이론은

물론이고 여러분이 가진 허위와 Ego 이 모든 것으로부터 풀려나야 합니다. 이것이

"황제 내경"의 본 뜻입니다. 정원에 독초와 돌이 무성한데 아무리 좋은 꽃을

심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서양인이 찾아와서 주역을 묻는데, "어떠어떠한 괘가 있는데 그 괘가 그 다음엔

어떻게 변합니까?" 하더군요. 그래서 저는 "64괘 어느 것으로도 변할 수 있습니다"

라고 했지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 변하는 법칙이 있지 않겠느냐?" 하고

반문하더군요. 서양사람들 사고방식이 매사가 이렇습니다.

  한 사람이 배가 고프다면 어느 쪽이든 배를 불릴 수 있는 방향으로 가게 됩니다.

그러니까 양명에서 태음으로 갈 수가 있지요. 그런데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은

주지 않고 자꾸 약을 올린다면 양명지기에서 소양지기로 변할 수도 있지 않겠어요?

술을 오래 두면 식초가 됩니다. 이것은 소음군화가 궐음으로 된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식초를 오래 두면 다시 술이 됩니까? 안되지요. 궐음이 소음으로 변한다고

외우신 분들! 아시겠어요? 십간이나 십이지나 이런 모든 것은 하나의 양상일

뿐입니다. 외우면 안됩니다.

  사암침법의 오유혈을 외웠다 하더라도 모든 치료가 그대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수양명대장경의 예를 보면, 수양명대장경은 건조하면서 차게하는 힘이 있지요. 몸이

덥지 않은 환자의 양곡, 양계를 습하게 되면 몸이 너무 냉해질 수도 있으므로

이 때는 이 혈을 뺄 수도 있습니다. 암기해서 될 것 같으면 전 여러분들에게

이 내용의 99.9%를 가르쳐드릴 수 있습니다만 공안법, 오운육기, 유심적 안내 등을

다 동원해도 겨우 3%밖에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라즈니쉬의 말을

전합니다.


  "죽음! 죽음에서 당신은 경계가 흐려지고 죽음에서 당신은 사라진다. 죽음에서

비로소 Ego는 녹는다. 죽음에서 마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죽음에서

비본질적인 모든 것이 사라진다. 죽음을 이해할 수 있다면 당신은 도가 무엇인지,

길이 없는 길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다. 믿음과 사랑도 죽음의 길이며, 기도와

명상과 같은 학문 또한 죽음의 길이다. 명상은 자발적인 죽음이다. 죽음은

삶의 절정, 가장 높은 오르가즘이다. 당신은 절정을 섹스의 봉우리로만 안다. 그러나

섹스의 봉우리는 히말라야의 가장 낮은 봉우리에 불과하다. 섹스는 가장 낮은

출발이나 죽음은 가장 높은 정상이다. 서양의 심리학은 성을 이해하는 데에서

시작된다. 동양의 심리학, 붓다의 심리학, 모든 동양의 도인들의 심리학은 죽음을

이해하는 데에서부터 출발한다"

  서양은 이제 겨우 성을 이해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렇지만 동양은 아예 죽음을

이해하는 데에서 출발합니다. 차원이 이렇게 다릅니다.


  "죽음을 이해함으로써 당신은 의식적으로 죽을 수가 있다. 만일 당신이

의식적으로 죽을 수 있다면 당신은 그때마다 새로이 탄생할 것이다. 여기에 필요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당신은 하나의 깨달음을 얻게 되고 그리하여 삶과 죽음의

수레바퀴 속으로 거듭 되돌려지지 않는다. 당신이 깨닫기만 하면... "

  이건 멋진 시와 같은 말입니다. 몇 가지 외웠다고 하는 하나의 교활한 Ego

몇 가지 성취감 속에서 남을 굽어보는 사람이 되지 말고, 죽음과 명상적 차원의

도를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주역괘상의 6가지 감정적인 배경을 공부하는 것 이외에, 64괘가 서로 부딪치는

것까지는 제게 강의할 실력도 없을 뿐더러 또 그럴 생각도 없습니다. 64괘는

여러분 각자 그것의 의미를 열심히 공부하면 알게 될 겁니다. 주역괘상은 항상

두 가지가 복합이 된 상황에서 출발합니다. 그 복합적인 상황은 곧 '전체'를

알기 위한 상황 설정이지요. 그런데 전체에 접근 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상황 중

어느 하나에도 치우쳐서는 안됩니다. 음운학적인 예를 들어 봅니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에는 상대방의 말을 해석해서 그 뜻을 이해해야 하는

것과 별 다른 해석적인 의미는 없으나 긍정 혹은 부정의 뉘앙스를 가진 언어가

있습니다. 반가움의 인사를 나눌 때 "야... ! 너 참 오랜만이다"라고 하지, "우... !

너 참 오랜만이다"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야구경기를 볼 때 '우(부정적인 의미)... '

라는 비난과 야유의 환성은 질러도, '아아... ', '어... '하고 야유하지는 않지요.

"아! 그렇군" 할때와 같이 '아'가 긍정음이라면 '우'는 부정음입니다. 그런데

'아'와 '우'의 중간적인 의미의 음은 무엇일까요? 가령, "저하고 오는 토요일

데이트를 좀 해주시겠어요?" 라고 물을 때 긍정적이면 "아! 좋아요" 부정적일 때는

"에이! 집에 일이 있는데..."라고 하지만, "음...  생각해 보겠어요" 할 때의

'음-- --'은 중간적인 의미의 음이지요. 이것을 중앙토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음양공부를 현장에서 그것의 증거를 보고 있는 것이지 결코 이론에 대한 강의를

듣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 '는 받아들이겠다는 뜻이므로 음에 해당합니다. 물론 '우... '는 양이

되겠지요. 동물울음 소리에 '입구자'가 많이 들어가는 동물이 있다면 그 동물은

어떤 성질이 많을까요? 틀림없이 중앙토적인 기운을 많이 가지고 있을 겁니다.

그래서 소는 생각이 아무리 많아도 좋다 싫다 말 한 마디 없는 모습을 보이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와 '우'와 '음'이 세 음을 합하면 어떤 음이 되겠습니까?

'옴'이란 소리가 됩니다. 인도 브라만교에서는 우주전체의 소리만 오직 읊어라.

다른 명상 법 없이 온 종일 '옴'만 읊는 옴 명상법이 있습니다. 그리하면 자기

자신이 우주 전체가 되지 않겠느냐는 거지요. 우리 주위에 보면, 어떤 말이든

긍정하는 사람과 또 부정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모두 우둔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중앙토가 너무 발달하여 너무 오래 생각하는 사람, 또한 문제가 있는 사람입니다.

중간에 머물러도 안되고, 긍정이나 부정에 너무 치우쳐서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도란 그저 왔다갔다 하는 흐름입니다. 찼다 기울었다 하는 하늘의 달도 도라

할 수 있겠지요.

  곡예사들이 줄타기를 할 때 좌나 우로 흔들리지 않고는 중심을 잡을 수가 없지요.

좌나 우로 조금씩 흔들면서 중심을 찾아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어흠!

나는 여기와서 명상을 공부하고 도를 배웠으니까 앞으로는 화도 안내고 좋고

싫음도 없도록 해야지" 이런 무식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진정으로 공부를

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이것은 "나는 똥 누기 싫으니까 먹지도 않을꺼야!" 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잘 먹고 잘 살 생각을 해야지요. 여러분! 화도 내고

욕심도 내세요. 단 마음의 양면성을 깨어서 이해하세요. "아! 내가 지금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구나. 내 마음이 긍정적인 상태로 가는구나, 혹은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구나" 이런 것을 깨어서 읽고 또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어느 것

하나만 인정하지 말고, 내게도 이렇게 미워하는 마음이 있구나 하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인정하지 않는 마음이 사람을 우둔하게 만듭니다. 이렇게 자기

마음을 이해하게 되면 여름철 매미소리를 듣고 매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또는 다른 곤충의 소리를 듣고도 그 곤충의 성질이 어떠하리라고 이내 알 수가

있게 됩니다. 같은 종류인 까마귀와 까치를 보세요. 그것들의 울음소리와 몸짓은

분명히 일관성이 있습니다(까마귀는 소리와 몸짓 둘 다 느리고 음흉, 까치는

그 반대)

  오행상 오음으로 궁 상 각 치 우가 있지요. 한글을 처음 만들었을 때에는

열심히 발음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전 음을 발음할 수 있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반치음, 중간음 등은 없애버렸고, 또 ㅆ, ㄲ, ㅉ 등으로 

경화되어가고 있는데, 본래 한글이 가졌던 양적인 음, 음적인 음, 중간음을

다 발음하다 보면 전체적인 인간성으로 승화되는 수행자적인 차원이 있습니다.

불란서 사람들은 비음을 많이 내는데 비음이 가진 우울성이 그들에겐 있습니다.

가나문자에는 강한 음이 많이 나오는데, 이것으로 일본인의 성품을 알 수 있음은

물론, 그 강한 음이 어떠한 경락의 활동을 특별하게 하는 것인지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이란 국가는 아주 흥망성쇠가 심합니다.

  전체적인 음운을 개발해 낸 문자는 우리 한글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것도

도가 아니면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주역괘도 마찬가지로 어떤 괘라도 전체를

깨달으면 길한 것입니다. 흉한 괘가 어디 있고 길한 괘가 어디 있겠습니까. 주역을

읽어보세요. '아무리 흉한 괘도 원향이정하면 길하리라'라고 씌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천화동인이라는 이 괘는 '하늘과 불이 만나면 사람들과 더불어

일하는 것이 이롭다. 원향이정하면 길하리라'라고 씌어 있습니다.

  원이란 춘의 덕이므로 '생'이고, 향은 하의 덕이므로 '장'이고, 이는 벼(화)를

칼로 쳐서 내것을 만드는 것이므로 '수'이며, 정은 '장'에 해당하고, '화'는 향과

이 사이에 들어갑니다. 무더운 여름날 숲에서 매미가 우는데 그것은 그 때밖에

울 수가 없어요(화는 계절상 장하, 매미는 장하에 성함). 결국 원향이정이란 곧

'전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천과 화가 만난 이런 두 가지 상황이란 것

천화동인은 너와 나의 만남입니다. 그때 내가 어떤 상황이었고 네가 어떤 상황으로

만났는가 하는 복합적인 상황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파랑과 빨강이 만나서 보라가

되지만 보라색의 상황은 빨갛지도 파랗지도 않지요. 그러나 분명히 청과 홍이만난 것

아닙니까? 이런 상황을 표현하려고 주역의 괘는 언제나 두 가지가 합쳐져 있는

것입니다.


  천간합오행

  갑 기합토  비

  을 경합금  폐

  병 신합수  신

  정 임합목  간

  무 계합화  심


  지합과 육경

  자 오  소음(군화)

  축 미  태음(습토)

  인 신  소양(상화)

  묘 유  양명(조금)

  진 술  태양(한수)

  사 해  궐음(풍목)


  십천간(천간 오행 음양 계절 방위의 순)

  갑  목  +  춘  동

  을  목  ^35^  춘  동

  병  화  +  하  남

  정  화  ^35^  하  남

  무  토  +  장하  중앙

  기  토  ^35^  장하  중앙

  경  금  +  추  서

  신  금  ^35^  추  서

  임  수  +  동  북

  계  수  ^35^  동  북

 

  십이지지(지지 오행 음양 계절 방위의 순)

  인  목  +  춘  동

  묘  목  ^35^  춘  동

  진  토  +  --  중

  사  화  ^35^  하  남

  오  화  +  하  남

  미  토  ^35^  --  중

  신  금  +  추  서

  유  금  ^35^  추  서

  술  토  +  --  중

  해  수  ^35^  동  북

  자  수  +  동  북

  축  토  ^35^  --  중


  오운육기에서 갑자라고 하는 말 중에 갑을 가령 토라고 한다면 자는 소음군화지요.

따라서 토와 소음군화가 복합이 된 것이 갑자년의 이미지인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이해시켜 드리고자 지금까지 여러 잡다한 이야기를 하였는데 이런 까닭에

오운육기법은 궁리법에 속한다고 볼 수 있지요. 성인들이 만들어 놓은 이러한 것을

통해서 직관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일단 앞의 도표는 꼭 외우십시오.

자 축 인 묘 진 사 오 미 신 유 술 해의 개념과 갑 을 정 무 기 경 신 임 계의 개념이

각기 하나씩, 둘이 되어 서로 혼합되어져서 어떤 기운을 형성하는 것을

관찰하는 것이 오운육기법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장부를 취상할 때, 이것은

추리방법입니다만 간장을 예로 든다면, 오행상 보는 것을 밑에다 두고, 육기상

보는 것을 위에다 둔다 하면, 오행상 간은 목(그릇)이고, 육기상 궐음풍목(내용물)이

됩니다. 이것의 취상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릇은 나무요, 내용물을 바람이

흐르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한번 상상해 보세요. "피리!" 예 좋습니다.

팔괘 중 가령 태괘를 소녀나 무당으로 취상하듯 간장을 피리로 취상하는 것은 같은

방식이지요. 오행은 형의 성쇠이고 육기는 기의 다소라고 했는데, 간장의 예를

보면 그릇은 나무(형의 성쇠), 내용물은 바람(기의 다소)이 되는 것이지요. 이런

취상에 대한 연구는, 옛날에 주역괘상을 왜 써 놓았는지 그것을 이해시켜 드리기

위한 방편입니다.

  날씨가 무더운 날 방안이 무척이나 덥다고 합시다. 밖에 차가운 공기가 있다면

문을 여는 행위를 통해서 밖에 있는 찬 공기를 안으로 들여보내게 됩니다.

이 창문을 여는 행위가 오행의 보사법이지요. 밖에 있는 찬공기를 안으로

들여보낸다면 보가 되겠지요. 한편 방이 무더울 때 방안의 더운 공기를 밖으로

내보내어도 시원해지지 않겠습니까? 더운 공기를 내보내려고 환풍기를 돌렸다면

이것은 사가 되겠지요. 오행과 육기에 대해 착각하지 마세요. 우리가 중심적으로

다루는 것은 육기적인 사고방식, 즉 내용물(질)에 대한 사고방식입니다. 위의

경우 더운공기나 찬공기는 둘 다 질입니다.

  "간장은 피리요"라는 말을, 이게 무슨 말인가 하기에 앞서 두 가지의 복합된

상황을 이야기한 것이로구나 하고 이해하셔야 합니다. 여기서 잠깐 열이 나는

두 가지 상황을 알아봅시다. 하나는 소음군화, 다른 하나는 소양상화지요.

소음군화는 즐거워서 일어나는 충동(화)인데 성충동과 같이 후끈 달아 올라서

(불을 일으키는 욕망이므로 욕화라고 함) 뭔가 죽이고 소멸시키는 것이지만

즐거운 욕망임에 틀림없습니다. 다른 것은 자기 것을 만들면서 좋아 하는데 성은

자기가 죽으면서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죽음과도 같이 내가 없어지면서

즐거워하거든요. 이렇게 불의 성품과 욕망의 성품을 동시에 갖는 소음군화는

참으로 묘한 것입니다.

  그런데 화가 났다거나(예:남에게 두들겨 맞았을 때) 순식간에 불끈 치밀어

오르는 화, 전광석화 같은 화, 이것을 '상화'라고 합니다. 이것이 상화와 군화의

차이점입니다(내경 오운 육기 편에는 상화를 재상과 같다고 했음). 상화와 군화를

물질적으로 표현한다면 지구와 태양으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지구 안에 있는

화, 지구속 열을 군화라고 한다면 태양이 비춰 주는 화를 상화라 합니다.

  우리의 생명력을 유지해 나가는 것은 성적인 원동력입니다. 여러분 성을

추하다고 하지 마세요(성은 나중 소음군화 편에서 자세히 다룸). 그것을 하나의

현상으로 솔직하게 받아들이세요. 상화는 화가 났을 때의 공격적인 열인데 이것

또한 나쁘다고 하시면 안됩니다. 여러분들에게 잔소리 해주는 사람이 없으면

크지 못합니다. 지구는 태양이 없으면 크지 못하고, 달걀은 어미 닭의 따뜻한

품이 없으면 크지 못합니다. 이것이 상화입니다. 생명이 들어 오는 문을

명문상화라고 하지요. 여러분을 생명력 넘치게 하는 것은 군화보다 오히려 상화일

수가 있습니다.

  결국 군화의 불과 상화의 불, 이 두 가지가 합쳐진 것이 인간의 미묘한 육체활동,

우주활동, 심적인 활동인 것입니다. 우주활동이나 지구활동은 너무 거창해서

모르니까 인간의 심적인 활동을 연구하면 쉽게 알 수가 있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

제가 접근하는 방법이므로 이렇게 군화는 성적인 충동, 상화는 공격적인 열이라고

주로 설명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장부의 취상은 왜 공부하는가? 장부가 오행상

수이고 육기상 화인 것을 예로 들어보면, 족소음신이 오행상 수이고 육기상

소음군화이지요. 그러므로 족소음신경에 흐르는 경락의 에너지를 이해하려고 하면

수라 하는 오행적인 배경과 소음군화라는 육기적인 배경을 동시에 연구한 어떤

복합적인 상황을 공부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오행상으로 공부하고

족소음신경에 흐르는 에너지를 이해했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이야기입니다.

한강물이 맑고 차가우면 태양한수라고 표현할 수 있지만, 흙탕물일 때에는 어떻게

표현해야 됩니까? 기운은 물인데 거기에 태음습토가 들어갔으니까 병신 수와

태음습토인 축의 만남, 즉 신축이라고 표현하지요. 이것은 참으로 과학적이지요.

그러나 이 표현이 그렇게 정확하다고 할 수 없는 것이 바로 한방의 어려운 점입니다.

  삼강오륜의 '강'자가 벼리 강자입니다. 그런데 벼리는 어디에 쓰이는 것입니까?

고기 잡을 때 쓰지요. 그물을 잡아당길 때 위에 하나만 잡아당기는 것을 태극에

비유한다면 그물모양이 된다. 이것들만 잡아당기면 그물 전체가 움직이게 되지요.

오운 육기법이 아무리 세밀하다 하더라도 벼리에 불과한 것입니다. 전체를 낱낱이

이야기 할 수는 없고 마치 이것만 잡아당기면 전체를 다 이해할 수 있도록 해놓은

것입니다.

  인간이 가진 욕망이 어디 세 가지 뿐이겠습니까? 그러나 대체적으로 이 3대

욕망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거지요. 그러므로 3가지 벼리가 되는 것입니다.

삼음삼양이란 육강이 되는 것입니다. 즉 6개의 벼리가 되는 거지요. 세밀한 것은

여러분들이 알아서 미루어 추측해야 합니다. 홍과 청은 화와 목입니다. 그럼

보라색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여러분이 창조해내야 합니다. 적절한 이름을 붙이기에

달렸지요. 그러므로 여러 기발한 취상들이 나오게 되는 동기가 입체적인

접근방법으로 여러분의 상상력을 동원해보기 위함입니다.

  예를 들어 환자가 왔는데 뚱뚱하고 성질이 급하게 생겼다 그러면 뚱뚱하니까

습이 많을테고 그 가운데 상화가 들어가 있으니까 어떤 장부가 상했을까? 그러면

치료는 어떻게 해야 할 까? 이런 식으로 마치 치밀한 수사관과 같은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이러한 취상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느냐 해서 제가

이상한 방향으로 공부를 시켜드리는 것입니다.

  족소음신이라 하면, 형의 성쇠인 오행과 기의 다소인 육기라는 관점을 공부함과

동시에 팔괘도 공부하고, 유심적인 차원도 공부하는 것입니다. 신장을 단순히

kidney 라고 할 때는 형이지만, 족소음신경이라 하면 흐르는 어떤 에너지를

의미하지 않겠습니까. 바로 신이지요. 이것을 통해서 치병을 하려면 여기에 흐르는

에너지가 무엇인지 알아야지요. 인체 내에서 물을 기본으로 하고 내용물이 화인

신장이 정을 저장하고 있다는 이미지는 이렇게도 복합적인 상황입니다. "신장을

보하면 정기를 보한다"로부터 정기란 어떤 것이며, 어떤 상황이겠는가 하는

것을 거꾸로 추리함으로써도 인식할 수가 있습니다. 제가 하는 이 방법이 참으로

이상한 방법이지만 이것은 혁명적인 방법이올시다.

  신장의 개념을 알기 위해서는 해부학적으로 무조건 구성이 어떻고, 걸러내는

작용을 하고, 신우가 있고, 수뇨관이 있고...  이런 식으로 공부하는 것보다

유심적인 차원의 무형의 통로를 공부해야만 이 족소음신경의 에너지를 알 수

있겠지요. 다른 경락도 마찬가집니다. 사람을 만날 때 우리는 상대방으로부터 어떤

기분을 느끼지요. 예를 들어, 살기를 느낀다면 "음! 너는 족소양담경이 실하겠구나.

소화장애로 왔든 두통으로 왔든 너에겐 족소양담경을 사해 주어야겠군" 이렇게

추측할 수 있겠지요. 우격다짐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차근차근 이해해 나가는 겁니다. 제가 명상, 근본, 도, 무심 이런 것을 강조하는

이유는 여러분들의 맘 속에 있는 이론이나 지식의 선입관을 제거하려는 제

나름의 노력입니다.

  그러면 동양의학 혁명 소고를 간추려 보겠습니다. 저는 직관의 개발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직관의 개발은 다분히 광범위한 뜻을 포함하며, '수행적 요소'를

증진시켜줍니다. 직관이란 주관적이므로 자칫 그 요체를 잡기가 힘든 것처럼 보이나

주관적인 요소가 배제된 객관적인 직관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신념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한 사람을 두고 이 사람이 보면 소음인이고 저 사람이 보면 소양인, 또

다른 사람이 보면 태양인이라면 이건 문제가 크지요.

  저는 대학교 시절에 참 질문을 많이 했습니다. 우리나라 사상의학의 대가선생님의

진단학 시간에 질문을 합니다. 선생님 저는 무슨 인입니까? "으음, 자네는

이목구비도 수려하고... 어쩌고 하니 태음인이야" (아니! 제 이목구비가 수려해요?

그것보다는 제가 좀 엉뚱하니까 태음인이겠지요). 다음날, 다른 사상의학의 대가인

병리학시간에 또 같은 질문을 합니다. "응... 자네는 소음인이야. 한국사람의 100%는

소음인 아닌가?" "이상한데요? 다른 선생님께서는 태음인이라고 그러시던데요"

그러면 자기가 내뱉은 말은 있고 그렇다고 다른 선생님 욕은 할 수 없고...

  도대체 우리는 어디까지 혼란에 빠져야 합니까? 똑같은 병을 두고 어떤 사람은

대황을 써서 몸을 차게하라 하고, 어떤 사람은 부자를 써서 몸을 데우라고 합니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인 것이 한의학입니까? 옛날 한약방이나

의원에서는, 제자를 자기 밑에서 10년 정도 꾸준히 공부를 시킵니다. 10년 이상

지난 후 어느 날, 환자가 오면 제자의 의견을 물어봅니다. 이렇게 해서 제자의

의견이 자신과 60% 이상 맞을 때 비로소 개업을 시켜 주었다고 합니다.

  내 것을 주고, 나를 희생하고, 나를 죽이면서도 기뻐하는 것이 성이지요. 자기

자신의 이상을 기꺼이 희생시켜 가며 사랑하는 연인을 대학까지 뒷바라지 하는

여인을 우린 드물지 않게 봅니다. 소음군화에 해당하는 식물은 아름답기 그지

없으나 생명력이 강하지 못합니다. 궐음에 해당하는 것은 근육의 이미지이므로

과일로는 섬유질이 없으면서도 질기고 팽팽하며, 소음에 해당하는 것은 아름답고

수려하며 굉장히 예민합니다. 사춘기의 청소년들이 머리모양을 자주 바꾸고

싶어한다거나 이 옷은 오늘, 저 옷은 내일, 하루에도 몇 번씩 옷을 바꿔 입는

그런 마음이 소음에 해당합니다. 화려하고 청초한 식물이 가녀린 모습으로 한들한들

피어 있으면 '그것은 소음지기가 많은 것이구나' 하고 짐작을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요즘은 남자들도 여성화를 추구하여 Unisex Mode가 유행하는데, 이런 양상은

비단 인간뿐 아니라 동 식물까지도, 필요없는 장신구나 꾸밈을 가진 것은 모두

소음군화의 작용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겠지요.

  소음지기 성질을 지닌 식물씨나 열매는 거의 먹을 수 없는데 반해 태음지기의

성질을 지닌 열매는 육질이 풍부하지요. 촉촉한 습기에서 자라는 태음은 대체로

원만한 모양으로 나타납니다. 열매나 나무 자체의 모양이 주로 통통하고 풍부하므로

인간의 식생활에 가장 요긴하고 소음은 주로 관상용으로 애용되며, 궐음은 주로

약용으로 쓰입니다. 그리고 소음군화는 불이 타오르듯 한 모양으로 올라가는 느낌이

있는 것으로 그런 빛을 가진 것을 일컫습니다. 태음은 육질이 풍부한 과일이나,

나무로 보면 열매부위, 그리고 채소 종류의 대부분이 이에 속합니다. 무우나

버섯따위가 태음의 대표적인 식품이지요. 버섯이나 무우는 모가 나지 않고 대체로

둥근 모양을 하지요. 수분이 풍부하고 땅이 기름지면 생김새가 둥근 식물이 잘

자랍니다. 엄마 얼굴을 그려보라고 했을 때 눈도 동글, 코도 동글, 입도

둥글동글하게 그리고 어린이는 태음의 덕성을 지닌 아이입니다.

  또 어떤 아이는 삼각 사각으로 얼굴을 모가나게 그린다거나 산과 나무를

뾰족뾰족한 예각으로 그리는데 그것에서는 번뜩이는 살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무심코 그리는 형상이지만 그 속에는 인간이 지닌 감정이 표현되는 것입니다.

화가는 그림의 균형을 중요시합니다. 뾰족한 산을 하나 그리면 이어서 동그란

초가집을 그려 넣습니다. 그러면 양명과 태음이 조화를 이루게 되지요. 새가

날아오르는 걸 그린 뒤에는 폭포수가 아래로 떨어지게 합니다. 이렇게 조화를

맞추다보면 사람의 심성도 탁마가 되는 것입니다. 인도에서는 그림이 명상의 좋은

매체가 되기도 했습니다. 옛날 어느 그림 스승이 뚱뚱한 제자가 오면 계속해서

난을 그리게 하거나 피어 오르는 연기를 그리게 하여 기의 상승을 느끼게 하고,

마른 사람이 제자로 들어오면 왼쪽으로 돌아가는 동그라미를 그리게 하여 외부의

기운이 빨려들어 감을 느끼게 했다고 합니다.

  기름진 태음의 땅에선 식물이 위로 뻗지 않고 원만한 모습으로 바닥에 깔리지요.

그렇다고 그리 크지도 않지요. 소양지기의 식물은 키가 크고 뾰족뾰족하여 어떤

불안감 내지는 발산지기를 느끼게 합니다. 또 잎이 톱니바퀴처럼 날카롭고 특히

솜털까지 나 있는 것은 소양지기가 성합니다. 이건 식용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 맛이 대체로 쓰지요. 소양지기가 많은 칼, 창 따위는 그 자체를 보는 것 만으로도

섬짓함을 느끼지요. 언제라도 공격해 올 준비가 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눈꼬리가 치켜 올라가고 코가 뾰족하고, 얼굴이 역삼각형으로 생긴 사람은 웃어도

조심이 되지요. 그저 단순히 뾰족한 것이(동식물을 막론하고) 소양지기의 살기를

가졌다는 관찰은 탁월한 식견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어느 나라에 전쟁이

터지려 할 때는 숲속에 소양지기의 식물이 우거지기 시작하고 나라가 부유해지려면

채소가 잘 자라고, 문화가 발달되려면 화초가 잘 된다고 합니다.

  양명은 소양과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키가 크고 가시 같은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키는 소양보다 더 큰 경우도 있으나, 가시가 소양이라면 가시보다 좀 연한 솝털

종류가 양명입니다. 그리고 양명은 섬유질이 많습니다. 가시나무가 많은 동네에서는

탁발을 하지 말라는 스님들의 이야기가 있지요. 그런 동네에서는 차라리 동냥을

주고 오라고 합니다. 왜? 그 동네 사람들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빈한합니다.

양명지기의 식물은 여름보다 가을, 겨울에 강합니다. 그래서 사철 푸른 식물이

많습니다. 소양지기는 잘 먹고 배가 부른후 그 힘으로 죽이려 하는 것인데 비해

양명지기는 배가 고파서 잡아 먹는 상황입니다. 파리지옥풀 같이 다른 동물을 잡아

먹는 기관이 특별히 발달되어 있는 것들이 많지요. 배고픔의 설움에 받쳐 마구

일어나는 에너지가 형상화된 것이 양명의 Image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 취하고자

하지요.

  태양은 한수라고 해서 물이 많은 것이라고 추측하면 안됩니다. 한기가 많으므로

딱딱하게 굳은 상황입니다. 어떤 여유로움이나 탄력성을 가진 게 아니라 완전히

위축이 된 것입니다. 흡사, 어린애가 이불에 세계지도를 그린 벌로 키를 뒤집어

쓰고 소금을 얻으러 대문을 나설 때 같은 위축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야뇨를 하는

마음의 방심을 소금을 얻어오게 함으로써 위축시키는 거지요. 수에 해당하는

태양한수는 생장화수장에서 간직하는 장에 해당하지요. 미가 함이지요. 그러므로

간직하는 기운이 약해서 오줌을 곧잘 싸는 아이에게 소금을 얻어 오라고 하는 것은

참으로 멋진 조상들의 지혜입니다.

  건드리면 확 움츠러드는 신경초인 미모사(Mimosa)의 위축성과 긴장성이

태양입니다. 등줄기로 얼음물을 흘려 넣는 것과 같은 위축성이라면 이해가 쉽겠지요.

그런데 너무 위축이 되면 생식능력이 형편 없이 됩니다. 꽃을 피우지 못한다거나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되지요. 아이를 너무 눌러 키우면 겁쟁이가 됩니다. 이렇게

태양한수의 기운이 실할 때에는 소음군화로 다스려 주어야 합니다. 자꾸 풀어내리고

발산을 시켜주어야 하지요. 미모사가 잘 자라는 나라는 우리가 가서 보지 않아도

공포정치가 행해져 내려왔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지요. 위축되고 주눅이 들면 잘

크지를 못합니다. 또 겁이 많은 사람은 십중팔구 폭력자이기 쉽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어떤 식물을 갖다 놓아도 그것의 성질과 전반적인 특성을 알 수 있겠지요.

자란 환경과 번성하는 계절과 뿌리 내린 토양의 풍 한 서 습 조 화를

따지기만 하면 간단하겠지요. 겨자는 진흙땅에 심으면 안되고, 목과(신맛을 가진

궐음풍목의 식물)는  통풍이 안 되는 온실 속에서 키우면 열매를 맺지 않고,

숙지황, 이문동(천문동, 맥문동), 황정과 마찬가지로 배추를 모래땅에 심으면

안된다는 이유 정도는 이제 이야기하지 않아도 잘아시겠지요.



@[(6)@]

  산사는 산에서 나는 사과로 고기먹고 체한데 좋다고(채소먹고 체한데는 초과)

합니다. 산사는 육질이 많으므로 통풍이 잘 되는 산 중턱이나 벌판에서 잘 자라고,

고원지대나 척박한 땅에서는 잘 자라지 않습니다. 또 계피나무는 너무 축축한

땅에서는 잘 안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식물에 따라 각기 자생지역이 다르고

환경의 영향을 받는 것은 양명조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도 어떤 식물 열매의

맛을 보거나 잎 등을 보고 자생지역 등을 잘 판별할 수 있도록 관찰력을 기르십시오.

  이번에는 향기입니다. 허준선생이 사향 대신 오래된 절간의 똥으로 병을

치료했다는 이야기를 해드렸듯이 냄새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냄새에는 음인 향과

양인 취가 있습니다. 향은 냄새가 좋은 것이고, 취는 악취지요. 우리가 최루탄 냄새를

맡으며 그 냄새를 좋다고 합니까? 숨이 콱 막히지요. 이렇게 향은 통하게 하고 취는

막히게 합니다. 또 향은 흡, 취는 호하게 하지요. 음(궐음, 소음, 태음)에 속하는

신맛이나 단맛은 삼키고 싶지요. 초할 때 나는 냄새를 보더라도 두 가지가 있습니다.

커피나 콩을 볶을 때의 구수한 냄새와 흑으로 아주 새까맣게 태울 때의 악취가

있지요. 전자는 소음, 후자는 소양에 해당합니다. 발효시키는 냄새나 술익는 냄새

그리고 메주 띄우는 냄새같은 것은 소음군화에 해당하지요.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몇가지 비린내, 지린내... 등은 태양에 속합니다. 비린내도 맡기좋은 것은

태음(향긋한 바다 냄새 같은 것)에 속하고, 맡기가 거북한 것은 태양에 속합니다.

그리고 향이 속으로 들어가는 움직임일 때는, 태음의 향에 해당한다고 봐야됩니다.

궐음에 관계되는 향은 시큼하면서도 아주 산뜻한 것입니다. 산에 가서 바람을 쐬는데

상큼함이 표현할 수 없도록 좋은 때가 있지요. 이렇게 시원하고 상쾌한 냄새같은 것도

궐음에 해당합니다. 수목을 통해서 나오는 바람냄새같은 것이 기분좋은 궐음풍의

냄새입니다. 목욕 중에서도 풍욕에 해당되지요. 수목과 교접을 하면서 땀이 촉촉하게

나도록 뛰는 것이 풍욕입니다. 옛날에 봄바람이 불 적에 신선들은 머리를

탁 풀어뜨리고 바람이 부는 동쪽을 향해서 바람을 쐬었다고하는 말이 있지요. 이것이

풍욕입니다. 그래서 궐음은 익을 때 시큼하게 나는 아주 상쾌한 냄새이고, 소음은

볶을 때의 구수하게 익는 냄새입니다. 향긋한 비린내나 달콤한 냄새는 태음이지요.

  또 향기가 사람의 어떤 감정을 자극시킨다면 어떤 독특한 향이 나올 것 같군요.

예를 들면, 간경화증 환자의 입에서는 간경화증 환자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냄새가

납니다. 위암 환자에겐 위암 환자가 갖는 독특한 냄새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훌륭한 의학도가 되려면 코도 발달되어야 합니다. 구취에도 속에서 무언가

타는 듯한 냄새의 구취가 있고, 비린 구취가 있고, 냄새 맡기 역겨운 것도 있는가

하면 어떤 구취는 산뜻함이 향기롭기까지한 좋은 구취가 있습니다. 이런 예를 통해서

보아도 사람에겐 그사람 특유의 냄새가 있다고 봅니다. 동물에게도 독특한 냄새가

있듯이 사람도 각기 독특한 체취가 있습니다. 인간의 향기가 동물의 그것과 다른 점은

좋은 냄새를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도를 닦아 어느 경지에 오르면 향기가

난다는데 이것이 진짜 향기인 것입니다.

  어떤 병에 걸리면 어떤 내음이 나는 것으로 미루어봐서도 알 수가 있겠지요. 따라서

식물도 어떤 내음이 나는 것이라면 그에 부합되는 성격을 지녔음을 알 수가 있는

겁니다. 환자에게서 어떤 구취가 난다고 하면 어떤 병을 앓고 있는지 알 수 있어요.

위장이 나쁠 때, 비장이 나쁠 때, 간장이 나쁠 때, 심장이 나쁠 때 냄새가 각각

다르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아셔야 합니다. 어떤 사람 입에서 탄내가 자꾸 난다면

그 사람은 초조하다고 볼 수 있지요. '아유-전 자꾸 요새 입안에 단내가 나요'이것은

비장에 열이 있는 징조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입이 써요'이것은 상한병에서

소양병의 증상입니다. 구고, 인건, 목현(목구멍이 마르고 눈이 어질어질한 것)은

소양병에 해당하는 겁니다. 입안이 단 것은 태음으로 족태음비경에 열이 생겼을 때와

비장에 흡열이 생겼을 때 나타나는 증상이지요. '에이, 더러운 세상, 콱 죽어버리고

싶어!'라고 했더니 입이 막 짭니다. 이 경우는 죽어버리고 싶다하는 어떤 공포라든가

긴장감, 슬픔 때문에 입이 짠 것이지요. 또 입이 매운 것을 느끼는 분도 있어요.

매워도 무엇인가 매운 향기이면서도 냄새가 좋은 향기같은 것은 들어마시게 되는

것이지요. 소음이나 궐음이나 태음에 속한다고 볼 수 있더라도 매우면서도 향기라고

볼 수 없는 톡 쏘는 냄새, 그러니까 신향이 아니고 신취인 고춧가루 냄새를 갑자기

맡으면 흡하게 됩니까? 후~후 하고 내뿜지요. 톡 쏘는 매운 냄새, 아주 자극적인

냄새는 양명에 속합니다. 기분 나쁜 노린내나 털이 타는 냄새는 대체적으로 태양에

속합니다.

  이렇게 공부를 하고나도 식물관찰을 가보면 꽉 막혀버리지요. 무슨 기운을 어떻게

관찰합니까? 부분부분이 다르지요. 뿌리는 소음인데 지상으로 올라온 부분은

태음습이 되고 열매는 궐음풍이 될 수 있습니다. 가시가 있다면 양명도 있는 것이고,

잎이 톱니바퀴처럼 생겼다면 소양도 있는 것입니다. 식물이 꼭 한 가지 성질로만

된 것이 아니라 이렇게 여러 가지를 두루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느 부분을

쓰느냐에 따라서 그 약성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시가 있지만 습지에서

자랐으니 태음습이겠지'하고 쓰면 안됩니다. 어느 땅에서는 고염이 되고 어느

땅에서는 감이 된다고 합니다. 이렇듯 특수하게 변하는 경우도 관찰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이러한 상황은 그때 그때의 경우에 맞게 관찰을 해야지, 외워서도

안되겠지요. '감이군! 이것은 앞으로 어느 정도 크고 그 모양이 어떻게 되겠군!'

이렇게 예언을 할 것이 아니라 그 땅이라든가 환경 등을 충분히 살펴서 변종이 되는

경우까지도 읽어내야 합니다. 첫째는 부분 부분의 다른 점을 참조하고, 둘째는 부분의

이질요소를 참조하고, 셋째는 개화되는 시기를 참조하세요. 어느 철에 번성하느냐에

따라 성질상 큰 차이가 나기 때문입니다. 예로 쌀과 보리 중 어떤 것이 더

차겠습니까? 보리가 더 찹니다. 오운 육기를 공부한 사람이면 자연관찰을 자꾸해야

됩니다. 여름을 지나는 쌀이 보리보다는 덥기 마련이지요. 그래서 같은 술이라도

보리술이 더 차죠. 여름에 피는 꽃 나무와 겨울에 피는 동백꽃과는 차이점이 많지요.

동백꽃 씨는 기름이 많아요. 그런데 여름꽃의 씨에는 기름이 없습니다. 겨울에 피는

꽃들은 대체적으로 다 기름이 많아요. 그것은 족소음신경이 기름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피가 수태양소장경에 해당한다면 기름은 족소음신경이 되고 인체에

비유한다면 정에 해당합니다. 기름이 많다면 정력적인 사람이고, 피가 많으면 부자로

잘 사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차이점을 잘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습관 때문에 인생의 진리를 곧잘 놓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도를 깨닫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굉장히 어려운 이유 때문이 아니라 사소한 습관

때문이지요. 어떤 부자가 눈이 튀어나오는 병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의사에게

보였더니 의사는 "아무래도 위장이 잘못된 것 같으니 내시경을 한번 투사해 봅시다"

위가 잘못되었으니 잘라내는 것이 좋겠다하여 수술을 하였지만 튀어나온 눈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다시금 흉곽내과를 갔습니다. 폐를 찍어보니까 아무래도 폐의

기관지를 수술해야 할 것같다면서 기관지의 일부를 수술해서 제거했지요. 그러나

소용이 없었어요. 이번에는 비뇨기과를 찾아가보니 "당신은 너무 색을 밝혀서

아무래도 전립선에 염증이 있는 것 같아요" 고환의 일부를 잘라야 한다고 해서 한차례

수술을 또 받았습니다.

  그래도 처음의 눈알이 튀어나온 것은 조금도 변화가 없었습니다. 치과에 가봐도

별로 소용 없었으며, 안과에서 눈이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이상한 안경을 맞춰줍니다.

이쯤되고 보니 병은 고사하고 사람 꼴이 말이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정신과 의사를

찾아 갔습니다. 정신과 의사 가로되 "여보시오. 여기 잘라내고 저기 잘라내고 당신은

무슨 재미로 인생을 삽니까? 이제 앞으로는 당신하고 싶은 대로 하시오, 여태까지

먹고 싶은 것 못 먹고, 입고 싶은 것 안 입고 모은 돈 아닙니까? 그래서 눈알이 자꾸

튀어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부자는 은행에 맡겼던 돈을 몽땅 찾아가지고는 집과

승용차를 샀습니다. "다 부서진 몸으로 오래 살기 틀렸으니 쓰고나 가자!" 이젠

단벌신사도 면해보고 전에는 와이셔츠 하나로 10년을 견디었는데 한번에 10벌쯤

맞춰입자 하고는 양복점을 찾았지요.

  양복점 재단사가 기장 몇 인치 허리 몇 인치... 하다가 "목 16인치"라고 하거든요.

"아니? 무슨 소리야! 내 목은 지난 50년동안 14인치인데, 난 그 이상의 치수로는

입어본 적이 없는 사람인데" "선생님 목 사이즈는 16인치 입니다" "아니오. 14인치가

내 사이즈요" "진짜로 선생님은 16인치라니까요" "아! 글쎄 14인치라니까" 이러다가

싸움이 벌어질 판이 되었는데, "정 그러시다면 할 수 없습니다. 14인치로 원하시니

해드리긴 합니다만 손님께서 목이 졸려서 눈이 튀어나오고 혓바닥이 빠져나오고

눈알이 퉁퉁 붓는 병에 걸릴 확률이 많습니다" "무엇이라고? 당신이 내 병을 어찌

그리 잘 아시오?"

  이사람 멀쩡한 몸 병원다니며 다 망치고난 뒤에 우습지도 않게 깨달았지요. 이제

무슨 소용이 있어요. 와이샤쓰 2인치 차이 때문인걸 갑상선의 이상이라느니, 가슴이

어떻다느니, 신장이 어떠니 불알이 어떠니 이빨이 어떠니 했던 엉터리 같은 의사들

만나가지고 노리개가 되었는데 알고보니 병의 원인이 고작 와이샤쓰 2인치 차이에

있더라는 이야기지요. '와이샤쓰 2인치 차'. 깨달음이란 이렇게 쉬운 겁니다. 아주

중요한 것을 여러분들의 소홀함 때문에 '와이샤쓰 2인치 차'의 벽을 뛰어넘지 못하는

것입니다. 착각하지 마십시오. 이와 같은 것들이 여러분들의 깨달음을 방해하고

있으니까요.

  "방약합편"서문을 보도록 합시다. 어떤 책이든지 읽을 때 저자의 서문이라든지

역자의 후기를 안 읽는 사람은 그 책을 읽을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 안에는 필자의

진심 토로가 몇마디 들어있지요. "방약합편"은 "동의보감"을 다이제스트하여

만들었기 때문에 돌팔이들을 많이 양성시켰다는 어느 한의학자의 항변도 있습니다만

그런 사실을 저자가 예상 못하고 책을 쓴 것은 아니지요. 책을 펴낼 적에 그러한

염려를 무척이나 했습니다. 한약인구라고 해야 될지 말아야 될지 모르는 떠돌이가

3만명, 한의사가 약 4~5천명 그리고 돌팔이와 한약업사, 거기다 건재약방 사람들까지

합치면 총 한약인구가 약 10만명쯤 되는데 그 사람들 중에 "방약합편"한권 안들고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어요. 여러분의 아버지들만 보아도 좀 유식하다 하면

"방약합편"을 보고서 "얘야, 가서 십전대보탕 좀 지어 오너라" "가서 쌍패탕 좀 지어

오너라"고 합니다. 아무리 "방약합편"이 옛 사람들의 필수 애독서라 해도 이건

안 되지요. 음양의 이치를 깨닫지도 못한채 그렇게 남독하면 곤란하지요.

난 레미제라블을 읽었다. 어떻게 흘러가다가 끝 부분에서 죽었다. 또는 복수를 하고

결혼을 했다고 이야기하지요. 우리는 소설을 그렇게 읽습니다. 지금은 다이제스트

시대입니다. 이 강의도 어떤 의미로는 "동의보감"의 다이제스트입니다. 그런데 저는

다이제스트가 가지고 있는 나쁜 면보다 좋은 쪽으로 많이 생각하고 있지요. 그러나

음양관도 없이 마구잡이로 무슨 병에는 무엇, 그냥 무슨 탕 무슨 탕 무슨 탕 하는

정도로 오용이 되면 "방약합편"의 해독은 무지하게 크게 되지요.

  제가 떠돌아 다니던 시절에 어느 돌팔이가 경영하는 집에 의사로 들어가고,

그 사람은 업주로서 있었는데, 글쎄 이 사람이 내가 자리만 뜨면 자꾸 진찰실로 들어

오려고 폼을 잡아요. 이 사람이 환자를 보면 병명이 한결같이 같아요. 무어라고

하냐면 무조건 "신우신장염" 눈이 아파서 오는 경우에도 그렇고 위장이 아파서 와도

신우신장염... 조그만 종이에 처방을 적는데 하나같이 오적산 하나 뿐이었어요.

무조건 이 약을 줍니다. 정말 사람 잡는 것이지요. 쇠고랑차기 딱 알맞죠. "방약합편"

중의

처방 하나로 어쩌다 환자가 나으면 그것만 외워서 쓰는 사람들도 있지요. 이 또한

엄청나게 큰 잘못입니다.


  "방약합편 서문"

  "오호라! 선친 혜암공이 저술한 방약의 서적이 상당히 많으나, 거기에는 모두

저자인 자기의 이름을 적어 두지 않고, 다만 시치자로 하여금 잘 치료하기에 손쉽게만

하였으니, 남에게 지식을 공개하면서 자기를 내세우지 않음이 이러하였다. 그의

저서 중에 "활투"라는 책이 하나 있는데, 글이 간명하고 내용이 풍부하며 조리가

명료하여, 누구나 한 번 보면 병증을 관찰해서 치료할 수 있었으므로, 본래 의학을

전공하지 못한 사람조차도 이 책을 갖고자 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러나 이것을 인쇄 발간하여 공급하지 못하고 걱정하고 있던 중에, 마침 동네

분들이 인쇄를 도모하여 본을 가지고 와서 아버님께 고하니, 아버님이 말씀하시기를

'책이란 물론 펴서 전하는 것이 가당하나, 그것을 활용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

달렸으니 서둘러 펼 필요는 없으며, 또 사람들이 본초를 읽지 않는데

치료법만으로서야 어찌 활투를 다 한다고 하겠는가. 이와 같은 나의 생각은,

구세코자 하는 뜻은 간절하나, 역시 증상이 비슷한 딴 병으로 알고 잘못 시치하지나

않을까 두려워 망설이오'라고 하였다. 그래도 동네 분들의 요청이 더욱 간절하매

세상에 수응하려는 뜻을 끝내 막을 수가 없었다. 아버님께서 연로하시기 때문에

몸소 책의 초를 잡을 수가 없으므로, 이 자식에게 책을 넘겨주면서, 서례는 왕인암의

"본초비요"와 "의방집해"를 합편한 방법을 본뜨되, "손익본초"를 먼저 놓고 거기에

용약강령 및 구급과 금기 등 십여 가지를 더 보태어 "방약합편"이란 책명을 붙이라고

명하셨는데, 일이 반도 진척되지 못했을 때에 아버님이 우연히 병을 얻어 '내 병은

회복되지 못할 것이니, 약으로도 목숨을 연장할 수가 없다. 완전무결한 양의란

그 생사를 식별하는데 있다'고 말씀하시고 끝내 약을 복용하지 않다가, 이 해 8월

17일에 별세하셨다.

  아아 슬프다! 자식으로서 선친의 세법을 계승하고 아버님의 책을 채 다 읽지도

못했는데, 하물며 아버님이 전하신 바를 감히 초잡을 엄두가 나겠는가. 그러나

동네 분들이 시작한 판각이 중단되는 것을 염려하지 않을 수가 없어, 장례를 치른지

두달만에 눈물을 닦으면서 일을 끝내어 이것을 판각에 돌렸으니, 다소 잘못된 데가

있음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또, 책을 펴지 않았다고 한 것은, 선친의 뜻을 좇아서

의명을 세상에 알리고자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상으로 본서의 전말을 약술하고,

이에 관한 감회를 덧붙인다. 아아! 이 책을 보시는 분들이요, 아버님의 노파심을

상기해주소서.

  고종 21(서기 1884)년 갑신 12월 상순. 혜암공의 아들 불초 황필수는 피눈물을

머금고 삼가 씀.


  "본초도 읽지 않고 입경(다른 말로는 귀경이라고 함. 약물의 작용이 장부경맥의

관계와 결합해서 어떤 약이 어떤 장부경맥의 병변에 대하여 일정한 치료작용을

하는 것을 말함)도 모르고 맛도 모르고 볼 줄도 모르는 자들에게 치료법만을 가르쳐

주고서 어떻게 활용을 다 하였다고 할 수 있겠는가. 널리 펴서 세상 사람을 이롭게

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증상이 비슷한 다른 병으로 잘못 알고 시치하지나

않을까 두렵다"

  우리 사부님과 동명인 혜암 공이 하신 말씀입니다. 그 첫째는 증상은 같은데 약이

다른 경우입니다. 예를 들면 부종에는 음허부종과 양허부종이 있습니다. 음허부종에는

육미지황탕에 우등, 차전자를 가미하여 처방합니다. 양허부종일 때에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같은 부종이라 하더라도 기가 부족하여 부종이 왔다면 무엇이 좋을까요?

보중익기탕에 이뇨제를 가미하면 좋습니다. 퉁퉁한 사람들이 기가 부족하여 허성으로

오는 양허부종에는 곽향정기산에 이뇨지제를 가미해도 좋습니다. 기를 보충시키는

약이니까. 신장염에 무조건 이뇨제를 쓰면 부종은 다 낫습니까? 음허와 양허의 구별이

없으면 자칫 큰일나는 거지요.

  여러분 앞에 두통환자가 찾아왔습니다. 두통에는 '만형자산'이 얼른 떠오르겠지만,

무슨 두통이지요? 양명두통? 태양두통? 소양두통? 사람은 뚱뚱해? 말랐어? 등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이것은 한의사의 기본자세입니다. 여자라면 경도를 물어보아야

되고 성격, 취업, 환경, 취미 등을 수사관이 수사대상을 면밀하게 검토하듯 신중해야

합니다. 실제로 수사보다도 더 중요한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경솔하게 대하는 사람이

많지요. 수사관이 눈을 부릅뜨고 쳐다보는 것처럼 우리도 유심히 보아야 되는데도

외운 것으로만 대충 넘어 가지요.

  둘째는, 증상은 다른데 약이 동일한 경우입니다. 약은 똑같이 쓰는데 증상이 다르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옛날에 별명이 김 사물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이명증으로 온 환자에게 사물탕, 안부충혈로 온 환자에게도 사물탕,

견비통으로 왔는데도 사물탕, 구갈로 왔는데도 사물탕, 원 세상에 다섯 사람이

다녀가도록 계속 사물탕만 쓰라고 하거든요. 그러니까 그 밑에서 배우던 제자가

무조건 사물탕이면 되는줄 알고서는 12살에 들어와서 겨우 스무살인데 바로 개업을

하고 싶어서 안달복달을 하는 겁니다.

  옛날에는 절대로 30년 제자 노릇하기 전에는 개업을 안시켰지요. 허준선생이 개업을

한 때가 언제인지 압니까? 40대 넘어서지요. 고생을 무지하게 했지요. 유의태

선생님 집에 가서 10년을 똥빨래해주고 그 아들에게 얼마나 멸시를 당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 김 사물의 제자가 10년만에 자립해서 나가겠다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김 사물이 "나가는 것은 좋은데 너 내이름으로 개업하지 마라"고 했지만

그렇게 안 할 리가 있겠습니까? 그 밑에서 10년이나 있었는데 10년 동안 맨날 본 것이

사물탕인데 음과 양을 동시에 볼 줄 아는 관이 있을리 없지요.

  칼날이 양쪽에 다 있는 양날검을 선가에서는 '깨달음'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도무지

음양관이라곤 없는 제자놈이 급기야 김 사물한약방 옆에다 원조김사물한약방이라고

간판을 내 걸고는 사람들을 현혹시켰다고 합니다. 해장국 원조인 할머니는 그저

해장국을 맛있게 끓이는데 전념하는데 바로 옆에 '원조해장국', 또 그 옆집에

'진짜 원조 해장국' 또 그 옆집에는 '원원원조 해장국' 개업이야 누군들 못하겠어요?

관이 없던 그 제자놈은 6개월도 채 못되어 줄행랑을 놓았다고 합니다. 이건

실화입니다. 이렇게 음양관이 투철하지 못한 사람들을 염려하여 "방약합편"의 저자도

책을 지음에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방약합편"의 약성가 첫 약물이 인삼이지요. "인삼미감보원기

지갈생진조영위" 옛날엔 칠언절구로 약성을 외웠습니다. 약성강령도 빠짐없이

읽어보도록 하세요. 그런데 "일이 반도 진척되지 못했을 때 오호통재라 내 병은

회복되지 못할 것이니 약으로는 목숨을 더 이상 구할 수가 없다"라고 했습니다.

'양의는 생사를 식별하는데 있다'며, 그래서 약도 복용치 않으시다가 8월 17일에

돌아가셨습니다. "아! 슬프도다. 오호라! 이 책을 보시는 사람들이여, 아버님의

노파심을 상기하라 공의 노파심 헤아리길 간절히 바라노라... 외로운 아들 피눈물을

머금고 삼가 쓴다"고 했습니다. 참 기가 막힌 겁니다. 그리고 혜암선생의 원래의

서문은 "방약합편 원인"바로 뒤에 있는 "의방활투원서"입니다. 그 내용 중에 "지금의

세상 일이란 규범은 전할 수 있어도 솜씨는 전하기가 어려운데 한 때의 사견으로써

어찌 천하의 만가지 병변을 다 알게 할 수 있겠는가. 설령 그렇게 한다해도 그 사람의

능력이 부족하면 되풀이 설명 해야만 의술이 늘 터이니 이를 어찌 감당하겠는가"라고

되어 있습니다.


  보슬비가 나의 옷을 적실 때

  나는 보지 않고 붓다를 본다

  꽃잎이 소리없이 떨어질 때

  나는 듣지 않고 붓다의 목소리를 듣는다.


  의자들이 환자를 대할 때의 마음자세를 적절히 표현한 선시의 하나입니다.

  하나의 졸렬한 사견으로 천하의 만변하는 이치를 어떻게 궁구할 수 있겠는가?

한 마디로 압축하면 "도 닦아라!"는 말씀이지요.

  "투약은 형편에 따라서 적당하게 증감하고 치유는 경우에 따라서 선후를 가려서 할

 것이다" 혜암선생이 제가 그동안 입이 아프게 강조했던 말들을 딱 한마디로

간추려서 써 놓았습니다. "치유는 경우에 따라서..."라는 부분의 '경우'옆에다가 크게

괄호를 하고는 '음양'이라고 써 넣으세요. 음양에 따라서 먼저 치료할 것과 후에

치료할 것 즉 오래묵은 병, 최근의 병을 가려서 다스리라고 했습니다. 한 환자가

당뇨병을 10년 동안 앓아왔고 최근에는 위궤양까지 얻었다면 그를 대한 의사는 먼저

위궤양을 다스려야 합니다.

 

  "열 가지 병에 동일한 처방을 쓰기도 하고, 하나의 처방에 여러 가지 약제를

합하기도 한다. 초보자는 예방에서 뽑아쓰기가 어렵겠기에 방문을 분리한 다음에 이런

삼계통으로 하여 보익, 화해, 공벌의 세 가지 품성을 알게 하고 따로 운용법을 조금

설명하여 배우는 이가 책만 보면 대충 치료 할 수 있게 했다. 이것은 옛 사람이

한 것은 아니나 역시 대증투약 정도는 될 것이다. 이대로 따라서 널리 응용하는 길을

추구하면 의문에 들어갈 것이다"

  "동의보감"을 기본으로 하는 이 활투를 집대성해서 편집한 곳이 '유예실'이라고

했습니다. 유예실이란 혜암공의 서재입니다. 1807년(순조 7년)에 태어나셨는데

고종 때에는 전의도 지냈습니다. 또 찬화당이라는 약국을 열었던 당대의

명의였습니다.



@{

  동양의학혁명

  (사암도인 침술원리

  40일 강좌 외)

  총론


  전11권 중 제3권


  강론:금오 김홍경

  도서출판 신농백초


  점역처:대한적십자사

  서울특별시지사 점자도서실

@}

@[(7)@]

  이 단락에서는 첫째, 선문답의 등장이 많다는 점이 특징이고 둘째, 유심적인 관찰에

의한 기존 음양관의 혼란유발이 또한 특징입니다. 이 오운육기를 그동안에도 자꾸

조금씩 나열해 드렸던 이유는 전체성을 드러내기 위함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알고

계시겠지만 갑 을 병 정...을 천간이라고 하고 자 축 인 묘...를 지지라고 합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이런 말을 써 놓았는지 알 수가 없고 무슨 뜻인지 저도 아직

모르겠습니다.

  지지를 보면 동물에 대한 취상이므로 이해할 수가 있지요. 천간은 오행곱하기2,

지지는 육경곱하기2로서 오행과 육경이 둘로 나뉘어진 상황임을 알 수가 있는데

그러면 왜 오행이면 다섯 가지만으로 분류를 하고 육경은 여섯 가지로 나누지 않고

둘로 나누는 상황이 필요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같은 소음이라 하더라도

양소음, 음소음이 있고, 목인 봄(춘)이라 하더라도 양춘이 있고 음춘이 있다는

말입니다. 여성을 보더라도 여성적인 여성이 있고 남성적인 여성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이것을 나누고자 하면 한이 없어요. 편의상 이렇게 둘로 나누어 놓은

거지요.

  우리 인간을 볼 때 최초에 남자와 여자가 분리되고, 남자와 여자가 분리된 것에서

다시 남성같은 여성, 여성같은 남성으로 분류하고 이것을 여성같은 남성 중에

더 여성같은 성격... 이런식으로 분류해 보는 겁니다. 그러니까 기본적인 곱하기

나누기를 한 십간십이지는 64괘에서 수화개제, 화수미제, 중천건, 중지곤괘를 뺀

60괘가 서로 맞물고 돌아가는 겁니다.

  토중에도 로방토가 있고 벽상토가 있지요. 길거리에 있는 흙과 벽에 붙어 있는

흙이죠. 또 목이라 하더라도 평지목과 산중목, 갑자을축 해중금... 이런 말들이 있습

니다.

  이것이 사주 보는 데만 쓰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 복합적인 상황에 대한

예만 제가 들어드리겠습니다. 이 오운육기 각론은 너무 어려워서 확대해석이

어렵습니다. '갑자을축 해중금'이런 말이 나오는데 저는 갑자을축 해중금에서 꽉

막혀버리면 그 다음으로 진척을 안하는 사람이예요. 그래서 연구를 하다가 시간도

없고 놀기에도 바빠서 공부를 못했습니다. 같은 금이지만 옛사람들은 음금이 있다고

본 것이지요. 그러면 해중금 즉 바닷속에 있는 금과 모래속에 있는 사중금은 무엇을

뜻하는 것이겠습니까?

  옛날 선승들은 수수께끼를 좋아했습니다. 저는 여학생들이 오면 꼭 물어 보는 것이

있는데, 여학생들만 한 번 대답을 해 보세요. "무우말랭이에 꼭 들어가는 것이

뭐겠습니까?" 공안법에서는 다른 생각으로 머리를 돌리지 않는 것을 칭찬합니다.

무우말랭이에 꼭 들어가는 것은 무우거든요. 그런데 학생들은 이것을 꼬집어 내지

못하고 고춧가루, 참기름, 설탕, 미원 등... 복잡하게 대답을 하거든요. 계속 '틀렸

다,

틀렸다'라는 것을 되풀이 해 듣다보면 그제야 무우 라는 대답이 나오는 거예요.

공안에 접근하는 길은 단순해야 합니다. 있는 그대로를 보는 눈이 바로 공안에 근접해

있는 거지요. 십우도(십우를 나타낸 그림. 선을 닦아 마음을 수련하는 순서를

표시함 것임. 십우란 자기의 본심을 찾아 진리를 깨닫는 순서. 인간의 본심을 소에

비유하여 소를 찾고 얻는 순서와 이미 얻은 뒤에 주의 할 점을 10가지로 설명함)중의

하나를 보면...

  반본환원

  본래 청정하여 한 티끌도 받지 않는다.

  유상의 영고성쇠를 보고 무위의 응적에 이르니

  환화와 같지 않으므로 어찌 수치를 가할 것인가.

  수록 산청으로 앉아서 성패를 본다.


  본래청정하여 불수일진이로되

  관유상지 영고하고 처무일위지의숙하니

  부동환화개가수치리요

  수록산청하니 좌관성패로다


  오운육기는 이 정도로 천진한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겁니다.

교활하게 잘 돌아가는 머리가 아니라 천진한 눈, 순수한 머리만이 이것을 이해 할 수

있는 겁니다. 저희 한의원에 외국인 교수 하나가 "주역"을 배우러 가끔 오는데

"주역"64괘는 저도 잘 모르니까 주로 유심적인 것을 이야기 해 주고 있죠. 그런데

이 친구가 저에게 하도 공안 문제를 가지고 당하다 보니까 어느날은 자기가

공안 문제를 하나 내겠다고 하더라구요. 사실 그 친구의 'American chicken' 공안은

조금 저차원 공안이긴 하지만 여러분들이 한번 생각을 해 보십시오. 제가

여러분들에게 공안법을 강조하는 이유는 지금까지 여러분들은 "통밥"을 굴리는

공부만을 해 왔으니까 여기서는 "통밥"을 쉬는 공부를 하라는 것입니다.

  치킨공안(?)이라 하는 것은 미국에서 어린이들이 많이 하고 있는 것인데, "병아리가

횡단 보도를 건너가고 있습니다. 왜 건너 갈까요?" 길이기 때문에...?, 집이

그쪽이기 때문에...?, 건널목이기 때문에...?, 가고 싶어서...?, 자기도 모르게...?,

다 틀렸습니다. 또 다른 분 대답해 보십시오. 신호등 불이 켜져서...지금 가장 통밥을

잘 굴리는 사람의 가장 유치한 통밥이 하나 나왔습니다. 벌써 파란 신호등까지 생각을

한겁니다. 지금 신호등 불이 켜져서라고 대답하신 분 성이 무엇입니까? 허 씨요? 예!

앞으로 학생의 이름은 '허 유통'이라고 하십시오. 유치한 통밥의 대가, 허유통 씨,

머리 좋은 사람들은 파란 신호등이 있으니까, 엄마 보고 싶어서, 엄마 따라서,

켄터키 치킨 집이 있어서 등등... 온갖 대답들이 다 나오는데 이것은 지식입니다.

이 답은 간단합니다. 건너편으로 건너가기 위해서지요. 가만히 생각을 해 보세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오운육기에서 갑자을축 해중금, 사중금 또 로방토, 벽상토, 평지목 등

이런 말들은 여러분이 알고 있는 오행을 가지고 곱하기 나누기 하시면 안풀어지는

겁니다. 제가 이것을 강의 듣다가 강사분도 잘 모르는 것 같아서 질문을 그만

두었었는데 어떤 주역학자가 시원하게 풀어주더군요. 그 분은 완전히 직관에 의해서

설명을 해 주셨는데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오행의 이론에 의해서 해중금은 금과 수,

사중금은 금과 금이 아니고 해중금이라고 하면 바다 속에 금이 있는 그 상황,

사중금은 모래 속에 금이 있는 그 상황을 보고 그 차이점을 생각하면 되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오행적으로 금과 수가 부딪치는 상황을 생각하지 말고 어떤 비교기준에

의해서 이 말을 써 놓은 것이므로 그 비교기준이 어디에 있겠느냐 하는 것을

생각하라는 이야기입니다.

  또 벽상토, 벽에 바른 흙과 로방토, 길가에 버려진 흙이라고 했을 때 그 기준을

어디에 두었을까요? 모든 것은 기준이 있을 때 음양이 정해지는 것이지, 기준이

없으면 음양도 정해 질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것은 사주볼 때 소위 명리학(하늘에서

주어진 명과 자연의 법칙을 연구하는 학문)에서 주로

쓰는데 인간사에 이용할 때는 "당신은 꼭 로방토와 같습니다. 길거리에 있는 흙과

같습니다"라는 말을 합니다. 아무튼 어떤식으로든 확대해석을 해야 하는데 그 기준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무지하게 어렵지요. 여기서는 직관이 필요한 겁니다.

그러니까 제가 족궐음간경은 피리요, 어쩌구 하면서 취상을 하였는데 어느 정도

여러분들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깊이 생각해 보시고 명상 재료로

삼으세요. 이것을 해석을 잘 하면 오운육기 명리학이 끝나는 것이라고 하던데 어떤

선생님은 처음에 오행적으로 공부를 하다가 주역공부를 열심히 하면서 그제서야

인간사에 비유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하더군요.

  아까 어떤 여학생이 해중금과 사중금을 유용과 무용의 용, 불용의 차원이

아니겠느냐고 이야기 했는데 이 지구상에는 모든 것 상대적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유무, 귀천, 강약, 상하, 빈부, 완급, 대소, 생사...이런 것을 30가지로 분류한

것에 불과한 거지요. 그러니까 이러한 괘가 나오면 해중금과 사중금의 차이점을

보아야지 어느 한쪽만을 공부한다고 하면 100년을 공부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앞에서도 말씀을 드렸듯이 "내경"오운육기편에 보면 음양은 5로도 10으로도 천 만...

으로도 나눌 수 있다고 했거든요. 제가 "내경"에 있는 근거를 대드리면 여러분들은

아하! 이런 것을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로구나 하는 것을 느끼실 겁니다.

"내경"오운육기편 오운행대륜에 보면


  "여가 알기에는 십간의 오행적 관계나 십이지의 방위적 관계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상의 음양이나 오행의 분류와는 다르다고 생각하는데, 대체 이것은

어떻게 된 것인가?" 기백이 대답하여 말씀드린다. "그것은 분명한 도리가

아니겠사옵니까? 귀유구가 아뢰온 것은 천지를 운영하는 오운 육기상의 음양이나

오행이옵고, 폐하께서 말씀하신 것은 단지 인간들에게 관계가 있는 일반적인 음양으로

이것 또한 오행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다른 2개의 법칙을 합하여 생각해 보아도

거기에서 일정한 규칙을 발견할 수 있는데 대체로 음양 등 2가지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활용하여 십으로 분류하거나 백으로 분류하거나, 혹은 또 천으로도

만으로도 분류할 수는 있는 것이므로 형편에 좋도록 적의 융통무애하게 분리하면

좋을 것이옵니다. 이러한 이유로 오운육기의 음양 오행의 이치가 상식적인 음양.

오행의 법칙에서 벗어나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은 그것대로 이것은 이것대로

좋은 것이옵니다" (오운행대륜)


  그러니까 오운이라고 하는 것은 사계절의 변화, 즉 춘 하 추 동이고, 육기라고

하는 것은 풍 한 서 습 조 화인데 봄이라고 하여 바람만 있습니까? 태양이 비치고

추운 날도 있고 풍 한 서 습 조 화가 다 있지요. 그러므로 지지라고 하는 것은 사실은

천기, 즉 기운에 해당하는 것이고 천간이라고 하는 것은 춘 하 추 동의 변화를 말하는

겁니다. 대다수의 많은 학생들이 오운육기라고 하면 굉장히 어렵게 생각을 하는데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제가 여기에서 강의를 한다고 하니까 어떤 교수들은

"그 사람은 오운육기파야 오운육기파..." 그렇게 이야기들을 한다고 하던데 아니!

세상에 오운육기파가 어디에 있습니까? 오운육기라고 하는 것은 우주의 실상을

종합해서 이야기 하려는 노력인데 우주의 실상을 파악하는 데에 파가 어디에

존재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선입관을 가지지 마세요.

  제가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오운육기는 갑자을축...에 대한 해석이 아니고,

여러분들이 앞에서 공부한 육기적, 차원인 소음, 궐음, 태음, 소양, 양명, 태양과

여러분이 알고 있는 목, 화, 토, 금, 수를 혼합하여 얼마나 확대해석을 잘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확대 해석을 잘해야 명리학의 대가가 되고 또 한방으로 들어오면

기후라든가 사람의 병변을 보는 대가가 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해중금에 대해서

한 번 해석해봐라" 이런 것은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어떤 금에 대비된 해중금이냐

하는 기준이 있어야지요.

  황제가 기백에게 "짐이 듣기에는 십간의 오행적 관계나 십이지의 방위적 관계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상식적인 음양이나 오행의 분류와는 좀 다르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본인도 이 점에 동의합니다. 예를 들어 소음군화는 방위상으로 어디에

속해야 할까요? 일반적인 오행상으로 보면 남방에 속해야 합니다. 수소음은 남방에

속한 것이 사실인데 족소음은 제일 북방에 속해 있거든요. 또 양명조금만 하더라도

서방에 속해야 하는데 수양명은 동방에 속해 있거든요. 더구나 수양명같은 경우는

오운과 육기가 모두 금인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참 이상하지요. 제가 앞에서 조금

이야기하다가 그만두었는데 겨울철에 우물물이 따뜻해지는 것과 여름철에 우물물이

차가와지는 것이 단순히 감각적인 차원이겠습니까? 아니면 실제로도 온도가 변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단순히 감각적이라는 쪽이 절대적으로 우세할 겁니다. 그렇지만

몇몇 분은 실제로 온도의 변화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여러분들이 온도계를 가지고 실험해 보세요. 단순히 감각 차이라고

중고등학교때 배웠다 하더라도 그것이 틀릴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서

여름철에 떠온 샘물을 더울 때 먹으니까 시원함을 느낀다고 했는데 냉방이 잘 된

방에서 그 샘물을 마신다고 하면 다시 따뜻함을 느낄 수 있을까요? 또 겨울철에 먹는

샘물이 춥기때문에 따뜻함을 느낀다면 히타 장치가 잘된 방에서 그 샘물을 먹는다면

시원함을 느낄 수 있을까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이것을 실제로 실험해 보세요. 제가

지금까지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기존의 사고방식에 많은 혼란을 드렸는데 그 이유는

제가 오운육기를 설명하면서 말씀드린 겁니다.

  황제는 십간십이지에서 혼란을 느껴 "어째서 소음이 북방으로 가고 상식상의

음양이나 오행의 분류와 다른 것이 어떤 연유인가"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이에 기백은

"그것은 바로 당신이 알고 있는 인간사에서만의 이야기이고 천체 우주의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겨울이면 무조건 추운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은 꼭 그런것만은 아니죠.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에서 이것을

평면적으로 본다면 임계는 북방수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내용상으로 보면 갑기 합토가

되거든요. 솔직히 내용상의 문제는 저도 어려워서 모르겠고 이걸 설명할 수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무튼 임계는 북방수로 이것이 풍 한 서 습 조 화와 서로

어울려서 돌아가게 됩니다. 그러니까 겨울철에 바람이 많다고 하면 임과 궐음풍이니까

임사가 되고, 겨울철에 유별나게 춥다고 하면 태양한수에 해당하는 진 술이 더해지게

되면 임술이 되겠지요. 하지만 오운육기를 해석하는 일은 신중해야 합니다. 위에서

말한 예는 여러분들을 평면적으로 이해가 쉽도록 하기 위해서 드리는 말씀이니까

이것을 외우시면 절대로 안됩니다.

  옛날에 제가 오운육기를 배울 때에는 오운육기를 이해하려면 모닥불을 피워놓고

한번 관찰해 보고 낮의 모닥불과 밤의 모닥불을 관찰해 보라고 했거든요. 똑 같은

소음군화라고 하더라도 춘하추동에 작용하는 것이 각각 다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상상력과 추리력을 많이 키워야만 합니다. 특히 지금 말씀 드리는 부분은

더욱 그러하지요. 제가 여러분에게 육십갑자를 써오라고 했는데 이것은 꼭 쓰셔야

합니다. 그렇다고 저는 그것을 외우라고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것은 한 번

씀으로해서 그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한 것입니다. 또 한 가지 무조건

외우지 마시고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갑자년이라고 하면 그 갑자년의 의미를 터득한 사람만이 오운육기에

접근한 사람이죠. '천화동인'의 괘가 있다고 할 때 1효는 어떻고 2효는 어떻고를 외우

것보다 천화동인의 천괘와 화괘를 확실히 고민하여 보고 자기 나름대로 연구하여

생각해 본 사람이 진리에 가깝게 접근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육십갑자를 써 보면서 그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이 괘가 무슨 괘입니까? 족소음신에 해당하는 지뢰복괘죠. 위에 있는 괘는

무슨 괘입니까? 팔곤지괘에 해당합니다. 여러분들 지금 팔괘를 모르시는 분이 있으면

절대 안됩니다. 팔곤지괘는 임맥에 해당하고 아래에 있는 괘는 사진뢰에 해당하는

소양경입니다. 그러면 소양경이 가지고 있는 정서적인 배경은 쌀쌀맞고 남에게 모욕을

받았을 때의 느낌이겠죠. 그러니까 상화만 하더라도 '인신상화의 해에는 장군이

태어난다. 난리가 일어날 가능성이 많다. 더위가 밀어닥칠 수도 있다. 가뭄이 온다'

등의 여러가지의 해석이 등장하게 되죠. 또 인신상화가 들어간 사람은 '장군감 아니면

깡패다'라고도 하는데 하나는 좋게 작용한 것이고, 하나는 나쁘게 작용한 겁니다.

  우리가 선천과 후천의 이야기를 참 많이 하고 있는데 이 선천과 후천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여기에 맥문동씨가 있다고 합시다. 본래 맥문동종자는 좋은데

바람에 날려서 건조한 땅에 떨어졌다고 하면 이건 선천(맥문동종자)은 좋은데 후천

(건조한 땅)이 나쁜 경우죠. 그런데 이 맥문동 종자가 습한 땅을 만났다고 하면

선천도 좋고 후천도 좋은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아주 지혜도 좋고 공부도

잘 할 수 있는 머리를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태어난 곳이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게 되어 공부를 하려고 하면 엄마가 나가서 돈벌어야 하니까 동생 보라고 하고,

또 나가서 돈벌어오라고 하면 사람이 쪼그라붙어서 말년까지 가난한 신세 못 면하게

되고 그저 죽을 때까지 자신의 환경 탓 만을 하다가 죽게 됩니다.



@[(8)@]

  여러분! 숙지황밭에 무엇이 들어가면 다 말라 죽습니까? 무우가 들어가면

숙지황이 다 말라죽게 되지요. 옛부터 전해오는 것 중에 숙지황 먹고 무우를

먹지마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거짓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무우를 식물학상으로

볼 때 어느 부분이 성합니까? 또 무우를 던졌을 때 어떤 부분이 먼저 떨어집니까?

물론 아래 부분인 뿌리가 먼저 떨어지겠죠. 그렇다면 지금까지 우리가 배운 것을

종합해 본다면 더 이상의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어디로 작용하는지 짐작이 갈겁니다.

우리가 무우를 먹었을 때 트림이 먼저 나옵니까? 방귀가 먼저 나옵니까? 트림부터

먼저 나오지요. 무우가 소화된다는 것은 기를 위로 올림으로써 아래가 뚫리는 즉

기를 위로 상기시키면서 소식시키지요. 그런데 숙지황은 어떤 작용을 합니까?

보혈, 보음 시키는 작용을 하지요. 그러니까 기를 위로 상기시켜 주는 것과 보음시키

것을 한데 섞어놔 두면 되겠습니까?

  그런데 요즘 새로 개업한 똑똑한(?) 젊은 한의사들은 "괜찮아요. 옛날 사람들이

그저 모르고 한 소리니까... 과학적인 근거가 없거든요" 이렇게 곧잘 이야기합니다.

  제발 여러분들 만큼은 이렇게 똑똑한 한의사가 되지 마세요. 얼마전에 어느 대학교

연구팀이 녹용에 대해서 연구발표를 하였는데 "녹용은 약간의 제라틴 성분과 섬유질

성분 밖에 없다. 그런데 이것을 사용하고 있는 한방의학이 한심하다" 그러더군요.

그러고는 뒷 구멍으로 자기 자식을 귀비탕 먹이고, 얼마나 우습습니까? 정말 녹용에는

약간의 제라틴 성분과 섬유질 밖에 없을까요? 왜 옛사람들이 녹용을 사용했을까요?

"개에게 돌을 던지면 돌을 쫓아 다니고 사자는 바로 사람을 문다(한로축괴사자교인)"

했거든요. 녹용을 알려면 사슴을 관찰해야지요. 녹용은 좋아하면서 사슴은 관찰하지

않거든요. 사슴의 생태를 잘 관찰하면, 녹용을 어디에 사용하는지 알 수 있잖아요.

  여러분! 돼지가 양적인 동물입니까? 음적인 동물이겠습니까? 돼지를 족궐음간경에

배속을 시켜놓았지만 어떤 기준에 의해서 음적이 될까요? 우선 많이 먹는다는

측면에서는 음적이 되겠지요. 무엇이든지 취하려는 기운은 강하고 내 놓으려는 기운은

별로 없지요. 돼지가 방귀를 뀌거나 트림을 하는 것 보셨습니까? 이런 것들은 모두

자기에게서 나가는 것이므로 잘 내놓질 않죠. 그런데 스컹크나 오징어 같은 것은

조금만 건드려도 내뿜습니다. 그러면 이런 놈들은 --지기가 강하겠습니까? 어쨌든

이것이 소양인지 태양인지는 딱 잘라 구별하기가 어렵지만 들어 마시는 쪽보다는

내 쏘는 쪽이 강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돼지는 흡수하는 기운이 강한 것으로 보아

음적이지요. 이렇게 본래 음적인 돼지의 신체구조 중에서 제일 아래에 돼지 족발을

쓰게 되니까 몸에 물이 고이겠습니까? 안 고이겠습니까? 그러니까 사물탕과

돼지족발을 잘 쓰면 여자들 젖 안나올 때 좋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동물의 다리부분과 머리 부분을 비교해 볼 때 어느 부분이 양이

될까요? 두말할 필요도 없이 머리 부분이 양이 될 것입니다. 사슴을 보면 아주 짧은

털을 가지고도 얼마든지 추위를 잘 견디고 오히려 눈에서 막 뒹굴지 않습니까?

눈 위에서 뒹굴 수 있다는 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가 덥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옛 사람들은 사슴의 생태를 관찰하고 사슴의 경락을 관찰한 거지요. 그러면

경락을 알기 위해서는 무엇을 관찰해야 그 특징을 알 수 있을까요? 물론 사슴의

성격을 알아야지요. 사슴은 옆에서 바스락하는 소리만 나도 잘 조동하고 튑니다.

잘 튄다고 하는 것은 양적일까요. 음적일까요? 일단은 양적이라고 보아야 하겠지요.

그러니까 사슴고기 많이 먹고 녹용 많이 먹으면 아무일에나 잘 놀래고 반응이 빠르고

괜스리 민감해집니다. 어린아이들한테 몸이 더울 때 녹용을 쓰면 부작용이 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감기 뒤끝에 여열이 불퇴했을 때, 녹용을 쓰면 안됩니다. 세간에

떠도는 녹용 먹고, 부작용 났다는 말이 결코 빈말이 아닙니다.

  얼마 전에 한의원에 식물학을 전공한다는 여학생이 왔길래 사과와 배 중에서

어느 것이 건조한 땅에 잘 되겠느냐고 물었더니 잘 모르겠다고 대답을 하더군요.

그러나 우리 대충 생김새, 맛, 색깔만 보더라도 그것의 정체를 알 수가 있지요. 바로

이것이 사물의 말미만 보고도 근본을 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운육기의 근본 또는

상황을 보자는데 있습니다. 앞에서 제가 "내경"에 대해서 언급했습니다만 상황을

깨어서 단순하게 보자는 것이 저의 근본 뜻임을 여러분들은 꼭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모든 기운이 교차하는 곳을 1차로 입술, 즉 임맥과 독맥이 만나는 자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두번째로 기교하는 곳은 배꼽(제)이지요. 이때에 오운육기에서는

배꼽 위와 배꼽아래로 나누어서 보지요. 상과 하로 나누어 볼 때 천간이 지배하는

것은 계절같은 것을 말하고, 지지는 그때 그때에 변하는 기후같은 것으로 변수가

작용하는 것입니다. 대체로 우리가 음양을 두 가지로 분류하는데 이것을 10으로

넓혀서 분류한 갑 을 병 정 무 기 경 신 임 계만이 옳은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더욱 더 연구하여 산술학적으로 발전한다면 이것을 20으로 분류한 사람도 나올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사주를 볼 때 년 월 일 시를 따져서 어쩌구

이야기를 하는데 이것이 꼭 100% 맞는다고 할 수 있을까요? 하루 중에도 자 축...신

유 술 해가 있는데 예를들어 자시라고 하여 꼭 춥겠습니까? 한여름 밤의 자시는

춥지 않지요. 또 오시는 춥거든요. 그렇다면 사주라고 하는 것이 꼭 맞는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만약에 사주가 전부 맞는다고 하면 년 월 일 시가 똑같고 생김새가

비슷하다고 하면 그 사람들의 운명도 똑 같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그렇지

않거든요. 예를 들어 자시라고 하면 이 두 시간 안에 태어날 수 있는 확률이 얼마나

많습니까? 제가 당나라 시대 때의 이야기를 하나 해 드리겠습니다. 당대에 배휴와

배탁이라고 하는 쌍둥이가 태어났는데 일란성 쌍생아 였습니다. 그러니까 얼굴

생김새가 똑같았지요. 둘이 태어날 때 등이 붙어서 나왔으니까 거의 동시에 나왔지만

배휴가 발을 먼저 디뎌서 형님이 되고 배탁이 동생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쌍동이의 부모는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 세상을 떠나 하는 수 없이

외삼촌 집에서 배휴와 배탁은 자라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동생인 배탁은 외삼촌

집에서 도망가버리고 형인 배휴만 남게 되었지요. 이 쌍동이는 어찌나 못생겼던지

둘 다 이빨은 완전히 옥니박이에다가 머리털은 하늘로 뻗치고 눈썹은 송진 붙여놓은

것같고 인상은 항상 찌부러져 있고, 너무 못생겼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이 가까이

하려고 하질 않았습니다. 그런데 마침 어떤 스님이 지나가다가 배휴를 보더니

"저 아이가 있으면 이 집안이 망하게 됩니다" 하고는 가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들, 혹시 이런 이야기 들어보셨는지 모르지만 옛날 할아버지나 할머니께서 집에

가정부가 잘 들어오고 못 들어옴에 따라 집안이 흥하고 망한다고 하는 '업덩어리'라는

말이 있지요. "우리집에 업덩어리 하나 들어왔어" 그러거든요. 이 말 안에는 사람이

하나 들어옴으로 해서 우리집을 잘되게도 못되게도 할 수 있다는 의미가 들어 있는

거여요.

  어느 날 가정부가 하나 들어왔는데 거지가 동냥하러 오면 며느리는 "아니! 사지가

멀쩡해 가지고 동냥하러 다녀요?" 하면서 내쫓아 버리는데 새로 들어온 가정부는 몰래

뒷구멍으로 거지를 불러서 쌀독의 쌀도 내주고 밥도 먹여 보내거든요. 또 어떤 때는

자기 돈으로 동네 할머니들 모셔다가 밥도 지어드리고 도시락도 싸 보내는 겁니다.

그런 일이 있고부터 아들이 하는 일이 잘 되고 집안의 분위기가 이상스럽게도

화평하게 되더라는 겁니다. 또 어떤 경우는 파출부 하나가 집에 들락거리면서 집안

분위기가 엉망이 되는 경우도 있거든요.

  예를 들어 내가 어제 20원을 전화거는데 쓰고 나머지 80원 하고 토큰 두 개를

책상위에 올려 놓았는데 찾아 보니까 없어진 겁니다. 그래서 '동생이 가져갔나

보다'하고 "얘! 말자야. 내 책상위에 토큰이랑 80원 가져갔니?" "아니? 세상에 나를

어떻게 보는 거야" 하면서 신경질을 냅니다. 그러면 혹시 엄마가 가져갔나 싶어서

"엄마! 혹시 책상위에..." "얘! 치사하게 엄마가 그걸 가져가겠니?" '그렇다면 혹시

아빠가...아니야. 아빠가 가져갔을리는 없어' 그러면서도 의심이 딱 생기게 되는거죠.

  또는 아버지가 소중히 여겨온 만년필이 책상 위에서 없어진 것입니다. "차라리

돈 2--3만원이 없어지는 것이 낫지 추억이 담긴 만년필이 없어질게 뭐람"하며, 아들을

불러 세웁니다. "야! 이리와, 벌써 아버지 물건에 손을 대!!!" "아니예요.

저 필기도구 많아요" "어-엉! 그래? 그러면 아빠가 잘못 생각했구나"라고 말을 하긴

했지만 왠지 석연치가 않지요.

  엄마가 어느날 아빠 드리려고 손수건을 사다가 부엌에 두었는데 그 손수건이

없어졌어요. 그러니까 "야! 너는 아빠 드리려고 손수건 사두었는데 네가 가지면

어떡하니?"하고 야단을 칩니다. "에이! 왜 자꾸 나만 가지고 매일 그래!! 나 안

훔쳤단 말이야" 자, 그러면 지금 이 집안에 전부 없어진 것을 합쳐보면 불과

몇 천원도 안 되는데 전부 의혹이 생기기 시작한 겁니다. 그러더니 이 집안이 망해요.

이것이 무엇인가 하면 파출부가 들락거리면서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고 가져간

것이거든요. "야! 이 볼펜 좋다. 재수하는 우리 아들 갖다 주자. 또 손수건 챙겨서

우리 남편 갖다 주자. 이 토큰 두 개 정도야 이 집에서 괜찮겠지"하는 도심이 발동한

거지요. 나중에 그것이 모두 파출부의 짓이라는 것이 들통이 났어요. 그래서 "아니

그런 짓을 하시면 어떡합니까?" 하니까 "뭐 전부 합쳐봐야 만원도 안되잖아요" 돈

만원이 문제가 아니라 도심은 똑같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이 한사람으로 인해서

그 집안의 운기가 바뀐거지요.

  제가 아는 어떤 집에는 파출부는 3시간 일해주러 와서 6시간 일해주고 가고 아이들

노래도 가르쳐주고, 그림도 가르쳐주고, 책도 읽어주고 함께 놀아주니까 아이들이

안떨어질려고 하는 겁니다. 나중에는 엄마가 질투가 날 지경이지요. 그러니까 아빠,

엄마의 기분이 좋아지고 또 집안에 대한 걱정, 아이들에 대한 걱정을 안하게 되니까

아빠는 사업에 전념할 수 있고 엄마는 학교 강단에 설 수 있고, 그러다 보니 파출부

한 사람 들어와서 집이 흥하게 됐다고 하더군요. 옛날에 제 관상선생님께서 해주신

이야기가 있는데, '관상이 불여골상이요. 골상이 불여심상이라' 관상이 뼉다구 상만

같지 못하고, 골상이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마음 잘 쓰는 것만 같지 못하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심상이 중요한 거지요. 결국은 형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배휴라는 아이가 그 스님의 말을 듣고 외삼촌집에 사는데 '업덩어리가 된다'고

하니, 어린 마음에 서러운 생각도 들고, 걸식을 하고 다니더라도 이집을 망하게

해서는 안되겠다는 두 가지 생각에 외삼촌 집을 나와 버렸습니다. 집을 나와서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다가 우연히 우물가에서 옥띠를 하나 발견했습니다. 옥으로 만든

허리띠인데 얼마나 비싸겠습니까? 이 옥띠를 본 배휴는 '이 좋은 물건을 잃어버린

주인은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하는 생각에 사흘 밤낮을 꼬박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기다리고 있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헐레벌떡 뛰어왔어요. 이 옥띠야말로 자기

아들이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고 있는데 그 옥살이를 면제시키기 위한 뇌물이었거든요.

이 아주머니는 절에 가서 지성을 드린다고 우물에 와 목욕을 하는 새에 벗어 놓고는

집에 가서 옥띠가 없어진 것을 알게 된거죠. 이제 사흘이 지났으니 없으려니 하고

달려왔는데 이 친구가 지키고 있으니 얼마나 고맙습니까? 그래서 사례를 하려고

하니까 본래 아주머니 것을 아주머니가 가져가는데 무슨 사례를 하느냐고 필요없다고

하면서 휙 가버리는 거예요. 요즘 같으면 ^3456,1,245,34,3456,1^이냐, ^3456,1,245,2

45,34,3456,1^

이냐? 하고 고소 붙을 판인데 그냥 가버리는 겁니다.

  그러고는 여기저기 걸식을 하고 돌아다니다가 결국 외삼촌 집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힘이 들어서 도저히 거지 노릇 못하겠으니 외삼촌집에 다시 있자고 이야기를 했던

겁니다. 외삼촌은 옛날에 스님에게서 들은 말이 있어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았으나,

할 수 없이 허락을 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옛날의 그 스님이 우연히 그 마을을

지나가다가 이 아이를 보더니 정승이 된다고 하거든요. 아니! 옛날에 집안을 망해

먹을 놈이라고 하더니 이제는 정승이 된다는 거예요. 이것이 무엇을 뜻합니까?

이 아이의 운세가 바뀌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진짜 나중에 한 나라의 정승이 되었어요.

그 스님이 이 아이를 보고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느냐 하고 물으니까 한참을

생각하다가 옥띠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그 말을 들은 스님이 "그래, 네가 네 운명을

바꾸었구나"하고 이야기하더랍니다.

  그러니까 운기라고 하는 것도 여러분들의 용심에 달린 것이지요. 너무 외부적인

것에 기대지는 마세요. 관상도 못 생긴 상에다가 생년월일시까지 나쁘고 또 신상까지

나쁜데 심기를 올바르게 씀으로 해서 인생이 뒤바뀌지 않습니까? 그 후로 배휴가

자기 아우인 배탁이 궁금해서 수소문하여 찾아보니까 강나루에서 뱃사공을 하고

있더랍니다. 같은 뱃속에서 같은 시간에 똑같이 태어난 이 두사람이 어떻게 이처럼

운명이 다를 수 있을까요. 여러분들은 이 오운육기를 잘못 공부하고 나면 자칫

운명론자가 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이 오운육기라는 것도 결국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심기로써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갑자년이라 하여 갑자년의 해석을 실컷하고 나면 여러분들은

갑자년이라는 것의 해석에만 매달려 가지고 자기의 심상을 평정시키려는 생각은

안하고 '나는 갑자년에 태어났으니까 갑자년생은 항상 바람을 피운다더라. 할 수

없다. 바람이나 피우자'이건 말도 안되는 소리지요. 그건 그럴 수 있는 확률이

강하다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예를 들어 근육이 잘 발달되어 있는 사람이 왔다고 하면

관상가가 그 사람을 보자 마자 "당신은 어느 날 사람을 죽이겠소"이렇게 이야기

했다고 합시다. 그러면 이 말을 들은 이 사람은 그 말이 한생각이 되어서 자기 뇌파에

입력이 되고 자기 최면이 되어서 진짜 사람을 죽이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길을 가는데 여인을 겁탈하려는 놈이 있어서 두들겨 패주었다고 하면 의기

아닙니까? 그러니까 똑같은 것이라 하더라도 좋게 해석해 주어야 하고 또 힘이 있어

보이면 힘의 사용처를 일러 주어야지 나쁘게 해석을 해주어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여러분들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 꼭 나쁘다고 생각하십니까? 만약에 전쟁이 터져서

우리 국민들을 막 죽이고 있는데 불살생이라고 해서 적의 만행을 강건너 불구경하듯

방관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신라시대 원광법사는 세속오계를 정하면서

'살생유택'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또 불경의 보살경에 보면 "백만명을 살리기 위해

열 명의 악질이 있다고 하면 그 악질을 죽이는 것이 보살행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지옥에 가더라도 다른 사람을 편안하게 해 주어야 되겠다고 하는 마음이 보살이라고

했거든요. 그러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오운육기의 사상이 명리학 쪽으로 치우쳐서

운명론적으로 전락하는 것은 참으로 위험합니다.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후천적인

요소는 생각하지 않고, 선천적인 성품만을 가지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저는 불변이고 약간 운명론적인 선천보다는 후천적인 것이 70%이상

작용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여러분들이 기억해야지요. 아무래도

선천적으로 잘못 태어나면 후천적으로 조심을 해야 됩니다.

  롤스로이스나 링컨 컨티넨탈같은 차를 물려 받았다고 하더라도 매일 200km이상

속력을 내고 아무데서나 좌회전, 우회전 하다보면 사고나서 죽는 수가 있지요. 사람이

선천적으로 튼튼하게 태어나고 부잣집에서 태어났다 하더라도 교만방자하여 못된

짓만을 일삼는다면 제명대로 못 사는 겁니다. 그러니까 선천은 롤스로이스 같이

좋은 것을 타고났는데 후천적으로 용심을 못하면 안되지요. 그런데 어쩌다

모범운전수가 되어서 얍실얍실한 포니차를 얻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매일 닦고

조심스럽게 운전을 하면 자식들 대학 보내고 딸 시집보내고 저축도 착실히 하게

되니까 말년에 편안한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물론 링컨 컨티넨탈같은 차에다가

그런 운전수를 만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요. 그런데 모든 이 우주의 운세라고 하는

것은 길 흉 화 복이 서로 상충되게 되어있거든요. 여러분들이 완전히 깨닫기 전에는

이 운기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오늘 날씨가 흐리고 바람도 없는 불쾌지수가 높은 날이라고 합시다. 외부의 이런

기운 때문에 마음은 많은 신경질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합니다. 그런데

조심하질 않고 매운 것에 소주까지 한 잔 먹어 놓으면 이성을 잃어 지나가는 사람을

보면 괜히 시비를 걸어서 싸움도 하고 싶고 길가의 돌맹이도 집어 던지고 싶어지는

겁니다. 버스 안에서 싸움하는 사람들을 보세요. 그 싸움은 불쾌지수가 작용한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간은 기후의 영향을 안 받는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만약에

천지의 기가 작용을 하지 않는다고 하면 여러분들은 오운육기의 피해를 안 받을

겁니다. 그러나 그럴 수가 있습니까? 결국 육체를 가지고 있는 이상 기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지요. 쉽게 이야기를 한다면 선천적으로 한기를 갖고 태어난 사람은

비오는 날 냉한 날을 싫어합니다. 뚱뚱한 사람들은 가을날을 좋아하게 되지만 여름이

되면 헉헉거리게 되고 아이스크림 먹고, 콜라 마시고, 선풍기 에어콘 다 틀어 놓아도

답답하다고 하지요. 그러나 몸이 좀 냉한 사람은 여름철에 활동적이거든요. 그러니까

풍 한 서 습 조 화가 인간의 기분에 큰 영향을 주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 "내경"을 한 번 볼까요?


  황제가 말씀하신다. "천지의 기가 활동하지 않는 시기가 있을 것인가?" 기백이

대답하기를, "만약 있다고 하오면, 만물은 발생을 정지하고 화육도 하지 않는 천지가

정지된 때일 것이옵니다" 황제가 말씀하신다. "천지가 정지한다면 만물의 발생, 화육

이루어지지 않는 것인가?" 기백이 말씀드린다. "우주의 음양의 기가 서로 출입하지

않게 되면 창조주의 기능이 소멸되어 천기와 지기의 승강이 없어져 천기는 상에

지기는 하에 있어서 서로 교류하는 일 없이 독립되옵니다. 곧, 음양의 기가 서로

출입하지 않게 되오면, 만물은 일생을 통한 생 장 장 노 사를 되풀이할 수는

없사옵니다. 천기와 지기의 승강이 없어지면, 만물은 춘하추동의 1년을 통한 생 장

화 수 장을 행할 수도 없는 것이 옵니다"  (내경 오운육기편 육미지대론)


  천이 위에 있고 지가 아래에 있는 괘는 불길한 괘죠. 왜냐하면 양은 양대로

움직여 버리고 음은 음대로 움직여 버리니까 기가 소멸되어서 서로 교류하는 일이

없는 겁니다. 이런식으로 하다보면 생  장  장 노 사, 즉 태어나서 자라고 장성하게

되고 늙고 죽는 것을 되풀이할 수 없다는 겁니다. 여러분! 결국은 우리가 왜 죽게

됩니까? 간단하게 대답해 보세요. 태어났으니까 죽는 것 아닙니까! 석가모니 부처가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고행을 하고 명상을 하다가 깨닫고 나서 첫번째 한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음으로 이것이 있다.

이것이 생하므로 저것이 생하고, 저것이 생하므로 이것이 생한다. 이것이 멸하므로

저것이 멸하고 저것이 멸하므로 이것이 멸하는구나' 생이 있음에 사가 있다고

했거든요. 그럼 결국 생은 왜 있습니까? 사가 있기 때문에 생이 있는 거예요. 자!

생사문제가 나왔는데 결국은 이러한 음양이니 뭐니 하는 분류는 10으로나 100으로나

1,000으로나 10,000으로나 분류해도 충분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융통무애하게 분류를 하라고 "내경 오운행대론"에 나와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지금 이 방안에 물이 있다고 한다면 어떻게 처치를 하겠는가? 꼭

토극수의 원칙에 의해서 흙을 뿌리는 것이 아니고 드라이로 말려버리는 화극수의

방법도 있고, 바람으로 하겠다는 목극수의 방법도 있고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요.

그러니까 오행의 이치는 맞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것대로 이치가 있는 것이

아니냐 하고 기백이 얘기를 하고 있는 거지요. 기백이 먼저 오운육기의 법칙을

얘기하면서도 법칙에 어긋나는 것이 훨씬 많은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에게 처음에

음양오행을 가르쳐주는 것은 어린아이 달래기 위한 사탕에 불과한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그 사탕을 먹고 들어오면 그 다음에는 휘황찬란한 꽃밭이 있는데

이때부터는 여러분들의 직관이 작용을 해야 하는 거지요.

  오운육기의 음양은 정상적인 수나 규칙으로서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상이라고

하는 것이 중요한 겁니다. 그러니까 제가 취상이라고 이야기 하지 않습니까? 유무,

귀천, 상하, 해중금, 사중금, 로방토, 벽상토 등 이 모두가 비교를 가지고 정하는

겁니다. 비교를 하려면 중심이 있어야 되는 것이죠. 제가 여러분들에게 '하늘은

양이고 땅은 음이다'라고 하지 않고 '하늘은 음이고 땅은 양이다'라고 한다면

여러분들은 틀림없이 '어? 그럴리가 없는데...' 하며 반문을 하겠지요. 어떤 기운,

어떤 관점에서 그렇게 이야기 했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여러분들이 손톱을 보고 음이다 양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이건 말도 안됩니다.

비교기준이 있어야지요. 손톱을 철에 비교한다면 양적이 되지만 온도상으로 피부와

비교하면 손톱이 음적이 되는 겁니다.

  제가 포항에 있을 때 손톱이 오이씨처럼 나오다가 마는 환자를 치료한 적이 있는데,

만약 여러분들이 한의원을 개업하고 있는데 이런 환자가 온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치료하시겠습니까? 여러분들이 학교에서 배울때 손톱은 어디에 속한다고 배웠습니까?

간 심 비 폐 신 중에서 간에 속한다고 배웠지요. 그러면 족궐음간경을 놓으면

좋겠네요. 아무튼 이것이 옳을지 어떨지는 잘 모르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손톱을 오운육기상 어디에 두면 괜찮을까요? 양명조금에 들수도 있겠지요.

제가 지금 양명조금에 분류시켰다고해서 이것을 100%신봉하시면 절대 안됩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이유는 여러분들이 이제까지 족궐음간경만 생각하셨으니까 이제부터는

양명조금도 생각을 해보라는 뜻에서 드리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집이 한채 있다고

합시다. 철근으로 기둥을 세우고 시멘트를 바르고 안에는 도배를 깨끗이 해

놓았습니다. 또 창문을 열어 놓으면 통풍이 되는데 난방장치와 온방장치까지 두루

설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철근은 양명조금에 해당될테고 시멘트는 태음습, 난방

장치는 소음군화, 냉방장치는 태양한수, 또 밖에서 시원한 바람이 창문을 통해서

들어오니까 궐음풍, 따뜻한 햇빛은 소양상화,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집에 바람이 심하게 부니까 골재인 철근이 약해서 집이 흔들거린다고 하면

양명조금인 철근을 보충시켜 줄 수도 있지만 거꾸로 궐음풍을 사해줄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제가 자주 인용하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무유정법이 불법이라'정한

법이 없는 것이 깨달은 사람의 법입니다. 제가 불법이라고 이야기를 하니까 다른

종교를 가지신 불들은 아무래도 지겨울테니까 '무유정법이 정법이다'라고 기억해

두세요.

  황제의 질문 중에 "상이라고 하는 것 즉 비교라고 하는 것이 무엇이냐?"라고

한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결국 상이라고 하는, 즉 비교라고 하는 것은 갑 을 병 정

무 기 경

신 임 계와 같은 것이 결국 비교된 것이지요. 다시 말하자면 갑이 이야기 되어질때

갑과 상대되고 그 무엇이 이야기 되어진 것입니다. 자와 오가 불이라 할 때 하나는

양화, 다른 하나는 음화가 되는 것인데 이런식으로 다섯 가지로 분류 비교한 것이

십간인 것입니다. 같은 소음군화일지라도 하나는 음화가 되고 다른 하나는 양화가

되는데 왜 이렇게 나뉘어 지겠습니까? 그것은 주어진 어떤 환경의 차이에서 원인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여러분들이 오늘 사랑하는 애인을 만났다고 가정을 해 봅시다. 나는

기분이 좋아서 애인의 손도 잡아주고 싶고 키스도 하고 싶고 그렇습니다. 애인 역시

마음 들떠 있는 것 같고 아주 기분이 좋은 것같아요. 그러면 만나서 둘이 아주 기분이

좋은데 만약, 애인이 집에서 나올 때 아빠에게 심한 꾸중을 들었습니다. "어디서 그런

남자 만나고 다니느냐", "다시 또 만나는 것을 알면 대학교 학비도 대주지 않는다"

하고 옆에서 엄마, 오빠까지 한마디씩 거들다보니까 애인의 기분이 몹시 상해서 나온

거지요. 그러면 나의 마음이 그렇다 하더라도 애인의 기분이 몹시 나빠있는데 내

뜻대로 할 수가 있나요? 그게 잘 안되지요. 또 물질적인 상황에서 예를 보면 겨울철에

피는 모닥불과 여름철에 피는 모닥불이 똑 같이 타오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유무, 귀천, 상하, 빈부, 완급, 대소, 생사등은 어떤 차원의 기준에서 비교

한 것에 불과한 겁니다. 그러니까 깨어있는 옛 사람들의 말장난이죠. 그러니까 제

이야기의 결론은 쉽게 이야기해서 그 말장난에 속지 말라는 겁니다. 여러분들의

마음 속에 비교 없는 마음으로 중심만 잡고 있으면 속지 않게 되지요. 이런 관점에서

경전을 본다면 "아하! 황제는 이런 눈으로 음양을 이야기 했군 오운육기의 해중금,

사중금의 의미는 이런 것이었군"하는 것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먼저 이론을 외우기보다는 이러한 이해의 차원을 포착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여러분들에게 이런 관점이 생기게 되면, 얼마든지 수많은 음양론을

쓸 수가 있습니다. 자! 그러면 이제부터 여러분들의 천간지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 그림으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저는 남이 뭐라고 하거나 말거나 천간지지를

인체에 비유를 합니다.

  천간과 지지라고 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제가 천을 사람의

머리라고 이야기를 많이해 왔는데 그렇다면 머리의 운동에 따라 대비를 시켜야 당연한

것이겠지요. 뒤에 있는 그림은 갑 을 병 정 무 기 경 신 임 계를 평면적으로 이야기한

것인데 내용적이 아닌 계절적으로 배당을 해 놓은것입니다. 갑은 오른쪽 눈, 을은

왼쪽 눈에 해당하는데 병정인 입은 좌우가 없지요. 그러면 입이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먹는일, 둘째는 말하는 일이죠. 그래서 일단 병은 주로 언어를

주관하고 정은 주로 먹는 것을 주관한다고 해두었습니다. 음식이라고 할 때 음은

양이 되고 식은 음이 되겠지요. 왜냐하면 음은 마시는 것, 즉 부드러운 것을 먹는

것이고, 식은 딱딱 한 것을 먹는 것이거든요. 이것이 음식이란 말의 정확한

해석입니다.

  우리가 사물을 볼 때는 색을 보면서 질을 보게 되는데 왼쪽 눈은 대체적으로

형이라든가 색을 보게 되고 오른쪽 눈은 질이라든가 광택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제가 말씀드린 왼쪽 눈과 오른쪽 눈이 하는 일이 다르다는 것을 들으면 웃으실지

모르지만 사실 왼쪽 눈과 오른쪽 눈이 하는 일이 서로 다릅니다. 실제 브라만교의

요가에서는 이것을 절대적으로 믿고 있습니다.

  코도 마찬가지예요. 왼쪽 코는 향을 주관하고 오른쪽 코는 취를 주관하게 됩니다.

왼쪽은 향을 주관해서 냄새가 좋으면 왼쪽 코가 예민하게 벌렁벌렁하는 것이고 오른쪽

코가 발달된 사람은 주로 기분 나쁜 냄새를 빨리 판단하게 됩니다. 이것은 최근에

실제적으로 증명이 되었는데 그 증거로는 좌뇌와 우뇌의 기능이 다르다고 하지

않습니까? 일본 사람들은 계산능력이나 수학능력같은 것은 좋은데 창조적인 능력이나

종교적인 능력이 없다고 하지요.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창조적인 두뇌 위주로 많이

발달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명민한 민족이라고 하지요. 이 좌뇌우뇌가 공히

발달해야 잘 할 수 있는 직업이 무엇인가 하면 의사입니다. 이것은 현재 컴퓨터

상으로도 나온 것입니다. 그 다음에 경은 우측에 있는 콧구멍, 신은 왼쪽에 있는

콧구멍이 됩니다.

  무와 기는 제가 따로 이야기 할 것이고 임계는 귀에 해당합니다. 우리가 소리를

들을 때에 무엇과 무엇이 있습니까? 고저, 장단이 있고 리듬이 있지요. 그러니까 음과

율이 있는데 왼쪽 귀는 소리를 듣는다면 오른쪽 귀는 박자를 듣게 됩니다. 어린

아기들이 엄마의 젖을 먹을 때 제일 가까이 듣는 것이 엄마의 심장소리라고 합니다.

쿵쿵쿵하는 소리가 가장 기본적인 리듬이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요즘 유행하는 빠른

탬포의 음악, 아프리카 원시인들이 두드리는 북소리같은 것을 들으면 괜히 기분이

좋아지지요?

  유치원 꼬마 아이들을 모아 놓고 외국곡을 틀어주면 신나게 춤을 추는데 갑자기

한국전통의 음악인 아리랑 같은 음악을 틀어주면 금방 춤의 형태가 달라집니다.

이렇게 우리나라는 우리나라 자체의 리듬이 있지요. 우리나라는 문화가 상당히 오래

되어서 넉적지근하게 교활하고 세련된 민족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기초적인 리듬은 아프리카 토인들이 가지고 있는 원시적인 리듬에 가깝다고

합니다. 아기들이 모체내에서 듣는 음이 엄마의 심음인데 --태내에서는 얼마나 크게

들리겠습니까? 평소의 엄마 마음이 평정되어 있을 때에는 쿵쿵쿵하다가 불안정한

상태가되면 쿵쾅쿵쾅 요란스럽게 되겠지요. 가만히 보면 모든 북소리는 심장음과

연결이 되는 것같습니다. 호흡은 1분에 12--16번 정도가 정상인데 우리 민족은 호흡의

민족이고 아프리카같은 곳은 심장의 민족입니다. 그러나 서양은 두뇌의 리듬만을

생각하지요.

  여러분! 이 소리라고 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합니다. TV를 틀어 놓고 소리를

안나오게 해보세요. 얼마나 우습습니까? 그러니까 이 리듬이라고 하는 것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대단하고 또 인간들은 이 소리에 의해서 살아가고 있거든요. 이제 무와

기가 남아 있는데, 기는 나 위주로 생각하는 사람이고 무는 너 위주로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앞의 그림을 보시면 전체적으로 이해하기가 쉬워질텐데 대체적으로 나

위주로 생각하는 사람은 음식을 좋아하고 향을 좋아하고 형상이나 색깔 있는 것을

좋아하고 음악도 리듬 위주 보다는 고저위주를 좋아합니다.

  그러면 이 갑 을 병 정 무 기 경 신 임 계가 전부 무엇으로 총괄되느냐? 하나는 나

위주로 생각하는 것, 다른 하나는 너 위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 위주로 생각하는

것은 음이면서 기혈론에서는 혈에 해당하고, 너 위주로 생각하는 것은 양이면서 기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꼭 그런것은 아니지만 중풍같은 경우에 뚱뚱한 사람은 대체적으로

어느 쪽으로 중풍이 오겠습니까? 똥똥한 사람이 중풍이 온다고 하는 것은 기가 허해서

오는 것이거든요. 또 여자들은 대체적으로 음적인데 어느 쪽으로 중풍이 오면

불길하겠습니까? 여자들은 선천적으로 무엇이 허합니까? 기가 허하거든요. 여자들은

본래 음이 실하고 양이 허한데 본래 허한쪽으로 중풍이 왔으니까 허한 쪽이 또 늘어져

버린 겁니다. 이러한 것들이 모두 음양기혈론에 근거하여 나온 말들인데 사실은 꼭

그렇지도 않더군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그냥 설로만 들어두시기 바랍니다. "우리

엄마는 오른쪽으로 중풍이 왔는데 잘낫던데요" 이러면 저는 할 말이 없습니다. 그저

설이 있다는 이야기 정도로 들어두시면 됩니다.

  자! 그러면 몸통에 관하여 한 번 볼까요? 자와 오는

소음으로 자는 족소음신, 오는 수소음심이 되고, 묘유는 양명으로 묘는 수양명대장,

유는 족양명위가 되지요. 축과 미는 태음이며, 축은 수태음폐, 미는 족태음비... 이런

식으로 있는데 이 도표를 자세히 보면 상하의 관점에서 진 술 축 미가 거꾸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진술축미는 명리학에서 우리와 같이 육기적인 방법으로

보지 않고 오행적 방법으로 보아서 토라고 합니다마는 수태음의 자리에 족태음비가

와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실제로 '의학입문'에 보면 앞의 도표처럼 되어 있거든요.

일단 내용상으로 도표처럼 배속을 시켜 드렸습니다. 그럼 자에 해당하는 족소음신의

괘를 한번 볼까요? 지뢰복괘라고 하는데 앞에서는 우리가 육기와 오운이 혼합된

화수미제괘로 족소음신경의 성격을 관찰했지만 이제 여기서는 계절적인 관점, 소위

춘하추동의 관점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일양이 하나, 두개, 세개가

되는 지뢰복, 지택임, 지천태괘는 여러분들이 주역책을 찾아서 연구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차례로 12괘를 조사하고 나면 벌써 24괘는 공부하고 넘어가게

되는 것이거든요. 이 괘에 대해서는 여러분도 잘 모르고 저도 잘 모르는 것이지만

주마간산격으로 대충 괘상이라도 한번 짚어보고 넘어가자는 것입니다. 위에 그려진

12지지에 해당하는 괘상이 진짜 괘상입니다. 그러니까 족소음신에 해당하는 자의

괘상을 그려보라고 하면 일양이 생하는 것으로 되어 있거든요. 앞에서는 육기적인

관찰을 한것인데 이는 방향적인 관찰일 뿐 입니다. 이 정도로 오운육기에 대한

개괄적인 얘기를 끝내고 좀더 세부적인 사항을 다음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9)@]

  이 사상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동안 여러분들에게 많은 암시를 드렸습니다.

사상은 어쨌든 선천적인 것, 불변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제가 말씀드리는 사상과

이 제마 선생님의 사상론과는 전혀 다른 것이므로 여러분들은 혼동하지 마세요. 제가

이 강좌를 하면서 사실은 무척 불안합니다. 그러나 내가 이렇게 선을 강조하는 이유는

여러분들이 너무 안다고 하는 자만심에 정신차리라고 찬물을 끼얹는 것이며 각성을

촉구시키기 위함이지요. 제가 이야기하는 사상이나 오운육기는 이런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갑술생이다'라고 하면 갑은 목화토금수 중에서 어디에 해당합니까?

갑기 합토가 되지요. 그러면 토가 실한 것입니까? 허한 것입니까? 실한 것이지요.

토가 실하면 상대적으로 무엇이 허해 지겠습니까? 당연히 토극수가 되니까 수가

허해지겠지요. 또 토가 실하니까 무엇이 무시를 못할까요? 목이 무시를 못하겠지요.

목이 무시를 못하니까 목도 허해지게 됩니다. 그러니까 1차로 허해지는 수와 2차로

허해지는 목의 상황을 다각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오운육기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또 우리 인체에 예를 든다면 비장을 볼 때 신장도 검토하고 간장도 검토하는 것이

바로 의학적인 차원의 오운육기법인 것입니다. 그런데 명리학에서는 진술축미를

무엇으로 봅니까? 토로 보지요. 그중에서도 어느 것이 양이고 어느 것이 음입니까?

진술축미 중에서 어떤 것이 양토이고 어떤 것이 음토인가를 구분하여 그것이 서로

만나는 상황을 플러스시켜 일어나는 일체의 일을 추리해 내는 것이 명리학입니다.

이것은 "내경"에 있는 법과는 전혀 다릅니다. 그러므로 명리학을 공부한 사람들은

또 혼동이 되죠. 우리는 술을 어떻게 공부했습니까? 태양으로 공부했잖아요. 그러면

태양은 무엇입니까? 태양한수아닙니까. 그러므로 태양한수와 토가실한 것(갑)이

플러스된 종합적인 상황을 공부하는 것이 우리가 하고자 하는 작업인 것입니다.

전반부에 태양한수가 사천을 지배하면 후반부에는 무엇이 지배하게 됩니까? 태음습토

지배하게 되지요. 전반부 6개월을 태양한수가 지배하면 후반부 6개월은 태음이 지배를

하게 됩니다. 다음의 도표는 사천과 재천을 나타낸 것으로 여러분들은 꼭 아셔야

합니다. 

  (사천  재천의 순)

  자오:소음군화  양명조금

  축미:태음습토  태양한수

  인신:소양상화  궐음풍목

  묘유:양명조금  소음군화

  진술:태양한수  태음습토

  사해:궐음풍목  소양상화  


  오운육기의 해석은 명리학(하늘에서 주어진 명과 자연의 법칙을 연구하는 학문)과는

전혀

다릅니다. 오운육기에서는 비유가 많지요.

여러분 이지함선생이 쓰신 "토정비결"을 보면 마치 시와 같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가장 작은 글자 안에 많은 의미를 포함시키려는 옛 선인들의 노력이며, 또 이 모든

것들이 경전에 근거를 둔것이지요. 하지만 지금 제가 말씀드리려 하는 사상론은 전혀

문헌적 근거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만들어 내었는가? 저도 어디서 주워들은

풍월인데 제게 이것을 일러주신 분도 "그냥 그렇게 보는 법이 있다더라. 그런데

재미가 있지 않느냐? 임맥과 독맥만 가지고 보는 것이 사실적일테니까..."

하더군요.

  자! 그러면 사상이란 무엇인가? 쉽게 이야기 하면 안 이 비 구죠. 이것이

사상이라는 전제조건 하에 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물론 이것은 동무 이제마 선생의

사상론에도 나오지요. 귀로는 무엇을 듣고 입으로는 어떻고, 눈으로는...그래서

간대폐소, 폐대간소, 비대신소, 신대비소가 등장하고 4가지의 허실을 보게 되는 거지

요.

그런데 저는 사상에 간비신폐가 존재한다기 보다는 팔괘에 가서 존재한다고 보는

겁니다. 왜냐 하면 간이라고 한다면 육경상으로는 족궐음에 관계되고 오행상으로는

목에 해당하는 것이거든요. 오장은 육부와 상대적이니까 5장을 이야기 하려면 6부를

이야기 해야 되고 또 5장을 이야기 하려면 6경을 이야기 해야 되잖아요? 그러니까

저는 그냥 알기쉽게 안 이 비 구로 나누는 겁니다.

  얼굴을 보면 둘은 들어갔고 둘은 나왔거든요. 눈과 입은 들어가 있으니까 음이라고

보고 코와 귀는 나왔으니까 양이라고 보는 겁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얘기하는

사상이라고 하는 것은 음과 양이 갈라져 하나는 태음, 하나는 태양이 되고

중간에 소음과 소양이 되지요. 그러면 양에는 무엇이 배속되고 음에는 어떤 것이

배속될까요? 양에는 우선 코와 귀가 나왔으니까 양이 되는데 코는 태양, 귀는 소음이

배속되고 음인 눈과 입은 태음과 소양이 됩니다.

  그러니까 간대폐소, 폐대간소 이런식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보아서 두개

양, 두 개는 음인데 괘상으로 본다면 태양은 양중의 양, 소음은 양중의 음, 소양은

음중의 양, 태음은 음중의 음으로 본다는 것이지요. 결국은 안 이 비 구의 허실에

따라 그 사람의 선천운, 대부분의 성격 또 그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질병을 추리하는

독특한 주역법입니다. 쉽게 이야기 하면 태극에서 음과 양을 낳고, 이 음양이 양양,

양음, 음음, 음양으로 분화되고 다시 여기에서 팔괘로 나뉘어지는데 양양, 양음, 음

양,

음음이 비이구안이라는 서로 짝이 되는 상황을 유발시켜 놓는 것입니다. 지금 이것은

잘 들으셔야 합니다. 예를 들어 양양을 비라고 배속시켜 놓고, 코는 실하고 눈(음음)

약하다고 합시다. 코가 가지고 있는 상황이 강하고 실하니까 (양양)여기에서 갈라진

독맥과 태음이 강하겠지요. 그러므로 이 사람은 대체적으로 독맥과 수태음폐, 족태음

쪽에 실병이 많이 생기게 됩니다. 그대신 거꾸로 안(음음)이 약하니까 여기(음음)에서

갈라진 임맥과 간산괘인 양명경이 허할 수 있는 환경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지금 말씀 드린 것중에서 폐와 비가 실하다, 약하다 하는 의미는 경락상의

이야기 일 뿐이지 실제 장부인 간신비폐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절대로

혼동은 일으키시면 안됩니다. 그러면 우선 이 사상이 가지고 있는 도리는 어떤 것이

있는가?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는가? 눈 코 귀 입 중에서 눈과 입은 들어가고 코와 귀

나왔는데 서로 상합이 되는 것은 어떤 것인가? 코(양양)와 눈(음음)이 서로 상합이 되

고,

귀(양음)와 입(음양)이 상합이 됩니다.  그러니까 비대안소, 안대비소, 이대구소, 구

대이소

등 4가지로 분류가 되겠지요.

  그러니까 코가 크고 눈이 작은 사람의 체질을 태양인, 눈이 크고 코가 작은 사람을

태음인, 귀가 크고 입이 작은 사람을 소음인, 입이 크고 귀가 작은 사람을 소양인이라

이름 붙인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다가 동무 이제마 선생님의 의견을 존중하여

장부를 하나씩 집어 넣는다면 그림에서 보시는 것처럼 됩니다. 간대폐소는 태음인,

폐대간소는 태양인, 비대신소는 소양인, 신대비소는 소음인이 되지요. 이것은 이제마

선생님의 사상론에서 각자 취상을 하시기 바랍니다. 이제마선생님께서 사상을 처음

의학계에 내 놓으시면서 굉장히 고민을 하셨다고 하더군요. 동무선생님께서

사상의학을 내 놓느시게 된 이유는 똑같은 약인데도 어떤 사람은 감기에 걸리던,

소화가 안되던 간에 육미지황탕만 쓰니까 낫더라는 거지요. 그러니까 구태여 복잡하게

병을 볼것이 아니라 선천적으로 타고난, 어느 정도 결정된 상황을 보면 되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지요, 바로 여기에서 착안한 것입니다. 요즈음도 일부

사상의학자들은 일생동안 변하지 않는 본질들을 분류해 놓고 또 거기에 혈액형까지

첨가시킨 분들도 있습니다. 앞으로 여러분들은 이 사상의학을 깊이 연구하고 천착하여

이제마선생님의 위대하고 깊은 뜻을 더욱 발전시키시기를 부탁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지금 말씀드리는 것은 이제마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5장의 허실로 분류한

장부사상론이 아니고 눈에 보이는 대로 눈 코 귀 입을 보고 태음 소음 소양 태양을

분류하는 관상사상론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죠. 우리는 어떤

얼굴의 생김새, 즉 코가 크고 눈이 작느냐? 귀가 크고 입이 작느냐? ...를 보고

선천적인 성품이라든가 운명을 보아야 하는데 그것이 그리 쉽지가 않거든요. 더구나

우리는 관상적인 면에서 접근하기 때문에 성품적인 차원에서 많이 관찰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의 상상력과 추리력이 많이 필요하게 되지요. 그런데 사람 얼굴을

보면 눈 코 귀 입이 조화를 잘 이루고 있는 사람이 있거든요. 이런 사람을 보고

무엇이라고 합니까? '음양화평지인'이라고 하지요. 그러므로 제 얘기는 누구나 다

사상으로 나눌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동무(동무이제마(1838--1900) 조선말기의 한의학자. 혼는 동무. 한의학을 깊이

연구하고 총정리하여 '사상의학'이라고 하는 새로은 한의학의 한 계통을 세웠다.

그의 학설은 사람이 각기 타고난 체질을 잘 파악하여 거기에 맞는 치료법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선생님께서도 사상에 해당하지 않는 사람은 성인이나 도인, 또 나름대

무언가 화평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동무선생님께서도 마지막 돌아가

때는 회의를 느끼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일생 동안 연구를 했는데 아직도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 뭔가 잘 안되는 것 같다" 이런 식으로 실토를 하시면서 후학들의

천착을 바란다고 하셨습니다. 그 후학 중의 하나가 바로 저와 여러분 같은

사람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볼 때 전부 눈이 크고 코가 작고 귀가 크고 입이 작은,

즉 공식에 맞는 얼굴들만 있는 것이 아니죠. 눈이 크고 귀가 작고 입이 클 수도 있고

입이 작고 눈이 큰 경우도 있고 여러 가지로 나타날 수 있겠지요, 그러니까 제

사상론이라고 하는 것은 어거지로 갖다가 붙여 놓은 것에 불과합니다. 여러분들이

사람을 볼때 직감으로 보아서 조화가 있는 얼굴을 아무리 작은 어린아이라 할지라도

왠지 아름다와 보이지요. 그런데 아무리 덩치가 크더라도 가분수가 되면 이상하고

또 신체의 아래위가 균형이 맞는다 하더라도 눈은 큼지막한데 코가 조그맣다거나

입은 큼지막한데 눈이 쬐그만하다면 어딘가 좀 이상한 느낌이 들지요.

  이 우주는 완벽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상론에 의거하여 지구상에 존재하는

인종들을 본다면 이 지구는 태음 태양 소음 소양인 이 다 존재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저 우리 나라 사람들만을 보고 '소음인이 많겠구나'하고 생각한다면 이건 편협된

생각이지요. 예를 들어서 서양인들을 보면 코가 상당히 크지요. 그러니까 그들의

성격은 어떻겠습니까? 살기가 많고 이기적이고 공격적이고 날카로운 대신에 또 장점도

있지요. 그러나 동양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보편적으로 보면 아무래도 콧대가 좀

낮거든요. 그러니까 콧대가 높은 서양인을 태양인이라고 한다면 콧대가 낮은 사람이

콧대가 높은 사람을 만나게 되니까 자기의 허한 부분을 실한 상태가 보충해주므로

기분이 좋겠지요. 궐음경이 허한 사람이 궐음경이 실한 사람을 만나면 기분이 좋아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만약에 콧대가 높은 사람이 우리나라에 와서 행세를

하고 황제감이라고 추앙을 받는다고 하면 우리 나라 사람들처럼 콧대가 낮은 사람들은

거꾸로 서양에 가면 황제감이 되는 겁니다. 왜냐 하면 서양은 전부 코가 큰 사람들

뿐이므로 전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기운이 실하기 때문에 자기들도 괴로운

법이거든요.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 사상의학적으로 태양인은 만명에 하나 있을까 말까하다고

합니다. 이제마 선생님은 자기자신을 어디에 분류했을까요? 자기자신을 태양인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사람은 태양인이라고 했거든요.그렇다고

태양인이 꼭 좋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어떤 나라에 가면 태양인만

존재할지도 모르잖아요. 이기주의자인 여러분들은 사상의학을 공부한 교수가 진맥을

해보고 "자네는 태양인인데"하고 이야기 해 주길 원하지요. "자네는 국무총리감이야.

장군감이야. 자네는 리더쉽이 있어" 이런 말을 해 주면 좋아합니다. 실상은 전혀

리더쉽도 없으면서 태양인이라고 분류해주면 좋아하거든요. 저는 사상의학을 공부한

이래로 친구들만 보면 "아무래도 자네는 찾아보기 힘든 태양인같애"하고 아부를 많이

했습니다. 그러니까 아주 좋아 하더군요. 코도 납작하고 진취력도 없는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 해 주었다고 해서 좋아하는 모습은 정말 가관입니다. 그런데

이 태양인 이라고 하는 것이 정말 그렇게 좋은 것일까요? 넷중에 하나가 분류된

것인데 말이죠.

  길에서 파는 인형이라 하더라도 생김새가 오목조목하고 잘생긴 것을 갖고

싶어하잖아요. 여자가 비록 키는 작다하더라도 오밀조밀하고 들어갈 데는 들어가고

나올 데는 나온 여자와 결혼하고 싶지 덩치는 큰데 코는 한주먹에다가 눈은 아주

작고, 입은 함지박만한 여자, 이런 여자는 매력이 없거든요. 덩치가 크면 농구선수로

보내든지 씨름판에 내 보내야지 여러분들이 같이 살려고는 안하잖아요. 물론 여자도

마찬가지지요. 좀 작더라도 균형 있는 남자를 좋아합니다. 인간은 체격 뿐만아니라

얼굴에 어딘가 균형이 있으면 아름다와 보입니다. 그러니까 화가들의 그림을 보면

균형이 잡힌 그림을 좋아하잖아요.

  이 지구를 보면 어느 곳은 태양인이 많이 살고 어느 곳은 소음인, 또 어느 곳은

태음인 이런식으로 특정한 인종이 모여사는 곳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떤 부류가 많이 살고 있을까요? 소음이 많다고 할 수 있겠지요. 유럽 쪽에서도

희랍지방 사람들을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과 비슷합니다. 서양적인 냄새가 있으면서도

동양 사람들과 비슷하거든요. 감정도 비슷해요. 그러므로 그들 또한 소음인에

가깝겠지요. 그러면 눈이 크고 코가 쑥 들어간 민족이 어디에 있을까요?

아프리카 흑인들을 보면 남녀 모두가 눈은 크나 코는 납작합니다. 우리가 보통

사람들을 볼 때 눈이 큼지막하면 어떤 느낌을 받게 됩니까? 어딘가 마음이 약해

보이고 서글서글해 보이지요. 대체적으로 돼지코에다가 눈이 큰 사람들은 덕성이 좋고

뒤를 잘 돌보아주지만 남 앞에는 잘 나서지 않습니다. 진취적이질 못하죠.

  이 우주는 완벽한 신의 작품이거든요. 그러므로 지구상에 있는 모든 실하고

허한 것을 한데 섞어 놓는다고 하면 어느 나라는 그와 상대적인 어떤 나라와 맞물고

돌아가게 되겠지요. 그래서 어떤 주역학자는 우리 나라와 미국을 괘상으로 풀어내는데

미국은 소녀괘인 태괘가 되고 우리 나라는 소남인 칠간산괘에 해당되어 소남소녀가

친하게 되어 있다고 하더군요. 이 말은 제가 어떤 사람한테 들은 말인데 그저

들은대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산이 많아서 못살 수 밖에 없었고 미국은

평야지대이어서 곡식이 많이나므로 우주의 섭리상 미국과 한국은 친할 수밖에

없다는 거죠. 들어보니 그럴듯 하긴 한데 '잘도 갖다가 붙이는 구나'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주역괘상으로 볼 때 지구는 하나로 보게 되거든요. 지구촌이 되는 겁니다.

  그러므로 어느 나라는 어느 나라와 친하게 될 수밖에 없고, 또 어느 나라와는

밀어낼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이것이 육경상으로나 팔괘상으로 가능한데 우리가

어떤 나라의 기후라 든가 풍습을 잘 모른다 하더라도 사상적인 관점에서 생김새만

보더라도 알 수가 있겠지요. 여러분! 자신의 얼굴을 보고서 코는 빈대코인데 눈이

크다 그러면 그와 반대되는 여자를 만나면 행복해지지 않을까요? 내가 입이 크고 귀가

작다 하면 입이 작고 귀가 큰 여자와 만나면 될 것입니다. 이것은 부인 뿐만이 아니라

친구도 마찬가지이고 사업이나 인생의 모든 문제에 전부 맞아들어가는 것입니다.

그저 사람의 얼굴만 보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특성, 심지어는 장부의 허실론까지

알 수가 있지요. 제가 지금 말씀드리는 장부의 허실론이란 간대폐소, 비대신소 등이

아니고 비대안소라 할 때 태양인이 되니까 양괘에서 갈라진 건괘와 태괘가 실하게

되고 곤괘와 간괘가 허하므로 어느 경락은 실하고 어느 경락은 허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마 선생님께서 언제 사상의학을 쓰셨는지 아십니까? 일반적인 처방으로

잘 낫지 않는 난치병에 많이 썼지요. 난치병에 사상방을 많이 씁니다. 환자를 볼 때

처음부터 사상방을 쓰시는 사상의학의 대가들도 많이 계십니다만 도저히 경락상으로

포착을 하지 못할 때, 선천적인 경락의 문제가 제기될 때 이 사상방을 쓰게 됩니다.

환자를 치료하는데 갖은 방법을 다 써보았으나 전혀 차도가 없었습니다, 우연히

그 환자의 입술이 유난히 크다는 것을 보고 '어느 경락이 실하고, 어느 경락이

허할테니까 어떤 경락을 보해 주면 되겠다'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입이 크기 때문에

오손풍괘와 육감수괘가 실하니까 궐음경과 태양경이 실하겠죠. 그런데 입이 하는 일은

음식을 먹는 일과 말하는 일인데 이 환자는 말은 잘 못하는 것에 비해 먹는 것은

잘 하므로 음적인 것이 발달 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연역적이고 귀납적인 추리가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이 사암침술법이라고 하는 것은 신비한 것이지요. 여러분들은 앞으로 환자를

볼 때 이렇게 치료를 해도 안 낫고 저 방법을 써도 안 나을 때 얼굴의 균형을 한번

훑어보세요. 그 중에 눈이 하는 일, 귀가 하는 일, 입이 하는 일을 잘 생각해서

음양으로 나누어보면 그 경락이 둘로 압축이 됩니다. 그러면 그것을 보하든지 사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눈코귀입이 하는 일을 다시 한번 살펴 볼까요? 눈과 입은 상하로

움직입니다. 입은 아래(하)가 동하고 눈은 위(상)가 동하지요. 그러니까 하나는

음이 동하고 하나는 양이 동하게 됩니다. 제가 앞에서 왼쪽 눈은 형이나 색, 오른쪽

눈은 질을 본다 하였는데 전체적으로 눈이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보는 일이지요.

여러분들이 어떤 대상을 '좋다 싫다 안다 모른다'하는 인식은 우선 먼저 보고, 듣고

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육경적인 차원보다는 사상론이 훨씬 더

원초적인 것이며, 더 중요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사람마다 어떤 대상을 보고 전부

좋다 싫다하는 생각이 일어나기 이전에 눈길이 가는 곳 귀에 들리는 것이 제각각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재즈음악이 들릴 것이고, 어떤 사람은 영화간판이 눈에 잘

띄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어떤 사람은 로얄 오페라단 공연 포스타와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는 소리가 유난히 잘 들릴 것입니다. 왜 그렇게 똑같은 눈코귀입인데

하필이면 그곳으로 눈이 자꾸 가고 귀가 움직일까요? 이상하지 않습니까?

  여러분들은 사물을 그저 무의식적으로 보고 듣고 느끼고 있지요. 이 안 이 비 구

사식이 움직이는 것은 너무 빨라서 포착을 할 수 없지만, 도인들은 자기가 듣고 보고

느끼고 있는 것을 깨달으면서 느끼고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보고 듣고 냄새맡고

맛보고 하는 이 4가지 식이 움직이는 지각이라고 하는 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고

10^34^9는 무의식 세계일 뿐입니다. 여러분들의 의식 세계는 1할밖에 되지를 않습니

다.

어느날 남편이 부인의 뒷머리를 힘껏 쳤습니다. 그런데 그만 부인의 눈이 바닥에

툭 떨어져 버렸지요. 놀란 남편이 황급히 부인의 눈을 주워서 얼른 끼워 주었는데

이 부인이 신경질을 내면서 하는 말이 "여보! 골이 보여" 남편이 급히 주워서

끼운다는 것이 그만 거꾸로 끼운 것이었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의 눈은 밖을 쳐다보는

안식보다는 내면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눈을 개발해야만 합니다. 여러분들은 눈으로

보이는 육안의 세계만이 전부인 양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그것은 혹시 여러분들이

만들어 내는 환상이 아닐까요? 지금 여러분들이 앉아 있는 이곳에 벽이 있어서

바깥이 보이지 않지만 벽을 헐어내면 바깥이 잘 보이게 될 겁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들의 육안이 마치 벽과 같아서 영적인 사실들을 보지 못하는 것 아닐까요?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육안이 대단한 것인양 생각하시겠지만 이것이

어떤 매개체는 되겠지요. 허나 그것이 바로 번뇌의 근본이올시다.

  도를 닦는다는 것은 이러한 본다는 것, 듣는다는 것으로부터 자유스러운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아무 것도 안 들리고 보이는 것이 없는데 개는 왜 멍멍 짖고 꼬리를

흔듭니까? 우리는 가만히 있는데 어떤 여자가 옆에서 노래를 부르면 왜 그곳으로

마음이 확 끌려갈까요? 개들끼리 막 짖어대고 까치들이 까깍 거리며 이리저리 오가곤

하는데 우리는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자기들만이 가지고

있는 영성, 자기들만의 전달방법, 그러므로 저는 그들만이 보고 느끼는 안 이 비 구가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눈을 한번 감아보세요.

눈을 감았다고 잠을 자는 것은 아니죠. 깨어 있는 상태에서 캄캄한 것이 보입니다.

눈이 하는 일은 일체의 색깔과 물질을 봄인데 눈을 감으면 깜깜한 것이 보입니다.

눈도 서로 상대적인 관계가 있는데 눈이 색깔이나 딱딱한 질같은 것을 보면서

피로했다면 우린 무엇으로 풀게 됩니까? 수면으로 풀게 되지요. 눈을 감음으로써 풀게

되잖아요. 그런데 자꾸 수면만 취하면 어떻게 될까요? 눈이 안보이게 됩니다.

그러므로 눈에는 색과 공의 상호 보완작용이 있는 것입니다.

  또 귀의 역할을 우측 귀와 좌측 귀로 구분을 해보면, 하나는 성을 듣고 하나는 정을

듣습니다. 여러분들이 아무리 베에토벤의 교향곡에서부터 브람스, 바하 또 비틀즈,

마이클 잭슨에 이르기까지 많은 음악을 듣고 지쳤다고 하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의식이 많이 작용했기 때문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조용한 곳에서 편히 쉬고 싶을

것입니다.

  입은 먹는 일과 말하는 일을 하는데 그런데 말을 지나치게 많이 했다고 합시다.

말도 많이 하게 되면 지치거든요. 그런 때는 침묵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말과

침묵은 서로 상대적인 것입니다. 말을 많이 하게 되면 많은 진액이 소비되므로 말을

적게해서 내기를 길러야 합니다. 또 말을 너무 안하는 사람은 말을 시켜야 되지요.

  그 다음에 코가 하는 일을 볼까요? 코는 주로 냄새를 맡는데 냄새 중에서 하나는

기분 좋은 냄새인 향과 기분 나쁜 냄새인 취가 있습니다. 그런데 코는 내뿜는 일과

들이 마시는 일을 하거든요. 이 호흡 말고 통과 색이라는 것이 있지요. 눈은 색과 공,

귀는 동(성)과 정, 입은 언어와 침묵, 코는 통과 색 이것이 사상이 하는 일입니다.

이 유식론은 불교에서 도통했다고 하는 사람에게 13년을 강의해도 이해가 잘 안가는

부분이라고 합니다. 그 만큼 내관이 어려운 것이겠지요. 여러분! 종이와 붓을 꺼내

놓고 한일자를 한번 써 보세요. 어떤 글을 정성들여서 쓴다거나 명치 밑을 관하려는

마음을 갖는 즉시 호흡이 딱 멈추어지게 되지요. 기분이 나쁘거나 최루탄 연기를

마셔서 숨이 막히는 것이 아니라 굉장히 기분이 좋고 무엇인가 응시를 하게 될 때

숨이 꽉 막히는 것을 느낄 수가 있을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이렇게 멈추는

작용을 이야기하지 않거든요. 눈을 감을 때는 휴식의 방편도 있지만 '보기 싫다'라는

뜻도 내재되어 있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어떤 대상을 볼 때 눈코귀입이

움직이는 것이 제 각각 모두 다릅니다. 귀로 들으며 말하는 사람의 진의를 파악하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래위로 훑어보는 사람도 있고 옆으로 쳐다보는 사람, 또 눈이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럴 때 그 사람의 모습을

보고 어느 경락이 허하고 실한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무엇인가 경계할 때의 눈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눈을 부릅뜹니까? 눈을

감게 됩니까? 여러분이 애인과 입맞춤을 할 때 애인의 눈이 어떻게 됩니까? 스르르

감게 되지요. 만약에 눈을 안 감는다고 하면 그건 분명 섬뜩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눈과 입이 하는 일도 아주 미세하긴 합니다만 긍정과 부정의 뜻이 내재해

있는 겁니다. 여자가 키스를 해 달라고 하면서 눈을 부릅뜬 경우

봤습니까? 그렇지 않지요. 이제 여러분들은 여러분 자신의 감정을 관찰하는데

통달했을 겁니다. '아하! 이건 시기로군', '질투로군', '이건 탐욕이로군', 이런것을

관찰했으면 이제부터는 '이건 코가 움직이는 것이로군', '귀가 움직이는 것이로군',

'혀가 움직이는 것이로군'하는 것을 느끼셔야 합니다. 이것까지 관찰해야만 천지를

초월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먼저 넓게 각성한 의식이 우리 감각을 활짝 열어 물질적인 사물과 접촉케

한다. 만일 거기에 우리에게 직접으로 접촉할 수 있는 보다 고상한 정신적 작용이

있다면, 그 정신적 작용의 심리학적 조건은 잠재의식계의 소유일 것이며,

이 잠재의식계만이 정신적 작용에 접근하는 기회를 줄 것이다. 각성한 생활의 소음은

꿈같은 '승화'로 반개 혹은 전개된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


  몇년 전에 읽은 오경웅(1899년 중국에서 태어나 미국 프랑스 독일 등지에서

법철학을 공부했으며 그후 미국에서 중국철학과 문학, 법학등을 가르치면서 중화민국

주재 바티칸 교황청의 공사로도 근무했다. 유명한 홈즈 대법관의 정신적인 제자인

동시에 법학자이며 외교관이자 철학교수로서 다채로운 활동을 전개하는 한편

"정의의 원천", "동서의 피안"등 종교와 동양사상 그리고 자연법에 관한 심오한

책들을 써냈다)의 '동서의 피안'이라는 책에서 내가 읽은 내용입니다. 이 소음이란

바로 우리에게 매달려 있는 번뇌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올바른 직관을

가지려면 이 번뇌란 '놈'을 이겨야만 합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감정공부보다는 눈길이 가는 곳, 들리는 것마다 느끼고 깨달아

보세요. 옛말에 "여자의 고개가 약간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고 눈도 왼쪽으로 내리

깔고 있거든 네 말을 긍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라 하지만 오른쪽으로 많이 치우쳐

있으면 살기를 가지고 있다"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렇게 관상법에서는 움직임까지도

포착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안 이 비 설 자체가 가지고 있는

상대적인 차원을 깊이 연구하셔서 이런 차원에서 가질 수 있는 성격같은 것을 많이

유추해 보십시오. 이론이나 지식의 움직임 보다는 직관적인 차원을 개발해 보십시오.

느낌을 중요하게 여기라는 부탁을 드립니다.

  여러분들은 삶과 죽음이 분리되어 있고 건강과 불건강이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요. 그런데 사실은 이런 분리의식이 우리에게 질병을 주는 것입니다. 건강과

질병을 우리는 일반적으로 상대적인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만 질병이 곧

불건강이죠. 제가 처음에 여러분들에게 '묘관찰지'를 주장했습니다. 사람이나 동물도

묘하게 관찰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 사람을 태음으로 치료할 것이냐, 태양으로 치료할

것이냐 하는 것을 많이 이야기했습니다만 이제부터는 '평등성지'를 이해해야만

합니다.

  여러분들이 의사라 하여 "나는 병을 고치는 사람이다"라고 하고 있는데 도대체 병은

누가 고치는 것인지, 어떤 것이 질병을 고치는 주인공인지, 과연 꼭 약물에만

의존해야만 하는 것인지 또 신이 고친다고 하는 것은 없는 것인지 이런 것을 한번

짚고 넘어가 봅시다. 결국 질병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양명이라든지

태음이라든지 어떤 한 기운이 오래 쌓인 것이 바로 질병입니다. 그런데 이 질병이

영원한 것이라면 문제는 심각한 것일테죠. 그러나 이 우주의 법칙이라고 하는 것은

항상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주의 법칙은 무상하거든요. 질병 자체도 변하는

것입니다. 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약물로 치료를 하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본래 가지고 있는 관하는 능력, 진리에 대한 깨달음으로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지나치게 약물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만약에 몇 가지

약이나 침을 놓아서 생계를 유지하고 환자를 치료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참으로

치사스런 얘기가 됩니다.

  어떤 사람이 설령 병을 여러가지의 합병증으로 지녔다고 하더라도 그건 우주

전체에서 볼때 있을만 하기 때문에 있는 것이고, 또 그것 자체가 하나의 현상일

뿐입니다. 우리들의 마음 속에 불건강이라는 차원만 이해하고 나면 또 질병 자체가

영원하다는 생각만 떨구어 버리고 나면 질병 자체에서 오는 공포에서 자유스러울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요즘의 양방의학이 사람들에게 심어주고 있는 가장 무서운

세뇌공작 중의 하나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것은 불치다. 고칠수 없는 암이다.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라고 하는 그 '불치'라고 하는 강박관념이올시다.

그런 말을 환자가 듣게 될 때 죽음에 대한 공포를 받게 됩니다. 여러분들 스스로는

죽지 않는것, 죽음의 공포라는 것은 본래 없는 것이라는 사실, 질병이라고 하는 것이

하나의 현상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깨닫기만 하면 아무 것도 아닌데 그것을

이해하려고 하지를 않는 겁니다. 저는 우리 의사들이 제3세계에 제3의 물결이

벌어질 이 시대에 이런 능력을 일깨워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정신적,

사상적 배경이 "내경"이나 우리의 경전 속에 은밀하게 감추어져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은 제게 와서 이제 많이 피곤해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선문답도

던져 보고 수많은 유심적인 차원에서 많은 암시를 드렸습니다. 제가 이렇게 많은

혼란을 여러분들에게 드리는 이면에는 또 다른 측면이 있지 않겠느냐 하는 것을

여러분들이 눈치를 채셔야 합니다. 제가 여러 잡다한 것을 이야기할 때 이러한 깊은

것이 있다는 것을 말씀드려야 여러분들은 혼란에 빠지질 않습니다. 제가 여기에서

끊임없는 말장난을 늘어 놓는다면 여러분들은 나중에 제가 이야기 한것을 이론화하여

외우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관념의 노예가 됩니다. 그렇게 될 때 여러분들은 죽은

사람이 되는 것이죠. 현재에 사는 사람이 아니고 과거에 사는 사람이 됩니다. 제가

사암침법을 이론과 지식으로 공부하여 여러분들과 함께 연구하여 보자고 제창했다면

이론부터 가르쳤을 겁니다. 그런데 저는 전혀 이론부터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면 사암침법 책 처음에 어떤 환자를 수양명대장경으로 치료해서 낫게 해 주었다면

'왜 수양명대장경을 썼을까'하는 한가지 만을 가지고 그것이 이해될 때까지

설명했겠지요. 저는 한 가지가 풀어지지 않으면 그 다음을 진행시키지 않는

사람이거든요.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많은 학문체계를 완성하고 나름대로의 어떤 것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만 저는 긴세월 동안 무지무지한 방황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마치 백내장 걸린 사람이 엉터리 수술을 받아서 희끄무리하게 세상이 보이는

것처럼 그저 조금 보일락말락할 정도로 보게 되었을 때 그 기쁨이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모든 식물과 광물, 모든 무생물과 인간이 모두가 똑 같은 식정을 가지고

있고 모두가 하나라는 사실, 모든 것이 신의 내재된 표현에 불과하다는 것, 모든

병이라고 하는 것이 어떠한 하나가 부족해서 오는 것이고, 하나의 깨달음이 없어서

오는 것인데 그 깨달음만 얻으면 질병에 걸리지 않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 하는 것을

알게 된 거지요. 여러분들 중에서 사암침법을 공부하고 오운육기 조금 알았다고 해서

자기 Ego의 확대로 삼지 마세요. 여러분들은 저에게 속은 겁니다. 왜냐하면 저는

하나를 얻어서 이렇게도 얘기해 보고 저렇게도 이야기 해 보고 그때그때의 분위기에

따라서 예를 다른 것으로 들어드린 것 뿐입니다. 모든 것은 그때그때의 분위기에

따라서 예를 다른 것으로 들어드린 것 뿐입니다. 모든 것은 그때 뿐이었습니다.

옛날에 헤라클레이토스는 "같은 강물에 두번 발을 담글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인식의 소용돌이, 나는 불교인, 나는 기독교인, 나는

한국인, 너는 일본인 이라고 하는 터무니 없는 민족주의, 종교주의에서부터 지연에

얽매이는 형태에 이르기까지 이런 관념의 분리가 심지어는 건강과 질병도 분리를

시켜버리더군요.

  지금 여러분들의 마음 속에 분노가 있고 시기 질투가 있는데 나는 건강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지금 지구상에 있는, 남을 건강하게 해주려고 하는 의사라고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심리적으로 건강할까요? 한의학과 학생들이 본과 4년을 마치고 나면 국가에서

인정한 면허증을 받지마는 정말 그러면 한 생각 이전의 도리, 진리에 대한 각성, 또

진정한 의미에서의 환자에 대한 사랑과 자비가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지구상에서는 의사로서 공부를 시키는데 있어서 질병을 치료하는데도 어떤 이론이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제가 여기에서 음양이니, 사상이니 이야기 하는 것은

옛 성인들이 부득불 그렇게 이야기 했다는 것을 예를 들어 보인 것뿐입니다.

여러분들이 진실로 사랑하는 애인이나 정말 사랑하는 자식이 있다면 그들이 항상

의사에게 돈 내놓고 자신의 몸을 맡기도록 해야할까요? 혼자서 병을 치료하는 법을

터득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지요. 바로 이런 것을 황제내경에서는 암시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강좌에서 여러분들이 전혀 듣지 못하던 이야기를 많이 이야기 합니다. 그것은

여러분들의 호기심을 돋구기 위해서일 뿐입니다. 만약 제가 매일 본마음을 찾아라.

분리 없는 마음, 공포 없는 마음, 소유없는 마음만을 강조한다면 금방

지루해지겠지요. 그러니까 몇 가지의 이론 체계를 드러내면서 신의 공덕, 깨달음의

공덕을 드러내는 것일 뿐입니다. 제가 이 자리에서 이렇게도 이야기 해보고 저렇게도

이야기 해보는 것에 여러분이 속는다면 여러분들은 40일 동안 더 죽어서 나가게

됩니다. 사암이란 도인의 노예가 돼버리는 거죠. 도대체 사암침법을 들으러 온 놈은

누구며 궐음 소음 태음을 운운하는 사람은 누굽니까? 제가 사상이 어떻고 오운육기가

어떻고 하는 것은 여러분들에게 필요이상으로 많이 들어있는 이론이라는 허상을 깨기

위해서 극약을 쓰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개중에 영적으로 아주 개발되어 있고 사랑이 넘치고 마음이 비어 언제든지

겸손한 상태로 되어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군더더기 말이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을

한번 보면 상대방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마음이 빈 상태까지 갈 수가 있는 겁니다.

쉽게 예를 들면 우리 한의사들이 "동의보감"의 지식만 가지고 더구나 양방지식만이

결부가 된다면 창조가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항상 이 공부의 중요성이 결국은 진리에 대한 자각에 있음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선문답이라고 하는 것은 그 문제를 주는 가운데 분리 없는 마음, 비교없는

마음, 높고 낮음이 없는 마음으로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앞으로 우리

한방계의 샛별이 되고, 수많은 생명들을 영적으로 개화시키고 지구를 개화시키려고

하는 노력에 한 부분을 담당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하나의 이슬에서부터 날아가는

새, 어떤 초목에 이르기까지 고요히 관찰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세상 사람들로부터

사자붙은 도둑놈이라든지, 옛날 의사같은 면이 없다는 그런 비난을 받아도

마땅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은 질병도 하나의 현상이라고 하는 것,

분리나 비교가 없는 마음으로 진리를 깨달았기에 질병을 치료하는 데에도 침이나

약물에만 의존하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한번 깨달을 때 '아하! 진리라고 하는 것이 이렇게 간명한 것이로구나,

결국 모든 것이 나한테 있었구나, 그런 것도 모르고 괜히 외부로 헤맸구나'하는

자각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어디에 유명하다는 선생이나 도사같은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고 여러분 스스로 판단하게 됩니다. 여러분 스스로 판단이 되어질 때

한방이 개화가 되고 창조가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오운육기도 이야기를 하고, 선법도 이야기를 하고, 사상도 이야기를

하여 여러분들에게 혼란도 주지만 신선한 감각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여러분들도 못듣던 소리를 해야 합니다. 무언가 사실에 대한 단순한 직관 간명한

깨달음, 이런 것들이 먼저 선행이 되어야 지구상에 존재하는 의학이나 침이나 약물의

조잡스러운 작업을 거치지 않고 나야말로 정말 의사라고 하는 '관'을 터득하게

될 것입니다.



@[(10)@]

  그래서 오늘은 여러분들에게 제가 감명스럽게 읽었던 책 중에서 감동스러운 장면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이것은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지는 않으나 몇몇 타고난 영적능력을

가진 사람만이 교통할 수 있는 성인이 어느 의사에게 나타나서 들려준 이야기 입니다.

여러분들이 이것을 믿을지 믿지 않을지는 모르지만 성인이 의사에게 들려준 말이므로

같은 의사로서 같이 한번 생각해보자는 의미에서 읽어드리는 것입니다. 다음은

맥도널드 베인의 "Beyond the Himalayas(히말라야를 넘어서)"의 내용 중 일부입니다.


  "시간이 시작된 이래, 인간은 병을 고치는 힘과 진리를 전해주는 힘을 누구나

타고 난다. 신유가운데에는 그야말로 상상도 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인간의

마음으로는 이해하지 못할 만도 하다. 그 때문에 회의가 생기고, 신유같은 것이

있을 턱이 없다는 생각에서 그러한 놀라운 치유의 본질을 부정하려는 온갖 시도가

있어 왔던 것이다"


  제가 알고 있는 어떤 여자는 시어머니, 남편, 아들 이렇게 4식구가 살고 있었는데

어느날 위암에 걸렸습니다. 위암 선고를 받고 굉장히 절망에 빠져 있었는데 그만

남편과 집을 뛰쳐 나와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는 집을 뛰쳐 나온지 6개월만에

위암이 다 나아버렸습니다. 이 여자는 시어머니를 마치 벌레처럼 싫어하였던

것이었습니다. 시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스트레스를 받았던 이여자도 문제고 또

그 시어머니도 문제였지만 이처럼 인간관계에서 얽히고 설켜서, 암이 조장되는

환경이라는 것 또한 대단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그 환경에서 벗어나고 나니까 암이 나았다고 하는 것이 정말

희한하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은 기도원에서 기도하다가 간암이 나았다는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불공을 드리다가 자궁암이 나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정말 이런 일이 어떻게해서 일어날 수 있는 것인지, 우리 한의사들은 양방에서

하고 있는 세계보다는 더욱 깊은 세계, 눈에 보이지 않는 경락 세계를 탐사하고

있습니다만 그것보다 더욱 더 깊숙한 본질적인 것은 없는지...


  "신유는 어떠한 물질적 방법을 써 보아도 낫지 않는 질병에 놀라운 효과를 눈으로

보게 해주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 거대한 영의 힘에 아직도 눈뜨지

못했다. 그 까닭은 마음이라는 것은 마음을 넘어선 세계에까지 미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제가 지금까지 궐음 소음 태음...등을 이야기 한 그러한 것들은 결국은 마음의

장난입니다. 이런 마음은 결국은 생각도 되고 추리도 되고 또 이것이 조화를 하여

하나의 선도 이루고 악도 이룹니다. 어떤 사람이 이야기를 합니다. "저는 개종을

했습니다" 불교를 믿다가 천주교로, 천주교를 믿다가 기독교로...이것은 대상만

바뀌었을 뿐입니다. 또 어떤 사람이 이야기를 합니다. "저는 여자를 버렸습니다"

그러면 여자로부터 자유스러워졌느냐? 그렇지 않지요 다른 여자와 사귈 뿐입니다.

그러니까 대상만 바뀌었지 마음이라는 문제를 한번도 해결해 본 일이 없는 것입니다.

  마음이 정제된 상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좋고 싫음이 정제된 상태, 인간들은

참으로 어리석어서, 심지어는 의학을 공부하는 여러분들까지도 그러한 신유라든가,

근본적인 도리, 한 생각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 음양이전으로 돌아가는 것,

선악이전의 에덴동산, 지인, 진인에 대한 이야기도 먼 산 속에나 있는 달인의 경지가

되어야만 할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의사도 엄밀하게 따지면 의사가

아니라 환자입니다. 지금 상황에서 의사들이라고 하는 것은 전부 환자에 불과한

것입니다.


  "마음은 마음 자신이 알 수 없는 것에 대해서나, 이론을 알지 못하는 것이나,

이론은 넘어선 것은 규명하지 못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마음이 이론을 만들었기 때문에 마음이 만들어 내는 이전의 것을 마음이

알 수가 없지요.


  "신유가 일어나는 것은 실로 그와 같은 영역에서이다"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았다고 하는 자가치료, 옛말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병은 하느님이 고치고 돈은 의사가 받는다" 영국에서 이런 얘기도 있지요. 어떤

의사가 환자에게 "술을 끊으십시오"하니까 환자가 그냥 문을 열고 나가려고 합니다.

그러자 의사가 환자를 불러 세우더니 "뭘 잊어 버리신 것이 없으십니까?" "잊어버린

것이 있다니요? 전 아무 것도 잊은 것이 없는데..." "돈을 내고 가셔야지요" "저는

치료를 받은 적이 없는데요" "충고해 드렸잖아요" "나는 당신의 충고를 받아

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돈을 낼 필요가 없지요"

  요즘 의사들의 현재하고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환자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에

대한 배양보다는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 몇 가지 된다 안된다 하는, 어찌보면 뻔한

것을 팔아 먹고 있는 것에 불과하지요. 환자들로 하여금 이런 체질에는 이런 것이

맞고 저런 체질에는 어떠한 것이 맞는다고 하는 교육도 필요할 뿐아니라 모든 병은

이러이러한데서 온다고 하는 자체 원인의 근본은 마음에 있다는 것을 먼저

이야기할 수 있는 교화작업이 필요합니다. 목사나 승려들이 다하지 못한 분리없는

마음에 대한 깨우침을 우리 한의과 학생들이 환자들을 대상으로 일깨워주어야 합니다.

신유가 일어나는 것은 마음에 있는 어떤 문제를 떠난 상태, 초월한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어떤 종류의 현상이든 모두가 스스로 지혜있는 법칙에 의하여 나오는 것이며,

그렇지 않고는 현상이라고 하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가령 자네가 어떤 일을

두려워하거나 또는 무엇인가를 믿고 있으면, 거기에 어떤 크나큰 지혜가 작용하여

자네가 두려워하거나 또는 믿고 있는 그것을 바로 만들어 내고 만다. 이것이 상념의

법칙내지 전자작용의 법칙이다"

  소위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생각의 파도 즉 염파, 이것이 의사에게는 유효적절하게

사용되어야 함과 동시에 비울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네를 둘러싸고 있는 혼란의 원인은 그 밑바닥에 있는 생명의 원리를 깨닫지

못하는 데에 있다. 그러한 어리석음 때문에 훌륭한 두뇌를 가진 사람들까지도 인간,

그것 속에서 작용하고 있는 생명의 법칙을 이해하지 못한다"

  항상 잠잘 때나 앉을 때나 설 때나 데리고 다니는 근원에 대해서는 생각을 안한다

이거지요.


  "수학의 법칙이 존재함을 부정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일 것이다. 진리와 진리의

법칙이 존재함을 부정하는 것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사람은 진리의 법칙을

이해할 수는 있다..."


  지금 이 성인은 인간의 질병이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 지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여러분들은 질병을 보더라도 질병 자체를 건강과 분리시켜서

생각하지 말고 '질병 자체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창조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다'라고 생각하십시오 저는 한의과 학생들에게 수차에 걸쳐서 어느 한 쪽

분야만 지망하지 말고, 종합과를 지망하라고 주장하여 왔습니다. 여러분들은 의사가

가지고 있는 지혜가 대단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사실은 별것이

아닙니다. 만약에 내가 간장암만을 전문으로 보게 된다면, 간암이 가지고 있는 독소를

한 경락으로만 받게 되어 큰 병을 얻게 됩니다. 그렇지만 종합과를 다루고 있는

의사는 큰병에 걸리지를 않습니다. 요즘은 자꾸 분업화 되어서 '내가 하는 일

이외에는 모른다'라고 하는데 분명히 마음의 어떤 에너지도 한 곳으로만 쓰게 되면

병에 걸리기가 쉽습니다. 질병이라고 하는 것은 항상 분리 편재된 마음의 에너지

때문에 오는 것인데 사실 의사라고 하는 것은 질병 때문에 존재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이 의사라고 하는 사람들이 질병의 근본인 에너지의 편재 즉 마음을 잘못 쓰는

문제를 연구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죠. 여러분들은 이제부터 눈을 거꾸로

돌려서 내면의 세계를 주시해 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들은 저에게

속은 것이 되고 설령 여기에서 사암침법을 배웠다고 하더라도 환자를 볼 때 각자의

관념이 작용하게 되어서 엉뚱하게 환자를 고치기는 커녕 자기 자신의 Ego를

투영시키는 이상한 의사가 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항시로 마음이 일으키는 질병을

전부 없앨 수 있는 비결은 없겠느냐 하는 것을 연구하여야 할 것입니다.


  "모든 질병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원인들의 결과이고, 자연의 법칙을 어기거나

무시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그것은 무지, 공포, 사랑의 결여 곧 사랑을 주는

힘의 결여, 끊임없이 사랑을 받으려고만 하는 자아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서 생겨난다.

병은 육체와 마음이 그 본래의 리듬을 잃었음을 나타내는 현상이며, 동시에 그것은

본래의 리듬을 되찾으려는 처절한 싸움이다. 바꾸어 말하면, 만약 사람이 자연의

법칙을 무시하고 마음의 평안을 잃어 허둥댄다면 마음의 주의는 나타나는 증상에

쏠리게 된다. 왜냐 하면 육체가 신경을 통해 그 증상을 마음에게 알리면 마음은

육체가 느끼는 것의 포로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마음은 육체를

그 증상에서 구해내려고 애쓰게 된다. 그리하여 육체의 원자들을 휘저어 놓고 결국은

고통이나 불쾌감이 오게 하는 것은 마음이 육체를 구해 내려는 그 싸움이다. 이런

이치를 알 때 싸움은 멎는다"

  제가 앞에서 이야기한 것이 있는데 여러분들이 얼마나 실천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가볍게 체했을 경우 통처에 마치 물고기를 들여다 보듯이 가만히

관하는 방법, 그것이 뒤에 염화약방문에도 나오는 "정심주"라는 방법입니다. 병처를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으면 병명이 무엇일까? 원인이 무얼까? 하는 수많은 질문에

부딪히게 되지요. 그러나 그 원인을 알아 내려고 하는 노력 또한 또 하나의

마음이므로 그것 마저 떨구어 버리고 관하는 것입니다. 선가의 선사들은 처음 선가에

입문한 사람의 질문에 대답을 많이 해줍니다. 저의 어머니와 아버지의 관계는 어떻고,

나는 그 속에서 어떤 구박을 받고 자랐고, 집안 식구들은 어떻고, 애인도 나를

배반하고...그러면 여기에 대한 이야기를 해줍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어느 시기가

되면 일체 대답을 해주지 않습니다. 질문 자체에 대답하여 주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선사들은 알고 있지만 처음에는 대답을 해주는 거죠. 처음부터 대답을 해

주지

않는다는 것은 범부들에게는 무리이니까요. 그러면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났을 때 이 사람은 질문을 부여안고 끙끙 앓다가 질문을 한 자기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차차 공부를 하다보면 집안의 문제, 애인의 문제 등등

여러 가지 문제를 잊어버리게 되고, 모든 문제는 자기가 스스로 만들었다는 것,

또 문제의 해결도 자신이 해결해야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 사암침법이라는 문제도 모든 사람의 병을 보는 것도 여러분 스스로의 눈으로

보아야지 결코 교수이든 누구이든 타인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자유스러운 마음으로 하나의 이론을 수용하고 잊어버리고 또 이론을 수용하고 잊어

버려야 합니다. 만약 그렇지 못하고 이론에 집착을 하면 큰일나지요.


  "마음은 육체의 느낌을 의식하고, 그 느낌이 어떤 '병'으로서 마음에 기록되며,

거기에 어떤 병명이 붙으면 마음은 그 병명에 사로잡히고, 더구나 그것이 어떤 불치의

병이라 하게 되면 마음은 그대로 그것을 받아들여 부담은 더더욱 커진다"

  제가 누차에 걸쳐서 양방병명으로부터 자유스러워야 한다고 주장을 하였는데

양방병명 뿐만 아니라 그 어떤 병명으로부터 자유스러워야 합니다. 어떤 환자가

왔을 때 이것을 비만증이라고 해야 할까? 음허라고 해야 할까? 양허라고 해야 할까?

자꾸 우리 의사들은 어떤 증상에 이름을 붙이려고 합니다. 이때 병명을 붙이는 순간

그 사람은 과거의 기억이 작용한 것이기 때문에 환자의 실재 모습을 보는데서

멀어지게 되지요. 환자를 보면서 "상에서는 어떠했고 오운육기는 어떠했고, 육기는

어떠했으므로 이 사람은 이런 체질이다"고 딱 규정을 짓는 순간 여러분은 실상에서

속고 있는 것입니다. 설령 소음인, 태음인, 태양인, 소양인이라고 하는 사상이

난변이라 하더라도, 모든 것이 항상 변한다는 것, 제행무상이 참 진리일진대

모든 것을 고착적으로 결정해 버린다는 것은 우둔한 의사의 모습일 뿐입니다.

  요즘의 의사는 환자들에게 엄청난 공포를 심어주고 있습니다. "혈관 속에 무엇이

들어 있을지 모르므로 X-ray를 찍어 봅시다, 가슴 속의 덩어리가 혹시 암이 아닐지

모르겠군요, 정밀검사를 해봅시다"등등 이런 공포의식은 마치 인간이 신에게

돌아가기 위해서는 목사나 승려, 신부라는 중재자를 통하지 않고는 그 티켓을 따낼 수

없다는 논리와도 똑 같습니다. 요즈음의 종교라고 하는 것은 전부 이러한 공포의

변형된 실체, 공포의 변형된 움직임에 불과합니다.

  진리에 대한 각성 이전에 "이 약을 먹어야 됩니다"라는 겁을 던져주는 것이지요.

이런 공포는 심리적인 이득, 물질적인 이득 두 가지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

크리슈나무르티 선생은 말하기를 "항상 공포라고 하는 것은 상대방으로부터 심리적

존경 내지는 물질적인 것을 얻고 싶기 때문에 주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자꾸 습관화가 되면 재미가 붙게 되고 그러다보면 환자나 의사나 모두

찐득찐득한 업의 수레바퀴로 기어들어가게 되는 겁니다. 이제부터 여러분들은 환자를

볼 때 병명으로부터 자유스러워야 하고 또 불치병이라고 하는 선고를 함부로

내리지 마십시오. 그렇다고 억지로 희망을 주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런 병이

오게 된 이유에 대하여 설명을 해주고 환자 스스로가 모든 원인이 자기 자신에게

있었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해 주라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공부를 하는 과정에 가정과는 완전히 담을 쌓은 사람입니다.

누가 누구를 버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장남으로 태어나 집안의 장손이면서도 제사에도

안 가는 엄청난 불효자로 낙인이 찍혀 버렸습니다. 같은 서울 시내에 살면서도 서로

찾아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부친께서 방광암에 걸려서 찾아오셨습니다.

혹시 무슨 방법이 없을까해서 저를 찾아온 것이었지요. 저는 미리 예견을 하고

있었습니다. '올 것이 온 것이로구나'하고 말입니다. 사실 제 가족의 욕을 해서

미안합니다만 저는 있는 그대로 털어 놓는 성격이기 때문이니까 그냥 들어두십시오.

저의 아버님의 성격은 긴장이 많고 공포가 많고 조심이 많은 성격인데 금방 어머니와

몽둥이를 들고 싸우다가도 남들이 보는 앞에서는 "My darling"하면서 맛있는 것 좀

내오라고 졸지에 표변할 수 있는 교활성, 가족들에게 집안에서는 전혀 그렇게 하지

않으면서 바깥에서는 체면 세우느라고 사랑이 넘치는 행동을 하는 이런 이중성을 저는

어려서부터 보아왔기 때문에 저것이 언젠가는 병이 될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방광암에 걸려서 왔더군요. 이것은 사형선고입니다.

  "방광암은 불치입니다. 잘라내야 합니다"하고 양방의사들이 관념을 딱 넣어주니까

저와 한 달간 입씨름을 했는데도 결국은 자르고 말더군요. 그러더니 지금은 후회를

하는 겁니다. 소변기를 옆에 지니고 다니면서 말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이 진리에

가까와지면 질수록 제일 믿어주지 않는 사람이 가족입니다. 특히 사촌이나 동생,

아버지, 어머니를 치료할 때 전혀 믿으려고 하지를 않죠. 도나 진리를 공부하는

초반전에는 가족들에게서 받는 고통은 대단합니다. 내가 추구하는 것과 그들이

추구하는 것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부모는 비록 자기 자식이지만 손아귀에서 떠난

느낌을 받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부모가 여러분에게 보여주는 애정이 참 사랑이 아닌

소유일 뿐이거든요. 자신의 소유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어느날 도를 공부하고 진리를

공부하는 자식의 모습을 보게 되니까 그만 자기에게서 멀어졌다는 느낌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자식의 말을 전혀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저희 아버님도

양방의들의 말을 듣고 방광을 떼어내고는 후회를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지요.

그러므로 병에 대한 관념을 여러분들이 먼저 해결해야 합니다. 의사들이 먼저

공포로부터 자유스러워야 합니다. 내가 어떤 존재며 정말 죽음과 삶이 분리가 되어

있는 것인지 질병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여러분들은 실제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바로 이 말이 그동안 가장 하고 싶었던 말 중에 하나입니다. 다른 이야기는 하면

할수록 따분하고 지루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은 처음 들으니까 신선한지 몰라도

저는 한 이야기를 또 하는 것이므로 지루할 뿐입니다. 저는 간단히 말해서 여러분들

손에 칼을 그냥 쥐어주고 싶고 물감과 붓을 그냥 주고 싶을 뿐입니다. 그려 놓은

그림만 그냥 구경하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제가 그리는 그림을 아무리 이야기해

보아야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저 여러분들 마음에 시비지심만 들끓을 뿐이지요.

  학교 다닐 때 공부도 못하고 여러모로 부족해 보였던 친구가 개업하고 나서

환자들이 많이 밀려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을 학교 다닐 때 바보

같았다고 욕을 해서 될까요? 여러분들은 아는 것만 가지고 학교에서 1등을 했지만

그 사람에게는 환자를 향한 사랑이 있을 지도 모릅니다. 환자의 마음을 푸근하게

해 주는 그런 기운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사암침법 강좌를 하면서 인간이 가진 영성에 대하여 단순히 몇 개의 이론이나

박학다식한 이론관을 창조하여 내었다면 이것은 하늘에 죄를 짓는 일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여러분들에게 성 안토니오가 이야기 하는 기발한 질병관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들이 죽었다가 깨어나도 다시 듣기 힘든 것인데

저는 이 안토니오의 질병관이 시금석으로서 남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은 병의 원인이 자신의 참 모습(실상, 자아)에 대한 무지와 자연의

법칙을 무시한 데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 그 때는 그 무거운 부담이 사라지며,

대 생명인 한얼이 마음을 변성시켜 육체는 자연의 완전한 작용에 순응하게 된다"

  "인간은 육체에 이상이 있으면 병으로 느낄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하고 나는

물어보았다.

  지금 여기에서 질문자는 영국인 의사로서 티벳 지방을 여행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책을 낸지는 오래 되었는데 우리 나라에는 최근에 번역이 되었지요.


  "그렇지, 육체의 세포사이에 어떤 분리가 생기면 그것은 뇌의 중추에 전달된다.

그러면 마음의 현재 의식이 그것을 불건강으로 인식한다. 근본적으로 한얼, 곧 인간의

참 모습인 완전한 힘을 깨닫지 못한 데서 공포와 불안이 생겨났다. 그러나 마음이

진리를 받아들이면 그것이 뇌 중추에 전해지고 그리하여 육체 세포의 재건이 시작되는

것이다"


  우리들 중에는 기독교인도 있고 불교인도 있으며 이 파도 있고 저 파도 있습니다.

그리고 혹자는 자기가 속한 곳의 편을 들어 과다하게 다른 부분을 배척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분리 의식 속에 살아가고 있는 한의사가 있다면 그 사람은 의사 이전에

비열하고 자기 Ego적이고 분리의식에 가득찬 추악한 존재에 불과합니다. 여러분들의

터무니 없는 망상, 분리의식이 깨어지면서 세포가 변화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의사다, 나는 한의과 대학을 다닌다, 나는 사암침법 공부하였다'라는 그런 상이

없는 사람만이 신에 가까운 사람입니다. 저는 지금의 우리 의학이 좀더 영적인 상태로

개화하려면 깨닫는 의학, 신을 찾는 의학, 종교적인 의학으로 분명히 승화되어야

한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께서는 이말이 이 책이 지니고 있는

핵심이라는 사실을 기억해 두시기 바랍니다.


  "마음이 육체를 어떻게 해보려는 싸움에 사로잡혀 버리면 첫번째의 방위선인 이성의

벽이 무너져 결국 육체 세포의 부조화라는 정보를 최후의 선고로 받아들이고 만다.

그러나 자기 존재의 진리를 깨달으면 치유작용이 일어난다. 말하자면 진리를

깨달음으로써 마음이 강하게 충전되어 완전하고도 순간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그것이

바로 신유이다"

  저는 지금 제 말을 듣고 있는 여러분 자신이 무한하고 절대적인 존재라고 믿고

있습니다. 지금 나의 말을 듣고 있는 그 주인공, 만약 여러분들의 육체가 스스로

움직일 수 있다면 어째서 시체는 스스로 움직이지를 못합니까? 그 육체를 움직이고

있는 주인공이 없기 때문이겠지요. 옛날에 제 사부님께 어떤 사람이 와서 "요즘

스님들은 술만 먹고, 고기만 먹고 여자들만 좋아한다고 하는데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제 사부님께서 "그런 말을 어디서 들었는고?"

"소문으로 들었습니다" "소문은 무엇으로 들었는가?" "제 귀로 들었습니다"

"네 이놈! 귀로 들었냐? 죽은 시체는 귀가 있는데 어찌 듣지 못하느냐? 당장 꺼져라!

이놈! 어디다가 입을 함부로 놀리고..."

  바로 이와 같습니다. 깨닫지 못한 사람은 시비만 일삼을 뿐이지요. 이것이 선문답이

올시다. 죽은 시체도 귀가 있는데 어째서 듣지를 못할까요? 지금 제 말을 듣는 사람,

보는 사람, 생각하는 주인공이 이 우주의 영겁을 통하여 존재하여 왔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며, 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깨달음의 근본의

자기 확인 이외에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지금 이것을 여러분들에게 일러주고 있는

저나 혹시나 하고 의심하는 여러분들이나 모두 똑 같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무엇을 의존하고 또 무엇하러 공부를 하고, 또 무슨 주고 받을 것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들 스스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자기 확신이 없기 때문에 항상

의존하고 권위자가 생기고 숭배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일종의 공포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처럼 되어 보려고 하고 무언가 지식과 정보를 얻으려

합니다. 지식과 정보를 얻는다는 것은 하나의 소유에 해당합니다. 지금 드리는 말씀이

혹시 여러분 가운데 단 몇 사람만이라도 깊은 이해가 있으시길 바랄 따름입니다.


  "병이 시작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하면 자기 존재의 진리 곧 참 나는 완전

무한 절대라는 자각이 마음에서 사라지고 불건강이라는 의식이 마음을 지배하여

쾌활함과 생동감을 잃는 것이다. 그때까지 육체를 지탱해 오던 마음이, 병이 실제로

있다는 미망의 마력에 굴복하여 진리가 한 때 사라지는 것이다"

  성안토니오의 질병관은 간단합니다. 진리를 깨달으면 질병도 없어 진다는 것이지요.

특히 이 점을 의사들에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지닌 한얼의 종주권에 관한 지식을 부조화 혼란이라는 세력에 내어주고

마는 것이다. 자, 그렇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어떻게든 회복하려고 약제에

매달리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그것으로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약제의 힘을 완전히 미신하게 된다. 그러다가 병의 상태가 다시 나빠지기라도 하면

완전히 미신하고 있었던 만큼 혼란은 더욱 커지고, 끝내 믿을 수 없음을 깨달으면

그대로 절망과 공포의 늪으로 빠져버린다"

  사람들은 병에 걸리면 어떻게 해서든지 회복하려고 온갖 약제에 매달리지요.

십전대보탕 쌍화탕 제미십팔탕...그러다가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혹시 내가

중병이 아닐까? 싶어서 한약도 써 보았다가 양약도 써 봤다가 X-ray도 찍어봤다가

빚을 얻어서 큰 병원에 입원도 해보고 여기 저기 검사를 다해 봅니다. 왜냐하면

불안하고 또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있기 때문에. 그러나 어쩌다가 화학적인 변화로 병이

좀 낫게 되면 그 약제가 나를 낫게 했다고 완전히 맹신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다시

나빠지면 '내가 나았었는데 왜 또 병에 걸렸을까?'하고 병의 상태가 나빠진 만큼

절망과 공포의 늪으로 빠지게 됩니다.

  실패는 누구에게나 다 있는 것인데 그 실패로 인한 공포감, 좌절감 또 실패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병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병이 왔을 때 병 그 자체를

보지 못하고 병에 대한 연상, 죽음을 죽음자체에 대해 정면으로 부딪치지 못하고

죽음에 대한 공포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병 자체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절망과 공포가 문제라는 거지요.


  "육체는 화학작용의 구성물이 아니라는 것을 깊이 깊이 알아야 한다. 육체에는

지혜와 기능과 육체의 영위를 유지하는 놀라운 짜임새가 갖추어져 있으며 그것이 곧

대생명의 활력이고, 그 대생명의 활력이 육체의 운동과 변화를 일으키는 바탕이다.

약초나 생약, 호메오파디(동종요법), 수치료법 등의 자연요법은 대개의 경우 세포에

작용하여 생화학 반응을 일으키고, 그것이 강력한 암시가 되어 그 암시에 따라 마음이

작용하게 된다. 마음에 미치는 이런 작용이 결국 건강의식과 몸속의 균형 조화를

회복시키고 재생시키기에 이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내재의 영력의 법칙을 깨닫지

않은 상태에 있다면 다음에 오는 2차적 상태는 처음의 그것보다 더 나빠지기

일쑤이다.

  병인 것을 알고 있는 것은 자아뿐인 것이다. '얼(영)'은 병이라는 것에 대하여는

아무 것도 아는 바가 없다. 이기심, 빼앗고 받기만 하는 마음, 탐욕, 미움, 적의,

인색, 완고, 난폭은 자아의 것이며 이것들이 거의 모든 병의 원인이다. 비인격적이며

치우침 없는 한 얼은 그런 부덕에 대하여는 아는 바 없다. 따라서 치우침 없고

비인격적인 것이 신유이다. 비인격적으로 되면 될수록 사랑이 깊어지고 친절해진다.

왜냐 하면 사랑은 비인격적인 것이며, 사랑은 용서요, 치유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신이며 사랑은 무릇 반작용이 따르지 않는 완전한 작용의 바탕이다"


  우리는 보통 인격체가 되라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만 신이라고 하는 것은 의외로

여러분의 생각 속에 있는 그런 인격적인 존재가 아니라 비인격적인 존재입니다.

여러분! 사람인자 옆에 아니불자를 쓴 것이 무엇입니까? 부처 불자 아닙니까? 사람이

아닌 것이 부처인 것입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분리 분별을 초월한 세계를

이야기 한것입니다. 사랑은 용서라고 했습니다. 공자에게 "일생동안 한 가지 글자를

일러주신다면 무엇을 일러주시겠습니까?"라고 하자 "서하는 일이다. 오로지 서하는

일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마음을 같이 한다는 말입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과 같이 하는 것은 용서입니다. 너그러운 척 하면서 무엇이든지 '잘했다'라고

칭찬하는 것이 용서가 아닙니다. 쉬운 예를 든다면 딸이 엄마와 이야기를 합니다.

"엄마! 나 오늘 남자친구 만났어" "응, 그래! 그건 너의 자유니까..." 이건 용서가

아니죠. "엄마! 나 그애하고 싸웠어" "응, 그래! 그것도 잘했구나" 이것도 용서가

아니죠. 사랑도 아닙니다. 딸의 심리적인 진행 상황을 이해하고 딸의 마음과 나의

마음이 같이 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사랑인 것입니다. 과연 여러분들 마음 속에 이런

사랑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후배들의 정신적인 고통이나 학문적인 갈등을 함께 해결해 보려는 노력을

해 보셨습니까? 선배는 후배를 이용하고, 후배는 선배를 존경해 주는 척하는 관계

속에 운영되는 대학풍토에서는 신이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저를 이용하러

와서는 안됩니다. 오직 제가 가지고 있는 것만 받아 먹으려해서는 안됩니다. 저를

통째로 마시러 와야 됩니다. 뭔가 깨달음을 가지고 돌아가야 합니다. 무엇인가

풀어내 놓는 주인공에 핵심을 맞추지 못하고 제 말끝에만 끄달리면 여러분들은 제게

철저하게 속는 결과가 됩니다.

  이제부터는 여러분들의 눈으로 사물을 보십시오. 음양 이전에 선악이 없는 마음,

시기 질투 없는 마음, 욕망이 없는 마음의 상태로 모든 사물을 관해서 보게될 때, 즉

그 대상과 하나가 될 때 여러분들이 곧 신농씨요, 황제요, 기백이요, 예수요, 석가요,

신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안목은 잊어버리고 자꾸 자기 자신을 비열하게 낮추거나

또 터무니 없는 몇 가지 지식만을 가지고 자기를 높이려 한다면 결국 이런 사람에게는

사랑을 기대하기가 힘듭니다.

  옛날에 조주스님이란 분이 하루는 설법을 하러 올라가서 개고기를 맛있게 먹고

있었습니다. 그날 설법을 들으려는 대중이 250명 정도가 되었는데 조주 스님께서

생각하시기에는 너무 대중의 수가 많았던 것이지요. 조주스님께서 개다리를 뜯고

있으니까 한 사람 두 사람 자리를 뜨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5명만 남았답니다.

그러자 '너희가 진짜 대중이다'하면서 설법을 하셨다고 하더군요. 왜냐하면 250명

가운데는 잘 자라는 싹마저 꺾어버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도의 익은 마음보다는

도인이 되어봐야 되겠다고 하는 즉 뭔가 되어보겠다는 야심을 가지고 온 사람도

있을 것이거든요. 이러한 야심가는 언젠가는 자기 스승이고 친구고, 가족이고 간에

전부 다 이용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여기 사암침법을 개설하게 된 동기는 나를

내던질 사람과 자기 자신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겸허한 마음으로 배우러 온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 자신을 내놓은 사람들만이 모여서 지금 절망에 빠진

한의학을 고민해 보고 활로를 찾을 수 있는 길을 연구해 볼 때 엄청난 힘을 발휘할

것입니다. 인간이 만든 작은 라디오도 채널만 맞추면 좋은 음악을 들려주는데

여러분들이 이 우주에 무한히 떠다니는 염파, 텔레파시를 못잡는 이유는 여러분

스스로가 채널을 맞추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공심법', 즉 마음을 비우지 못하고

'불이법', 둘이 아닌 법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매일 남의 말에 끄달리게 되고,

의사가 되어가지고도 병을 치료하러 다른 의사에게 가는 것이거든요. 그건 내가 나를

믿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선법의 근본은 자기 자신을 믿는 것입니다.


  "개체의 자아가 끊임없이 외적인 것과의 충돌과 갈등에 사로 잡혀 있다는 것을

알면, 그것이 바로 괴로움의 원인을 깨달았음이다. 그리고 그것을 깨달았을 때

비인격적 내재진아가 해방되어 대생명의 모든 힘이 방사되며, 그 자연의 힘의

전자파가 마음과 육체를 변질시키기 시작한다.

  이 안에서의 원자 작용이 잠재의식층에 대해 암시를 준다. 그러면 잠재의식은

순간적으로 온 몸에서 반응이 일어나게 하여 강력한 에너지의 흐름을 올바른 방향으로

돌려 놓아 그 흐름이 향하는 곳에서 불순한 것을 밖으로 쓸어내고 혼란을 가라

앉힌다"


  궐음병은 소양으로 치료하고 소양은 궐음으로 낫게 한다고 제가 이야기 했다고 해서

병이 꼭 공식에 맞게 궐음 소양 태음 이런 식으로 될까요? 옛날에 임제스님이 "밝은

것은 밝은 것으로 치고 어두운 것은 어두운 것으로 친다"하고 돌아다니는 기승에게

묻기를 "밝은것도 오지 않고 어두운 것도 오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하겠느냐?"하고 묻자

"내일 저 위에 있는 대비원에서 제사가 있느니라"하고 휙 가더랍니다. 그제서야

임제 스님께서 "역시 대단한 분임에 틀림이 없구나"했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러분! 병이 궐음으로도 오지 않고 소양으로도 오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제가 경주에 있는 동국대학교에서 강의를 그만둘 때, 저는 학생들에게 뭔가 새로운

것을 일깨워주려고 노력했는데 학생들이 받아들이질 않더군요. 학생들의 태도가

엉망이었습니다. 강의 시작하고 10분 정도 지나서 한 학생이 일어나 하는 말이

"선생님, 저희들 데모좀 해야 되겠습니다" "무슨 데모인데?" "아니 한의사가

그런 것도 모르십니까? 양약사가 한약 제조하는 것에 대한 데모 아닙니까?" 이왕

시작하려면 강의 시작하기 전에 할 것이지 강의 시작한지 10분 정도 지나서 한 학생이

일어나서 유인물을 휙 뿌리더군요. 그래 좋다. 데모도 남자다운 기개니까 얼마나

잘 하나 싶어서 가만히 지켜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으가으가하면서 조금 나가다가

시내에서 검은 차 하나 들어오니까 30분도 못돼서 밀려 들어오더군요. "야! 오늘은

못하겠다. 내일하자" 그러면서 데모를 끝내더군요. 저는 한번 강의를 시작하면 4시간,

다섯시간 쉬지 않고 연속 강의를 했고 또 얼마나 많은 준비를 해가지고 내려갔는데

시꺼먼 차 하나 오니까 밀려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속았다'라는 진한 배신감이

느껴왔습니다. 이런 대접 받고는 도저히 강의를 할 수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데모를 하려면 아예 예수나 석가처럼 하시오"하는 사행시 한번 읊어주고 강의를

끝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연민의 정이 있어서 혼란으로 지내온 여러분들이 안타깝고 정말

가르쳐 주어야 할 것을 가르쳐 주지 않는 학교 풍토, 제 나름대로 지내온 13년 동안의

괴로움을 여러분은 겪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일념에서 그것을 전해 주려고 했는데

그것을 그냥 잔소리 정도로 받아들이더군요. 그래서 그만두고 올라왔더니 이제는

아쉬워 가지고 "잘못했습니다. 강의를 해주십시오"하더군요.

  제가 그때 돈을 많이 번 종합병원의 원장으로서 자가용 굴리고 내려갔었더라면 아마

제게 그런 대접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 강의시간이 되면 눈이 빠지게

기다렸겠죠. 매일 세련되지 못한 옷차림으로 대 여섯 시간 강의를 하고 생맥주 한잔

마시고 올라오니까 은연중에 가볍게 보아도 되겠다는 식으로 여겼던 거지요 지금은

학생들은 진실한 의사관, 진실한 진리, 의사로서 정신을 진심으로 알려주려는

사람보다는 돈이 많고 권력 있는 선배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말을 따릅니다.

왜냐하면 자기도 그렇게 되고 싶으니까...

  그래서 저도 '광화문 네거리에 간판을 하나 내걸고 왕창 돈이나 벌어야 되겠다.

왕창 돈을 긁어모아서 부자가 된 다음에 그 다음에 강의를 한다고 하면 벌떼같이

올 것이 아니겠는가'하는 생각에 5년 후에나 강의를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돈을 빌려

개업을 하고 비록 극소수의 학생일망정 올바르게 공부하려는 사람을 위주로 강연하기

위해서 선실을 열어 두었는데, 제 나름의 신념에 100^34^1도 못 미치는 것을 느낄 때

에는

정말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여러분은 정말 자각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공부를 하셔야

합니다. 자각적인 종교, 자각적인 깨달음을 바탕으로 해서 학문을 재정립하려고 해야

합니다. 지금 그리고 바로 이 자리에서 "황제내경" 한 페이지를 찢어들고 산속으로

들어가 열심히 혼자 명상하는 사람이 태어나야 합니다. 이렇게 공부한 것을

여러분들의 후배에게 물려 주어야 합니다. 후배들에 대한 사랑, 후배들에 대한 교육을

외면하면 절대로 안됩니다. "나는 내가 공부할 때 얼마를 투자했으니까 너희들도

돈 내놔" 이런 일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탈무드에 보면 아버지가 아들에게 돈을 빌려주었습니다. 얼마 후 아들이 돈을

벌어서 아버지한테 돈을 갚으러 왔지요. 그러자 아버지가 기가 막혀서 "야, 이녀석아!

너는 이다음에 네 아들에게 돈 빌려주면 갚으라고 할래? 가져가거라" 우리 지금의

현실을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들이 대학 6년 졸업하고 나서 개업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그렇다고 대학원 들어가기도 힘들지요. 여유가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돈은 없고, 월급쟁이하러 제기동이나 종로에 나가 보세요. 어설픈 사람들

틈에 끼어서 "원장님, 담배라도 한 대 피우시고 다방에 가 계시죠. 제가 알아서

다 할테니까. 슬슬 놀다가 오세요" 저녁때 다섯시쯤 돼서 들어가면 "원장님! 책상에

5,000원 놔뒀습니다. 가져가세요" 이게 지금의 현실입니다. 체계적인 학문없이

경험만으로 유지해 온 사람들도 십전대보탕, 쌍금탕, 쌍패탕에 무슨 약 무슨 약이

들어가는지 외우고 있는데 우리 한의사들이 외우질 못하는 사람도...

  지금 양의사들이 얼마나 권력을 잡고 있으면 한의사들이 군의관도 못하고 있습니까?

이렇게 뼈저린 현실입니다. '우리집은 시골에서 부자니까 내가 졸업하면 개업시켜

주겠지' 이렇게 나 하나만 생각하시면 절대 안됩니다. 한의학 전체가 무너질지

모르는데 나 혼자만 생각해서 되겠습니까? 잘못하면 한의학의 전통이 무시될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황제내경, 오운육기법을 다른 사람에게 교육시킨다는 것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닙니다. 깨닫는 것은 여러분들도 수없이 깨달을 수가 있지요. 그러나 미래의

교육자로서 나서기에는 어마어마하게 힘이 듭니다. 나름대로 깨달은 뒤에 뼈저린

고통이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안일무사합니다. '그냥 졸업만 하면 어떻게

되겠지' 여러분들 졸업하면 여러분들을 받아줄 만한 곳이 있는 줄 아십니까? 또

개업하려고 해도 여간한 돈이 드는 것이 아니고 또 연륜도 없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1년에 600명씩 쏟아져 나오게 되거든요. 현실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칼날같이

무서운지는 여러분들이 졸업하고 나오면 잘 알게 될 겁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뒤지지 않으려면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 힘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자각의 힘

뿐입니다.

  여러분들이 내가 무엇인지, 음양 이전이 무엇인지, 한 생각 이전이 무엇인지 이런

영적인 깨달음 이외에는 우리 한방을 존속시킬 힘이 없습니다. 지금의 학문 체계에

도취되어 그냥 막연하게 생각하면서 학교생활을 영위한다면 우리 한의학의 장래는

암담할 뿐입니다. 젊고 뜻있는 여러분들이 이 한의학을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이 혼란이 가라앉는 것에 호응하여 '병'이라는 관념을 떨쳐내야만 한다.

그럼으로써만 참된 평안이 확립되며, 그리하여 육체의 호소와 반란이 멎고 조화가 자

리잡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배우고 이렇게 앎으로써 조화가 회복되면 마음과 육체는 병의

성질이나 증상이 계속되어 기간 여하에 관계없이 변화한다. 진리에 따라 이끌어

줌으로써 병자는 고통이 한 때의 것이고 스스로 지어낸 것임을 깨닫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앞으로 환자들한테 "나만 믿으세요. 우리집 약만 믿으세요"

이런 식으로 맹신적인 차원보다는 병의 원인이 당신 스스로에게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인식시켜 주어야 합니다.


  "무릇 나타나는 현상은 한때의 것이며, 한때의 것은 그저 끊임없이 유동하고

그 자체의 근거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밖의 무엇인가에 사로잡히는

것은 무지한 자아뿐이다. 실재는 이 무지한 자아와는 전혀 다른 것, 실재야말로

완전하고 비인격적인 참 나이다. 만약 병이 실재라면 그것은 고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실재는 불변이기 때문이다. 자아는 공포를 품고 있기 때문에 남들이

뿜어내는 암시를 받아 공포 속으로 더욱 깊이 빠진다"

  의사가 공포를 느끼면서 환자에게 '불치입니다'라고 선고를 하지는 않지요. 그러나

그 말한마디에 환자가 받는 암시는 대단한 것입니다.


  "죽음에의 공포가 인류라는 한 가족에 스며 있는 여러가지 괴로움의 원인이다.

그러므로 이 공포를 떨치는 것이 가장 중대한 일인 것이다. 이 살아있는 우주에는

단 한 분자라도 죽은 것은 없음을 분명히 깨달아주기 바란다. 대생명에게 죽은 부분

같은 것은 한 구석도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삶과 죽음 사이에는 어떤 차이도 없다.

지금 자네가 보듯이 생과 사는 하나이며 둘이 아니다. 죽음이란 영원한 생명 속에서의

한 국면에서 다른 국면으로 옮겨감에 불과하다"


  생과 사의 근본이 무엇입니까? 여러분들이 지금 듣고 보고 느끼고 하는 그 주인공은

전혀 물질의 지배를 받고 있지 않습니다. 죽음과 삶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그 좋은 물건을 엉터리로 쓰고 있거든요. '죽는다, 산다'하는 겁을

가지고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깊이 명상을 한번 해 보세요. 여러분들 내면 깊이

들어가 있는 공포를 한번 파고 들어가 보세요. 엄청난 긴장과 남에게 인정받지 못할

공포, 죽음에 대한 공포, 질병의 공포, 종교가 주는 공포, 여자들 같으면 얼굴이

상하지나 않을까 하는 공포에 이르기까지 온갖 공포가 자리잡고 있지요. 이런 것들이

먼저 해결되기 전에는 의사 노릇해서는 안됩니다.


  "생명은 보다 완전한 집, 곧 영체같은 보다 정밀한 몸 속에서 존재를 계속하면서

개체 생명의 의식이 차츰 확대 심화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모두가 마음에서

죽음에 대한 공포를 떨쳐 버리고 영원한 생명이라는 의식을 확실히 세워야 한다"

  환자들은 이러한 의식이 없기 때문에 병이 왔지만 의사야말로 우리 인간의 존재가

영원한 존재라는 것을 확실히 깨달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육신이 다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죽는 것이 아니죠. 이미 그전에도 있었고 영원히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을 수 있겠어요? 이것을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엄청나게 수행을

많이한 사람일 겁니다. 옛날에 이르기를 "인신난득이요. 정법난득이라" 즉 사람 몸을

받기가 어렵고 정법을 얻어 듣기가 어렵다고 했습니다. 정법이란 무엇인가? 바로

이런 말을 툭 터놓고 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근기가 낮은 사람은 의혹하고 근기가

높은 사람은 힘써 행해서 자기 근본을 찾으로 수행하러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이런 차원이 되면 일당 백입니다. 혼자서 천명 만명을 당해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나는 개인의 구원을 호소합니다. 여러분 하나가 개화되세요. 사향냄새를 막으려고

아무리 겹겹으로 싸 놓아도 그 향기는 널리 퍼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익으면 자연히

냄새가 나서 벌이 꿀을 찾아 모여들듯이 '불우하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이

진리를 들으러 여러분에게 모여들 것입니다. 저는 이 사암침법을 빙자해서 '불분리성,

불이법, 무상대성'등 이런 정보를 여러분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저의 사명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가까이로는 사명대사, 서산대사, 위로는 예수, 육조,

부처님의 뜻이라고 나는 확고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 제가 한의학을 이야기하면서

종교를 이야기 하느냐? 그것은 여러분들 속에 내재해 있는 불교를 비판한다든가

선하다고 생각하는, 또 기독교가 선하다든가 나쁘다고 생각하는 그 주인공에 대한

인식을 빨리 가져달라고 하는 것이올시다. 마음을 주관하고 있는 그 주인공에 대한

인식을 말입니다.


  "심신의 완전한 치유는 질병과 죽음에 대한 공포가 소멸 되었을 때에만 이루어진다.

자네가 남을 도울 때는 먼저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한다. 가장 우둔한 마음일지라도

진리의 빛을 받은 의식은 그 속으로 침투할 수가 있는 법이다"

  여러분들이 남을 돕기 위해서 "내혁 일심 귀원 요익창생"이라는 명분론을 먼저

공부했습니다만 여러분들이 이것보다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자기 자신은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의사이기 이전에 전 중생계에 전부 필요한 말입니다.


  "진언(만트라)은 공포에 찬 마음에게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괴로움이라는 관념을 도리어 강화하기 때문이다.

그렇게하여 사람들은 대립을 만들어나갈 뿐이다. 건강이라는 관념을 가지고 죽음이라

관념과 싸우며 선이라는 관념을 가지고 악이라는 관념과 싸우는 것이다. 이 싸움은

끝이 없다"

  지금 이 말은 그 동안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의 말을 빌어 다시 한번 증명한 것에

불과합니다. 여러분들이 깨달으면 성경이나 불경이 여러분들을 증명하여 주는 것이지

성경이나 불경을 여러분들이 증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깨닫고 보면

"황제내경"이 여러분을 증명시켜주는 것이지 내경을 여러분이 증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신농씨가 가지고 있는 혀는 어떤 혀이며 기백의 눈은 어떤 눈입니까?

시력이 5.0이나 10.0정도 되었을까요?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와 같은 눈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어떠한 눈인데 그런 심안이 있었을까요? 요컨대 우리 마음에

있는 시기, 질투, 공포, 분리의식 등 이런 것을 떨어버리지 않은 상태에서는 아무리

떠들어 보아야 소용이 없습니다. 자갈을 치우기 전에 씨를 뿌려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여러분들이 지금 사암침법을 공부해서 어떤 소득이 있었다거나 아직 뭐가

뭔지 모르겠다거나, 하는 생각은 잊어버리시고 '깨달음이 무엇인가, 그리고 그 이전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요즘은 사람들이 도대체 생각을 하고 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멍한 눈, 얼빠진

표정, 혹 무슨 이야기를 하면 난 모르겠노라는 식이예요. 강좌에서도 이전에는

문제하나 던져 놓으면 여기 저기서'혹시 이것 아닙니까?' 하면서 질문도 많았는데

요즘에는 어찌 그리 무관심한 얼굴의 사람들 뿐인지 모르겠어요. 이건 마치 진주를

돼지에게 던져주는 것과 똑같은 느낌입니다. 기껏 찾아와서 한다는 말이 "저희 엄마가

이빨이 아픈데 어디로 모셔올까요?" 또 "제가 허리가 아픈지 얼마가 됐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제가 여러분들에게 영적인 이야기 해주고 또 육적인 문제까지 다

치료해 주고 그러면 아예 보임까지 다 해서 보내드릴까요?

  "제가 공안을 생각해 보았는데 지금 제 의견에 선생님 뜻은 어떻습니까?" 이런

사람이 없더군요. 제 친구가 어느날 찾아와서 하는 말이 "야, 이친구야! 지금

이 선실에 앉아서 강의 듣고 있는 이 학생들이 진짜 중병 환자야, 이 사람들은 지금

환자를 치료할 사람들인데 바로 이 사람들을 치료하는 것이 더 급해" "허긴

이 친구들이 나중에 내 고향에 가서 개업할지 모르니까..."라고 하더군요. 문앞에

와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 환자는 오히려 우선이 아닙니다. 그 사람들은 저와

일대일의 문제거든요. 그런데 여러분들이 한번 소견을 잘못 먹으면 천명, 만명,

수십만명을 죽일 수가 있습니다. 또 지금 이중에는 나중에 강단에 서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틀림없이 교수로 나갈 사람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교수가 깨어있지

못하고 몇 가지 외운 지식으로 남의 말만 인용을 한다면 밑도 끝도 없고 제자도

지루해지고 선생도 지루해지는 겁니다. 그리고는 똑똑한 제자가 나타나면 업수이

여기려고나 하고 또 쓸데없는 자만심을 넣어줘서 안하무인격이 되어 버리죠. 이런

것은 도가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깨달은 의식의 슬기로운 말의 방편을 쓰면 환자는 진리를

받아들이고 기꺼이 협력하게 되며, 그리하여 변화가 순간적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실재 실상의 진리가 전자력의 파동을 발생시키고, 그 파동이 환자의 마음에 도달하면

그때까지 그를 얽어매고 있던 소극적인 정신상태가 타파되고 만다. 이런 방법으로

가까운 곳에서든 먼 곳에서든 환자의 마음에 도달할 수 있다. 그 순간에 마음은

치유되었던 것이다. '딸아, 마음을 밝게 가져라. 너의 믿음이 너를 낫게 했느니라'는

말 또한 그것을 보여준다. 자네들은 이런 말들을 늘 듣고 있지 않은가. 이제야말로

그 참뜻을 깨달아야 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너의 믿음이 낫게 했느니라"라는 말을 여러분은 아실

것입니다. 이런 것들도 불가능한 얘기가 아니라는 겁니다.


  "자기 자신의 참 모습에 대한 진리를 알 때 '오오라'가 맑아지며 상념이

강력해진다"


  '오오라'라고 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의학에서도 활용을 하고 있습니다. 소련에서는

이 오오라를 X-ray로 투시하는 기계를 만들어 내었거든요. 그래서 몇 가지 광명의

색깔로 구분해 현재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감정, 육체적인 질병의 상태를 알아낼 수

있다고 하며 진단법에 응용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안이 있는 사람에게는

오오라가 눈에 띤다고 합니다.


  "그때 대자연 속의 그 어떤 것도 그를 해치지 않게 되며, 그 또한 자연 속의 어떤

것에도 해를 미치지 않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네가 자연을 두려워하지

않았을 때 자네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지배할 수가 있다. 왜냐하면 자네는 있는

모든 것에 대한 힘과 주권을 이미 부여 받고 있기 때문이다. 깨달음의 반대관념인

공포를 거쳐서가 아니라, 깨달음 곧 속속들이 아는 것으로 참 믿음을 세우라.

공포에서 나오는 것은 믿음이라는 관념일 뿐이다. 그것은 도리어 관념의 대립을

격화시켜 사람을 더더욱 대립 속에 갇히게 할 뿐이다. 기꺼이 귀 기울여 잘 듣고자

하는 마음가짐을 가지게 되어야 한다. 마음에 스스로 지워 놓은 무거운 짐을 벗어

버리는 것은 병자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 모든 사람의 '참 나'가 병이나 죽음, 선이나

악, 실패나 성공으로 어떤 영향도 받는 것이 아님을 알고, 인격적 내지 인간적인 것을

넘어, 있는 모든 것을 그대로 고요히 봄으로써 비인격적, 초인간적인 자네가 되어야

한다"

  고요히 관조하라는 이야기를 다시 한번 강조 하는군요.


  "관심하라, 고요히 네 마음 속에 있는 조그마한 일체의 의식까지도... 네가 어떤

말이 나오려 할 때에 좀 더 깨닫고 쉬어라. 왜냐 하면 말은 곧 생각이기 때문에...

자네는 병자가 치유를 경험해 주기 전에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치유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여러분들은 병자의 치유를 경험하기 전에 무엇보다도 의사 자신을 치유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제가 하는 이 말을 단순하게

생각하셔서는 안됩니다. 여러분들이 다시 태어난다 하더라도 이런 이야기를 다시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만 질병에 대한 이론보다는

깨달음 위주로 직관위주로 실마리를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깨달음이

없으면 학교에서는 교수에게 속고, 저에게 오면 저한테 속고, 대가에게 속고,

권위자에게 속고, 도인에게 속고, 말에 속고, 경전에 속고 이렇게 속고 속다가 일생을

허비하게 됩니다.

  이 책 다음 부분에는 식물이 가지고 있는 뜻이 등장을 하는데 식물이 어째서 우리

인간의 여러 가지 다른 차원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 식물이 갖고 있는 영을 어떻게

읽을 수 있는지에 대한 것들이 많이 나옵니다. 식물이나 광물이나 또 우리가 일으키는

감정적인 차원을 옛 성인들이나 지금의 깨달은 사람들은 둘이 아니고 하나라고

본 것입니다. 그러니까 창에 있는 커텐이나 사물들도 내 생각, 내 상념이 물질화 된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하물며 식물이 그렇지 않겠어요? 저는 여러분들에게 식물도

정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가 불확실하게 이야기 한 것은

'그렇다'라고 단언적으로 이야기 하면 듣기 싫어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엄밀하게 깊숙한 진리의 차원을 이야기 하면 식물과

동물과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든 상념은 털끝만큼도 더하고 덜한 것이 없고 실제로는

그것이 바로 우리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물질적인 현상

중에 미세한 것은 마음이요, 거친 것은 육체요, 물질인 것입니다. 이것을 좀더 깊이

있게 이해하시려면 "히말라야를 넘어서"를 사서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이러한 것을 이해하게 될 때 '유심적인 오운육기'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 논문을 보고 주위사람들은 '한의학에 종교와 공안을 접목하는

작태'라는 등 많은 혹평을 하는 모양입니다. '그 친구는 오운육기파야'저도 이런

소리를 다 듣고 있습니다. 정말 당치도 않은 이야기죠. 제가 왜, 오죽하면 종교를

집어넣었겠습니까? 한의학을 정면으로 도전했다가 실패를 하고 워낙 힘이 드니까

명상법, 관심법을 통해서 도전해 보자는 것입니다. 저도 제 나름대로 한때는 충분한

체험이 있었습니다. 물론 제가 성질이 끈기가 부족하고 여러 가지 하고 싶은 것이

많아서 그걸 끝까지 지속시키지 못하고 겨우 3% 정도밖에 알지 못하는 것을 굉장히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도 '이 정도 40일 동안 편안히 앉아서 이야기를 들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에 솔직히 여러분들이 부럽습니다. 제가 여기에서 쉽게 하는

한 마디를 얻기 위해서 6개월, 1년, 2년씩 선생님을 쫓아다니며 모진 고생을

했습니다. 모든 것을 다 팽개치고 한 마디 한 마디를 주워듣기 위해서 전국을

헤매었습니다. 그렇다고 여러분들이 제게 어떤 감사의 마음을 느끼기를 바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심리적인 이득이나 공경을 받고 싶지도 않습니다. 여기는 하나의

살풀이 장소입니다. 혁명의 장소입니다. 여러분들이 깨어있어야 합니다. 여러분과

저와는 어떤 거래관계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여러분의 자발적인 참여만을

강조할 뿐입니다. 아래에서 소개하는 서산대사의 마음같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대는 거문고 안고 큰 소나무를 의지하나니(군포금혜의장송)

  큰 소나무는 변하지 않는 마음이요(장송혜불개심)

  나는 길게 노래하며 푸른 물가에 앉나니(아장가혜좌록수)

  푸른 물은 맑고 빈 마음이다.(록수혜청허심)

  마음이여 마음이여(심혜심혜)

  나와 다만 그대로다(아여군혜)


  이제부터는 중반전에 접어들었는데 중반전 이후는 일종의 전투와도 같습니다.

여러분들이 나의 말을 들으면서 명상의 경지로 몰입해 보려는 관조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나름대로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또 거부되는 것은 왜 거부가 되는지

그래서 다시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고 또 틀리는 것은 수정해 나가는 그런 분위기가

주어져야 합니다.



@[(11)@]

  자! 그러면 앞에서 이야기 했던 사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각 인종별로 태음 소양 소음 태양을 나눠보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전부 해 보셨으리라 믿습니다. "사상을 두 개는 튀어나왔고, 두 개는 들어간

것이다"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저는 사실 이것을 굉장히 어렵게 얻어들은 것입니다.

이것을 어느 주역학자에게 전해 듣고 보니까 관상설의 기본적인 의미를 알겠더군요.

눈은 상하운동을 하는데 주로 상(위꺼풀)이 움직이고, 입은 하(아래턱)가 움직이는데

입은 토하는 언어가 있고 취하는 음식이 있습니다. 귀는 좌우가 있고 코는 전후를

움직이게 됩니다. 그러므로 눈이 아래로 감겼을 때는 긍정의 표시이고 눈이 떠졌을

때는 주로 윗꺼풀이 많이 움직이니까 부정적인 측면으로 감시하는 표시입니다. 사람이

죽을 때 눈을 사르르 감고 죽는 사람은 굉장히 행복한 사람입니다. '아! 이제 내가

갈 때가 되었구나. 이제 조용히 가야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눈을 부릅뜨고 죽는 사람들은 죽기 싫어서, 죽음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윗눈꺼풀은 독맥에 해당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부정과 감시, 경계에

해당하는 것이지요.

  또 입은 "하나는 취하고 하나는 토한다"라고 했는데 취한다고 하는 것은 생을

영위하고자하는 수단이고 토한다는 것은 자기의 주장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주장을 피력하기 위해서 말이 등장하는 거지요. 귀는 왼쪽과 오른쪽이 있는데 왼쪽은

혈, 오른쪽은 기에 관계되므로 기혈에 관계되는 것이 귀입니다. 코는 전후이므로

전진은 동, 후진은 정의 관계이며 한과 통의 작용을 한다고 말씀드렸었습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사상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한번 잘 생각해 본다면 일반적으로 눈이

잘 발달되고 코가 발달이 안된 사람(태음인)과 코가 잘 발달되고 눈이 잘 발달되지

못한 사람(태양인)을 식정인 차원에서 본다면 어떻게 될까요? 제가 총론의 앞부분에서

유심적 차원에서 본 팔괘 유추라는 도표가 있었을 것입니다.

  유심적 차원에서 본 팔괘 유추의 도표를 보면 좌측을 음, 우측을 양 또 좌측을 나,

우측을 너라고 했으며 아래쪽을 안다, 위쪽을 모른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음양인, 즉 눈은 크고 코는 작은 사람을 도표에 집어 넣는다면 우측

아래가 되겠지요. 이러면 하나의 이론이 성립되는 것이지 이론이 따로 있겠습니까?

문제는 이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식정으로 표현된 네 가지 표정을 여러분들이

한번 연구해 보시라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태음인인 경우 '나는 안다'고 하는

이기심으로 가득차 있고 무엇이든지 모른다는 소리가 잘 안나오겠지요. 친구를

소개받아서 겨우 대폿집에서 술 한잔 마신 사이이면서도 "야! 우리 서로 편하게

대하자"고 하는 사람. 어떤 측면에서는 사교적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것을

제가 힌트만 드리는 것이니까 정신적인 특징을 여러분들이 조사해 보세요. 소음인은

대체적으로 헌신적으로 소양인은 자기 반성이 강합니다. 심하게 말하면 saddism 즉,

자기 자책이 강하죠. 자기 학대를 잘합니다. 무엇이든지 "잘했다. 잘했어"라고 칭찬을

잘하는 사람은 소음인입니다. 그러니까 종교적인 인물 중에 많겠지요. 여러분들이

이런 차원에서 깊이 연구해 보시면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모든

사상의 특징을 풀어나가는 열쇠입니다. 여기에서 얼마든지 확대 해석이 가능한

것입니다. 직업도 여기에 맞추어 분류할 수가 있겠지요. 소음인이라면 남에게

헌신적이니까 여기에 맞는 직업이 있을 것 아니겠어요? 지금 제가 이야기하는 소음

소양 태음 태양을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육경적인 것과 혼동하시면 절대 안됩니다.

육경에서 나오는 소음 소양과는 전혀 상관이 없으니까요.

  여러분들이 이러한 관점에서 사상의학을 더욱더 보완한다면 앞으로 여러분들의

후학들은 공부를 좀더 현실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이자리에도

사상을 공부하신 분이 계시겠지만 그런 분들은 좀더 관념을 넓혀서 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주장하는 눈 코 귀 입 이것을 알기까지는 저는 1년 이상이 걸렸습니다. 어떤

주역학자가 이것은 비밀이라고 하면서 죽어도 안 가르쳐 주고 비밀로 자기네 문중에만

전해주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이렇게 쉬운 것이었습니다. 어느 곳에는

입술 보는 법만을 가지고 있는데, 임맥과 독맥의 움직임을 사행시 칠언절구로 써놓은

노우트 한 권이 있더군요. 그것을 베껴 오지는 못했는데 절대로 넘겨 주질 않더군요.

동무 이제마 선생님께서도 결국 사상은 눈 코 귀 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간 비 신 폐 이런 식으로 장부와 연결을 시킨 것이지요. 그러니까 사상의학의 힌트는

주역에 있는데, 주역에서 천 지는 몸통과 머리(천도지방)를 나눈 것이고 얼굴에 있는

4가지 움직임을 사상이라고 하고 그 밑에 팔괘의 천과 지가 임맥과 독맥에 해당하고

나머지가 12경락에 해당한다는 어떻게 보면 지극히 간명하고 어찌보면 억지로

붙여놓은 것 같은데 참으로 기발하지 않습니까? 여러분들은 이렇게 기발한 이야기를

듣고도 전혀 놀랠 줄을 모르는군요. 왜냐하면 그동안 주역을 가지고 씨름을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고민을 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깨쳤다고

하는 기쁨 또한 없는 것입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그때의 감격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의 그 환희감, 어떤 선승이 "팔괘에서 천지를 뺀 것이 육기다. 그 안에 소음군화

태양한수 궐음풍...이 다 들어 있다. 그리고 인간이 가지고 있는 1, 2, 3차 욕망이 다

들어 있다"라고 일러 주었을 때 그 진리에 대한 확인감이란 실로 큰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주역의 이론체계의 모든 것이올시다. 여기에 여러분들이 유심적으로

대비시킬 수만 있다면 여러분들은 저보다 더 강의를 잘 할 수가 있고 새로운 한의학의

학설을 발표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이런 것들이 우리 한방계에 박사논문이나

석사논문으로 천착되어야 합니다. 지금처럼 쥐나 토끼를 갖다 놓고 감초가 어디에

미치는 영향 등이나 발표하는 이런 풍토는 하루 빨리 사라져야 우리 한의학계가

부흥이 됩니다. 어떤 사람은 목통이 이뇨작용이 없다는 논문을 써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도 있습니다. 목통을 마른 사람에게 먹이니까 이뇨작용이 있을 수 있겠어요?

지금은 이렇게 터무니없는 삿된 논리가 들끓고 있습니다.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이 작업은 '파사현정'입니다. 삿된 것은 부수고 바른 것을 드러내자는 것이지요.

  여러분들은 정말 지금의 이 정도 이야기만 들어도 10년 세월은 단축한 것입니다.

대학시절에 이런 말을 지나가는 풍월로만 들어도 40일 동안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분들의 깨어있는 마음입니다. 마음을 태극의

상태로 환원시켜야 합니다. 근본으로 귀일하는 공부를 하셔야 합니다. 제 강좌는

심신부흥 운동입니다. 저는 이론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누누이 강조를

했습니다. 여러분들이 바로 영원한 존재라고 하는 확고한 신념, '내가 바로 신이다.

신농씨다. 나도 황제처럼 될 수가 있다'고 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대의심 대분심 대신념"을 가지고 마음을 움직여야 뜨거운 에너지가 마구 굽이치는

겁니다. 공부라고 하는 것도 하나의 분위기 입니다. 무당도 옆에서 돈을 얹어주어야

신명나는 법인데, 강사라고 하는 것은 듣는 쪽에서 자발적인 느낌이 없이 질질

끌려오는 것 같으면 금방 지루해져 버립니다. 닭이 천 마리이면 봉황이 한 마리라고

했습니다. 지금 전국 한의과대학생이 약 3,000명인데 그 중에 깨어있는 사람

세 사람은 있지 않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중에 어느 한 사람이 어느날 도를

깨달아 버리면, 한 생각 이전으로 도달하면, 지금의 어수선한 한방계에 샛별이 되지

않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저는 배운 바가 부족하여서 "내경"의 한자도 잘 모르지만

그 사람은 양방지식도 알 것이고 한문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을 것이니 많이 섭취한

지식을 깨달음과 함께 병행한다면 정말 대단한 것입니다.

  저는 의학사상 노벨상이 나온다면 틀림없이 한국에 있는 한의과 대학교 중에서

나와야 된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중공은 공산주의 물결에 수축되어 있고

대만이나 일본은 양방의사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거든요. 우리나라만이

주역학자나 선학자들을 통해서 독특한 한의학의 전통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이제마 선생님께서 돌아가신 지도 벌써 1세기가 되었습니다. 우리 한의학 5,000년

역사 중에서 이제마 선생님처럼 독창적인 분이 또 어디 있습니까? 그러니까

이제마 선생님이 왔다 가신 것이 우리 한방계가 일어날 징조가 아닐 수가 없습니다.

이제마 선생님의 사상은 주역에 근본을 두고 있는 진리입니다. 여러분들도 우리

한방계를 자기멸시적인 눈으로 보지 마시고 창조적인 안목을 가지고 넓게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사상에 대한 것은 이제 여러분 각자가 추리를 해 보기로 하고 그 다음에 오운육기에

관한 것인데 여러분들이 천부니 세회, 승, 복 같은 말은 "내경"을 찾아서 공부하셔야

합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자축인묘진...각 방위에 대해서는 외우라고 했기 때문에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이 오운육기라고 하는 것은 오행과 육기의 성분을 많이

확대해석하는 사람이 명쾌히 해낼 분야입니다. 그러므로 상당히 많은 추리력을 필요로

하지요. 오운육기는 완전히 수학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생각 이전을 확 깨달아서

영성을 개발한 사람이나 또 잔머리를 굴려서 이해를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제가

직관을 굉장히 강조를 합니다만 직관이라고 하는 것이 어디 그리 쉽습니까?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직관을 개발하여 오운육기법을 터득하시든지 잔머리라도 많이 굴려서

이해하시든지 저는 어떤 것이 옳은지 모르겠습니다. 직관을 공부한 사람은 직관으로

들어가고, 오운육기운용에 곱하기 나누기 많이 하신 분은 또 나름대로 열심히 하시기

바랍니다.

  태음(안)-상하, 나는 안다, 사교적 이기적

  소양(구)-상하, 나는 모른다, 자기반성 saddism

  소음(이)-좌우, 너를 안다, 헌신적 종교적

  태양(비)-전후, 너를 모른다


  '부화'란 무엇을 말하는 겁니까? 목운이 정상적으로 들어 올 때를 말하는 것이지요.

'승명'은 또 뭡니까? 화운이 정상적으로 들어올 때를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비화

심평 정순...등을 꼭 외워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이런 것은 못 외운다 하더라도

수운이 미치지 못 할 때의 상황, 목운이 미치지 못할 때의 상황을 이해하면 되겠지요.

예를 들어서 목운이 미치지 못한 해에는 어떻게 될까요? 토가 성하고 금이 성하게

되겠지요. 이런 상황을 잘 추리하시면 됩니다. "내경"에 보면,


  "목이 불급한 해는 위화라 하는데 목에 속하는 발생의 기가 부족하여 금 토에 지므

승생이라고도 한다. 봄의 발생작용이 충분히 발휘되지 않고, 여름의 성장작용은

보통이며 여름의 토용, 곧 장하의 화성작용은 부탕하고, 가을의 수검작용은 조기에

행해진다... 그 기는 어떻고... 그 장은... 그 과는...."

  이런식으로 내경 약 1쪽 반 이상을 위화에 대한 설명으로 할애를 해 놓았는데

여러분들이 이것을 꼭 읽어 보십시오. 이것을 읽어보시면 아마 충분히 이해가 가실

겁니다. 여러분들에게 목운불급, 화운불급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라고 하면 상당히

숙고를 해야 하실테니까 황제가 해 놓은 것을 활용해 보라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들이 오운육기책을 활용해서 꼭 공부를 하셔야 합니다. 이것이 오운육기의

허실을 보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여기에 갑진년생의 사람이 있습니다. 갑은

갑기합토에서 양간이고 진은 명리학에서는 토에 속하지만 육기학상으로 뭡니까?

태양한수에 해당하지요. 그 중에서도 족태양입니까, 수태양입니까? 족태양입니다.

그러면 이 사람은 족태양의 한수가 들어온 것과 토기가 실하니까 무엇이 억제를 받고

있을까요? 수가 억제를 받는 해에 태어났습니다(토극수 원칙에 의함). 또 무엇이 별로

기운을 못쓸까요? 목이 토를 극해야 하는데 토가 너무 강하니까 목이 기운을

못 펴겠지요. 이때 주의 해야 할 것은 태양한수, 즉 찬물이 자꾸 누르는 것이 아니고

생장화수장의 관계로 보아서 거두는 작용, 장하는 작용, 발생하는 작용이 힘이 없고

주로 변화하는 작용, 성숙하는 작용이 굉장히 센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만 따지고 보면 열매는 탐스럽게 성숙하고 결실도 잘 되겠지요.

왜냐 하면 목이 조금 허하니까 금도 조금 세겠죠. 결실까지는 잘 되는데 봄에 싹이 잘

안납니다. 겨울철에 간직이 잘 안되지요. 이것이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결실이 되긴

되는데 씨 안에 핵이 잘 안된다는 뜻입니다. 또 그 해에는 유별나게 장마가 진다거나

하지요. 이런식으로 여러 가지 해석을 합니다만 이것을 인체에 비유해서 병리학적

생리학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토와 태양한수가 만난 상황을

플러스시켜야 된다는 것이지요. 이 갑진년에 대한 해석은 무궁무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자는 의야라'의사는 뜻을 얻어야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갑진이라고 하는

복합적인 상황은 열심히 공부하셔야 합니다.

  갑진이라는 상황 하나만 놓고도 토기가 실하니까 신장이 허하고 목이 허하니까

어떻고 간이 어떻고... 이건 전부 그저 하는 말이죠. 발이라는 말 자체가 가지고 있는

뜻은 어마어마하게 많습니다. 여기에서 수가 없는 것을 태양한수가 보충이 되어

주었지요. 그렇기 때문에 다른해에 비해서는 무난한 해입니다. 평운의 해라고 하지요.

육기상으로는 무난하다고 하는데 명리학상으로는 토와 토가 겹쳐서 좋지 않게

보거든요.그러나 명리학은 따로 명리학자에게 가서 하십시오. 그 곳은 그 곳 나름대로

보는 방법이 있으니까. 명리학에서는 내용물은 보지 않고, 계속 그릇만 보거든요.

사실 자 축 인 묘 진...가 분명히 육기학상으로는 질에 관한 것인데 그릇으로만

본다는 것이 저는 불만이죠. 오운육기에서는 명리학에서 보는 사주를 우습게

생각합니다. 그러면 그 근거가 무엇인가? 바로 이것이죠. 아시겠습니까? 그러므로

갑진이라고 하면 태양한수로 보도록 하십시오. 이 해에는 전반부에 태양한수가

지배하니까 후반부에는 무엇이 지배할까요? 태음습토가 재천을 지배하겠지요.

그러니까 후반부에는 토와 토가 끼어서 장마가 많이지게 되고 날씨가 축축할지

모르지만 전반부 6개월은 길합니다. 이 해 후반부에는 어떤 사람이 병에 많이

걸릴까요? 마른 사람보다는 뚱뚱한 사람이 병에 많이 걸립니다. 오운육기를

공부하고 나면 이런 것을 미리 예고해 줄 수가 있지요.

  86년은 병인년입니다. 병은 수이므로 수와 소양상화가 플러스된 상황이지요.

전반부에 소양상화가 사천하면 후반부에는 무엇이 지배하지요? 궐음풍목이

지배하거든요. 그러니까 후반부에 병은 태양한수이고 궐음풍목이 혼합된 상황이니까

몸이 냉한 사람은 어떻게 될까요? 뚱뚱하거나 말랐거나 설사 잘하고 몸이 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또 여자들 중에 냉이 많은 사람은 후반부에 가서 고통이 심합니다.

이건 틀림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약도 건강이나 육계, 오수유같은 것을 많이

쓰면 좋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심오하고 신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많은

추리를 해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안 맞아 들어갈 때가 있습니다. 언제겠습니까? 아까 갑진년을 예로

들었는데 토가 실하면 장마가 들어야 하는데 장마도 안지고 다른 병변도 일어나지

않는 때가 있습니다. 이것을 평기의 해라고 하는데 이때는 천하가 태평하고 정치가

잘 되고 인심이 유화하고 모든 사람들의 덕성이 다 원만할 때는 오운육기도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1년 중 금년도에 평기가 들어오느냐 들어오지 않느냐

하는 것을 언제 점치는가 하면 1월 1일 날 하기도 하고 일양이 생한다는 동짓날

자정을 기해서 하기도 하고 별빛을 보고 한다고들 하는데 이것은 너무나 심오합니다.

평기가 들어오는 해는 어떤 해인가 하면 전년도에 인간들이 적선을 많이 하고 모든

중생계가 서로 살기없이, 투쟁없이 원만하게 생활을 했을 때에 들어 온다고 합니다.

제갈량이 죽을 때에 하늘에서 별이 떨어졌다고 하는데 금년도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점치는 방법은 의외로 많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우주의 비밀을 아주 극히

작은 일부분만을 알고 잘난 척하는 거지요. 85년을 한번 이야기해 볼까요? 85년은

을축년이었는데 을축년이 가지고 있는 특성대로 움직였지요. 여름에 유행한 병이

무엇이었습니까? 괴저병이었지요. 갯벌의 피조개에서 나오는 독소가 괴질을 많이

일으켰잖아요.

  86년을 살펴봅시다. 86년의 감기는 지독해서 최소한 3--4주씩 고생을 하더군요. 특

몸이 냉한 사람들, 냉수나 맥주 많이 먹고 몸이 냉해진 사람은 조심해야 됩니다.

85년도 을축년에는 뚱뚱한 사람들이 습열로 많이 쓰러졌습니다. 중풍에 많이

걸렸지요. 여름철에 무리를 하면 가을철에 걸리고, 가을에 무리를 하면 겨울철에

걸린다고 이야기하죠? 이 오운육기상으로는 사람이 깨닫기 전에는 언젠가 한번은

하늘의 벌을 받습니다. 여러분들이 혹시 미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냥 내버려 두세요.

나중에 다 하늘이 벌을 내리거든요.

  그러면 정묘년을 살펴봅시다. 정이 무엇입니까? 정임합목인데 정은 허한 목이죠.

묘는 양명조금에 해당합니다. 목이 허하니까 금이 목을 누르고(금극목), 또 목이 토를

눌러줘야 하는데 목이 허해서 토를 눌러주지 못하니까 토가 목을 경멸을 하거든요.

그러니까 마른 사람들은 정묘년에 살좀 찔 생각을 해야지 괜히 사우나탕에 가서 땀

빼고 매운탕 먹고 여자를 가까이 하게 되면 큰일나는 겁니다. 이런 사람은 정묘년

정묘월 정묘일 정묘시에 위험합니다. 만약에 죽지 않더라도 큰병에 걸리게 되지요.

  요즈음 바이오리듬 공부하는 사람들이 예언(?)을 하지요. 이것은 오운육기를 본

것이 아니고 리듬의 낙차가 큰 날, 즉 '큰 위험일(critical day)'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바이오리듬 보다는 훨씬 더 세밀하게 나오지요. 색을 지나치게 밝히는

사람은 다 때가 되면 하늘이 벌을 주게 되어 있습니다. 방탕한 사람은 소음군화의

해에는 위험합니다. 극단적인 성격의 소유자, 색을 밝히는 사람, 이런 사람들을 금방

고치려고 마세요. 오운육기법만 알면 '금년에는 누가 큰일을 당하겠구나'하는 것을

미리 예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제가 활용하는 오운육기법은 그 사람의 사주를

보아서 하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의 생김새, 성격을 보아서 아는 것입니다. 소양상화

지기가

꽉들어찬 해에는 창백한 얼굴에 남 욕만 하는 사람은 큰일나는 겁니다. 아주

대수롭지 않은 병으로 죽습니다. 원인도 모르는 병에 걸려서요. 그러니까 이

오운육기의 활용이라는 것은 신비한 것이지요.



@{

  동양의학혁명

  (사암도인 침술원리

  40일 강좌 외)

  총론


  전11권 중 제4권


  강론:금오 김홍경

  도서출판 신농백초


  점역처:대한적십자사

  서울특별시지사 점자도서실

@}

@[  5. 오행 육경@]

  오행상 사고로는 간이 나쁘면 수생목의 원칙에 의해서 신경을 보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육기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암침법에서는 엉뚱하게도

그 내용물에 해당하는 소양 궐음 소음 등을 중요시 여기기 때문에 치료법이 완전히

달라지게 됩니다. 가령 태양병(몸이 찬 사람)을 치료한다고 하면 어느 경락을 취해야

되겠습니까? 소음경락이지요. 그러면 수태양소장경을 치료할 때에 수소음과 족소음

중에서 어느 것을 취해야 되겠습니까? 수태양소장경과 수소음심경이 같은 수이므로

수소음심경이 아니겠느냐 하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렇다면 괘상으로서 알아보기로

합시다.

  수태양소장경의 괘, 족소음신경의 괘, 수소음심경의 괘를 대입시켜 볼 때

수소음심경과 수태양소장경이 짝이 된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래가 화,

위가 수인 수태양소장경의 짝은 아래가 수, 위가 화인 족소음신경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상합치료라고 하는데, 이 치료는 사하는 것이 아니라 짝이 되는(반대적인)

경락을 보해 주는 것입니다. 혹은 그 경락은 정격을 쓴다고도 합니다.

  혹자는, "태양경(한수)은 물이 많고 차가우므로 소음경으로 보할 것이 아니고

수태양이나 족태양의 승격으로 사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요.

그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사암침법에서는 일체의 침에 80% 이상은 정격을 씁니다.

가령 시이소오가 있다고 합시다. 밑쪽을 들어올리는 것보다는 윗쪽을 내려 주는 것이

힘이 덜 들겠지요.

  의료봉사 활동에서 쓴 비율을 조사해 본 결과 정격이 80%이상이었고 승격은 20%에

채 못미쳤었습니다. 이것은 "좌병우치하고 상병하치한다" "하병상치하고

우병좌치한다"는 이론에 부합되는 결과입니다. 이상의 내용이 잘 이해가 되지 않을

때에는 각경락의 괘상을 그려봐서 상대되는 괘를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장부 오행 육기 괘 "짝" 장부 오행 육기 괘의 순)

  간 목 궐음풍 중풍손 -- 삼초 상화 소양상화 중뇌진

  심 화 소음군화 중화리 -- 방광 수 태양한수 중수감

  비 토 태음습 중택태 -- 대장 금 양명조 중산간

  폐 금 태음습 택산감 -- 위 토 양명조 산택손

  신 수 소음군화 화수미제 -- 소장 화 태양한수 수화기제

  심포 상화 궐음풍 풍뇌익 -- 담 목 소양상화 뇌풍항


   그러므로 수소양삼초경과 족궐음간경, 수궐음심포와 족소양담경이 서로 짝이

됩니다. 따라서 간경락의 병(간장병이 아님)은 수소양삼초경을 보함으로써 치료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 본과 3 4학년 되신 분들! 수소양삼초경에 있는 혈로 치료할 수 있는 병이

몇가지나 되는지 알고 계십니까? 아마 액문혈, 중저혈로 견비통을 치료하는 정도만

외웠을 것입니다. 아니면 기껏 외관혈은 외감에 쓰고 내관혈은 내상에 쓴다는 정도만

알고 있겠지요. 솔직히 말해 보세요. 그렇지요? 체침법이란 이렇게 유치하지만 참으로

희한한 사실입니다.

  여러분들이 중풍을 치료하듯이 족삼리, 합곡, 인중, 곡지에 침을 놓고 십선혈을

따고...이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중풍이 어떤 형식으로 왔는가를 관찰하는

것입니다. 작년에 강좌를 진행하던 도중 한 학생의 입이 비뚤어진 일이 있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테니스 치고 땀을 빼고 아침밥을 굶고 와서는 강좌 듣느라

에어콘 바람을 서너 시간 그것도 한쪽 방향으로만 쐬다 보니 구안괴사, 편풍구괴로 입

홱 돌아가버렸습니다. 그때 제가 어떤 경락의 침을 놓았겠습니까? 어쨌든 굉장히

마른 사람이 과로에 밥까지 굶었으니 신체리듬(1차리듬)에 손상이 온 걸로

봐야겠지요. 신체리듬을 보할 때는 어느 경을 놓습니까? 태음경을 놔야지요. 그래서

족태음비경을 놓아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입이 제자리로 돌아오더군요. 지금 그 학생은

한의학을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학교에서 배운대로 침을 놓는다고

인중, 승장등 여기 저기 꽂아대다 보면 오십개 정도는 놓아야 되겠지요. 그러므로

내가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궐음경락은 소양경락으로, 소음경락은 태양경락으로,

양명경락을 태음경락으로 치료한다는 정도가 아니라 족궐음경의 병을 수소양경으로,

수소음경을 족태양경으로 치료한다는 부분까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역 괘상으로 증명이 되는데 여러분은 괘상이 거꾸로 맞물고 돌아가는 것을 우선

외우셔야 합니다.

  간은 오운이 목, 육기가 궐음이고, 풍괘가 두 개 들어가므로 이름을 중풍손이라

하지요. 심은 오운이 화 육기는 소음이고, 괘상은 화가 두개이므로 중화리가 되지요.

이렇게 오행과 육기가 같은 것은 별문제가 되지 않는데, 가령 족소음신을 보면

오운은 수, 육기는 소음군화가 되고, 괘상은 화수미제(아래가 수이고 위가 화이면

미제라함). 수태양소장을 보면 오운은 화, 육기는 태양, 괘상은 수화기제(아래가 화,

위가 수이면 기제라함)가 됨을 주시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완벽한 운동성의 진리가

숨겨져 있습니다. 어떤 괘를 또르르 굴려봐서 미제괘가 나오면 그것은 흉한 괘입니다.

반대로 기제괘가 나오면 그것은 길한 괘입니다. 그러므로 미제괘가 나왔을 때에는

일을 도모해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따로따로 놀 상이지요. 가령 아이스크림(찬음식)과

칼국수(더운음식)가 있다고 할 때 소화를 용이하게 하려면 어떤 것부터 먹어야

될까요? 아이스크림을 먼저 먹고, 칼국수를 먹게 되면 장이 예민한 사람은 대다수

탈이 나게 마련입니다. 화와 수의 관계일 경우 더운 것이 밑에 있고, 찬것이 위에

있을 때는 살아 있는, 운동성이 왕성한 상이지요. 즉 수승화강의 위치가 되었을 때가

동적, 생동적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천태와 천지부 이 두 괘는 어느 것이 길한 괘일까요?

  지천태가 길괘, 천지부는 흉괘지요. 상천 하지는 정위치로서 운동성이 없이 하늘은

하늘대로 땅은 땅대로 각기 따로 노는 상입니다. 우리 인체 내에서 변수로 가장 많이

작용하는 것이 화와 수라 했습니다. "족소양담경"의 경우 오행은 목, 육기는 소양,

괘상은 뇌풍항이 되지요. '항은 허물이 없으며 곧고, 가는 곳이 있으면 이롭고

형통한다'이런 식으로 공부하다 보면 쉽게 64괘 중 12괘는 공부하게 됩니다. 별

부담없이 주역과 친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스스로 주역을 보기

용이하고 재미도 붙게 될것 입니다.

  주역은 확대해석을 잘 해야 됩니다. 소양상화지기를 지닌 아이가 못 되면 깡패지만

잘 되면 장군감입니다. 그러므로 일률적으로 해석을 해서는 안됩니다. "상한론"을

보면, 양명경에는 땀이 많다고 합니다. 그건 양명경으로 열이 들어 금이 녹는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복합적으로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해석을 잘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역에 나오는 해석들은 참고사항이므로 직접적인 큰 도움은

못 될지 모릅니다. 그것으로 미루어 짐작하라는 의미입니다.

  수태양소장경은 오행상 화, 육기적으로는 태양한수이고 괘상은 수화기제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소장경은 인체 내에서 실로 중요하고 활동성 있는 부분이 되는

것입니다.

  신장도 중요하지만 소장보다 완벽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 하면 신은 화수미제이고

소장은 수화기제로서 완전한 괘이기 때문입니다. 인체내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정과 혈'이지요. 체내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형성하고 있는

수태양소장경이 무엇을 이루고 있는 가는 나중에 각론에서 자세히 다룹니다만

소장경이 엉뚱하게도 혈을 주관한다는 이론이 여기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여자들의

경도, 코피가 나는 것 등 피와 관계되는 것은 전부 수태양소장경이지요. "여자들 병,

피에 관한 병은 모르면 그저 수태양소장경을 써라"라고 할 만큼 중요합니다.

  괘상을 볼 때 간, 심, 비, 대장, 방광, 삼초는 같기 때문에 한번 망가지면 고치기가

힘듭니다. 상하가 두 개가 섞여 있지 않으므로 병이 걸렸다하면 중병인 것입니다.

반대로 상하가 같은 괘는 유물적, 유심적, 취상이 쉽고, 오운육기 상으로는

천부장이라 칭합니다.

  간에 대한 취상을 살펴보기로 합시다. 유물적인 취상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퉁소, 낙엽, 돛단배 등으로 표현할 수 있고 유심적인 취상은 도서관 문을 나설 때

(만족스러이 지식을 얻고 문을 나선다는 뜻), 대포집에서 맥주를 시켜 먹는것

(막걸리나 소주만 파는 대폿집에서 맥주를 시켜 먹으면 으쓱해진다는 뜻), 판자촌에

세단차 몰고 들어가는 것(자존심의 만족), 책사러 서점가는 것(지식을 얻기 위한것),

국민학교 수업시간에 떠드는 아이 이름적었다가 본인에게 불러주는 것, 또는 여학생

고무줄 끊어 놓고 도망가는 학생 잡으러 가는 것(선도라는 직책을 빙자하여 남에게

권력욕을 과시하는 것)등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수소음심경"은 오행과 육기가 모두 화이므로 유심적 취상은 불난 집에 담배꽁초

던지는 것, 여름날 정오의 정사와 같고, 유물적 취상은 여름날의 만원버스, 에어콘

없는 전시장, 무더운 날의 애정영화...

  "비경"은 중택태이므로 유물적 취상은 물이 고인 웅덩이, 습지, 샘, 하천, 지하수와

같고, 유심적 취상은 많이 먹고난 후의 포만감, 편안히 쉬고 있을 때의 지루함 등과

같습니다.

  우리가 밥을 먹은 후 배를 두드린다면 족태음비경에 에너지가 실할 때 어떤 증상이

오겠는가 하는 것을 눈치챌 수 있겠지요. 화도 내보고, 배도 고파보고, 또 많이

먹어도 보세요. 그럴때 느끼게 되는 우리 기분의 변화로써 해당 경락에 대한 느낌을

우리가 체험해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수태음폐경"은 오행이 금이고 육기는 태음습이므로 유물적 취상은 볼펜(겉은

딱딱한데 안에서 잉크가 나오므로), 만년필, 유조선, 비행기(체는 딱딱한데 연료는

액체이므로)와 같고, 유심적 취상은 화투를 쳐서 돈 잃다가 포커 쳐서 돈딸 때

(재물 손실후 회복하는 상황), 점심 굶고 저녁을 배로 먹는 것, 목마를 때 물마시기

등과 같습니다.

  "족소음신경"은 오행이 수, 육기는 소음군화이므로 취상을 해보면 호롱불(물과 불이

만난

상황이므로), 수중 Sex, 13일의 금요일이란 영화, 재회(못 만날까 걱정하다가 다시 만

기쁨), 분만의 공포에 떨다가 무사히 출산한 것(공포와 즐거움의 상대적 개념을 일컬

음),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걸작을 완성한 예술가의 마음 등입니다.

  "수궐음심포경"은 풍뇌익이므로 취상을 해보면 따스하게 햇볕이 내려 쪼이는데

산들바람이 부는 것, 이른 봄날 같은 것, 국회의원 선거에 낙선되었는데 곧

국무총리로 임명된 상황(망신에서 명예로 살아난 의미), 분수모르고 날뛰던 자가

어느날 갑자기 주제파악을 하는 상황의 기분같은 것이 수궐음심포경의 에너지가 되는

것입니다.

  "족소양담경"의 취상을 해보면 나무 횃불, 강연장에서 질문을 하다가 창피를 당한

경우(지식욕의 꺾임), 선거유세에서 비웃음만 산 경우(권력욕의 좌절), 아무리 풀어도

문제가 풀리지 않는 것(지식욕의 꺾임), 상장을 받으러 나가다가 넘어지게 된 경우,

넘어진 사람 일으켜 주다가 자기가 넘어지는 경우 등과 같은 기분이 족소양담경의

에너지가 되는 것입니다.

  "수태양소장경"의 취상을 해보면, 불난집에 물끼얹기, 비디오 보는데 정전이 되는

상황(언제 전기가 들어오게 될까하는 긴장감 같은 것)등과 같은 기분이

수태양소장경의 에너지가 되는 것입니다.

  "족양명위경"은 산택손이므로 유물적 취상을 해보면 배사장, 특히 오아시스가

가까이 있는 사막, 금괴가 묻혀 있는 땅과 같고, 유심적인 취상은 밥 잘 먹고 식중독

걸린 상황, 새로 맞춰 입은 옷이 못에 걸려 찢어진 상황, 배가 고프나 먹을 것이 없는

상황, 쉬고 싶으나 쉴 수 없는 상황 등이지요.

  "수양명대장경"은 중수감이므로 취상을 해보면 저수지, 바다, 호수, 변태성욕자의

마음(공포감적인 면)등과 같은 기분입니다.

  "수소양삼초경"은 중뇌진이므로 유물적 취상은 번개, 따스한 햇볕, 교통사고가

나려해서 유리창으로 뛰어내리려는데 안내양이 욕을 하는 경우(교통사고의 위기에

눈에 불이 번쩍하는데다 욕까지 듣게되니 화가 더 나지요)와 같은 기분이

수소양삼초경의 에너지가 되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은 때로 수치심도 느껴야 되고 때로는 거만하기도 하고 때로는 열정에

빠지기도 하는 등 온갖 생각을 갖추게 될 때, 이 모든 것들이 조화를 이룰 때

두 경락의 에너지가 다 흐르게 되는 것입니다.

  뚱뚱한 환자가 왔는데 열이 있는 체질이라고 합시다. 몸이 뚱뚱하면 상식적으로는

몸이 냉해야 되는데 이 사람의 경우는 풍과 습과 열이 있는 경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식적으로 12경락의 특성만을 그저 외워서는 안되겠지요.

  인간의 병이란 원인과 증세가 여러 형태로 되어 오기 마련입니다. 몸이 뚱뚱하면서

냉하면, 이뇨제로 목통, 택사, 차전자, 등심, 반하, 남성, 의이인을 넣고, 냉하므로

오수유, 건강을 조금 넣으면 되고 몸이 열하다고 할 경우는 지모, 황백같은 걸 넣어

주어야지요.

  이렇게 약의 선택은 쉬운 편이지만 사암침에서는 12경락 중 하나의 경락을

선택해야만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12경락 중 어느 것이 제일 확률이 많으냐 하는

것을 여러분이 선택할 때에는 무척 예민해야 되고 날카로와야 될 뿐 아니라 어떤

경우는 두 경락을 함께 취해야 될지도 모르는 결단성이 요구됩니다. 즉 족소음신

승격과 족태음비 정격을 동시에 놓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선

여러분들이 뜻을 얻어서 많이 활용하시기에 달렸습니다.

  왼쪽과 오른쪽에 암같은 적이 주먹만큼이나 커다랗게 붙어 있는 환자를 한 한의를

공부하는 학생이 완치시킨 일이 있었습니다. 병원을 몇 년이나 다녀도 낫지 않던 것을

한 학생이 일주일 간의 치료로 치유시켰던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치료를 해

주었느냐고 물었더니 좌간우폐론(해부학적으로 간은 오른쪽에 있지만...) 좌병우치,

우병좌치론을 따라서 오른쪽에는 간정격, 왼쪽에는 폐정격을 놨다고 하더군요.

  그랬더니 일주일 만에 적이 완전히 없어지더라는 것이었어요. 신기한 일이지요.

여러분들도 오운과 육기가 상합이 되는 경우를 잘 연구하시면 실제 병을 보는 데에

엄청난 도움이 됩니다. 그리하면 다각적인 면으로 환자의 병을 검토하게 되고,

혹 잘못보았을 경우 다른 경락을 선택하는데 상당히 이로운 것입니다.

  대체로 마른 사람은 몸이 덥기 마련인데, 마르고 몸이 더운 환자에게는

족궐음간경이나 족태양방광경이 좋겠지요. 그러나 왜냐하면 뜻을 얻기에 따라

적용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 대황을 한 돈 넣느냐, 황련을

두 돈 넣느냐를 두고 어느 편이 더 낫다고 무턱대고 단언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일제시대 때, 명의가 두 사람 있었는데 한 사람은 무슨 병이라도 약 서너첩에

완치를 해 주었고, 다른 한 사람은 육미지황탕을 수십 첩씩 썼다고 합니다. 그런데

전자의 환자는 오래 살지 못하고 죽어갔고, 후자의 환자들은 무난하게 장수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에게 육미지황탕을 장복하라고 하는 것이나 약을 독하게

쓰느냐 약하게 쓰느냐하는 정도의 결정은 매우 어려운 점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십이경락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것도 지극히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상황을 여러분들은 신중하게 생각하셔야 합니다. 몸이 말랐는데 냉한

환자에게 족소음신경을 썼다. 물(신은 오행상 수이므로)도 넣어주고, 몸이 냉하므로

화기(소음군화)도 넣어주기 위해서 족소음신경을 썼다고 한다면 무난한 선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12경락 중에서 하나를 선택한다면 적중할 확률이 12^34^1이 되고,

12경락을 정격과 승격으로 나누게 되면 24^34^1의 확률이 됩니다. 그러므로 오행과

육기가 서로 교차되는 유심적, 유물적 취상에 대해 보다 많은 연구와 공부를 하시기

바랍니다. 짬뽕이 되는 상황을 열심히 생각하셔서 물, 불, 바람, 땅...등을 확대

해석함으로써 인간의 여러가지 경우와 결부를 시켜보십시오. 인간 관계 속에서 두 가

마음이 상합되는 기분이나 미묘한 감정을 이해할 수 있을 때, 환자를 보더라도 침은

어떤 경락을, 약은 어떻게 군신좌사를 할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천부장(간, 심, 비, 대장, 방광, 삼초)은 자극이 매우 강합니다. 이 중에서도 특히

심경, 방광경은 자칫 사람이 잘못되기 쉬우므로 족태양방광경이나 수소음심경을 보할

때에는 신중히 하여야 합니다. 12경락을 충분히 이해하지 않고 무턱대고 열이 있다고

해서 족태양방광경을 보하면 큰일이 생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의자는 의야라' 모름지기 뜻을 얻어야 합니다. 물을 없앨 때 바람으로 말리느냐,

불로 말리느냐, 이뇨를 시키느냐, 아니면 분필가루(양명조금)로 빨아들이느냐하는

것은 뜻을 얻지 않고는 알 수가 없습니다. 촛불을 끄는데 물을 한 바가지 부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소양상화지기를 궐음풍으로 치료한다고 하더라도 궐음경 대신 족양명위경을 놓을

경우도 있을 것이고, 달리 용골모려탕을 써야 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사암침구요결"을 보면 이와 같은 경우의 대표적인 예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외자(*눈가 자)가 충혈인지라 붉고 푸른 것은 위경의 허열인지라 내정, 통곡을 보

하고 삼리,

위중을 사해라. 내자에 적홍색의 기육이 유한 것은 심경실열인지라 소해, 음곡을

보하고 소부, 연곡을 사해라"

  눈두덩이 복숭아처럼 부은 것은 비경으로 치료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요새말로

백내장, 녹내장이라고 하는 검은 자위와 흰자위 사이에 백태가 끼는 것은 엄밀히

따져 보면 상화지기에 의한 것입니다. 즉 심히 화가 나거나 자식을 잃은 슬픔이 너무

큰 경우나 괴로움이 극심한 일을 당했을 때 분심을 삭이지 못해서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위허인지라 위정격을 쓰라'고 되어 있습니다. 위라는

것을 그저 소화와 연결시키거나 토와 연관짓는 오행적인 차원으로만 생각하면

안됩니다.

  족양명위경이란 불이 타고 있는 데에 모래를 뿌려 주는 상황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아뭏든 각 경락에 흐르는 에너지에 대한 느낌을 여러분들이 잘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 수양명대장경을 스폰지 같은 것으로 연상하라고 하는 까닭은

수양명대장경을 보해 주게 되면 수분을 건조시키게 되므로 그 성질이 스폰지의 그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만 이해해서는 안되고, 양명이 가진 성질이 서늘하다는

것을 또 이해해야 합니다.

  습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은 습을 그저 축축한 것으로만 생각하는데

사실은 이것이 토와 관계하고 있으므로 토에 관계되는 특징 또한 있는 것입니다. 습은

대체로 열을 끼고 있지요. 이러한 점들은 참 미묘합니다. 그러므로 각 경락에 흐르는

에너지에 대한 추정은 이렇게 다각적이고도 많은 검토로도 미진한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은 항상 주위에서 일어나는 기분이라든가 어떠한 상황에 따른 심경의 변화에

대해 예민하게 깨어 있어야 합니다. 이것으로 경락의 성품을 대충 공부했는데 이제는

치병에 대해서 공부해 보도록 합시다.

  저는 편의상 육경을 궐음 -> 소음 -> 태음 -> 소양 -> 양명 -> 태양 (음은 음끼리

양은

양끼리)으로 진행을 시키겠습니다. 간단한 예를 하나 들어보면 궐음인 지식욕,

명예욕이 그 상태로 유지되기만 하는 것이 아니고 성이나 어떤 정열적인 충동으로

(즉 소음으로) 변할 수가 있습니다. 또 성욕이 충족되지 않는다든가 하여 태음,

즉 식욕 따위로 둔갑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궐음 -> 소음 -> 태음 -> 소양 -> 양

명->

태양으로 외우는 것이 이해가 용이합니다.

  자! 그러면 육경의 맛 소리 형상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궐음(손풍, 풍)은

3차 리듬(지성리듬)에 해당한다고 했습니다. 예를 들면 명예욕 지식욕 승부욕 권력욕

자존심 등에 해당합니다. 소음(이화, 군화)은 2차 리듬(감성리듬)즉 성충동, 예술적인

충동, 열정 등입니다.

  태음(태택, 습)은 1차 리듬(신체리듬)으로 의식주와 같은 신체를 유지시키는

식욕 등을 일컫습니다.

  소양(진뇌 상화)은 궐음의 반대작용이므로 명예욕에 따르는 수치심, 무지, 권력을

놓친 패배의식, 승부욕에서 비롯된 열등감이며 공격적 성향, 파괴, 살인, 살생 등을

들 수 있습니다. 또한 양명(간산, 조)은 호주머니가 비었을 때의 초조감, 허기짐, 재

상실의 아픔, 누더기 옷을 입는 빈곤감, 배고픔등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태양(감수,

한)은 애인을 뺏기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 경계의식, 긴장감등을 일컫습니다.

  (반으로 접을 수 있도록 그린 팔괘도에서 서로 대칭되는 괘가 반대개념임을

이해하시면 위의 이야기를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곤 음(임) 지 음 ^26^ <-> 건 양(독) 천 양 ^35^  

  간 양명 산 양 ^35^ 조 <-> 태 태음 택 음 ^26^ 습

  감 태양 수 양 ^35^ 한 <-> 이 소음 화 음 ^26^ 군화

  손 궐음 풍 음 ^26^ 풍 <-> 진 소양 뇌 양 ^35^ 상화


  팔괘: 일건천 이태택 삼리화 사진뢰 오손풍 육감수 칠간산 팔곤지    

 

  만일, 위에 예로 들어놓은 감정들을 마음 속에 가지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정상인이 아니겠지요. 적당한 자존심이나 명예욕, 약간은 의식주에 대한 욕망도

있어야 하고, 노름판에서 돈을 잃었을 때 초조한 느낌도 받아야 정상이겠지요. 그런데

이것이 너무 실해서 삿되게 작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령, 궐음은 거만심이

생기기도 하고 학자적인 교만감, 상대방을 내려다보는 경멸감, 무형의 우열을

가리고자 하는 승부욕 등으로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궐음이라는 상황을 판별하거나,

그것이 정기로 작용하는지 사기로 작용하는지의 여부를 단순히 느낌만으로 알기

어려울 때에는 색이나 형상, 맛 등으로 추리를 할 수도 있는데 우린 바로 이런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소음은 삿되게 작용이 되면 음탕하거나 방탕한 마음, 방종, 퇴폐적

쾌락 등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태음의 삿된작용은 음식을 많이 먹은 포만감, 지루함 등으로 나타납니다. 여러분

주변의 인생의 실패자들을 보십시오. 그저 나태하고 지루해 보이며 비대합니다.

젊었을 때는 좀 양명해야 합니다. 소양지기가 삿되게 작용할 때는 잔혹함, 잔인한

내면의 기가 표출되게 됩니다. 몰인정하게 됩니다. 경계의식이 강하면 냉정하게

보입니다. 그리고 열등감, 자기 비하의식, 공격적인 성품, 방어의식 등은

소양지기입니다. 양명이 나쁘게 작용하는 것은 너무 궁상스러운 것, 또는

거지근성입니다. 사람이 살아감에 있어서 다소의 조심성, 긴장감은 있어야 되지만

태양지기가 사기로 작용하면 겁이 많고 졸렬한 사람이 되거나 의혹과 의심이 많은

사람이 됩니다. 니힐리즘 즉 허무주의도 여기에 속합니다. 이상이 육경이 바르게

작용할 때와 삿되게 작용할 때의 유심적인 취상입니다.

  그런데 이 유심적 취상은 이해하기는 쉬울지 모르나 사람을 보았을 때 직관으로

그 사람의 유심적 취상을 포착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무척 어렵습니다.

환자를 볼 때 우리는 관형찰색을 하지요. 관형찰색 가운데 색을 한번 살펴 봅시다.

  여러분! 도서관 간판을 음식점에 단다면 어울릴까요? 모든 상점에는 그 업종의

분위기에 맞는 색깔이 있습니다. 궐음은 청색이나 녹색에 해당하지요. 그러므로

얼굴에 푸르팅팅한 노기가 등등하다고 하면 족궐음간경의 에너지가 얼굴에 모였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들 진맥을 어떻게 합니까? 수양명대장경에 흐르는 에너지를

중시 하지요. 이 수양명대장경은 가장 투명하고 양명하므로 속에 있는 열이라든가

병변이 아주 잘 드러납니다. 맑은 물 속이 환히 들여다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지요.

  한두살 된 애기를 데리고 온 엄마가 "얘가 푸른 똥을 싸는데 경기가 있는지,

없는지요?"하고 물어오면, 애기 눈을 뒤집어 보고 항문을 열어 보고 발톱보고

맥진한답시고 촌, 관, 척을 찾을 겁니까? 세 손가락을 애기 손목에 얹으면 팔뚝까지

덮힐텐데요. 이 때는 수양명대장경이 흐르는 두번째 손가락을 보고 알아내야 합니다.

그러면 맥에 대해서 잠깐만 얘기를 더 해보겠습니다.

  양의사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한의사들은 옛날에 임금의 애첩을 실만으로 맥을

짚어보아 병을 알아냈다고 하는데, 우리는 직접 청진기로 심장소리를 듣고, 심전도

검사까지 해도 모르는 병이 많은데 맥을 보고 병을 알아낸다고? 세상에 그렇게 우둔한

사람들이 있다니"

  맥학을 공부할 때 옛날 스승님께서 멋진 비유를 해 주셨던 것이 생각나는군요.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지 알고자 할 때 나무뿌리쪽을 보아서는 결코 알 수가

없다. 태풍이 아닌 다음에야 뿌리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나뭇잎은 작은

바람에도 살랑살랑 흔들리는 법이다"

  한 나라의 정치가 잘 되고 있는지를 알려면 시골 면서기 9급 공무원의 행동을 보면

알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심장에 청진기를 대어서 알 수 있는것은 결대맥이나

부정맥과 같이 쿵덕 쿵덕~쿵덕덕 하는 불규칙적인 맥박 정도입니다. 이렇게

불규칙적으로 맥이 뛰는 사람은 한방에서 볼 때는 진음이 모두 고갈된 사람이므로

죽음이 임박한 사람입니다. 나무의 말단부분인 나뭇잎을 보면 바람이 부는지 여부를

쉽게 알 수 있듯이 몸의 말단인 손끝을 짚어보면 인체내부의 미묘한 움직임까지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뜨고(부맥), 가라앉고(심맥), 빨리 뛰고(수맥), 늦게 뛰고(지맥), 매끄럽고(활맥),

꺼끌 꺼끌(삽맥), 속은 비고 겉은 단단한 규맥(규맥은 혈허에서 온다고함), 또 속은

실한데 겉은 없다(기허)는 등...이 맥진을 하는 손을 거칠게 다루어 상하게 하면

안됩니다. 옛말에 "맥도 모르고 침통 흔든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환자가 왔을 때

맥도 보지 않고 두통이라 하면 열결혈, 소화가 안된다고 하면 족삼리, 이런 식으로

해선 안되지요. 맥을 일단 보고 빨리 뛴다고 하면 "으흠, 열이 있겠군. 그러니까

태양경이나 양명경을 써야겠다" 이렇게 맥을 보고도 처방이 곧바로 나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 젊은 한의사들 중 99.9%는 침 놓을 때 맥을 보지 않습니다.

이렇게 맥을 보지 않는 이유는 맥을 보는데 대한 어려움보다 맥에 대한 신뢰도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나뭇잎을 아주 미세하게 흔드는 바람일지라도, 오래 방치하면 병을 일으킵니다.

그런데 가벼운 병, 혹은 병이 오기전에 미루어 짐작하는 것은 맥이 아니면 안됩니다.

맥학에 조예가 깊은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자기가 화가 났을 때나, 체했을 때,

오줌이 안 나올 때나, 땀이 안나올 때, 오한이 날때 등 자주 자신의 맥을 본다고

합니다.

  왕숙화 선생에게 누가 묻기를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해서 그렇게도 맥을 잘

보십니까?"고 하자 "나는 내 자신의 맥을 스스로 10년 동안이나 지켜보았네. 그러니까

터득 되더군!"

  바로 이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자신의 맥을 열심히 보십시오. 여러분들의 감정에

변화가 있을 때마다 맥을 짚어 보세요. 그리고 여러분은 추호라도 이 맥학을 불신하지

마십시오. 어린이의 맥은 어디를 어떻게 봐야 합니까? 바로 두 번째 손가락의

수양명대장경을 봅니다. 양명한 사람은 곧잘 남의 잘못을 지적해 주는 등 자신의 속을

잘 드러 냅니다.

  누군가가 길을 물어 왔을 때, 방향이나 특정한 물건을 가리킬 때, 우리는 예외 없이

둘째손가락을 사용합니다. 즉 양명은 표지판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실핏줄이

기관까지 올라가면 경기가 시작되고, 명관까지 올라가게 되면 생명이 위독하게

됩니다. 놀래서 얼굴이 푸르팅팅한 것은 이와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소음은 적색,

태음은 습토니까 황색, 소양은 적백광색(뜨겁지 않은 빛과 유사함)입니다. 여러분은,

화가 무지하게 났을 때인데 의외로 냉정을 찾아서 아주 표연해지는 경험을 하신적이

있었을 겁니다. 화가 나면 몸을 파르르 떨거나, 살기 등등한 사람을 볼때 소름이

끼치는 것이 소양지기입니다.

  양명은 백색, 태양은 흑색이라고 대체적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주는

어떤 경락에 해당할까요. 흑색과 붉은 색이 섞인 것이므로 태양한수나 소음군화가

내포된 어느 경락이 되겠지요. 자주색은 경락상 수태양소장경에 가깝다고 봅니다.

산이 많은 지형에서 사는 민족은 대개 백색 옷을 입는다고 합니다. 어느 나라든 높은

공중에서 내려다 봐서 어떤 일정한 색의 옷을 많이 입고 다닌다면 그 색깔만으로도

국민성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저의 주역 선생님이 주역의 신비함을

말씀하실 때 해 주신 것입니다. 카르멘 같은 여자에게는 자줏빛 옷을 입혀야지

보라색이나 하늘색 내지는 애매모호한 색의 옷을 입힌다면 어울리겠습니까? 이렇게

되는 까닭은 각각의 색깔이 가진 이미지가 경락의 이미지와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보라색이나 회색은 어느 경락에 해당이 되겠는지 여러분 스스로 추측해 보셔서

주역의 오묘함을 경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느 색 하나를 집중적으로 선택하는 것은 병적입니다. 저더러 바둑통을 만들라고

한다면 하나는 빨간통, 또 하나는 파란통을 만들겠습니다. 그리하면 흑과 백의

바둑알, 중앙토인 황색 바둑판, 적과 청의 바둑통으로 오행의 다섯 색이 모두

완비되지요. 만약 바둑판을 참으로 무난한 중앙토의 황색으로 하지 않고 자주나

보라색으로 칠했다면 눈이 어지러워 몇 시간 두지를 못할 것입니다. 이렇게

옛 사람들의 지혜는 우리가 생각해도 놀라울 정도입니다.

  의상의 색도 마찬가집니다. 뚱뚱한 사람은 가볍고 밝은 옷을 입어야지 검정이나

자줏빛 옷을 입으면 보기에 아주 무겁고 보기도 좋지 않을 것입니다. 또 몸이 마른

사람이 너무 밝고 가벼운 옷을 입으면 이내 날아갈 것 같겠지요. 이때는 좀 무거운

색상의 옷을 입어야지요. 육경상의 상생상극과 보완관계는 대단한 것입니다. 한약을

지을 때에도 약을 다 짓고 보니까 전반적으로 색깔이 우중충하다 싶으면 오미자나

홍화 조금, 구기자 조금 그리고 청색을 띤 약도 조금 넣습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다고 하지 않습니까? 음식은 입만으로 먹는게 아니라 눈으로도 먹는

것입니다. 제례는 밀교예식으로부터 온 것인데 제삿상에는 목 화 토 금 수의 오색이

다 들어 있습니다.

  밤새도록 책을 보면서 줄담배를 피웠다고 합시다. 무엇을 먹으면 좋을까요?

"방약합편"(행림출판 P.188)에 있는 '연초'를 보면 '담배는 양성기월하여 건조하므로

화가 많거나 기허다한한 사람에게는 마땅치 않는데 혹시 담배에 취해서 넘어지는

사람에게는 냉수나 설탕물을 먹이면 깨어난다'고 나와 있지요. 담배는 양명조금에

가깝습니다. 맵고 가볍지요. 또한 연기를 쐬면 건조해지기 마련이지요. 그러므로

건조를 완화시키는 데에는 물을 뿌려주든가 단맛(설탕물)이 제격이지요.

  최루탄에 중독된 경우라도 한의사는 음양치료법을 찾아낼 수 있을것입니다. 또

'연초는 성이 순양하여 선행 선산하므로 음체에 쓰면 신효하다'고 쓰여 있습니다.

  삐쩍 말라서 습도 없고 진액이 부족한 사람이 담배를 피우니 암에 걸리지, 뚱뚱하고

냉한 것 좋아하는 사람은 절대 담배로 인한 암은 걸리지 않습니다. 처어칠 같은

사람이 담배를 피우면 보기에도 얼마나 좋습니까. 담배는 무조건 암의 원인이다는

생각은 어리석습니다. 대황이나 부자, 인삼도 잘못 쓰면(음양을 모르고)암의 원인이

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겠습니까?

  옛날 어느 한의사가 의대를 졸업한 아들을 두었는데 나중에 그 아들이 박사가

되었답니다. 그런데 그 무렵 페니실린이 마구 들어오기 시작했고, 양방의사들은 이

페니실린의 효능을 너무나 믿은 나머지 아무에게나 막 주사를 놓게 되었지요. 지금은

After skin Test를 합니다만 처음에는 하지 않았어요.

  한의사 아버지가 아들에게 페니실린의 출처를 묻자 아들은 무식한(?) 아버지를

책하며 구라파 사람이 푸른곰팡이에서 추출한 것이라고 대답을 했지요. 그러자

그 아버지는 "부작용이 있을테니 음인에겐 쓰지 말아라. 음허화동에는 좋고 열에는

좋을지 모르나 뚱뚱하고 습한 사람에게 쓰면 안된다...." 그러자 아들은 아버지를

비웃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 페니실린 쇼크로 죽는 사람이 도처에서

속출했습니다. 이리 되고 나서야 비로소 주사 전에 skin test를 하게 되었지요. 마른

여자들의 담이 끓는 기침이나 냉대하에는 페니실린이 잘 듣습니다. 그러나 몸이

비대한 사람들이 날이 궂으면 몸이 쑤시고 냉이 많이 흐르거나, 음식 많이 먹고

드러눕기 좋아하는 사람에겐 페니실린이 무효합니다. 왜 그럴까요? 페니실린은

습지에서 나온 습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소위 폐결핵이라고 하는 음허화동에는

잘 듣기 마련입니다. 육미지황탕에 지모 황백을 넣거나 자음강화탕(중통42번)을

써야 하는 증세에는 들을지 모르지만 뚱뚱한 사람에게 쓰면 페니실린의 약성이

강하니까 우선 듣는 듯 하다가는 다시 또 재발이 되고 맙니다. 그리고 양방에서

일컫는 전립선염, 트리코모나스 질염 따위의 습해서 오는 병은 마이신으로 고치기에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한방에서는 보중익기탕에 반하나 남성을 넣는다든지 해서 거습지제를 쓰면 쉬

나을 수 있지요. 궐음은 신 맛, 소음은 쓴 맛 중에서도 거두어들이는 쓴 맛입니다.

멍게를 먹어보면 맛이 쌉싸름한데도 자꾸 침이 생기고 삼키고 싶어지지요. 이것은

소음군화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쓴 맛인데도 뱉아내고 싶은 맛이 있는데 이것은

소양이지요. 태음은 감미, 양명은 신미, 태양은 함미로 분류됩니다. 짠 맛도 내뱉고

싶은 맛이지요. 그래서 구토를 시키고자 할 때 소금물을 먹이는 것입니다.

"동의보감"에 보면, 산미를 많이 먹으면 음욕이 많아진다고 쓰여 있습니다. 신맛을

많이 먹으면 명예욕이나 권력욕, 야심이 많아지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공부하는

학생들은 음식을 좀 시게 먹는 것이 좋습니다. 뚱뚱한 사람들은 좀 맵게 먹는 것이

좋지요.

  이번에는 소리에 관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우리나라의 소리에는 오음 즉

궁(토), 상(금), 각(목), 치(화), 우(수)가 있습니다. 만일 도레미파솔라시도를

목화토금수에 배속을 시킨다면 배속이 될까요? 이것은 오행상의 관점과 육기상의

관점을 터득하기 전에는 불가능하겠지요. 그렇다면 궁 상 각 치 우를 오행에 배속시킨

옛 선인들의 뜻을 이해할 수있겠습니까? 이 속에는 오행적인 차원의 다른 여러 의미가

들어 있을 지 모르는 일입니다. 저는 이 오음의 의미를 잘 알지 못합니다. 천계에서

누가 내려 왔을 때, 이 지구상의 글자 중 가장 멋진 언어를 찾아보라고 한다면 아마

한글을 선택하리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오행과 육기가 혼합되어 나오는 것

같거든요. 즉 형의 성쇠인 기와 기의 다소인 질이 혼합된 상황과 같지요.

  '아'와 '우'의 중간음을 '음'이라고 앞에서 말씀드렸는데 옛부터 내려오는

치료법 중에 '아 어 음 이 우'를 일정한 방법으로 계속 반복을 하면 어떤 질병이라도

다 낫는다는 음성치료법이 있습니다(단, 이때는 각 발음의 입술 모양을 확실히

해주어야 합니다). 지금 ^456 356 356 123^도에서 어떤 분은 오직 음성학만으로 병을

치료하는 분이 있다고 합니다.

  한글의 모음은 형상에서 따온 것이라는데 여러분은 이점에 대해서도 연구를 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는 아예 벌어졌고, '우'는 아주 움추려 들었고 '음'은

그 중간이지요. 제가 중앙토의 개념을 강조해왔듯이 어떤 음이든지 중간음을 거쳐서

지나가야 됩니다. '어'는 상하로 벌어졌다가 닫히는 기분이 있고 '이'는 옆으로

벌어졌다가 닫히는 기분이 있지요. 이렇게 '아 어 이 우'를 반복할 때 중앙토인

'음'을 각 발음을 할 때마다 거치게 된다는 것이지요.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때,

성삼문, 박팽년이 금강산에 가서 글자를 짓기 위해 고민고민하고 있는데 어떤 도인이

희귀한 경전을 전해주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하늘과 땅의 주인공인 인간이 내는

음이란, 음을 벼리(망)로 삼아 인간의 생각 전부를 다 담으려고 애를 쓴 것이겠지요.

  노래도 마찬가지입니다. 멜로디나 곡 자체의 분위기, 발음에서 느끼는 감흥이 각기

다르고 이것이 종합되었을 때의 느낌이 또 다른 점은 참으로 묘합니다. 산토끼 노래의

종성에 ㄹ과 ㄱ 을 각기 붙여서 발음해 보세요.'살톨낄 톨낄얄...', '삭톡끽 톡끽약..

.'

이 둘은 전혀 색다른 느낌이지요. ㄹ이 종성일 때는 긍정적이나 ㄱ 이 종성일때는

부정적인 느낌이나 살기를 느끼게 되지요. 따라서 전자나 후자에는 각기 다른 어느

경락이 중점적으로 연관되어 작용하고 있음이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공자는 '한 나라에 들어가서 어떤 음악이 유행하고 있는가 듣기만 하면 그 나라의

민심을 알 수가 있다'고 했습니다. 음악으로 인심을 부드럽게 하는 것은 마치 보리가

봄바람에 눕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도를 깨친 사람들은 새 소리, 짐승 소리를 듣고

그것들이 가지고 있는 감정을 읽는다고 합니다. 인간은 모든 경락을 골고루 쓸 수

있는데 비해서 동물들은 대체로 한두개의 경락을 극단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자축인묘...의 열두 동물을 취상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취상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가벼이 생각지 마십시오. 옛 성인의 지혜를 깨닫도록 많이 노력하셔야 됩니다.

  이번에는 자음을 육경적으로 분류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태양한수는 대체적으로 ㄹ,

ㅊ받침(종성)에 가깝습니다. 태음은 ㅁ과 ㅂ 에 가깝고, ㄱ, ㅋ 은 살기가 있으므로

양명조금에 해당하고, ㄴ, ㅇ은 소음에 가까우므로 종성에 비음인 ㄴ, ㅇ이 있으면

애교가 있거나 섹시합니다. (여보-ㅇ). 콧소리를 많이 내는 나라는 감성리듬이

발달되므로 프랑스를 예술의 나라라고 함은 지극히 당연할 것입니다. 궐음은 ㅎ 에

해당하고, 소양은 ㅅ과 ㄷ 에 해당합니다. ㄹ 은 공포에 대한 조심성에 가깝고 ㅎ 은

무형의 지식이나 권력 또는 명예를 인정할 때 나오는 소리입니다. 평소에 무심코

내뱉는 소리를 잘 들어보면 이런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형상을 육경적으로 분류해 보기로 합시다. 제가 지금 강의하고자 하는

형상이란 태음인, 태양인, 소음인, 소양인으로 나누는 사상의학적인 부분이 아니고

기분에 따라 좌우되어 표현되는 분위기적인 부분을 일컫습니다. (참고: 기분이란 기가

분한 것 즉 기가 나뉜것입니다. 기분이 좋다면 기가 좋은 쪽으로 나누어 간 것이고

"오늘은 기분이 나빠"라고 한다면 기가 나쁜쪽으로 나뉜 것이지요. "나는 기가

궐음이다"라고 한다면 기가 궐음 쪽으로 나뉜 겁니다.) 이렇게 어떤 기분은 어떤

형상을 유발시키는 것이 아닐까요? 어깨에 힘을 주고 이야기하는 사람을 보면

저 자식이 깡패 기질이 있나 하고 생각케 되고, 며느리를 처음 봤는데 시부모 앞에서

히프를 산들산들 흔들며 걸으면 도화살이 있나 하고 이야기합니다. 뒷짐지고 거만하게

어슬렁어슬렁 걸어가는 사람, 어깨를 떡 벌리고 폼 잡고 가는 사람, 어깨가 축 처진

사람 등 다양합니다. 우리는 이런 경우를 미루어 어떤 짐작을 하게 됩니다. 이런

것에는 어떤 일정한 rule이 있을 것이라는 얘기지요.

  대화중에 겁먹은 표정을 짓거나 곧잘 웅크리는 사람이 있다면, "쟤는 늘 얻어터지고

살아왔나?"하는 생각이 들지요. 무슨 일을 도모할 때면 으례히 웃통을 벗어 던지는

사람도 있고 조심스럽게 구석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참 묘하지요. 표정도

가지각색, 앉는 모양도 가지각색, 손놀림도 가지각색, 모두가 가지각색이지요.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과 같은 폼을 하고 있으면 다른 사람이 보고는 대뜸 "아니! 무슨 고민이

있으세요?"하고 물어옵니다.

  예를 하나 들어 보면 장궁노현(머리가 발에 닿을만치 앞으로 구부러진 병)과

각궁반장(눈이 뒤집히면서 입에 거품을 물고 몸이 뒤로 젖혀지는 병)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둘의 음양을 짐작하여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평소 우리가 접촉하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자기 과시를 잘하고 배를 내밀어 뒤집기를 잘하는 사람과 곧잘

숙이고 구부리는 사람을 관찰해보면 위의 두가지 병에 대한 음양은 물론 원인까지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듯 형상은 한사람의 심기를 드러내는 것이므로 장궁노현에

폐정격(폐를 보함)을 쓰는 기이한 처방은 전혀 엉뚱한 것이 아니지요. 그것은

폐정격이 장궁노현에 걸린 그 사람의 심기에 접맥되기 때문입니다. 사암도인은 곱추를

폐정격으로 낫게 해주었습니다. 저 역시 허리가 자꾸 앞으로 꼬부라지는 스님을

폐정격으로 완치시킨 적이 있습니다. 여인이 사랑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다소곳이 듣고

있는 표정은 어떻습니까? 아랫 입술로 윗 입술을 조금 덮고 만족한 얼굴로 눈을 척

내리깔고 고개를 끄덕끄덕하지요. 어떤 표정이나 형상은 이렇듯 유심적인 기운, 즉

심기를 나타내는 것 아니겠습니까? 각 경락에도 특정적인 마음, 특징적인 형상이 있지

않겠나 하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그리하여 약초나 동식물 사람 뿐아니라 만물의

모든 형상을 통해서 그것들이 가진 어떤 기운의 다소를 추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한방에서 모든 씨(오미자, 토사자, 구기자, 복분자, 사상자)는 거의 정력제로 쓰지

요.

그러니까 결국 식물의 씨는 우리 인간에게도 씨로 쓴다는 거지요. 또 식물의 모양을

또 어떤 기운을 추리하여 어떠 어떠한 경락의 보사에 쓰겠다고 짐작할 수도

있겠지요. 가령 양명의 기운이 뾰족한 형상의 식물은 양명기운을 보충시켜 준다고

볼 수 있지 않겠어요? 한방에서 가시를 약으로 쓰는 것으로 조각자가 있습니다.

노자의 도덕경에 보면, '전쟁이 지나간 자리에는 가시덤불이 무성하다'고 쓰여 있습니

다.

전쟁이 지나간 자리에 왜 가시덤불이 무성할까요? 사람들이 모두 살기등등 했으니

그곳에서는 뾰족한 식물 밖에 더 자라겠습니까? 양명지기나 소양지기가 강한데 무우나

사과, 배 등의 식물이 잘 될리가 없겠지요. 여러분이 아실지 모르겠지만 경주 근처에

'건천'이란 곳이 있는데 이곳이 우리나라에서 조각자가 가장 많이 나는 곳입니다.

신라와 백제의 옛 격전지였기 때문에 건조하고 뾰족한 양명기운이 강한 것 밖에 더

자라겠습니까? 또 건조한 땅(건천)에서 건조한 식물이 태어남은 당연하지 않겠어요.

그러므로 인체 내에 뾰족한 경락이 있으면 그 경락에는 뾰족한 에너지가 강력하게

흐른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성품이 뾰족한 천산갑이나 조각자는 통하게 하거나

뚫어내는 파적지제로 씁니다. 이렇게 한방에서는 무형의 기운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고

어떤 형상에 따르는 성품도 읽어내어 다루고 있습니다.

  궐음은 무엇이든지 거두어들이고(수) 품에 안아서 끌어들이는 특징이 있습니다.

가령 발산되는 모양의 식물(민들레 씨와 터지기 일보직전의 것)이 있다면 그것을

먹었을 때 인체 내에서도 발산지기가 생기게 되지 수검지기가 생길 수는 없지 않겠어

요.

  이에 비해 오미자, 복분자 등은 거두어들이는 성품이 있지요. 한 나무에 열린

사과라 하더라도 다 익어서 단맛일때는 태음경으로 가지만 신맛의 풋사과를 먹으면

궐음경락으로 가게 됩니다. 또 궐음경은 풍목이지요. 바람을 유심히 관찰해 보면

어떤 경향이 있습니까? 어떤 현상이 생기게 됩니까? 온도차이에서 생기는데 기압차가

이루어지면서 회전을 하지요. 즉 기압이 낮은 곳으로 자꾸 들어가려고 합니다.

주역팔괘에도 '손은 입야라' 손(풍)은 들어가는 것이라 했습니다. "저 친구 바람끼가

있군"하고 말하는 것은 여러 여자에게 접수가 된다는 이야기지요. 그러므로

바람이라는 것은 들어가고 싶어하는 성질이 있는 겁니다.

  식물도 햇빛과 퇴비가 좋은 상태라 해도 바람(공기)을 잘 소통시켜 주지 않으면

이상하게도 잘 크지 못합니다. 사람에게 바람을 쐬어 주고자 할 때는 궐음경락을

취하지요. 여러분은 바람이 가진 기본적인 특성을 그저 단순한 움직임으로만 여길지

모르나 실질적으로는 회전을 합니다. 근육이 궐음에 속하는 까닭도 근육과 바람은

둘다 이 움직이는 성품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또 그 움직임 속에는 약간의 탄력성도

담고 있지요. 운동선수의 근육은 언제나 팽팽히 모여 있지요. 또 구름이 하늘

가운데에서 마구 뭉치기 시작하면 "아하! 저기에는 궐음 기운이 있군"하고 추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명예나 권력을 잡고 과시하고 폼잡는 사람들을 보면 궐음에 대한

이해가 용이합니다. 작게는 깡패, 크게는 권력자 혹은 많이 아는 사람들의 행색을

보면 대체로 거만하고 모든 걸 내려다 보고 자기만 다 안다는 눈빛이지요.

  이번에는 소음군화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소음군화는 예술적이고 다소

성적이라고 얘기했습니다. 즉 감성적인 사람이 지닌 특성과 동일합니다. 그리고

아래에서 위로 상승하는 성품이 있습니다. 이 올라감은 콱콱 뚫고 오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부드럽게 무언가 번성하는 듯한 느낌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소음군화가 잘 발달된 사춘기 시절에는 조금만 웃겨도 까르르 웃고, 말똥 굴러가는

것만 보아도 웃습니다. 소음기가 발달된 기생들은 걸음걸이조차도 산들산들 가볍지요.

난과 같이 유연하고 야들야들 연하게 자라는 식물이 있다면 '너는 감성이 예민하겠군'

또 '찬 것에 특히 약하겠군'하는 것을 금방 알 수가 있겠지요. 덩쿨식물의 대부분이

맛이 시어 궐음에 속하는데 비해 소음군화에 해당하는 식물들은 아주 야들야들

간들간들 하면서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기운을 일컫습니다.

  어떤 화가가 그림을 그릴 때, 난을 아래에서 위로 올려 그리기를 좋아한다면

이 사람은 소음경락이 허하므로 소음경의 특성에 자신도 모르게 이끌린 것입니다.

이런 경우는 소음경을 보해 주어야 하겠지요.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해도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아래에서 위로 그림을 그렸다면 위에서 아래,

좌에서 우, 우에서 좌로도 그림을 그려 봐야 합니다.

  다음은 태음을 보도록 합시다. 태음은 습이므로 대체로 축축하고 안으로 가라앉는

특성이 있습니다. 중화가 잘 되어 무난한 형상 즉 둥글게 원을 그리는 형상입니다.

태음은 감미로서, 모든 것을 완화시키므로 살기가 있을리가 없지요. 그러므로 감초가

제독을 중화시키는 것입니다. 또한 태음은 수분이 많고 부드러우며 중화성이 있고 또

살(육)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바나나와 배를 비교해 봅시다. 바나나의 육질은

부드럽고 황색이나 배는 육질이 파삭거리며 백색이지요. 그러므로 배는 양명조금에

가깝습니다. 태음습에 해당하는 쇠고기를 많이 먹고 속이 거북할 때에는 양명조금인

배를 먹어야겠지요. 장차 이런 경험을 꾸준히 축적시켜서 상황에 맞게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다음은 소양을 보겠습니다. 소양은 궐음과 반대의미로서 안에서 밖으로 폭발할 것

같고, 튕겨져 나갈 것 같거나 발산되는 것과 같습니다. 빛이 발산되어 나오는 듯

하지요. 소양지기의 사람을 보면 눈이 부리부리하고 눈에서 빛이 나오는 듯 합니다.

권력자처럼 거만하게 빨아들이는 눈빛이 아니고 소양지기의 사람은 눈이

반짝거립니다. 눈에 핏발이 선듯도 하고 안 선듯도 하지만 여자를 밝히는 탐욕스런

눈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눈을 부릅뜨기를 좋아 합니다. 또 소양지기의 사람은 장군의

상이라 볼 수도 있지요. 절에 들어서면서 입구에 사천왕상이 있는데, 그 눈을 보면

불똥이 튈 것만 같습니다. 그렇듯이 소양지기는 동식물을 막론하고 안에서 밖으로

폭발하는 듯한 느낌입니다. 반딧불이나 전기뱀장어도 여기에 속하겠지요. 물론

고기표면의 미끌미끌한 비늘 쪽이야 태음습에 속하겠지만 불이나 전기는 소양지기에

속합니다.

  양명지기를 보면 양명은 태음의 반대이므로 다소 뻣뻣하고 견고합니다. 또

건조하지요. 마치 키가 쭉쭉자라는 형상입니다. 전나무나 떡갈나무 같은 것을 보면

껍데기 부분에 양명지기가 많습니다. 그리고 어린아이들 많이 먹인다고 그게 다 살이

되는 것도 아니고 못 먹인다고 키가 영 크지 않는 것도 아니지요. 통통하고 작달막한

사람보다 키가 껑충 큰 사람이 속으로 불만이 많거나 날카로운 점이 않습니다. 식물도

습지에서 자란 오동통한 버섯과 건조한 산비탈에서 자란 전나무는 서로 성품이

판이하게 다른 것이지요.

  그다음 태양지기를 보면 태양한수는 물은 많되 긴장성과 위축성을 갖고 있습니다.

겁을 먹었을 때, 공포를 느낄 때의 긴장감이 태양한수의 특성입니다.

  이상의 육경에 따른 형상적인 개념이나 색, 소리 등은 대체적으로 그러하다는

것이지 반드시 그렇다고 꼬집어 말할 수는 없는 내용입니다. 그저 육경의 개념을

여러분들에게 가르치는 방편으로 이렇게 추리를 해 본 것이지요. 이상의 모든 것을

뒷면에 도식화 하였으니 참고로 삼아 각자 많은 노력과 연구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백개자를 예로 들면, 백개자의 맛이 어떻습니까? 매운(신) 맛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자라는 땅의 토질은 어떻겠습니까? 백개자는 양명조금지기가 많은 건조한 땅에서

자랐다는 것을 추측할 수가 있겠지요. 산수유는 통풍이 잘 되는 땅에다 심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산수유는 바람(궐음풍목지기)를 잘 맞아야 신맛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과 재배를 통풍이 잘 되는 곳에서 하면 맛이 시어집니다. 그래서 산중턱 같은 곳에

다가는 사과 재배를 하지 않지요. 육경공부를 깊이 하다보면 자기 주변 사람들의

성품이나 성장한 곳을 알 수가 있게 됩니다. 그리고 "아하! 너는 어느 경락에 병이

있겠구나"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뚱뚱한 체격에 졸기 잘하고 먹는 것을 밝히는 환자가 왔다고 하면 이런 태음지기의

사람에게는 허리가 아프건 두통이건 복통이건 일단 양명경을 꽉 쑤셔주면 정신이

바짝 들게 됩니다. 그저 무엇이든 남의 잘못을 지적하기 좋아하는 공격적인 성격의

사람에게는 궐음경을 보해 주면 됩니다. 이쯤되면 여러분들은 사암침법의 핵심적인

부분을 10%정도 공부한 셈입니다.

  우선은, 환자의 병증 즉 두통, 치통 등에 구애되지 말고 그 사람의 체격 성격을

먼저 보아야 합니다. 환자가 들어 왔는데, 눈꼬리를 내리고, 허리를 앞으로 굽히면서

"어떻게든 좀 고쳐주세요"라고 하며 궁상맞은 행세를 하는 사람은 양명경락이

발달되어 있으므로 태음경락을 보하면 되겠지요.

  저는 환자를 예진하고 나서는 같이 일하는 분들과 토론을 많이 합니다. 혼자 보는

것보다는 두 사람이 보는 편이 낫고 둘보다는 셋이 볼 때가 더 낫거든요. 또 같은

환자라도 어제와 오늘의 기분이나 심경이 달라질 수가 있습니다.


  (1 괘상 2 정기 3 사기 4 미 5 색 6 성 7 형상의 순)

  궐음: 1 풍목 손풍  2 3차리듬 명예욕 권력욕 지식욕 자존심  3 거만 교만 경쟁

경멸  4 산  5 청 녹  6 각(ㅎ)  7 수검 회전 운동성, 질긴 것(근육), 덩굴식물

  소음: 1 군화 이화  2 2차리듬 예술적 성적열정  3 음탕 방탕 방종 퇴폐적 쾌락

4 고(흡)   5 적   6 치(ㄴ, ㅇ)  7 번성, 꽃, 란 열정에 빠진 기생, 유연, 민감, 상

승, 

화려함 작가 이상, 공작

  태음: 1 습토 태택  2 1차리듬 의, 식 주에 관계되는 욕망  3 교만 지루감 나태

4 감  5 황  6 궁(ㅁ, ㅂ)  7 중화, 매끄러움, 부드러움, 뚱뚱함 육질풍부, 바나나

  소양: 1 상화 진뇌  2 수치, 무지 패배의식 열등감 공격적파괴  3 잔혹, 몰인정

잔인, 쌀쌀함 살생, 열등감 자기비하의식  4 고(호)  5 백 광  6 ㅅ ㄷ  7 폭발,

발산, 솜털, 반딧불, 민들레, 전기뱀장어, 키가 큼(불안), 사천왕상의 눈

  양명: 1 조금 간산  2 초조, 허기 재물상실에 대한 아까움, 빈곤함  3 거지근성

궁상맞음  4 신  5 백  6 상(ㄱ, ㅋ)  7 견고, 건조, 마른체질, 키가 쭉 뻗음 살기,

뻗뻗함, 추동에 강함 나무껍질, 섬유질, 가시

  태양: 1 한수 감수  2 공포, 긴장감 조심성 경계의식  3 겁쟁이, 의혹 용렬한 마음

의심, 허무 니힐리즘  4 함  5 흑  6 우(ㄹ, ㅊ)  7 냉긴장성, 생식능력저조 조심성

위축성, 찬물, 신경초(미모사)

  @ff

@[  6. 관형 찰색@]

@[(1)@]

  오늘날의 의학은 너무 분과를 나누다보니 한사람의 병을 완치시키기 위해서는 여러

전문가의 손을 빌려야 하는 상태가 되었지요. 그러나 어떠한 병이든가 국부적인 것은

전체로 나타나며 훌륭한 의사란 어떤 한쪽에 치우친 관으로 병자를 대하는 것이

아니라 '종합적'으로 병자의 모든 것을 재빨리 파악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종합적'이란 말에 우리는 유의해야 합니다. 이 '종합적'이라는 것이 하루,

이틀, 일년, 이년 정도의 연륜이 걸려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지요. 물론 그렇다고

턱없이 세월만 보낸다고 이 '종합적인 관'이 세워지는 것은 더더욱 아니지요. 바로

여러분이 의사로서 가장 중요한 종합적인 관을 세우기 위해 지금 여기와서 내 얘기를

듣고 있는 거지요.

  치료를 함에 있어서는 먼저 진단이 앞서야 되지요. 사암침에서 사용하는 60혈을

외우고 쓰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나 진단을 하는 차원에서 나타나는

사암침법의 특징은 주목을 해야 합니다. 사진"망, 문(들을), 문(물을), 절" 중 망진에

대해 강의를 하겠습니다. 관형찰색을 하는 망진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관형은 음 양

한 열 표 리 허 실 또 칠정지부침을 보는 것을 말합니다.이것이 곧 지금까지 말씀드린

육경상으로 나뉘어진 형 즉, 중심으로 모이는가? 바깥으로 퍼지는가? 사물사물 피어

오르는가? 혹은 내려가는가? 하는 것을 보는 겁니다. 그런데 육경의 형보다 먼저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앞에서 말씀을 드렸는데 그것은 전체적인 균형을 먼저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선 사람의 음양 즉 천(두)과 지(신)의 비율을 보는데 옷을

입지 않은 상태를 전제로 합니다. 몸에 비해 머리가 작으면 음적이고, 몸에 비해

머리가 크면 양적이 되지요. 쥐의 경우 머리는 작고, 머리에 비해 몸통이 크니까

음습한 데에 살고, 바깥에 나오길 싫어 합니다. 이에 반해서 말은 머리가 큽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구유를 보면, 목 정도의 높이에 나무를 걸쳐 놓기만 해도 도망을

못갑니다. 성격이 양적이므로 악착같이 뛰어서 넘어가려고만 하지 걸쳐 놓은 나무

밑으로 기어나가려는 노력은 결코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쥐가 밝은 것을 싫어함에

비해 말은 어두운 것을 싫어합니다.

  그렇다면 병에도 크게 음병과 양병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환자를 보고 음양을

판별하면 그 사람의 병은 체질적으로 "음적으로 많이 오겠구나, 양적으로 많이

오겠구나!" 하는 짐작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은 아주 간단한 관형법인데도 이걸

모르는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이걸 모른 채 진단에 들어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눈, 코, 귀, 입의 배열을 보는 것은 사상이요, 머리와 몸통의 비율을 보는 것은

음양입니다. '천원지방'이라고 한 것은, 머리는 둥글고 몸은 모나게 생겼다는 뜻이지

옛 사람들이 땅을 모나다고 한 것은 아닙니다. 두대신소면 양적인 체질, 신대두소면

음적인 체질입니다.

  머리, 얼굴, 어깨가 발달되었는데 다리쪽이 허약하면 양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히프와 발이 크고 손은 작고 눈 코 귀가 아기자기하다면 이 사람은

음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당연히 양인은 양적인 병, 음인은 음적인 병이 오기

쉽습니다. 

  이렇게 음양이 구별되면 팔망(음양 한열 표리 허실) 중 한열은 저절로 구분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양인은 양실음허, 음인은 음실양허임을 알 수 있으므로 팔망의 허실

또한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모든 병을 관함에 있어서, 음양을 알지 못하고서는

한열과 허실을 알아낼 수가 없습니다. 또 확률적으로 봐서, 양인은 표병이 많고,

음인은 리병이 많음으로 미루어 보면 음양 한열 표리 허실의 팔망이 저절로 결정되게

됩니다.


   두대신소: 양인  열병  표병  양실음허  너를 강조(눈치를 많이 봄) 봉사, 희생,

공격, 분노.

   신대두소: 음인  한병  리병  음실양허  나를 강조(에고가 강함) 저축, 간직,

욕심, 음모.


  "의학입문"과 "동의보감"의 설이 서로 상반되어 아직까지도 일정한 정설이 없는

병이 근시와 원시입니다. "동의보감"을 보면 '근시안은 음실양허'라고 되어 있습니다.

처방은 주로 기를 보충시키는 약을 쓰도록 해 놓았습니다.

  빨간색을 볼 수 있는데 파란색을 못 본다면 어디가 실하고 어디가 허한지 색맹에

대한 연구를 해 보십시오. 유전병인 만큼 치료가 힘들기는 하겠지만 치료에 충분한

이론상의 뒷받침은 있지요. 다만 병의 심도에 비해 치료력이 약하다거나 그 심도에

맞춰 치료를 진행시켰는데, 환자가 강력한 치료력을 극복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환자의 뱃속에 적이 있다고 하니, '그건 대황이나 망초로 쓸어내리면 돼!'라고

했다 합시다. 이론상으론 맞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약을 쓰면 자칫 장기까지 모두

빠져버리고, 심하면 식도와 혓바닥까지 항문으로 나가 버립니다. 물론 죽게 되지요.

'양정칙적자제라'는 말씀과 같이 정기를 서서히 보양하면 적은 스스로 없어진다고

합니다.

  혹자는 "내가 적은 끝내주지!"하고는, 삼릉, 봉출, 천산갑, 조각자 넣고 대황,

망초, 후박, 지실이 든 대승기탕도 배웠으니 넣고, 사암침법도 공부했으니까

수소양삼초경으로 돌리고 퉁기고.... 하면 병은 나을지 몰라도 잘못하면 사람이

죽습니다.

  바둑의 격언처럼(아생연후살야), 나의 실력이나 약물은 강하지 않은데 병의 세력이

강하면 서서히 접근해야 합니다. 중풍으로 쓰러진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서서히 정기산 정도로 치료하다가 결정적일 때 강한 약을 쓰는 것입니다. 약을

강하게만 쓰면 낫는 병인데 강하게 쓰지 못해서 완쾌시키지 못했을 때 수치심,

열등감, 회의, 절망 따위는 느끼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렇게 병을 너무 키워서 온

경우, "적어도 병을 더 심하게 하지는 말라"는 것이 임상가들의 공통된 견해입니다.  

  M선생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병은 낫게 하려고 하지 말고 더하지만 않게 하라!

왜? 더하지 않게 하는 것도 일단은 방향을 잡았기 때문이니까"

  몸이 뚱뚱한 사람이 왔는데 숙지황을 쓰면 안 됩니다. 또 반하, 남성 따위는 강해서

못쓰니 의이인, 목통, 택사, 차전자 정도로써 이뇨만 시켜도 병을 더하게 한것은

아니지요. 이건 오래만 쓰면 낫거든요. 그런데 뚱뚱한 사람에게 그저 외운대로 숙지황

한냥이 들어가는 처방을 썼다면 이것은 병을 악화시킬 뿐입니다.

  축구시합에서도 수비를 잘해서 골을 먹지 않는 것이 승리의 한 방법이 됩니다.

'탐불득승' 욕심을 내면 이길 수가 없는 법입니다. 모쪼록 신중히 환자를 대하고

신중히 약과 침을 쓰세요. 주변 친척들에게 약 지어 주고는 "결과가 어때요?" 하고

물었을 때 "글쎄? 별로 나은 것 같지 않아. 병이 더한 것도 아니고...." 이러면

안심하세요. 그런데, "약 몇 첩이면 끝내줍니다. 혹은 침 한 방이면 끝납니다" 부디

이런 웃기는 이야기는 하지 마세요.

  그렇게 끝내 주려면 약이 강해야 하고, 그에 따른 부작용도 그만큼 강하게 되는

것입니다. 일생동안 후회할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항상 조심스럽게 약과

침을 다루어야 하므로 먼저 음양관이 투철해야 합니다. 다른 어떠한 것도 모두

차선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어려운 것이 이 음양관의 터득입니다.

  저에게 주역을 가르쳐 주셨던 선생님은 음양구분만 공부하는 데에도 10년이

걸린다고 했습니다. 또 "100--150개 정도의 처방을 운용하다가 네 나이 마흔이 넘거든

2가지로 줄여서 써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음양이 전도된 선입견으로 환자를 보게 되면 자칫 무서운 결과가 발생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여러분은 양방병명과 해부학적 지식으로부터 자유로와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가진 해부학적 지식으로서야 어떻게 소장병을 신경으로 고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만물은 상대적이라는 것이 오늘 강의의 핵심입니다. 이 상대성을 믿지 않으면 제

강의는 더 이상 이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위궤양에는 무슨 경락이 좋을까요?

폐결핵은요?"하는 질문에 폐결핵은 대체로 마르고 화기가 있는 사람에게 많이 오므로

수태양소장경이나 족소음신경을 한번 써봐라 하고 충고할 수도 있지만, 거듭

말씀드리거니와 양방병명, 해부학적 지식으로부터 하루 빨리 벗어나세요. 머리속에 든

상식, 중고등학교에서 배운 지식, 해부학적 지식들이 한방치료에 방해가 된다고

호소해 오는 여러분들의 선배들이 참 많다는 것을 유념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실은 새로운 관을 얻기보다 기존의 지식을 지우고 없애는 시간이 훨씬 더 걸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음양을 보는 법에 온 정열을 기울이도록 하세요. 환자를 척보고

먼저 머리가 큰가, 몸통이 큰가, 뚱뚱한가, 말랐는가, 몸이 찬가 더운가, 병이 겉에

있는가 속에 있는가, 이런 것부터 살펴야 합니다.

  근시안 이야길 조금 더 하자면 근시안의 동양의학적 원인은 음실양허로 그 처방은

기를 보충시키는 것이고, 원시안은 반대로 양실음허로 주로 혈을 보충시키는 것이라고

"동의보감"에 근거되어 있다고 했지요. 예를 들어, '보중익기탕'이라는 처방이 기를

보충시키는 것이라면 근시의 처방이라 할 수 있겠고, 육미지황탕은 원시에 쓰게 되어

있습니다. 어둠을 음, 밝음을 양, 달을 음, 해를 양, 물을 음, 불을 양, 욕심을 음,

분노를 양이라고 한다면 근본적 차원에서 볼 때 나는 음, 너는 양이 됩니다.

  앞의 기혈론에서 말씀드렸듯이, 유심적으로 본 팔괘유추에서 나를 위주로 생각하면

혈이 강해지고, 상대방을 위주로 생각하면 기가 강해집니다. 에고 즉 자아의 강화가

음실증인데 타인과의 관계를 긴장으로 몰고 가는 경향이 많습니다. 음실이란, 말

그대로 '나(아)'라는 생각에 싸여 내 가까운 곳만 보는 것이며 멀리 내다 보지 못하는

아집이므로 근시안이지요. 또한 근시안은 자기 에고가 강하므로 저축심이 강하고,

모으고 간직하는 성향이 많고, 나쁜면으로는 너무 욕심이 많다고 할 수 있겠지요.

이와 반대로 원시안은 남을 많이 생각하므로 남의 눈치를 많이 보고, 희생이나

봉사활동을 좋아하는데 나쁜면으로는 공격적인 점을 들 수가 있습니다.

  히프가 큰 사람(남자)은 재무나 창고지기에 잘 맞고, 머리가 큰 남자는 변방의

군인이나 남을 공격하는 토론대회 같은 자리에 내보내면 무슨 일이든 앞장서서 잘

해냅니다. 옛날 어느 성인이 자신에게는 세 가지 덕이 있는데, 첫째는 남을 재미있게

해주는 것이고, 둘째는 검약정신, 셋째는 불감위선 즉, 남앞에 감히 나서지 않는다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나서지 않고 음하게 자꾸 숨어드는 사람은 음모가 많지요. 남앞에

나서고 싶어하는 사람은 괜히 우쭐거리기를 좋아하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그 성격을 잘 관찰하고 잘 이용하면 그 사람과의 대화나 융화를 얼마든지 유도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리하면 '이심치심' 즉, 마음으로써 마음을 치료할 수가 있지요.

옛날, "상한론"을 저술한 장중경은 비장이 약한 환자의 화를 돋우기 위해 갑자기 뺨을

때렸다고 합니다.  환자가 "왜 때려! 의사는 사람을 쳐도 되는거야? 당장

고발하겠어!" 이렇게 화를 내다가 어느새 비장병이 나았다고 합니다. 왜? 이것은

오행의 상극작용 목극토의 원칙으로 감정에 관계되는 병을 감정으로 다스린 한

예입니다. 이렇게 반대방법을 쓰려면 음양을 먼저 알아야 됨은 불문가지입니다.

  치병에는 약 외에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는 정심주이고, 둘째는

족심주, 셋째는 단전주, 넷째는 이심치심법이고, 다섯째가 약성으로 치료하는

것입니다. 이 밖에도 주문에 의한 치료법이 있습니다.

  정심주라는 것은 아주 고차적인 방법인데 깨어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치료를

합니다. 즉 아픈 자리에 마음을 놓고 관하는 방법입니다. 족심주란 발바닥의 용천혈

양쪽을 동시에 관하는 방법입니다. 단전주란 배꼽 밑의 단전부분을 관하는

방법입니다. 주문은 "동의보감"에도 언급되어 있는데, 병이 도무지 낫지 않을 때

주문으로 고치는 방법입니다. 즉 삼세에 있는 의성들에게 치료를 비는 방법입니다.

이심치심법의 최초 원류는 우리나라 탈바가지였습니다. 오늘날의 탈춤문화는 모두

이심전심법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신라시대 어느 공주가 도무지 웃을 줄을 몰랐습니다. 어떤 의사가 동원되어도

치료가 되지 않았는데, 어느날 득도한 스님이 탈을 갖고 와서는 뒤집어 쓰고 춤을

추자 그만 그 공주가 깔깔깔 웃더랍니다. 그 이후로 민중들에게 감정의 해학적인

치료법으로 전해내려온 것이 이심치심법입니다. 이것이 바로 음양치료법이지요.

라즈니쉬 저서 "Journey Toward the Heart"에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한 남자가 의사에게 자기 아내의 불임병을 호소했습니다. 의사가 뚱뚱한 아내의

맥을 짚어보더니, "40일 이내에 당신은 죽을 것입니다"하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그 아내는 겁이 나서 태양지기, 소양지기, 양명지기가 일어났지요.

40일 동안의 긴장 속에서 그만 뚱뚱하던 몸집이 홀쭉하게 빠졌더랍니다. 그런데

40일이 지나도 죽지 않으니까 이 부인이 의사에게 와서 항의를 했습니다. 그러자

의사는 "예 압니다. 이제 부인은 임신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부인의 불임은 살이

너무 쪄서 그랬던 것입니다" 씨를 땅에 뿌렸을 때 그땅에 물이 너무 많으면 싹이

트기는 커녕 땅에서 썩어버리지요. 그러므로 뚱뚱한 여자들이 임신을 쉽게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습하고 냉하니까 씨가 물에 불어서 싹을 낼 수가 없는 것이지요. 한편

바싹 말라서 화기가 많은 사람들도 임신을 잘 못합니다. 가문 땅에 씨를 심었는데

어떻게 자라겠어요? 특히 이런 사람은 유방에 통증이 심합니다. 이렇게 마른 사람은

십전대보탕이나 육미지황탕에 오미자를 넣고, 인삼은 빼고, 생지황, 맥문동, 천문동,

황정도 넣어서 음기를 보충시켜야 합니다. 또한 뚱뚱한 사람이 임신을 못한다 하면

이런 경우는 습을 빼주어야 합니다. 보중익기탕이나 이진탕에 이뇨제 좀 넣고, 너무

냉하지 않을까 염려되면 오수유, 애엽, 익모초를 추가시킵니다. 이게 곧 임신약이

되는 거지요. 외울 필요도 없어요. 음양만 알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의사는

약을 쓰지 않았던 것이지요.

  우리집에 살 좀 빼달라고 오는 여자들이 있는데, 이 때 반하, 남성 같은 것을

넣어주면 목이 건조해지니까 음료수를 연신 마시게 됩니다. 살을 좀 빼주면 물이

그렇게 맛있다나요. 사흘 굶고 난 후 열흘을 왕창 먹는다면 만사 수포로 돌아가고

말지요. 그러니까 이 의사처럼, 아예 죽는다고 엄포를 놓으면 겁이 나서 제대로

음식을 먹을 수가 없지요. 죽음에 대한 공포 이외에 식욕과 음식을 떼어 놓을 수 있는

방편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이러한 이심치심법이란 참 묘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친구를 잘 지도하려면 거만한 사람 혼내주고, 가난한 사람에겐 돈을 좀

주고, 돈이 너무 많은 사람은 포커를 해서 돈을 따버려야 합니다. 또 매일 여자

밝히는 사람은 성병으로 자칫 AIDS로 큰 화를 보게 될 것이라고 겁을 줘야 합니다.

그러면 공포심이 족태양방광경 수태양소장경을 쫘악 지나가게 되고 거기에서

계율정신이 나오게 됩니다. 한편, 그저 "남자는 더러운 존재야!"하면서 남자를 송충이

보듯 하는 여자에겐 가끔 Disco홀에 가서 부비는 즐거움을 일러주어야 합니다. 너무

극단적인 사람은 말년에 가면 음탕해지기 쉽습니다. 너무 냉랭한 이런 여자는

소음군화의 불로 따뜻하게 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이심치심법을 염화약방문의

"안경지옥"에서 '너와 나의 관계'로 얘기를 해 놓은 것입니다.

  이번에는 '이심치심론'에 대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기껏 30전후의 젊은이가

스스로 분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중풍으로 반신불수가 된다(소양열). 남몰래 주색을

밝히던 사업가가 당뇨병에 걸렸다(소음군화에 의함). 반장선고에서 패배한 어린이가

갑자기 밥맛을 읽고 수척해졌다(소양열). 깜짝놀란 임신부가 낙태를 한다. 애인을

잃은 처녀가 불면증에 걸린다. 의심 많은 남편이 정신병원에 입원한다. 욕심많은

할머니가 너무 비대해서 천식으로 고생한다..... 이렇게 수많은 질병의 근본은

인간의 한 생각일 따름입니다. 이것이 경락의 허실을 좌우하는 것입니다. 마음의

다스림을 등한히 하고 질병을 고친다는 것은 도마뱀의 꼬리를 자르는 것과 같아서

다시 돋아나기 마련입니다. 의술 이전에 수심이라고 강조한 옛 명의가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태을진인의 '칠금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말을 적게 하여 내기를 기르고,(소언어 양내기)

  색욕을 조심하여 정기를 기르고,(계색욕 양정기)

  입맛을 담백히 하여 혈기를 기르고,(박자미 양혈기)

  진액을 보존하여 오장의 기운을 기르고,(연정액 양장기)

  분노를 조절하여 간장의 기운을 기르고,(막진노 양간기)

  음식을 조절하여 위장의 기운을 기르고,(미음식 양위기)

  망상을 적게 하여 심기를 기를지니라.(소사려 양심기)


  이 모두가 마음을 경계한 뜻이니 조화있는 중도의 체득은 양생최고의 비결입니다.

그저 약간의 의술을 내세우려 하지 말고 환자에게 이 비법을 얘기해 주어야 합니다.

  가족끼리 불화하여 쌓인 불만과 실망 등으로 정신병이 생겼는데 명의라면 그 불화의

원인을 찾아낼 것입니다. 화엄경에 "일절유심조"라는 말이 있듯이, 천하 모든 질병의

조작을 한 생각이 하는 것임을 깨닫지 못하고서야 어찌 훌륭한 의사라 할 수

있겠습니까?

  분열적인 의식구조는 스스로를 괴롭히고 타인에게도 괴로움을 파급시킵니다. 그런데

분열의 제원인이 '나'의 강조에 있음을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내 나라, 내 종교,

내 고향, 내 가족, 내 물건.... 이렇게 나타내어지는 '나'는 아무리 철저히 가면을

씌우고 미화를 시켜도 결국 나의 확대일 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천(두)과 지(신),

음과 양의 유심적 관찰을 중요시하는데, 양실음허인 원시안은 나보다는 타인을,

금생보다는 내생을, 이승보다는 천당이나 극락을 생각하기 때문에 현장을 못 보지요.

음실양허인 찰나주의 즉, 근시안적 문화는 가까이는 잘 보지만 멀리 보질 못하지요.

그저 오늘만을 생각합니다. 산아제한 표어를 보세요. 지난날엔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였는데, 지금은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 그렇다면

90년대 쯤엔 '무자식이 상팔자'로 되겠지요. 자식이 없으니 신경쓰지 않아 좋고,

마누라가 없으니 바가지 긁히지 않아서 좋은 독신주의자에겐 정부에서 원호금을 주게

될지도 모르지요.

  이러한 음실양허의 가정교육을 보면, "네가 공부 잘해야 동생이 본받을 것 아니냐!"

혹은 "이 엄마 아빠를 좀 닮아라!"하며 Ego의 교육을 시킵니다. 참으로 조잡하고

위태롭지요. 약 10년전, 일본은 수출 실적이 좋아서 달러 보유액이 10억달러에서

70억으로 늘었습니다. 이것을 본 유태인들이 평가절상과 평가절하를 이용한

달러장사를 했습니다. 일본의 재무담당자들은 국고에 달러가 많이 쌓임을 좋아하다가

큰 손해를 보고 말았지요. 엔화가 평가절상되고 달러값이 내려가게 되었을 때 그

차액을 유태인들이 차지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래만 생각하다가 현재를 보지

못하는 경우나, 현재에만 집착해서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는 경우는 모두 어리석은

바보입니다. 음과 양, 천과 지, 나와 너의 비중을 항상 평등하게 한다 함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나'라는 탈을 쓰고 나면 반드시 '남'이라는 상대적인 경우가

동반됩니다. 나와 남이라는 관계의 사고방식은 아무리 타협하고 조정을 해도

불평등하기 마련입니다. 인류의 건강에 무엇보다도 중요한 충고는 자아의식으로부터의

탈출입니다. 진리를 깨달음이 곧 자유이지 나의 행복을 추구함이 자유가 아닌

것입니다. 나의 행복을 추구하다 보면 필히 타인의 경계와 부딪치게 되므로 충돌이

불가피해집니다. 행복을 추구하는 그 사실이 전쟁을 조장하고 야기함은 실로

아이러니컬한 얘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추구함이 없이 쉬다가 문득 무아의 진리를

깨닫게 될 때 우리들은 비로소 온갖 망상에서 비롯된 일체의 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이심치심법이지요.

  망진이란 형상을 보는 것인데, 양방병원에서 위궤양이라 하든 폐결핵이라 하든 

먼저 형상을 보고 색깔을 봐야 합니다. 이것은 원시적인 치료법으로 여겨질지 모르나

기초적으로 반드시 익혀야 되는 과정입니다. 이번에는 입술로써 임맥(음)과

독맥(양)의 특성을 얘기하기로 합니다. 음과 양을 보았으면 이제 임맥과 독맥을

보아야 합니다.

몸의 이상이 맥에 나타나듯 입술에도 나타납니다. 이때 임맥과 독맥의 차이를 잘

살펴보면 관상학에 입술이 길흉의 판단 기준이 되듯, 한의학에서도 진단상 입술의 후,

박, 색, 광택, 대소 등을 보게 됩니다. 아랫 입술이 별나게 두껍고 윗 입술이 얇은가,

이와 반대인가, 양 입술이 모두 두터운가, 혹은 얇은가, 입술이 긴가, 짧은가 등을

봅니다. 그리하여, 독맥쪽이 발달되어 있으면 양적인 사람, 임맥쪽이 발달되어 있으면

음적인 사람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매부리코에 윗 입술이 발달된 여자는 절대

임신이 불가능합니다. 코와 귀는 양이고, 눈과 입은 음입니다. 그러므로 코가 크고

뾰족하고, 윗 입술이 발달되어 있는 여자들은 임신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한편,

남자의 코가 돼지코에다 아랫입술이 발달되어 있는 경우는 아주 탐욕스럽고 양기가

부족하여 어떤 일을 추진력있게 해 내질 못합니다.

  어린아이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옆에서 볼 때 윗 입술이 툭 튀어나온 아이를

두고, "이 아이는 질문이 무척 많겠군요. 성격이 까다롭고, 공연히 이것 저것 간섭도

잘 할 겁니다. 또 고집이 있으므로 창조성이 뛰어나지요?" 이렇게 추리를 해서 몇

마디 들려 주면, 환자들이 "어떻게 아시느냐"고 놀랍니다. 친구나 동업자를 사귈 때

목 구 비가 정연한 사람을 사귀세요. 자신이 매부리코에 윗 입술이 두텁다면, 코가 좀

작고 입술이 얇은 배우자를 구하세요. 그러나 이와 반대의 남녀가 만나게 되면 남자가

음적, 여자가 양적이 되어, 남자는 그저 소극적으로 집안에서 잠이나 자고 직업을 못

구하는데, 여자는 밖에 나가서 활동을 하려 하므로 음양의 조화가 맞을 법도 하나

불행해지기 쉽지요. 사귀는 여자가 있는 사람은 오늘 당장 가서 입술을 한번 보세요.

아랫입술에 비해 윗 입술이 발달되어 있으면 성격이 양적임을 이내 확인할 수

있겠지요. 그런 사람에겐 자꾸 '잘한다, 잘한다!'하고 칭찬을 해줘야지 조금만

잘못했다고 하면 이내 눈에 눈물이 핑 돌면서 마음이 곤두서고 떠나갈 준비를 하게

됩니다.

  이와 반대로 아랫 입술이 두툼하게 잘 발달된 여자는 매사 믿기를 잘하고

어리석으므로 자주 지적을 해준다거나 깜짝 깜짝 깨있게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왕이면 양 입술이 잘 조화된 여자, 남자를 만나면 좋겠지요. 그러나 그게 그렇게

용이하도록 되어 있지 않은 것이 운명이지요. 서로 맞추고 양념을 조금 치고 해서

살려고 해야지, 상대의 성질을 고치려 하면 선천적으로 타고 나온 성질이라 쉽게

고쳐지지 않습니다. 임맥과 독맥 하나만 가지고도 이렇게 많은 것을 추리해낼 수 있고

엄청나게 많은 병변도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도학공부나 심리적인 정황을 다 이해하여도 병이 잘 고쳐지지 않을

경우가 많지요. 그것은 우리네 마음이 추해 있고, 습관에 젖어 있기 때문입니다. 한

취객이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택시를 타더니 "정부종합청사로 갑시다" 했어요. 막

차를 출발시키던 택시기사가 "여기가 정부종합청사 앞이요"하며 도로 차를 세우니, 그

취객이 말하기를 "야! 다음부턴 택시 너무 빨리 몰지마" 하더라더군요. 우린 이렇게

취해 있습니다. 자기가 취한 것은 모르고 남만 취했다고 생각을 합니다.

  제 친구 하나는 하도 두루두루 아는게 많아서 '문 두루'라고 불리는데, 두루 아는

게 많은 이러한 사람이 착각에 빠지기 쉽고 창조성이 부족하지요. 이 친구가 하루는

술이

취해서 옆집 대문을 자기집인 줄 알고 쾅쾅 두드렸어요. 그러자 옆집 주인이 나와서

"여긴 우리집이니 당신집인 이 옆집으로 가세요"라고 일러 주었지요. 그러자 대취한

문두루 왈. "야! 니가 우리집에 잘못 들어와 있는지 어떻게 알어? 임마!" 우리는 항상

이렇게 망상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미 몸에 밴 취기와 망상을 깨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과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죽이고 늘 앞서가는 사람과

친하세요. 그래서 자기보다 나은 점을 배우세요. 국민하교 6학년이 국민학교 1, 2학년

꼬마들이나 데리고 놀고 큰소리치다가, 자기보다 몸집이 큰 5학년짜리만 만나도 슬슬

꽁무니빼는 아이들, 이런 애들은 나이를 먹어도 마찬가집니다. 이렇게 무더운 여름날

여기까지 와서 배우려고 하는 그 마음 자체가 바로 도심입니다.

  개하고 포커를 즐기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나 하고 한사람이 구경을 가서

보니, 아니? 개가 배팅도 할 줄 알고 투페어면 죽을 줄도 알고 아주 포커에

훤하거든요. 그런데 한번도 개가 돈을 따지를 못해서 이를 궁금히 여긴 구경꾼이 그

개주인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당신은 이렇게 영리한 개와 포커를 하는데 어찌 한

번도 지지 않소?" 하니까. "걱정마시오 이 개는 좋은 패가 들어오면 꼬리를 흔드오"

이와

같이 매일 자기에게 지는 상대하고만 게임을 하는 사람은 Egoist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 Ego를 죽일 생각이 전혀 없는 위험한 사람입니다.

  나이도 얼마 되지 않으면서 후배들 모아 놓고 강좌하는 버릇 가진 사람, 특히

저같은 사람을 조심해야 합니다. 왜? 단상에 올라서서 내려다 보고 얘기하는 이 기분.

삼삼하거든요. 이것도 일종의 명예욕, 권력욕 같은 것입니다. 대학교수, 선생....이런

사람들도 일종의 권위주의자라 할 수 있지요. 단상에서 강의해 본 사람은 단상을

뿌리치고 내려오지 못합니다. 아뭏든 스승이나 선배없이 그저 못난 사람들 데리고

가르칠 때 자기 자신의 Ego를 누가 지적하고, 누가 죽여주겠습니까?

  임맥과 독맥의 판별만으로 모든 병을 다 알아맞춘다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아무리 눈매가 찢어지고 코가 돼지코라 하더라도 임맥이 발달되어 독맥을 이기고 있으

웃는 모습이 됩니다. 한편, 눈이 웃는 모습이고 그리고 코가 잘 생겼다고 하더라도

임맥보다 독맥이 발달되어 있으면 미운 얼굴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입이 가장 결정

적인

기준이 됩니다. 입술은 천과 지가 만나서 기를 교차시키는 곳이지요. 여러분, 어떤

가수가 노래할 때 보면 입술이 자주 옆으로 돌아가지요. 이렇게 입술이 실룩실룩하는

사람들은 좌우의 병변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입술의 상 하는 양과 음,

부정과 긍정을 나타내고, 중간을 기준으로 좌우로 나누면 '나' 중심이냐 '너'

중심이냐 등을 알 수 있습니다. "왼쪽에 병이 오면 혈허하므로 사물탕을 쓰고, 오른쪽

병이 오면 기허이므로 사군자탕을 써라"고 하는 것도 어떤 생각의 기운이 그렇게 흘러

들어가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몸을 상, 하, 좌, 우 즉 전체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몸통과 머리만 보지 말고 입술 모양도 보고 눈꼬리도 보고 전후도 살피며

전체적으로 관찰해야 합니다. 가령, 왼쪽이 특별히 발달되어 있다고 한다면 "아하!

저 사람은 어떻겠구나"하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겠지요. 눈이나 여자들 유방을 자세히

보면 대부분 좌우 대칭이 되지 않습니다. 또 그렇게 좌우 짝이 안 맞는 것이

정상이지요. 대체적으로 좌측은 형상적으로 실하지만 기가 없고, 우측은 기운은

있는데 형상적으로 좀 부족한 법이지요. 이러한 좌우의 개념을 여러분은 절대로 잊어

서는

안됩니다.

  지금까지 상 하 좌 우에 대해서 알아보았는데 이젠 전후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지요. 수족관에 있는 물고기의 이름을 모를지라도 몸색깔, 입모양, 지느러미,

전체의 균형....등을 가만히 살펴보면 이내 그 물고기의 성격을 판별할 수 있지요. 여

러분

복어를 먹으면 사람의 몸이 차가와질까요, 더워질까요? 차게 되겠지요. 그것은 머리와

몸통의 비율이 음적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말하자면 이 음독을 약으로 쓰는

것이지요. 음양이 고루 들어있는 쌀은 약으로 사용치 않으나 음양 중 어느 한 편에

치우친 복어는 술국으로 씁니다. 그렇지만 옛날 사람들이 이 복어를 먹어보고 어디에,

어느 병에 좋으니 먹으라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생긴 모습을 척 보고 '어디에

좋겠구나'하고 느낀 것이지요. 그런데 이 복어를 뚱뚱하고 몸이 냉한 사람이 정력

좋아지라고 먹는다면, 그 부인은 머지 않아 입을 한 자나 빼어 물고 친정으로

돌아가버릴 것입니다. 음에 음독을 보탰으니까요.

  바로 이러한 안목이 한방입니다. 또 복어요리에 설탕을 넣겠습니까? 고춧가루를

넣겠습니까? 당연히 고춧가루가 들어가야 음독이 발산되겠지요. 우주가 워낙

변화무쌍하므로 다 그렇다고 할 수는 없으나 대체적으로 머리에 비해 몸집이 크면

아랫입술이 발달되고, 머리쪽이 더 크면 윗 입술이 발달된다고 지난 시간에도 말씀을

드렸듯이 몇 가지 원리만 찾으면 사물을 보는 지혜가 생기게 되지요. 진리는 복잡한

것 같지만 의외로 간단합니다. 그리고 진리를 알고 나면 마음이 담담해져서 모든 걸

관조하는 상태로 공부를 할 수 있게 됩니다. 그 다음엔 더욱 마음이 우아해지고

정숙해지지요.

  전후 차원에서 보면, 배쪽이 발달된 사람과 등쪽이 발달된 사람으로 구분되는데

이것으로 동과 정을 알 수가 있습니다. 자동차 운전을 시켰을 때 전자의 사람은

과속으로 전진만 하려할 뿐 좀체 브레이크를 사용치 않고, 후자의 사람은 느림보

운전에 저 먼 앞쪽에 가로수 그림자만 비쳐도 얼른 브레이크에 발이 올라 갑니다.

그러면 잠시 오행을 자동차에 비유해서 고찰해 보겠습니다. 목은 자동차의 시동에

해당합니다. 아무리 좋은 차라고 하더라도 시동이 안 걸리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지요. 어떤 일이든 시작할 때는 결단성이 있어야 합니다. 확실히 깨닫지 못해

주저하는 갈등은 일단 실패를 각오한 시작으로 극복하세요. 그 실패가 의외로

깨달음을 이끌어 올지도 모르니까요. 화는 속도 즉, 추진력에 해당합니다. 시동을

걸어 놓고 악셀레이터를 밟을 줄 모르면 안되겠지요. 그리고 속도를 낼 때는

초고속으로 달릴 줄도 알아야 합니다. 또한 토는 운전능력에 해당합니다. 운전을 할

때 오직 전진만 할 수는 없지요. 전 후 좌 우로 필요에 따라 조절할 줄 알아야겠지요.

  오운육기상 중앙토가 부족한 사람은 변화를 조절할 줄 아는 능력이 없습니다.

  사람이 오뚜기처럼 생겼다면 움직일 수 있겠습니까? 팔과 다리로 움직여 운전을

하므로 '비(토)주사지'라고 하는 것이죠. 이것은 중앙토의 성격을 먼저 연구한 다음

비장이 중앙토에 해당하니까 '비주사지'라고 한 것이지 비장이 사지를 주관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사지의 역할이 중앙토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새의

중앙토는 날개와 다리가 될 것이고, 물고기의 중앙토는 지느러미가 운전능력으로서

그에 해당하겠지요. 이렇게 오운육기는 풍부한 상상력으로 확대해석과 유추해석을 잘

해야 합니다.

  금은 브레이크에 해당합니다.

  시속 1000km를 달리는 차라도 브레이크가 없으면 그 차는 쓸모가 없습니다.

브레이크가 없는 차를 타는 어리석은 사람은 없지요. 추진, 전진만을 강조하는

세상이다 보니 브레이크의 중요성을 망각하기 쉽습니다. 바로 태양한수라든가

양명조금이 여러분의 브레이크입니다. 정지해야 할 때 정지하지 못하면 그 인생은

파탄이 나고 맙니다. 적당한 브레이크! 이것은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쇠를 연금할

때 알맞게 달구고 알맞게 찬물에 담궈야 강철이 되지 계속해서 불에 달구기만 하면

나중에는 형체도 없이 녹아버립니다. 이러한 브레이크는 인간의 계율정신에

해당합니다.

  수는 기름에 해당합니다.

  아무리 시동이 잘 걸리고, 고속 주행이 가능하고, 탁월한 운전사가 있고 브레이크가

좋다 하더라도 기름이 없으면 또한 아무 쓸모가 없지요. 남자가 정을 조절 못하면,

마치 첩첩산중에서 몰고 가던 차의 기름이 고갈된 경우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정신적인 끈기가 있어야 합니다. 이 끈기란 추진력과는 다르지요. 이것은 어떠한 일을

해 나감에 있어서 견디어내는 정력을 말합니다.

  요즈음의 세태를 보면 지렁이, 개구리, 달팽이, 불개미, 굼벵이 등등 별의 별것을

다 정력제라고 찾아다니며 먹고 있습니다. 젊었을 때 자위를 과하게 한 사람, 주색을

밝힌 사람들은 일찍 머리칼이 쉬고, 허덕허덕해집니다. 정력이 없으니 매사에 하고

싶은 것이 없습니다. 의욕없는 폐물이 되고 맙니다. 기름이 없으면 불이 꺼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이 있고나서 신이 있는 것입니다.

  오행상으로 목은 간장에, 화는 심장에, 토는 비장에, 금은 폐장에, 수는 신장에

해당한다고 하는데 저는 이러한 유물적인 취상은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매일 품고, 쓰고 있는 마음과 연결하기를 좋아합니다. 이번엔

"오지칠정론"으로 오장을 살펴봅시다.

  "간주혼, 심주신, 비주사의, 폐주백, 신주지"의 오지칠정은 전과 후를 관찰하기

위해서 반드시 여러분의 사고속에 넣어놓아야 하는 것이므로 잘 기억하셔야 합니다.

굉장히 중요합니다.

  여러분 학교에서 '혼은 수신왕래자'라고 배웠지요. 즉 신을 따라서 왔다 갔다 하는

것을 혼이라 하고 '신은 양정상박자'라고 합니다.

  백은 '병정이출입자', 의는 '심유소억자', 지는 '의지소존자'입니다. 이것은

상하좌우전후출입을 설명하는 기초이므로 꼭 암기해 주십시오.

  의는 뜻을 마음속에 기억하고 있는바 '심유소억자'를 말하는 것으로 국민학교

동창생 영숙이가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애 어느날 영숙이와의 결혼에 뜻을 둘 수

있는 것입니다. 아는 것이 있음으로써 뜻을 가지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욕심내고

하는 것입니다.

  지는 '의지소존자'라. 뜻이 오래 보존되고 굳어서 의지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뜻을

굳게 가지는 것, 이것이 바로 기름탱크에 기름을 저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혼은 신을 따라 왔다갔다 하는 것이라 하는데, "야! 신난다"할 때 신명이 나는

모양을 잘 관찰해 보십시오. 신은 '양정이상박자'로 음정과 양정이 서로 부딛쳐

일어나는 스파크와도 같은 것입니다. 여기서의 신이란 음양이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또 "음양을 측정할 수 없는 것을 신이라고 한다"라는 신에 대한 본체론도

아니며, 기분이나 감정의 분화된 상태에서 신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무당이 섬기는 신은 우주의 근본인 본체론적인 신이 아니고 일시적으로

일어나는 분상에 대한 '신명남'일 뿐이지요. 신들린 사람들의 눈을 보면 정신이 번쩍

들도록 겁이 납니다. 무당들이 "산신령이 내려 온다아...."고 하는 이 신내림,

신내림이란 수소음심경의 어떤 굉장히 개발된 에너지를 전수받는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것은 그저 갈고 닦아서 이루는 일종의 훈련과도 같은 것입니다.

"어디서건 바른 깨달음을 흐리게 하는 사람을 만나거든 그가 누구이든간에 빨리

그에게서 떠나라.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나한을 만나면 나한을 죽이고, 그가 부모일지라도 죽이고, 친족권속이라해도 죽여라.

그래야만 비로소 최상의 자유인 해탈에 이를 수 있다. 그 때 그대는 아무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완전히 자유로운 인간이 될 것이다" 임제의현선사의 말입니다. 이렇게

도에 이르는 길은 훈련과 통제를 벗어난 자연스러운 모습이어야 합니다.

  마치 도가 숱한 훈련 속에서 성장하는 줄 알지만 결과는 이와 반대로 구령에 따라

반사적으로 행동하는 기계가 되어버립니다. 진실한 전술을 가르쳤던 손자나 오자,

"육도삼약"을 쓴 강태공같은 사람들의 병법은 훈련과 통제에 의한 것이 아니고 투쟁에

의한 것도 아니며, 인정으로써의 응집과, 무아의 정신, 또는 조국을 위해 나를 버릴

수 있는 정신의 유발이었던 것입니다. 훈련과 통제의 목표는 어쩌면 하루에 달성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조국수호의 충정 없이, 깨어 있지 못한 상태에서 그저

훈련만 받은 병사들은 오합지졸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한 대령의 부인이 불면증으로 정신과 의사를 찾아왔습니다. "제 남편은 왼쪽으로만

누우면 코를 골아요. 아무리 바로 눕혀도 이내 왼쪽으로 돌아눕고, 그러면 또 코를

곱니다. 치료가 가능하겠는지요"

  의사가 대답하기를 "남편 직업이 현역군인이라면 치료가 아주 쉽습니다. 앞으로는

왼쪽으로 눕기만 하면, 큰소리로 '우향 우!'하고 구령을 붙이십시오" 집으로 돌아온

부인은 코를 골며 잠자는 남편의 귀에다 대고 "우향 우!"하고 외치니 눈깜짝할 사이에

정면으로 반듯이 누워 조용히 잘 자더랍니다.

  이만큼 무의식 중에 우리의 머리속엔 통제와 훈련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것은 도로

들어가는 방해물입니다. 도인은 연약합니다. 예수님을 보세요. 누가 와서 향기를

맡아주지 않아도 저혼자 조용히 피었다가 지는 산속의 꽃처럼 그냥 죽어 주잖아요.

  무당의 신내림이 어느 한 경락만을 훈련시켜서 강인하게 하는 것임과 마찬가지로

무술같은 것을 잘해서 도사라 일컬음을 받는 것도 훈련을 통해서 강인함을 기른 것일

뿐, 그것이 도가 되지 못합니다.

  이상을 요약해 보면 아래와 같은 표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간--혼 :수신왕래자

  심--신 :양정이상박자

  비--사, 의 :심유소억자

  폐--백 :병정이출입자

  신--지 :의지소존자 

  다시 '전후'로 돌아가 봅시다.

  전은 동, 후는 정, 전은 전진, 후는 후퇴라고 했습니다.

  눈이 앞에 달려 있기 때문에 뒷걸음질이 쉽지 않습니다. 만약 눈이 뒤에도 달렸다면

뒷걸음질에도 우린 무척 익숙하게 될 것입니다. 머리 뒷편에는 눈이 없으므로 뒤로는

쉬겠다 후퇴하겠다는 뜻을 두는 겁니다.

  앞쪽이 발달된 경우와 뒷쪽이 발달된 경우에 대한 관찰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배와 복을 음양으로 구분지을 때 배가 양, 복은 음이 된다고 할 수 있는데 전이

음이고, 후가 양이 된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음양은 무조건

암기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손자병법의 맨 마지막 병법인 36계도 그 후퇴의 정도가

빠르면 양이 되고, 전진이라도 그 정도가 느리면 음이라 할 수 있으므로 단지

전후만을 두고 음이다 양이다 단정하면 안되겠습니다.

  한 두루마리의 옷감을 3등분하여 수건을 하나 만들고, 비치가운을 하나 만들고,

나머지 삼등분으로는 외출용 투피스를 만들었다고 합시다. 똑같은 옷감이라도, 물을

닦기 위한 수건의 용도라면 양명조금에 해당되고, 강한 햇빛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비치가운의 용도라면 태양에 해당되고, 멋을 추구하는 패션차원의 투피스라면 소음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음양을 공식화시키지 말고 깊이 관찰을 해야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출입'에 대해서 얘기해 보기로 합시다. 출입은 병을 봄에 있어서

상하좌우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가까운 예로, 윗사람으로부터 꾸중을 듣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입이 이만큼 나오지요. 기분이 좋고 만족스러울 때 입이 튀어나옵니까?

그렇지 않지요. 문어같이 주둥이가 툭 튀어나온 동물이 있다면 이것은 기본적으로

성질이 아주 고약한 놈입니다. 아뭏든 환자가 왔는데 상하, 좌우, 전후에 문제가

없다면 출입을 생각해야 합니다.

  '뿔따구가 났다'는 말의 뜻은 화가 났다는 것이고, 상징은 성질 고약한 도깨비쯤이

되지요. 동물 가운데 뿔이 난 것은 이러한 뿔따구의 속성을 갖고 있으므로 함부로

건드리면 안됩니다. 그렇다면 바다에 사는 성게도 예외가 아님을 아시겠습니까? 척

보면 알 수 있어야지요.

  대합조개나 전복을 보면, 마치 여성의 성기와 같이 입하는 느낌이며, 부드럽고

수용하는 태세가 되어 있습니다. 여성의 성기도 들어가게 되어 있으므로 자궁입구라고

하지, 출구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여성에게 음기가 있어서 빨아들이는 기운이

강합니다. 남성의 경우는 이와 반대입니다.

  서양에서는 입구(Entrance)와 출구(Exit)가 분리되어 있지만, 동양에서는 출입구라

하여 전체적인 용도로 사용합니다. 서양은 분리를 동양은 전체를 추구합니다. 집

구조도 서양에서는 침실, 거실, 주방....등으로 분리가 되어 있는데 비해, 우리나라가

서양의 구조를 모방하기 전까지는, 방하나가 침실, 거실, 주방, 애들 놀이터,

도박장....등의 종합적인 기능을 해왔습니다. 우리나라의 이러한 불분리성을

이규태(조선일보 논설위원)씨가 피력했으며, 김용옥씨는 "여자란 무엇인가?"란

저서에서 남성우월론의 대두와 남성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의 편협성을

지적했습니다. 지구위의 반은 남자, 반은 여자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러한

상대성과 평등성을 관하자는 것으로 그러면 갈등은 없어집니다.

  여러분들은 발산되는 쪽과 들어가는 쪽을 잘 알아야 합니다. 입으로 음식은

들어가고 말은 나옵니다. 항문을 그저 변을 내보내는 것으로만 생각지 마세요.

내보내는 이상의 빨아들이는 힘이 있습니다. 그 힘이 없으면 죽은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죽은 사람은 항문의 괄약근이 열려 있기 때문입니다. 항문 근처의 음혈은

모든 기운을 빨아들이는 혈입니다. 활을 쏠 때 정신통일을 위하여 "항문에 대추씨를

하나 넣은 것처럼 하고 힘을 주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그곳으로 보이지 않는 기운이

엄청나게 많이 흡수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장 여러분들도 한번 해 보세요. 나가는 곳에도 반드시 들어오는 기운이

있습니다. 이러한 원리는 명상을 깊이 이해하면 알 수가 있습니다. 이마 한가운데

인당혈이 있는데 이것을 인도말로는 아즈나차크라라고 합니다. 이곳에서도 호흡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즉 기가 들어왔다 나갔다 한다는 것입니다.

  옛날 도인들은 인당혈의 기운이 다하면 죽을 때가 가까와왔음을 느꼈다 합니다.

아즈나차크라수행정도는 여러분들이 조금만 연구하면 얼마든지 얻을 수 있습니다.

모진 마음으로 호흡을 길게 끊어본다거나 극단적으로 수행을 하면 아즈나차크라로

끈끈한 것이 모이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눈에도 출입이 있습니다. 눈이 빤짝이고 호수와도 같이 맑은 눈은 사람을

빨아들이는 힘이 있지만 부광 즉, 눈이 부하게 떠서 벌건 사람은 조만간 죽을

상입니다. 코도 마찬가지지요. 만물은 너무 나오거나 너무 들어가게 되면 문제를 안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관찰하는데 가장 용이한 것은 호기와 흡기로 호기는 양, 흡기는 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저는 단전호흡을 하고 나서 양기가 좋아지기는 커녕

더 떨어졌어요" "저는  ^456 356 356 123^무술을 배웠는데 자꾸  내쉬는 숨을 많이 쉬

라고

해서 힘은 좀 생겼는데 몸에 통증이 생겨 죽을 지경입니다"하고 하소연을 합니다. 사

람에

있어서, 날숨과 들숨의 조화는 인생의 모든 조화를 지배합니다. 여러분들 화가 났을

때 어떻게 숨을 쉽니까? 날숨을 씩씩거리며 세차게 내쉬지요. 기분이 좋을 때는

자신도 모르게 숨을 깊이 들이마십니다.

  죽음에는 두 가지가 있지요. 사와 성적인 오르가즘. 이 두 경우에 다다름에 있어서

공히 호흡이 가빠지고 정신이 풀리게 됩니다. 형태는 달라도 죽음이라는 명제 하에서

죽음에 이르는 현상은 거의 같습니다. 그러니까 호흡안에 어떠한 감정의 표현이 아주

예민하게 반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을 목매달아 죽일 때 정액이나 음액이 나온다고 합니다. 죽는 순간에 어떠한

오르가즘을 느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감정이 호흡에 반영됨은, 죽음의 공포로부터

구사일생했을 때, "휴우....이젠 살았구나!"하고 내쉬는 숨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뚱뚱한 사람은 호기를 강하게 하고, 마른 사람은 흡기를 호기보다 강하게 해야 합니

다.

왜냐하면 들숨이 음이라면 양인에게 권해야 되고, 날숨이 양이라면 음인에게 권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환자에게, "억지로라도 기분 좋은 생각을 해 보세요"라든가 "배꼽에 이르도록 깊이

숨을 들이마셔 보십시오"라고 하면 이내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다고 합니다. 뚱뚱한

사람이 단전호흡을 많이 하면 기분이 굉장히 우울해지면서 가슴이 답답해지고 잠이

자꾸 오게 됩니다. 뚱뚱한 사람에겐 호기보다 흡기를 치중하도록 권해야 합니다.

그러면 마음이 편해지고 기분이 좋아집니다. 이렇게 간단한 것을 모르고 어리석은

치료를 합니다.

  길을 가던 목사가 지나가는 꼬마에게 길을 물었습니다. "얘야! ^456 356 356 123^교

가는 길이 어디니?" 그러자 그 꼬마는 친절하게 일러 주었습니다. "그래 참 고맙다.

착하구나. 네게 신의 왕국으로 가는 길을  가르쳐 줌으로써 너의 고마움에 대신하려

하는데

나와 같이 교회에 가겠니"하자, 그 꼬마 배꼽을 쥐고 웃으며 "교회가는 길도 모르는

주제에

어떻게 신에게 이르는 길을 가르쳐 주실 수 있어요"라고 했습니다. 세상사람들은 이

꼬마와 같이 교활하고 어리석습니다. 교회에 신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에게로

가는 길은 아무데고 있습니다. 교회는 상징입니다. 여러분들이 그까짓 상징으로 가는

길 몇 가지를 안다고 해서 신으로 가는 길을 아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에이! 자기 마누라 하나 간수 못하는 주제에....'

그렇다면 소크라테스는 어찌하여 오늘날까지 숭앙을 받고 있습니까? 신으로 가는 길은

몇 가지의 지식에 있는 것이 아니지요. 참으로 신에 이르는 길은 형상이나 현상, 혹은

몇 가지의 지식 속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이 꼬마와 같은 사람이 되면

안됩니다.

  이상의 호흡관이 시시한 것같이 보일지 모르나 아무에게서나 쉬 들을 수 있는

관법이 아님을 아셔야 됩니다.

  의식적으로 호흡을 짓는 상태가 아닌 자연스런 상태에서의 호흡을 무심코 관찰해

보세요. 호기와 흡기 중 어느 것이 강한가를 알 수 있으며 호흡이 감정과 밀착되어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옛날에 애인과 맨처음 손을 잡았던 기억을 떠올리면 자신도

모르게 호흡이 긴장되고 빨라짐을 느낄 수 있고, 악몽같은 기억을 떠올리면 이내 숨이

탁 막힘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호흡과 감정은 서로 분리시킬 수 없는 관계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잘 개발하면 어떤 사물이나 감정에 매이지 않는 관점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지금까지 상, 하, 좌, 우, 전, 후, 출, 입을 간략하게 살펴보았습니다. 이것은

형상을 전체적으로 보는 것입니다. 환자가 오면 이것을 보고 제 나름대로 추측을

해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가지고 여러분들 스스로 더욱 관찰하는 법을 익혀

나가도록 하세요.

  환자를 보는데 있어서, 우선 전체를 봐야 되고 그리고 나서는 하나 하나 뜯어 봐야

합니다. 태극, 그자체는 음도 없고 양도 없습니다. 우선 관형찰색의 기본인 관상은 눈

코 귀 입(이목구비)의 사상에 있습니다.

  절대적인 학설은 아니지만, 사상은 불변 또는 변하기 어려운 것임에 비해 육경 속에

있는 감정은 쉽게 변합니다. 그래서 사상(이목구비)은 변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선천적입니다.

  예를 들면 눈은 단춧구멍만큼이나 작은데 코가 크다거나 눈은 왕방울만한데

돼지코라든가 입은 조그마한데 귀가 당나귀 귀만하다고 할 때 우리가 그것으로부터

받는 인상이 있습니다. 이쯤에서 12지의 동물을 본다면 이야기가 참 쉽게 풀리겠지요.

토끼는 귀가 아주 큰데 입이 작고, 쥐는 오밀조밀하고, 뱀은 입이 큰데 반해 귀는

겉으로 아예 드러나지도 않고, 말은 눈이 크고.... 원숭이는 눈이 큰 반면 코가

납작하다든가.... 그러니까 그 동물의 형상을 보면 그 동물들의 성격, 특성을 알 수가

있습니다.

  선천적으로 결정이 되는 사상은 깊이 연구해 볼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같은

인간이라도 서양인, 그 중에서도 흑인을 보십시오.

  그 사람들은 이목구비가 다 같아 그 사람이 그 사람같이 보입니다. 물고기를

보세요. 동종의 물고기는 다 같아 보입니다. 여자도 많고 남자도 많은데 유독 한

여자를 여러 명의 남자가 따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가 동물을 볼 때는 다 같아 보이는데 자기네들끼리 볼 때는 뭔가 틀린

것이 있는 모양입니다. 깊이 연구를 하면 동물의 세계까지도 능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선은 대소와 후박만 보아도, 예를 들면 눈이 작고 매부리코라면 고약한

성격의 소유자이고 눈이 크고 서글서글한데 눈물까지 그렁그렁하면 어떠하다고 짐작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곧잘 눈물을 글썽거리고, 무언가 그리워하는 듯 망연한 눈빛에다 툭 건드리기만

하면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릴 듯한 여자에겐 조심하십시오. 천하의 색부요,

요부입니다. 이와 같은 여성의 마음이 한번 뒤집어지면 시기, 질투, 음모가

대단합니다. 그러나 이 여자의 코가 크다면 길상이고 한편 이 여자의 콧대가 얇다면

복부인 타입입니다. 남자, 돈, 권력....등 다 먹어치우는 무서운 여자입니다. 이렇게

관상학과도 연관이 있는 사상은 매우 중요하므로 나중에 별도로 사상의학장에서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형을 볼 때는, 전체적으로 보는 법, 음 양, 상 하, 좌 우, 전 후, 출 입을 관찰하는

법, 또 관상학적으로 눈 코 귀 입을 관찰하는 법, 근골보는 법, 육을 보는 법, 손톱

발톱이 연하냐 단단하냐, 발바닥이 크냐 작으냐 등을 관찰해야 합니다.

  이번엔 망진 때의 색을 살펴보기로 합시다. 색깔에 주로 청색이나 녹색이 많으면

궐음경이 많이 발달했고 홍색, 적색 쪽이면 소음경이나 소양경, 흑색을 많이 띠면

태양경, 황색이면 태음경, 면백하면 양명경쪽이 많이 발달했군 하고 짐작을 할 수가

있습니다. 분장술에 보면, 살기 등등한 사람의 얼굴을 희게하고, 착한 사람의 얼굴은

대체로 붉은 듯하게 합니다. 색의 광택이 있으면 실, 없으면 허하다고 봅니다.

  "선생님! 저 애는 입술이 붉으니 수소음심경이나 족소음신경이 실한 것같은데요, 저

친구는 눈자위가 희니 양명조금지기가 많은가 봅니다" 이것은 잘못된 짐작입니다.

입술이야 당연히 빨개야 되고, 눈자위야 하얗고 투명한 것이 정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각 기관의 정상적인 색에 다른 색이 개입될 때 우린 그것을 보고 어느

경락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는지 추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본초강목"에도 보면,

식물의 씨가 붉은 것은 심경락이나 신경락 즉 소음경락으로 들어간다고 되어

있습니다.

  어떤 색깔이 형성되기까지에는 원인이 있습니다. 그런데 '색은 빨간데 맛이

시다'라면 원인규명이 난해해 질 것입니다. 이렇게 상합된 상황은 여러가지 차원에서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는 육경상으로 분류를 해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윤택하면 그 경락이 실한 것이고, 어떤 색이 윤택하지 않으면 그 경락이 허한

것임을 기억해두시기 바랍니다.

  이상으로 망진의 관형찰색이 끝났습니다. 망진 다음으로 문(들을)진이 있습니다.

문진은 어렵습니다. 거의 도를 통해야 가능하다고 합니다. 문진은, 음성의 고저, 말을

느리게 하는가 빠르게 하는가의 장단, 리듬 등의 차원에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말의

음이 높고 떼떼 거리면 기가 단하게 마련입니다. 음성이 낮고 느린 목소리, 떨리는

목소리, 힘없는(무력) 목소리, 힘찬(유력) 목소리가 있고, 떨리는 목소리에도 긴장된

목소리와 이완된 목소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마다 말을 하는 리듬이 있습니다. 음악영화의 아마데우스를 보면,

모짜르트의 장모가 모짜르트에게 떼떼거리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때 모짜르트는

그것을 음악으로 듣습니다. 여러분의 어머니가 여러분을 야단칠 때 유심히 들어보면

그 야단치는 목소리에도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리듬이 있음을 금방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리듬은 대체로 일정하므로 무의식적으로 부르는 노래에서도 그 사람의

성격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무의식적으로 부르는 노래가 자신의 성격을

결정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문진의 분위기에 대한 인식은 망진의 경우와 거의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은 도와 이어집니다. 깊이 깨우치면 이론을 넘어서는 경지에 이르게 되지요. 잠시

망진의 분위기에 대한 인식을 재고해 볼까요.

  환자의 일거일동이 망진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몸을 비비꼬면서 말을

하는 사람은 다분히 감상적인 환자입니다. 목에 힘을 주고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 보는

환자,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환자, 또 고개를 옆으로 하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게 고개를 돌리고 얘기하는 사람은 의사를 믿고 온 사람이 아니고

심심풀이쯤으로 온 경우가 많습니다. 아무튼 환자에게서 전해오는 전체적인 분위기는

뭐라고 말로 꼭 꼬집어서 얘기하기가 어렵습니다. 수사관생활 몇 년만 하고

오라하시던 어떤 스승의 말씀이 이해가 갑니다.

  옛날에 S농과대학교의 어느 교수가 자신이 이론에는 밝은데 실제 나무재배에 실패를

하게되자, 실전에 강한 정원사를 교단에 서게 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이 정원사가

교단에서 한 마디도 말을 못하는 거였어요. 그저 자기가 느끼는대로 나무를 돌보고

보호했을 뿐, 별다른 이론이 없었던 것입니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교단을 내려오며

"난 아무 할 말이 없소!"하자, 한 농학도가 박수를 쳤습니다. 그러자 그 정원사는

"당신만이 내 뜻을 아셨군요"하고는 나가버렸다고 합니다. 이건 이론으로 금방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스스로 직감을 개발하셔서 환자의 상태를 용이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방향을 제시하고 기초를 다져드리는 것일

뿐입니다.

  어떤 경락의 에너지에 손상이 왔는지 느낌으로 아는 망진, 문진 다음으로

문(물을)진이 있습니다. 당연히 물어봐야 합니다.

  요즘 일부 한의원에서 병명 알아 맞히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커다란 잘못입니다. 환자의 병은 반드시 물어봐야 합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자꾸

입에서 습관이 되도록 익힌 다음 하나 하나 물어봐야 됩니다. 특히 여자들 경도는 꼭

물어봐야 합니다.

  문진으로는 무엇보다도 환자의 환경을 물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병력을

묻고, 그 다음으로 자각증상을 묻는 것입니다. 또 타병원의 진단이 어떠했는지도

알아봐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내가 궁금하고 필요로하는 여러 의문점을 하나하나

물어가는 것입니다. 남자에겐 직업도 물어보고, 여자는 칠정으로 인한 병이 많으므로

환경적인 것에 대한 상담도 하십시오. 병치료에 유효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면담장소는 환자의 긴장감을 풀어주는 곳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가령 시어미와

며느리가 함께 왔을 때는 개별적인 상담을 해야하고 환자의 비밀은 절대로 보장되어야

합니다.

  교활한 환자들, 특히 30대 40대 부인네들이 젊은 의사의 능력을 알아보기 위해

꾸며대는 이야기 특히 정신과 상담에서의 대화술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이런 여러가지

경우에 대한 대화술을 예로 들어보면 사람이 너무 거만하면 궐음풍에 해당하므로 톡

쏘아서 기를 꺾고, 거꾸로 자기비하의식이 강한 사람은 칭찬을 해주고, 또 빈곤해서

병이 든 사람은 약값을 깎아주는 등으로 부담감을 없애주어야 합니다. 또 환자가

여유를 갖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괜찮습니다. 좋아지겠지요. 산 입에 거미줄

치겠습니까?"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면 환자의 마음이 한결 푸근해 질 것입니다.

  환자의 마음을 다스림에 때로는 엉터리 관상도 동원시켜야 합니다. "얼굴에 있는 그

점이 복점입니다. 나중에 좋은 일이 있을 겁니다"라고 말해주면 환자는 희망을 갖게

됩니다. 희망이 하나의 동기가 되어 병이 낫고 또 돈도 벌게 되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약값은 잘 떼어 먹지 않으니 안심하고 그냥 주셔도 됩니다. 너무 거만하고

여유를 부리면 "당신은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군요"하고 겁을 주고 초조하게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너무 색을 밝혀도 겁을 주어야 합니다. 색을 밝히는 사람 중에 의외로

성기왜소증이나 정신적인 열등감에 빠진 사람이 많습니다. 한 여자도 제대로 사랑하기

어려운데 어떻게 여러 여자를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바람기 있는 여자들이 자기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는 경우가 많음도 이와같은 이유입니다.

  여자들 무모증이 황제"소녀경"에는 가장 길한 여자로 되어 있습니다. 무모증의

환자에게 황제"소녀경"을 보여 주면서 용기를 북돋우면 이 여자도 사진 찍어서

자신있게 들고 다닐지 모를 일입니다. 사실 무모증이란 순전히 우리가 만들어낸

열등의식의 한부분일 따름입니다. 인생은 정의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리 보면

이렇고 저리보면 저렇고, 굴절운동으로 보면 굴절운동이고, 입자운동으로 보면

입자운동입니다.

  시험에 떨어질까봐 긴장하는 고등학생을 대할 때는 학생의 불합격에 대한 불안감을

참으로 신중히 상담해 주어야 합니다. 그 불안감은 실로 엉뚱한 작용을 할 소지가

많기 때문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다루기에 까다로움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앞뒤 볼 것

없이 혼을 내 주어야 합니다.

  옛날에 허준선생이 여행 중 어느 마을을 지나는데 그 마을 갑부가 자기 아들의

지독한 병약함을 고쳐주십사 간청을 하여 가서 보니 다 큰 놈이 어찌나 게으르고

응석받이인지 식사도 다른 사람이 대신해 주길 바랄 정도로 운동성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허준선생이 "본인이 직접 바닷가에 가서 조개 3000개를 잡아 닳여 먹도록

하라"고 처방을 내리고 그 아버지를 불러 병의 원인과 처방의 이유를 얘기하자, 그

아버지가 깊이 이해하고 아들을 당장 바닷가로 쫓아버렸습니다. 아들이 조개를 캐자니

죽을 지경이었겠지요. 그럭저럭 며칠 조개를 캐는 사이 그전엔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

보리밥이 굉장히 맛있었습니다. 결국 조개 3000개를 잡고 나니 밥맛 좋아지고, 건강

좋아지니 정신도 돌아와서,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그 동네 처녀와 결혼하여

새마을운동 하겠다고 하더랍니다. 허준선생은 환자의 기를 꺾고 다스리는데 정말

능란했습니다.

  시장이 반찬이 되고, 환경의 지배를 받는 예는 흔합니다. 임진왜란 때 피란을 가던

선조대왕이 목어라는 고기를 먹어보고는 그 맛에 감탄을 하여 그 이름을 은어로 바꿔

부르도록 명을 했는데, 전쟁이 끝나서 환궁을 하고 세월이 좀 지난후 피난시절의 목어

맛이 그리워 목어를 잡아오게 하여 먹어보니 그렇게 맛이 없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은어란 명칭을 취소하고 도로 목어라 하여라! 에이, 입맛 버렸다...."고

했답니다. 지금 시중에서 볼 수 있는 도루목이 바로 이 물고기입니다. 시장기가 곧

반찬이었지요. 이렇게 사람은 환경의 지배를 많이 받습니다. 그러므로 환자에 대한

의사의 상황연출은 참 중요합니다.

  또 하나의 이야기. 한 한의사밑에서 오래 공부를 한 제자가 독립을 하여 개업을

했는데, 하루는 선생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선생님! 이렇게 저렇게 치료를 했는데

환자가 영 낫질 않았습니다" "그 경우는 그렇게 하면 틀림없이 나을텐데 이상하구나.

내가 한번 가서 보자" 하고는 가서 보니까 병이 낫지 않을 이유가 없거든요? 그래서

가만히 살펴보니 금테안경에 장식물은 모조리 유명메이커를 걸쳤고 밖엔 번쩍거리는

승용차를 세워 두었거든요. 그래서 '아하! 알았도다'하고는 제자에게 약을 한첩에

얼마를 받았느냐고 하니까, 첩당 5천원씩 받았다고 하거든요. "안된다. 첩당 5만원씩

받도록 하여라"하고는 시치밀 뚝 떼고, 진맥을 척 하고는 "젊은 양반의 병은

특수하므로 한첩에 5만원짜리 약을 써야 되겠습니다"하니, 아주 만족한 얼굴로 거의

내용이 같은 약을 10배의 값을 치르고 가져갔습니다.

  그로부터 불과 사흘 후, "의사선생님, 아주 좋아졌습니다"하고 전화가 오더랍니다.

왜 그럴까요? 이 환자가 약값이 싼 것을 경멸하여 무성의하게 약을 복용했음을

알아차렸던 것입니다. 때로는 환자의 교만을 꺾기 위한 이열치열도 구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국내에서 만든 질 좋은 청바지를 처음엔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를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팔리지가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라! 이래도 망하고 저래도 망하는데

값을 왕창 올려보자!'하고는 가격을 아주 비싸게 매겼더니 그제서야 곧잘 팔리더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참으로 이상하고 어처구니 없는 심리지요. 이것이 바로 부자들이

가진 특권의식입니다. '나는 비싼 음식, 비싼 옷을 입는 비싼인간이야.' 제 친구가

와서는 "야! 오늘 양주 한잔 하자"고 합니다. "그래 좋지! 요 아래 슈퍼에 가면

15000원 하니까 사다가 먹자"고 하면 "야! 유치하다. 그게 무슨 맛이니? 싸롱에 가서

먹어야지"라고 합니다. 같은 양주를 한 병에 5--6만원씩 주고 먹는 그런 허세를 왜

부리는 걸까요? 그 친구가 진정으로 양주를 즐기는 걸까요?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한

마디로 말하자면 친구에게 돈을 쓰는 호기를 보이기 위함이지요. 그럴 때는 돈을 쓰게

하는 겁니다. 나중에 그런 호기가 병을 유발시켜 치료를 청하여 오면, 기를 사정없이

죽여서 산산조각을 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곧 처방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참으로 가소로운 호탕병이 많습니다. 이건 참으로 어리석은 부유층의

망상이지요. 사소하게 보일지 모르는 이런 것들이 진짜로 병이 됨을 여러분은 간과해

서는 안됩니다.

  지금까지의 문진에 대한 이야기를 기초로 하여 앞으로의 발전적인 부분은 여러분

개성대로 창조하십시오. 어떤 환자는 의사가 너무 많은 설명을 해주어서 믿기지

않더라 하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그냥 지나치는 말로 "약 드시오"하는 데에서 알 수

없는 신뢰가 동하더라고 하기도 합니다. 많이 묻고 많이 설명해 주는 것만이 능사가

되는 것은 아니므로 여러분들 스스로의 개성을 찾도록 하세요.

  한의대 화교 학생들은 학교 다닐 때 한국말도 잘 모르고 영어는 더 모르기 때문에

겨우겨우 쫓아가기 바쁘고, 또 졸업할 때도 처방에 아득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도 개업하면 잘 됩니다. 왜 그런지 아세요? 환자가 이것 저것 물어봐도 "우리

사람 그런거 몰라 해! 그저 약 열첩만 갖다 먹어해" 그러면 뭔가 신뢰가 있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설명이 자상하다고 다 좋은 건 아니니 여러분이 잘 생각해서

하세요.

  이번엔 절진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절진에는 맥진, 복진 등이 있는데 이건 모두 직접 만져보고 아는 것이므로

촉진이라고도 합니다. 촉진을 이론상으로 설명하면 그럴듯한데 사실 이론과 실제를

접근시키기란 그렇게 용이하지 않습니다.

  부 침 지 수맥에는 4대강령이 있으나 병의 원인이나 병명을 찾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부 침에서 태음, 양명을 알고 (침맥은 태음, 부맥은 양명)

  지 수에서 소음, 태양을 안다. (지맥은 태양, 수맥은 소음)

  심부침긴지 태음 양명, 심지수지 소음태양

  심완급(긴) 지 궐음소양은 완급으로 궐음 소양을 알 수 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급이란 긴장되었다는 말도 되고 현의 의미와도 통한다고 할 수 있고, 완은

늘어졌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맥을 볼 때는 무엇보다 먼저 병의 치유가능성부터 알아 보아야 합니다.

이것을 알려면 결대맥의 유무와 강약을 보아야 하고 또 병의 경중을 파악한 후 처방을

내려야 합니다. 그리고 병을 치료함에 있어서 완급, 즉 급하게 치료해야 될 것인가

천천히 치료해야 될 것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옛부터 기관지천식을 앓고 있는 환자가 오늘 갑자기 감기에 걸렸다면

어떤 약을 먼저 써야 하겠습니까? 감기약 먼저 써야지요. 이와 같은 것은 정말 어려운

문제입니다.

  소양맥은 이완되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삽맥에 가깝다고 할 수 있고 태음은 골맥에

가깝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태양(태양한수)은 다소 긴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너무 차고 오그라붙기 때문입니다. 이런 원칙하에서 맥을 보는데,

왼쪽 맥과 오른쪽 맥에 각각 장부를 나누어서 진맥을 합니다. 즉, 좌측에 심 간 신을

배당하고, 우측에 폐 비 명문 삼초를 배당하고 이것을 다시 촌 관 척으로 나누는

방법이 있습니다.

  좌혈우기는 쉽게 알 수가 있습니다. 맥을 잡아보세요. 왼쪽맥과 오른쪽맥이 확연히

다름을 느낄 수 있지 않습니까?

  맥은 본래 손목을 주로 보지만 태계혈(안쪽발목근처)의 태계맥을 보는 방법도

있습니다. 태계는 족소음신경에 속하는 것으로 태계맥이 끊어지면 죽는다고 합니다.

저는 환자를 볼 때 손목과 태계의 두 맥을 상대적으로 곧잘 봅니다. 두 맥이 서로

비슷하면 균형이 맞으므로 위험한 사람이 아니고 두 맥이 서로 판이하게 다르면

위험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또 옆구리를 보는 방법도 있고, 눈이나 혓바닥의 실핏줄,

말단에 있는 실핏줄을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양방에서는 눈꺼풀을 뒤집어

보고 빈혈을 진단하는 것입니다.

  다음은 절진 중의 하나인 복진을 육경으로 나누어 봅시다. 복부에 육이 많다. 즉

살이 쪘다고 하면 태음이 되겠고, 마르고 뼈가 발달되어 있으면 양명에 해당이

되겠고, 가슴 부위가 펄떡펄떡 뛴다거나 동계가 있으면 일컬어 심화라고 하는데

이것은 소음군화로 보면 될 것입니다. 또 뚱뚱하지도 마르지도 않은(혹은 조금 살이

찐 듯한 사람) 사람이 손발이 차고 배도 차다면 태양이 될 것이고, 또 배가 팽팽하고

배에 임금왕 자도 새겨지고 근육이 상당히 발달되어 있다고 하면 궐음에 해당이

되겠고, 근육은 별로 없는데 피부가 거칠고 상초가 굉장히 조하고 열감이 있으며

겉으로 발산되는 반점이 있다면 소양상화지기에 해당이 됨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얼마전 어떤 직장에 근무하는 아가씨가 피부병으로 6개월간 치료를 했는데도 낫지를

않았다며 찾아 왔는데 수소양삼초경을 사해 주었더니 사흘만에 좋아지더군요. 또 우리

건물을 관리하는 젊은 청년이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고 피부병이 심해서 찾아왔는데

가만히 보니, 건물을 지키면서 오르내리는 사람을 지켜보는 가운데 속에 뿔따구가

많이 쌓였음을 알았지요. 그래서 소양상화지기를 사해 주니까 하루만에 깨끗이

없어지더군요. 이건 아마 소양상화지기의 대표적인 경우일 것입니다.

  절진 중 가장 중요시 해야 할 것은 경락진단입니다. 환자를 보았을 때 육경적

이미지가 유추되지 않으면 병변부위를 따라 흐르는 경락을 취하면 됩니다. 가령 허리

아프고 옆구리가 결린다고 하면 옆구리를 따라 흐르는 경락인 족소양담경을 보하거나

사해 주는 것입니다. 두통일 경우는 양명경을 보 또는 사해 주면 됩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육경락이 흐르는 유주를 외우셔야 합니다.

  경락진단은 손바닥을 보는 것으로도 우리에게 관형찰색을 가능케 합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손바닥에 붉은 반점이 많으면 길하다 하는 등의 수상 따위와는 무관한

것입니다. 손바닥에 실핏줄이 많은 사람, 손바닥이 노랗거나 파란 사람, 손바닥이

창백하거나 손가락이 가늘고 긴 사람, 굵고 짧은 사람 등으로 다양합니다.

  수태음폐경의 어제혈은 두툼하고 살이 쪄야 좋은데 폐결핵환자나 폐가 약한 사람을

보면 푹 들어가 있습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어제혈이 들어가면 음허화동병이 있다고

했습니다. 엄지 손가락에는 태음경, 넷째 손가락에는 소양경, 새끼 손가락에는

소음경과 태양경이 흐릅니다.

  병이란 한 경락의 허실의 균형이 깨져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 징후가 쉽게

드러납니다. 즉 어느 한 쪽이 중해서 병이 오기 때문에 병의 징후가 확실히

나타난다는 말입니다.

  태음인 엄지 손가락은 짧고 굵지요. 태음이란 음적으로 많이 발달된 것이므로 체가

짧으면서 단호한 것이 특징입니다(발가락인 족태음도 마찬가지임). 사람도 키가

작달막하고 오동통하면 태음인에 속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육경상의 태음이므로 사상의학의 태음과 혼돈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궐음은 길기도 하고 오동통합니다. 그러므로 크고 살이 찐 근육체질인 사람인데

눈매가 거만합니다. 태음(키가 작고 오동통)의 사람이 재물관리에 능하고 재물이

따르면, 궐음(키가 크고 근육형)의 사람은 대체로 정치가나 권력가나 명예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대체로 학자들도 여기에 속하는데 세장형이라해도

나이 얼마되지 않아서 이내 배가 나오고 큼지막한 체구로 변하기 쉽습니다.

  소음인은 세하면서도 단합니다. "신자작강이니 기교출언" 족소음신이 발달하면

성격이 세밀하고 기교가 뛰어납니다. 신경에서 기교를 연출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새끼 손가락이 잘 발달했으면 기술계통으로 나가면 좋겠지요.

  엄지가 유별나게 발달되었다면 사장타입, 가운데 손가락이 발달되었다면 권력가

타입이라는 성격적인 유추를 할 수 있습니다.

  손가락을 볼 때, 실핏줄이 많이 발달되어 있으면 궐음풍이 셉니다. 그리고 어제혈

부분이 오동통하고 살이 많으면 '이 사람은 태음이 실하겠군', 푹 꺼져 있으면

'허하겠군'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손바닥이 전체적으로 혈색이 좋으면 소음, 혈색이 없으면 태양이라고 볼 수 있고,

실핏줄이 많고 적음에 따라, 많으면 궐음, 없으면 소양이 실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혈색유무로 소음과 태양을 구분하여 짐작할 수 있고, 청색유무로 궐음과 소양을,

어제혈을 보고 태음의 허실을 구분하는 겁니다.

  여러분 명상을 해보세요. 아침에 일어나서 가만히 숨을 죽이고 자기 몸의 가장 아픈

곳을 들여다 보세요. 그리하면 어느날 어느 경지 쯤에 이르게 되면 아픈 곳이 풀리게

되는데 그 때, 얼굴이 간질거리고 온 몸에 뭔가 쭈욱쭈욱 흘러다니는 기분이 들게

됩니다. 또 손바닥이나 발바닥이 화끈 달아 오를 때도 있습니다. 이것은 말초에 있는

경락으로 에너지가 흐르는 것입니다. 물론 자꾸 명상을 해보아야 이런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웬만큼 체한 것은 약이나 침을 쓰지 않고 명치 밑을 가만히 들여다 보기만

해도 뚫립니다.

  몸의 어느 한 부분을 꼬집었는데 전혀 다른 곳이 찌릿찌릿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학생들 의료봉사 가서, 족태음비경을 강하게 자극하니까 목덜미 부분이 마구

뜨거워진다고 하는 사람이 있더군요. 이렇듯 경락의 유주라는 것이 확연한 사실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각 경락의 시작과 끝나는 자리를 확실히 외워야 하지

않겠어요?

  경락에 의한 치료는 어떤 것일까요? 예를 한 가지만 들어 봅시다.

  제가 요즘 피곤해서인지 눈이 자꾸 실룩거리더군요. 본래 저는 침을 맞기보다는

관해서 낫는 방법을 좋아하는데 이번 경우는 영 낫지를 않더군요. 족양명위경을

보했더니 아주 좋아졌습니다. "사암침구요결"을 보면, "15--16세의 한 남자가 왼쪽

이근 밑에 백색의 뾰로통한 것(목뒤 연주창)이 났는데 이것은 체기허약에서 오는

일종의 풍상부증이므로 대장 정격을 용하기 수도에 효과를 보았다"라고 나와 있고,

또, "3세 소아가 항상 설사를 그치지 못하고, 얼굴빛이 누르고 다소 부기가 있으며,

명치 밑에 복량(심적)이 있는 것 같고, 이하 대장경이 흘러가는 부근에 핵이 있으므로

대장 정격을 치하기 수도에 병이 없어졌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경락의 유주만 알아도

대장정격을 쓸 수 있는 것입니다.

  사암침법에는 수도(몇 차례 치료하지 않고) 또는 일도에 완치를 했다는 예가 많이

나옵니다.

  양명, 소양, 태양의 경락이 흐르는 곳은 손등 쪽입니다. 둘째 손가락이 양명, 넷째

손가락이 소양, 새끼 손가락이 태양이 되지요.

  손등을 한번 살펴 봅시다. 손을 뒤집어서 볼 때 전체적으로 뼈가 잘 발달되어 있고,

손톱자체가 실하면 양명의 허실을 알 수가 있고 이와 반대로 손에 살이 오동통하게

쪄서 뼈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는데, 이런것으로 양명을 판단합니다.

  소양지기는 손등이나 얼굴에 얼마나 털이 났는냐 하는 것으로도 판단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건 안에서 밖으로 밀어내는 힘 같은 것이기 때문에 털이 많은

사람은 아무래도 화기가 많을 겁니다. 이 털은 지구상의 나무와 비슷합니다. 추운

곳에서는 나무가 잘 자랄 수 없듯이 털도 마찬가지입니다. 적도 부근에 정글이 있음은

당연하겠지요.

  소양상화와 소음군화는 같은 화이지만 조금 다릅니다. 소음군화는 속에서 흐르는

어떤 화기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고 소양상화는 털이 자라나오듯이 화기가 바깥으로

발산되어 나오는 성질의 것입니다. 털의 다소 외에도 손등의 전체적인 혈색과

손톱밑의 화색을 봅니다. 그 색이 희다면 분명히 뱃 속에 회충이 있습니다. 속을

데워주는 화기가 부족하므로, 속이 냉하면 생기게 되는 기생충의 유무를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공격적이지 못합니다. 소양상화지기가 부족하므로 이런 사람은

용기가 부족할 뿐아니라 대체로 겁장이입니다.

  말이 나온 김에 회충약을 한번 볼까요? 안회리중탕은 "비허충통 혹은 구토,

수족냉을 다스린다"고 주치가 나와 있고 백출, 건강, 인삼, 백복령, 화초가

들어간다고 되어 있습니다.

  회충은 습하고 냉한 곳을 좋아하기 때문에 육경 중 태음에 가깝습니다. 태음에

속하는 회충을 죽이려면 양명경을 쓰면 됩니다. 그러므로 매운 맛을 가진 천초를 쓰는

것입니다. 담배진도 좋지요. 그러니까 담배 많이 피우는 사람은 회충이 없는

것입니다. 이러하므로 여러분이 육경을 충분히 이해를 하시고 나면 치료가 참으로

간단해지게 됩니다.

  간단히 요약해 보면, 윤택한 것은 태음에 해당하고, 긴장성, 운동성, 수축성 등은

궐음에 해당하고, 손끝이 차다 덥다 하는 것은 태양지기에 해당합니다.

소음군화지기가 강한 사람은 손바닥이 따뜻하고 핏줄이 보이고 훈훈한데 태양지기가

강한 사람은 대체로 차갑습니다. 여러분들 긴장되고 기분이 나쁠 때 손가락이 싸늘이

식은 경험이 있을 겁니다. 특히 두려움과 긴장이 동반될 때 더욱 그러하지요.

  이것은 촉감으로 쉽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끈끈하고 기분 나쁘게 냉한 땀을 흘리는

사람은 비겁하고 음험합니다. 그래서 손가락에 끈끈한 땀이 있는 사람을 조심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특히 찬 땀이 나는 것은 태양지기가 실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부자나 계피, 계지를 먹어야 됩니다. 태양과 소음은 한열에 관계되므로 촉각상의

문제입니다.

  지금까지 손쪽에 육경의 유주를 이야기 했는데, 절진에서도 가장 중요시 하는 것이

경락의 유주를 통한 진찰입니다. 이 밖에도 우리가 살펴볼 수 있는 것이 많습니다.

간단히 머리카락과 눈을 한번 볼까요. 미용실에 가면 화기로 퍼머를 하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주로 열대에 살았던 흑인들도 몸안에 화기가 많으므로 아예 뱃속에서

태아의 머리를 퍼머시켜서 출산하게 되는 것입니다. 옛부터 곱슬머리와 옹니를 상종말

라고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머리카락의 색깔과 형태로 이와 같은 구별을 하듯이 눈동자도 다양한 색으로 구분이

됩니다. 청색인 민족은 궐음지기가 강하므로 백인 중에서도 눈동자가 파란 사람은

다른 인종보다 거만합니다. 한편 흑진주와 같이 까맣고 윤택한 여자는 조심성있고

차분하고 정숙합니다. 눈이 청색이면 궐음에 해당하므로 권력욕, 자존심, 지식욕이

많고 틀림없이 거만하겠지요. 이에 비해 눈동자가 검은 사람은 겁이 많아 태양한수가

발달되어 있습니다.

  태양한수가 발달되었다 해서 그 사람이 방탕하거나 음탕하지만은 않습니다. 도리어

매우 조심스럽고 정숙합니다. 그래서 옛부터 "눈동자가 검고, 눈자위가 희고

투명하며, 입술은 앵두같고, 코가 오똑하며, 머리칼이 칠흑같이 까만 여자를 골라라"

하고 이야기 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눈동자가 브라운색이면 어떨까요? 브라운은 황색과 검정의 혼합색입니다.

그러므로 브라운색이 밝으면 사고력이 풍부한데 반해 어두우면 의심이 많습니다. 또

그런 사람은 대체로 불안합니다. 개나 여우 따위의 눈을 보면 브라운 색입니다.

  이렇게 머리카락이나 눈을 보는 외에도 관상법, 손바닥을 보는 수상법, 발바닥을

보는 족상법, 잠자는 모습 등 많은 것을 진단의 수단으로 보는 것입니다. 입을 헤

벌리고 자는 사람은 보기에도 흉하지만 관상학적으로도 흉상입니다. 임맥과 독맥

사이로 기가 계속 새어 나가니 좋을 수가 없지요.


@[(2) 식물관찰법@]

  식물을 관찰하는 독특한 이론이나 방법을 옛 선인들의 혜안을 통해 터득하고자 많은

문헌 등의 자료를 참고해보니 본인의 일천한 지식에 많은 보탬이 되더군요.

  인간은 어리석게도 자기중심의 사고방식에서 비롯되는 여러가지 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첫째는 아상이고, 둘째는 인간 자신도 동물과 마찬가지로 교미하고 새끼

낳고 생을 위한 약육강식 등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나는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므로

다른 동물들을 지배하고 잡아먹을 능력과 권한이 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인상입니다. 셋째는 생명상입니다. 사람들은 생명이 있는 것, 없는 것, 유정,

무정으로 나누고자 하는 이상한 버릇이 있지요. 우리 주변에는 식물을 무생물이라고

한다든가 감정이 없는 생물이라고 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미국에서

식물 감정실험 학설을 발표한 것이나 클래식 음악을 틀어주면 열매가 알차고 많이

맺힌다는 등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여러분은 식물에 감정이 없다고 말하지 않겠지요?

  노자의 "도덕경(노자의 저서. 노자는 주왕조시대에 큰 덕을 지닌 숨은 군자였다

그러나 그의 생애는 어떤 임금시대에 살았었는지 아직도 확실하지 않다. 사기에

의하면 노자는 초나라의 고현 여향곡인리의 사람이다. 성은 이요, 이름은 이이고,

자는 백양이고, 시호를 담이라 받았다고 한다)"에 보면 "전쟁이 지나간 자리에는

가시나무만 무성하다"고 했는데,

양명조금의 투기가 왕성했던 전쟁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지요. 이건 무슨 의미를

담고 있겠습니까? 지금 이 자리에서 일으키는 한 생각의 파장이 수억광년 떨어진 어느

별자리에 영향을 미칠지도 모릅니다. 하물며 영성을 가진 식물에 대해서야.... 이런

이해가 여러분의 사고속에 담겨지지 않으면 앞으로 식물을 접함에 있어서 어떠한

식물의 특성도 읽어낼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리의식을 버리지 못

하고

있는 사람이 거의 대부분이지요. 아상이란 너는 전라도 나는 경상도... 나! 나!

나!.... 너! 너! 너! 이런 식으로 '나' '너'로 분리하는 것입니다. 이런 분리의식과

교만은 의사들에게 특히 현저합니다. 6년 졸업하고 대학원이라도 나오면 아주

안하무인이 됩니다. 그 이면에는 나를 키워온 Ego의 망상이 꽉 들어차 있습니다. 이

아상이 많은 것을 수행을 통해서 극복한다고 하더라도 '남' '여'라는 무너뜨려야 할

성의 상이 남습니다. 이것마저도 떨쳐버려야 합니다. "넌 어째 남자가 매일

소꼽장난만 하니? 아예 불알을 떼어버려라!" 이렇게 남녀가 가진 기운을 분리시키려고

우리 인간들은 획책해 왔지요.

  그러나 이것 또한 극복을 해도 사물과 인간의 분리인 인상은 남지요. 우리가

인간일까요? 혹시 흙이고 바람이고 곤충이고 선인장이지는 않을까요? 여러분 낚시

좋아하지 마세요. "저는요 잡았다가 놓아 주니까 죄가 없겠지요?" 이런 말은 50보

100보지요. 고기 주둥이를 찢어 놓고는 '살려주니 죄가 없다'고 함은 간특한

자기변명에 불과합니다. 무생물에게조차도 가해를 하면 안됩니다. 벽을 향해 공을

던져 보세요. 던지는 속도에 비례하여 되돌아 옵니다. 작은 미물 하나라도 가벼이

여기지 마세요. 소동파가 어느 선사를 찾아가서 어떻게 공부해야 합니까? 하니 "모든

선은 받들어 봉양하고 모든 악은 짖지 말아라(중선봉행하고 제악막작하라), 네 마음을

깨끗이 하라 이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이다"고 하니 "그건 제가 읽은지 오랩니다"고

했어요. 이에 선사 가라사되 "세살 먹은 어린애도 알기는 쉽지만 여든 먹은 노인도

실천하기는 힘들다네" 여러분들이 식물을 볼 때에 이제는 무심코 보지 말고 그것의

분위기와 감정을 느끼도록 하세요. 비온 뒤에 마구 신이 나서 일어나는 채소, 추우면

움츠리고, 한 여름 햇볕에는 축 쳐지고, 아침에 태양이 떠오를 때는 기분이 좋아서

반짝입니다. 인간과 다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것은 동식물에도 식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형태, 형상이 같으면 다 같은 것으로 여깁니다. 옛날 복희씨는

전쟁을 할 때 독수리, 코끼리, 사자, 호랑이를 전열에 세우고 전쟁을 했다고 합니다.

그때는 금수와 인간의 구별없이 대화가 통했고, 식물과도 대화가 통했다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리석은 인간이 같은 형상끼리만 동류인줄 알고 자기네들끼리만

어울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인간의 탈만 뒤집어 썼지 뱀같고 여우같고 늑대같은

사람이 있는 줄을 모르고.... 옛날 사람들은 형상을 보지 않고 기운을 보았다고

하지요. 신맛을 내는 식물은 기운이 강하고 매운 맛을 내는 식물은 양명조기가

많을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세울 수도 있겠지요.

  식물이 동물처럼 여러 경락을 다 가진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각각의 그 나름의

특수한 몇 가지는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오미자와 같이 다섯 가지 맛을

다 가진 것을 성초라고 합니다. 그리고 신령스런 풀인 영초도 있지요. 인간만이

12경락을 다 가지고 있듯이 식물 중에도 12경락에 해당하는 맛을 다 가지고 있는 것은

신령스런 식물인지도 모르지요. 무해무독하다는 쌀, 보리, 밀, 인삼 등은 특별히 강한

맛이 없습니다. 그러나 강하거나 맛이 독한 식물은 한 가지 경락에만 치우쳐

작용하므로 그 맛이 강독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식물의 편벽된 성품을 읽을 줄 아는 관을 얻어야 됩니다. 옛날

의학자들은 식물의 맛과 성품과 생김새를 가지고 여러가지 추리를 해서 치병의 작용과

방법을 기술해 놓았는데 지금 우리는 그 추리를 배우려하지 않고 기술된 것만을 그저

외우기만 하고 있습니다. 건강한 동양의학자라면, "본초강목"에 없는 국내에 처음

수입되어온 약초라 할지라도 그 성분을 알아낼 수 있어야 하며 입경의 약리학적 측면

역시 추리할 수 있어야 된다고 주장하는 바입니다. 직접 맛을 본다거나 그 식물의

성품을 접촉할 수 있는 체험의식이 있어야 됩니다. 학계에서 거의 덮어두고

지나치다시피하는 오운육기라든가 입경의 문제는 단순한 지식 암기식의 학문적

태도로는 영원히 풀리지 않는다고 저는 주장합니다.

  식물도 성정이 있다고 하는 전제하에서 광물이 가지고 있는 감정까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례로 양기석을 들 수 있습니다. 말뜻 그대로 남자들 양기 부족한데

씁니다. 연령고본단이나 십전대보탕에 육미를 합방하고, 오자와 육종용, 음양곽도

넣고, 이 양기석을 조금 넣습니다. 법제의 방법은 불에 이 양기석을 달구었다가

식초에 담가 삭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돌가루가 어떻게 인간의 양기를 돋구워

주느냐 하는 것이지요. 주사(심장 안정제로 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사는 불면증,

간질, 경기, 구토, 안질 등 하다 못해 귀신을 쫓는 데까지 씁니다. 옛날 할머니들은

어린애가 태어나면 경면주사를 어린애 입술에다 조금 묻혀주는 지혜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리하면 약성이 입경이 되어서 아이가 경기를 안합니다. 이런 광물질인

주사가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진정시켜 주겠습니까? 이렇게 잘 생각해보면 동물이나

식물, 광물질까지도 그것들 나름의 어떤 성품이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옛날 어느 선사가 도를 깨닫고 보니, 식물에겐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는 괴로움이

있고, 동물은 동하는 괴로움이 있음을 알 수 있더라고 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식물은

동하고 싶어하고 동물들은 정하고 싶어 합니다. 동은 정으로부터 양식을 얻고 정은

동으로부터 양식을 흡수합니다. 즉 식물은 동물로부터 에너지를 얻고, 동물은 식물로

부터 에너지를 얻게 되지요. 어떤 도인은 "식물이 하나 생겨나면 그것에 상응하는

동물이 하나 반드시 생겨난다"고 했습니다. 이건 우주의 조화지요.

  오운육기책을 보면, "하느님은 실수하는 법이 없어서 병이 나게 되면 그 병을 낫게

해주는 약초도 만들어 준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것은 남고, 어떤

것은 모자라다'라고 여기는 것은 우리 인간의 생각일 뿐이지요. 만물의 이러한

상호보완적인 관계가 곧 음양인 것입니다.

  식물과 동물은 상호보완적이므로 동물은 식물을 먹어야 마음의 평정을 얻게 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인간들은 돼지고기, 쇠고기, 닭, 오리, 뱀, 아롱사태, 제비추리,

심지어 지렁이까지 먹습니다. 동물이 동물을 먹어대니까 평정을 잃고 조동하게 되어

요즈음과 같은 불행한 세태가 되어가는 겁니다. 무조건 살생을 하지 말라, 육류를

먹지 말아라 하는 얘기는 아닙니다. 동식물의 상호보완적인 차원에 대한 이야기지요.

동물계에도 인계 축생계가 있듯이 식물도 여러 성품을 두루 다 지닌 영초가 있을

것이고 부자나 대황처럼 편벽되고 독한 성품을 지닌 것도 있을 것입니다.

  "방약합편"에 나온 부자를 보면 맨 끝에 "인삼과 숙지황은 치세를 다스리는 어진

재상이요. 부자와 대황은 난세를 다스리는 어진 장군이다(인삼, 숙지치세지양상,

부자대황난세지양장)"라는 말은 시절이 어지럽고 사람이 독해지면 그만큼 약도 독한

것을 써야 되고 사람들 인심이 유순하고 편안할 때에는 인삼, 숙지황같은 약이 좋다는

것이지요.

  열이 38--39도 되는 데도 환자의 컴퓨터 사주팔자의 해석에 부자가 맞게 되어

있다고 부자를 넣어주는 한심한 한의사도 많습니다. 대황을 써야 되는데 부자를

쓴다면 환자를 수도 없이 죽이게 됩니다. 병을 잘못 다스리는 것은 살인보다 더한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도심지 한복판에 난데없는 개구리 떼가 도로를 메운다거나 제철도 아닌데 메뚜기나

하루살이 떼가 어느 지역의 하늘 전체를 메웠다는 뉴스를 들어보셨을 겁니다. 이런

현상을 무심코 넘기는 사람은 오운육기 학자가 아니지요. 오운육기 학자들은 어떤

기운이 성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알 뿐 아니라, 어떤 곤충이

흥하면 어떤 사기가 많이 작용할 것인가를 예측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공부를

"육경"'오운육기편 기교변대론'에서 이르기를,

  "황제가 이르길 '가르칠 가치가 있는 자인데도 가르치지 않음은 하늘의 도리를 잃는

것이고, 가르칠 가치가 없는 자에게 가르치려고 하는 것은 하늘의 지보를 함부로

누설시키는 것이다'라고 들었다. 그러나 짐은 참으로 부덕하여 천도의 온오를 받을

만큼의 자격이 없는 것 같소. 원컨대 하늘의 지보를 한없이 지니게 하여 영구히 이를

전하게 합시다. 짐은 그 가르침에 따라서 바른 정치를 행할 생각이오"

  제왈 여문득 기인불교시위실도전 비기인만설천보 여성덕미족이수지도 연이

중자애기불종 원부자보우무궁유우무극 여사기사즉이행지내하


  이러한 오운육기는 그 영향을 미치지 않는 데가 없습니다. 농사, 정치, 문화, 거래,

인간의 길흉화복에 이르기까지 그 영향을 미치지 않는데가 없습니다. 이처럼 중요한

지보이므로 주역학자나 운기학자들은 아는 공부 3년 했으면 모르는 공부 7년 하라고

합니다. 바로 입닫는(누설치 않는) 공부를 하라는 거지요. 여러분들 육경 공부 좀

했다고 친구나 후배 만나서 경솔히 지껄이지 마십시오. 좀 알아도 모른 척하고,

내경의 깊은 의미를 확대해석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입을 열 수 있음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오운육기는 배우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마음을 엄숙히 하고 재계를 해서

공부를 해야지 어린애 장난하듯 가벼이 여겨서는 안됩니다.

  황제같이 위대한 분도 기백에게 머리를 숙여 가면서, "짐이 참으로 부덕해서....그

가르침을 따라 정치를 행할 생각이다"라고 겸손히 말하는 이 모습을 보십시오.

"황제내경"의 뜻은 하나하나가 다 나중에 황제가 될 기질을 길러주는 것이 올시다.

오직 나만을 생각하지 말고, 비교나 분리의식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다른 나라의

고통도 불쌍하게 생각해 줄 정도로 덕이 넓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더 많이 듣고

더 많이 배워서, 전세계 인류를 위해 봉사할 수 있도록 해야되겠지요.

  지금 여러분들은 어마어마한 학술세계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러니 조그만 감정의

부스러기나 질투, 시기 따위에 사로잡히지 말고 마음을 크게 쓰세요. 그리고 자기

스스로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 지극한 보물은 한꺼번에 다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단계에 이르면 가리워지고, 또 어느 단계에 이르면 가리워지게

됩니다. 그 이유는 선문답을 가려 놓은 것과 동일합니다. 왜 가려놓았을까요? 그것은

스스로 밀고 들어오지 않으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몇 가지 외운

지식만으로 이 우주의 움직임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엄청난

착각입니다.

  황제는 육경을 일컬어 "정열하게 수리를 갖추고 간명하여 빠진 곳이 없으며 영원히

어긋남 없는 진리"라 했고, 노자도 "하늘의 그물은 성긴 것같으나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유조리간이불궤구이불절역용난망위지강기....)"고 했습니다. 육경을 분류하고

오운육기를 결합시켜 보면 빠져나갈 것이 없습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과제물을

부여하고, 이것 저것 조사를 해오라고 하는 이유는 몇 가지 이론만 외우면 될 것이

아니냐는 여러분들의 안일한 생각을 없애기 위한 노력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여러분들은 "왜 이렇게 괴롭히지? 요점만 빨리 끝내면 좋을텐데...."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지요. 그런 머리 속엔 이렇게 심원한 학문이 들어갈 자리가 없습니다. 지난

겨울 방학때는 이 오운육기 강의를 하면서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오운육기 이야기만

나오면 졸더군요. 다시 말씀드리지요. 오운육기란 위로는 천문을 알고 아래로는

지리를 알고 가운데로는 인사를 아는 공부입니다.

  육경공부를 하고 나면 별(성)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내경 '오운육기편

기교변대론'에 나온 것을 참고해 봅시다.

  "운성이 상궤를 타고 바르게 운행하고, 때때로 상궤를 조금 이탈하여도 약간일때는

이것을 하늘이 천하만민의 행동을 보고 계신다라고 말하고, 운성이 상궤에서

빗나갔다가 빨리 원래대로 돌아오고 만곡하여 운행할 때는 이것을 하늘이 치세의

잘못을 보고 계신다하고 말하고, 운성이 상궤를 타고 운행하다가 때때로 빗나가고

때로는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을 되풀이하고 있을때에는 이것을 하늘이 치세의 잘못에

대하여 재화를 줄 것인가, 선정에 대하여 칭찬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하늘이 선정과 악정을 보시고 덕이 있는 자에게는 복을 주고 잘못이 있는 자에게는

죄를 주려고 하고 있다"

  이와 같이 기백같은 분은 혜성이나 별을 약간 유심적으로 해석을 하였습니다.

여러분들은 밤하늘의 별이 평소와 다른 광선을 쏘듯이 날카롭게 나타내기 시작하면

'지구상의 풍조가 어떻게 변할 것인가'하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 웃기는 소리

하지도 마세요! 수억 광년전의 광선이 지금에야 도달하는 것인데 그것으로 무얼

생각했단 말이예요? 어쩌면 그렇게 비과학적인 말씀을 하십니까'하고 반문할 지도

모르겠군요. 그런데 왜 하필 그런 색깔이 나타나고 또 우리 눈에 그런 광선이 들어

올까요?

  인간의 역사를 보면 처음에는 토기시대였지요. 그 다음은 철기시대 지금은 화기시대

앞으로는 수(물)기시대가 올지도 모르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목화토금수로 (상생으로)

시대가 흐르지 않고, 목극토, 금극목, 화극금....이렇게 상극으로 돌아가므로 고통이

수반된다고 합니다. 옛사람들이 하늘과 별의 운행을 대수로이 여기지 않았던 점이나

심한 가뭄이나 홍수때에 임금들이 "짐의 덕이 부족한 탓이로다"고 한 것은 인심이

자연에 영향을 끼치고, 자연이 인심에 영향을 미침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심과

자연은 둘이 아니고 하나입니다. 갑자기 날씨가 추워지면 사람이 움추려 들고, 문명의

발전에 따라 생태계나 지구의 구조 자체에 큰 변화가 오는 것도 인심과 자연이 둘이

아님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예입니다. 이러한 기본적인 사상이 수용되지 않은 배울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들으면 머리가 깨지듯 아플 뿐인 것입니다.

  하늘에서 일어나는 현상들, 인간의 여러 감정들, 어떤 동물과 식물, 어떤 색과 맛이

갑자기 성하고 흥함은 그럴만한 이유가 근본적으로 있다는 것입니다. 게가 바다에서

살지 못하고 산으로 기어올라 가서 산다거나, 까치가 나무위에다 집을 짓지 않고

방송국 철탑같은 데다가 20--30개의 집을 짓고 산다면 무슨 징조가 있는 것일까요?

주역학자들은 대상을 가지고 풀어냅니다만 여기에도 과학적인 근거가 있습니다.

우리는 쉽게 느끼지 못하지만 지렁이가 더 잘 아는 것도 많습니다. 바깥기운이

살벌하고 건조한데 지렁이가 밖으로 나오겠어요? 모든 동물들은 예지능력이 있는데

우리 인간은 그것을 잃어버리고 말았지요. 항해하는 배속의 쥐들은 폭풍우가 오기

훨씬 전부터 이리저리 날뛴다고 합니다. 이것은 무형의 기운이 움직임을 포착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운육기란 참으로 간단한 학문이면서 아주 넓게 모든 것을 다 포괄하고 있음을

안다면 여러분은 시간을 소홀히 하여 안이하게 보낼 수 없을 것입니다. 제가 아는

3% 의 0.3% 도 아직 강의를 하지 않았는데 여러분들의 배우고자 하는 의욕이

저를 고무시켜 저 역시 의욕적으로 강의할 수 있도록 해 주시기 바랍니다. 딴은

여기와서 강의를 들은 후 아무것도 모른다고 해도 한방이 훌륭한 것임을 느끼기만

한다면 제 강좌를 들은 소기의 목적은 이룬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내일 죽는다고 하면 오늘 진리공부를 하지 않고는 못배길

것입니다. 오늘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지 않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정밀하고 명백한 이론은 대성인이 하는 업으로 천지의 공리를 명백하게 말하고

영구히 변하지 않는 한없는 이치를 궁구하여 진리에 통하여 있는 것이다"

  "제왈 선소 위정광지론대성지업선명대도통어무궁구어무극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정밀하다고 하는 것은 철없는 어린애가 들어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그런 것입니다.

'내가 가까운 것을 너무 멀리 하고 있었구나'하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옛날 어떤

사람이 도를 깨닫고 나서 어찌나 이 도를 가르쳐 주고 싶은지 설법을 하러

돌아다니는데 아무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더랍니다. 할 수 없이 돌산에 들어가서 10년

동안 설법을 했는데 나중에는 돌들이 고개를 끄덕끄덕하더랍니다. 도란 한낱 어린애가

듣거나 돌일지라도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는 단순한 것이지요. "내경"의 장중함에

눌리고, 권위주의와 양방 일변도로 변해가는 사이비, 주체성없는 학문관, 중공것이나

도용해서 끼어붙이려는 박쥐같은 학문 풍토, 입이있어도 음양관 하나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하는 벙어리같은 강의로 인해 여러분의 두뇌는 나날이 썩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대학졸업 후 13년 동안 한 일이 별로 없기 때문에 큰소리칠 자격이 없을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최루탄 앞에서 한의학의 발전을 위해 몸부림치는 여러분들에게

선구자적인 학문관, 진리관을 넣어 줌으로써 우리 한의학계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를

진리를 추구하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화시키는데 작은 힘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갖고 이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황제도 의사가 아닌 왕이었지만 의술을

통하지 않고는 국민을 제도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의사로서, 조그마한 기술자로서 어떻게 커볼까하는 생각보다는 큰뜻을 가지도록

하십시오. 천지의 공통된 이론은 공리를 명백하게 하고 영구히 변하지 않는 한없는

이치를 궁구하여 진리에 통하여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천문지리에 통한 자는

인체에 있어서도 그것을 이용할 수가 있습니다.

  올해의 운세는 어떤 기운이 강하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조심을 해야겠군! 1985년

을축년은 뚱뚱하고 열이 있는 사람이 조심을 했어야 했군! 그러니까 그런 사람을 위한

약으로 어떠어떠한 것을 많이 준비해 두어야 했었군 하는 것을 예지해야 합니다.

"올해는 어떤 약초를 많이 준비해야 한다"라는 얘기 쯤은 할 수 있는 동양 의학자여야

합니다. 먼 옛날의 대이론을 잘 아는 자는 현재에 있어서도 그것을 이용할 수 있고,

무형의 움직임을 잘 아는 자는 유형의 상태에도 통할 수 있습니다. 오운육기의 영향을

잘 아는 자는 반드시 천지의 움직임에 응하여 자기를 순응시켜 장수할 수가 있지요.

  "선생(기백)이 아니면 세상이 넓다한들 누가 이 대도를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길조를 골라서 '기교편'이라 이름짓고, 이것을 매일 아침 암송하고 싶소. 제계하여

몸을 맑게 한 자가 아니면 결코 보잘것없는 무리에게는 전하지 않을 걸세"라고

오운육기의 기교변대론은 끝을 맺고 있습니다.

  제가 사암침법을 강의한다고 소문이 나니까 무면허침구사도 그리고 미국 L.A에서도

강의를 해달라고 요청을 해왔습니다. 짧은 시간 투자해서 돈벌어 먹을 길이 없나 하는

얄팍한 생각에서, 또는 이민 가는데 침술을 배워가면 좋다는 말을 듣고 침술학원에

가봐도 별로 신통해 보이지 않으니까 그러는 거지요. 그러나 적어도 대학 6년

다니면서 고민도 해보고, 실망도 해보고, 흥분도 해본 사람들 즉, 한방에 엄청난

대이론이 있음을 신뢰하고 수긍하는 여러분들에게 강의를 해야 한다고 느꼈기 때문에

제 강의는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하는 이 강의는 정말 들어보기 힘든

것입니다.

  절대 가벼이 여기지 마시고 부디 열심히 공부해 주시기 바랍니다. '레이더스'라는

영화를 보면, 멀고 먼 수많은 난관을 헤치고 어떤 구슬을 얻습니다. 그래 그것을

아이들에게 나눠 주었더니 가지고 놀다가 아이들은 잃어버리고 맙니다. 여러분도 이와

같이 되지 않도록 하십시오. 쉽게 얻었기 때문에 아이들은 그 구슬속에 담겨진 항해와

거친 풍파, 어려운 난관의 의미를 모릅니다.

  이제 이 강의를 마치고 '오운육기편' 한번 펼쳐 보세요. 여러분이 미처 느끼지

못했던 친밀감이 확 다가올 것입니다. '궐음, 소음, 태음, 소양, 양명, 태양이 먼

꿈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내 속에 흐르고 있구나'하는 것을 느끼실 겁니다.

예를 들어서 "궐음의 해에는 시고 짠 것으로 치료를 해라"라고 씌어 있다면,

'왜일까?'하고 생각을 하게 되고, 황제내경의 오운육기가 모든 법을 다 설해 놓은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일어나는 동기만을 이야기 해 놓았으므로 여러분들의 눈을 넓히는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여러분들이 한방이론에 친밀성 친화성을 가지고 공부를

하다보면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들 중에서도 도인이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성품따라 맡겨두고 도를 합치면

  일 없는 듯 번뇌가 끊기고

  마음 두고 분별내어 참뜻과 어긋나면

  흐리멍텅 가라앉아 좋지 않으리라.

  (임성합도 소요절뇌 계념괴진 혼침불호)


  식물과 동물의 상호보완작용이란 정과 동, 음과 양의 상대적인 의미와 서로 양분을

취하는 작용, 상호호흡작용 등의 생명활동이라고 했습니다. 다음부터는 식물과 동물을

보는 방법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인간은 위를 머리부분이라 하지만 식물은

땅밑에서 자라는 부분을 머리라고 합니다. 서로 반대지요. 식물은 지기를 먹고,

동물은 천기를 먹습니다. 식물은 윗 부분에 꽃이 피어서 암수가 구별되지만, 동물은

아래쪽에 있는 성기로 암수가 구별됩니다.

  동물은 상이 천이 되고 식물은 상이 지가 되며, 동물은 하가 지가 되고, 식물은

하가 천이 됩니다. 인간이 섭취하는 것은 천기지미인데, 식물이 섭취하는 것은

지기천미가 됩니다. 그러므로 서로 생명을 보충시키는 작용을 합니다. 다만 기능상의

위치만 전도되어 있으므로 인간처럼 식물을 보되 위치만 바꾸어서 이해하면 쉽습니다.

  "창조주는 절대 실수가 없다"고 오운육기에 나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창조주에게

실수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흔히 '창조주가 왜 실수를 해서 나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왜 저런 독한 식물을 만들고 도둑놈, 창녀를 만들었을까?'하고 생각을

하지만 창조주의 일은 절대 실수가 없을 뿐 아니라 균형에서 조금도 어긋나지

않습니다. 다만 인간이 스스로 일부분만을 보고는 균형이 깨졌다고 착각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주만물을 결정하는 주인이 바로 우리 인간입니다. 기실 식물을 만들어

내는 것도 우리, 동물을 만들어내는 것도 우리요, 표독한 사람을 만들어내는 것도 곧

우리입니다. 그러므로 이 우주만물에 일어나는 일체의 현상은 나와 그 관계를

끊을래야 끊을 수가 없습니다. 진리를 깨닫지 못한 사람들만이 분리의식을 가지고

저건 더러운 놈, 저건 어리석은 놈, 저건 못된 놈이라며 손가락질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것들이 곧 나의 분신임을 알아야 됩니다.

  철이 많이 나는 나라와 물이 많이 나는 나라와 돌이 많은 나라에는 각각 그 자연과

연관지어진 동식물이 살지요. 이것을 일일이 이해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으므로 크게

육경으로 나누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계지같은 가지는 사람의 팔 다리에 쓰고, 식물의 씨는 사람의 씨(여자의 자궁,

남자의 생식기)에 쓰입니다. 인간의 기운을 상기시킨다거나 거들어 올리고 싶을 때는

뿌리가 깊이 박힌 것을 써야 됩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나 80% 이상은

맞습니다. 대체로 뿌리가 박혀 있는 기운이 강한 것일수록 사람에게 보기시키는

작용과 상기시키는 기운이 강한 것입니다.

  그러나 당귀는 이와 다릅니다. 머리부분과 몸통부분 그리고 뿌리부분의 작용이

그림과 같이 다릅니다. 앞의 이론대로라면, 미를 많이 쓰면 상기시켜 피를 위로 올려

줄 것이고 두는 파혈작용이 있어야 할텐데 그렇지가 않거든요. 그 이유는,

당귀뿌리가 깊이 박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뿌리이든지 뿌리의 중간부분은

끝부분보다 힘이 약합니다. 인삼도 끝부분쪽이 맛이 강합니다. 그것은 몸통보다 뿌리

끝부분이 뚫고 들어가는 성질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귀뿌리는 보혈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어혈을 풀어 주는데 쓰입니다.

  여러분들이 어떤 식물을 보았을 때, 지표면을 기준으로 윗쪽이 발달된 것과

아래쪽이 발달된 것 또는 상하가 고르게 발달된 것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버섯과 같이 지표 윗부분이 발달된 것이 있다고 합시다. 이런

것은 뿌리가 거의 없지요. 이것을 먹었을 때 독이 있는 버섯이라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요? 상기가 되거나 두통이 일어나지는 않지요. 설사가 심해서 창자까지 빠져

내려서 죽습니다. 버섯도 위와 땅속의 부분이 균형이 잡힌것은 대체로 몸에 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처음보는 식물일지라도 천과 지, 즉 상하가 균등하게 이루어진

것은 위험하지 않으나 한 쪽이 치우쳐 발달한 것은 독성이 있습니다.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았는데 머리는 조그맣고 몸통이 큰 복어를 잡았다고 합시다.

이건 보나마나 위험한 거지요. 독중에서도 음독(몸체가 크므로)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요리할 때는 기를 위로 끌어 올려주는 조미료 등을 첨가해야 됩니다.

색으로도 알 수가 있지요. 버섯이나 물고기의 색이 진하면 진할수록, 화려하면

화려할수록 독이 많습니다. 화장을 진하게 하는 여자일수록 독한 경우가 많습니다.

색깔이 진하다는 것은 어느 한 생각에 대한 집착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버섯이 색이

진하고 예쁘면 독이 있다는 식물학 지식은 누구나 어렴풋이 알고 있지만 음양관에

입각해서 지표를 중심으로 상하의 균형을 보는 지극히 간명한 식물관찰법을 일러준

사람은 없었을 겁니다.

  비법으로 전해내려오는 이런 이야기 한 마디를 듣기 위해 저는 엄청난 시간을

고생하였습니다. 그런데 버섯을 식용으로 할 때 여자보다는 남자에게 좋습니다.

  그러나 많이 먹게 되면 양기가 떨어집니다. 그것은 버섯이 음기가 강한 식물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버섯은 음지에서 자랍니다. 한 식물의 성품이 스스로 자랄 수

있는 땅을 결정하기도 하고, 땅이 그 식물의 성품을 결정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지표 윗쪽 부분이 발달된 것을 보면 '아하! 이놈은 음지에서

자랐겠구나'하는 것을 금방 알 수 있겠지요. 지표 윗부분보다 아랫부분이 많이 발달된

것은 양적이므로 습지에서는 잘 자라지 못합니다.

  우황청심원에 쓰는 대두황권(콩나물)은 뿌리 부분이 발달되어 있으므로 어떤 성품을

가졌을까요? 우리 몸에 들어와서는 윗쪽으로 작용을 합니다. 양적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콩나물과 복어를 함께 써서 요리를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멋진 콤비플레이가

되겠지요. 더우기 콩나물의 양적 부분인 대가리를 떼내고 요리를 하면 더 좋겠지요.

  요리 전문가들이 영양가 운운하면서 콩나물 대가리를 떼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지요. 한방에서는 이렇게 영양가 외에도 기의 승 강 부 침과 미의 후박 등을

보는 것입니다. 콩나물 대가리를 떼내면 양적인 부분만 남기 때문에 뱀장어나 복어와

같이 음독한 것과 같이 먹는다면 좋습니다. 그러나 콩나물 몸통만 계속해서 먹는다면

어리어리하게 두통이 오고, 더 계속해서 먹으면 기의 상승이 과해서 몸이 붕붕 뜨려고

할 겁니다. 특히 승마와 섞어 먹는다면 비행술 연습이라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의 승 강 부 침에 대한, 허준 선생님의 우화를 하나 더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허준 선생이, 감나무 잎이 하나 둘 떨어지는 가을날 어느 바둑고수인 노인과 바둑

삼매경에 들었습니다. 감나무 아래에 자리를 펴고 바둑을 두는 정취에 한껏 젖어

있는데 제자가 허겁지겁 달려와서는 긴급환자가 대기중이라고 허둥댔습니다. "체해서

뱃속이 꽉 막힌 환자인데 어서 손을 좀 쓰셔야지요" 하니까, "침으로 사관을

틔워주든지 네가 알아서 응급처치를 해라"하면서 거들떠 보지도 않았습니다. "아니?

당대의 명의로 추앙받는 자가 이럴수가!...." 제자는 하는 수 없이 사관혈에 침을

놓고 방법을 다했으나 듣지를 않았습니다.

  체한 것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하나는 위로 토하고 아래로 설사를 하는

상토하사 즉 곽란이고, 또 하나는 토하지도 사하지도 않는 기불승강, 즉 기가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않는 관격이지요. 전자는 좀 견딜만 하고, 같은 '곽'자 돌림인

곽향이 좋은 치료제로 쓰이는데 후자는 자칫하면 죽기 쉬운 급성입니다.

  이 환자의 경우가 바로 관격이었던 것입니다. 제자의 재촉에 마지못해 일어난 허준

선생은 바로 옆에 떨어져 있던 감나무 잎을 주섬주섬 모으더니 "이걸 좀 달여

먹이도록 하라"고 하는 것이었어요. 어이 없는 일이지요. 감나무 잎에는 떫은

성분(삽미)이 들어 있으므로 체한 것이 더 악화되겠지요.

  제자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건 미친 짓이야! 무당이나 하는.... 또

평소에는, 체한 데에 감나무를 쓰지 말라고 그렇게 강조를 하시더니...." 의아해

하면서 달여 먹였는데, 환자가 거짓말처럼 낫는 것이었어요.

  "이럴수가...." 제자는 허준선생의 경지를 더욱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모르면 물어

봐야지요. 그러자 "체했을 때, 감나무에 매달린 잎을 쓰지 말라고 했지 내가 언제 땅

떨어진 잎을 쓰지 말라고 하더냐?"하고 반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슬도 아침이슬과 저녁이슬이 다르듯이 같은 감나무의 잎이라도 매달

있는 것과 떨어진 것은 다르지요. 떨어진 감나무 잎에는 강하는 (떨어진 잎이므로)

기운이 있습니다. 바로 이것을 이용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혹시라도 이걸 외워서 곽란이나 관격에 떨어진 감나무 잎을 쓸 생각은

마십시오. 이것은 비유로 쓰인 우화일 뿐입니다. 같은 약이라고 해도 때와 장소에 따

변하는 기의 흐름을 잘 읽어야 한다는 좋은 본보기이지요.

  소양지기란 태양의 비추임이요, 어미 닭이 알을 품는 따스함이요, 친구간이나

부모자식간에 충고를 하거나 회초리를 드는 것입니다. 계란 노른자를 많이 먹으면

담즙분비를 촉진시켜서 담즙을 낭비시키므로 소양지기가 부족하게 됩니다. 소양지기가

과하면 곧잘 주먹을 휘두르는 폭력형 과격형의 성격이 되지만 소양지기가 부족하면

겁이 많고 공격적이지 못합니다. 계란 노른자를 많이 먹으면 양방에서는 담즙이

낭비되어 고갈되므로 단백질을 소화시키기 어렵다고 말을 하지만 우리 한방에서는

뱃속에 회충이 생긴다고 말합니다.

  태교법에 약 108가지가 있는데, 그 내용을 몇 가지만 살펴봅시다. 계란을 많이

먹으면 태아에게 회충이 생기고, 게를 많이 먹으면 게처럼 아이가 옆으로 나오려

하므로 횡산(태아가 팔부터 나옴)을 하기 쉽고, 문어나 오징어와 같이 머리털이

없거나 비늘없는 고기를 먹으면 어린애가 대머리가 된다고 합니다. 이건 사실입니다.

결코 미신을 합리적으로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동식물을 먹으면 그것이 가진

특수한 그 나름의 기의 작용으로 인하여 우리 체내의 어느 경락이 발달하게 되므로 그

영향이 우리에게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콩나물의 몸통과 뿌리를 우황청심원에 넣는 이유는 결과적으로 약성을 상초에

작용시키고자 함이지요. 이 외에도 우황청심원에는 산약, 감초, 인삼, 포황, 신곡,

서각 등 많이 들어갑니다. 서각은 물소뿔인데 비혈, 육혈, 즉 코피나는데 쓰지요.

물소뿔은 밤에 달이 간직하고 있는 월정을 빨아들이므로 그믐밤에 보면 후광같은 것이

드리워진다고 합니다. 달의 정을 모으는 또 다른 방법은, 경주에서 나는 옥돌같은

것에 홈을 파가지고 달빛 아래에 두면 그 홈에 물이 고인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월정수인데 화기가 많고 성질이 급하고 고약한 사람이 많이 먹으면 성격교정은 물론

신선이 된다고 합니다.

  "방약합편"하통에 서각지황탕(하통 60편)이 있는데 "치육혈불지급상초유어혈변흑

즉 멎지 않는 육혈(코피)과 상초에 어혈이 있어서 대변이 검게 되는 것을 다스린다"고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미신으로 여기는 한약방의 합리성을 몇 가지 예로써 증명해

보겠습니다.

  부뚜막의 흙을 약으로 씁니다. 복용간이라 하지요. 복용간을 빨갛게 달군 다음

냉수에다 탁 부으면 치지직 소리가 나겠지요. 이 물을 약으로 복용하는데 어떤 경우에

쓸까요?

  대들보 위에 쌓인 먼지를 양상진이라 하는데 이것도 약으로 씁니다. 최토제로

쓰이는 양상진은 콧 속으로 불어 넣는데 이것은 오래된 것일수록 좋습니다.

  수십년 묵은 고서를 뒤적거리다 보면 연거푸 재채기가 나고, 눈물이 나고,

멍멍해지는 수가 있지요. 이것도 양상진과 같은 기운의 작용입니다. 사마귀는 율무나

뜸을 뜨거나 면도칼로 잘라 치료합니다.

  또 제일 먼저 생겨난 사마귀에 뜸을 뜨면 나머지는 저절로 평정이 됩니다. 그런데

제 사부님께서는 아프지 않게 낫는 방법을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비바람이 불고

번개가 사납게 치는 날 사마귀를 번갯불에 노출시킨 뒤 '아! 뜨거'를 세 번 외치면

낫는다"고 해서 "에이, 사부님도 농담이 지나치십니다"하니 "의사인 네게 내가

거짓말을 하겠냐? 실지로 이렇게 해서 수백 명도 더 나았느니라"고 했습니다. 아마도

이것은, 어떠한 소양지기의 전기를, 주역학적으로는 사진뢰에 해당하는 어떤 기운을

이용하는 것이리라 여겨집니다. 왜냐하면 번개는 이 지상에 순식간에 엄청나게 많은

소양지기를 갖다 나르기 때문입니다.

  우황청심원에는 주사(수비해서 씀)와 우황(소에게서 나오는 특정한 이물질,

해열제로 씀)등의 광물질류가 들어가므로 그 작용이 아래로 내려가겠지요. 신장의

열을 치고 싶다면 이대로 쓰면 되겠지만, 심장의 열을 치고 싶다면 콩나물을 넣는

겁니다(콩나물에 열을 가해서 초(볶을)를 해서 쓰면 더 좋지요). 그러나 승마는 너무

끌고 올라가므로 쓰지 않지요. 흔히 먹는 콩나물이 아무것도 아닌 것같지만 이렇게

위로 끌고 올라가는 것이 신기하지요. 거듭 말씀 드리자면 식물은 동물과 반대의

형태로 작용을 합니다. 동물은 식물을 통해서 지미를 얻습니다.

  파의 뿌리 가까운 쪽의 흰부분을 총백이라고 하지요. "방약합편" 중통 13번

오적산을 보면 총삼본이라고 씌어 있습니다.

  "치감상풍한 두신통 사지역냉 흉복작통 구사 혹상생냉" 몸이 냉한 사람에겐 오적산,

더운 사람에겐 방풍통성산이 성약입니다. 또 파의 윗부분을 잘라 먹으면 하기시키는

작용이 강하므로 변비나 소변이 안나오는 것과 경도불통에 아주 특효약입니다. 이렇게

하초에 쓰는 사하제이지요. 이건 비방입니다. 오늘 아침에 이것 하나만 듣고 가더라도

보람있는 일이 될겁니다.

  한편 '총백삼경을 넣어라'는 처방이 있다고 가정할 때 이 처방은 위로 올라가게

하는 약일까요? 아래로 내려가게 하는 약일까요? 또 몸을 덥게 하는 약일까요? 차게

하는 약일까요? 위로 올라가게 하고, 몸을 덥게 하는 약임을 알 수 있습니다. 공기도

더운 공기가 위로 올라가고, 찬 공기는 아래로 내려 오지요.

  "방약합편" 하통 136번 반총산을 보면 "치비위허냉 심복공극연흉협 방광소양

신기작통" 창출, 감초, 삼릉, 봉출, 백복령, 청피, 사인, 정향피, 빈랑, 현호색,

육계, 건강으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빈랑만 하기시키는 약이고, 전반적으로

약성이 가볍고 더운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창출은 온비거습, 삼릉 봉출은 파적지제에

해당하는데 주로 물을 말리는 약입니다. 현호색은 혈중의 열 또는 혈하고 관계되는

부인들 약이고, 육계와 건강은 속부위를 데우는 약(건강과 양강은 술먹고 속이 냉한

사람에겐 꼭 쓰는 약임)입니다.

  그리고 여기에다 총백일경을 넣으라고 되어 있습니다. 파의 흰 부분에서

실뿌리까지를 톡 잘라서 넣는 겁니다. 이렇게 파뿌리가 들어가는 것만 봐도 기를

거들어 올려 승해 주는 약임을 바로 알 수가 있지요. 반총산은 하초가 냉한 사람에게

쓰이는 성스러운 약입니다. 요즈음 말로 하면 신장결석, 방광결석, 신경성 대장염,

남녀 임질 등의 성병, 여자들 냉증, 옛말로는 산증 등으로 배가 살살 아픈 경우에

쓰는 데 마른 사람에겐 아무리 산증이 같아도 쓸 수 없습니다.

  주마간산격으로 지나쳐가지만 총론에서 다루는 약들이 실은 대단한 것들입니다.

이젠 어떤 탕이라도 파뿌리를 넣으라고 되어 있다면 여러분들은 쉬 "몸을 덥게 하는

것 내지는 아래에 있는 것을 위로 거들어 올려주는 것이로군"하는 것을 알 수

있겠지요.

  이번엔 씨의 승 강 부 침을 한번 살펴 볼까요. 씨에는 주로 '자'나 '인'자를 쓰는데

사람에게 상응시켜 보면 씨는 신장이나 생식능력을 돕는 작용을 합니다.

  "방약합편" 권말부분에 보면 석은보유방이란 제목으로 처방이 10여개 실려있는데

그중에 연령고본단이 있습니다.

  연령고본단은 "치오로칠상 제허백손 안색 쇠후 형체영수 중년양사불거 정신단소

미지오순 수발선백 수족탄탄 소장산기 부인무자 하원허냉" 중년 이후에 양사가

불기하여 12방향이 잘 되지 않고 정신이 단소하여 기억력이 가물거리므로 방금했던

이야길 하고 또 하는 경우에 씁니다.

  육미지황탕에 가오자(오미자, 구기자, 토사자, 복분자는 넣고, 사상자는 빠져있음)

가귀비탕 재료 등으로 구성된 이 연령고본단은 마른 체질의 사람에게 기가 막힌

약이지요.

  여러분들 개업기념으로 아버지께 정력제를 선물하는 것은 정말 멋진 생각입니다만

몸이 통통하고 대머리가 벗겨지고 여름에 땀을 많이 흘리며 씩씩거리는 아버지에게

연령고본단을 선물한다면 한의대 헛보냈다고 땅을 치며 통곡하실 것입니다. 이 약은

3개월 가량 먹게 되는데 위와 같은 사람이 복용하면 먹을수록 양기가 더

떨어지겠지요. 이럴 때는 아쉬운대로 승마와 콩나물을 합한 승마대두황권탕을 써

보세요. 여기에다 반하나 남성을 넣고 이진탕을 가미하면 멋진 정력제가 됩니다.

여기에 다른 것을 좀더 넣고 싶으면 의이인 같은 거습지제에 보중익기탕이나

곽향정기산을 가미하면 더 이상 좋을 수가 없겠지요. 아무튼 좀 마르고 신경질 적인

환자에게 좋은 연령고본단에 오자가 들어감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때 이의를 제기하는 학생이 있습니다. "선생님! 만형자도 씨지만 정력제로 쓸 수

없잖아요?" 그렇습니다. 만형자는 쓸 수 없지요. 씨가 좀 쫀득쫀득하다거나 맛이 시고

떫거나 해야 수삽이 될텐데 만형자는 무미일 뿐 아니라 매우 가볍습니다.

  중통 125번의 만형자산을 찾아보세요. "치신경유풍열 이중열통출농즙 혹명 혹농"

만형자, 적복령, 감국, 맥문동, 전호, 생지황, 상백피, 적작약, 목통, 승마, 감초가

들어간다고 적혀 있습니다. 그러므로 만형자, 승마, 감국, 백지 등의 가벼운 약은

위로 올라가므로 머리쪽 질환에 쓰입니다. 씨라고 해서 다 하초쪽으로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만형자와 같이 승 강 부 침의 공식에서 어긋나는 것이 있습니다. 한방은

고지식한 안목으로 보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씨앗 중에 결명자라는 것이

있지요. 밝은 명자 그대로 눈에 좋은 것인데, 초결명과 석결명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통 108번 세간명목탕을 보면 "치일절풍열안목 적종동통"에 초결명을 쓰지요.

그리고 머리를 좋게 하고 두통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것으로 만형자, 감국 등도

들어갔지요.

  하통 107번 석결명산을 보면 "치간열 안적종 생예 혹비열 검내계관현육 해정동통

라기"에 석결명, 초결명은 군약으로 되어 있습니다. 눈의 질환이 열로 인해서 올까요?

냉으로 인해서 올까요? 열로 인해서 오지요. 그러므로 석결명과 초결명은 당연히 열을

식혀주는 약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식혀주는 약을 많이 먹으면 양기가

떨어지겠지요. 따라서 결명자는 씨앗임에도 불구하고 많이 먹게 되면 오자와 반대되는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본초강목"에도 배가 찬 사람은 결명자를 삼가라고 되어

있는데 길가 돌팔이들은 정력제라고 떠들어 댑니다.

  이상과 같은 예외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식물의 뿌리부분은 동물의 머리쪽으로

작용을 하고, 가지부분은 동물의 팔 다리에 작용을 하고, 지상부분은 동물의 하초에

작용한다는 것을 공부했습니다.



@{

  동양의학혁명

  (사암도인 침술원리

  40일 강좌 외)

  총론


  전11권 중 제5권


  강론:금오 김홍경

  도서출판 신농백초


  점역처:대한적십자사

  서울특별시지사 점자도서실

@}

@[(3)@]

  동물의 성품은 머리와 몸의 비율, 임맥과 독맥의 상대적인 발달 정도, 입술 모양,

눈의 크기, 몸에 털이 있느냐, 깃털이 있느냐, 비늘이 있느냐, 아니면 딱딱한 껍질을

가졌느냐.... 등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먼저 동물을 육경적으로 분류를 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털이 난 동물 즉 호랑이, 산돼지, 곰 등의 맹수를 모충이라 하는데 이러한 동물들은

목에 속하고, 우리 인간과 같이 발가벗은 동물을 나충이라 하는데 태음습토에

해당하겠지요. 그리고 갑각류와 같이 딱딱한 껍질에 싸인 것은 양명조금에 해당되고,

비늘이 있는 생선류는 수에 속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마른 사람에겐 바다에서 나는

해조류, 생선 등을 많이 먹도록 권해야 합니다. 비늘이 있는 물고기는 태양한수에

해당되고, 털이 있는 짐승(맹수)은 소음군화에 해당됩니다. 한편 같은 화라도

소양상화는 깃털달린 것으로서 매우 공격적인 성품을 가진 독수리나 벌 따위를

가리킵니다. 이렇게 대충 분류를 하면 다소 무리한 점도 없지 않지만 참고로 해

두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정도만 알아도 어떤 동물이 그 해에 크게

번성한다면 그 해는 그 동물이 생활하기 알맞도록 풍 한 서 습 조 화가 적절히

구성되어 있다고 추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병인년은 인신상화의 해이므로

건드리면 톡톡 쏘는 쐐기나 모기가 번성한다든지, 어떤 해에는 날파리나 메뚜기떼가

번성했다고 할 때 우리는 그 동물의 성품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가령, 메뚜기를

예로 들자면 머리 부분이 큰가 몸통이 큰가? 날개가 있는가. 눈이 발달되었는가. 입은

어떻게 발달되었는가. 심지어는 메뚜기의 맛을 보아야 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비슷한 종류인데도 방아깨비처럼 순한 것이 있는가 하면 사마귀와 같이 아주 독한

것이 있으므로 참으로 예리하게 판별치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므로 결국에는

이론보다는 직관에 의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지요.

  펠리칸이 번성하는 나라와 독수리가 번성하는 나라가 있다고 할 때 어느 나라가 더

평화롭겠습니까? 명태가 많이 잡히는 나라와 상어가 많이 잡히는 나라가 있다고 할

때도 어느 나라가 더 평화로울까요? 주역학자나 오운육기학자는 이런 징조를 금새

알아차리고 그 민족성을 꿰뚫어 봅니다. 어느 동네에 가니 버섯이 많이 나더라, 어느

동네에는 선인장이 많더라....하면 이내 그 동네의 토질을 알 수가 있지요.

  여러분! 이런 징조를 보는 공부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아버지를 보고 잘

모르겠으면 그 아들을 보고, 땅의 토질을 보고자 할 때는 그곳의 나무를 보라고

했습니다. 산지나 그 식물이 자란 때의 영양상태나 기후까지도 식물 하나만을 보고

추리해 낼 수가 있습니다. 무생물의 경우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뾰족뾰족한 돌이

많고 산들이 대체로 모가 난 나라의 사람들은 '잔인하거나 폭력적이겠구나'하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지요. 동식물은 물론 무생물까지도 서로 얽혀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음을 여러분은 깊이 새겨야 할 것입니다. 우리 나라 개를 보세요. 국민성과 같이

양순하기 짝이 없지요. 야채를 주로 먹는 우리 나라 개에 비해서 고기를 주로 먹는

서양의 개들은 대체로 난폭하고 사납습니다.

  식물관상, 동물관상, 인간관상 심지어는 음악, 미술 등의 예술까지도 육기, 즉 풍

한 서 습 조 화와 미묘한 연관이 있습니다. 왕의 사당에 불이 났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공자는 "머지 않아 정변이 일어나겠군"하고 짐작을 하더랍니다. 어떤 일에는 그것을

읽을 수 있는 징조가 있습니다. '금년에 보리가 대풍작이다'라든가 '금년엔 울릉도

오징어가 풍어다'고 할 때 주역학자들은 이것을 육경에다 대입을 시키고 거기에서

표출되는 양상으로 "아! 어떤 일이 벌어지겠구나"하고 알아냅니다. 식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산지를 보고도 성품을 알 수 있고, 그것의 생김새를 보고서도 성품을

짐작할 수 있다고 했지요.

  지상과 지하를 구분해서 보는 음양 구별법을 말씀드렸었는데 땅에 사는 식물이

아니라도 음양의 구별은 가능합니다. 물 위에 사는 식물을 볼 때도 마찬가지지요.

물위나 아래의 어느 한 쪽이 반대 쪽보다 훨씬 크다면 이것은 틀림없이 독성이 강한

식물일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개구리밥(부평초)이 있지요. 부평초는 피부병에

특효약입니다. 그러면 이 부평초는 가볍게 작용할까요? 무겁게 작용할까요? 부평초는

가볍게 작용하므로 두통에도 잘 듣습니다.

  나팔꽃을 보면 뿌리는 아주 작고 땅속으로는 얕게 들어가 있지만 위로 감고

올라가는 힘과 높이는 대단하지요. 그러므로 나팔꽃은 쉽게 식용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선생님! 마늘이나 양파같은 것은 지상부분이 지하부분보다 훨씬 큰데 어떻게 식용을

할 수 있습니까?" 아무리 지상부분이 더 크다고 해도 그 식물의 전체적인 무게중심은

지하부분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양파와 마늘은 상기가 되지요. 마늘을 생으로 먹으면

분심을 돋구고, 익혀서 먹으면 음심을 돋군다고 합니다. 분심을 돋군다는 것은 바로

상기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종합적으로 상하의 균형이 맞는 식물(약초)을

성스럽다하고 또는 영초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식물을 어찌 상하 관계만으로 나눌 수

있겠어요? 관찰법 이외에도 맛을 보거나 향을 맡거나 산지를 보는 방법을 통해서

식물을 감별할 수 있지요. 그리고 모양의 생김새 외에도 질을 보기도 합니다. 민들레

꽃씨가 터지기 일보직전에 있는 경우라든가 배추가 중심을 향해 모이는 상황이나

난초처럼 바깥으로 축축 처지는 성질, 쭉쭉 뻗어 올라가는 것과 빙빙감아 올라가는

덩쿨도 있지요. 또한 이런 생김새도 보지만, 소나무 껍질과 같이 단단한 것, 선인장

껍질과 같이 보드랍고 매끄러운 것, 또는 매끄러운 것 등의 질을 보기도 하고 색을

보는 방법도 있습니다.

  식물과 육경에 관해 몇 가지 예를 들어봅시다. 휘어감는다든가 바깥에서 안으로

오그라드는 성질이 있는 덩굴식물류는 궐음에 해당된다고 봅니다. 이런 식물은

수검하고자 하는 성질이 있으므로 속이 실한 경우가 많지요. 난을 키우고 계신 분은

잘 알 것입니다. 난은 섬세하고도 유연한 인상을 주지요. 이렇게 간들간들 간드러지고

아름다운 자태를 가진 것은 소음군화에 속합니다. 칸나, 수선화, 히야신스, 양귀비와

같이 간들거리면서 예쁜 꽃들도 모두 소음군화에 속합니다. 과일도 마찬가집니다.

배처럼 딱딱한 것이 있는가 하면 복숭아와 같이 연한 것, 또는 바나나와 같이 지극히

부드러운 것이 있습니다. 또 식물이 자라는 산지에 따라서 그것이 가진 속성과 형태가

다 다른 것이 민심과도 연결이 됨을 오운육기법을 배우는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도 이제 상당히 자신감이 생기셨을 줄 압니다. 저도 이런 이야기를 들은

처음에는 그랬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갈수록 그 자신감이 엷어지더군요. 왜

그럴까요? 지금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이론에 너무 집착했기 때문입니다. 벌써 몇 번째

강조되는 이야기입니다만 결국은 이론에 의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그때 그때의 직감과

직관으로 파악해야 합니다. 만물은 단순한 음양이나 몇 가지 육경적 이론만으로 알 수

있도록 되어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느 국민학교 어린이가 미술시간에 난을 그리라고

하니까 보석을 가득 그리더랍니다. 어째서 그렇게 되느냐고 담임선생님이 묻자, "우리

아버지는 난초를 보석보다 더 귀히 여기십니다"라고 대답을 했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중학생이 되어서 다시 난을 그렸을 때에는 난초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그리더라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사람들은 이론적이 되고, 속으로부터 뻗어나오는

느낌을 억누르고 외부로부터 들어가는 이론과 지식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이중섭이나 피카소 같은 화가들의 그림을 보면 대상 자체의 형질적인 점보다는

그것으로부터 받는 느낌, 속으로부터 반향되어 나오는 인상을 그림을 통해 알 수

있지요. 나아가서는, '틀'이 없는 그림인 비구상을 하는 화가도 많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네 동양의학도 직관을 중요시하는 공부를 해야지 따분하고 지루한

이론이나 지식공부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눈이 부시도록 화창한 날인데도 우울할 수가 있고, 추적추적 장마비가 계속되는

데도 명랑한 날이 있습니다. 지하철을 탔는데, 차내 분위기가 어색합니다. 그러면

"아! 조금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었군!" 이런 느낌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벼랑의

바위틈에 붙어 있는 난초에서부터 화원에서 곱게 가꾸어지는 장미꽃에 이르기까지

그때 그때의 상황에서 다른 식물의 기분을 살필 수 있을 만큼 여러분은 민감해야

됩니다. 민감하지 않으면 육경공부가 이론화되어서 사물을 대함에 그저 이론적으로

분류하게 되고 맙니다. 어떤 느낌을 잡으려 하지 않고 "이 사람은 궐음 소음 태음

소양 양명 태양 중 어디에 속할까"하고 분류를 하기 시작합니다. 여섯가지 틀을

만들어서 그 틀 속에 사람을 집어 넣습니다. 너는 무슨 형! 저건 무슨 형! 이라고

판단하는 즉시 여러분은 자신의 판단에 속기 시작합니다. 순간적으로 맞았다면

몰라도, 사람을 어떻게 틀 속에 넣어 고정시킬 수가 있겠습니까? 무엇보다도 주관적인

지식이나 선입관없이 냉철하게 볼 수 있는 심안의 개발이 중요합니다.

  뚜껑없는 우물이 있었습니다. 어느 축제날, 한 사람이 발을 헛디뎌 그만 이 우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축제에 들뜬 사람들은 아무도 이 사람의 구원 요청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밤이 깊어 축제가 끝나자 사람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아무리 외쳐도 구조의 손길은 닿지 않고, 무심한 별들만이 반짝였습니다. 그러던 중

지나가던 스님이 이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오 자비로우신 스님 절 좀 올려 주십시오" 그러자

  "당신은 아마도 전생의 업 때문에 여기에 빠졌을 것입니다. 부처님 말씀에 업은 다

치뤄내지 않으면 끝날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부디 그 속에서 당신의 업을 다

치루시기 바랍니다. 소승이 숙명통을 얻었다면 당신 전생의 업보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을텐데...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하고는 총총히 사라져버렸습니다.

  우물에 빠진 사나이는 스님의 무심함을 한탄하며 다시 살려달라고 외쳤습니다.

이번에는 사회개혁가가 지나가다가 사람소리를 듣고 급히 달려왔습니다. 빠진 사람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황급히 일어서서 사회개혁가가 말하기를

  "그렇습니다. 현 사회는 이런 모순이 너무도 많습니다. 세상에 우물에 뚜껑을 하지

않다니! 지금 당장 가서 전 세계의 우물에 뚜껑을 만들어 달도록 발벗고

나서겠습니다. 서명운동도 하고, 정치가를 만나서 설득도 하겠습니다"

  "아니? 여보시오. 설득도 좋고 개혁도 좋지만 죽어가는 사람은 살려놓고 봐야 할 거

아니요?"라고 소리를 지르자,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개인이란 사회 전체의 개선을 위해선 아무것도 아닙니다.

지금이야말로 바로 당신과 같은 이런 희생이 좋은 본보기로서 꼭 필요한 때입니다.

제가 당신을 구하는 일이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당신의 희생은 참으로 값진

것입니다..."

  이건 또 무슨 말도 안되는 유토피아적인 사고방식입니까? 자기 스스로의 내혁을

못한 사람이 어떻게 타인을, 사회를 개혁시킬 수가 있겠습니까?

  우물에 빠진 사람은 이제 자포자기를 했습니다.

  "에라 믿지 않았던 하느님이지만 마지막으로 기도나 하고 죽자!"

  그러자 위에서 두레박이 내려왔습니다. 놀라서 올려다 보니, 금분이 노랗게 칠해진

검은 성경책을 가진 목사가 구조의 두레박을 내리고 있었습니다.

  "오! 하느님은 역시 하느님입니다. 고맙습니다"

  우물에 빠진 사람은 중얼중얼 기도문을 외었습니다. 이윽고, 목사가 우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 주었습니다.

  "당신은 정말 은혜로운 종교인이십니다. 고맙습니다"고 인사를 하자,

  "항상 예수님께서는 불쌍하고 고통받는 자를 구원하고 위안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할 때 하늘나라로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셔서

당신의 아들 딸에게도 자주 우물에 빠지는 법을 일러주십시오. 그리해야 다른

사람들도 하느님의 구원을 받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개인의 구원이 선행되지 않는 종교는 종교가 아닙니다. 그런 종교인은 간접적인

폭력자입니다. 이 모든 것의 이유는 바로 '깨어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무의촌 봉사는 강원도 첩첩산골의 어느 마을로 결정되었습니다. 선배님은 왜

안가십니까?" "야 임마! 기왕이면 경치좋고, 소주라도 한 잔 할 수 있는 데가

좋잖아..."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우리는 거룩한 허준선생님의 후예로서 한

끼 밥을 굶더라도 오직 봉사와 희생과 노력을 다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위대한 삶이

이루어지지 않겠습니까?" 이것도 일종의 Ego일지 모릅니다. 나에게서 일어나고 있는

마음조차도 관찰할 수 없는데 어떻게 식물을 관찰할 수 있겠습니까? 몇 가지

이론만으로 신비한 식물의 세계를 어떻게 탐사할 수 있을지 저는 참으로

의심스럽습니다.

  여러분의 부모님이 여러분들에게 쏟고 있는 사랑의 9할은 진정한 의미의 사랑이

아닐 수 있습니다. 미래에, 부모님들이 당대에 못다 이룬 꿈을 이루어주도록, 맺힌

한을 풀어주도록 하기 위한, 당신들의 분신에 대한 사랑이기 쉽다는 것입니다. 절대로

인간관계에 '이용'이 개입되어서는 안됩니다. 제가 왜 이 이야기를 강조하느냐 하면,

식물의 성품을 알면 오직 치병에 쓰고자 해야 하고, 쓸 때는 부득이 쓰는 마음을

가져야지, "저건 어디 먹으면 좋아, 저건 정력제야, 저건 어쩌구..." 이래선

안되겠지요. 아름다움을 아름다움 그대로, 고통을 고통 그대로 느끼고 볼 줄 아는

심안을 열도록 해야지 얕은 생각을 굴리면 마음이 편하질 못하지요. 여러분이 선문답

들을 때 마음속에 청풍이 솨아 하고 불어옴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참의미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는 우리는 산 송장과 같습니다. 살아서 펄펄 끓는

존재가 아니라, 과거의 지식과 이론과 수만년 동안에 누적된 부질없는 전통과 관습,

습관에 물들어 있는 우리는 사실 산 송장들입니다. "내가 이래뵈도 한의대생인데,

얼굴도 잘 생기고, 집도 부유하고, 또 몇 가지 주워들은 풍월이 있는데..." 이런

명예의식, 이런 교만의식이 여러분의 자아를 죽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공부는

동양의학 이전에 동양철학입니다. 동양철학의 근본은 하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4)@]

  사상 중 하나인 입이 하는 일을 보면 먹는 일과 말하는 일로 나눌 수 있는데 사상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뒤로 미루고 여기에서는 입의 먹고 맛보는 작용기능에 관하여

먼저 이야기하겠습니다.

  맛을 보려면 우선 혓바닥이 건전해야 합니다. 미맹이라든가 오미 중의 어느 한

가지에만 잘 길든 사람은 곤란합니다. 건강을 위해서는 오미를 고루 섞어 먹거나,

어느 시점에서 먹고 싶은대로 먹어야 합니다. 단 허욕에서 발동되는 미각이어서는

안되겠지요. "아! 지난 여름에 생선회를 먹고 식중독으로 죽을 고생을 했는데..."

이런 식으로 몸을 사리지 마세요. 그건 옛날 일입니다. 어느 때에 자신의 속으로부터

무엇이 갈구되어지는 지를 알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의사 이상입니다. 이것을 일반

사람들은 모르므로 우리에게 상의를 하러 오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는 환자의 깊은

속에서 요구하는 맛을 알아 내어 그에 맞게 약을 주어야 하는데 잘 모르겠으면 오미를

두루 섞어서 주도록 하세요. 대황같이 쓰고 찬 약이 들어가면 육계와 같이 달고 더운

약도 넣고 산사같이 신 맛의 약도 좀 넣고, 짠 맛의 약이 없으면 집에 가서 음식을 좀

짜게 먹으라고 하는 식으로 섞어주면 이상이 없습니다. 공연히 잘난 척하고 맛을

극단적으로 편벽하게 취해서 약을 지어 주면 여러분에게 엄청난 화가 돌아옵니다.

겨울을 지나고 봄에 열매를 맺는 보리로 밥을 지어 주면 겨울을 모르는 쌀보다는

냉하므로 자꾸 하기가 되고 방귀가 풍풍 나오는 것입니다. 옛부터 단식가들은 소나무

잎을 무척 좋은 음식으로 여겼습니다. 그것은, 소나무가 늘 푸르게 사시(춘하추동)를

지내므로 원형이정의 덕이 있어서 인간에게 무해무독하다는 것입니다. 전체적인

덕성과 성인의 성품을 가진 것이 바로 소나무올시다. 이런 소나무 뿌리에서 나는 것이

복령이지요. 또 그것이 조금 굵어진 것을 백복령이라 합니다.

  그런데 너무 섞어 먹어서 병이 났다면 무엇을 먹어야 되겠습니까? 담미를

넣어주어야지요. 담미도 전체적으로 작용하므로 중앙토에 넣습니다. 그러면

육경으로는 어디에 배속이 될까요? 애매하지요? 굳이 억지를 써서 배속을 시키려고

하지 마세요. 담미가 있고 나서 육경이 생겼을진대 육경이라는 틀 속에 담미를

끼워넣으려고 집착하지 마세요. 아무튼 소나무는 상하가 평등하므로 음양이

화평합니다. 그리고 사시에 청청하므로 전체성과 완전성이 있습니다. 춘하추동을 다

지낼 수 있는 사람이나 개와는 달리 곰은 겨울잠을 잡니다. 이것은 곰이 아무리

영리하고 민첩한 동물이라 하더라도 어딘가 한 구석 모자람이 있음을 시사합니다.

뱀도 마찬가지겠지요.

  "장자"에 "여름철에 사는 매미나 하루살이에게 겨울에 눈이 풀풀 내리는 아름다움을

이해시키기가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겨울에 꽃을 피우는 식물은 어느 경락과 연관지어질까요? 소음군화꽃인데

겨울(오행상수)에 피니까 수 가운데 화가 있는 경락인 족소음신경이나 수태양소장경이

되겠지요. 특히 족소음신경락에 해당하는 자(12지 가운데에서)의 성분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겨울에 꽃이 피는 것만을 보고도 "아! 이걸 먹으면 어떻게

되겠구나"하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춘 하를 양, 추 동을 음이라고 할 때 지상부가

지하부보다 큰 식물은 언제 잘 자라겠습니까? 또한 버섯은 언제 잘 자랄까요? 겨울에

오는 기러기와 봄에 오는 제비 중 어느 쪽이 몸이 더울까요? 옛날 사람들이 "중풍에는

오리피를 먹어라"고 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여러분은 너무 무조건 외우길

좋아합니다. 피곤하게 정신을 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지요. 그렇지만 외워 가지고는

참 의미의 답은 한 마디로 할 수가 없습니다.

  약을 먹을 때, 계저주면(닭고기, 돼지고기, 술, 밀가루 음식)을 금하라고 주로

이야길 많이 합니다만 무조건적으로 먹지말라고 해선 안되지요. 환자에 따라서 쓰기도

하지요. 저제탕이라고 하는데 돼지발톱(족발)에 사물탕을 넣고 천산갑, 조각자를 조금

더하여 달여 주면, 산모가 젖이 잘 나오지 않을 때 이것을 복용하면 젖이 많이

나옵니다. 무조건 외워서 써 먹으려고 하지 마세요.

  사시사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식물이 있다면 그것은 영초지요.

동물가운데에는 인간만이 유일하게 때를 가리지 않고 성욕을 발산할 수 있습니다.

다른 동물은 식물과 마찬가지로 발정주기가 있지요. 그리고 인간 중에도 봄에는

여자의 발정도가 세고 가을에는 남자의 발정도가 세다고 하는 이야길 들어보셨겠지요.

이건 당연한 것이지요. 봄에는 양기가 승발하므로 여자들의 기운이 평정을 찾고,

가을은 수렴하고 장하는 음기가 성할 때이므로 남자들의 기운이 평정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엄밀히 따지면 인간에게도 동식물과 같은 주기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신은 어느 때 어느 장소의 어떤 마음이라도 용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공부를 하고 나서 자 축 인 묘 진 사 오 미 신 유 술 해에 있는 어떠한 경락이라도

꺼내고 싶을 때 꺼낼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신에 가까운 사람입니다. 그러려면 마음이

어떻게 되어 있어야 되겠습니까? 비어 있어야지요. 무엇이든지 다 반영할 수 있다는

것은 항상 비어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인의 정치는 고기를 잡되 너무 촘촘한 그물을 쓰지 않음과 같다고 했습니다.

아내가 바람을 피웠다고 할 때도 너무 나무라면 안되지요. "애들도 있고, 우리 집안

가문이 있지 않느냐..."하고 처음엔 타일러야지요. 우리는 어린 새싹을 귀하게 여기듯

막 일어서려는 것을 사정없이 밟아 죽여서는 안됩니다. 다 때가 있지요. 봄, 여름에

만물이 무성히 생장할 때는 우리 마음도 그것에 따르게 하고 가을이 되어 거두어야 할

때는 지체없이 거두어들이는 것입니다. 추수라 함은 살의 의미도 있지요. 예수님께서

"이제 추수기가 다가왔다"고 말씀하신 이면에는 심판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이러한

생장화수장의 리듬을 옛 성인들은 잘 지켜나갔던 것입니다. 여러분! 옛날 성인들의

덕화정치의 기본이 바로 음양오행, 오운육기에 있었음을 이제 충분히 이해하셨으리라

믿습니다.

  간기가 성해서 비장기운을 강하게 억누르고 있는데다가 비타민 C를 한꺼번에 10알씩

먹이다 보니 요즈음 과비타민증이 무지하게 많아요. 또 요즈음은 의학자들이

만들어내는 병도 있습니다. 바로 의사병이지요. 의사의 처방대로 먹은 약으로 인해

생기는 병입니다. 우리 한약은 왜 이런 부작용이 없는 줄 아십니까? 대황이면 대황,

이렇게 우리도 단방만 형식적으로 처방했다면 부작용이 많았을지 모릅니다. 처방이 약

다섯가지가 되는 것이 주로 상한론이지요. 그러므로 상한론 처방이 대체로

위험합니다. 그렇지만 그것도 양약의 위험한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감기약

하나만 주시오"하면 무엇을 넣었는지 몇 알 먹지도 않았는데 머리가 핑 돌죠. 운전할

때 보면 깜박 졸고 "아까 감기약을 먹었는데 이상하게 팽그르르 돌아요"라고 말을

하지요. 이것은 섞어주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우리 한약은 약을 골고루 넣어주기

때문에 부작용이 없는 것입니다.

  옛날 구제프가 티벳의 신비한 수도승을 만나서 음식을 오래 씹어 먹다가 망신당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250살 먹은 신비의 수도승을 만났습니다. 구제프라고 하는 사람도

유명한 도인인데 이 사람이 도를 구하러 갔을 때 어느 인도 요기가 시키는 대로

음식을 먹을 때 한번에 오십번이상 꼭꼭 씹어먹기로 작심을 하고 밥을 먹었습니다.

여러분들 음식을 30번씩 씹어먹는 분 있습니까? 음식을 30번씩만 씹어먹을래도

엄청나게 힘이 듭니다. 그런데 50번씩 씹어먹으려니까 얼마나 힘이 들겠어요? 이

모습을 보던 노승이 "자네 왜 음식을 꼭꼭 씹어먹고 그러는가"하니 "아휴! 이런 것도

모르십니까? 250살까지 살았으면서도. 저는요 인도의 어떤 스승이 음식을 꼭꼭

씹어먹으라고 해서 그말대로 하고 있지요" 그러니까 노승은 깔깔깔깔 웃으면서

"자네는 보나마나 40대도 못되어서 위궤양 등 모든 위장병만 잔뜩 걸릴걸세"하는

겁니다. 재수없는 소리를 듣고서 기분이 되게 나빴습니다. 그런데 구제프가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250살까지 산 노인이 거짓말 할 까닭은 없을 것이고, 또 여러 사람이

도인으로서 숭앙을 하고 있으니까 그 노인에게 이유를 물어봤습니다. 그 이유인즉

인체라는 것은 안쓰면 그 기능이 상실된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소변이 안나온다고

이뇨제를 자꾸 쓰는 지금의 신장 치료는 위험합니다. 소화가 안된다고 소화제를 자꾸

쓰면 결국 소화능력 자체는 없어지고 소화제만 의존하게 되죠. 그러니까 젊었을 때는

돌이든 뭐든 다 섞어서 아무거나 먹어라. 그래서 위장을 단련시켜야 된다는 것이 그

노인 말씀의 요지였습니다. 아무튼 그런 식으로 뭐든지 너무 씹어 먹는 것도 병이

되는데 섞어 먹지 않으면 얼마나 큰 병이 되겠습니까? 그래서 한방에서는 가능한 한

원리를 모르면 섞어줄 것 또 사시사철을 다 지낸 약이 영약이라는 것이니, 봄에는 단

맛, 여름에는 약간 매운 맛, 한참 습할 때는 약간 짠 맛을, 가을에는 좀 신 맛과

겨울에는 쓴 맛을 좀 가해주세요.

  여러분이 현재 특별한 병이 없이 별로 뚱뚱하지도 않고 냉하지도 않고 더웁지도

않은 평범한 체질이라면 지금부터 일생동안 지켜보세요. 어마어마하게 좋은 효과가

있을 겁니다.



@[(5)@]

  만일 병에 걸렸는데 그 병에 맞는 음식물이 생각나지 않을 때도 섞어서 약을

지어줘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달고, 쓰고, 시고, 맵고, 짜고 한

춘하추동의 사시의 덕성, 오운육기의 덕성을 몽땅 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제대로 오행 순환을 해서 전체를 형성하기 때문이지요. 전체는 곧 신이요, 신은

완전이요, 건강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편안함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얘기죠. 섞어 먹는다는 것, 뭐든지 종합해서 먹는다는 것, 이것은 자체

나름대로 어떤 싸이클을 이루게 됩니다. "나는 앞으로 간장 전문만 할거야. 어떤 것만

전문할 꺼야" 이러지 마세요. 간장암 박사가 간장암으로 죽었어요. 왜 그런 줄

아십니까? 간장암 전문이라고 하니까 간장암 환자만 오거든요.

  간장이 암이 될 정도의 사람이라면 그 성격이 얼마나 지독하고 모질겠습니까?

속으로 굉장히 집착이 강한 사람이겠지요. 성인의 지혜라는게 뭡니까? 결국은 빈

지혜가 성인의 지혜죠. 정신 건강의 극치는 무심입니다. 육체적 건강의 극치는

조화입니다. 정신건강의 극치는 모든 생각을 다 일으켜보는 것이 아니라 한 생각

이전으로 쉴 줄 아는 것이 정신건강의 극치입니다. 궐음 소양 태음 양명... 이런

조화의 이치를 알고 그것을 따라야 합니다. 가령, "어제 내가 비를 맞았지? 으스스

추워, 좀 뜨거운 데 가서 땀을 내야지" "어제 내가 말을 너무 많이 했어. 그러니까

오늘은 돼지고기를 먹어봐야지" 그렇죠? 그렇게 하는 거지요. "광산에서 일을 했더니

너무 목이 건조해. 탄가루를 너무 많이 마셨어" 이 때는 돼지비게를 많이

먹어야지요. 돼지비게가 없으면 탄광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오래지 않아 죽고 맙니다.

그런데 "아! 여보 오늘 참 수고했어요. 먼지 많이 마시느라고 고생하셨어요. 제가

오늘은 특별히 생각해서 북어포를 사왔어요. 북어포를 고추장에다가 무쳐가지고

거기다 양파를 올려놓고 또 파를 얹어서 빨갛게 구워왔어요. 안주해서 소주나 한 잔

하세요" 이렇게 한다면 그 사람은 이삼일이면 죽습니다. 안 그렇겠어요? 백묵가루

마실 때에도 돼지고기 많이 먹어야 하는 겁니다. 그것이 벌써 조화지요. 그러니까

육체의 건강은 조화입니다. 그래서 무심을 체로 삼고, 리듬을 타는 조화감각을 용으로

삼는 것이 건강의 비결입니다.

  "모든 암은 마음의 집착에서 온다!" 나는 직설적으로 얘기합니다. 마음의 집착에서

온다. 동하는 마음의 쌓임이 물질화되어서 덩어리가 되고,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의

망동함이 자꾸 산과 같이 되어서 암이 됩니다. 병갓머리안에 구자가 3개 있고 산자가

들어가 있으면 그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이 산과 같이 쌓여서 그렇게 된다는

파자풀이도 있습니다. 독한 마음도 시초는 사소한 것에서 시작합니다. 그런데 자라서

덩어리가 되고나면 고치기가 힘들죠. 산불이 그러합니다. 어린이들이 불장난을 하다가

불이 났어도 그 불을 처음에 끈다면 아무 것도 아닌데 온 산에 나무가 시꺼멓게

숯덩이가 된 뒤엔 그 숲의 나무를 살릴 수가 있겠어요? 그러니까 암에 걸리면 어떤

것이 약입니까? 죽는 것이 약이지요. 아무리 독한 마음도 시초에는 별것 아닌 데서

시작합니다. 이걸 알아야지요. 병이 깊어 이미 죽음이 가까이 왔는데 치료하는 것을

"내경"에서는 하의라 그랬습니다. 병이 이미 오기 전에 그 기운을 알아서 "너 이런 것

조심해. 너 아무거나 부러워하는 것 보니까 너 아무래도 자궁암 생기겠어" 이렇게

한의는 병을 예방할 줄 알아야 합니다.

  '칠기탕과 부동심'을 한번 볼까요. 무엇이 중간에 딱 걸린 비위장 중앙토에 관한

병이 걸린 환자가 왔을 때, 위로 아예 올려서 구토를 시켜버리든지 아래로 사하제를

쓰든지 해야 합니다. 아픈 것도 같고 어떻게 생각하면 기분이 좋고 그렇죠. 남자

옆구리를 자꾸 간지럽혀봐요. 아이구 간지러워! 이거 참 좋다고 할 수도 없고

나쁘다고 할 수 없고 그렇죠? 이런 것은 상하의 불통으로 오는 겁니다. 그런 증상에는

비장정격을 놓지요. 사촌이 땅을 사면 아랫배가 끊어지게 아파요. 이 때는 어느

경락에 손상이 올까요? 다른 사람이 잘되는 것을 봤을 때 성격이 나쁜 사람은 왜

아랫배가 싸르르 하면서 화장실을 한번씩 가야 할까요? 신경성 대장염 증상이 왜

봉급생활자들에게 많을까요? 그 전날 술도 안먹었고 밥도 잘 먹고 나왔는데 왜 그렇게

자꾸 아랫배가 아프면 어떤 경락의 증상일까요? 아랫배가 아프면 냉해서 올까요?

아니면 더워서 올까요? 냉해서 온다면 원인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첫째 태양경을 들

수 있지요? 태양경은 어떤 마음의 반응이라고 그랬죠? 긴장과 공포같은 것이 너무

조심스레 오는 경우지요.

  끊어지게 막 칼로 베는 것 같이 아파 오는 증상은 어디에 해당할까요? 양명경에

해당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겁이 많고 상사들한테 계속 눈치 보이고, 조그만 잘못에도

"에이! 너말이야 잘라 버리겠어, 엉? 너 같은 사람 이 세상에 수두룩해" 하면 자신의

처지가 불안해지기 때문에 속으로 앓게 됩니다.

  사실 조직사회에서의 윗사람에 대한 공포란 대단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시험때만

되면 화장실가고 싶은 학생들이나 다른 사람이 땅을 산 것이 배가 아프고 시기 질투가

일어나는 것은 양명경이 더 강하게 된거죠. 너무 실하게 되어서 그런 겁니다. 한편

윗사람에게 혼날까봐 수동적으로 공포를 느끼는 것은 태양입니다. 반면에 약간

능동적으로 남을 죽이려는 것은 소양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소양은 아니고 배가 살살

아프다, 누가 자꾸 오랫동안 배가 사르르르 아파오면 수태양소양경이나

족태양방광경을 놓지 말고 수소음심경이나 족소음신경을 놓으면 싹 풀어져요. 약간

우측으로 오는 담석산통이나 신기통 등은 허리에서부터 배 부분까지를 칼로 그냥 확

베는 것 같아요. 그런 경우에는 수태음폐경을 놓지요. 그런 사람들은 뭔가 재물을

많이 잃었든지 일생동안 재물을 가져보지 못한 고통을 마음속에 끈질기게 간직하고

있는 겁니다. 부자에게도 그런 증상은 있어요. 부자란 무엇입니까? 재물이 많은

것입니까? 거지가 빌딩이 불타는 것을 보고 아들에게 "어때? 저런 빌딩을 갖지 않은

이 거지 아버지가 얼마나 위대하니?" 한 말도 한편으로 생각하면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저렇게 불타는 것이 아무 걱정되지도 않는구나.' 이것이 부자입니다.

그런데 100억을 가졌는데 50억을 더 벌어야지. 졸라매자하면 수양명대장경에 엄청난

나쁜 에너지가 들어 갑니다. 아주 정력적으로 사업을 추진해가는 사람중에 인간미

없이 돈만 밝히는 사람들은 대체로 여유가 없고 날카롭습니다. 눈매가 샤프합니다.

그건 독기입니다.그러니까 그것이 오래되면 자꾸 배가 아프죠. 강력히 부자 한냥을

써도 안 낫더란 말입니다. 돈을 수십억이나 가진 사람인데도 그렇게 배가 아파요.

그건 전부 양명경에 터무니없는 에너지가 있는 것이지요. 칠정이 얼키고 설켜서

마음이 답답하고 배가 아플 때 칠기탕을 씁니다.

  식물 중에서도 어떤 한가지 맛을 가지고 있는 것은 한계점을 가지지만 사계절에

두루 쓰는 백복신과 같은 것은 전체성을 가진 대표적인 약입니다. "방약합편" 상통

66번에 백복신이 들어가는 처방이 있습니다. "방약합편"을 잘 활용하여 양방병명을

따르지 말고 한방병명과 증상을 활용하세요. 옛날 저의 스승이 "바닷가에 가서 개업할

때는 부자를 잘 쓰고 산중에 가서는 소화제를 잘 쓰고 도회지에 가서 개업하게 되면

환자를 보지 않고도 10사람 중 7사람에게는 귀비탕을 쓰라"고 했습니다. 저희집에서도

열 사람 중 다섯 사람에겐 귀비탕입니다. 왜 바닷가에 사는 사람에게 부자를 쓰라고

했을까요? 차기 때문이지요. 산중에 사는 사람은 가난하게 살다가 잔칫집이라도 있다

하면 달려가서 배부르게 먹고 대개 체하거나 아니면 잘 먹지 못해서 병이 들기

쉽지요. 그러니까 소화를 잘 시켜주거나 보하는 치료가 대부분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얕은 꾀를 부리지 않지요.

  그런데 도시에서의 생활은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시골에서는

면장쯤만 되어도 그렇게 거만할 수가 없어요. 뒷짐 딱지고 아주 뭐 대단합니다.

그러나 서울사람들은 동장을 어떻게 알고 있습니까? 서울에서 돈 1억 있어봐야

어디 가서 명함도 못냅니다. 부자소리는 어림도 없고 그저 집칸이나 있는가봐! 그저

먹고 사는가 봐! 그런데 시골로 1억만 가지고 내려가면 금방 유지가 되요.

방범위원장, 무슨무슨 회의, 또 국민학교 운동회 때 가서 한번 연설도 할 수

있습니다. 도시란 비교가 끊임없이 계속되는 곳입니다. 기죽기 싫거든 시골에 가서

개업하세요. 조그마한 시골안에도 소규모의 사회가 이루어져 있습니다. 소규모지만

전체를 이해하기에는 시골이 안성마춤입니다. 그런데 도시생활이라는 것은 스트레스의

연속입니다. 열심히 월급장이 해서 한 7년쯤 지나 계장이 되어 신입사원복 입고 들어

오는 사람을 보면 흐뭇한데, 과장만 들어오면 벌떡 일어나야 되거든요. 한 10년쯤

지나면 과장이 되어 부하직원을 내려다보지만 부장만 들어오면 부동자세로 딱 있어야

되지요. 또 부장쯤 되어 높은 것 같지만 이사가 들어오면 벌떡 일어나야 되고, 이사가

되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장도 회장이 한번 행차했다 하면 당황합니다. 딱하죠. 그

층층시하에서 어떤 사람이 잘난 겁니까?

  지난번에 통행금지가 한번 된다고 하니까 부인에게 "여보! 나 오늘 통행금지 때문에

집에 못가게 되었소" 눈치껏 전화를 하고는 뒷방에서 고스톱을 치는 남편 군상들,

불쌍합니다. 어쩌다가 이렇게 한번 마음놓고 고스톱도 한번 못치는 세상이 됐는지.

부인에게 묶이지 않은 것 같아도 교묘하게 묶여 있습니다.

  서로 먹히고 먹혀가는 이 인간의 고립 이것이 도회지 생활에서 역력합니다.

생존경쟁이 치열합니다. 그러니까 이 얕은 생각을 기막히게 해야 합니다. 내가 이기지

않으면 내가 당장 죽는 거예요. 기업에서 회의를 하는데, "Idea를 대라" 하고는

회장이 딱 지켜보고 있습니다. "멋진 Idea를 찾지 못하면 이번 감원조치에서 해고

되는데...." 이건 참 사람 말리는 겁니다. 농부들처럼 자주 찬바람을 쐬거나, 비

오는날 못자리하다가 병이 오면 쌍패탕 또 바닷가에서 바람 맞아서 병이 왔을 때

부자이중탕! 을 먹이면 효과가 있지만 도시사람들에겐 그런 것 소용없어요.

도시인에게 제일 좋은 처방은 바로 귀비탕입니다.


  귀비탕

  치우사 노상심비

  건망정충

  당귀

  용안육

  산조인(초)

  원지

  인삼

  황기

  백출

  백복신 각1전 (4g)

  목향 5분 (2g)

  감초 3분 (1.5g)

  강 5편

  조 2매


  산조인은 볶으면 잠이 오고 볶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지요. 원지는 말 그대로 뜻을

멀리해 주는 것이므로 사람 마음을 너그럽게 해주는 거지요 그런데 원지하고 꼭같이

들어가는 심규의 담을 치료하는 것에 무엇이 있지요? 석창포지요. 석창포가 약에 꼭

들어가는 것이 좋습니다. 당귀, 용안육, 산조인초, 원지, 인삼, 황기는 보심의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인삼은 만병통치약입니다. 백출은 거습지제이면서

보비지제요. 즉 비장을 보하는 것입니다. 백복령을 안넣고 백복신을 넣습니다. 목향,

감초, 강 5편, 조 2매가 들지요. "치우사 노상심비 건망 정충"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잊자 하다보면 건망증이 생깁니다. 건망증이 왜 생기는 줄

아십니까? 여러분들의 무의식세계에서 잊어먹고 싶은 것입니다.

  신화에 우화적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인간은 참 굉장히 슬픈 동물입니다. 옛날

희랍에 왕과 아름다운 부인과 그 왕의 자리를 가질 수 있는 사위와 비옥한 국토와

백성이 있는데 어느날 이 왕이 도망을 갔어요. 그런데 이 왕비가 어찌나 그 왕을

사랑했는지 10년 20년을 찾아다니다가 다 늙어서 만났는데 이 왕이 꽃 밑에서 가만히 

멍청하게 앉아 있더래요. 그래서 왕비가 막 붙들고 울었어요. "어째 당신은 가만히

있기만 합니까?" 그런데 이 왕은 부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오히려 당신은 누구냐고

묻더랍니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들은 기억으로부터 탈출하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사실은 잊는

거지요. 잊는 것은 자기 의식적인 노력이라고 과감히 전 얘기합니다. 여러분이

애인하고, 사귀고 있는데 "어머! 미안해. 아휴, 내가 전화를 깜빡 잊었지뭐야" 이럴

때는 조용히 돌아서세요. 그녀의 무의식 가운데는 그 남자에 대한 실망이 몇 가지

생긴겁니다. 그래서 잊어버리려는 노력을 안해도 깜빡 까먹게 되는 거지요. 깜빡

까먹는 것 좋아하네. "어! 미안해! 어제 3시에 약속한 건 내가 깜빡 까먹었지만 4시에

약속장소에 가서 1시간이나 기다렸어. 미안해!"

  이것은 속보이는 말로 심리학에서 나옵니다. 제가 전공이 정신과 아닙니까? 속으로

싫어하고 실망했거나 뭔가 어떤 여자하고 비교를 한다던가 어머니가 "얘 그 여자

사귀지 말아라. 사주 보니까 좋지 않다더라"하던, 엄마 말에 영향을 받아가지고는

은근히 자르려 하는 무의식적인 행동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와 똑같이 함께

영화도 보고, 음악도 듣고 데이트를 잘 할런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잊어먹었다는 말은

거짓입니다. "미안해! 그만 사정이 이렇게 돼어서..."라고 한다면 그 사람은

솔직합니다.

  귀비탕에서는 백복신이 하나의 군약의 하나지요. 용안육은 가감을 잘 해야 합니다.

뚱뚱한 사람은 절대로 안됩니다. 왜? 용안육의 맛이 어떻죠? 단 맛입니다. 통통한

사람에게 귀비탕을 쓰면 잠이 더 안오고 몸이 더 노곤해집니다. 귀비탕도 부작용이

많아요. 그리고 귀비탕에 꼭 가미해야 될 약으로는 석창포 외에도 향부자를 3, 4전을

가미해야 합니다. 향부자는 많이 넣을수록 좋아요. 어린애 오줌을 받아다가 동변초를

하세요. 동변이 없으면 미지근한 소금물에라도 담그어 두었다가 볶아서 주어야

합니다.

  향부자는 원래 부인들 약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부인들보다도 남자들 약에 더

좋습니다. 왜냐? 옛날 남자들은 산수구경도 제법 다녔는데, 요즘 남자들은 아침에도

회의, 점심때도 회의, 밤에도 그렇고, 12시, 1시까지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스트레스를

한껏 받아서 집으로 돌아오면 "여보, 뭐 사왔어? 손에 들고온것 뭐야?" 이러고

앉았어요. "아빠! 이번 주말에는 어디 가는데?" 매양 달라는 것 투성이에요. 자기한테

준다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불쌍합니다. 그때는 향부자를 최소한도 12g 이상씩 

마음놓고 쓰세요. 편향부자, 시호, 치자가 들어가는 가미귀비탕은 여자들

월경불순에만 쓰는 것이 아니라 삼초경이나 소음경의 열을 내려주는 처방으로 쓰는

약이기도 합니다. "기불승강 가 편향부자"라고 했듯이 앞으로는 향부자를 많이 쓰세

요.

도시의 감옥속에 사는 사람들을, 싸늘한 콘크리트벽속에서 사는 사람들을 치료하고

싶다면 귀비탕을 즐겨쓰세요. 불쌍하게 생각하시고 향부자를 마음껏 넣어주세요. 값도

싸고 좋습니다.

  소나무와 같이 사시를 지낸 식물은 진액, 이파리, 열매...등이 다 좋습니다.

복신이라고 하는 물건이 신기하지만 복신을 키워내는 소나무가 더욱더 신기하지

않습니까? 백복신만 생각하지 말고 소나무가 어떤 것인지를 곰곰이 생각을 해 보세요.

옛말에 소나무가 푸르른 것은 백설이 뒤덮인 겨울에 드러나고 대장부가 남몰래 닦은

도는 난세에 더욱 빛이 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오운육기로 궐음, 소음,

태음...을 배우고, "음양 나누는 '비교'가 병이 된다. 정신분열이 된다", "우등과

열등을 가르지 마라"하면서 남몰래 이렇게 열심히 공부를 해두면 나라가 흔들거리고

지구가 어지러워지는 현대의 머지않은 미래에 반드시 그 빛을 찬란히 발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복신의 맛은 아무 맛도 없는 것이 유별난 특징인데 이렇듯 무미의 맛을

터득한 한 나무이므로 신목이라고 불립니다. 모란꽃을 왜 꽃 중의 여왕이라고 하는 줄

알아요? 향기가 없기 때문에 모든 꽃 중의 왕이 되는 것이지요. 아시겠어요?

화려하지도 향기롭지도 않기 때문에 담백하고도 우아한 품위가 더 돋보이는 것이지요.

마음을 비워야만 천지를 포용할 수 있듯이 백복신과 같이 무미하여야만 만 가지 맛을

다 느낄 수 있습니다. 오늘 이렇게 잡다하게 장시간에 걸쳐서 이야기를 하는 것은 결

맛을 섞어서 쓰든가 무미의 약을 쓸 때도 중화를 고려할 줄 알라는 얘기입니다.

  쓴 맛이라도 익모초와 같이 삼키고 싶은 것이 있지요. 예를 들면 해물 중에 쓰면서

씹다보면 입안이 달콤해지면서 목으로 넘기고 싶은 게 있죠? 그게 뭐죠? 멍게지요.

맛은 쓴데 자꾸 속으로 들어가는 성품을 가진 것이 있지요. 쓴 맛은 뱉습니다만 단

맛을 퉤퉤 뱉아내는 사람있어요? 또 신것을 먹고서 뱉아냅니까? 물론 너무 시면 뱉을

모르지만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신 맛이나 단 맛은 기운을 밖에서 안으로

흡입하는 작용이 있으므로 '음'자가 붙습니다. 그리고 뱉아내는 것은 양에 속하지요.

오수유를 씹어보면 그 매운 맛 때문에 한참을 뱉아내어야 할 정도입니다. 짠 맛도

마찬가지지요. "그 놈은 소금같이 짜! 하숙방에 놀러가도 과자부스러기 하나 내놓을

몰라!" "에잇 짠 놈!" 그러면서 퇴하고는 침을 뱉지요. 이렇게 짠 맛도 뱉어내게끔

하는 성질이 있지요. 이런 모든 것은 사실이 전제되고 나서 이론이 생긴 것이지, 이론

사실을 대입시킨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산, 고, 감, 신, 함의 맛에 궐음, 소음...

등의 육경을 접목시킨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지요.

  환자가 숨이 너무 팽팽해서 숨을 좀 죽이고 싶으면 대황, 망초를 넣습니다.

미친사람이 담을 넘으며 마구 날뛸 때 대황, 망초를 쓰면 풀이 폭 죽어요. 또 뚱뚱한

사람 발산시킬 때 매운 약을 쓰는 겁니다. 몸이 냉한 사람을 데우고자 할 때

오수유같은 것을 넣지요. 건조한 약으로 알고 있는 반하는 꼭 법제를 해서 써야

합니다. "강즙에 반드시 법제를 해야 합니까?" "그렇습니다. 법제를 하지 않고는

이진탕에 못씁니다" "습이 많고 뚱뚱한 사람에게 이진탕을 썼는데 왜 낫지 않을까?"

그런 경우의 반하를 보면 법제를 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오늘 생반하를

하나씩 드릴테니까 씹어먹으면서 가세요. 어떤지 아십니까? 목 안이 심하게 갈증을

느낍니다.

  여러분! 간혹 생반하를 쓸 때에는 생강을 많이 넣으라고 해야 됩니다. 후배들이 개

하고 있는 집에 가보면 숙지황 약통이 비어 있어요. "왜 비어 있느냐?"하고 물으면

"숙지황은 설사가 심해서 없애버렸어요"라고 합니다. 인삼통도 비어있어요. "왜 인삼

안넣지?" "열이 심해서요..." "대황은 왜 안넣지?" "아 그거야 극약 아닙니까?"

"반하는 왜 안써?" "반하먹으면 목구멍이 쪼여 붙는다고 그래서..." 이것 빼고 저것

빼고 150개 약통 중에 한 100가지가 비었어요. "선퇴(매미껍질)는 왜 안넣느냐?"

"손님들이 한번 열어보고 벌레껍질 넣는다고 그래서..." 이건 사실이예요. 여러분들!

한의원에 가서 열어 보세요. 글쎄. 맥문동 없을 땐 뭘로 쓸거예요? 숙지황을

넣어준다거나 황정을 넣어준다거나 해야 될거 아니예요? 반하가 없으면 뭘 넣지요?

남성으로 대신하고 튀밥으로라도 대신해야 될거 아니예요? 대신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걸 모르면 바보예요. 마침 복분자가 없다면 파고지라도 많이 넣어줘야지요. 하다못

산딸기 익은 거라도 말려서 넣어줘야지요. 이렇게 대신할 줄 알아야 됩니다. 숙지황은

소화가 안되니 넣지 않고, 열을 낸다고 인삼, 부자를 빼버리고 나면 팔물탕에서 중요

약이 2가지나 쑥 빠지고 말지요. 또 "황기는 왜 꿀로 법제를 안해 놓았지? 왜 그냥

생으로만 쓰지?"하고 물으면 "요새 꿀값이 얼마나 비싼데요? 선배님도 원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이런 실정입니다.

  반하, 남성, 호초, 필발... 이런 것은 양명에 관한 약입니다. 오수유, 소회향 등은

소양에 해당하지요. 태음에 해당하는 것은 참으로 많습니다. 천문동, 맥문동, 감초...

숙지황은 태음에도 가깝고 태양한수에도 가깝지요(생지황은 태양). 그런데 소음군화에

관계되는 약이 좀 어렵습니다. 쓰면서도(고) 데워주는 부자같은 약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부자를 씹어 먹어보면 자꾸만 삼키고 싶어지지요. 우리가 많이 먹고 있는

일상음식 중에도 소음에 가장 가까운 것은 무엇일까요. 쓰면서도 화기도 많고 물기도

가장 많은 것으로는 술이 가장 대표적이지요. 그래서 술은 몸을 덥게 하는 데나

제경으로 인경시키는 데에 쓰지요. 소양지기에 가까운 것은 제가 처음부터 자주

얘기해드렸지요. 바로 담배는 약성이 약간 쓰면서도 가볍습니다. 그래서 소양지기에

가깝지요. 담배를 피면 지식이 쪼로록 배설되면서 멍하게 되지요. 바둑같은 지식운동

할 때 열심히 생각하다 보면 마구 골치가 아프지요. 그 수가 그 수같고 막

어지럽습니다. 이때 담배를 한대 피우고 나면 뭔가 단순해짐을 느낄 수 있지요. 멍한

상태에서 다시 출발을 하는 것입니다. 지식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담배를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이점 때문이지요.

  우리가 가장 많이 먹는 음식인 밥은 태음에 해당하는데, 조미료는 어떻습니까?

식초는 궐음, 고춧가루는 양명, 소금은 태양... 이렇듯 조미료도 곧 육경이지요.

그러니까 입맛에 맛는대로 "오늘은 말을 너무 많이 했어!" 그럴때는 음식에 식초를

듬뿍 뿌려 먹습니다. "아 오늘은 맥주를 너무 많이 마셨어!" 이럴때는 무엇이

좋을까요? 음식에 고춧가루나 겨자를 많이 넣으면 좋지요. 옛날에 M선생님은 "술

좋아하는 사람은 겨자를 한 숟갈 타서 미리 마시고 가거라. 그리하면 절대로 주담에

걸리지를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제가 약물론에 나오는 이야기를

생각나는대로 하는 거니까 그렇게 알고 들어 주세요.

  백개자는 어디에 쓰지요? 반하나 남성류는 전반적인 습을 제거하는데 쓰지만,

백개자는 주로 어디에 있는 담을 제거시킵니까? "방약합편"상통 51번 금수육군전을

보면 "기약자는 불용"이라고 씌어 있습니다. 기가 약한 사람에게 쓰면 안되지요.

백개자는 독한 약이예요. 자칫하면 큰일납니다. 매우면서도 탁 쏘는 살기가 강한

약입니다. 처음에는 눈물이 주르르 쏟아지지만 일단 겨자맛을 들이고 나면 생선회를

먹을 때 겨자 없이는 못먹는다고 하지요. 양명조금이므로 마른 사람에겐 좋지

않겠지요. 이 백개자는 피부와 근육사이로 돌아다니는 담을 치료하는데 탁월합니다.

흔히 일컫는 늑막염에 백개자와 천궁을 쓰면 참 좋지요. 약은 순하게 써야 합니다.

그런데, "늑막염에는 흑축, 백축, 해금초에다 이뇨제를 쓰든가, 소청용탕에 마황을 3

써야지" 이런 사람이 있다면 큰일이지요. 사람잡기 꼭 알맞습니다. 그저 곽향정기산에

이뇨제와 백개자, 천궁을 조금씩 넣어서 서서히 풀어내는 것이 좋습니다.

  오늘 맥주를 많이 마셨으니 겨자를 좀 넣자 고추도 좀 넣어 볼까? 너무 매울 때는

설탕을 좀 넣으면 좋지요. 요리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이렇게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가

있는 것이죠. 음식점에서 일방적으로 꼭같은 음식을 내오는데 이것은 손님에 대한

모독입니다. '원조'에 해당하는 음식점에 가면 오미가 고루 들어가도록 요리를 해서

내놓습니다. 음식이건 우리 생활이건 예술이건 종합적으로 구성된것은 우리를 몰아의

경지로 인도합니다. 신에 대한 공감이지요. 그러나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친 것은 자기

도취를 유발시키기 일쑤입니다. 잠시 자신을 잃고는 대단한 경지를 경험한 듯이 착각

합니다. 전체가 배제된 것은 어떤 것도 위험하지 않은 것이 없지요.

  "방약합편"을 보면 약성가에 각 약초마다 입경이 둘 이상씩 나오는데, 그 중 하나는

자경을 일컫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체로 상대경락 즉 치료가 되는 경락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것의 기본은 육경이요 곧 음양인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를

알면 만을 알 수가 있지요. 앞으로는 본초학을 두려워 마세요. 예를 들어서, '맛이

달다(감) 입태음경, 양명경'이라고 쓰여 있다면 '아하! 자경인 수태음폐경과

족태음비경으로 들어가고, 수양명대장경, 족양명위경으로 들어가서는 병을 치료한다는

것이로구나'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참으로 심오한 내용입니다.

  그런데 대황은 어느 경락으로 입경할까요? 대황은 짠 맛과 매운 맛이 합해져

있습니다. 쓴 맛이라고 하지만 맛을 보면 그리 쓴 맛도 아니예요. 이런 것은 어떻게

이해를 해야 될까요? 또 단 맛인데도 태음경으로 들어가지 않는 것이 많습니다. 신

맛이라고 전부 궐음경으로 들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신 맛인데 약성이 가볍고 매운

맛이 좀 섞여 있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이건 여러분들이 임의용지하셔야 되는

부분입니다.



@[(6)@]

  약의 향, 산지, 형, 질, 색 가운데에서 이번에는 색을 한번 살펴볼까요. 색을 봄에

있어서는 오색을 보기에 앞서 먼저 그것의 광택을 봐야 합니다. 광택이란 소밀 즉

성기냐 치밀하냐를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각각 그 고유의 광택을 유지하는 것일수록

좋겠지요. 배 껍질이 사과 껍질처럼 반들거린다거나 수박 꼭지가 말라비틀어져

거무스름하다면 이건 틀린 거죠. 먹어보나마나입니다. 이렇게 약물의 광택을 본

다음에는 후박 즉 두께의 두껍고 얇음을 보고, 그 다음에는 기의 승 강 부 침을 보고

난 뒤에 맛을 봅니다.

  "방약합편"의 약성가에서 필발을 찾아보면 "필발신온하기역 현벽음산곽사리"라고

되어 있고 입수족양명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맛이 매우므로 당연히 양명경으로

들어가겠지요. 필발의 맛은 순수 신미로 다른 맛과는 거의 복합이 되지 않는가

봅니다. 또 하기를 주로 한다고 했는데 이것도 이해를 잘 해야 합니다. 이것은 기를

위로 올려줌으로써 아래가 뚫어지게 한다는 뜻입니다. 은단에 제일 많이 들어가는

박하는 맛이 조금 맵습니다. 신미가 많지요. 신미는 발열성인데도 박하는 해열제로

쓰입니다. 외워서 될 일이 아니지요. 그런데도 박하의 신미만을 쫓아서 박하를 상초의

발산에 쓰면 안되겠지요. 박하사탕을 먹어보세요. 가슴속이 시원해지는 가을

기운(량)이 있습니다. 박하를 가을에 채취함은 지극히 당연하겠지요. 천기란 춘하추동

중의 어느 기를 받느냐 하는 것이고 그 약의 성질은 아마도 더울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와 미를 두루 살피지 않으면 큰일나지요.

  사람을 볼 때는 성격과 체격을 다 보아야 합니다. 그저 체격만으로 그 사람의

성격을 파악해선 안되지요. 뚱뚱한데도 소양지기가 강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매사 복합적으로 잘 관찰해서 이해하고 난 뒤 육경적으로 분배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신맛은 거두는 (수검) 성품이 있고 소음은 익히는 (열) 작용이

있으며 번성을 시키므로 꽃의 화려함에 대비를 시켜 설명했던 적이 있지요. 소양은

발산작용에 살기를 동반하고, 양명은 발산작용에 량한 느낌을 동반합니다. 태양은

유연함과 차가움을 동시에 지니고 있습니다. 이것이 곧 풍 한 서 습 조 화이지요.

  색을 살펴보면 청색이나 녹색은 대체로 궐음의 기운을 많이 내포하고 있다고

봅니다. 대체로 발산하고 동하는 성질이 있는 백광에 비해, 안으로 위축이 되고

모이는 성질의 청은 정하는 기운이 있습니다. 소음은 적, 태음은 황, 소양은 백색광,

양명은 백색, 태양은 흑색인데 회색은 어디에 해당할까요? 검정에 흰색을 합친

것이므로 양명과 태양의 혼합이지요. 스님들의 회색옷은 인간의 마음을 동하게 하는

것의 근본인 소음군화의 망동을 다스리기 위해서 소음을 치는 두 가지 색깔을

혼합해서 만든 것입니다. 그러니까 옷색깔만 척 보고도(의상이든 장신구든) 그 사람의

성품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과일은 풋 것일 때는 파랗고 신데, 익으면서 점점 노랗게 변해가면서

(태음으로 변하면서) 그 맛이 달콤해지지요. 이러한 색에 대한 이론은 사람들이 잘

아는 편입니다. "선생님! 그렇다면 수박은 파란 색인데도 어째서 맛이 달지요?" 그건

내가 알 바가 아닙니다. 기실은, 그동안 죽 보아왔듯이 예외가 더 많지요. 매사를

이론에 대입시키려 하지 말 것이며 어느 한 가지 면을 쫓아 속단하지 말 것을

여러차례 역설해 온 것도 그때문이었습니다. 이제 그런 질문을 하실만큼 아셨으니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아보도록 하십시오. 그리하여 하나하나 깨우쳐 갈 때

여러분은 상상할 수 없으리만큼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한그루의 나무에서 열리는

과일이지만 그것의 색깔이 변함에 따라 맛도 따라서 변화한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을,

제가 지금 여러분에게 심어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엔 모양(형)을 살펴봅시다. 식물의 대체적인 모양에 회전을 하는 것, 즉 말려

있는 것은 궐음에 가깝습니다. 잎이 은빛을 칠한 듯 솜털이 보송보송 나서 물방울을

떨어뜨리면 그대로 미끄러져 내리는 건조한 것은 양명에 가깝겠지요. 양명지기를 지닌

담배는 마른 땅에서 자랍니다. 배수가 조금만 더디어도 이내 잎이 상하고 맙니다.

진흙에서 자라는 미나리가 습하리라는 건 이제 질문을 할 필요도 없겠지요. 과일이 덜

익어서 파랄 때에는 딱딱하지만 노랗게 익으면 무르고 연하고 부드럽게 되지요. 시고

파란 것은 움츠리고 팽팽한 긴장성을 갖지만, 바나나와 같이 달고 노란 것은 연하고

부드럽습니다. 이런 궐음에 해당하는 식물이나 뚱뚱한 사람은 소음에 해당하는

식물이나 사람(마른 사람)보다 씨앗을 생산한다거나 자식을 낳는 점에서 비교가 안될

정도로 뒤떨어집니다. 중화에의 푸근함으로 종족번식에 대한 집착이 없지요. 화초가

가련한 것일수록 꽃을 많이 피우고, 바짝 마른 사람들이 일찍 결혼을 하는 것도 다

한가지 맥락인 것입니다.

  지금은 학교 교수라는 사람들이 엉뚱한 연구만 하니 학생들은 갈 곳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은 사주관상쟁이에게 가서 공부하고, 내일은 오운육기 선생 찾아가고,

무면허돌팔이에게 가서 배우고, "황제내경"의 대가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산 속에

들어가 보기도 하고 이 말 들으면 이 말이 옳고 저 말 들으면 저 말이 옳고 갈팡질팡,

횡설수설 하다보면 6년입니다. 그나마 그렇게 찾아 다니는 사람은 또 다행일지도

모릅니다. 방학 40일 동안 이렇게 공부하는 사람들은 학년의 고하를 막론하고

정신적인 방황을 많이 하신 분들이라 생각됩니다.

  환자가 오면, 역대 돈 잘 번 한의사의 처방 메모나 잔뜩 모아 놓고 그것 컨닝하느라

급급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낙석이 요통에 좋다고 하니까 낙석을 쓰고, 은방울 꽃이

좋다고 하니까 은방울 꽃을 쓰는 이런 기이한 술법, 기이한 비방 너무 좋아하지

마세요. 두통에 지렁이 갈비가 좋다니까 "지렁이 갈비 구해와라"하고, 두통에 인당이

좋다니까 무조건 인당을 쓰고는 환자앞에서 폼 잡느라고 퉁기고 돌리고 야단입니다.

기본적인 영수보사, 원보방사도 모르는 주제에 퉁기고 긁는 것은 또 무슨 경우입니까?

  요즘 침은 일본식 실침으로 가늘고 아프지 않은 데다, 환자 눈치를 슬금슬금 보면서

무려 백개씩이나 꽂아대는 작태 정말 한심합니다. 보사법도 모르고 일본식의 가는

침을 쓰면서 일본 흉내 내는 몰골, 이건 망할 징조입니다. 얼마전 한의학을

한(대한의 한)의학으로 바꾸었는데 한(한나라 한)에서 한으로 바뀌었다고 내것으로

금새 되는 것입니까? 남 흉내 내는 것을 한의학이라 해도 됩니까? 우리 고유의 방법을

쓸 때 진짜 한의학이 되는 것이지요. '한(한나라 한)'자나 '한'자나 그게 뭐가 그리

큰 의미입니까? 그저 껍데기, 겉치레만 좋아해 가지고... 한의학으로 명칭을 바꿔놓고

주체성을 많이 강조하는데, 실제 우리 민족의학을 개발해 낸 주체적인 사상이 있고나

주체가 있는 것이지 그런 노력도 없이 이름만 바꾸면 주체성이 찾아집니까?

  여러분들이 "사암침법"책에서 사암침의 효능을 보셨더라도 임상에 들어가면

충격받는 일이 많을 것입니다.

  어! 일도에 쾌차하더라. 이것은 여러분들이 시골로 의료봉사가면 하루에 두 서너

건씩 접하게 되는 일입니다. 여름방학 때 의료봉사 갔던 어떤 학생은 방광염으로

출혈을 하며 10년동안 전국에 있는 종합병원에 다 돌아다녀도 낫지 않았던 환자를

족태양방광경 정격 한 방에 낫게 해 주었다나요. 정말 듣는 것보다 실제 임상에서

놀라운 것은 사암침법 밖에 없습니다.

  지금 우리 한방계는 급합니다. 외부에 눈을 돌릴 틈이 없습니다. 우리 자신과 우리

의학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직관의 개발이 필요한 것입니다.

객관적인 직관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다분히 자기성찰적으로 되어야 합니다. 제가

강연을 통해서 누누이 주장하는 '자기관찰의 방법'은 최고의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흔히 사체실험이나 동물실험으로 대체되어지는 인간의 생리, 병리의 연구방법은 아주

보잘것 없고 졸렬한 방법임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인간의 생리, 병리현상은 생체의

조건하에서 일어날 뿐만 아니라 심적 활동의 복잡미묘한 현상이므로 사체나 동물의

실험으로 파악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과 미움, 욕심과 공포, 희열과 분노, 안심과

놀람 등의 복잡한 정신활동을 가지고 있는 인간의 생은 그대로가 하나의 우주입니다.

이러한 것을 이미 생의 활동이 정지된 사체의 해부학적인 구조를 관찰한다 해서

나타날 리가 있겠습니까? "내가 나를 관찰할 수밖에 없구나"하는 결론의 필연성과

당연성을 깨닫기 위해서는 먼저 이런 무의미한 시도로부터 자유로와야 합니다.

  분하면 열이 오르고 숨이 차고 상기가 되는 등의 육체적인 반응이 수반되는데 이

분노라는 정적인 현상과 빨간색의 상기된 물질적 현상 사이에는 어떠한 금을 그어

놓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긴장하면 땀이 난다든가, 신경만 쓰면 소화가 안된다는

등의 모든 감정과 육체의 반응은 서로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의학은

인간학일진대 살아있는 인간을 그 대상으로 하는 학문임이 분명합니다. 경락의 존재가

사체에서 발견될 수 없는 것은 인간의 의식활동과 감정활동의 통로가 경락이므로 이미

사체에서는 감지될 수 없음도 자명합니다. 사체가 공포를 느끼고 추워 떨거나

즐거움을 느껴 웃을 수는 없는 일이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동의학자는 가장 가까운 자신을 관찰해야 하고 스스로 '자신에게서 배우는

법'을 터득해야 합니다. 경전이나 의서의 이론에 의한 참고는 곧 자기 확인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경전이나 의서의 복잡미묘한 응용적 처방보다는 먼저 자기 자신의

구조, 심리적인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커다랗게 묶을 수 있는

어떠한 이론체계가 나온다면 그런대로 유익할 것입니다. 그러나 먼저 이론을 외워서

자신의 규격이나 특징을 맞추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습니다. 자신의 내면통찰을 통한

자아의 이해는 모든 인간의 생명활동을 이해할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입니다. 옛날

아테네의 철인 소크라테스의 명제인 '너 자신을 알라'는 이 한마디의 경구는 곧

동의학자에게 필수불가결한 말입니다. 남을 알기 전에 나를 아는 현명함은 곧 우주의

신비를 풀어나가는 작업의 핵심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곧 우주의 축소판 모델이자

우주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세계와 자신을 분리시키지 않는 깊은 통찰속에서

우리는 인간의 생리를 좀 더 근본적으로 파악할 수가 있습니다. 직관의 출발은 자신의

심리적인 움직임을 면밀히 관찰할 수 있는 민감성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아니 그것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학문적인 타협이나 아전인수격인 인용으로부터 탈피해야 합니다. 어떠한

동양철학적인 개념을 증명시키기 위해서 굳이 서양의 물질적 과학적 개념으로 설명을

해야만 합니까? 동양의 모든 영적이며 지적 철학적인 용어가 모조리 서양용어로 되어

있음은 이상한 현상입니다. 임상가들이 현실 적응상 서양의학적 병명을 쓰거나

진단학적용어를 암기함이 혹 필요할지도 모르지만 환자의 신뢰를 얻거나 설명의

편의상 방편으로 꼭 필요한 정도 이외에, 동의학적 개념을 일부러 학문적으로

결부시키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을까요? 소위 양진한치라는 명분은 흡사 동서양의

지혜를 총동원한 고도의 지성적 산물같은 냄새를 풍기지만, 실제의 치료 관점에서

보면 위험하기 짝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마른 사람이 중이염으로 왔다고 가정합시다.

이 사람은 두말 할 나위없이 음허하므로 위궤양이든 머리의 병이든 다리의 병이든

어떤 병이든 일단 음을 먼저 보충시켜주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런 경우

육미지황탕이나 십전대보탕을 쓸 수가 있겠지요. 반면에 뚱뚱하게 살이 찐 사람이

중이염으로 왔을 때에는 거습이뇨, 발한을 적당히 해주고 또 조금, 데워줄 필요가

있으므로 부자 조금 승마 조금, 반하 남성 의이인은 좀 많이, 마황 조금, 이뇨제는

많이 씁니다. 이렇게 거습 이뇨 발한을 시켜주면 귀만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위장도

좋아지고, 몸이 붓는 것도 좋아지고 신경통도 좋아진다는 얘기입니다. 이것이 우리

한방의 '전체적인 관점'입니다.

  음허부종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방약합편"상통 40번 육미지황탕을 한번 볼까요.

거기에 보면 신수가 부족할 때 쓴다고 쓰여 있고 뒤로 쭉 넘어가면, "음허부종에는

숙지황을 조금 줄이는 듯 하면서(숙지황은 너무 많이 쓰면 이체물질이 되어 통기에

방해가 됨) 우슬, 차전자, 육계를 써라"고 되어 있습니다. 아니? 부종에는 보통

오령산, 사령산(하통 10번), 목통, 택사, 저령, 차전자 등을 넣는데 왜 육미지황탕을

쓰는가 하는 겁니다. 육미란 물을 더 넣어주는 작용을 하는데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한방의 특성입니다.

  중국빵 중에 '공갈빵'이라고 껍데기만 있고 속이 빈 바삭거리는 빵이 있듯이 사람이

부었더라도 너무 허하여 껍데기만 부은 (가물때 땅의 표면이 붕 떠오르듯이, 특히

논바닥 같은 곳) 경우가 있는데 이것을 이뇨가 안되서 그렇다고 보고 이뇨제를 써서야

되겠습니까? 이때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스프레이로 물을 뿌려주면 가라 앉겠지요.

이것이 바로 기가 막힌 직관입니다. 그러니까 음허부종이 되어 부하게 뜬 사람에게

계속 이뇨제를 쓴다는 것은 그 사람을 죽이는 일입니다. 제 경우는 육미지황탕

10첩으로 깨끗이 고쳐 준 적이 있습니다. 얼른 보면 결코 말라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얼굴을 잘 보면 안색이 부황 뜬 것처럼 보이게 마련입니다. 못 먹어서 부황이

있는 사람에게 삼출건비탕(상통 21번), 평위산(하통 22번)을 써서야 되겠습니까?

삭힐 것은 별로 없고, 소화력은 왕성해지니 위장이 제살마저 소화시켜버릴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겐 숙지황이나 용안육, 맥문동, 천문동 등이 좋은데 구할 수가 없다면

묵을 사먹인다거나 쌀로 미음이라도 해 먹여야지, 소화제를 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소화제 먹고 체하면 무얼로 소화시킬 겁니까?

  그러므로 우리 한방은 병명위주에서 탈피해야 합니다. 그저 위궤양에

^456 1346 1346 123^탕, 신경통에 ^456 1346 1346 123^탕 이런 암기식의 양진한치

치료법 같은 것은 참으로 우습기 짝이

없습니다. 사람이 말랐는지(조), 뚱뚱한지(습) 정도도 살펴볼 필요조차 없는 획일적인

처방의 암기는 극히 비논리적이며 터무니없이 불합리한 것입니다. 무리한 인용과

음양관없는 한방지식의 남용은 심각한 진리퇴행의 현실을 낳고 있습니다. 해가

거듭될수록 전대보다 못하다면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언뜻보면 매우

조직적이고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는 서양의학체계가 실제 임상에서 어떻습니까?

갈수록 패배감이 짙어가는 지금의 현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갈등없는

진료태도는 학문관의 뚜렷한 정립에서 비롯됩니다.

  진찰이론과 처방이론의 어긋남에서 오는 위화감은 실로 대단합니다. 우리 집안엔

부자들이 많으니 개업해서 보약이나 팔아먹지 뭐, 대충 보약이나 팔아먹는데 음양관

필요있나! 철따라 귀비탕이나 팔아 먹고 정력제 따위의 비싼 약이나 팔아 먹고

살겠다는 생각을 가졌다면 한의사 면허증 반납하고 식품영양사 자격증이나

가져가세요. 질병과 싸움을 하지 않으면, 나중에 "쌍화탕이나 십전대보탕사세요.

양기부족이나 조루증 치료합니다"하고 돌아다니게 될 겁니다. 지금은 졸업생이

많으니 경쟁은 치열한데, 연구나 공부는 안하고, 양의학자들이 버리고 있는 이론을

교과서로 배우고 있습니다. 양의사들이 한의학을 전공한 사람을 우습게 안다면,

앞으로 어떻게 되겠습니까? 한의원 경영상의 테크닉 개발에나 몰두하는 한의사가

있다면 그는 병에 도전하는 원리의 갈등으로 해서 학문적 배경의 확신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한의사로서 음양, 한열, 허실, 경락에 대한 임상관도 없는 사람들이 한방책을

공부해서 무엇을 하자는 겁니까? 양방서적은 어디까지나 참고사항이지요. 여러분

학교에서 공부는 하세요. 교수들도 먹고 살아야 되니까. 그러나 잊어버리세요.

여러분들이 한의사로 존재하려면 음양관부터 공부하셔야 됩니다. 양의사들이 지금

한의사들이 공부하는 상한론을 공부해서 양약을 한약의 이론으로 처방을 내린다면 그

양약은 한약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우리 한방에서는 이뇨제를 단순히 이뇨제로만

쓰는 것이 아닙니다. 아주 간단하고 좋은 처방을 하나 일러드리지요. 소아가 3개월

이상 설사를 하면, 백출 40g, 차전자 20g (백출은 조금 적(굽기)하는 것이 좋음)이면

됩니다. 옛날에 상한론 교수가 대학교 6년 동안 이 처방 하나면 본전 빼는 거라고 한

처방입니다. 설사에 보비제습시키고 운비시키는 백출을 쓰는 것은 이해가 가는데

이뇨제인 차전자를 왜 쓰는지 이해가 안가지요? 간단합니다. 오줌으로 나가야 할 것이

똥으로 나오니까 이수를 시켜주면 될 것 아니겠어요? 설사의 치료방법은, 무조건

수검지제로 틀어막는 것이 아니라 먼저 이뇨를 시키는 것입니다. 숯가루로 된 돼지표

구리겔이라는 약이 있었는데, 이것은 대장을 거두어서 건조하게 하여 틀어막는

방법이므로 아무리 효과가 좋다해도 그건 제 2의 방법이지요. 한방에서 설사는 제일

먼저 이수부터 시킵니다. 자꾸 물설사가 나오는데 그걸 틀어 막아서 어쩌자는 겁니까?

대장을 틀어 막으면 소장으로 넘어오고 소장을 틀어 막으면 위장으로넘어 오는데 이런

식으로는 결국은 토할 수밖에 없겠지요. 그런데 이뇨를 시키면 아무탈 없이 낫습니다.

(차전자는 기를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이뇨를 시킵니다). 이건 기가 막힌 처방입니다.

  삼출건비탕보다 더한 처방을 써도 이뇨제가 들어가지 않으면 설사가 잘 낫지

않습니다. 특히 물만 먹으면 동설하는 증세에는 반드시 이뇨제가 들어가야 합니다.

설사에 이뇨를 시키지 않아서 나중에는 육미지황탕으로 음허를 보충시켜 주어야 하는

경우도 자주 생깁니다. 의사는 뜻을 얻어야 됩니다. 양약사가 이걸 가만히 보니 아주

재미있는 이론이거든요. 그래서 소아들 설사에 라식스란 이뇨제를 조금씩 넣어 줘보니

100% 잘 듣더라군요. 그러나 이것은 한방이론입니다. 한의사가 한의학적인

관점을 가지고 양약을 썼다면 그 양약은 곧 한약이 되는 것입니다. 양약사들은 기전

이외의 것은 모릅니다.

  반면에 우리의 처방은 어떻습니까. 신 맛이 필요한데 오미자도 떨어졌고 목과도 다

떨어졌다면 가까운 약국에서 비타민 C를 사다가 빻아서 넣어 줄 수도 있겠지요.

기본적인 관만 있다면 우주 만물이 다 한약이 될 수 있습니다. 양약도 음양의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전부 한약이지요. 그러므로 이런 관점을 터득하기까지는 양방의 외우는

지식을 그저 졸업에 지장없을 만큼만 들어두세요.깊이 한방의 관점을 터득한 후에

양약관을 가지고 양방의 허점을 구별하고 또 그 장점을 취하셔야지요. 지금은

스님(승)도 아니고 속한도 아니예요.

  우리 사명대사의 스승인 서산대사께서 "말세가 되면 박쥐중(낮엔 머리 깎고 다니며

반야심경 외우고, 저녁엔 가발 뒤집어 쓰고 요정출입하는 중)이 많이 생길 것이다"

라고 하셨는데, 앞으로는 음양오행관을 말하지 못하는 벙어리 동양의학자가 창궐할

것입니다. 스님도 아니고 속한도 아닌, 동양학자도 아니고 한의학자도 아닌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외전을 공부하는 것은 칼로 흙을 베듯 아무 득이 없습니다.

  여러분 원전으로 돌아가라는 저의 간절한 충고를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벙어리

염소중과 같은 교육으로 인해서 저는 대학 졸업 후 13년간을 고군분투해 왔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은 제 전철을 조금 덜 밟으세요. 제가 10년을 고통 받았다면 여러분은

1년만 받고, 여러분들의 후배는 1개월만 받고, 그러면 나날이 달라져서 우리 한의학의

정신적인 풍토가 개선이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위대한 성인의 지혜를 아는 사람이

한의학을 연구하여 허준과 같은 사람이 한번 더 탄생되면 국위선양 뿐만 아니라

인류건강의 기초가 달라질 것입니다. 제 강의에 잡다한 이야기가 많은 것은 

여러분들에게 이론을 넣어줘서 잘 먹고 잘 사는 한의사를 만들기 위함이 아니고

동양의학이라는 병의 원리에 도전하는 학문에 대한 확신감을 드리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신념, 신념만 가지고 가신다면 저의 입장에서는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학문과 임상 즉 기초와 임상이 분리된 것 같은 대학의 학문풍토는 과감하게

지양되어져야 합니다. 나는 기초교실에 있으니까 임상에는 약하다느니, 나는 임상을

주전공으로 하고 있으니까 기초에는 약하다느니 하는 무책임한 태도 따위는 이론과

실제의 분리에서 오는 공허를 메꾸려는 자기도피요 자기합리화일 뿐입니다. 적극적인

사고방식은 오직 원리의 터득을 기초로 한 임상태도이며, 원리는 동양고대의 지혜로운

음양오행의 원리에 대한 재조명과 깨달음입니다. 그것을 여러분들이 깊이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동양의학혁명소고에서, #1 비방위주의 아집적이고 자기보호적인 태도의 축출

#2 혁명이란 의문없이 일어날 수 없다 #3 모르면 모른다고 솔직히 고백할 줄 아는

진리에 대한 무지의 고백 #4 전통의학을 보전하려면 서양의학을 흉내내지 말라 등의

얘길 했습니다. 물질분석에 지친 서양의 모든 학계가 이제 동양의 종교를 탐사하러

오는 이때, Ego의 확대만을 위한 야심의 학자들로 득실거리는 대학풍토는 참으로

한심스럽고 참담하기 짝이 없습니다. 대학 6년간 주역괘상 하나도 들어보지 못한 채

숱한 해부학적 낱말의 기억만을 강요당하는 학문풍토에서 직관을  공부하기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미끈하게 조직화된 과학적 논리에 물든 서양의학 체계의 연구가나

교수들이 잘 알지도 못하고서 한의학을 경멸 조롱하는 이 현실 속에서 상해가기만

하는 자존과 비하의식의 회복은 오로지 참된 동양의학관의 재정립으로써만이

가능합니다. 제가 대학 다닐 때, 한 조직학 교수는 강의시간에 아예 노골적으로

한의학을 경멸하길 예사로 했습니다.

  여러분! 조직화 되어서 얼핏보면 대단한 것 같지만 실제로 실천적이지 못한 학문이

과학입니다. 물론 우리가 연구해야(과학을) 될 부분이 없지는 않겠으나 그보다 한

걸음 앞서 강조하는 것이 바로 직관입니다. 구겨진 자존과 비하의식은 오직 참된

동양의학관의 재정립으로써 일으켜 세워져야 합니다. 비웃음만 당하는 동양적 직관적

방법이란 과연 그토록 어리석은 것인가? 그런데 직관의 세계를 현재의 서양학자들은

또 왜 그렇게도 갈구하는 것일까요?

  직관! 이것이야말로 열쇠요 해답입니다. 이것이 곧 혁명의 주춧돌입니다. 직관은

주관인가? 객관인가? 보편타당하다고 알려진 상식이 직관인가? 나만이 알고 있는

인식의 독특성이 직관인가? 혹은 안다는 상태의 변형이 직관인가? 이러한 모든 추측은

직관의 주체가 아닙니다. 마치 죽음에 대한 추측이 죽음 그 자체가 아니듯이

말입니다.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기억을 쓰지 말라는 겁니다.

직관은 지식이 동원되는 마음의 세계가 아닙니다. "저기 있는 꽃이 무엇이니? 수선화!

으응 수선화로구나. 그래 알았어" 그런데 수선화라는 이름을 안다고 수선화 전체를

안다 할 수 있을까요?

  시골사람 두명이 만나서 서울에 가본 척을 하느라고 남대문 문지방 너비를 문제로

서로 다툽니다. "33.3cm야", "아니야 38.99cm야", "아니야!" "맞아!..." 이렇게

싸우는 모습을 본 서울 사람이 "남대문에는 문지방이 없소 당신들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오"라고 했다. 실지로 그 시골사람이 남대문을 다녀왔고 남대문에

문지방이 있다고 가정합시다. 그렇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직관이란

기억이나 지식과 별개의 것인데... 꽃이름이 무슨 소용입니까. 아하! 머리 끄덕끄덕

하며 저게 수선화로구나 하면 끝입니다. 그것에 대한 직관, 직관으로 눈이 있어야

합니다. 그 공부가 지금 너무 없어요. 서양에서도 이젠 외우고 분석하고 쪼개는

학문은 사양길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서양 물리학계의 최고봉인 카프라(Fritjof Capra는 미국의 물리학 잡지에 수차

현대 소립자 물리학과 동양철학과의 비교논문을 발표한 바 있으며 또한 L.A의

선센터에서 선공부를 하기도 한 동양통의 물리학자다. 현재 미국 Berkely대학에 재직

중이며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의 저자이기도 하다)는 "이런 통찰은 갑자기

일어나는 경향이 있는데

책상앞에 앉아 등식을 풀고 있을 때가 아니라 욕탕속에서 심신을 녹이고 있을 때나

숲속이나 해변을 거닐고 있을 때처럼 허심할 때 홀연히 떠오르는 특성이 있는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동양의학을 공부하고 "황제내경"을 공부하고 있는

사람이 허심이니 마음을 비우는 것이니, 관심이니 도의 이야기를 믿지 않으면

되겠어요. 공안법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저는 항상 이 허심을 이야기합니다. 마음을

비우라고 합니다. 어떤 학생은 공안법이 안풀리니까 "에이! 나는 할 수 없구나 술이나

먹자" 하고는 술을 아무 생각없이 한 잔 들다가 문득 어떤 느낌이 와 닿아 "음 혹시

이것 아닐까"하며 제게 전화를 합니다. 그럴 때 맞는 답이 나오는 수가 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는 항상 지식이 활동을 하는데 어떤 순간에 그 마음이 싹 비게 됩니다.

  일본에는 지금 아이디어맨 전문교육장이 있습니다. 이 아이디어맨을 교육시킬 때

절대로 똑같은 코스로 출퇴근을 시키지 않을 뿐 아니라 전공이 공학이면 엉뚱하게

미술책을 자주 읽으라고 하다가도 어느날은 요리책을 읽으라는 식의 전혀 엉뚱한

교육을 시킨답니다. 이렇게 아이디어 학교를 2년간 수료하고 나면, 회사에서 100명의

사람이 생각을 해도 안되는 것을 이 사람은 현장에서 척척 해결을 해 낸답니다. 한

회사에 아이디어맨 세 사람만 있으면 그 기업을 살리는 것은 일도 아니라고 장담을

합니다. 그 훈련방법은 다름아닌 '기억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안해 보던 일, 안해

보던 습관, 안 보던 책, 안 먹던 음식... 이런 것과 마주칠 때 과거로부터의 기억이

배제됩니다. 바로 아이디어맨과 같이 창조적인 사람들이 우리 학계에 자꾸 태어나야

합니다. 기존의 교수들이나 사암침법을 흉내내는 사람보다는 창조적인 사람, 깨어있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한방에 다각적으로 접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적활동에 골몰하고 나서 잠시 쉬는 틈에 직관적 마음은 솟아나는 듯하며 이것이

과학적 연구에 희열을 가져다 주는 명석한 통찰을 갑작스럽게 생겨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직관적 통찰은 그것이 일관성있는 수학적 체계로 형성되고

일상언어로 해석되어 보완되지 않는다면 물리학자들에게는 무용한 것입니다. 저는

공안을 통해서 여러분의 직관의 세계를 열고, 다시 수학적인 체계로 오운육기로

들어가서 허심의 세계를 가르치는 것이므로 직관과 지의 양면을 다 보완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카프라도 지적인 활동과 직관적인 활동의 이러한 상호보완작업이

이루어져야 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여러분들은 너무 지적인 활동에

대해서만 골몰해 왔기 때문에 제가 여러분에게 주로 직관세계를 역설하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가르쳐 주는 몇 가지 처방, 침술 및 기술을 습득하기는 쉬우나 제가

강조하는 상상력 추리력은 습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노력을

요구합니다. 여러분이 애를 쓰다가 지치는 어느 순간에 깨달음이 올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닌 육장육부에 대해, 오행을 그릇으로 하고 육기를 내용물로 하는, 괘상을

한번 그려 보시고 그것이 가지고 있는 유물적, 유심적 취상을 연구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를 들면 족궐음간경의 괘상은 중풍손이고 유물적 취상은 피리, 유심적

취상은 책사러 서점가는 것(지식욕의 충족을 위해서)으로 할 수 있겠지요. 아무튼

취상이나 확대 해석을 많이 하도록 노력하십시오.

  육장육부의 괘상은 다음의 도표와 같습니다. 이 그림을 자세히 보면 간과 삼초,

심과 방광, 비와 대장, 폐와 위, 신과 소장, 심포와 담의 괘상이 각기 서로 그 형태가

거꾸로 되어 있지요.


  (장부 오행 육기 괘 "짝" 장부 오행 육기 괘의 순)

  간 목 궐음풍 중풍손--삼초 상화 소양상화 중뇌진

  심 화 소음군화 중화리--방광 수 태양한수 중수감

  비 토 태음습 중택태--대장 금 양명조 중산간

  폐 금 태음습 택산함--위 토 양명조 산택손

  신 수 소음군화 화수미제--소장 화 태양한수 수화기제

  심포 상화 궐음풍 풍뇌익--담 목 소양상화 뇌풍항


  지금까지 여러분들은 소장의 짝이 심장인 줄로만 알고 계셨지요? 그런데

오운육기상의 짝은 전혀 다릅니다. 위의 그림을 보세요. 오운육기상 소장의 짝은

신장입니다.

  "황제내경"에 보면 "심이 허할 때 소장을 보하라"라든가 "폐가 실할 때 위를

사하라"는 등의 이론같지 않은 이론이 자주 나오는데, 이 이론에는 깊은 뜻이 숨겨져

있습니다. 아무튼 심포의 짝이 담이 되고, 대장의 짝이 비장이 되고 방광의 짝이

심장이 되고, 삼초의 짝은 간이 됩니다.

  이를테면, 우리 사암침법에서는 족궐음간경의 병을 수소양삼초경으로 고칠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경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직관으로 들어가서 상상하고

추리하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 됩니다. 그러다가 행여 장부의 개념을 다른 방향에서

이해하게 될 지도 모르지 않겠어요? 족소양담경을 보면 손풍과 진뢰가 만나서

뇌풍항이라는 괘로 풀이됩니다. 그렇다면 뇌풍항이라는 괘의 내용 즉, '우뢰하고

바람이 만나서 항이라'는 것이 족소양담경의 성격 일부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볼수 있겠지요. 이 부분은 대단히 중요하므로 각론에 들어가기 전에

이해하셔야 됩니다.

  수소양삼초경의 열을 족궐음간경으로 치료를 한다고 하면 "뭐? 무슨 얼토당토 않은

소리냐?" 우리가 열심히 연구안한 것이지 결코 엉뚱하거나 틀린 것이 아닙니다.

12장부와 연결지은 괘상을 주역책에서 찾아 깊이 연구해 보시기 바랍니다. 주역의

12괘상 읽어보신 다음 각 경락마다 유물적 유심적 취상 다섯 가지씩 해 보세요. 예를

들면, 족소양담경의 유물적 취상은 오행상 그릇은 나무(담목)이고 내용물은 육기 중

소양상화지기이지요. 따라서 나무(목)를 체, 상화를 용이라 할 수 있겠지요(참고:

군화는 지글지글 타오르는 불, 상화는 광명 즉 빛과 같은 것임) 또

'바람 속의 등불'의 경우는 바람이 그릇, 등불이 내용물이 되겠지요.

'물속의 물고기'는 물이 기, 물고기가 질이 됩니다. 여러분 그릇과 내용물의 개념을

확실히 파악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취상을 할 때 보다 넓고 깊게 생각하셔야 됩니다.

족소양담경의 유물적 취상은 '나무 횃불'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취상이란 사리를

따지는 것이 아니므로 좀 엉터리같은 이야기라 해도 그 뜻만 부합되면 되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유심적 취상을 해 봅시다. 목과 소양상화지기가 서로 부딪쳤을 때의

상황은 어떤 것일까요? 목은 궐음풍으로 주로 명예욕, 지식욕, 권력욕 같은 것이고,

소양상화지기는 권력에 관계되는 망신, 지식의 망각, 명예를 이루지 못한 비애감,

초조감, 수치심 등이므로 족소양담경의 유심적 취상은 '강의실에서 수업 도중 창피를

당한 경우'라고 할 수 있겠지요. 왜냐하면 지식욕을 가지고 강의실에 들어갔는데

망신을 당했으니까요. 이렇게 각 경락의 이미지를 유물적으로 유심적으로 취상을 많이

해 보아야만 주역 책에 태괘는 소녀요, 무당이요, 새끼달린 말이요... 하고 적어 놓은

뜻을 이해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런 복합적인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되면, 환자가 왔을 때 "음--! 너는

노란 바탕인데 붉은 색이 떠오르는군! 아하! 기본이 토인데 화가 떠오르고 있군, 삐쩍

말라서 양명조금인데 의외로 몸이 냉하군 태양한수가 들어갔구나! 그러니 어떤 장부가

나쁘겠구나"하는 것을 추리할 수 있지 않겠어요? 여러분! 이런 상상 공부가 우습게

여겨질지 모르나 공부 중에 제일가는 공부올시다. 주역이 곧 인간사일진대 우리

한방도 인간사로 풀어 나가야 된다고 저는 확신하는 바입니다.

  @ff

@[  7. 치료 대법@]

@[(1)@]

  지금까지의 오윤육기에 의한 잡다한 간접접근과 여러가지 그 밖의 진찰 방법으로

진찰을 했다면 육경 중 하나를 선택해서 치료를 해야 하는데 치료법으로는 약물치료,

침구치료 등이 있으나 외감과 내상에 따라 그 적용이 다릅니다.

  내상은 칠정에 의한 것으므로 이심치심법을 써야되고 외감병은 한 토 사 화법이

있는데 이것을 다스림에 침구와 약석을 쓰는 것입니다. 이심치심법은 이도치병법이라

고도 하는데 이것이 쉽지 않아요. 대화로 상대방의 정신상태를 알아야 하고 유심적

상황, 육경적인 차원, 천과 지의 차원 등 여러가지로 그것을 알아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것을 통해서 육체적인 질병뿐 아니라 정신적인 질병까지도 치료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앞에서 심포와 삼초의 개념에 대해서 조금 언급을 했습니다만 이것으로써

이심치심법이 어떤 것인가 하는 구체적인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심포는 '안다', 삼초는 '모른다'라고 하는 차원이라고 했습니다.

  옛날, 궁중의 삐에로는 아주 위대하고 똑똑하고 잘났다고 하는 왕족의 반대급부로서

필요한 존재였지요. 또 코미디언이나 개그맨이 인기를 얻는 이유를 세상 사람들이

너무 많이 알고 잘났다는 의식에 물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어느 코미디언이 "마누라는 사흘에 한번씩 어떻게 해야된다!"고 하면서 큰소리를

칩니다. 여기까지는 우스운 이야기가 아니지요. 그런데 "집에 전화를 해 주어야지!"

하며 전화를 겁니다. 그때 마누라의 큰소리에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을 보면 관중은

배꼽을 쥐게 됩니다. 이것이 왜 우스우며, 왜 인생에 필요한 것일까요. 코미디언들은

여러분의 헛점을 이용해서 먹고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똑똑함, 잘안다는 사실의

반대급부로서의 바보 역할을 코미디언이 대신해 주니 여러분은 심적 위안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수소양삼초경의 이유이며 또한 수소양삼초경으로 원숭이를 취상하게

된 이유입니다. 인도의 어느 도사는 미친 사람의 눈빛을 보고 도를 닦으라고 한

사람도 있습니다. 미친 사람은 절대 노려보는 일이 없습니다. 왜냐면 눈에 촛점이

없기 때문이지요. 어떤 의미로는 도인과 동일합니다. 도인도 눈동자에 촛점이 없고

노려보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한쪽은 깨어서 촛점이 없는 것이고 다른쪽은 어떻게

하다보니 지쳐서 촛점이 풀려버린 것입니다. 여하튼 미친 사람의 눈빛만을 관찰하는

수행법도 있습니다.

  전체적 관점으로 볼 때 세상엔 미친 사람도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성공과

야심에 집착해 있다면 실패한 사람이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야 조화가 맞습니다.

  여러분들이 실패와 좌절을 당했을 때 그것이 신의 작품인 줄 안다면 마음이 편해

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용이하지 않고 히스테리가 많은 세상이 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이심치심법의 중요성이 대두되는 것입니다. 곧 도로써 병을 치료한다는 것이지

요.

  여기서 잠깐 쉬어가는 의미에서 마조선사의 유명한 마조원상 공안을 드리겠습니다.

마조선사(709--788 중국 당대의 선종의 승려. 성은 마씨, 자는 강서, 호는 마조, 시호

는 대적.

남악회양에게 사사하고, 강서에서 교화에 종사하여  강서의 선승이라 했다)께서 하루

는 원상을 그려놓고

이르기를 "이 안에 들어가도 때리고, 들어가지

않아도 때린다"고 이야기 하자 한 제자가 그 안에 들어가 앉았다. 마조선사깨서 그

제자를 방망이로 후려치시니 그가 마조선사에 대하여 답하되 "스님이 나를 때리지

못했습니다"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마조선사께서는 아무 말 없이 자기 방장으로

들어가셨다. 그런데 이때 마조선사께서는 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들어

갔을까요 이것을 명상의 자료로 삼아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십시오. 몰록 느껴지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내상은 칠정의 부조에서 오는 병이다. 다시 말해서 마음의 조화가 깨졌다는

것입니다. "조화가 깨졌으므로 마음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서로 상대되는 감정을

다스리고 치료하라" 말로는 이렇게 쉽게 이야기 할 수 있지만 이것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환자가 어떤 이야기를 할 때, 그 사람이 어떤 관념으로 이야기를 하는지

파악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 생각을 상대적으로 파악한다든가, 어떠한 생각으로부터

비롯된 이야기인가 하는 것을 간파하는 실력이 참으로 필요합니다. 교활한

현대인으로부터 당하지 않으려면 깨어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현대인의

교활성에 의사가 도리어 당하고 맙니다.

  미국에서 가구업을 하는 한 상인이 파리에서 아름다운 프랑스 아가씨를 만났습니다.

가구상은 영어만을 알았고 이 프랑스 아가씨는 프랑스어 밖에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손짓 발짓과 그림을 그려 보임으로써 서로의 뜻을 주고 받을 수 있었습니다.

남자가 자동차를 그려 보이자 드라이브하자는 뜻을 알고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고,

식당을 그리자, 함께 식사를 하자는 뜻인 줄 곧잘 이해하고 응했습니다. 이렇게

친숙해져서 술도 마시게 되었고, Disco hall에 가서 춤도 추게 되었어요. 두 사람은

아주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Disco hall을 나오며 여자가 남자에게 커다랗게 침대를

그려 보였습니다. 그러자 이 미국인 남자는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아니? 어떻게 내 직업을 알았지?' 깨어 있지 못하면 매사 이런 식이 됩니다.

상대방이 침대를 그렸을 때 '내가 가구상인 줄 어떻게 알았을까'하고 여기는 이 선입

관,

이건 무서운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자기 관념 즉 선입관으로부터 깨어나야 합니다.

환자를 선입관으로 대하면 절대 안됩니다. 이 사람은 직업이 어떠하므로 어떨 것이다.

어제까지는 어떠했으니 오늘은 어떠할 것이다 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또 환자에게 속으면 안됩니다. 현대인은 교활할 뿐 아니라 자기 변명도

완벽하리만치 능숙합니다. 상대방이 어떠한 생각으로 행동하느냐를 재빨리 간파하는

선입견없는 마음이 필요하고, 교활한 속임수에 속지 않는 혜안이 필요합니다.

  귀가를 해보니, 마누라와 왠 남자가 한 이불 속에 들어 있었습니다. '아니 이럴

수가! 내가 이런 꼴을 봐야 하다니  기가 막힌 남편이 미처 화를 낼 엄두 조차 못하고

있는데, 부인의 정부가 하는 말이 "글쎄요  오늘 당신이 평소보다 좀 일찍 귀가한

때문이 아닐까요?" 물론 이렇게 표현하진 않겠지만 누구라도 이 정도는 교활합니다.

또 언제, 무슨 일에 대해 서라도 사람들에겐 핑계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환자가

찾아와서, "제 병이 왜 생기게 되었을까요?" 하고 물었을 때, "당신의 마음이 어떠

어떠 하므로 그것이 병이 된 것입니다"라고 이야기 하면 그 환자는 아주 기뿐나빠

합니다.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 세워주고 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면 고마워서 어찌할 줄 몰

라하는 사람이라도 "마음 속의 분노나 욕망을 경계하십시오. 그것이 병이 된

것입니다"하고 이야기 하면 "야--임마! 병이나 고처! 날 간섭하는 거야? 니가 뭔데

임마!"라며 대뜸 화를 냅니다. 이럴 때일수록 의사는 환자를 여유롭게 대할 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시어머니가 둘째 아들 집을 찾아갔습니다. 둘째 아들 내외가 저희들끼리 살

때의 자유분방했던 생활에 제동이 걸리자 그들 나름의 생활 리듬이 깨어지게

되었습니다. 어느날 밤, 아들 내외는 어머니를 형님댁으로 쫓아낼 궁리를 거듭한 결과

위장 부부싸움을 하기로 합의를 보았어요. 다음날 아침, 아내가 남편 외출복에 국을

쏟는 것으로 부터 시작해서 한참 동안을 온갖 욕설로 실랑이를 벌였습니다.

  싸움을 진행하는 틈틈이 시어머니의 눈치를 보았는데 도무지 불편해 한다거나 무안

하는 기색이 없어요. 그러니 그 싸움에 흥이 나겠어요. 그럭저럭 싸움이 끝나게

되었는데, 시어머니가 명언을 한 마디 했습니다. "얘들아! 내일 쯤 첫째네 집에 가려

했더니, 너희들 재미있게 사는 모습이 보아 좋아 여기에 한 두어 달 더 있기로 했다"

  이런 여유가 없이는 어렵습니다. 환자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부동심이 있어야 합니다. 환자들은 항상 불안한 상태에 있기 때문에 질문이 끝이

없습니다.

  한참 동안을 설명해 주어도 환자들의 불안을 쉬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나가다가

다시 들어와서, "선생님! 가만히 생각해보니 한 열흘 전부터 손톱밑이 가려운데 이건

무슨 증상일까요? 제 병하고 어떤 연관이 있읍니까?" 그러면 그걸 또 얘기해 줍니다.

상화지기가 어떻고 한열이 어떻고 그건 선천성과하소양증이라는 둥 만족할 만한

설명을 해줍니다. 그러면 다시 나가다가 돌아서서, "잠깐만! 선생님. 요즘 아침에

세수를 하다보면 머리카락이 꼭 대여섯 개씩 빠지는데 이건 무슨 증상입니까?" 다시

또 그건 선천성 신경성탈모증 어쩌구 이야기를 해 줍니다. 도무지 질문이 끝이

없습니다.

  하루 아침에 머리카락 대여섯 개 빠지는 것이 무슨 선천성 신경탈모증입니까?

누구나 다 겪는 극히 정상적인 거지요. 이 환자에게 "그건 털갈이 하느라고 그런거요"

라고 하면 도리어 실망을 합니다.

  그렇다면 무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처구니 없는 일이지요. 한편, 안믿는 환자를

자기 페이스 안으로 끌어 들이려고 설득을 할 때는 더 힘이 들지요. 여러 수의 환자를

대하는 최선의 방법들을 여러분들이 각자 연구를 해보도록 하세요.

  거듭 말씀들이지만, 환자를 마주 했을 때는 항상 여유와 선입견 없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여러분들이 언제나 정신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깨어 있기 위해서는 충격적인 방법으로 공부를 해야 합니다. 대부분이 느슨하고 반쯤

열린 마음으로 공부를 했기 때문에 도가 무엇인지, 깨어 있음이 무엇인지 자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약간 충격적인 이야기지만 여러분들의 바른 이해를 도와 들이기 위해 예를 듭니다.

  한 아가씨가 자동차 운전 연수를 나섰습니다. 시내를 신나게 달리는데 옆에 앉은

지도교사가 시비를 걸어 옵니다. "아가씨 조금 전에 뭐라고 했소?" "제가 무슨 말을

해요? 아무말도 안했어요" "이 아가씨가 사람 놀리나! 조금 전에 날더러 여보라고

하지 않았소?" "뭐에요? 내가 아저씨를 여보라고 불러요?"하면서 화를 벌컥 내는 틈에

자동차가 비틀거리다 길 옆 가로수를 받아버렸습니다.

  그러자 지도교사가 말하기를, "이것 보시오. 내가 당신을 여보라고 하건, 약을

올리건, 당신 뺨에 키스를 하건 당신은 냉정히 깨어 있어야 될 것 아니오?" 이런 것이

충격적인 방법입니다. 이 아가씨 다시는 운전 중에 주위를 산만히하지 않을 것입니다.

깨어 있지 못하고 한 눈을 팔면 죽는 겁니다. 여러분이 맑고, 발랄하게 깨어 있으면

여러분은 의인으로서 엄청난 힘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곧 '도의 힘'입니다.

  앞에서 제가 병을 상대적으로 치료하라고 했는데, 이 상대력은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 또한 깨어 있지 않으면 어려운 일입니다. 건강 육계 오수유 소회향 정도의

약을 써야 될 몸이 조금 냉한 사람에게 부자를 써서 몸을 너무 데웠기 때문에 눈이

어지러워졌다면 안되겠지요. 모든 치료는 물론이거니와 유심적 차원에 있어서도

강자극 약자극의 강약을 잘 조절할 줄 알아야 합니다.

  지금부터는 치료의 원칙에 대해 살펴 보겠습니다. "내경"에 "병이라는 것은

편재되어 있는 것이므로 편재되어 있는 것은 정상으로 되돌아 오게만 하면 생명작용도

원래대로 바르게 행하여 진다. 이것이 치법의 대원칙이다"라고 씌어 있는데, 약이나

침, 주문, 대화 등 어떠한 것으로든지 기울어진 기운을 정상적으로 돌려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건강의 정의란 신체의 균형이 조화를 이룸을 일컫는 것이지요.

균형이 깨져서 병이 되었으니 '그 균형을 맞취주면 곧 건강을 회복함'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허준선생 이야기 몇 마디.

  제1화

  선생께서 어느 작은 마을을 들어서자 곧 날이 저물어, 그럴듯하게 보이는 집 대문을

두드려 하룻밤 묵어가기를 청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미풍양속에, 사랑방에 묵어가는 식객 수효에 따라 그 집안의 덕과 힘이

가늠되는지라, 영접을 하는데 그리 탐탁한 눈치는 아니었다. 저녁밥을 얻어먹고 막

담배를 한 대 붙여 무는데 갑자기 여인들의 곡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울음소리는 밤이 세도록 그치질 않는 것이었다. 하인에게 연유를 물었으나 대답을

하려 하지 않았는데 더욱 기이한 것은 여인들의 곡성뿐인 점이었다. 날이 밝아,

선생이 행장을 차리고 그 집을 나서는데 울어서 눈이 부은 안 주인이 배웅을 하면서

"집에 우환이 있어 손님대접을 제대로 못해 죄송합니다"하고 예를 표함에, 그 연유를

물었으나 선뜻 대답을 하려 하지 않았다. 거듭 연유를 묻자 마지못해 입을 여는

안주인의 이야기인 즉, 이 집 3대독자가 아무 이유도 없이 숨이 막혀 죽었다는

것이었다. 아이가 죽어 누워 있는 방을 가보니, 3대독자 집안인지라 온통 여인들만이

아이곁에 둘러앉아 울고 있는 것이었다.

  선생이 그 아이를 보고 나더니 하인을 시켜 이 동네에서 제일 오래된 장기

알(남자들의 손때가 덕지덕지 묻은)을 가져오도록 지시하였다. 해묵은 장기알을

가져오자 서둘러 삶도록 분부를 했다.

  이렇게 하여 장기알 삶은 물을 몇 모금 떠 넣자 '왕'울음소리를 터뜨리며 살아나는

것이었다. 이럴 수가! 온동네가 발칵 뒤집혔지요. 후한 대접을 받고 다시 길을 떠나는

데, 허준선생의 제자가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이해가 되질 않아 마침내 선생에게

질문을 합니다. 선생이 말씀하시길 "그 집안은 과부 뿐인데다 고모들만 즐비하니 온통

여자 투성이인 집안이지 그러니 하나 뿐인 아들을 귀여워할 수밖에, 좋다고 만지고,

얼르고, 주무르니, 그 놈은 지쳐서 죽을 지경이겠지. 무엇이 그 애를 지쳐서 죽게

했느냐 하면 그것은 여자의 음기 즉 음독이었던 게야!"


  왜 해묵은 장기알을 썼느냐? 장기나 바둑은 한 마디로 싸움이고 전쟁입니다. 거기에

수양명대장경과 수궐음심포경의 손으로 짚고서 '장군아!''멍군아!'를 몇 십년을

되풀이 했으니 그 속에 번득이는 살기가 박히지 않을 수 있겠어요? 그러니까 이

양독으로 음독을 치료한 것입니다. 이건 기가 막힌 이야기 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일화를 통해서 음양관을 익혀 나가야합니다.


  제2화,

  허준선생이 안성 근처의 어느 마을로 들어서니 마을 전체가 비탄에 빠져 있었다.

첫날 밤에 신랑 신부가 자다가 죽었다는 것이었다. 선생이 가서 보니, 첫날 밤에 미쳐

옷도 벗기 전에 죽었다는데, 방문을 열어보니 나란히 누운채 죽어 있었다. 선생은

마을 사람들에게 "인근에 절이 있읍니까?"하더니, 절간 변소의 깊은 곳에 있는(절간

소는 무척 깊지요) 똥을 한 통 퍼 오라고 시켰다. 사람들은 무슨 미친 짓이냐고

난리를 쳤지만 혹시나하는 바램으로 똥을 한 통 퍼 왔다. 선생은 그 똥을 휘휘 젓더

니,

방에 들여 놓고 방문을 꼭꼭 닫게 했다. 그리고 서너 시간이 지나자, 신랑, 신부가

살아서 방문을 열고 나오며 가로되 "누가 짖궂게 신방에다 똥통을 갖다 두었읍니까?"

하는 거였다. 마을 사람들이 고맙다고 수없이 절을 올렸다. 선생과 제자가 마을을

떠나서 10리를 넘어 걷도록 제자는 선생의 처방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우매한 저에게 한 수만 더 가르쳐 주십시오"하고 절을했다. 이에 허준선생 

말씀하시길 "너는 지금까지 약 이름 외우기에 급급했지, 음양관을 세우질 못했구나.

내가 그 방에 가 보니 사향냄새가 진동하더구나"

  사향이 옛날에는 오늘날의 향수 역할도 했지요. 가까이서 맡으면 지린내가 나지만

조금 떨어져서 맡으면 그 향내가 참 좋지요. 사향낭을 신방에 걸어둠으로써 사향의

흥분작용을 신방 분위기 고조에 이용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지요. 사향냄새가 너무 지나쳐서 신랑 신부의 기도를 막아 버렸던

것이었어요. 여러분 향은 무엇으로 다스리고 치료해야 합니까? 바로 취이지요. 이러한

음양관의 여러가지 경우를 일일이 다 인용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때 그때의

상황을 판단해서 임의용지를 해야 합니다. 이러한 상황을 판단함에 있어서는 무엇보다

먼저 선입견 없는 간파력이 요구됩니다. 순간적으로, "원인은 저 사향냄새에 있다"

고 간파한 허준선생의 지혜는 무섭습니다.

  여러분! 음양관이란 그렇게 쉬운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제가 우화를 자주

일러드립니다. 우화를 자꾸 접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관찰력이 예민해지게

되거든요. 음양관, 상대성 치료의 어려움은 매 상황을 판단하는 '깨어있음'으로서만이

극복할 수 있습니다.

  "내경"을 보면 "영혈과 위기가 정상으로 돌아오면 생명작용이 또한 원래대로 바르게

행해진다"고 나와 있는데, 영이란 경영한다는 뜻이고 위란 방어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영혈은 임맥에 해당하고 위기는 독맥에 해당하고, 혈이 좌측에 해당한다면

기는 우측에 해당합니다. 무엇을 부수거나 방어를 할 때 대개 오른손을 사용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여러분 손과 발의 작용을 유심히 살펴보세요. "에이! 기분 나빠"하면서 손으로 돌을

집어 던지는 일은 거의 없지요. 발로 걷어 차냅니다. 손은 양적이므로 음적작용을

합니다. 그래서 손을 대체로 끌어들이고 발은 걷어 차냅니다. 이렇듯 체와 용은

반대가 됩니다.

  가령, 어느 시대나 어느 나라에 축구가 유행한다거나 농구가 유행하는 것을 보고 그

시대, 그 나라의 인심을 알 수도 있습니다.

  "내경"에 "표와 본을 잘 알아서 치법을 고려하면 위험한 일이 일어나지 않고 정치와

반치를 충분히 분별하고 있으면 치법을 잘못하는 일이 없다"고 씌여 있습니다.

  그러면 정치와 반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봅시다.

  열에는 한, 한에는 열을 쓰는 치법을 바른 치법 즉 정치(모든 치료법의 90%

이상이 해당함)라 하고, 열에는 열, 한에는 한, 이열치열, 이한치한의 치법이 바로

반치입니다. 그러므로 정치와 반치를 충분히 구별하고 있으면 치법을 잘못하는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표와 본이란 무척 어려운 것입니다.

  표와 본은 근본과 말단이라고 생각해도 됩니다. 근본과 말단은 둘이 아니지요.

평형의 원칙에 따라 음양이 상호보완되는 조절작용을 합니다. 오운육기를 보면,

전기에 태음이 사천하면 후반부에 가서 태양이 재천한다고 하는데 바로 이런 것들이

표와 본이 됩니다.

  고전의 대요에 다음과 같이 서술되어 있습니다. "돌팔이 의사들이 득의 양양하여

한약을 투여하여 더욱 한병을 양양시키는 수가 많다. 왜냐하면 같은 기에 의해 두가지

다른 병증이 나타날 수 있음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한병이 한증을

나타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가열을 나타내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표와 본의

이치를 알지 못하면 오진하여 의도를 혼란시키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여러분들이 이 책을 통해 육경을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이 다행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본기부터 먼저 강의를 했기 때문입니다. 전체적인 본기를 공부한 후에 풍 한 서 습 조

화를 공부해야 합니다.

  인간이 가장 상하기 쉬운 것이 감기 종류에서 오는 상한이기 때문에 상한론을

이해하려면, 무엇보다도 "황제내경 오운육기편"을 이해한 후라야 가능할 것입니다.

상풍론 상서론 상습론 상조론 상화론의 이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과 같이 화기가 많은 세상에서는 상서론보다는 소양상화지기론을 쓰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요즈음은 비교 경쟁 시기 질투 등 소위 무형의 욕망이 많기

때문입니다. 옛날에는 외감 중에서는 상한이 주로 많았기 때문에 상한론이란 것이

나온 것 뿐이지요. 그러나 미래에 장중경과 같은 위대한 사람이 태어난다면 상풍론,

상서론 같은 것 등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상한론에서는, 상한 제1일에 태양경에 한사가 침입하면 맥이 부하면서 수하고, 오한

발열 두통에 목이 뻣뻣합니다. 이런 증상에 땀이 나는 경우는 계지탕, 이 증상에 땀이

없으면 마황탕을 쓴다고 합니다. 즉, 발표를 시키거나 해열을 시키는 방법으로 설명을

합니다.

  그러나 "내경"을 공부하지 않고 상한론적인 차원에서만 생각한다면 착각을 일으키는

수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태양경이 발열하는 거라고 잘못 생각했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족태양방광경과 수태양소장경을 보해 주면 열이 나겠네요!'하고 착각을 할

수 있겠지요. 이 경우는 태양경이 한과 부딪쳐서 아주 더 냉해지거나 혹은 발열이

나는 상황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다시 설명하면, 처음에는 냉해졌기 때문에 오한이

오다가 그것을 치료하지 않으면 한기와 한기가 부딪쳐서 묘한 열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것은 다만 태양경이 한과 부딪쳤을 때의 예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그저

상한론적인 차원에서 발열이 되는 거라고 외운 사람은 "황제내경"을 무시한

사람입니다.

  이 책의 첫 머리에서 이야기한 내혁, 일심, 귀원이라는 것은 경전을 먼저

이해하자는 것으로 "내경"에 씌여 있는 말은 진실하므로 원전을 믿고 따르세요. 그

속에는 오운육기의 성품은 물론 육경에 관한 이야기들이 다 들어 있습니다.

  이도표는 여러분 각자가 채워야 합니다.


  "표" 풍  한  서  습  조  화

  "본" 궐음(풍)

   소음(서)

   태음(습)

   소양(화)

   양명(조)

   태양(한)


  도표를 연관시켜 보는 방법을 몇 가지 예로써 말씀드리겠습니다. 태음경락이 한과

만난다고 할 때는 습이 찬 기운과 만나는 것이니 얼음(빙)이 되겠지요. 상한론에서

태음경락을 만난다면 냉해지지만 전경이 되고 또 전경이 되는 단계를 거친다면 어떻게

될까요?

  상한론에서 전경되는 순서는 태양 -> 양명 -> 소양 -> 태음 -> 소음 -> 궐음이 됩니

다.

이것을 이해하고 나면 여러분들이 상풍론, 상서론 등을 쓸 수가 있습니다.

  맨 마지막의 경락인 궐음쯤 들어가면 낭축설권 즉 불알이 오그라들고 혀가

말립니다. 그러면 오수유, 부자류의 것을 많이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경이

되는 상황을 그냥 외우지 마시고, 표와 본이 되는 경우를 이해해야 합니다.

  이 책에서는 여러분의 상상력을 자극시킬 뿐 어떤 원리의 암기를 강요하지

않습니다. 막무가내로 외우려 들지 말고 깊이 생각을 해보라는 겁니다. 생각을 곰곰히

해보면 표와 본이 만난 상황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이번에는 양명과 서(상서론)가 만났다고 합시다. 금(양명조금)과 불이 만나면

어떨까요? 금이 녹아서 뜨거운 용암과 같은 물(수)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양명경에 열이 들어가면 구슬같은 땀이 나고 얼굴이 건조해지고 입이 바싹바싹 마르고

탑니다. 건조한데도 자꾸 땀이 나지요. 그것은 곧 금이 녹아서 그런 것입니다.

잘못하면 죽게 됩니다. 사람이 죽을 때 보면 구슬같은 땀이 흐르고 기름같은 소변이

나옵니다.

  예를 들어 태음습과 얼음(한)이 만났다고 합시다. 그러면 이 경우의 유물적인

취상을 쓰고, 몸안에 얼음과 같이 찬 기운이 들어 왔을 때 어떤 증상이

나타나겠는가를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이 경우는 습이 한과 만났으므로 몸이

냉해지고 설사가 난다거나 불알이 오그라든다거나 하는 증상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앞의 도표를 한번 채워 보세요.

  그렇게 하는 것이 사암침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환자들이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는 그 환자의 실제증상을 알기가 어렵습니다.

  지금까지 치료대법을 간략하게 살펴보았습니다. 이렇게도 하고 저렇게도 하고

유심적으로도 하고, 맛으로도 하고, 증상으로도 하고, 육경의 연관으로도 했는데, 이

모두가 예외없이, 상대성을 지니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또한 상대적인 치료를

정치, 대응적인 치료를 반치라고 함도 반드시 기억해 두셔야 합니다.

  일단은 정치가 99%라고 생각하시면 틀림이 없습니다. 열이 있는 환자가 왔는데

반치로 다스리겠다고 처음부터 이열치열로 부자를 써 볼까 생각하는 멍청한 사람이

있어서는 절대 안됩니다. 이렇게 하면 무슨 기발한 법이 되지나 않을까하고 꿈을 꾸는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오랫동안 꾸준히 내려온 처방 즉 사물탕, 쌍화탕,

십전대보탕, 귀비탕, 육미지황탕, 곽향정기산... 이런 식으로 처방이 착착 나가야지

기발한 수를 부린다고 엉뚱한 생각을 하면 안됩니다. 바둑에도, 하수가 오래 생각하면

악수요, 고수가 오래 생각하면 묘수라고 합니다. 하수가 아무리 궁리를 했다 하여도

정석대로 약을 쓴 것만 못합니다. 어떤 후배는 무슨 어느 구석에서 이름외우기 고약한

몽수천왕보심단(천왕이 꿈속에서 손에 쥐어 주었다는 처방)인가 하는 처방을 썼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몽수천왕보심단에 뭐가 들었더냐"하고 물었더니, "아직 그것도

모르세요? 당귀 천궁 백작약...어쩌구 저쩌구..."

  "이 사람아! 그건 귀비탕에 사물탕 합방한 것 아닌가"했더니, "원! 선배님도 남들이

모두 쓰는 처방을 어찌 씁니까?" 그러더군요. 이렇게 지식이라고 하는 것은 아주

더럽고 치사한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변명과 자기 Ego로 제 딴은 남을 속인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자기 기만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편한 처방을 쓰십시오. 쉬운

것부터 외워나가면서 활용해야 합니다.

  얼큰히 술이 오른 취객 두 사람이 표 한장으로 극장 구경을 하기로 했습니다. 한

사람은 어린 아들 행세를 하기로 합의를 보았어요.

  그러나 검표원이 입장을 시켜줄 리가 없지요. "이 애는 이제 여섯 살 된 제

아들이외다" 라고 거짓말을 꾸며댑니다. "아니 여섯살 된 꼬마 덩치가 이렇게 크고

수염이 이렇게 길단 말이요?"하니까 "야 임마! 수염 좀 깎고 다니지 못하겠니?"

이러더래요. 자기가 술수를 쓰면 남들도 다 그렇게 속을 줄 알고...

  이렇게 교활한 사람들이 한방에도 많습니다. 개미지렁이 갈비탕, 곰발바닥탕 온갖

처방을 찾습니다. 귀비탕에 사물탕을 합하고 가미만 한다해도 무궁무진한 변화가

오는데 기이한 술법을 쓰려하는 교활함은 버려야 합니다.

  옛 성인들의 처방이 얼마나 잘 되어 있는지 한번 볼까요. 사물탕을 보면, 봄에는

당귀, 여름에는 천궁, 가을에는 백작약, 겨울에는 숙지황을 넣어, 한처방에 춘하추동

사계절기운을 다 넣어 놓았습니다. 또 육미지황탕을 보면 숙지황, 산약, 산수유,

백복령, 목단피, 택사가 들어 있는데 숙지황, 산약, 산수유는 보하는 약이고,

나머지는 사하는 약이지요. 이 평범한 처방 속에 도가 들어 있는 것입니다. 교활한

머리는 버리세요.

  사암침법에서는 정격이 75%, 승격이 25% 정도 사용됩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오행이란 형의 성쇠이고 육기는 기의 다소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침을 보사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가령 방이 더워서 밖의 찬 공기를

방안에 넣자고 한다면 이것은 보이고, 방안의 더운 공기를 창밖으로 내보낸다면 사가

된다고 했습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족태음비는 오행상으로 습, 육기상으로도 습입니다. 이것은 어느

경락에 놓으면 좋습니까? 양명경, 그 중에서도 수양명경(건조한 경락)이 놓을 수 있는

짝이 되지요. 그런데 여름철에 홍수가 나서 둑이 무너져 물이 넘친다면 젖은 길이나

마당에 모래나 자갈, 석회석 따위를 뿌리는 양명의 치법도 사용해야 되겠지만 근본적

대책으로는 둑을 막아 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넘쳐 흐를 때 둑을 막아주는 것이 곧

승격과 같습니다.

  사람이 너무 뚱뚱하고 습이 많을 때 수양명대장경을 보해 주거나 족태음비경을

사하는 것은 결국 정치법에 해답합니다. 반치법과는 혹시라도 착각하지 마세요.

이렇게 정치법을 쓸 때는 약이나 침을 불문하고 보를 위주로 하세요. 보로써 잘 듣지

않으면 사법을 쓰세요.

  "방약합편"을 보면 "상통 중통 하통이 있는데 상통은 보, 중통은 화, 하통은 사하는

약이라고 했지요" 여러분이 개업을 한 후, 도안이 열려 나름대로의 관을 얻을

때까지는 평범한 약을 쓰도록 하십시오. 상통을 75%, 중통을 20% 정도 쓰고, 하통은

5% 정도만 쓰도록 하세요.

  사실 저도 솔직이 아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조금 안다고 떠드는 이 자신도 때로는

얼마나 치사하고 창피한지 모릅니다. 또 공부를 하면 할수록 더욱 더 어렵고 모르는게

많아지더군요. 그래서 저는 확실한 것 아니면 안쓰고 안전한 것 아니면 쓰지

않습니다.

  요즘 병원을 찾는 비율을 보면, 약국 75%, 병원 20%, 한의원 5%라고

합니다. 그나마 이 5%를 나눠 먹느라 서로 싸우고 난리를 칩니다. 여러분 열심히

공부를 하세요. 실력이 있어야 자신있게 한의학의 우수성을 펼쳐 나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또 실력이 있어도 시장성이 없으면 인술을 베풀지 못하고 맙니다.

  그러니까 농촌 의료봉사를 가서 좋은 일도 하고 홍보도 하세요. 위에서부터 잡아

흔들려 하지 말고 아래에서부터 신임을 얻어 나가면 됩니다. 민초로부터 올라오는

여론은 무서운 것입니다. 거듭 부탁드립니다.

  여러분! 앞으로 보하는 약을 많이 사용하십시오. 이것은 간절한 부탁이오니 부디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가령, 양이 실하고 음이 허하다고 하면, 실한 양을 깎아 내리려

하지 말고 허한 음을 보해 주세요. 열이 펄펄 끓는 사람이 왔다고 할 때 대황이나

활석으로 확 깎아 내리려 하지 말고 수기를 보충해 주도록 해야 합니다. 육미지황탕에

숙지황을 많이 넣고 수기를 보충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지요.

  청리자감탕을 보면 이 탕은 팔괘에서 일컫는 삼리화, 육감수의 원리로써 화를

내려주고 수를 보충시켜주는 약입니다. 즉 폐결핵에 쓰는 약이지요. 그러나 뚱뚱한

폐결핵 환자가 왔을 때에도 이 약을 쓴다면 큰일이 나고 맙니다. 왜냐하면 이 탕은

수기를 보충시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탕은 "방약합편"에 보면 "치음허화동

조열도한담천"이라 씌어 있는데 음허화동(양방병명으로는 폐결핵)에 씁니다.

  음허, 진액이 부족하다, 혈이 부족하다, 피부가 건조하고 눈이 퀭하니 핏발이 서고

기침, 해소, 가래가 있다. 가래도 무르지 않고 완담인데 아주 완고한 담이지요.

  반하나 남성은 물컹물컹한 수담을 치료합니다. 수담은 양명조나 궐음풍으로 치료를

하는데, 바로 강냉이 튀밥처럼 생기고 건조한 반하(양명조의 속성)를 씁니다.

  단순히 치담엔 반하라고 외운 사람은, 음허화동으로, 말할 때마다 캑캑거리는

환자에게도 반하를 씁니다. 낫질 않아요.

  캑캑거려도 목구멍에서 잘 떨어지지 않는 완담은 삼켜도 삼켜지지 않고 뱉아도

뱉아지지 않습니다. 이 완담은 칠정이 울결되어서 나오는 담이거든요. 이럴 때 소통지

제인

향부자를 쓰기도 하지만 끈끈한 가래 즉 조담에는 과루인을 써야 치료가 됩니다.

청리자감탕에는 과루인이 들어가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러면 과루인의 생김새를 볼까요.

  과루인은 축축하고 매끄럽고 기름끼가 많지요. 이 과루인(괄루인)을 빻아서 담은

종이는 마치 콩기름을 발라놓은 것처럼 됩니다. 이제는 과루인과 반하를 놓고도

음양이 탁 튀어나올 수 있어야 합니다. 그저 외우지 않고 상황을 판단하고자 하는

안목을 길러야 합니다.

  "방약합편"의 청리자감탕에 "담성에는 패모, 과루인이라"고 씌어 있는데, 반하보다

조금 덜하긴 하나 패모도 역시 거담제입니다.

  "성인은 무위무고 무심무사"라고 했습니다. 성인은 고집이 없으므로 무심, 무사라

하지요. 여러분들이 환자를 볼 때도 무심...무사로 해야 합니다. 성인의 치료방법에는

고집이 없기 때문에 고지식함이 없지요.

  폐결핵이라는 양방병명을 꺼리는 이유는, 환자가 와서 "사진을 찍어보니 폐결핵이라

합니다"고 하면 그 병명 그 말 때문에 이내 청리자감탕을 쓰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자칫 큰일 날일이지요. 청리자감탕의 내용물을 살펴 볼까요?

  숙지황 생건지황 천문동 맥문동 당귀 백작약 산수유 산약 백복령 백출 목단피 택사

황백 지모 감초가 들어가는데, 숙지황 생지황 건지황 천문동 맥문동은 먹어보면 공히

수분이 많고 쫀득쫀득 하지요. 그런데 이걸 뚱뚱한 사람에게 먹여서 되겠습니까?

게다가 당귀는 보혈지제, 백작약은 수검지제, 산수유 산약도 수검지제니까 위험하고,

그저 아주 조금씩(각5분) 들어가는 택사 백복령 백출 목단피만이 사하는 약이므로 이

탕을 뚱뚱한 사람에게 먹인다면 큰일이 나겠지요.

  그저 외워대는 고지식한 사람이 되지 마세요. 폐결핵이라는 병명도 외우지 마세요.

그러나 음허화동은 괜찮습니다. 음허화동이란 말속에는 어떤 약이 들어가야 하는가에

대한 성품이 담겨 있습니다. 이것 뿐아니라 한방에서 사용되는 일체의 탕명에는 어느

정도의 진단과 치료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청리자감탕에는 지모, 황백이 각 2g씩 들어가는데 이건 참 기가 막힌 겁니다. 지모,

황백은 무근지화, 즉 뿌리없는 불을 치료하는 약이지요. 다시 말해서 색화, 강력입방

후,

상신에 용하는 약입니다.

  그런데 이 방사가 일으키는 부작용은 참으로 큽니다. 나중에 각론 족소음신경에서

상세히 말씀드리겠지만 이것은 남녀 공히 중요한 일입니다. 방사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하여 이것이 일으키는 욕망과 갈등, 분노, 소유의식 등을 깨달으면 여러분들은

방사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단순한 방사행위, 그 자체는 문제시 하지 않더라도 심한 방사 후에 일어나는 요통,

전신관절통, 성병, 두통, 안질, 마비, 식욕감퇴 등이 문제입니다. 하늘이 노랗고 땅이

흔들리고, 식욕은 없는데 오직 그 생각만이 끊임없이 용솟음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것을 일컬어 허양이 발동한다고 합니다.

  촛불이 탈 때 잘 살펴보면, 점점 타들어 가다가 마지막에 불이 꺼지기 바로 직전에

일순간 확하고 불꽃이 되살아 났다가 완전히 주저앉아 꺼져버리지요. 이건 참으로

눈여겨 볼 일입니다.

  70이 넘은 노인네가 "작년까지는 이러지 않았는데 금년 들어서는 왜 그런지

손녀같은 젊은 처녀애들만 보아도 A텐트를 치니, 이것참 이상하지 않소"하고 문의해

오는 수가 있습니다. 갑자기 여자를 밝히고, 나바론의 건포도처럼 쪼그라든 할머니의

젖꼭지를 자꾸 만지고 힘을 쓰려고 하는 노인이 있다면, 이건 죽기 일보직전입니다.

허양이 발동해서 그런 것이지요.

  허양이란 진실한 양기가 아닙니다.마치 촛불이 꺼지기 일보 전에 마지막으로 잠시

타오르는 것과 같지요. 죽음의 신호인 줄도 모르고 양기가 되살아 난 줄로 여겨서

첩이라도 들이면 그의 재산은 전부 첩에게 가는 거지요. 이 허양이 대개 1년 정도

간다고 합니다. 바로 이 시기에 지모, 황백을 씁니다. 이렇게 하면 절대로 허양이

발동하지 않습니다.

  모든 치료는 상대적으로 한다고 했는데 침치료 방법은 어떠 할까요? 여기에는 서너

가지 치료법이 있습니다.

  첫째, 상합치료 둘째, 교상합치료 셋째, 합병 넷째, 복합치료입니다. 상합치료는

앞에서 설명드렸듯이, 궐음은 소양으로 소양은 궐음으로 치료하는 방법인데 이제

이것은 더 이상 예를 들지 않아도 잘 아실 겁니다.

  교상합이란 같은 궐음이라도 수궐음과 족궐음이 있고, 소음경도 수소음과 족소음이

있지요. 그러므로 이제는 수궐음하면 심포, 족궐음하면 간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간'하면 족궐음간경이 바로 떠오르도록 해야 합니다. 간은 몇 개의 엽으로 되어

있고, 뭐가 어떻게 되어 있고...이런 것은 해부학 책을 들추어 보도록 하세요.

  앞에서 오운, 육기, 괘상 공부할 때의 그림을 보면, 족궐음간은 중풍손이고

수소양삼초는 중뇌진이므로 서로 상대가 되지요. 고로 족궐음간경을 치료할 때는

수소양삼초경으로 치료하고, 족소양담경을 치료할 때는 수궐음심포경으로 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건 참 신기하기도 하고 미묘하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서 이건 정치법이지요. 이렇게 오운과 육기적으로 관찰을 해봐도, 열에는

한, 한에는 열을 쓰는 정치법이 주가 됨을 알 수 있지요. 서로 교차가 되므로 이것을

교차법이라고도 합니다.

  수경락은 족경락으로 족경락은 수경락을 활용함은 곧 인체가 유기체임을 입증하는

이야기가 됩니다.

  허공처럼 원륭하여(무흠무여)

  남고 모자람 없건마는(양유취사)

  도리어 취사심 때문에(소이불여)

  여여하지 못 하도다(원동태허)


  승과 복에 의하여 생긴 병을 치료하는 원칙은

  한으로 생긴 병은 뜨겁게 하는 작용이 있는 약물을 쓰고

  열로써 생긴 병은 차갑게 하는 작용이 있는 약물을 쓰고

  온으로 생긴 병은 서늘하게 하는 작용이 있는 약물을 쓰고

  량으로 생긴 병은 따뜻하게 하는 작용이 있는 약물을 쓰고

  흐트러져서 생긴 병은 거두는 작용이 있는 약물을 쓰고

  억압되어서 생긴 병은 흐트러 주는 작용이 있는 약물을 쓰고

  건조하여 생긴 병은 적셔 주는 작용이 있는 약물을 쓰고

  급하여 생긴 병은 늦추어 주는 작용이 있는 약물을 쓰고

  딱딱해져서 생긴 병은 부드럽게 해주는 작용이 있는 약물을 쓰고

  물러서 생긴 병은 굳어지게 해주는 작용이 있는 약물을 쓰고

  쇠약하여 생긴 병은 보하는 작용이 있는 약물을 쓰고

  지나치게 강하여 생긴 병은 덜어주는 작용이 있는 약물을 씁니다. 어떤 경우에도

생명의 근원인 정기를 편안하고 태연하게 해주면 영혈과 위기는 반드시 탁한 것을

맑게, 난폭한 것을 조용하게 합니다.

  위에서, 승한다 함은 극한다로 이해하고 복한다 함은 보복한다로 이해하면 됩니다.

복이라는 현상을 말씀드리지요.

  예를 들면 오행상으로 금은 화에 의해 억제를 받지요.

  1985년이 을축년인데 을은 오행상 무엇입니까? 금이지요. 을경합 금입니다. 그런데

이 금이 실질적으로 허한 금입니다.

  부족함이 있는 금이지요. 금이 부족하니 어떤 놈이 설칩니까? 금이 제자리를 잡고

있으면 목을 잘 다스려서 억제해 줄 것이고 화가 함부로 금을 넘보지 못하지요.

그런데 여기에서 보복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보복을 이해하지 못하면 오운육기는

끝장입니다. 금이 화를 억제하여 가만히 눌러 주고 있어야 하는데 금자체가 허하니까

균형이 깨어지게 됩니다. 그러니까 목이 금을 우습게 아는 겁니다. 이럴 때 목이 금을

경모한다고 하지요. 가벼이 여기고 모멸합니다. 그리고 화도 금을 부수고 들어옵니다.

가정적으로 비유해 보면, 내가 힘이 없고 약하면 아버지, 형님(화)의 잔소리에 눌리고

여동생(목)의 간섭까지 받게 됩니다.

  이때 내가 희망을 거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자식(수)이지요. 어서 커다오. 커서

이 애비의 설움을 풀어다오. 꼭 갚아다오. 아버지가 핍박을 많이 당하면 당할수록

자식교육을 철저하게 시킵니다. 여러분들은 이 보복이란 말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이것을 장부로 이야기해 봅시다.

  금을 폐라고 하고, 폐가 간(목)을 억제하지 못해서 간이 폐를 우습게 알아, 허한

폐가 자꾸 근심에 빠지고 우울해 하자 간기가 발동을 합니다. (마치 쥐가 술 먹고,

야! 고양이 너희들 다 나와! 하는 식) 또 심장이 거들먹거리고 잘난척을 합니다. 즉

화기가 성해져서 폐기를 죽이는 거지요. 이때 자식인 신장이 심장을 죽이는

오운육기의 자동조절 기능이 이루어 집니다. 우주는 묘한 것입니다. 현재 내가 고통과

어려움 속에 있다해도 세월을 기다리세요. 역전될 때가 있기 마련입니다.

  이 자식의 역할, 이것을 복이라고 하는 겁니다. 승은 알기가 쉬운데 복(보복)은 좀

어렵지요. 자! 이렇게 오운육기의 상식을 알고 넘어 갑시다.

  치료 원칙에서, 한으로 생긴 병은 열로, 열로 생긴 병은 한으로, 온은 량으로,

량은... 건조한 것은 적셔주고 급한 것은 늦추어 주고... 이렇게 되어 있었는데,

완급은 궐음과 소양, 건습은 양명과 태음, 온량은 소음과 태양의 관계지요. 딱딱해서

생긴 병은 부드럽게 하는 작용을 해주라고 했는데 맛 중에서 부드럽게 해주는 맛이

무엇입니까? 함미지요.

  함미는 굳은 것을 부드럽게 하는 작용이 있습니다. 배추 숨을 죽일 때 소금을

쓴다거나 무우 생채를 부드럽고 쫄깃하게 하는 데 소금을 쓰는 것도 이

때문이지요(연견작용).

  "산수신산" 신맛은 수렴하고 매운 맛은 발산한다는 이런 이치를 궁구해야 합니다.

의미를 자꾸 터득해서 사람이 너무 까부라지고 풀어져서 발산지기가 많으면 거두어

주어야겠다 하고 새길 줄 모르고, "근거를 대라! 근거가 없으면 믿을 수 없다"고

하면 곤란합니다. 심장에 기운이 없어서 죽어가는 사람에게 '급히 신맛으로

움츠려들게 하라'라는 대목을 두고, "신맛은 비타민C가 부족할 때나 먹는 것이지 이

대목은 근거가 없어"라고 말하던 의학 교수가 있었어요.

  신맛이 작용하는 여러가지 성질도 모르면서 경전에 산수신산이라 쓰여 있는 중에

혹시 잘못된 부분이 없을까하고 오점이나 찾으려는 사람들, 의미는 궁구하지 않으면서

"내경의 이 자는 아무래도 후세인의 오역같애..." 어쩌구 하는 사람들 "의학입문의

오류를 내가 발견했어" "상한론에도 오자가 있는것 같애" "김아무개 논문에 이게

틀렸더구만..."

  이렇게 틀린 것 발견하기 좋아하는 교수들, 지식 종사자들, 위대한 학설의 큰

의미를 인정치 못하고 아주 작은 1%의 잘못을 발견했다고 좋아라 떠들어대는

사람들. 설령 틀린 곳이 있다한들 그것이 전체의 몇 %나 됩니까?

  영국의 어떤 교수가 화장실에서 낙서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것을 본 한 친구가

"아니? 자네 교수라는 사람이 어째 화장실에다 낙서를 다 하는가?" 그러자, 이 사람

짐짓 오리발을 내미는데... "그게 아닐세. 난 지금 틀린 글자를 고쳐주고 있는 중일

뿐이라네"

  교수나 지식 종사자란 바로 이렇습니다. 틀린 것 꼬집어 내는 일이나 그럴듯한

자기변명은 곧잘 합니다.

  쇠약한 것은 보하고, 실한 것은 사하고, 견한 것은 부드럽게 하고, 너무 무른 것은

굳어지게 하는 이런 것들이 다 정치법의 예입니다.

  그런데, 상합, 교상합 외에 변칙으로 치료하는 것이 있습니다. 즉 그때 그때의

상황판단에 따라서 치료하는 것이 있지요. 가령, 뱃 속에 딱딱한 덩어리가 생겼다고

합시다. 그러면 어떻게 치료를 할 수 있을까요? 양명이 되겠지요.

  신장결석 따위는 토에 가깝고 꼭 양명조금이라 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뱃속에 있는 단단한 덩어리 따위는 양명조금에 가깝겠지요. 그런데 이것을 치료하는

방법을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이것을 어떻게 치료하면 좋을까요?

  태음을 사용한다면 공식화된 상합치료 방법에는 들어 맞습니다. 그러나 딱딱한

덩어리에 축축한 물(태음습)을 넣어준다고 이것이 없어질까요?

  뚫어서 내리는 방법, 소음군화(화극금)로 녹이는 방법 등이 있습니다.

  궐음풍, 태양한수는 좀 맞지 않겠지요. 제 생각으로는 뚫어서 내리는 방법이

적당하다고 봅니다. '부수어 버린다'와 비슷한 개념이 되겠지요. 부순다고 함은

양명에 해당할 것입니다. 이 딱딱한 것을 치료함에는 양명이 필요하겠지요.

  이렇게 볼 때 육경에 일정한 공식이나 정법은 없습니다. 상황판단에 따라 처치를

달리해야 하므로 무유정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실제 임상 예를 한번 들어

봅시다.

  "방약합편" 난간전과 회향안신탕을 한번 보도록 합시다. 이 두 처방이 산증의

치료약입니다.

  산증이란 하복통, 불알이 붓는 증세, 위로는 심복통 등의 증상을 나타내는데

한마디로 하초가 냉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소회향, 오수유, 부자 같은 더운 약이

들어갑니다. 이 회향안신탕을 양방병명으로 생리통에도 응용할 수 있겠지요. 뚱뚱하고

냉한 사람들 경도불순에 쓸 수 있겠지요.

  우리가 한번 생각해 봅시다. 한방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사물을 단순하게 보아야

합니다. 하초가 냉하여 딱딱해지면 무엇이 생기겠습니까? 돌이 생기지요.

  신장결석, 방광결석, 요도결석에 회향안신탕이 특효약입니다. 하초를 데워주므로

낫는 겁니다. 이때 부자를 많이 넣고, 오수유 소회향도 넣고 이뇨제를 좀 써야 돌이

녹아서 흘러 나오지 않겠어요? 이것이 소음군화를 사용한 경우입니다.

  특히 이뇨제 중에서도 강력한 광물질을 쓰는 것으로 활석과 해금사가 있습니다.

이것들은 돌을 굴려 내리거나 부수어 내릴 때 사용하지요. 그런데 해금사나 활석은

몸이 찬 사람보다는 더운 사람에게 쓰지요.

  팔정산은 "치방광 적열편륭폐"한다고 되어 있는데 여기에 해금사를 가하고 실한

증상의 정도에 따라 활석을 두배, 세배, 네배...하면 돌이 굴러 나옵니다.

  얼마 전, 어느 환자를 치료한 적이 있는데, 서울대학병원에서 "신장결석이니까

입원해서 수술을 해야 합니다"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우리집에 왔다고 했습니다.

그 환자를 보니, 얼굴이 창백하고 몸이 말랐는데 평소에 배가 차다고 하더군요. 이

환자에게 족소음신경을 썼습니다.

  속에 돌이 있거나 말거나 하초가 냉해서 왔으니까 그리고 평소에 찬 음식(맥주

따위)을 좋아하는 (배는 안나왔지만) 냉한 지성인 스타일이었으므로 침은

족소음신경을 놓고, 약은 육미지황탕에 부자, 육계를 가미한 팔미원을 지어 주었더니

통증이 나흘만에 없어지고 말더군요. 기가 막힌 약효지요.

  제가 그 환자에게 1개월 정도 회사 출근하지 말고 집에서 치료하라고 했더니,

"아프지 않은데 어때요"하면서 회사에 출근을 하더군요. 그래서 호되게 나무랐던 일이

있었습니다.

  한방의 치료란, 이런 경우와 같이 전치법에 의한 것 뿐만 아니라 돌을 화로

녹일수도 있고, 금으로 연마시킬 수 있는 등의 변치가 괸장히 많습니다. 이 환자가

실한 증상이었다면 해금사를 썼을지도 모릅니다. 이러하므로 여러분은 변치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를 해야 합니다.

  그러면 육경의 변치가 어떻게 되는지 차차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이 예는 병에

대한 상황으로 이야기하겠습니다.

  우리가 흔히 허실을 이야기할 때, 허함은 정기가 허한 것이고 실함은 사기가 실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가령 양명조금이 허하다고 하면, 건조하게 하는 기운이 모자라는 경우 즉 우리 몸의

짤순이 기능이 무력해진 것을 말하는 것이고, 실하다고 하면 너무 건조해서 바짝바짝

마르는 기운이 성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궐음풍이 실하게 되었을 때는 어떻게 치료를 하면 좋겠습니까? 이 경우, 유심적인

면의 치료와 유물적인 면의 치료로 구분할 수 있는데, 궐음풍의 교만함과 거만함을

비난과 꾸지람으로 치료하라고 하는 것은 유심적 차원이므로 좀 어려우니, 우선

물질적 취상을 해보기로 합시다. 궐음풍이란 열풍이 아니라 냉풍에 가깝습니다.

"지구의 적도부근은 덥지 않습니까?"하고 질문을 할 지 모르지만 그건 지구의

소음군화에 의한 것일 뿐 실제의 대기권 자체는 냉합니다.

  열풍은 풍에 소음군화가 낀 것이므로 복합이나 합병에 해당됩니다. 그럼 냉풍은

무엇으로 치료하면 좋을까요? 우리 실생활을 볼 때, 찬바람이 심하게 몰아치는 지방은

담이 높고 두터운 벽을 가진 가옥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궐음풍을

양명(높고 두터운 담)으로 막는 것입니다. 금(양명) 극목(궐음)은 차후문제입니다.

우선 '막아준다'는 생각이 돌아가야지요. 

  실제로 풍병에 양명약을 쓰는 것이 있을까요? 예! 무겁고 딱딱한 성질로 바람을

막아주는 오약이 그것입니다. "치일체풍질선복차소통기도진이풍약우...."라 쓰여

있고, 마황, 진피, 오약, 천궁, 백지, 백강잠, 지각, 길경, 건강, 감초가 들어가는데,

마황은 발한지제, 진피는 순기지제, 오약은 거풍지제로 유명하지요. 그런데

거풍지제로 가장 유명한 것이 뭡니까? 방풍이지요.

  이 방풍나무는 잎조차도 바람에 좀체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런 특이한 성질을

빌어다 약으로 쓰는 것이지요. 그리고 방풍을 쫓아다니는 것으로 형개, 방풍, 오약,

백강잠을 거풍지제로 쓰는 것입니다. 육기를 알고 나면 한방이 공식 풀리듯 쉬 풀리게

됩니다. 재미있지요.

  백강잠은 누에의 피부가 딱딱해져 (경피병) 죽은 것입니다. 이것을 부러뜨려 보면

'똑똑'소리가 납니다. 이렇듯 백강잠과 오약은 그 성품이 딱딱합니다. 그러니까 '풍을

양명조금으로 묶어보자.'

  '바람에 날려가지 않게 무거운 돌을 달아보자'하는 실로 단순한 논리입니다. 참

쉽지요. 설령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외우도록 하세요.

  오약은 거풍지제, 천궁은 두통약, 당귀 천궁은 보혈제로 쓰지요. 천궁, 백지 이

둘을 합해서 양명두통에 씁니다.

  두통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양명두통, 둘째는 소양두통, 셋째는

태양두통입니다. 그리고 음두통이라 해서 궐음, 소음, 태음두통이 있는데 이런것은

거의 드뭅니다. 만일 궐음두통이라면 죽는 것입니다. 아예 나무코트 입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양명두통은 주로 앞쪽으로 옵니다. 즉 전두통이지요. 이때 천궁과 백지를 쓰는

것입니다. 이 경우는 침도 양명경을 용하든지, 태음경을 용하면 됩니다. 아시겠어요?

  두통은 전부 열로 옵니다. 옛말에 "두무냉통, 복무열통"이라 했습니다. 머리는 차서

아픈 경우가 없고 배는 뜨거워서 아픈 경우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궐음두통에는

부자, 마황을 넣어 발표를 시켜야 되는데 이런 두통은 정말 드뭅니다. 여러분들

개업해서 환자를 볼때 궐음두통 환자 한번 볼 때까지만 사세요.

  배는 뜨거워서 아픈 법이 없습니다. 이와 반대로 양명두통, 소양두통, 태양두통은

이 각각의 세 경락에 열이 들어간 것입니다. 그런데 소음경락은 열이 많은데도

소음두통이란 게 없습니다. 이상하지요? 왜냐하면 소음열이 태양경으로 들어가서 주로

뒤통수 즉 후두부가 아프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양명두통은 전두통,

소양두통은 편두통, 태양두통은 후두통입니다.

  소양열에 의한 편두통은 측두부가 아픈 것인데 이때는 족소양담경을 사해 주면

좋습니다. 그런데 양명열에 의한 전두통은 양명경을 사하거나 또는 보해 주어도

됩니다. 왜냐하면 수양명대장경은 양명조금이긴 하나 열이 하나도 없습니다.(오운과

육기가 모두 양명조금이므로) 또 족양명위경은 오운이 토, 육기가 금이므로 보를

해주어도 열을 올려주는 것이 아니고 내려주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소양열은

소양경을 사해야 되겠지요.

  태양열에 의한 두통은 족태양방광경을 보해야 됩니다. 족태양방광경은 오운과

육기가 모두 수이므로, 보하면 찬물을 넣어주는 것이 됩니다. 두통에 대해서는 앞으로

시간이 허락되면 상세히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길경과 지각을 합하면 무슨 탕이 됩니까? 길경지각탕이지요. (중통 134번) "치비기

흉만불리 번민욕사 불논한열통용 우치상한결흉"라고 씌어 있는데, 이것은 위, 흉하,

심하가 답답하고 뭔가 체한 것 같고 (음식먹고 체한 것은 아닌데...) 기분이

나쁘다거나 직장 상사나 아버지와 다투었거나 야단을 맞았을 때 이 길경, 지각이

쓰이지요. 그래서 오약순기산에 길경, 지각이 들어가고 건강도 들어가는 겁니다. 특히

오약이 군약이 되지요.

  찬바람이 몰아칠 때 또 어떤 방법을 쓸 수 있을까요? 구름을 걷어내고 따스한

햇볕을 내려 쬐게 하면 어떨까요? 그러면 바람은 불지만 따뜻한 바람이므로 봄바람을

맞듯 기분이 좋겠지요. 사실은 이게 제일 좋은 방법입니다. 궐음경에 전경되면,

낭축이 되고 전신이 냉해지니까 이런 증상은 소양상화지기로 몸을 데워주면 좋겠지요.

  소양상화지기의 성질인 맛이 쓰면서도(고) 몸을 데워주는 약으로 무엇이 있을까요?

오수유가 대표적이지요. 오수유, 소회향, 애엽, 익모초같은 것은 주로 소양상화의

성질을 가졌지요(어떻게 보면 소음군화 같기도 합니다).

  입경을 보면 "수소양, 수소음으로 들어가면... 어떻고, 궐음으로 들어가면...

어떻다"고 씌어 있는데, 여러분! 입경은 두 가지 차원에서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때

그때 해석을 잘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설사약'을 보면, 설사를 그치게 하는 약인지? 설사가 되도록 하는

약인지? 혼돈이 될 수 있지요. 입궐음경도 소양경을 치료하는 차원에서 입궐음인지,

궐음자체의 성질에 해당되고 부합한다는 차원에서의 궐음경인지 잘 알아야 합니다.

오수유, 소회향이 소양경으로 들어간다고 하면 이것들의 성질을 이야기한 것이고,

궐음경으로 들어간다고 하면 궐음을 치료한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두 가지 차원에서 이해하면 혼동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또 찬바람이 몰아칠

때 어떤 방법을 쓸 수 있을까요? 밤이라서 바람을 물리칠 수는 없겠으나 맞바람을 보

낼 수도 있겠지요. 바람이 부는 한가지 상황에서, 벽으로 막는 방법(양명), 따뜻하게

태양을 쪼이는 방법(소양), 모닥불을 피우는 방법(소음), 맞바람을 일으키는

방법(궐음)을 쓸 수가 있겠지요. 이것을 육경으로 이야기하면 괄호속에 기입한 것이

되지요. 그러나 태음습과 태양한수는 안되겠지요. 왜냐하면, 바람이 불 때 물을

뿌리면 더 추워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이것을 아셔야 합니다. 만약 이것을

이해하신다면 어떠한 차원으로도 조사가 가능합니다.

  이번엔 소음군화를 치료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지금 더위가

심하다고 가정을 해봅시다. 어떻게 더위를 극복할 수 있을까요? "찬바람을 쐰다" 예!

좋습니다. 그렇다면 궐음이 되겠지요.

  궐음은 목이므로, 목생화의 이론 즉 오행상의 이론으로 되어야 할텐데, 여기서는

화를 극하기 위한 목이므로 목극화가 되었지요. 따라서 오행상의 이론은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은 내용물 즉 질에 관한 문제이니까요. 더위라고 하니까 궐음풍을

생각해 냈는데, 궐음풍약으로 소음군화를 치료하는 것이 있습니다. 화병으로 중풍이

되었을 때 쓰는 형개방풍은 풍을 예방하는 약입니다. (방풍은 딱딱한데 왜 궐음에

넣었을까요?) 형개 시호는 소음군화를 식혀주는 약입니다.

  또 더위 먹었을 때 시금털털한 오미자 차를 마시는데, 오미자 산사자 산수유 등이

더위 먹었을 때 에너지를 보충시켜 주는 궐음에 해당하는 약입니다.

  태양한수는 몸을 식혀주니까 말할 나위없이 생지황, 황련, 황금, 황백, 대황 등

이겠지요.

  소음군화를 양명으로 치료하는 약은 용골, 모려같은 것들이고, 태음습으로 치료하는

약은 맥문동, 천문동, 황정같은 약으로 보음을 시킴으로써 소음군화를 슬쩍 억눌러

주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궐음약으로 소음군화를 억제시키는 것과 태양한수약으로 소음군화를

억제시키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지요. 이런 것을 여러분들이 잘 연구를 해보세요.

  지금부터 제가 하는 이야길 잘 들어 보십시오. 유리컵이 있는데, "물을 담아

오너라"고 하면 아무 이상이 없지요. "유리컵에다 난을 한 촉 심어 두어라"고 한다면

이것은 괜찮겠지요. 난을 심기 위해 모래흙을 담을 수도 있지 않겠어요? 또

유리컵에다 올챙이를 키우겠다고 막내가 고집을 할 수도 있겠지요. 재떨이에 담배재를

떨기도 하지만 이쑤시개나 휴지를 버리기도 하지요.

  이러한 유리컵이나 재떨이를 기, 즉 기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이 인간에게 오장육부를 만들어 주었을 때 그 기에 각각 무엇을 담을 수 있도록

한계를 두었을 것입니다. "위에는 무엇을 담아라" 또는 "어느것까지는 담아도

좋다"하는 한계가 있었겠지요. 재떨이에 휴지나 이쑤시개를 버려도 무방하듯이...

  그런데 "물을 한 잔 마시게 그릇을 가져 오너라"고 했는데 제떨이를 가져왔습니다.

"야! 임마", "아니? 재떨이로도 먹을 수는 있잖아요?" "글쎄 먹을 수야 있지..."하고

양보를 할 수 있습니다.

  또 국을 요강에 담아다가 밥상을 들여옵니다. 이것 참! 기분은 나쁘지만 여기까지는

병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왜? 담을 수는 있으니까(일은 진행시킬 수 있지요). 지금

이 비유를 잘 들어야 됩니다.

  아주 얇은 종이 접시가 있다고 합시다. 여기에 팝콘이나 오징어 따위는 담을 수

있지요. 그런데 물을 떠오라고 한다면 오는 도중, 물이 질질 새다가 결국 찢어져서

물을 먹을 수 없겠지요(그릇도 못쓰게 되고, 물도 먹지 못합니다). 우리 몸속의

오장육부도, 마치 재떨이에 물을 담아 오고 밥을 담아 오면 우리가 싫어하듯, 견딜 수

있을 때까지는, 싫어하는 경우가 되어도 견뎌줍니다. 그런데 종이 접시에 물을

담아오는 상황을 오장육부에 부여한다면 안되겠지요. 이렇듯 오운에 합당하지 않은

육기가 들게 되는 경우를 흉하다고 합니다.

  종이 접시를 토(토에도 음토와 양토가 있음)라고 할 때 갑자기 태양한수가

들이닥쳤다면 그 해 운수가 아주 나쁘게 됩니다. 이런 사주를 흉상이라고 합니다.

재떨이에 담배재를 떤다면 길하나 밥을 담는다면 길하다고 할 수 없겠지요. 이걸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태음과 태양이 궐음풍과 만나면 큰일이 나겠지요(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찬바람이

부는데 물을 뿌리면 더 추워지기 때문). 건강을 망치게 됩니다. 따라서 어떤 경우라도

이것들을 만나게 해서는 안됩니다. 또 궐음과 궐음이 만나는 경우도 있으나 자칫 잘못

부딪치면 큰일이 나므로 치료법상 피해야 합니다.

  이런 점을 고려하고 나니 궐음풍을 치료하는데 태음, 태양, 궐음은 제외하고 양명,

소양, 소음이 쓰이게 됨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다른 것들도 반드시 연구를 해보시기 바랍니다. 연구를 해보노라면

한방공부가 얼마나 재미있고 묘미가 있는지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또 이것이

제대로 하는 한방공부입니다.

  또 하나 예를 들어 소음군화의 불을 끈다고 합시다. 어떻게 할까요? "나는 바람으로

끄겠어!" 이건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것이지요. 이때는 물로써 꺼야지요. 여기에

태양한수가 등장하는 겁니다. 만약 그 불이 기름불이라면 물로 끌 수 없지요. 이때는

모래 즉, 양명이 등장하게 됩니다. 또 아주 작은 불은 스프레이 정도의 습기만으로도

끌 수 있지요. 이 경우엔 태음습이 등장되고, 맞불을 놓는 경우와 같은 소음군화가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대개의 경우 불에 궐음풍을 쓰는 위험은 짓지 말아야

합니다.

  태음습을 예로 하나 더 들어 볼까요. 태음습을 안개나 이슬 혹은 비에 젖은 옷으로

본다면 어떻게 말릴 수 있을까요? 바람에 쏘여 말리거나, 햇볕에 말리거나,

드라이어의 열로 말리는 등 여러가지 방법이 있겠지요. 그러나 젖은 옷에 찬물을

끼얹을 수는 없습니다. 고로 태양한수는 치료법에 해당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부터는 "황제내경"에 대해 한 말씀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사기의 기세에 다소가 있고, 병의 상태에 성쇠가 있으며, 치법에 완급이 있고,

처방에 대소가 있다"라는 말이 "황제내경"에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대원칙입니다.

  환자를 치료할 때는 마음을 항상 염담허무하게 가져야 합니다. 무심으로 마음을

비울 줄 모르면 환자의 마음 상태가 어떻게 되어 돌아가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무심해지라는 말은 욕심을 없애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을 비운 다음에 환자의

병이 죽을 병인지 살 병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생사의 판단이 선 다음에 손을

대야지요. 의사에게 있어 가장 어려운 것이 살 병인지, 죽을 병인지를 판단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바둑도 묘수풀이가 제일 어렵다고 하지요. 기기묘묘한 묘수풀이는

아무리 높은 상수라도 풀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생사의 판별도 쉬울 것같지만

병이 얼키고 설키면 정말 어렵습니다. 이렇게 생사를 알고 난 후에야 대소가

나옵니다. 병의 정도를 알아야 처방의 대소 즉 크고 작음을 이야기할 수 있지요.

  "방다이효소하고 방소이효다라..." 처방이 많으면 약효가 적고, 처방이 적으면

약효가 많고 큽니다.

  이를테면 십전대보탕에다 오미자를 넣고 또 육미지황탕을 넣게 되면 효과가 적고

간단하게 계지, 마황, 행인, 감초와 같이 쓰게 되면 그 효과가 오히려 크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아하! 그렇다면 나도 명의가 되기 위해 방을 적게 써야 되겠군!" 이런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착각하지 마세요. 효과가 많다는 이야기는 거꾸로 뒤집어

말하면 독성이 강하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또 무섭다는 말도 됩니다.

  '나는 명의가 될거니까, 상한론 위주 사상방 위주로 쓸거야!' 이런 착각하지

마세요. 효과가 강한 대신 잘못 오진하면 큰일납니다. 땀이 나는지 어떤지도 모르고,

땀이 줄줄나는 사람에게 마황을 두돈 반만 넣어 보세요. 사람이 정신을 잃어

버립니다.

  제가 U시에 있을 때, 마황을 먹이고는 사람을 죽인 일이 있었습니다. 암환자인데,

마황을 반전 넣었는데도 그 다음날 죽었다고 하더군요. 이 일은 지금까지도 제 마음에

걸리는 일입니다. 그 환자의 부인께서 이해를 해 주시긴 했지만... 이 마황같은 약

함부로 쓰는게 아닙니다.

  그러므로 병이 큰 것이냐 작은 것이냐, 방을 크게 쓸 것이냐 작게 쓸 것이냐를 잘

알아야 합니다. 흔히 "수술은 성공했는데 사람은 죽었다"는 말을 듣습니다. 또

"오행침을 정확히 썼는데 이상하게 병이 더하던데요"라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가는 침을 쓰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 망치로 못을 박듯 세게

박았을지도 모르고, 보사를 어느 정도해야 되는데 너무 과하게 비틀었는지 모를

일이지요. 이건 참 무서운 일입니다.

  완급도 실로 어렵습니다.

  바둑을 두다가 한 판 졌다고 화를 내는 사람은 바둑 실력이 절대 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어쩌다가 환자의 병을 못 고쳤다고 열등감이 생겨서 "으이그--, 그저

나같이 둔한 의사는 죽어야 돼"하면서 자학만 하고 있다면 그런 사람을 하늘이

좋아할까요? 때로는 자기 위로나 자기합리화도 해야 됩니다. 보는 환자에게마다

열등감 다 느끼고서야 여러분들 실력이 언제 늘겠습니까? 어쩌다 바둑 한판 지고 나면

"아이구! 나는 안돼" 연구는 안하고 머리만 탓해 가지고는 절대 바둑이 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이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1000만원을 가진 사람이 어느날 700만원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자 "에라--.

모르겠다" 하고는 남은 300만원으로 술을 먹어버렸습니다. 남은 300만원도 적은 돈은

아니었는데 700만원이라는 그보다 큰 돈을 잃은데 대한 자포자기심때문이지요. 잃은

700만원에 연연해 하지 말고 남은 300만원으로 일어서려고 해야지요.

  새로운 환자가 왔는데 조금 전에 환자를 볼 때 느낀 감정으로 새 환자를 대해서야

되겠습니까? 지나간 일에 매여 있으면 안됩니다.

  승부나 이해관계로부터 벗어나기는 도인도 힘들다고 합니다. 무지무지하게 공부해야

합니다.

  아문혈같은 곳은 자칫 잘못 침을 찌르면 죽고 맙니다. "어? 이상한데요. 나는

가늘고 조그만 침을 놨는데요. 난 잘못한 게 없는데 사람이 죽던데요" 생사나 대소의

판단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환자가 왔는데, 위궤양에, 팔다리가 쑤시고, 두통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하면 어떤 것부터 치료해야 할까요? 이런 환자가 왔다면 정말

골치가 아프겠지요. 그렇지만 실제 임상에 나가면 바로 닥치는 일입니다. 더우기 뚱뚱

한데 열이 있다고 하면 (뚱뚱하면서 냉하면 쉽겠지만...) 어떤 것부터 어떻게 치료를

해야 할까요? 이렇게 완급이 어렵습니다. 그리고 병의 상태에 흥망이 있다고 했는데

이것을 잘 파악하기 위해서는 완급을 잘 조절해 주고, 크고 작음을 알고, 생사를

알아서 여러분들이 병에 대한 주도권을 잡고 면밀하게 검토를 해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의사와 환자사이에서도 항상 의사가 주도권을 잡아야 합니다. 환자의 페이스에

말려들면 안됩니다.

  "몇십 집을 버리더라도 선수를 잡아라"는 바둑의 교훈과 비유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환자의 말에 끄달리면 안됩니다. "저--선생님! 병원에 가서 소변검사를 해

보려는데 어떨까요?" "갔다 오세요" 며칠 후, "선생님! 병원에 가니까 한의원에 가지

못하게 하던데요..." "그러면, 오지 마세요" 이런 한의사가 많습니다. 이렇게 하려면

뭣하러 한의원 차리고 앉아 있습니까?

  쓸데 없는 질문을 하고 아는 척 하는 환자는 혼내줄 줄도 알아야지 신사인양

체면차리고 앉아 있다가는 아무 일도 못하고 맙니다. 갓 졸업한 젊은 의사들을 환자가

얕잡아보고 우습게 여기는 일이 많은데 이때는 기선을 잡아야 합니다. 환자에

의존해서 밥을 먹고 산다는 치사한 생각을 해선 안됩니다.

  또 내가 아니면 못고친다는 터무니 없는 망상도 나쁩니다. 그렇지만, 참으로 어렵긴

하지만 주도권을 뺏겨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의사는 실로 정밀해야 합니다.

  제가 이 강의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고 연구를 하는지 아십니까? 작은 예

한가지도 대수로이 하지 않는데, 그래도 강의를 하다보면 자주 빼먹고 지나치게

됩니다. 정밀성의 어려움이지요. 군신좌사의 마지막인 사에 가서 한 두가지 약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승부가 좌우되는 약의 처방도 이러한 정밀성이 없으면 할 수가

없습니다. 정밀성이란 꼼꼼하고 세밀하다는 뜻이지요. 이 세밀함은 이른바 기술적인

테크닉의 차원에서부터 약을 쓰는 군신좌사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경우에 다 해당이

됩니다. 잠깐 군신좌사에 대한 "내경"의 말씀을 보고 넘어 갈까요?


  기의 제란, 곧 주되는 약물이 1. 신약, 곧 종이 되는 약물이 2. 혹은 군약 1, 신약

3, 우의 제란 군약 2. 신약 4, 혹은 군약 2. 신약 6. 또, 다음과 같이도 서술되어

있사옵니다.

  발병의 시기가 가까운 자는 기의 제를 쓰고

  발병의 시기가 먼 자는 우의 제를 쓴다.

  발한할 때는 기의 제를 쓰고

  사하할 때는 우의 제를 쓴다.

  또 상반신을 보하고 또 고치는 데는 완의 치법을 쓰고

  하반신을 보하고 또 고치는 데는 급의 치법을 쓴다.

  완의 치법에는 기미가 얇은 약물을 쓰고

  급의 치법에는 기미가 두터운 약물을 쓴다.

  이와 같이 하여 그 병에 적응한 치법을 강구하는 것이 치료의 원칙이다.

  ...(내경. 지진요대론)


  발병의 시기가 가까울 때는 기의 제 즉 군약과 신약의 비율을 1대2, 멀 때는 우의

제를 쓴다고 했지요.

  그러므로 최근에 걸린 감기에 쌍화탕같은 것을 쓰고 싶으면 기의 제 즉 군약과

신약의 비율을 1대2로 쓴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병세가 아직 세지 않기 때문에 그

병세를 콱 치게될 군약이 많이 들어갈 필요가 없다는 얘기입니다.

  며칠 계속해서 돼지고기를 먹은 사람이 오늘은 그다지 돼지고기가 먹고 싶지

않지만, 반찬이 돼지고기 밖에 없을 때에 어떤 요리로 해서 먹는 게 좋을까요?

'편육을 만들어서 새우젖에 찍어 먹는다'고 한다면 좋지 못하겠지요. 군(돼지고기)이

10, 신(새우젖)이 1 이므로 기의 제인 군과 신의 비율인 1대2에 비해 군의 비율이

너무 높아서 이 요리는 좋지 않지요.

  이럴 때는 돼지 김치찌게를 끓여 먹으면 좋겠지요. 돼지고기 덤성덤성에다,

고춧가루, 파, 마늘, 김치...등은 많이 들어가므로, 돼지고기가 군이 되긴 하지만

신이 더 많지요. 그런데, 발병의 시기가 멀 때는 우의 제를 쓰라고 한 것은 군약도

많이 넣지만 신약이 더 많지요. 가령, 발병이 된지 한달이 지나도록 몸의 열이 내리지

않을 때 골석이나 대황 따위를 (한약) 많이 쓰면서, 신약으로 숙지황, 맥문동 등을

넣는다는 것이지요.

  발한할 때는 기의 제를 쓰고, 사하할 때는 우의 제를 쓴다고 했는데, 이것은

발한시킬 때와 사하시킬 때의 중점이 다르다는 의미입니다. 발한을 시키기 위해

마황을 군으로 썼다면, 나머지 신약은 두어가지, 서너가지 정도 쓰면 되겠지요.

아뭏든 주가 되는 약을 가볍게 쓰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사하를 시키고자 할 때는 대황, 지실을 서너돈씩 넣고, 이게 너무 세겠다

싶으면 숙지황으로 보도 해주고, 또 필요한 여러가지 약을 다 넣은 뒤에는 승마를

살짝 넣어주는 겁니다. 마치 무슨 요리법같이 까다롭지요.

  상반신을 보하고, 또 고치는 데는 완의 치법을 쓰고 하반신을 보하고, 또 고치는

데는 급의 치법을 쓴다고 했고, 완의 치법에는 기미가 얇은 약물을 쓰고, 급의

치법에는 기미가 두터운 약물을 쓴다고 했는데 이것은 제가 드리는 한 가지 예만

들으면 금방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두통약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여러분 한 번 나열해  보십시오. 세신, 백지, 시호,

천궁, 천마, 만형자, 고본, 감국 그리고 인경약인 승마도 포함시켜야지요. 이 외에도,

눈(목)에 관한 약, 코에 관한 약 등... 다시 말해서 두, 안, 비, 이 약들은 반전

이상은 좀체 쓰지 않습니다. 머리로 올라가는 약인 세신을 12g, 즉 3전을 넣는다거나,

승마를 5전 넣는다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보중익기탕에도 승마는 기껏 2g 들어갑니다.

  또 세간명목탕(하통 108번)에 들어가는 약의 양을 살펴봅시다. 당귀(미), 천궁,

적작약, 생지황, 황련, 황금, 치자, 석고, 연교, 방풍, 형개, 박하, 강활, 만형자,

감국, 백질려, 초결명, 길경, 감초 이 모두가 각 2g 즉 5푼 밖에 넣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기미가 얇은 약들은 완만하게, 유연하게, 조금씩 쓰라는 이야기이지요.

이렇게 위로 올라가는 약에 비해 숙지황, 맥문동, 오미자, 토사자, 복분자, 육종용,

파고지 등은 하초로 내려가는 약입니다. 그러므로 병에 맞는 약, 맞는 치법을

강구하는 것이 치료의 원칙입니다. 그러니까 정밀성이 얼마나 중요하겠습니까? 정밀성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착각하지 말아야 함'입니다.

  환자가 와서, "머리가 아픈데요..."하면, 무슨 탕 무슨 탕...해서 대략 열 가지

정도의 탕이 떠오릅니다. 이걸 쓸까? 아니, 저걸 쓸까? 에라 모르겠다. 요걸 쓰자!

하고는 약을 지어주면 큰일납니다.

  음양을 착각하면 안됩니다. '착각'이란 알긴 알지만, 경솔히 하는 데에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조금만 더 깊이 연구하면 되는데, 그저 얄팍한 생각만 굴리다가 헛짚고

말지요. 자기 딴은 신념이 있었는데 잘못 짚는다는 것은 곧 어리석음입니다.

  또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실수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수는

경망스러워서 하는 것입니다.



@{

  동양의학혁명

  (사암도인 침술원리

  40일 강좌 외)

  총론


  전11권 중 제6권


  강론:금오 김홍경

  도서출판 신농백초


  점역처:대한적십자사

  서울특별시지사 점자도서실

@}

@[(2)@]

  그 다음은 병을 가볍게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병은 우리에게 있어선 적입니다.

"적을 가벼이 보면 반드시 패한다"고 했습니다. 환자를 봄에 신중하지 않고 가볍게

대한다거나 병을 경솔하게 얕잡아 보지 마세요. 모쪼록 제가 지금까지 말씀드린

'무심, 생사, 대소, 완급, 주도권, 정밀, 물착, 물실, 물경'이 아홉 가지를 꼭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한방 뿐 아니라 여러분의 인생적인 차원에서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구한말 유명했던 경허스님의 시 한 구절을 소개합니다.


  그 뜻을 얻고 보면 시중에서 지껄이는 한가로운 말들로 항상 법의 수레바퀴를

굴리는 것과 같고, 그 말의 뜻을 잃어버리고 말면 용궁의 경전도 한바탕 잠꼬대에

불과 하느니라.(득기지야 가중한담 상전법륜, 실어언야 용궁장경 일장매어.)


  "진정한 구도자는 부처도, 보살도, 나한도, 나아가 과거, 현재, 미래에서의 어떠한

영광도 취하지 않는다. 그는 의연히 이 속세를 초탈하여 절대적인 자유를 누리기에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다. 천지가 무너져도 그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는다.

천지사방의 부처들이 앞에 나타나도 그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는다. 또 지옥에서 온갖

귀신들이 다 뛰쳐나오더라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어떻게 해서 그는 이다지도

태연자약할 수 있을까? 그것은 그가 세상 만 가지 사물을 구성하는 공의 원리를

알았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변화하는 것에 홀리지 않는 눈에겐 실체가 아니다.

과거, 현재, 미래는 다만 마음의 작용일 뿐이고, 세상 만물도 다 알음알이(식)에서

일어난 것일 뿐이다(삼계유심만법유식). 그렇다면 꿈이나 환상, 허공에 핀 한떨기

꽃에 집착하여 무엇하겠는가? 오직 참으로 실재하는 단 한 사람은 바로 지금

내 눈앞에서 나의 설법을 듣고 있는 그 사람이다"


  의사가 가져야 할 기본적인 자세를 담고 있는 오경태박사의 "선의 황금시대"중의

일부입니다.

  우리는 뜻을 얻어야 합니다. 우리가 육경 공부를 하는 이유도 짐승소리, 사람의

음성, 사물의 모양등의 소리를 듣거나 모양만 보고도 그것이 가진 감정과 성품을

알기 위한, 다시 말해서 뜻을 얻기 위함이 아니겠읍니까? 어떤 가수가 노래했듯이

친밀한 대화에는 말이 필요가 없습니다.

  "황제내경", "상한론", "의학입문"등 좋은 책이 아무리 많으면 무얼 합니까?

그 속에 담겨진 뜻을 얻어야지. 그저 말끝만을 쫓아다니다가 뜻을 놓친다면 실로

일장춘몽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기본적인 관, 음양관을 터득하기에

힘을 써야지, 그저 몇가지 이론만 외워서는 곤란합니다. 기본적인 관을 얻고 나면

보다 큰 세계는 없는가? 하는 의문이 생기게 되고, 그 세계를 찾고자 노력하다 보면

보다 넓고 큰 세계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치료문제 즉 치료대법에 있어서 여러가지 차원에서 연구를 했는데 치료를

함에 있어서는 엄청난 추리력과 제가 강조하는 직관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 점에

있어서 여러분들이 그저 외운 것만 가지고 활용하려 하지 말고, 뭔가 여러분 각자가

독특한 자기 나름의 인생관을 터득하여 형식이나 말에 끄달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

주시길 강조하기 위하여 경허스님의 시 한 구절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주로 내상에 관한 것, 정신적인 차원에서부터 육경적인 진단에 이르기까지

여러분과 검토를 해 보았습니다.

  거듭 강조하는 바는, 고지식한 율법이나 몇몇 공식이 전부가 아님을 인식하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잘못해서 오운육기를 공식화 시켜버리면 오운육기를 만든 성인의 기본 뜻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이것은 육경에도 합병이 있음을 고찰할 수 있는 눈을

열어줍니다.

  그런데 이 합병과 더불어 어떤 변수가 작용하면 복합이 됩니다. 이 경우

복합치료란, 가령, 태음과 양명에 병이 왔을 때 이 두 경락만 치료하면 되지

않겠는가 하는 합병치료를 생각하게 되는데, 때로 전혀 엉뚱하게 임맥이나 독맥을

취해서 치료를 해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복합치료인 것입니다.

  예를 더 들어 봅시다.

  수태양소양경을 보하려면 임립, 후계는 목, 통곡, 전곡은 수이지요.

  흔히 교상합치료에서는 수태양소장경이 족소음시경을 치료한다고 보는데,

이 족소음현경에 수와 화가 적당히 복합이 되었을 때는 수와 화가 거꾸로 뒤집어진

수태양소장경으로 치료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복합치료란 어렵고 까다로운 것입니다.

  몸안에 피가 부족하다고 할 때 흔히 수태양소장경을 보합니다. 혈허나 여자들 경도,

남자들 코피, 대장출혈, 기타 몸 속의 제출혈, 타박으로 어혈이 되었을 때 우리

오행침법에서는 이 수태양소장경을 일단 상기시킵니다. 수태양소장경의 보는, 임립.

후계를 보하고, 통곡 전곡혈을 사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통곡, 전곡혈이 수이므로

이것을 사하게 되면 수기에 마이너스가 오게 되므로 태양한수를 보하고자 함에

역행하는 경우라 하여 이 두 혈의 사를 생략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건 참으로 고차적인 이야기입니다. 저도 이러한 복합에 대해선 그리 썩 잘

알지 못합니다만 대표적인 예를 책에서 한번 찾아 보겠습니다.

  "사암침염요결" P23, 17번을 보세요. "말이 어물어물하고, 반쪽을 못쓰는

반신불수는 심허인지라 대돈을 보하고 태백을 사하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심허에는

이론적, 원칙상 수소음심경의 정격을 써야 하므로 대돈, 소충을 보하고 음곡, 소해를

사해야 합니다. 그런데 책에는 "대돈을 보하고 태백을 사하라"라고만 되어 있지요.

그렇다면, 대돈을 보하는 것은 맞는데 왜 소충, 음곡, 소해를 생략했을까요? 한편,

심장이 실할 때는 수소음심경 승격을 쓰는데, 음곡, 소해를 보하고, 태백, 신문을

사합니다. 그런데, 심실일 때, 사하는 태백혈을 "사암침염요결"에서는 어째서

심허일 때 사하라고 써놓았을까요? 이건 참으로 불가사의한 것입니다.  또 한가지

참고로 얘기하면 중풍걸린 사람에게는 심허, 심실을 불문하고 일단 대돈을 보하고

태백을 사해 보세요. 그러면 얼굴이 비뚤어졌거나 반신불수이거나 가릴 것 없이

상당한 효과를 보게 됩니다. 그러나 이 방법은 사암침법의 이론에는 맞지 않습니다.

이 또한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지요. 치료에 있어서 상합보다는 교상합이 더 많고

교상합 다음으로 상합, 상합 다음으로 합병치료가 많이 쓰입니다. 이러한 복합치료는

여러분의 연구과제입니다.

  이론이나 상식을 벗어난 혈의 보, 사는 정말 수수께끼입니다. 혈은 혈대로 보, 사는

보사대로 각기 다 다른 경우가 허다하지요.

  그러므로 결국 사암침법이 여러분에게 드리는 메시지는 '여러분의 직관에 의해서

나름대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어제 강원도 태백시에 사는 한 친구가 와서 하는 말이, "강원도에는 사암침을 쓰는

사람이 많은데, ^456 356 356 123^씨가 열이 끓어서 가슴이 답답한 환자에게 수소음심

정격을 썼는데도 낫더라. 화에 화를 더한 격인데 어떻게 나을 수 있었을까?" 그 이유

이론적으로 설명해 달라고 하니 "병만 나으면 됐지 무슨 잔소리야"하더라며 불평을

토로하더군요. 자기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거지요. 그래서 제가. "앞으로도

계속 열이 오르는 사람에게 수소음심경을 보한다면 자칫 큰일 날 것이다. 자네가 본

경우는 물이나 모래로 쓸 수 없는 어떠한 강한 불을 불로써 껐다고 보아라.

이열치열도 있지 않느냐"라고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여러분, 이론이란 무엇입니까?

현상을 합리적으로 알아 듣기 쉽게 설명하려는 노력에 불과한 것이지 이론 그 자체가

실제는 아니지요. 다시 말해서, 실제적으로 일어난 일을 모든 사람들에게 알기 쉽게

설명하려는 것이 이론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이론부터 무턱대고 익히려 하지

마세요.

  이상과 같은 복합치료에 비해 합병치료는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복합치료가

내포하고 있는 변수는 신만이 알고 있겠지요. 어떤 환자가, 화병이 있다고 할 때,

한 사람은 족태양방광경, 다른 사람은 수태양소장경, 또 다른 사람은 족궐음간경으로

치료하자고 주장합니다. 불은 물, 모래, 바람 등 어느 것으로도 이론상 끌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것이 가장 정확한 방법이 될까요? 얼굴이 불그레죽죽하고

화기가 부하게 뜬 상태라면 족궐음간경이 낫겠고, 연일 열이 펄펄 끓는다면

족태양방광경이 낫겠고, 약간 신경성이고, 전체적으로 눈자위가 벌겋게 충혈되어

있으면 족양명위경이 옳을지도 모릅니다. 요는 그 불(화)이 활활 타 오르는 불인지,

기름불인지, 촛불인지를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되겠지요. 사암침법의 어려움이,

복합치료의 어려움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만일, 60혈만 외워서 사암침법을

운용할 수 있다면 제가 강의를 복잡하게 하고, 했던 이야기를 하고 또 하고 그럴

필요도 없고, 공안문제라든가 기본게임 따위를 들먹일 이유가 없습니다. 공식대로

외워서 취혈을 하면 되니까요. 사상의학을 열심히 한 사람들도, 사상만으로는 다

들어 맞아 주지 않으니까 8가지 혹은 16가지로 분류를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태음적 소양인도 있을 것이고 소양적태음인도 있을 뿐아니라 보라색, 회색,

등과 같이 그 내용을 딱 잘라 말하기 불가능하리만치 미묘한 것이 인간인데 그것을

어떻게 이론으로 정의할 수 있겠읍니까?

  수양명정격을 한번 봅시다. 수양명대장경은 족삼리, 곡지를 보하고 양곡, 양계를

사하지요. 그런데 양곡은 수태양소장경의 화혈이고, 양계는 수양명대장경의

화혈이지요. 이 수태양소장경의 화혈(양곡)과 수챵명대장경의 화혈(양계)이

수양명정격의 사하는 혈입니다. 이 수양명정격으로 어떤 사람을 치료할 수

있겠읍니까? 양명이니까 마른 사람보다는 뚱뚱한 사람을 치료하겠지요. 왜냐하면

양명의 성품이 건조하면서도 가볍기 때문이지요. 양명가운데에서도 수양명대장경은

오운과 육기가 공히 금과 금입니다. 그래서 더욱 건조하고, 더욱 서늘한 기운이

강합니다. 학생중에 수양명대장경으로 효과를 본 학생들이 있을 것입니다.

  "선생님! 저는 수양명대장경으로 척추디스크를 고쳤습니다" 척추디스크를 한글로

표기하면 '제 4, 5 요추간판 탈출증'이 됩니다. 뭐 대단한 것 같지요. 여러분들에게

이런 것 암기하라고 하면 신나게 할 겁니다. 수양명대장경으로 요통을, 디스크를,

신장염을 낫게 해 주었다고 이야기하면 허준선생이 배꼽을 쥐고 웃을 것입니다.

한탄할 일입니다.

  수양명대장경으로 침을 썼다고 하면, 허리가 아프거나 머리가 아프거나간에 우선

전체적으론 환자를 볼때 어땠지? 뚱뚱했었나! 말랐던가?하고 질문을 합니다.

"말랐었어!" "아니? 말랐는데도 수양명대장경을 썼다고? 마른 사람에게 다른 어떤

상황이 있어서 그걸 썼지?"하고 다시 질문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 나름의

다른 어떤 차원의 추리가 되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이지요. 이렇게 discuss를 하세요.

일반적으로 좀 마른 사람에게 수양명대장경을 썼다면, 요통, 위궤양 혹은 어떠한

양방병명을 갖다 대더라도 납득이 잘 가질 않지요. 왜냐하면 수양명대장경을

썼다고 하면 그 환자는 십중팔구 좀 비대한 사람일거라는 우리끼리의 암호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암침구요결"에 나와 있는 '수양명수장경의 요통'을 한번 볼까요. 저의

출가 동기가 이 부분에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이 제게 주는 의미는 매우 큽니다.

거기를 보면 "근골을 잡아쥐고 꺾는 것 같이 아픈 증은 대장상인지라 삼리와 곡지를

보하고 양곡과 양계를 사하라"라고 오행침의 이론에 딱 들어맞게 쓰여 있습니다.

그렇다고 여러분들이 환자를 볼 때 '근골을 잡아쥐고 꺾는 것 같이 아픈 증상'의

환자에게 무조건 수양명대장경을 쓸 겁니까?

  온몸이 저리다고 하는 환자의 경우를 임상교수에게 물어보니 "임마! 그것도 몰라?

그건 비증이야!"했을 때, 비증의 처방을 보니 제미십팔탕으로 되어 있다면, 여러분은

온몸이 저리다고 하는 환자에게, 무조건 제미십팔탕에 반하, 남성, 위영선, 오가피...

등을 넣어 (어디서 가미한다는 것은 들었는지...) 쓴다고 외운대로 처방을

하시겠어요?

  어떻게 저리다는 것 하나의 구실로 이 처방을 외울 수 있겠읍니까? 가미만 봐도

그렇습니다. 뚱뚱한 사람이 왔을 때는 양명경으로 들어가는 반하, 남성 등의 건조한

약을 써야될 것이고, 마른 사람이 왔을 때는, 공히 온몸이 저리다고 해도, 육미나

맥문동, 숙지황, 천문동 등과 같이 물기있는 약을 써야 되지 않겠읍니까? 태음경으로

들어가는 약이지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지금 시중에 나와 있는 책을 좀 보세요.

양방병명을 수없이 나열해 놓고 무슨 병에는 무슨 탕, 무슨 병에는 무슨 탕...이렇게

써놓았습니다. 위궤양 환자에게 있어서 뚱뚱한 환자에게는 숙지황을 빼라, 백출을

넣어라...하는 등의 이야기는 한 마디도 없습니다. 오로지 병명과 탕명만을 짝지어

놓았을 뿐입니다.

  제대로의 음양관이 정립하려면 최소한 5년은 걸립니다. 특히 상급학년일수록 기존의

지식으로부터 자유로와지기까지의 시간이 더 많이 소요됩니다. 여러분! 제가

이 강좌에서 강의를 하는 한계는 교상합에서 끝이 납니다. 합병치료나 복합치료는

제가 여러분에게 구체화시켜 전달할 수 있는 한계가 있을 뿐더러 여러분이 스스로

깨치지 않은 상태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 스스로

참으로 깊고 넓게 연구하여 임의용지 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학생이 제게 와서

"제 어머니가 뚱뚱한데 수양명대장경이나 족양명위경을 놓으면 어떨까요"하고 질문을

합니다. "좋겠군요"하고 대답을 했지요. 며칠 후 "선생님 그걸 썼는데 안 낫던데요"

합니다. 이럴 때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제가 그 학생의 엄마를 보기나 했읍니까?

음성이나마 들어보았읍니까? 그 이상은 자기스스로 개척해 나가야지요.

  저는 앞으로 사암침 회지를 만들 예정입니다. 그 회지에 여러분의 임상예를 실어서

서로 나누며 연구할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제 임상예를 말씀드린다면, 몸이

마른 사람의 팔이 아리고 저리고 어깨가 아프고, 특히 팔 바깥쪽으로 오는 일체의

병에 수태양소장경을 쓰면 99.99% 다 낫습니다.

  작년의 일입니다. 어떻게 소문을 들었는지 전라도 이리에서 웬 아줌마가 저희집을

찾아왔더군요. 까닭도 없이 팔을 쓸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두 달 이상을 여기

저기 치료를 해 봤으나 낫지 않았다고 합니다. 몸이 바짝 마르고, 눈이 충혈되고,

얼굴이 검게 타 있었습니다. 화기가 있어 보이는 이 아주머니에게선 정말이지

건조하게 살아온 빛이 역력했습니다. 수태음폐경이나 족태음비경을 놓을까 했으나

팔이 아픈 상황과 유주등을 고려해서 수태양소장경을 놓았습니다. 그런데 발침을

하는 순간 거짓말처럼 팔을 들어올리더군요. 이건 일도에 괘차하는 그 이상의

효과라 해도 좋을 것입니다. 또 현장에서 팔을 획 돌리기까지 하더군요. 흐르지

않았던 경락에 에너지를 흐르게 하면 이렇게 신효한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수태양소장경을 외워서는 안됩니다.

  뚱뚱한 사람이 팔이 아리고 저린다면 어떤 경락이 좋을까요? 수양명대장경을

써야겠지요. 만약 비쩍 마르고, 하초에 땀이 축축하거나 하초가 냉한 사람에게

수양명대장경을 쓰면 낫겠읍니까? 십중팔구는 어렵겠지요. 그렇지만 수양명대장경이

합당하다고 여겨지는 환자라도 때로는 다른 경락을 놓아야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수양명대장경은 습하고 비대한 사람에게 합당하다'고 외워버린다면 합병이나

복합치료는 두말할 것도 없고 '임의용지'에 대한 꿈조차 꿀 수 없습니다. 비대한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냉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비대하고 냉한

사람들에게 "냉 대하가 좀 많지요"하고 물어보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노라고

대답을 합니다. 이런 사람은 뚱뚱하면서도 그 살이 물살입니다. 바로 이 체질은 냉

대하가 많지요. 반면, 뚱뚱한데도 일생동안 냉이 없다고 하는 부인들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살집은 어떨까요. 그 피부는? 예! 탄력성이 있습니다. 근육이 좀

있어보이고, 그래서 살집이 팽팽한 편이며 혈압도 좀 있어보이고 눈도 다소 충혈된

듯이 보입니다. 이와 같이 비대하면서도 냉이 없는 사람은 습과 열이 공존하므로

수양명대장경이 적합합니다.

  그런데 습냉한 사람에게 있어서는 족삼리와 곡지혈의 보만 할 뿐, 양곡과 양계혈의

사는 생략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화경의 (수태양소장경) 화혈(양곡)과 자경

(수양명대장경)의 화혈(양계)을 사해 버리면 냉이 더 심해지지 않겠읍니까? 그래서

저는 대돈혈과 은백혈을 보하면 족태음비경을 사하게 되므로 이것이 목을 실하게

해주므로 목극토의 원칙에 의해서 비장토기를 억제해주게 되지요.

  거기에다 족삼리와 곡지로써 습을 제거해주게 되므로 이리 저리 좋은 거지요. 마치

곰팡이를 싹 걷어내고 불을 때주는 것과 같은 격이지요.

  장마철에 방에 습기가 차서 곰팡이가 생겼다고 칩시다. 이때, 양방으로 곰팡이를

없애려고, 걸레질을 하고 약을 뿌리고 온갖 방법을 다 해도 이내 또 곰팡이가 끼게

됩니다. 그러나 한방은 방에 군불을 때줍니다. 그러면 양방만치 곰팡이를 제거하는

시간은 짧지 않으나 다시는 곰팡이가 생기지 않지요. 또 습기로 인해서 방에 다섯

종류의 균이 서식하고 있다면 양방으로는 다섯 가지의 박멸법을 개발해야 합니다.

그것도 임시변통에 불과한...그렇지만 이 경우에도 습을 제거해주면 500가지의 균이

서식하고 있더라도 간단히 박멸시킬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한방치료를

근원치료라고 하는 이유입니다. 웅덩이에 물이 고여 있어서 모기 애벌레가 끼었다고

할 때, 그 애벌레를 잡고자 쫓아가는 것이 양방이고, 애벌레를 무시하고 웅덩이 물을

퍼내버리는 것이 한방입니다.

  뚱뚱한 여자환자가 와서, "양방병원에 가니 비임균성 어쩌고 하는 균이 있다고

해요"라며 냉이 있는 경우엔 보중익기탕같은 처방에 물 빼는 이뇨제, 거습제를

넣게 되면 거습이 되지 않겠어요? 여기에 또 반하, 의이인 따위를 추가해도 좋겠지요.

이렇게 하면 뚱뚱한 여자의 냉은 잘 낫습니다. 그러나 마른 사람의 냉은 좀 다릅니다.

이 경우는 보혈제를 써야 됩니다. 이런 경우를 예로 들면서 복합치료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그리고 복합치료의 어려움을 넘어설 수 있더록 많은 연구와 풍부한

상상력을 배양하시길 당부드립니다.

  다음은 외감병에 대하여 말씀드리기로 하겠습니다.

  내상병에도 쓰지만 외감병엔 주로 한, 토, 하, 화의 치료법을 사용합니다.

  한법(발한시키는 방법)은 병이 표에 있을때 쓰고,

  토법(구토시키는 방법)은 병이 상초에 있을 때 쓰고,

  하법(하리시키는 방법)은 병이 하초에 있을 때 쓰고,

  화법(화해시키는 방법)은 병이 반표반리에 있을 때 쓰게 되는데

  이 네가지 방법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상한 제1일의 경우, 열이 나고 으슥으슥 추울 때, 이때는 무조건 발표를 시켜야

됩니다. 열이 난다고 해서 석고나 활석같이 무거운 해열제를 쓰면 안됩니다. 그런데

병이 안으로 들어 왔을 때는 발표제를 쓰면 위험합니다. 대변이 딱딱하게 굳고,

혓바닥도 굳었다면 병이 어느 경락에까지 들어간 것입니까? 양명경에 까지 들어간

거지요. 이럴 땐 하제를 써야 됩니다. 대황이나 지실같은 약을 써야 되지요. 그런데

한열이 왕래하여 열이 왔다갔다(추웠다 더웠다)할 때는 화해를 시켜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반드시 이대로 하지는 않지요. 뚱뚱한 사람을 발한시킬 때는 외감,

내상을 막론하고 발한지제에 거습지제를 가미하면 좋습니다. 또 구토요법은 병이

상초에 있을 때만 쓰는 것이 아니라 하초에 있을 때에도 씁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바 있는 우공산(하통 82번)을 한번 봅시다. 우는 치수의 대가였던

중국의 우황제를 말합니다. 바로 우황제의 공덕을 의미하는 약이지요. "치소편불통

백법불능주효 복비무불유라"--소변이 잘 나오지 않고, 백가지 방법으로도 효과가

없을 때, 이것을 먹으면 낫지 않는 사람이 없다--라고 나와 있습니다.

  "불구시복 소시 이계령 탐담토지 비여적수지기 폐기상규즉삽 발지즉수통유설의".

(시간에 구애받을 것 없이 복용하고 닭의 깃으로 담을 찾아서 자극하여 위로 토한다)

라고 쓰여 있는데 여기에 별 표시를 다섯개 해 두십시오. 목젖의 담을 자극시켜서

최토케 함은 토법의 대표적인 방법입니다. 이것은 마치 적수지기 실험기구로 치면

피펫과 같습니다. 쉽게 말하면 오줌이 안 나오는 것(병이 아래에 있음)을 윗쪽을

뚫어 줌으로써 치한다는 이치입니다. 위를 막으면 아래가 열려 있어도 물이 흘러

나오지 않지만 위를 열어주면 아래가 트이게 되지요. 대소변이 잘 나오지 않으면

백회혈에 침을 놓고, 너무 잘 나오는 경우(설사 등)엔 백회혈에 뜸을 뜬다고 했지요.

맥주 따위를 너무 좋아해서 하초가 냉하여 설사를 한다거나, 탈항, 탈장증세가 있는

사람은 2--3개월 백회혈에 뜸을 떠보세요. 이런 경우의 처방은 보중익기탕을

기본방으로 쓰면 참 좋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인체를 깊이 관찰했던 것입니다.

비방이란 이런 것입니다. 처진 것은 거두어 올려주고, 높은 것은 낮게, 뜨거운 것은

차게 해주는 이 이치를 알고 나면 비방도 어려운 것이 아니지요.

  보중익기탕(상통 22번)에 승마의 양을 조금씩 써야지(그저 2g정도) 빨리 좋아지라고

그 양을 자꾸 올리다보면 위장에 항문이 올라붙는 수가 생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보중익기탕을 쓸 때 승마를 많이 써서 치료하지 마세요.

  여러분들은 토법을 구토시키는 것으로만 생각하는데, 코에 훅불어 넣는 사향이나

과체산(참외꼭지)을 사용하는 토법도 있습니다. 과체산을 코에 불어넣으면 노란물을

흘리게 되는데 이것도 일종의 토법에 속하는 것입니다. 아시겠어요? 그리고 소금물로

토하게 하는 경우도 있지요. 여러분들 심심하면 소금물 먹고 토해 보세요.

참 좋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 인체 내에서 상승하지 못한 에너지를 발산시킬 수

있으니다.

  인간이 인간을 죽이고자 함이나 시기, 질투, 분노...등의 에너지가 가슴에 모이는데

이것이 발산되지 않으면 인간을 괴롭히게 된다고 하여 인도의 한 요가 수행법에서는

입문할 때 소금물을 먹여서 계속 토하게 하는 방법을 쓴다고 합니다. 술을 마시고

밤새도록 토했는 데도 다음날 아침 녹작지근한 몸과는 달리 정신이 아주 맑아짐을

경험해 본 사람이 있을 줄 압니다. 최토제에 오이꼭지, 참외꼭지, 소금물, 우공산

등이 있듯이, 병이 토초에 있을 때에만 토법을 쓰는 것만이 아님을 아셔야 합니다.

발한요법도 표에 있을 때에만 사용하는 것으로 여기지 마십시오. 소변이 잘 나오지

않을 때에도 발한요법을 쓸 수 있습니다. 몸이 뚱뚱하고 습한데 소변이 잘 나오지

않는다고 하면 조금씩 하초를 데워주면서 발한요법 또는 최토요법을 씁니다. 물론

기운이 쇠한 노인에게 오줌이 잘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토법을 써서는 안되지요.

한 토 하 화법도 그때 그때의 상황에 따라, 그 환자의 특징에 따라 활용을 잘 해야

하는 겁니다. 우리가 쓰는 침법에 한 토 하 화법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예를 들어

상한 제 3일에 소자호탕을 써야 된다고 하면 이런 경우에는 소양경락을 건드려주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사암침구요결"을 한번 볼까요? "상한 제1일에는 족태양방광경,

상한 제2일에는 족양명위경, 상한 제3일에는 족소양담경, 상한 제4일에는

족태음비경...."이렇게 쓰여 있는데 이것을 자세히 살펴보면 참으로 엉뚱하게 되어

있습니다. '상한 제4일에 족태음비경을 보하라'고 나와 있는데, 족태음비경을

보하려면 소부 대도를 보하고 대돈, 은백을 사해야 되지요. 그런데 책에 나와 있는

혈이 맞읍니까? 다르게 되어 있지요. 책에는 '음능천, 경거를 보하고 은백을

사하라'고 되어 있지요. 또 족소음신경을 보십시오. 원래 족소음신경을 보하려면

경거, 복유를 보하고 태백, 태계를  사해야 되는데, "사암침구요결"에는 '음곡,

경거를 보하고 태백을 사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상하지요. 족궐음간경도 한번

보세요. '대도를 보하라고 되어 있지요. 원래 대도는, 족태음비경을 보할 때 소부,

대도를 보하고 대돈, 은백을 사한다는 대목에 들어 있는데 어째서 족궐음간경에

대도를 보하라고 써 놓았을까요. 이건 정말 불가사의한 내용입니다. 이것이, 각론에서

상한론을 강의할 때, 제가 어물어물 넘어가는 이유입니다. 저도 잘 모르니까요.

이러한 것들을 여러분이 깊이 연구해서 사암도인의 의중을 꿰뚫는 분이 나온다면 제가

큰 절을 올리며 배우겠습니다.

  아뭏든 상한 제1일의 족태양방광경이 발한요법은 아니지만 그와 유사하고, 상한

제3일의 족소양담경도 화법은 아니지만 화해하는 뜻과 비슷하게 보는 것입니다.

  또 변비가 있을 때 수소양삼초경을 쓰는데 이것은 밀어내자는 식으로 일종의 하법에

속하고, 가끔씩 수소삼초경이나 수소음심경을 써서 위로 상기를 시켜보고자 하는 것은

토법과 비슷한 용도이지요. 극히 드문 경우지만, 열이 목에까지 올라 잘 나가지 않는

다고 할 때 아예 밀어내보자는 의도로 화를 보해주는 일이 있습니다. 이것도 말하자면

토법이라 할 수 있겠지요. 이런 것들은 여러분들이 임의용지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한에 해당하는 처방이나 약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발한지제로 제일 많이

쓰는 것으로 마황이 있지요. 그리고 땀을 낸다는 차원은 물론 발산시킨다는 포괄적인

면으로 생각을 한다면 그 맛이 맵고(신미) 향기가 많은 향신료 따위를 사용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계피, 건강, 양강 등이 있는데 이런 것들을

발한지제로만 생각지 마시고 발산지제로도 생각하시라는 이야기입니다. 호초도

마찬가지지요. 또 못된 친구들 골탕먹이는 데 쓰기 좋은 필발이란 것도 있습니다.

소주나 맥주 마실 때 좋다고 속여서 먹이면 얼마나 매운지 눈물을 흘리기까지 합니다.

이렇게 매운 것을 어디에 쓰겠읍니까? 고기먹고 체했거나 냉한 음식, 날(생)음식,

딱딱한 음식 먹고 체한 경우엔 이 필발이 꼭 들어갑니다. 맥주먹고 체했을 때에도

호초와 필발을 넣으면 좋습니다.

  내소산(하통 26번)을 펴보십시오.

  "치상식 생냉경물 비만창통대험" 생냉한 것 굳은 것을 먹고 상하여 비만, 창통한

사람에게 큰 효험이 있다고 씌어 있습니다. 처방내용을 보면 진피(순기지제) 반하 등

건조해지는 약들 뿐, 쫀득쫀득한 것은 하나도 없지요. 백복령(이뇨제), 지실(하기제),

산사육(고기먹고 체했을 때), 초과(채소먹고 체했을 때) 등이 들어갑니다. 갈비를 먹

체했다고 하면 산사를, 채소를 많이 먹었는데 속이 좋지 않다고 하면 초과를 듬뿍

넣어주는 겁니다. 채소는 다소 냉한 음식이니까 초과는 먹어보지 않고도 그 맛이

톡쏘는 매운맛의 향신료임을 짐작할 수 있겠지요. 명태 먹고 체한데 맥문동을

쓴다고 하면, 명태가 건조한 것이므로 맥문동은 쫀득 쫀득한 것임을 곧 짐작할 수

있겠지요. 이렇게 추리를 먼저한 다음 그 약의 맛을 한번 보세요. 빠짐없이 먹어봐야

합니다. 비상외에는 다 먹어 보도록 하세요.

  다시 내소산으로 돌아갑니다. 산사, 신국, 초과, 맥아, 래복자 등은 소화지제이고,

향부자는 울화에 좋은 약이지요. 옛날에는 주로 여자들에게만 향부자를 썼는데 지금은

남자들에게도 몇 돈씩 씁니다. '남성의 여성화' 때문이기도 하지만 오늘날의 남자들은

여자 이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칠정이 울결

되었거나 스트레스로 인한 병에는 반드시 향부자가 들어가는 것입니다. 칠정이

울결이 되어서 여자들 경도가 잘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가미귀비탕

(상통 98번)을 쓰지요. 즉 "치간비노울 월경불통"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귀비탕에

산치자, 자호가 들어가는데 편향부자를 가하면 더욱 좋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가미귀비탕은 여자들 월경불통에만 쓰는 것이 아니라 셀러리맨들의

스트레스(집에선 부인 바가지, 회사에선 상사 꾸지람, 손아랫사람은 또 말을 잘 듣지

않지...)에도 좋습니다.

  편향부자가 무엇일까요? 향부자를 동편(어린아이 오줌)에다 초를 한 것이지요.

한의사는 반드시 동편을 받아두어야 합니다. 소변통에서 소변이 오래 묵으면 주위에

허연 것이 끼게 되지요. 이것을 인중백이라고 하는데, 맛이 짜서 태양한수에 속하므로

이 인중백은 화병이나 페결핵에 특효약입니다. 인도 요가수행법 중에도 오줌만 먹는

수행법이 있습니다. 파적지제인 삼능과 봉술도 발산지제에 속하지요. 그리고 피부병의

대부분을 발한지제로 치료함을 아세요? 옛날에는, 어린이들이 홍역으로 열이 오르면

어린이가 괴로와 하건 말건 뜨끈뜨끈한 환경하에서 땀을 쭉 빼게 하여 낫게 했습니다.

  지난 겨울방학 때, 학생 한명이 온몸이 어마어마하게 헐어서 왔더군요. 아무리

병원을 다녀도 낫지를 않는다더군요. 비쩍 마른 사람인데 온몸이 헐어서 딱지가 지고

진물이 나오는데 일반적인 생각을 나눠 봅시다. 뭐가 좋을까요? 태음경이요? 습한데

태음경을 써도 될까요? 양명경이요? 습을 말려주는 것은 좋은데 사람이 더 마르지

않을까요? 수태음폐경이요? 아하! 폐기는 피모를 주관한다 이거지요. 이렇게 얼른

생각을 해도 여러가지로 떠오르지요. 그런데 저는 처음엔 사암치법을 쓰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저로서도 어떤 처방을 내리기가 어렵더군요.

  그래서 "일단 가서 땀을 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냥 땀을 내면 율액이 고갈되어

큰일나니까. "땀을 낸 후 약숫물이나 오염되지 않은 물을 한 바가지씩 먹도록 하라"고

일러주었습니다. 그렇게 한 일주일이 지나자 신기하게도 어느 정도 아물기

시작하더군요. 그래서 그 다음에 수태양소장경도 놓았다가 수태음폐경도 놓았다가

여러 경락을 건드려 보았더니 결국 다 낫더군요. 다 나을 때 쯤에 참기름을 바르니까

더 좋더라고 했지만 피부병 치료에는 땀을 내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러나 안으로

옹저가 되어 패여 들어간 경우엔 문제가 좀 다릅니다. 피부병 얘기 나온 김에

피부병을 잠시 살펴보고 넘어갑시다. 피부병 치료에 무조건 가미되는 약인 청기산

(중통 149번)을 보면 "치은진 혹적 혹백소양"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피부병에도 양증과 음증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피부병의 증상 중 가려운 것과

아픈 것은 어느 것이 음이고 어느 것이 양이겠읍니까" 가려움은 열이 있는 경우이므로

양에 속하겠지요. 이것을 소양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드물긴 하나 피부에 통증이 심한

경우가 있지요. 이건 어쩌면 암일지도 모릅니다. 위험한 경우지요.

  그리고 피부병에는 발진성 속으로 흠이 파지는 것과 수포성이 있습니다. 수두와

두드러기를 같이 취급하면 안됩니다. 그러니까 발진성이 되고 가려울 때는 생각할

것도 없이 발한지제를 써 주면 되고, 반음반양에 해당하는 피부병 즉 때로는 붉게

일어나기도 하고 때로는 말짱했다가 또 좁쌀처럼 일어나기도 하여 음양을 종잡을 수

없을 때 바로 청기산(형방산독산 가 천마 박하 선태)을 씁니다.

  이때 박하가 해열지제로서 두통에 쓰이는 약 (두통약:승마, 박하, 만형자)이므로

꼭 피부병에 들어가는 약 선태는 열 중에서도 습열이 있을 때 씁니다. 특히 그것의

모양을 보면, 피부가 푹푹 헐어 들어가는 경우에 특효약이 되지 않겠어요? 그런데

선태는 가벼우므로 2g이상 넣으면 안됩니다.

  어떤 환자가 머리 비듬을 손톱으로 긁다가, 잘못되어 손톱 독이 올라서 헐고,

머리숱이 다 빠져 버렸습니다. 일년 이상 치료를 해도 차도가 없다며 찾아왔더군요.

이 환자의 경우는 간단합니다.

  형방패독산에 선태를 넣어주고 경우에 맞게 가감을 하면 됩니다. 소화 안되게 소화

제,

두통에는 감국, 박하, 만형자를 넣는데 한마디로 헐은 데는 끝내 주는 약입니다.

그러니까 무좀으로 오래 고생하는 사람에게도 좋습니다(선태는 피부가 헌 데 특효임).

  여러분! 담배잎을 발바닥에 깔고 다니는 것과 소금물에 발을 담그는 것 중

어느 것이 무좀에 좋을까요? 담배잎이 좋습니다. 소금물은 건성으로 발이 쩍쩍

갈라지는 경우 외에는 별 효과가 없습니다. 또 마늘대 삶은 물은 어떨까요?

"본초강목"에는 없지만 이제 우리는 마늘대 삶은 물이 무좀에 좋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래찜질과 진흙에 발을 담그는 것을 비교해봐도 모래찜질이 무좀에 좋습니다.

어디에고 음양관이 다 있습니다.

  빨간 고추잠자리와 지렁이 중 뚱뚱한 삶의 정력보강에는 어느 것이 좋을까요?

말할 필요없이 전자지요. 이것이 바로 오운육기를 공부한 결과입니다. 뚱뚱한 사람이

지렁이를 먹으면 도리어 정력이 떨어지게 됩니다. 여러분 독계산을 아세요?

빨간고추 잠자리에 참새알 등등을 넣어서 만드는 정력제인데, 옛날 어느 할아버지가

(고희도 넘은) 약을 하나 지어 먹고는 밤만 되면 할머니를 밤새도록 괴롭히는

거였어요. 견디다 못한 할머니가 그 약을 할아버지 몰래 마당에 던져 버렸답니다.

그걸 수탉이 신나게 주워먹고, 암탉 머리 위에 올라타고는 자꾸 머리를 쪼아대는데

가만히 보니 암탉 머리털이 다 빠지더래요. 그래서, 대머리독자, 닭계자를 써서

독계산이라고 불렀답니다. 뱀장수 이야기만 듣고 독사를 먹었는데 오히려 양기가

더 떨어졌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왜일까요? 뱀은 냉혈동물이니까 뚱뚱하고 습냉한

사람이 뱀을 먹고 정력이 더 떨어짐은 당연한 결과가 되겠지요. 그러나 마르고

건조하며 화기가 있는 사람에게 습냉한 뱀은 좋겠지요. 이 정도의 음양관도 되어

있지 않으면서 동양의학자라 할 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죽을 병도 아닌데 자신의 몸을 위해서 동물을 마구 죽이는 것을 저는

반대합니다.

  피부병 이야기 도중에 옆길로 샜군요. "한마디로 일반적인 피부병에는 발한요법,

헐은 데는 선태가 좋다"는 이야기를 끝으로 피부병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더 상세한 것은 다음 기회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식상(과식, 과음)을 다스리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발한요법과 토법이

그것입니다.

  술이 과했을 때는, 뜨끈한 방에서 땀을 쭉 빼거나 사우나탕 같은 데에서 땀을

흠뻑 흘리고 나면 코에서 술냄새가 풀풀 나면서 술기운이 날아가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내가 술이 취했을 때는 남의 술냄새를 못 맡지만 내가 내 술냄새를 느낄 수

있다고 하면 그 사람은 그날 마신 술로 부터 자유로와지게 됩니다(거의 깼다는 뜻).

감정도 마찬가지 입니다. '아! 지금 내가 화를 내고 있구나'하는 느낌을 느끼는

사람은 자신의 화를 내는 그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관심법 즉 '내가 화를 내고 있군! 이건 욕정이로군! 이건 시기 질투로군!'하고

스스로 느낄 수 있는 사람은 그 시기와 질투 욕정으로부터 자유로와 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술 먹고 깨는 데에 발한요법이 좋다고 했는데 소주 먹은 다음날 아침 메뉴로

식혜가 좋을까요? 복매운탕이 좋을까요? 식혜가 좋겠지요. 그렇다면 맥주 마신 다음날

아침 메뉴로는 수정과와 매운탕 중 어느것이 좋을까요? 매운탕이 좋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운육기의 응용이지요.

  과식상 과음상에 발한요법을 많이 씁니다만 많이 먹고 많이 마신 경우 토해 버리는

것이 더 간단하지요. 제 친구 한 사람은 술을 엄청나게 많이 마신 다음날 아침에도

테니스치고 정상적으로 출근을 합니다. 그 비결을 좀 가르쳐달라고 했더니, 자기 집

대대로 전해오는 비방이라고 함구를 하더군요. 겨우 사정을 해서 들어보니, 우유에

소금을 타서 마실 수 있는 만큼 양껏 마시고 나서 그것을 다 토해 내면 된다고

하더군요. 다 토한 뒤에도 손가락을 넣어서 마른 구역질을 몇 번 더 하고 나면 깨끗해

진다더군요. 그래서 저도 그대로 해 보았더니 정말 좋더군요. 구토요법을 응용한 좋은

예입니다. 다음은 하법을 보도록 합시다. 병이 하초에 있을 때는 하법을 쓰는데,

열뿐 아니라 병이 대체적으로 하초에 편중되어 있을 때에는 하제를 씁니다. 대표적인

하제로는 대황, 지실, 망초가 있고, 원만한 하기지제로는 목향, 빈랑이 있지요. 대변

누고 일어서면 또 누고 싶고 또 누고 싶고 한 경우에는 목향, 빈랑이 특효약입니다.

  하제는 말 그대로 무게가 무거운 약입니다. 숙지황을 적당히 쓰면 소화력이 부족한

사람의 중초에 걸리는 경우가 많지만, 숙지황을 한꺼번에 왕창 써버리면 걸림없이

오히려 아래로 잘 밀고 내려가는 성질이 있습니다. 참으로 묘한 약이지요. 하제로서

광물질인 것으로는 활석, 석고가 있습니다.

  화법에 쓰는 화해지제는 반표반리에 병이 있어 한열이 왔다갔다 하는데 쓴다고

했는데 자호가 그 대표적인 약이지요. 백작약도 다소 무겁고 수검지제이긴 하나

화해지제에 속합니다. 감미로서 여기에 속하는 것으로는 감초가 있지요. 감초는 너무

좋은 약이다 보니 국노라는 이명까지 있습니다. 즉 나라의 늙은 대신과도 같다는

말이지요. 특히 해독의 성약으로 감두탕이 있습니다. 이상으로써 아쉽긴 하나

한토지화 요법이 우리에게 쓰여지는 대표적인 경우를 간략히 짚어보았습니다.

  이번엔 침의 치료대법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침치료에 있어서 육경을 분별하는

공부는 했으니까 이제는 침운용의 원리를 살펴보도록 합시다. 전에 공부했듯이,

"좌병우치 우병좌치, 상병하치, 하병상치가 있고 허즉보기모, 실즉사기자"라는

"내경"에 있는 원리도 있으며, 원보방사(좌, 우회전 방향 차이점)도 있습니다.

  그런데 특수한 것으로 '억기관'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 관이란 항상 억제하는 역할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보면, 오행상 화인 심장이 허하면 화의 모인 목을

보해 주고, 화를 극하는 수를 사해 주면 양수겸장의 효과가 있다는 것이 억기관의

방법이지요.

  이것은 "황제내경"에 있는 상식적인 공식입니다. 이것을 침구학이론에 노골적으로

등장시킨 분이 바로 사암도인입니다. "내경"의 치료법을 따르고 있으므로 그 정통성을

의심할 여지가 없지요. 실즉사기자의 예를 들면, 심장이 실할 때 심장경락 자체를

건드리는 것이 아니라 토를 사해 주면서 신의 수를 북돋아 주면 심의 실한 기운이

깎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원칙에 의해서 정격, 승격이 결정되는 데 허하는 것을

정격, 실할 때 사하는 것을 승격이라고 이름합니다.

  여러분이 오행침법을 공부함에 있어서, 오유혈만 외워서, 바로 공식에 대입하면

해답이 나옵니다.

  우리가 가장 흔히 쓰는 족태음비장을 예로 들어 봅시다. 족태음비는 오행상

토이므로 이것이 허하다면 화를 보해야 하는데 항상 화경의 화와 자경의 화 두가지를

선택해서 보(정격)해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화를 보할 때 화경의 화와 자경의 화

그리고 화경을 보면, 수태양소장경도 화경이고 수소음심경도 화경인데, 족태음비가

음경이니까 같은 음경의 화인 수소음심경의 화혈을 선택하는 것입니다(심장경락의

유주는 새끼손가락 안쪽 소충혈에서부터 극천혈까지).

  그런데 우리가 오유혈을 알려면 양경락과 음경락의 순서부터 알아야 되지

않겠읍니까? 양경락은 금-> 수-> 목-> 화-> 토가  되고 음경락은 목-> 화-> 토-> 금->

수가

됩니다.

  혹시 이렇게 되는 이유를 아시는 분은 제게 좀 알려주십시오. 아무도 모르더군요.

이것도 여러분들이 연구를 해서 어떤 실마리를 한번 잡아보세요. 아뭏든,

수소음심경은 음경이니까 목-> 화-> 토-> 금-> 수가 되므로 목혈은 소충, 화혈은

소부가 됩니다(주:경락의 유주를 보면서 읽으시면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분들이 각경락의 정영유경합을 잘 모르더라도 경락의 유주를 알고 처음

시작하는 혈에서 부터 짚어나가면 대충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영유경합이란

정에서 물이 졸졸 새 나오는 것같다가 차차 영해로 흘러가는 것처럼 경락의 에너지가

커지는 겁니다. 그러므로 정영유경합을 모르더라도 음경락, 양경락의 순서를 알면

취하고자 하는 혈자리를 대충 찾을 수 있습니다.



@[(3)@]

  혈자리는 조금 뒤에 취혈법(취형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정확한 경혈의 위치를

파악하고 환자의 체위는 가장 안전하고 편한 자세로서 하되 특히 경혈 취혈은

골도법(정상인의 손가락과 신체 및 기타부분은 일정적으로 비례하므로, 병인 자신의

손가락으로 표준을 삼음)으로 정확하게 경혈의 위치를 파악해야 한다)에서 자세히

나옵니다만 아래 위(종)로는 약간 틀려도 괜찮지만 좌우(횡)로는 절대로 틀려서는

안됩니다. 기차가 정거장을 조금 지나치거나 조금 못미쳐서 정차를 하게 되면, 내려서

조금 걷는 불편함은 있지만 크게 잘 못된 것은 아니지요. 그러나 기차가 레일을

벗어나서 흙위를 달릴 수는 없지 않겠어요? 그러므로 경락이 흐르는 선을 절대로

벗어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침치료의 목표가 균형의 조화이므로 상합, 교상합, 허즉보기모 실즉사기자 등의

여러가지 rule이 언급되는 것입니다.

  "허할 때는 기모를 보하고..."라고 말의 뜻을 예를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수소양삼초경 정격을 보면 수소양삼초경은 오행상 화지요. 60혈을 외우신 분은

이것을 공식대로 풀어내기만 하면 됩니다.

  정격은 보지요. 그러니까 목생화 원칙에 의해 목을 보해 주어야 하는데, 우선

중요한 것은 목경의 목혈과, 자경의 목혈을 보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수소양참초경이 양경이니까 양경 중의 목경을 찾아야 됩니다. 바로

족소양담경입니다. 담은 오행상 목이지요. 또한 간은 음이고 담은 양이기 때문에

그러니까 족소양담경의 목혈을 찾으면 됩니다. 담경이 양경이므로 금-> 수-> 목->

화-> 토로 흐른다는 사실을 알면 곧 세번째 혈이 목혈인 것을 알 수 있겠지요.

이내 임립혈이 탁 튀어 나오게 됩니다. 이렇게 정확히 세번째 혈을 찾기 위해서는

경락의 시작과 끝을 잘 알고 있어야겠지요. 자경(수소양삼초경)의 목혈을 찾으려면,

양경이므로 금수목화토의 세번째 혈을 찾으면 되지요. 그것은 중저혈입니다.

(책338쪽그림참조)

  둘째 손가락에는 양명경이 흐릅니다. 그래서 둘째 손가락에 마비가 온다고 하면

'양명경에 무슨 문제가 있겠구나'하는 추리가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금기가

부족하니까 바람에 흔들리겠지, 중풍이 올 수도 있고...

  '이런 사람은 대체로 뚱뚱한 체질 일거야...'하는 추리가 될 것입니다. 또 이유도

없이 넷째 손가락이 아프다고 하면 '혹시 몸이 냉하지는 않을까?' 아니면

'수소양삼초경이 너무 실해서 몸이 더운 것은 아닐까?'하는 추리가 가능하겠지요.

  주먹을 쥘 때 무심코 엄지 손가락을 손바닥쪽에 집어 놓어서 주먹을 쥐는 사람이

간혹 있습니다. 이 사람은 어떤 성격의 소유자일까요? 어떤 경락을 보하고 싶은

걸까요? 나중에 각론에서 상세히 다룰 것입니다만, 이 사람은 수태음폐경을 보하고

싶은 겁니다. 즉 폐기가 약한 사람이지요. 이런 사람의 장점은 자기가 제일이라는

의식이 없는 겸허한 사람입니다. 또 결코 남을 해칠 사람이 아니지요.

  명상을 할 때, 엄지 손가락에까지 어떤 힘이 쫙 뻗치는 느낌이 들어야 쉬라고

합니다. 엄지 손톱에 팽팽히 기가 모임을 느낄 때 명상이 어느 정도 진행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손가락이나 발가락에 어떤 증상이 왔을 때(삐거나

다치지 않았을 때도) 경락반응이 강하게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손가락,

발가락(각 경락의 말단부)의 느낌을 가지고 그 해당 경락의 이상유무를 간파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상으로 수소양삼초경 정격의 혈자리를 모두 찾게 되는 것입니다. 사하는 혈자리는

상극화의 원리에 의해 수경(족태양방광경)의 수혈과 자경(수소양삼초경)의 수혈이

됩니다. 여기에서의 취혈은 육기적 관점이 아니고 오행적인 관점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족태양방광경도 양경이므로 금수목화토로 짚어 나갑니다. 방광경의 수혈이

통곡혈입니다. 자경인 수소양삼초경의 수혈은 액문이 되는 것입니다.

  종합적으로 정리를 해보면, 수소양삼초경 정격은 보가 임입, 중저, 사가 통곡,

액문이 되는 것입니다. 오행침의 정격, 승격은 무조건 암기를 하는 것보다 이렇게

원리를 이해하면 쉽고 또 재미가 있습니다. 물론 이 원리를 적용시키려면 60혈,

즉 12경락의 정영유경합은 외워야 되겠지요.

  새끼발가락 말단에 있는 지음혈을 마음놓고 사용하는 것은 이 오행침법밖에는

없습니다. 지음혈은 눈물이 찔끔나도록 아프기는 하나 효과가 아주 탁월합니다.

족태양방광경을 보할 때 쓰는 이 지음혈은 미열정도는 그 자리에서 고쳐냅니다.

  1985년에 의료봉사를 갔던 한 학생이 10년된 방광염을 족태양방광경과

수양명대장경으로 단 한번의 치료로 고쳤다고 합니다. 이 오행침이 아니면 어떻게

그런 기가 막힌 효과를 볼 수 있겠읍니까?

  '실즉사기자'즉 실하면 그 자식을 사하라는 것을 수소양삼초경 승격으로 이야기

해봅시다.

  수소양삼초경은 양경의 화경이므로 화경의 자식, 즉 화생토의 원칙에 따라 (토가

화의 자이므로) 자경(수소양삼초경)의 토혈과 토경(족양명위경)의 토혈을 사하면

되지요. 자경의 토혈인 천정, 토경의 토혈인 족삼리를 사하는 것입니다. 보하는

혈자리는 수극화의 원칙에 따라 수를 보함으로써 화를 극하는 힘을 크게 하면

상대적으로 화의 실한 기운이 덜어지겠지요. 그래서 자경(수소양삼초경)의 수혈과

수경(족태양방광경)의 수혈을 보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액문과 통곡을 보하는

것이지요. 종합적으로 보면 수소양삼초경 승격은 사가 천정, 족삼리이고 보가 통곡,

액문이 됩니다.

  여러분, 족삼리혈의 득기감이 어떤지 아세요? 이것만 얻어가도 여기와서 졸면서도

앉아 있는 보람이 될겁니다. 족삼리는 둘째 발가락 끝까지 짜릿 짜릿한 느낌이

내려갑니다.

  우리 사암침법에서 쓰는 혈은 기껏해야 무릎관절, 팔관절 이상을 넘어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위험한 혈 5--6군데를 제외하면 전혀 사고의 염려가 없습니다.

또 위험한 혈은 대용혈이 있기 때문에 대용해서 쓰면 되지요. 그래서 제가 사암침의

안전성을 올림픽위원회에 누누이 강조했습니다. "우리가 86아시안게임이나 88올림픽에

자원봉사를 하겠다"고 이야기를 해도 이 나라 제도가 그것을 수용하지 못하더군요.

이 좋은 기술을 외국인들에게 알림으로써 한국의학의 우수성도 인정이 되고

국위선양도 될텐데, 아쉬운 일이지요. 우리 한방의 설움을 후배들에게 물려주지

않으려면 여러분들이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 한의학도들

정말 존경스럽지 않읍니까?

  저는 사실 처음엔 어느 해변가에서 잠시 살 때 그 동네 한약방하시는 할아버지들과

참 친하게 지냈습니다. 어느날 그 할아버지들끼리 "방약합편"외우기 내기를

하더라구요. 한 할아버지는 방약합편을 7번 외우고 7번 태워서 그 재를 먹었다고

했습니다. 이런 열정으로 공부를 해야 되지 않을까요. 정말 존경스럽지 않읍니까?

  저는 사실 처음엔 그 할아버지들을 속으로 은근히 무시했었습니다. '위궤양도

모르고, 바이러스 A형간염도 모르는 무식쟁이들이로구나'생각했는데 그 이후로는

그만 기가 팍 죽어 버렸습니다. 한 할아버지가 다른 할아버지에게 "육울탕(하통

39번)을 외워 보게..."하니까 "향창창국치 교진하야 궁령모저소감이라"

  이런식으로 줄줄 외우는데 기절할 정도로 놀랬습니다.

  심지어 우황청심원(중통 7번)같은 약을 다 외우더군요(우황청심원 중의

대두황권이란 약은 콩나물을 말하는 것임). 중통 19번 인삼패독산을 보면 행림서원

책에는 박하소허가 빠져 있는데, 이런 것까지 지적하시더군요. 행림서원간

"방약합편"을 갖고 계신 분은 박하소허를 써 넣으세요. 패독산에 쌍화탕을 합방하면

쌍패탕이 됩니다. 부작용이 많으니까 인삼은 주로 빼지요. 뭔지 잘 모르면 쌍패탕을

쓰시면 됩니다. 뚱뚱하면 곽향정기산(중통 14번), 말랐으면 쌍화탕이나 육미지황탕,

남녀불문하고 뚱뚱한지 말랐는지 분간이 어려울 때는 쌍금탕이나 쌍패탕이 좋습니다.

  침구치료법에는 "허즉보기모 실즉사기자, 원보방사, 보기관, 억기관" 이외에

영수보사법이 있습니다. 이것은 경락의 흐름을 따라 침을 꽂으면 보가 되고, 경락의

흐름을 거슬러 꽂으면 사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들 이 영수보사에 대한 것은 많이 들어서 잘 안다고 가볍게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체침법 공부하고 나서 얇은 머리털같은 침으로 제대로 영수보사나

하고 있읍니까? 그렇지 않지요. 원보방사와 영수보사, 그리고 '허즉보기모

실즉사기자'의 원칙을 지킬 수 있다면 침법의 90%는 터득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보사법에는 자오유주법, 청용파미법, 백호요두법, 용호교전법 등 수없이 많은데

저는 솔직히 잘 모릅니다. 또 옛날에는 괄침이란 것이 있었는데 이 침은 침병이

울퉁불퉁하여 긁기 용이하게 되어 있습니다. 위에서 아래로 긁으면 보, 아래에서 위로

긁으면 사가 된다고 합니다.

  사암침은 굵은 침을 사용한다고 하니까, 세 살 먹은 어린애가 왔는데도 굵은 침으로

쿡 쑤셔서 피부는 물론이고 혈관까지 구멍을 뻥내면 되겠읍니까? 또 세살 먹은

어린애 맥 본답시고 세 손가락을 얹으면 거의 팔뚝까지 세 손가락 안에 들어오는데

맥이 올바로 잡히겠어요? 안되니까 눈도 뒤집어보고, 손금도 들여다보고, 엎었다가

뒤집었다가 하면, 아이가 더욱 울기만 하겠지요. 참 어리석지요. 반면에 환자가

밀리고 바쁘다고 맥도 보지 않고 침대에 눕혀서는 침을 꽝꽝 꽂는다면 이것도 문제가

큽니다. 침을 사용하기 전에 환자와 의사의 커뮤니케이션을 생각지 않으면 안됩니다.

  침을 놓는 것은 마치 남녀교합과 꼭 같다고 했습니다. 한편의 드라마가 완성되려면

상황 상황에 맞는 연출이 필요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애무도 필요한 것이지요.

그러므로 영수보사이나 원보방사를 모른다면 아예 침통을 갖다 버려야 됩니다. 육경의

흐름과 성질도 모르고 오행방사를 모르면서 그저 몇 가지 외워 침을 놓는다면 실로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침을 꽂았는데 침병이 빙글빙글 헛도는 경우가 있지요. 그것은 득기가 되지 않은

때문이지요. 낚시를 할 때, 입질을 하는 그 순간을 전광석화와도 같이 낚아채는

민감성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득기가 되었는지조차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이 있습니다.

  남녀가 성행위를 할 때 "남자는 좌측으로 돌아가고, 여자는 우측으로

돌아 가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남자가 여자의 음기를 빼앗아 보충시킨다는

말입니다. 또 여자는 양기를 보충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서로 음과 양을

취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 음도 아니고 양도 아닌 꽃이 하나 피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무아(오르가즘)입니다. 그런데 이 무아는 두 사람 서로의 생각에서부터 육체에

이르기까지 분리의식없이 사랑할 수 있어야 느낄 수가 있습니다. 특히 남자가 여자를

폭군식으로 다루면 절대 안됩니다. 침훈증이 바로 이런 원인으로 옵니다.

  무의촌에 봉사하러 가서 환자는 많은데 시간은 없고 또 돈을 받는 것도 아니니까

마치 도살장의 백정처럼 환자가 숨돌릴 여유도 없이 푹 찔러댑니다. 그러니까

침훈이 포르륵 생기는 것이지요.

  그것은 환자의 긴장감이나 상태를 들여다 보지도 않고 침을 놓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침이란 찌르는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고 병을 낫게 하는데

그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너지를 조정해서 조화를 맞추어야 합니다.

따라서 피부의 밀도, 천심, 피부의 후박, 근육질의 탄력성 등을 고려해서 침의 굵기를

결정해야 합니다. 중학생이 오면 실침을 써도 좋고, 근육질로 몸집이 큰 사람이 오면

굵은 침을 써야 되지 않겠어요? 이런 테크닉에 관한 것도 앞으로 차차

말씀드리겠습니다. 거듭 강조드리거니와 평생동안 이 영수보사, 원보방사를 잊으면

안됩니다.

  어떤 사람이 체해서 왔다고 합시다. 이런 경우 체침법에서는 사관을 놓지요.

사관이란 합곡과 태충혈인데 이때 합곡을 보해야 될까요, 사해야 될까요?

  "침구갑을경"과 같은 경전을 보면, 한 혈로써 특별한 효과를 나타낼 수 있는 경우를

접할 수 있는데--오행혈이나 다수의 취혈을 하지 않고--이 하나만을 선택한 혈을

보해야 할지 사해야 할지 아십니까? 곤륜혈을 예로 들어봅시다. 곤륜혈은 요통에

특효인데, 대체 이혈을 보해야 할까요? 사해야 할까요? 두통에 족삼리는 보합니까

혹은 영합니까? 이걸 따지기 전에 잠시 만병통치혈인 족삼리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지난 번에 족삼리로 치료할 수 있는 병이 3만여 가지라고 말씀드렸듯이 "뭔가

잘 모를 때는 족삼리를 용해라"라는 말도 있지요. 그 적응 병증을 한번 열거해

봅시다.

  멀미, 설사 같은 소화기병, 요통, 협통에도 좋지요. 또 특히 두통에는 성혈입니다.

왼쪽 두통에는 오른쪽 혈, 오른쪽 두통에는 왼쪽 혈에다 시술하는데 보 사만 잘

선택하면 잘 낫습니다. 그리고 관절염, 신경통, 근육염, 각기증 등 일체의 다리병에도

좋고 견비통에도 좋습니다.

  오른쪽 어깨가 아프면 왼쪽혈, 왼쪽 어깨가 아프면 오른쪽 족삼리혈에다 침을

놓습니다. 그런데 잘 낫지 않는 것이 두통이지요. 두통, 부종, 중풍, 천식 따위는

정말 잘 낫지 않습니다. 그러나 두통도 사암침법을 공부하고 나면 50% 정도는

문제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중풍은 역시 사암침법을 공부해도 쉽지 않더군요.

여러분들이 다른 곳에서 체침법을 배울 때 "체했을 때에는 무슨 혈을 보하고 어떤

혈을 사하라"고 외웠다고 해도 그것보다 먼저 해야 할 것은 그 혈이 존재하는 경락의

성품을 무엇보다 먼저 떠올려야 하는 것입니다.

  합곡혈은 수양명대장경의 원혈이지요. 말하자면 합곡혈 하나가 수양명대장경의 모든

성품을 다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합곡혈에 침을 놓으면 침훈이

자주 발생합니다. 합곡, 태충혈을 놓다 보면 쓰러지는 사람이 많이 생깁니다.

  수태음폐경이나 수태양소장경을 맞다가 쓰러지는 사람은 없어도 족태양방광경이나

수소음심경을 맞다가 쓰러지는 경우는 더러 있습니다. 왜냐하면 상과 하, 즉 오운과

육기가 서로 똑같이 마주치는 장부이어서 성품이 강렬하겠지요. 그래서

수양명대장경의 성품을 모두 간직한 합곡혈에 침을 놓을 때 침훈이 많은 것입니다.

이 태충, 합곡을 놓고 싶은데 보.사를 잘 모르면 그냥 꽂아 놓고 가만히 있으세요.

모르면 가만히 있는 것이 제일입니다. 잘 알지도 못하는 보사법을 쓴다고 하다가는

자칫 큰일나지요. 첨부장의 원혈에 해당하므로 무시무시한 혈입니다. 그러므로

영수보사를 함에 있어서도 경락의 내용물에 대한 인식이 없으면 침훈을 자주 초래하게

되지요.

  보사 또한 체질에 따라서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환자의 이미지를

읽지 않고 오직 증상만 보지요. 대장염이라고 하면 '대장정격을 써야 되겠군'

위궤양이라고 하면 '위장정격을 놓아야 되겠군!'이런 식이 되어 버렸습니다. 어느

경락을 선택하기 전에 어떤 이미지의 어떤 체질의 사람인가를 머리 속에서 떠올려야

합니다.

  시시한 합곡혈 하나 선택하는 데에도 신중을 기해야 되는데 양명경을 선택했다는

것은 체했든 어쨌든 비대한 사람이라는 전제가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각 경락에 대해서 여러분들과 연구한 그 이면에는 이런 뜻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른 사람이 왔으면 양명경을 사해 주고, 뚱뚱한 사람이 왔을 때는 양명경을

보해 주어야지요.

  족삼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족삼리는 토경의 토혈이므로 족삼리를 놓게 되면

수양명대장경을 보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런데 비쩍 마르고 건조한 사람에게

족삼리를 자꾸 보해 주면, 양명경을 보하는 것이므로 문제가 될 수 있겠지요.

그러므로 침을 놓을 때는, 경락자체의 성격과 경락의 유주, 환자의 몸이 뚱뚱한가

말랐는가, 찬가 더운가, 그리고 병이 표에 있는가 이에 있는가 생각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때에도 영수보사가 유용하게 쓰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한 혈을

취하더라도 영수보사를 따라 주세요.

  임맥과 독맥에 있어서의 영수보사도 윗입술이 얇고 아랫입술이 두터운 사람 즉

선천적으로 임맥이 발달되고 독맥이 허한 사람에게는 임맥을 사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때의 사침이 곧 영수보사라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께서 체침법을 공부하신 것 중에, 기침, 천식이 생겼을 때 임맥 중에서

단방으로 한 혈을 취한다면 어떤 혈을 취하겠읍니까? 보통 천돌혈을 많이 쓰지요.

이 천돌혈의 위치는 아담이 사과를 먹다가 목에 걸렸다는 'Adam's apple'이라는 곳

밑에 움푹 패인 함입 부분입니다. 그런데 이곳을 보해야 될까요 사해야 될까요?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십시오. 기침이 나고 숨이 가쁘고 한 경우는 몸이 뚱뚱하든

말랐든지 간에 기가 상기될 것이므로 체질을 불문하고 사해 주어야 되겠지요.

  여기서 잠깐 주위를 환기시키기 위해서 천돌혈에 침놓는 방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천돌혈에 침을 놓을 때 굵은 침으로 깊숙히 찌르면 큰일 납니다. 잘못하면 기도에

빵꾸를 냅니다. 그러니까 경거나 태연혈 놓을 때와 마찬가지로 피부를 잡고,

피부쪽으로 눕혀서 침을 놓아야 합니다.

  그런데 음이 실해서 수기가 많기 때문에 계속 헐떡헐떡하는 사람은 조금 생각을

해 봐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때그때 임의용지 하시되, 천돌혈의 경우와 같이

무조건적으로 영수보사가 결정되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을 또 하나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일정한 계획이나 순서에 의한 것은 아니지만 강의 중간에 처방 얘기 하는 것은

여러분들에게 좋은 처방 공부가 되리라 여깁니다. 청상보하환(상통 52번) 이것은

저희 집에서 기본방으로 즐겨씁니다.

  "치효후 우한즉 발해수 담정상옹 천식 구불차"

  육미지황원에다 오미자, 지실, 맥문동, 천문동, 패모, 길경, 황련, 행인, 반하,

과루인, 황금, 감초가 들어가는데, 육미원은 신수를 보충시키고 오미자는 다섯가지 맛

다 들어 있지만 주로 신맛이 많으므로 거두어 들이는데 쓰므로 역시 수기를

보충시키고, 지실은 하기시키는데 쓰지요. 하기시키는 약으로는 대황, 망초와 같이

하기는 물론 설사까지 시켜버리는 무서운 것도 있고, 빈랑 목향과 같이 서로 항상

따라다니는 것도 있습니다.

  그리고 노골적으로 천식을 치료하는 약이 있는데 무엇이겠읍니까? 이것은 담천에

용하는 소자도담강기탕(하통 37번) 소자입니다. 청상보하탕은 마른 사람을 보하는

약이고 소자도담강기탕은 통통한 사람의 천식에 쓰는 것입니다.

  마르고 허약하고 진액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한모금을 먹이더라도 청상보하탕을

먹여야 됩니다. 약을 잘 소화시키지 못하면 소화제도 듬뿍 넣어서 처방하세요. 나무를

키울 때 날씨가 건조하여 나무가 바짝 말랐는데 갑자기 물을 한 바께스씩 먹이면

죽습니다. 그렇다고 물을 주지 않아도 죽게 되지요. 그러므로 치료에 있어서 처방의

대소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항상 나무 키울 때를 연상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청상보하탕을 쓰려는 환자에게 사암침법을 쓴다면 어느 경락을 사용하리라

생각하세요? 수태음폐경을 많이 씁니다. 태음습을 보충시켜주면서 소부, 어제혈로

화기를 내려 주는 거지요. 청상보하탕에 수태음폐경을 잘 활용하시면 웬만한

노인성천식도 잘 듣습니다. 일반적으로 숙지황을 소화가 되지 않는다며 빼는데 저는

과감하게 집어 넣습니다. 그리고 저는 엿을 즐겨 씁니다.

  감미가 어느 경락으로 입경한다고 했읍니까? 태음경이지요. 여기에다가 환자의

눈빛을 봐서 색화가 있어 보이면 지모, 황백을 조금 넣고, 숨이 찬 경우에는 소자도

쓰지요. 그런데 몸이 말랐으니까 패모와 반하는 빼는데, 이것도 환자에 따라 패모를

조금 넣는다거나 과루인을 넣습니다(과루인은 (완담을 치료한다고 했지요). 과루인과

패모, 반하는 증상에 맞게 잘 구별해서 쓰세요. 길경은 목의 담을 없앨 뿐 아니라

소염제 역할도 합니다. 황련은 해열제, 행인은 폐기를 통하게 하고, 황금이 해열제로

들어가는 이 청상보하탕을 다른 것에 비유한다면, 식혜에다가 목과 좀 넣고, 수분이

너무 많은 음식이므로 강정이나 튀밥정도를 함께 내놓는 그런 처방입니다. 이것 참

기가 막힌 효과를 나타냅니다.

  사암침법을 공부한 사람들은 보도 아니고 사도 아닌 엉거주춤한 침을 놓아서는

안됩니다. 항상 보사를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청상보하탕을 배웠다고, 엇비슷한

환자만 와도, 상기 되고 숨이 가쁘다고 하면 무조건 청상보하탕을 쓰려하지 말고,

이 탕 속에 든 약을 충분히 이해함에 우선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창출, 진피, 후박, 반하, 남성 등의 종류가 들어가면 "아하! 이약은 뚱뚱한

사람에게 쓰는 것이로군!" 또 숙지황, 맥문동, 천문동, 이런 것이 들어가면 "이건

마른 사람에게 써야겠군"하고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음양을 아는 사람이지요.

마른 나무에 물을 한 바케스 부어 주면 죽는 경우라도, 물 뿌리개로 살살 물을 주다가

뿌리가 내리면 왕창 주어도 괜찮지요, 그러므로 마른 사람 (특히 진액이 고갈된

사람)에게 청상보하탕을 지어 줄 때, 처음에는 한두 숟갈씩만 먹으라고 해야 됩니다.

숨을 헐떡 거리는 사람에게 약을 달여서 듬뿍 먹여보세요, 다 토해 내게 됩니다.

처음엔 촉촉하게 적셔야지요.

  약의 양을 조절해서 먹이라고 의사가 얘기해 주지 않으면 환자가 알 수 없지요.

또 잘못 가르쳐 주어도 그대로 따르기 마련입니다. 삭은 보자기에 무거운 돌을 담으면

보자기가 찢어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약도 처음부터 무거운 약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조한 사람에게 중제를 쓸 때에는 항상 약의 양을 일러 주어야 합니다. 한 첩으로

하루를 먹도록 하라든가 이틀을 먹도록 하라는 식으로 하다가 적당한 기간이

지난 뒤에 정상적으로 복용하도록 이야기를 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통통한 사람에게 소자도담강기탕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처음부터 반하를

4--5돈씩 많이 넣으면 안됩니다. 자칫하면 목구멍이 조여 붙게 됩니다. 서서히 물길을

터 주어야지요. 여러분들이 해열제를 쓸 때도 그렇습니다. 불이 활활 타고 있는데

물을 갑자기 확 끼얹어 보세요. 뜨거운 수증기가 일어나 몸을 상하게 됩니다. 몸이

냉한 사람에게도 부자같은 약을 한 냥씩 쓰면 죽고 맙니다.

  '이상하다. 열에는 한, 한에는 열약을 쓰라고 해서 음양을 맞추었는데 왜 이럴까?'

병이야 나을지 모르지만 환자를 죽이는 바보짓을 하면 안됩니다. 냉한 사람에게

부자를 쓸 때에도 처음에는 5분, 차차 1전, 1전 반으로 늘이면서 따뜻하게 데워야

합니다. 참으로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겨울철 얼어 붙은 유리컵에 뜨거운 물을

부어보세요. 유리컵이 깨어지지요. 몸이 찬데 갑자기 뜨거운 걸 넣으니 그럴 수밖에

없지요. 이렇게 무기체도 갑작스런 온도의 변화에는 깨어지는데 유기체인 우리

인간이야 말할 나위가 없겠지요.

  열병에 찬약을 쓰는 것도 꼭 같은 이치입니다. 황련, 황금, 황백, 향부자, 자호

같은 류의 약으로 서서히 식히다가 나중에 대황을 쓰는 겁니다. 처음부터 대황을

서너 전 넣으면 죽기 쉽습니다. 이런 것에 대한 중요성은 앞으로 계속

강조하겠습니다.

  이번에는 좌병우치, 우병좌치, 상병하치, 하병상치에 대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것은 앞에서도 말씀을 좀 드렸었는데 실제 임상에서 많이 활용을 하는 것입니다.

제가 경희대학교 다닐 때 침구학을 강의하시던 한 교수분은 오른쪽 관절염 환자가

오면 왼쪽 귀 두에 있는 예풍혈을 놓더라구요. 그때 보사를 어떻게 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또 왼쪽 무릎이 쑤신다고 하면 오른쪽 귀 뒤의 예풍혈을

놓는데 신기하리만치 잘 나았습니다. 이러한 일종의 기방도 이론의 근거는 시이소오의

이론입니다. 한쪽이 기울어졌을 때 그림 2를 올리는 것봐 1을 내리는 것이 쉽다는

이야기지요. 이것은 침이나 경락에만 국한되는 내용인 것만은 아닙니다. 남좌여우란

말도 남자는 좌측, 여자는 우측으로 침을 놓는다는 것인데, 병이 좌측에 있을 때는

우측을 놓고, 병이 우측에 있을 때는 좌측에 침을 놓는 것이 공식이고 치료효과도

빠릅니다.

  특히 구안괘사나 중풍일 경우엔 이걸 꼭 활용해 보시기 바랍니다. 강조를 거듭하는

곧잘 잊어버리거나, 조금 놓다가 잘 듣지 않는 것같으니까 보사를 바꾼다거나 혈의

선택에 대한 연구를 해 볼 생각은 않고, 급한 마음에 '에라! 모르겠다'하고는 아픈 쪽

안아픈 쪽 다 꽂고 생각나는 대로 여기 저기 꽂아 대기 일쑤입니다. 그리하면

사암침법이 몸에 익기도 전에 혼란이 오고, 자신을 잃게 되어 중간에 포기를 하게

됩니다. 제가 말씀드린 것은 모두 실천적이고 실제적인 것들이므로 지나쳐  흘려듣지

마시고 깊이 새겨두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말씀드린 원보방사, 영수보사,

좌병우치, 우병좌치, 허실보사, 또 "내경"에서 언급된 "허즉보기모, 실즉사기자,

앙기관, 보기모"등 이런 치료의 대법을 어느 것 하나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선

이것만 충분히 아신다면 100점 만점에서 90점을 드리겠습니다. 나머지 자오유주법

따위는 여러분 스스로 연구 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암침구요결" 뒷 쪽

낙랑노부시침가의 25번을 보면 "자오지법물론하라 사암경지최의라" "자오유주법을

가지고 자꾸 따지지 말라. 사암침법이 최고로 마땅하니라"고 씌어 있습니다. 저도

자오유주법 등의 다른 기법은 모릅니다. 여러분들도 우선 제가 지금까지 말씀드린

침구치료대법을 숙달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하십시오. 그리고 "사암침구요결"에 있는

낙랑노부시침가를 여러분들로 하여금 외우도록해서 시험을 치로도록 할 것입니다.

그러니 미리 좀 봐 두시기 바랍니다. 이 날랑노부시침가에는 침치료 방법에 대해서

나와 있습니다.

  "좌수탐기혈처하여 이조접이절십하라, 우지수방지침하고 진중하이천심이라"

즉 "왼손으로 그 혈처를 탐지해 가지고 손톱으로 눌러서 취혈을 하고 오른손으로

천심을 가려서 진중하게 찔러라. 보법은 천으로부터 심에 입하고, 사법은 깊게 찔러서

얕게 뽑아내고, 손톱으로 눌러서 하침하는 것이 보가 되고, 손톱으로 눌러서

뽑는 것이 사가 된다"

  "경경비자무통이요 급급비자유통이라" 즉 '살살 비비면 아프지 않고 급히 비비면

아프다'라고 했는데, 보사를 한답시고 급하게 침을 돌리면 섬유질이 휘감겨서 나중에

침이 빠지질 않습니다. 이때 확 잡아 뽑으면 침이 뚝 부러지고, 살속에 박혀서 계속

부어 오릅니다. 무의촌 봉사가면 이런 일이 종종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살살 비벼서

기를 서서히 집어넣는 심정으로 해야 합니다. 또 사할 때는 잡아뽑는 기분으로 가볍게

해야합니다. 이것을 용이하도록 습득하는데에도 최소 5년은 걸린다고 합니다.

쉬울 것 같지요? 쉽지 않습니다. 특히 덜렁덜렁한 성격의 사람들은 더욱 어렵습니다.

모쪼록 호흡을 죽이고 진중하게 해야 됩니다.

  "손님을 대하듯이 극진하게 공경하고 맹수를 때려잡듯이 사를 두지 말아라

(대귀빈자극경이요 단맹수자무사)"라는 말은 침을 놓을 때 친척이라고 봐주고 친구나

아는 사람이라고 봐주는 그런 사를 두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고관대작이 와서

살살 놓아 달라고 한다해서 가느다란 침으로 톡 놓고는 "안 아프시죠?" "네,

안 아프군요" 30분쯤 후에 침을 뽑고 나서 "어때요?" "침은 아프지 않은데 병이

낫질 않는군요..." 이런 경우를 연출시키지 않도록 하세요. 약도 마찬가집니다.

환자가 와서 "제가 약을 좀 볼줄 아니까 잘 지어 주세요"한다고 해서 그저 이쁘고

보기 좋게 지으려고 숙지황, 구기자, 맥문동, 오미자, 산수유, 황정, 검인, 금앵자,

금은화, 육종용 등 온갖 색깔 좋은 약을 다 넣어서 colorful하게 지어 주면 보기는

좋은데 옳은 처방이 되겠읍니까? 이것은 사 즉, 아부하는 마음이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의사는 병을 때려잡는 군인입니다. 적군을 때려 잡는데 사를 두어서야 되겠읍니까?

또 약을 맛으로 먹어서야 되겠어요? "다른집 약은 맛있고 향기롭던데"라고 해도 전혀

개의치 말아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 부모님이 비대하신데 녹각교를 몸에 좋으라고

잡수신다면 당장 말리세요. 녹각교는 음중의 음약입니다. 그럴 때는 차라리 튀밥이나

사드시라고 하세요. 이런 경우는 녹각교보다 튀밥이 훨씬 보약이 됩니다. 또는

오적산이나 곽향정기산과 같이 깎아내리는 약을 써야 합니다.

  여러분 치시탕(하통 11번)이라고 아세요? 두시와 두고가 들어가는 치고탕이 있는데

두고가 메주이므로 이 탕을 아무리 잘 지어봐야 얼마나 되겠읍니까? 이것은 여자들

울병에 좋은 탕입니다.

  그런데 거만하고 돈 자랑하는 환자에게는 첩당 5천원씩 받아도 괜찮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의사지 건재약방을 하는 것이 아니거든요. 환자에게 "이 약은 원가가

얼마이니 제게 2할만 붙여주고 가져 가세요" 이게 약장수지! 의사입니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지혜, 우리가 공부하는 음양관 등 이런 것을 배우는 우리는 정말

고급인력입니다. 바가지를 씌울 때는 씌워야 됩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공짜로 주면 되지 않겠어요? 이런 운영을 의사는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군의관으로 군대를 갔다고 하면 전투에서 고립이 되어 먹을 것이 없어도 어떠한

풀뿌리나 나무껍질을 먹어야 될지를 지도할 수 있을 것이며, 공중 낙하시 삔 곳이

있을 때 즉석에서 침으로 치료를 해 줄 수 있는데, 군진의학에서 우리의 지혜와 좋은

기술을 활용하지 못하고 구두나 닦게 하거나 취사장에서 밥이나 짓게 하여 6년공부를

사장시키고 있습니다. 제 친구가 군대 갔을 때 어느 중위계급을 단 장교가 "야!

이리와 이 구두 좀 닦아!" 구두를 닦다가 위를 딱 올려다 보니 우리하고 같은 학교에

다니던 동문이더라나요!?

  한의학을 전공한 사람들의 기술이 제도에 묶여 썩히는 것은 사실이나, 반면에

우리는 학창시절 얼마나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는지요? 행정적인 뒷받침이 되지

않으면 않을수록 더욱 이를 악물고 연구를 해서 양방의사들을 꼼짝 못하도록 학문을

자꾸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국민들에게 홍보가 되고, 외국에서 한국의

한의학을 배우러 오게 되고, 그러면 정부관리들이 뭔가를 느껴서 한의학에 행정적인

뒷받침을 해주어야 한다고 떠들 것입니다.

  열심히 공부를 해서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일꾼이 되어야지 '한의사 가운데에서

국회의원이 나와야 된다'는 등의 노력다툼은 아주 우스운 이야깁니다. 우선은 우리가

열심히 공부해서 혜안을 길러야 합니다.

  외국에서 들어온 낯선 식물이라고 냄새를 맡아보고, 색깔을 보고, 뿌리와 줄기의

비율을 보고도 '아하! 이것은 어디에 쓰겠군. 어떤 사람에겐 쓰면 안되겠군'하는 것을

짐작할 수 있어야지요.

  아프리카같은 나라에 가서, 그곳의 어떠한 식물을 보고서라도 약성과 효능, 작용

등을 펼쳐 놓으면 여러분들이 바로 아프리카의 신농씨가 되는 것입니다. 이제

한의학의 발전은 여러분들의 손에 달려 있음을 명심하세요.

  "혼도한 즉시에는 겁내지 말아라, 삼리를 보하면 곧 깨어난다(혼도즉시물구하라

보삼리이즉성이라)" 삼리가 이렇게 좋은 혈입니다.

  @FF


@[    II 염화약방문@]


  몽환공화 (꿈속 허공에 핀 환각의 꽃을)

  가노파착 (무어라 애써 붙들려 하는가)

  득실시비 (얻고 잃고 옳고 그름을)

  일시방각 (한꺼번에 놓아버릴지어다.) 

  "삼조승찬 신심명중에서"


@[  1. 산업사회와 인간@]


@[(1) 암 공장시대@]

  용숙(제나라 때의 사람; 열자 중니편중 '병아닌 병'에 나온다)이 문지(제나라 양의

열자 중니편 중 "병아닌 병"에 나옴)라는 의사를 찾았다. "선생의 의술이 놀랍다고

들었습니다. 제 병도 고쳐주실 수 있을런지요?"

  문지는 "고쳐보지요. 그러나 병의 증상을 먼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용숙은 "향리가 모두 칭찬해도 영광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고, 온 국내 사람이

헐뜯어도 모욕을 받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또 무엇을 얻어도 기쁘지 않고,

잃어도 걱정이 안됩니다. 생이 사처럼 보이고 부가 가난처럼 보입니다. 사람들이

돼지나 다름없이 보이고, 내 자신이 남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내 집에 있으면서도

여관에 있는듯하고, 내 고장이 이방같이 생각됩니다. 이런 병으로 인해 벼슬이나 상을

준대도 내키지 않고, 형벌도 두렵지 않습니다. 성쇠 이해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애락에도 영향받음이 없습니다. 물론 임금을 섬긴다든가, 친구와 사귀고 처자를

거느리며 하인들을 통솔할 생각이 날리 만무합니다. 대체 이것은 무슨 병입니까?

어떻게 해야 나을 수 있겠읍니까?"

  문지는 용숙에게 밝은 쪽으로 등을 돌리고 서도록 했다. 그리고 뒤로부터 밝은 쪽을

향해 그 가슴을 비쳐 보았다. 그러더니 이윽고 말했다.

  "아! 당신의 가슴을 보니 마음 속이 텅 비어 있구려. 거의 성인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가슴속 일곱개 구멍 중 여섯 개는 뚫렸지만 한 개가 막혔습니다. 이제 성인의

지혜를 갖추고 있으면서 그것을 병환이라 여기고 계신 것은 아마 이 때문일 것입니다.

나의 변변찮은 의술로는 도저히 손을 댈 수 없습니다"

  참 아름다운 교훈이다.

  정신건강의 극치는 무심이고, 육체적 건강의 극치는 조화이다. 무심을 체로 삼고

리듬을 타는 조화감각을 용으로 삼는 것이 건강의 비결이다.

  무심은 무위심이다. 함이 없는 마음은 아무것도 일하기 싫은 나태심이 아니다.

인위적인 조작이 없는 마음이다.

  사물에 응하여 쓰는 경우가 있고 쉴 곳을 안다. 쉴 곳을 알므로 항상 지루함 없이

신선하다.

  육체는 항상 외부 기운의 간섭을 받아 질병에 걸리기 쉽다. 차고 덥고 습하고

건조한 것의 기운을 잘 조절하여 수시로 기거동작의 조화를 도모해야 한다.

  '탑돌이'의 숨은 비유는 바로 이 몸이 탑인데 수시로 잘 살펴 조화를 잃지 않는

지혜의 수행이라고 일찌기 달마대사는 갈파하셨다.

  육신과 마음은 분리될 수 없다. 마음이 동하면 육신도 따라 동하고 마음이

가라앉으면 육신도 안정된다. 마음이 동하지도 가라앉지도 아니함은 곧 우리의

자성 자리이다. 조동하는 괴로움은 선정의 방편으로 다스린다. 선정의 부동심이 좋은

약과 같은 것이지 깨달음 그 자체는 아니므로 세존께서 선정의 낙에 빠질 것을

경계하신 바 있다. 그러나 이는 차원높은 차후의 얘기이다. 이 시대는 우선 고요히

반조하는 선정의 힘이 절대로 필요한 시대이다.

  모든 암은 마음의 집착에서 온다. 동하는 마음의 쌓임이 곧 물질화 되어 덩어리가

된다.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의 망동함이 자꾸 산과 같이 쌓인 것을 암이라 한다.

'병 갓머리'안에 입 구자가 세 개 뫼산 자가 들어 있음이 그 삼독의 산이라는 그럴듯

파자풀이 해석도 있다. 독한 마음도 시초에는 별것 아닌 데에서 시작된다.

  그리움과 부러움 망설임 등이 그 씨앗이다. 그리움 망설임의 열매가 암의 원인인

애욕과 질투와 의혹의 삼독이다. 시초에 한 생각을 경계하지 않으면 그 쓴 열매인

암의 과보가 온다. 어릴 적부터 비교당하는 괴로움은 암을 낳는다. '누구처럼

되어라!' '누구보다 못하다!'바로 이것이 야심을 낳고 패배의식을 낳는다.

  분주하게 두뇌를 굴려서 자기 영역의 확대를 꾀하거나, 남을 파괴하는 업을 짓는다.

궁리하는 사량심은 교활함과 통한다. 야심과 패배감 교활함은 서로 일관된 중심을

가지고 있다. 즉 Ego, 그것이다. 내 야심의 달성에는 남을 패배시키거나 죽이는

방법이 필요하다. 그 방법의 다양한 추구가 곧 교활성이다.

  패배감은 억울함, 분노의 표현으로 나타나 죽이고 싶은 살기를 수반한다. 나를

죽임은 자살이요, 남을 죽임은 타살이다. 내향적이든 외향적이든 같은 살인이며

근본은 나와 남의 비교에서 열등해진데 원인이 있다.

  이런 면에서 현대인은 모두 암세포 보균자이며 방조자이다. 자식을 있는 그대로

보아주는 현명함이 없이, 끊임없이 견주어 채찍질하는 부모와, 일류 이류를 분리하여

성공의 야심을 부추기는 교사는 암세포 방조자이다. 소위 '통밥'잘 굴린다는 교활한

천재나 자신을 잃고 방황하며 무턱대고 도취하고 반발하는 청소년은 암세포 보균자이

다.

  가슴속 일곱 개 구멍 중 여섯 개가 뚫린 사람은 미간에 제 3의 눈이 생긴다.

탐진치 3독의 구멍을 확 뚫어버린 이 제3의 심안을 터득해야만 영원히 비교의 늪에서

헤어나 암세포의 밥이 되지 않으리라.

  골치아픈 암으로 당황하는 의사가 아니라, 용숙과 같은 병 아닌 병으로 세상의

의사가 모두 당황해 하는 통쾌한 광경을 보고 싶다.

  오장육부 씻어내는

  제삼의눈 팽개치고

  혹만드는 검은공장

  용광로에 삽질하네


@[(2) 제3의 순환@]

  토플러(앨빈 토플러 1928년 뉴욕에서 출생한 사회비평가. 사회적 변화에 대한

현대인의 사고에 심오한 영향을 주었던 "미래의 충격"및 "제3의 물결" "미래학이란

무엇인가"의 저자. 해박한 지식으로 문학, 법학, 과학분야에서 다섯개의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 받았다. 현재 부인 하이디와 딸1명과 함께 코네티커트에 살고 있다)가

주장하는 '제3의 물결' 운동의 핵심은 개인 창조 능력의 개발에 있다. 집단

산업체제의 경직된 약점을 더욱더 보완해 나가려면 개개인의 특성과 장점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자유스러운 영적 분위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강요되어진

규율에서 오는 공포나 위축감은 오히려 마이너스적인 효과를 연출시킨다. 활달하고

명랑하게 깨어 있는 분위기의 영향은 의외로 폭발적인 창조 효과가 있다.

  종교 역시 개인의 구원에 각별히 관심을 두어야 한다. 집단적 의식과 행사에서

느끼는 분위기는 안락감이나 의지성의 미묘한 쾌락이 있다. 그러나 그것에서 느끼는

안락감이나 의지성 자체는 공포나 불안의 변형된 형태일 뿐이다.

  진실한 자유는 인간 개개인의 심리적 속성과 진행과정을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보이지 않는 마음의 작용은 실로 불가사의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통로는 예로부터 경락이라는 신비한 제3의 순환 체계로

표현해 왔다. 우리가 일으키는 한 생각의 통로인 이 제3의 순환은 신비의 베일에

가려져 있다. 고대의 명철한 성인이 개발해 놓은 이 경락의 생리 체계는 실제

동양의학에서 모든 진단 치료에 응용된다. 경락의 순환 체계를 이해하는 것은

곧 인간의 심리적인 진행 상황을 이해하는 구체적 작용이다.

  이 제3의 순환 체계는 크게 몇 개의 기차 레일과 같은 통로가 있는데, 그 중

수백 개의 주요한 정착역이 있다. 이 정착역을 경혈이라고 하는데 흔히 침술치료나,

병의 반응점으로 진단하는 데 쓰인다. 이상의 14개 가운데 임맥, 독맥 두 경락을 뺀

12경은 아주 중요한 혈기 또는 반응의 통로여서 일반적으로 '12경락'이라 부른다.

이 모든 레일은 서로 상대적으로 짝을 이루고 있는데 심리적 긍정과 부정의 상반된

에너지의 흐름을 나타낸다.

  인간의 욕망은 참으로 다양하다. 식욕 재욕 성욕 지식욕 명예욕 권력욕 등등으로

그 욕망이 일정하지 않다. 그 만족의 정도 또한 다르며 성취도지 못한 불만이

필수적으로 존재하기 마련이다. 만족과 불만은 바로 마음의 무상성이다. 배고픔

재물의 빈곤 실연의 아픔 쾌락 상실의 공포 불명예의 수치 무지의 괴로움 등등은

마음의 부정적 측면이고, 포만감 부유함 연애의 쾌락 칭찬의 즐거움 지식의 힘 등등은

마음의 긍정적 측면이다.

  이 마음 변화의 다양성은 예측할 수 없는데, 예를 들면 부유함을 축적하다가 명예,

연애에 몰입하다가, 지식을 갈구하다가 재산 등등으로 그 추구의 모양이 실로

변화무쌍하다. 이 추구성의 커다란 세 가지 현상을 바이오 리듬 학설에서는

신체리듬(Physical Rhythm), 감성리듬(Emotional Rh.), 지성리듬(Intellctual Rh)으로

분류한다. 그러나 경락 체계에서는 좀더 세밀하게 분류하고, 그 에너지의 통로까지

감별해 놓았다. 구체적으로 태음 양명경락은 신체리듬, 소음 태양경락은 감성리듬,

궐음 소양경락은 지성리듬으로 삼음과 삼양경락의 여섯가지 순환작용을 기본으로하며

이를 다시 나누어 12경락이 된다.

  인간의 제1차적 욕망인 의 식 주 등의 만족과 불만은 태음경과 양명경의 작용이며,

제2차적인 성 미학적 예술적 충동 등의 만족과 불만은 소음이나 태양경의 작용이고,

제3차적인 욕망 즉 무형에 대한 욕망으로 명예욕 권력욕 지식욕 등의 만족과 불만은

곧 궐음 소양경의 작용이다. 거꾸로 사람이 일으키는 1차 2차 3차 욕망의 성쇠는

그에 해당하는 경락 에너지의 성쇠를 결정한다.

  만족 불만의 흐름에 따라 결정지워지는 경락의 허실은 정도가 지나치면 자동조절

기능을 상실하여 질병이 된다. 넘치면 다시 모자라고, 빈 것은 어느덧 차고 얻은 것도

잃어지고 낮은 것은 높아지고 끊임없이 균형을 이루는 이 자연의 순리가 곧 인간의

제3의 순환 생리와 같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제3순환기 리듬의 조화를 깨뜨리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망이 아니라 허욕이다.

  배고프지 않는데도 먹고 마시고, 춥지 않는데도 껴입고, 부족하지 않는데도 재물을

긁어 모으고, 좁지 않는데도 땅을 넓게 소유하고, 자연스러운 정열 없는 음탕함이나

미적 감각 없는 퇴폐적 방탕함과 필요하지도 않는 지식을 많이 축적함, 분수없는

명예의 교만함과, 오만한 파벌의 세력을 과시함 등등 그 적당함을 잃고 있는 이것이

곧 허욕의 실상이다.

  '즐거워하되 음탕하지 말며, 슬퍼하되 상하지 말라(약이불음 애이불상)'는 공자의

교훈은 바로 영적인 제3의 순환에 표적을 맞춘 적절한 충고가 아닐 수 없다.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먹는다'는 옛 선사의 말씀이 있는데 우리는 과연 배고플 때

먹고 졸릴 때 자고 있는가?

  제비오는 춘삼월은

  삼삼백발 가을서리

  순리따른 저길손을

  환영나온 제삼도로


@[(3) 시간의 노예@]

  차분히 깨어 있어서 제자들을 관심있게 관찰하는 교사가 우리에게 아쉽다면,

지금부터 당장 스스로 그렇게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 어리석고 교활한 망상 중의

하나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이다. 누군가 나타나서 그렇게 가르쳐 주기를 기다리는

동안, 시간은 흘러가 버린다. 생각과 행동이 시간차를 두면 지루하게 될 것이며,

지루함도 곧 폭력적인 에너지로 돌변할 위험한 요소를 내재하고 있다. 스스로 능력에

회의를 품는 사람이 흔히 그러하듯이, 미래에 어떤 지도자가 나타날 것을 기대하는

속임수 역시 자신으로부터의 도피일 뿐이다.

  도피하지 말고 솔직담백하게 정면으로 마주보는 길이 있을 뿐이다. 또한 교사를

구하는 길이나, 교사가 되는 길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데 시간을 보내지

말 것이다. 즉각 자기관찰이나 주위의 관찰을 시도한다면 바로 그 관찰의 힘이 위대한

교사의 힘있는 눈이기 때문이다.

  쉬운 길을 선택하려는 것은 또한 두뇌의 교활한 작용이어서 자칫하면 긴 시간을

방법을 찾는데만 낭비하게 되기도 한다. 많은 약속과 계획과 준비로 생을 묶어 놓은

사람도 역시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댈 것이지만 아는 시간의 노예일 뿐 아무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생이란 그렇게 단순한 것만은 아니어서 계획과 준비나 약속처럼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때그때 확실하고 명랑하게 깨어 있는 자세만이 올바른

준비태세이지, 막연한 자신의 기억이나 지식으로 미래를 판단하려 하는 것은 기억이나

지식에 의존한다는 자체가 이미 오랜 시간을 둔 것이어서 현실감이 없다. 그리하여

합리화난 현실을 외면하려고 하는 교활한 두뇌를 만들어낸다.

  청소년은 항상 정신적으로 연약해서 교사나 스승이 있어야 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기 쉬운 약점이 있다. 그러므로, 어떤 사태에 직면했을 때 누군가에게

상담하고 싶고 배우고 싶고 고충을 털어놓고 싶어한다. 그러나 누군가를 찾고

의지해서 배우려고 마음먹는 순간, 현실은 즉각 외면하게 되는 경우가 흔히 있다.

그러므로 외로움을 각오해야 하는 것이 참다운 각성이다. 벌써 물으려고 생각한 순간,

시간차를 두는 습관이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이러한 성향, 습관, 교육 등에 대하여 민감하게 해부를 할 수 있는 젊은이가

되어야 한다. 가장 고독하고 쓸쓸한 듯한 작업이지만 충분히 값어치 있는 일이며,

모든 창조의 정열을 샘솟게 할 원천을 발견할 수도 있다.

  인생에서 스스로 혼자 배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모험인지는 설명할 필요도

없다. 물론 안전하려면 교육을 받아 실패가 없는 쪽으로 확률을 높이는 것이 나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패 자체가 또 하나의 경험이며 발견이라면, 실패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안일한 성공위주의 교육이란 항상 실패에 대한 두려움 내지 회피에서 출발한

것이므로 지극히 타산적이고 교활하다. 요컨대 우리가 이해하고자 하는 것은 성공에

대한 인간의 집념이나 추구 자체를 들여다 보자는 것이지, 성공 자체를 목표하는 것이

아니다.

  실패로부터 자유스러우려면 성공이라는 문제도 심각하게 검토해야 한다. 오늘의

괴로움을 참고 미래의 성공을 위해 노심초사하는 대부분의 인간 군상들은 시간에 속아

오늘과 내일의 시간차를 두고 희망을 두고 있는 것이다. 시간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지에 대하여도 깊이 성찰하지 않으면 안된다. 만약 존재한다면 시간이 미치는

영향을 검토해 보아야 한다.

  아무리 검토해봐도 시간의 영향이 인류에게 나쁜 것이라 결론지어진다면, 과감하게

시간을 추방해야 하지 않을까? 이는 참으로 어렵고 난해한 명제이지만 역시 청소년

시절의 순수한 지성으로 늙기 전에 수련해 놓아야 한다. 늙은 세대가 보여주는 과거

지향적인 지루한 모습이나, 실패한 인생을 뒤에 두고 다음 생의 영광이나 꿈꾸는

미래 지향적인 두 가지 모습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눈앞의 사실을 인정하고 자신의 이원성을 깨닫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는 뜻이다.

  인류는 항상 선과 악같이 양자택일의 결론을 즐기는 경향이 있어 왔고, 또 그러한

결론을 근거로 모든 이론과 방법이 세워져 왔다. 현실을 개혁해야만 한다고 부르짖는

개혁의 근거는 알고보면, 부정적인 견해를 근거로 하는 소리임에 틀림없다.

  또한 현실에 만족하라는 가르침의 근거를 보면 긍정을 기본으로 하는 주장일

뿐이다. 긍정이나 부정없이 그저 지켜보는 작업이 잘 납득이 안가는 극단 지향적인

인류는 항상 방황하고 있을 뿐이다. 모순과 갈등으로 뭉쳐진 실제를 무시한채 자신의

편리한대로, 혹은 습관 전통대로 판단하려는 경향은 항상 시간의 노예를 만드는

원인이다. 가장 영향받기 쉽고 예민할 수 있는 시절에 참다운 진리의 눈을 뜬다는 것

이외에 더 아름다운 작업은 없다.

  긍정이나 부정없이, 시간차를 두지 말고 활발히 깨어 있는 사업을 끝까지 추구하는

것은 정말 아름다운 일이다.

  뭔가한번 보여준다

  이악물고 뛰는여치

  낙엽지는 가을황혼

  더듬이가 말하잖니?


@[(4) 콘크리이트 문명@]

  흙도 숨을 쉬어야 한다. 도시 전체가 온통 콘크리트 아니면 아스팔트이다. 지구를

온통 싸 발랐다. 생각하면 아찔한 일이다. 지구도 숨을 쉰다.

  남극 북극으로 빨려 들어간 기운은 다시 내부로부터 뿜어 나온다. 그 쉬는

피부구멍이 곧 지표이다. 숨구멍을 틀어 막았으니 도회지 땅은 죽은 땅이다. 죽은

땅이니 생동감이 없다. 생동감이 없으니 권태가 빠르다. 지루함과 권태는 도회인의

전유물이다. 변화가 없으니 날로 말초신경적인 자극의 변화를 시도한다. 나무를 심는

공간도 눈이 무색할 정도로 좁고, 그나마 콘크리트로 싸발랐다.

  동양적 소견으로 보면 땅은 중앙토이다. 토는 곧 인체의 비장에 해당한다. 토기

즉 흙의 기운을 접촉하지 않는 인간은 차차 비장의 기운이 약해진다. 비장이

약해지므로 모든 소화기능의 장애가 온다.

  정신적으로는 의지가 박약해진다. 사색력이 부족해진다. 쓸데 없는 의혹이 많이

생긴다. 온갖 번뇌망상이 들끓는 원인이 곧 비장 중앙토의 기운이 부족한 데도 있다는

말이다. 도시인의 태반이 신경성 소화불량이라는 병명을 이마에 붙이고 있지 않는가?

도회지에서만 자란 아이들이 그저 예민하기만 하고 지구력이 없고 사색능력이 없는

것은 일단은 콘크리트 문명에도 그 책임이 있다. 흙에서 나온 것은 흙으로 돌아가며

흙과 친하지 않으면 존재할 수가 없다. 게다가 매연으로 가득차 있는 이 도시는 더욱

더 숨이 막힌다. 나무와 흙이 풍부한 교외나 시골이나 산으로 즐겨 피난(?)하는

이유는 생리적 요구이다. 생체리듬의 부조화는 자연스럽게 인간의 각성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내면의 리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인류는 스스로 자신을 파멸로

이끌게 될 것이다.

  이 격동하는 세대에서는 침착한 사고 능력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더 풍요로운

물질의 향락과 소비를 조장시키면 그만큼 진실은 멀어질 것이다. 살아 숨쉬는 흙은

콘크리트보다 약하다. 인간의 영원성 추구는 콘크리트에도 잘 나타나 있다. 그저

오래가면 좋은 것인줄 안다. 죽지 않는 물건을 만들고 싶어 야단이다. 죽지 않는

물건이란 역시 생명도 없지만, 도대체 영원성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숨쉬는 땅은 수시로 변하면서 수용한다. 그러면서 모든 씨앗의 자궁이다. 포근하고

광활한 땅의 은혜는 묵묵히 담아주고 자랑하지 않는다. 콘크리트는 견고하여 수명이

길기는 하나 생명이 없다. 생명이 없는 물건을 온통 상하로 깔아놓고 사는 견고망상의

세대이다.

  그러므로 고집장이의 세대이다. 고집은 항상 자기의 생각만을 내세운다. 이해가

없으며 아량이 없다. 세존께서 제시한 수행방법론 중 지평등관이 있다. 땅의 분별없는

포용을 보고 깨달아야 한다. 오물과 보석이 동시에 대지의 품에 있다. 그리고 모두를

감싸준다. 모두를 키워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모든 씨앗의 개성을 존중하여, 그대로

키워준다. 위대하고 넓은 땅의 덕을 배울 자연환경이 필요하다. 자연 속의 학교가

필요하다. 자연속의 사무실이 필요하다.

  플라스틱 꽃으로 눈을 속인 장식은 피곤하다. 생사의 변화가 있는 것이 진리인데

어리석은 망상으로 진리를 거부한다. 살려고만 하는 자는 죽는 것이요, 죽을 줄

아는 자만이 삶의 희열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삶을 사랑하려면 죽음도 같이

사랑해야 한다. 사계적의 변화가 뚜렷한 금수강산은 그대로 살아 있는 수도장이요,

자연의 관찰 장소이다. 이 시대는 무엇인가 유동적이고 변화있는 환경을 가져야 한다.

아니! 자연을 있는 그대로 놓아두면 된다. 인간의 어리석은 견고망상으로 온통 지구가

숨죽기 전에 무언가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머리를 써서 손댈수록 나빠지는 경우가

있다. 바로 자연의 경우가 그렇다. 더이상 머리 쓰지 말자! 인위적이고 조작된

사랑분별의 지혜는 항상 파괴와 부자연을 낳는다.

  '무사인이 귀하다'라는 임제선사(?--867 당나라 진주 임제의현, 조주 남화사람,

속성은 형씨, 황벽을 이어 임제종의 조가 되었다. 어려서 출가하여 제방을 다니면서

경륜을 연구하다가 황벽스님에게서 그의 법을 잇고, 나중에 하북 진주성의 동남호

타하반의 임제원에서 널리 교화를 폈다. 당의 의종함통8(887)년 4월 10일 좌화.

저서로는 임제혜조선사어록1권이 있음)의 말씀이 있다. 일이 없기가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한 생각을 쉴 수 있어야 자연의 친구가 되며 대지의 덕을 배우게 된다.

견고망상의 산물인 콘크리트보다 더 강한 것은 무엇인가? 분명히 견고함으로 말하면

금강석이 더욱 강할 것이다. 지평등관을 성취한 금강 불괴신의 여래만이 능히

콘크리트 문명을 죽이고도 살리리라.

  용과뱀을 섞어만든

  금까마귀 아침식사

  외눈박이 도깨비가

  훔쳐먹고 졸도했네


@[(5) 안경지옥@]

  무거운 안경테를 자꾸 들어올리는 젊은이의 모습, 갈수록 늘어만 가는 근시안과

난시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오히려 멋으로 생각하는 풍조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안경은 진실로 귀찮은 물건이다. 필자의 말을 듣고 가슴 아플 분들도 많겠지만,

어쨌든 진실을 이야기해 보자.

  근시안의 동양의학적 원인은 음실양허다. 처방은 주로 기를 보충시키는 약을

쓰게 된다. 원시안은 물론 그 반대로 양실음허요 주로 혈을 보충시킨다. 말은

간단하지만 무슨 뜻일까? 쉽게 풀어보자. 음과 양이란 모든 기능의 상대적인 작용을

표시한다. 간단한 예를 들면 어둠은 음, 밝음은 양, 달은 음, 해는 양, 물은 음,

불은 양, 욕심은 음, 분노는 양 등이다. 근본적 정신 차원에서 보면 나는 음,

너는 양이다. 따라서 자아의 강화가 곧 음실증니데, 타인과의 관계를 긴장으로

몰고간다.

  음실이란 말 그대로 '나'라는 생각이 쌓여 내 가까운 곳만 보는 것이며, 멀리

내다 보지 못하는 아집은 근시안이다. 남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사고나 미래 또는

사후의 일에 무관심하고 찰나주의나 금생위주의 사고는 곧 근시안이다. 반대로 남에게

의지한답시고 가까운 자기를 등한시하는 무력한 사고는 즉 양실음허의 증상이며, 흔히

노인들의 지나친 의존성과 사후세계나 생각하는 미래 망상의 경향은 자신을 잃게 되고

현실의 일은 무시한다. 말 그대로 원시이다.

  이 경우 멀리만 보려하고 가까운 것에는 서툴다. 근시와 원시는 어느 것이 더

낫다고 볼 수는 없다. 먼 미래의 일만 꿈꾸는 원시의 어리석음이나 코 앞의 일만

꿈꾸는 근시나 모두 음양리듬의 조화를 잃었다. 급증하는 근시의 현상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오직 개인주의와 자아 확대, 찰나주의의 재빠른 출세욕 등등의 아상은

엄청난 에너지의 낭비를 가져온다.

  타인과의 긴장된 경쟁과 과잉 자기보호 등은 어두운 근시문화를 낳는다. 자기의

꿈을 잃은 노인성 문화도 문제이지만 자기의 꿈만 먹고 살려는 근시안의 문화도

문제이다.

  자기의 희망 꿈 욕망의 확대는 필연적으로 타인과의 전쟁을  불러 일으키고야 만다.

근시안을 뿌리 뽑으려면 청소년 교육을 자연스럽게 바꿔야 한다. 남보다 나의 우월을

강조하는 경쟁 위주 시험 위주의 교육은 지양되어야 한다. 타고날 때부터 근시 원시가

어디 있겠는가? 가장 귀중한 초등교육 시절부터 모든 위험의 씨앗은 뿌려진다.

  책을 가까이 들여다보면 근시가 된다는 미온적인 학설도 믿기 어렵다. 문제는

가까이만 들여다보고 있는 어린이의 집착적인 성격이다. 주위를 외면하고 자기자신의

즐거움에만 몰두하는 습관은 곧 음실증이다.

  게다가 뜻대로 안될 때는 마음이 산란해지니 온통 혼란된 마음이 곧 난시의 원인이

된다. 삼계가 오직 마음 뿐이니, 한 생각이 모든 병의 원인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날로 늘어가는 근시와 난시의 현상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엄청나게 불길한 징조인

것이다. 이대로 나가면 모든 세계가 분리된 교육의 댓가를 치를 것이다.

  아무리 머리가 좋다해도, 오직 나 밖에 모른 근시안 천재라면 폭력적이 될 것이다.

너와 나를 갈라 놓고 경쟁과 비교와 시험 위주의 교육을 조장해 온 교육은 머지않아

그 과보를 톡톡하게 치러야 할 것이다. 풀 뿌리의 힘을 빌리기 전에 이 가증스러운

세대는 참회하고 반성해야 한다. 그러지 않아도 무거운 육신의 업에다가 더욱 더

무거운 안경의 짐을 씌우고서도 어찌 육근의 청정을 바라겠는가?

  안식의 작용은 번뇌의 근본이다. 화살과 같이 빨라서 전간사라 비유했는데 더욱 더

분주해졌으니 쉬기는 어찌 쉬겠는가? 그렇다면 눈의 가장 좋은 친구는 무엇일까?

"눈은 수면을 약으로 하고 여래는 열반을 약으로 하나니"라는 세존 말씀이 있다.

  억지로 잠을 이겨내려는 충혈된 눈으로 지긋지긋한 시험의 지옥을 치르는

어린 학생과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는 부모와의 공동작품이 곧 근시와 난시가

아니겠는가?

  답답한 이 세대여! 경쟁의 지옥에서 지치다 귀중한 눈을 잃으니 차라리 어른 아이

모두 Ego 없는 단잠을 이룰 생각이나 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짙은안개 유리지옥

  허공한점 찍는바보

  해골속의 푸른눈이

  벼락칠때 깨려는가?


@[(6) 폭력@]

  누구든지 한번쯤 마음껏 두둘겨 부수고 싶은 때가 있게 마련이다. 특히 청소년시절

치밀어오르는 분노와 수치의 감정등은 여러가지 복잡한 형태로 나타난다. 교양있는

어른들이라고 해서 더욱더 폭력적인 생각이 일어나지는 않는가?

  폭력이 이 사회의 큰 문제다. '큰 문제다'라고 떠들수록 폭력에 대한 호기심이나

관심이 쏠리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봐야 한다. 폭력적이 되어버린 모든 원인을

청소년들에게 돌려버리는 무책임한 어른들은 오히려 가공할 무기나 전쟁의 씨앗을

심고 있다. 이유없는 폭력적 분노라고 이름짓는 청소년이 주먹과 몽둥이와 칼을

휘두를 때, 단추 하나만 누르면 전세계를 잿더미로 만들 수 있는 두뇌를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사람들이 청소년의 아버지 어머니 세대인 것이다.

  폭력을 어떻게 보아야할 것인가?

  어른들이 그렇게 교활한 폭력을 휘두른다 해서 어른들의 폭력성을 증오만 하고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교묘하게 위장된 폭력의 형태는 다양하지만 그것을 일일이

들춰 기성세대를 공격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먼저 지구상에서 폭력을 사라지게 하는

방법을 생각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청소년의 폭력문제는 어찌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혹시 나의 폭력성에 대하여는 교묘하게 위장을 하고 변호하면소도 남의 폭력에

대해서만 공격하고 있지는 않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 시대의 청소년들은

특별히 객관적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객관적인 사고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또한 멀리 보지말고 가까이 자신을 관찰할 수

있어야 한다.

  폭력을 증오하는 사람이 폭력을 그치게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증오하는 그 자체가

또 폭력을 유발시키는 동기가 되는 법이기 때문이다. 폭력을 사랑하는 사람이 폭력을

그치게 할수는 더욱 없다. 모든 문제를 폭력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역시 폭력의

조장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겉으로는 평화라든가 질서라든가 명분을 내세울지도

모르지만 방법에 있어 폭력적이라면 결과는 예측할 수 없는 잠재적인 위험을 가지게

된다. 모든 폭력적인 상태를 가만히 지켜보라는 것은 사실상 어려운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숨어있는 폭력성을 살펴보아야 한다. 심지어는

자살충동으로까지 발전하는 교묘한 변형의 형태인 폭력성을 주시해 본다는 것은 실로

끈기있는 사람만이 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해 보라! 그 누구도 자신 속에

폭력성이 하나도 없다고는 말할 수 없ㄷ. 칼과 몽둥이나 총을 들어 죽이거나,

주먹으로 공격을 하여 상해를 입히지 않았다 해서 폭력이 행사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욕구하는 그 어떤 것을 소유하고 있는 자에 대하여 강한 질투나 시기를

느꼈기 때문에 상대방을 뒷전에서 모함한 일은 없는가? 가족 중에 한 사람이 자기의

뜻을 거슬리기 시작하자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일은 없는가? 예쁜 꽃을

보면 그냥 그대로 살려 놓고 보지 못하고 꺾어서 집안의 화병에 꽂아 놓으려는

충동은 없는가? 귀여운 동물을 묶어서 데리고 다니면 괴롭히지는 않는가?

  참으로 알 수 없는 여러 가지 형태의 폭력이 우리에게는 존재하고 있다. 그렇다면

미묘한 형태로 나타나는 폭력의 근본은 무엇일까?

  아마 근본을 찾기 위해서는 대단한 희생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폭력을

수반하는 욕망이라는 것은 너무도 다양해서 일일이 이해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힘이 세고 강건한 사람이 꼭 폭력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지식인도 대단히

폭력적일 수가 있다. 학문적인 견해가 상충할 때 입에 거품을 물고 공격해 버리는

학자의 경우가 바로 그런 경우이다. 종교인도 예외일 수는 없다. 교파나 교주가

다르다고 해서 마구 저주나 공격을 퍼붓는 것 또한 커다란 폭력이기 때문이다.

  또한 정당이 다른 정치인의 투쟁, 사상의 갈등, 민족 국가간의 전쟁, 지역간의 질시

등등이 모두 모양만 다른 폭력의 형태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폭력을 주고받는

상황은 항상 존재하는데도 겉으로는 평화를 가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의

깊은 내면을 응시해 볼 때 폭력성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며, 진실로 폭력이

사라지기를 소원하면서도 그것이 어려운 일임을 깨닫게 된다.

  어떠한 동기든지 욕망과 기대감은 불만과 실망을 수반하는 것이며, 불만과 실망은

폭력의 형태로 발전하는 것이다. 그 욕망이 지식욕이나 권력욕이나 명예욕 같은

미묘한 욕망일수록 여러가지 형태의 폭력으로 나타난다. 무관심한 냉대나 멸시, 음모,

저주 등등의 변형된 형태의 폭력은 대단히 무서운 독을 품고 있다. 심지어는 전염성도

지니고 있어서 무심코 받아 들이다가는 자기도 모르게 교활한 폭력주의자가 되고만다.

  강력한 듯 보이는 이념이나 종교나 사상에 도취되어, 타인보다 우월하다는 의식을

갖게 하는 것도 매우 심각한 형태의 폭력이라 아니할 수 없다. 또한 성적인 욕망의

불만에서 오는 폭력, 의식주의 기본적 욕구가 채워지지 않을 때의 폭력 등도 모두

우리가 깊이 이해해야 할 문제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의 복잡한 욕구가 모조리

이해되어지려면 상당한 시간과 정력을 필요로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청소년에 대한 교육은 이러한 근본적 이해를 도와주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스스로 고민하며 분투노력하여 폭력없는 마음의 개발에 정진할 수밖에 없다.

  지금 세상의 어느 모퉁이에서는 나날이 전쟁이 증가해 가고 있다. 과연 갈라질대로

갈라진 이 지구촌에 어떠한 방법으로 폭력을 종식시킬 수 있을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는 극도로 중요한 문제이면서도, 가장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에 특별한

주의력을 필요로 한다.

  평화의 어떠한 이미지나 색깔을 미리 가지지 말고, 지극히 명석한 눈으로 스스로의

폭력성을 면밀히 주시하는 자세가 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줄지 모른다. 이 길만이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이것은 지극히 수동적이고 연약한 듯 보이는 작업이지만,

절대로 쉬운 작업이 아니며 이 길만이 해결의 열쇠임을 깨달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불구대천 아비원수

  씹어먹고 눈파먹어

  천상천하 맹세하자

  뻥뚫린눈 해골염주


@[(7. 지구촌의 전쟁)@]

  유태인의 경전 "탈무드"에 수수께끼가 있다.

  몸통은 하나인데 머리가 둘인 아이가 태어났다. 이 아기를 둘로 볼 것인가? 하나로

볼 것인가? 몸이 하나니 둘로 볼 수도 없고, 머리가 둘이니 하나라고 볼 수도 없다.

탈무드의 가르침은 흔히 비유로 잘 나타나진다. 이 문제의 골자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만일 뜨거운 물을 몸에 부어 보아서, 두 머리가 동시에 '뜨겁다'고 하면 하나요,

하나는 뜨겁다고 하는데 다른 하나가 모른 체 한다면 이것은 둘이다'라는 탈무드의

해답은 참으로 뜻이 깊다. 유태인으로서 한핏줄이라면 동족의 아픔을 같이 느낄

때만이 같은 민족일 수 있다는 교훈을 주는 것이다.

  이 교훈이 유태인들만의 이야기일 수는 없다. 이 지구에 함께 살면서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모른 체 한다면 어디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겠는가?

  유마거사는 "중생이 아프므로 나도 아프다"했다. 같이 아름을 느끼지 않는 것이

마치 무심도인의 경지나 되는 것처럼 착각한다면 커다란 잘못이다. 민족끼리는 커녕

한 식구마저도 서로 모른 체 외면하는 개인주의의 세대에서 필요한 것은 깊은

관심이다. 직장은 싸늘하고 냉소적이며 무관심한 분위기에 있다. 정열적이고

자유스러운 영혼으로 입사해도 시간이 갈수록 차차 물들고야 만다. 직장의 윗상사나

선배들은 처음에는 '다 그렇다'는 식의 표정으로 신입사원을 지켜본다. 처음의 정열이

무모하다는 것을 차차 깨닫게 되면 점차로 무표정한 직장인의 가면을 쓴다. 피차

편리해지자는 것이다.

  너무 회사에 충성을 바치는 태도도 빈축을 사고, 이해할 수 없는 분위기에

반항하는 것도 경멸을 살 뿐이다. 나라고 하는 것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타협을 한다. 타인이 아파도 관심이 없고 즐거워 해도 같이 즐겁지 않다.

  이러한 정신병적 증상인 무관심은 대단한 전염성을 가지고 있다. 제법 싸늘한

지성을 가진듯 하지만 실은 무관심의 축적에서 오는 병일 뿐이다. 특히 학문적으로나

직업적으로 전문분야 이외에는 '나는 모른다'는 식의 전문교육 위주의 병폐는

심각하다. 심지어는 생채유기체인 의학에 있어서도 각각 분과가 되어 있는 현실이다.

분과적 관찰로 전체적 통일성과 상호 연관이 등한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간장이 아픈데 심장이 같이 아프다고 우는 것은 당연한 인체의 생리이다. 만일 같이

울지 않는다면 하나의 인체라 볼 수 없다. 이러한 점은 깊이 반성해야 한다.

같이 울지 않는다면 이미 분리되었으니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같이 울고 웃을 수

있는 살아있는 인간관계의 정립이 곧 하나를 아는 지름 길이요, 구원의 소식이다.

그래서 두 머리의 아이들은 자신이 하나임을 깨닫게 되니, 그것에는 무슨 심각한

대립이 있을 수 없다.

  시시각각 한쪽 머리가 심히 뜨겁다고 아우성치는데, 우리는 하나인가? 둘인가?

  둘이아닌 하나그놈

  돌아갈곳 어드메요?

  묻는곳을 밟아가니

  만파식적 피리소리


@[(8) 이상비대증과 지루감@]

  부인의 비대증으로 지루해진 삶이 있다면 거짓말인가? 동창의 상담은 슬쩍 지나가는

말같이 하면서 심각한 기색이 농후했다. 사실 비대한 사람에게는 웬일인지 권태감이나

지루함이 풍겨온다. 지루함이란 어떤 괴물이기에 자꾸 인간을 좀먹어 가는 것일까.

지루하기 때문에 먹어대는 것일까, 먹어대기 때문에 지루한 것일까?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해 보았지만, 배고픔과 배부름이란 똑같이 괴로운 일이다.

풍요한 시대이다 보니 마음껏 포식하는 경향이 있다. 게슴츠레 나태해진 눈빛에다

뒤뚱뒤뚱 걷는 어린이들도 눈에 띄게 많다. 많이 먹는 것만이 과연 비만증의 원인이

될 수 있을까?

  비대증으로 고민하는 왕이 세존께 호소했다.

"살이 빠지는 비결을 일러주십시오"

  물론 음식을 적당히 맞추어 먹고 운동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올바른

가르침이지만, 세존께서는 덧붙여 말씀하시기를 "거만한 생각을 버려라!"하셨다.

거만한 생각이 곧 비만증의 원인이라면 좀 놀라운 사실이 아닐까? 꼭 입으로 들어가는

것만이 모든 원인이라 생각하는 어리석은 이 시대에는...

  한 생각 거만함을 먹는(?)것이 뚱보의 원인이라면 생각먹는 법도 알아야 할 것이

아닌가? 거만한 생각이란 어떤 유형의 것일까? 모든 기준이 자기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생각 즉 '나도 있다', '나도 가질 만하다', '나도 잘났다', '나도 한다',

'내가 최고다', '나야말로 위대한 사람이다'등등이 두려움 없는 거만함이다. '나'라는

생각이 넘치고 넘쳐서 마치 웅덩이에 물이 고이듯이 몸과 마음에 고이니, 세존께서

교만한 생각을 오줌물 피하듯이 피하라고 경계하셨다.

  항상 관계 속에 살고 있는 이 세계는 나와 너를 함께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항상

남(타인)의 입장에서 매사를 조심스럽게 살피는 사람은 거만할 리가 없다. 살빼는 약,

헬스 크럽, 사우나탕, 안마, 지압, 조깅, 나날이 늘어만 가는 껍데기 치료방법들은

결코 거만의 치료가 못된다.

  흔히 한의원으로 살 빼는 약이 없는가 상담해 온다. 물론 체중을 조절해 주는 약이

왜 없겠는가마는 근본적으로 잘 안되는 것은 웬일일까? 바로 생각먹는 법을 등한시

하기 때문이다. 한 생각 잘못 먹어 지나치게 핏대를 올리다가 고혈압, 중풍으로 반신

불수가 되는 것은 인정하면서, 한 생각 잘못으로 못난 뚱뚱보가 되는 도리는 왜 믿지

않는지 모르겠다.

  자식에게 그저 자기가 최고이며 우리 집안이 최고라고만 믿게 하는 어리석은 부모의

교육은 엄청난 댓가를 치러야 한다. 내가 최고라면 남(타인)도 최고라고 인정해

주어야 한다. 내게 있다면 남에게도 있다. 있는 것을 의지하여 없는 남을 멸시한다면

언젠가 나도 멸시를 받는 법이다.

  군더더기 살을 빼고 싶다면 누구나 다 깊이 가족, 주위, 사회, 국가, 인류,

더 나아가서는 전 중생세계에 이르기까지 지루함 없이 사랑의 관심을 먼저 주고

볼 일이다. 한 생각 넓게 관심을 쏟다가 더 넓힐 것도 없는 경지에 도달하면 지루함이

사라진다. 지루함이란 모든 이기적 욕망과 실현과의 시간차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기다림이란 이기적인 인간의 욕망에서 만들어낸 교활한 인내심이다.

  현실은 뜻에 맞지 않는데 미래의 좋은 꼴을 보고 싶어 기다리는 것이다. 게임이

늦어지면 지루한 관중은 갑자기 이것저것 사먹거나 마셔대고 씹기 시작한다. 애인을

기다리다 지루해진 연인은 갑자기 성냥을 꺾기 시작한다. 손톱을 씹기 시작한다.

남편을 기다리다 지루해진 여인은 마구 먹어대기 시작한다. 때가 아닌데도 마구 먹기

시작하는 것이다. 모두가 다 같은 현상이다. 지루함이란 시간이다. 시간이란 인간이

고안해 낸 교묘한 고통의 창작이다.

  남편이 들어오기 전에 혼자 지루해질 수밖에 없는 여인은 마구 먹어댐으로써

지루감을 잊으려 한다. 이런 식의 도피는 잠자거나 부수거나 먹어대는 형태로

나타난다. 차라리 무서운 일이라도 생기면 지루감은 없어진다. 공포영화라도 보면서

오싹오싹 전율을 느끼는 편이 차라리 나을 지경이다. 무엇인가를 기다린다는 것

자체가 지신 스스로는 무력해진 증거인데 스스로 활짝 깨어 있을 수 있다면 과연

지루할 수 있을까? 즐거웠던 과거의 회상에 잠기는 여인은 현실이 지루하다.

  소설과 꿈속의 일처럼 멋진 일은 결혼생활에서 안 일어난다. 처녀시절 꿈꿔왔던

환상 속의 결혼생활이 알고 보니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권태스럽고 지루해진 것이다.

남편은 더이상 자기의 연인이 아니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는 엄청난 지루감과 허무를 남긴 채 못다한 욕망의 변형은

무지무지한 식욕으로 둔갑한 것이다. 무엇에 의지해서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주체성을 상실하고 또 시간차를 두게한다. 숱한 욕망이 쌓인 시체가

지루감임을 깨닫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라즈니쉬의 책(Journey Toward the Hear

t)

(라즈니쉬 지음 Journey Toward the Heart(마음으로 가는 길)은 수피사상을 다루는

열편의 화려한 글로 이루어졌으며, 그 열편은 저마다 하나의 짤막한 일화를 내놓은

다음 그에 따른 사상을 전개 시킨다)에 나온 '수피'의 예화를 소개함으로써 얘기를

끝맺는다.


  한 남자가 의사에게 아내의 불임증을 호소했다. 의사는 여자의 맥을 짚어보더니,

"40일 안에 당신이 죽으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당신의 불임증을

치료할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이 여자는 어찌나 걱정이 되었는지 그후 40일 동안

전혀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는 예고한 날에 죽지 않았고 이 문제를

남편이 의사에게 따졌더니 의사가 이렇게 말했다.

  "예, 나도 그건 알아요, 이제 부인은 임신을 할 수가 있을 겁니다"

  남편은 어째서인가 물었다. "당신 부인은 너무 살이 쪘고 그래서 임신이 방해가

되었습니다. 나는 죽음의 공포 이외에는 어떤 것도 부인을 음식과 떼어 놓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자!이제 부인은 치료가 되었습니다"

  유아독존 한물건은

  너나없이 지닌구슬

  공포삼겹 얻은조롱

  흑백나눈 자업자득


@[(9) 사망 보험@]

  S종합병원의 시체실. 냉동되어 있는 갓난 아기의 평화스러운 모습-- .

  이것은 괴기소설의 한 토막이 아니다. 수일 전 필자가 직접 체험한 현장이다.

삼베로 만든 버선까지 곱게 신기어 작은 관에 담는다.

  아주 익숙한 솜씨의 시체처리 담당자 하는 말.

  "이런 게 다 무슨 소용있나요!"

  이건 차마 밖에서 못들어 오고 있는 가슴아픈 부모의 심정을 모르는 소리다. 부모의

눈물겨운 마지막 정성을...

  아쉬운 죽음이 어디 이 집뿐이랴! 일찍 죽으면 일찍 죽는대로, 늦으면 늦는대로

죽음 앞에 아쉽지 않은 부모 형제가 있을까?

  지구상의 의사가 다 동원되어도 못 다스리는 죽음!

  너무나 가까운 현실인데도, 가장 멀리 밀어제껴 놓은 불편한 관계의 사신!

  커다란 저택과 유복한 집안의 손녀는 부귀영화를 못누려 본 채 갔다.

  "참! 그 아이도 언간히 복이 없군요!" 이것은 이 집안의 다복함을 너무나도 잘 아는

운전기사의 독백이다.

  거의 실신하다시피 되어버린 젊은 어머니와 달래는 젊은 아버지.

  죽은 딸이 첫아이였고, 이제 겨우 백일이 지났단다. 한참 귀여울 때가 아니던가?

  우리는 막연히 의사를 믿는다. 죽음까지도 어찌해 주려니 생각한다.

  우리는 막연히 타인을 의지한다. 모든 문제에는 누구나 해결사가 있는 것으로

착각한다.

  혼자 왔다 혼자 떠나는 인생의 나그네인데도 불구하고, 저승길을 누군가 가르쳐주고

미리 예비해 두고 또 예방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삶 속에서 잃은 것은 다시 찾을 수도 있다. 그러나 죽음이 사람 자체를 몽땅

앗아가 버리는 데에는 아찔하다.

  길 없는 캄캄한 벽을 느낀다. 의지하거나, 기대하거나, 애착하거나한 만큼 마음은

와르르 무너진다.

  필자의 싸늘한(?) 충고는 이러했다.

  "일찌기 옛날 말씀에 부모 앞에서 먼저 죽는 자식은 숙생의 원수랍니다!"

  "댁의 따님은 단지 원수에 불과합니다"

  "잊으십시오" 이러한 무심한 말은 모두 옛사람의 지혜로운 방편설일 뿐이다. 애착을

끊어 주기 위해 죽은 자는 죽은 자지만, 담담하지 못한 산자의 망녕된 애착을

끊어주는 것이 우선은 큰 문제이다.

  이것은 분명히 죽은 혼령의 천도에 해로운 영향을 미친다.

  "시체는 여기 있는데 주인은 어디로 갔을까?"

  "뭐라고!?"

  칠현녀가 숲속에서 놀다가 하루는 시체를 보았다. 그중 한 명이 위와 같이 질문을

하자, 나머지가 위와 같이 반문하면서부터 자세히 관하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의사의 업은 삶의 유지를 위한 건강의 지혜개발이지, 죽음까지 해결하지는 못한다.

장의사가 담당하는 시체처리와 모든 형식적인 절차는 형이하학적인 죽음처리이다.

누가 죽음에 대비해야 하며, 누가 죽음을 처리해야 하겠는가?

  전염병이나 재난에 대비하는 백분의 일만큼이라도 죽음에 대비하고 있는가?

  이것만은 무의식적으로 저 먼나라를 꿈꾸는 잠꼬대 정도로 생각한다.

  아니 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나에게 설마 그런 불길한 일이,

죽음에 과난 얘기는 재수없는 화제라고 고개를 돌릴 정도로 이것은 불길한

현상일 뿐인가?

  종교가나 철학자만이 죽음의 해결사일까? 분명히 나에게도, 부모에게도,

자식에게도, 남편, 아내, 형제에게도 어김없이 찾아오는 이 진실을 눈감고 있으면서.

  "머리에 화롯불 인듯 공부하라!"는 옛 선사의 따끔한 충고. 죽음공부는 누구나

스스로 해야한다. 누구나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솔직히 인정하고 몇 가지

이론이나, 내생에 대한 믿음 정도로 간단히 마음을 위로하려는 교활한 습성은 죽음의

공포를 피해 보려는 술책에 불과하다.

  죽음에는 공포의 이미지가 수반이 된다. 공포는 소유에서 출발한다. 소유는 쾌락을

낳는다. 삶을 즐기며 애착했다면 죽음을 슬퍼하여 무서워하리라. 그래서 마지막까지

마음을 위로하고 싶어서 갖가지 종교적 방편에 의지하고 만다.

  공포와 쾌락은 그냥 놓아둔 채 말이다. 공포를 없애려면 삶도 없애야 한다. 도대체

삶이니 죽음이니 실제로 있지도 않는 것을 즐거워하고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

  만약에 삶에서 더한 것이 없다면 죽음이 앗아가 덜할 것도 없지 않겠는가?

  우리의 삶은 자꾸 무엇을 더해 가는가? 더말 것도 덜할 것도 없는데 자꾸 쌓아놓은

소유는 무슨 번뇌의 함정을 암시하는 것이까?

  한 줌의 흙이 되어버리는 이 몸뚱아리는 본래 내것이라 할 수 있는가?

  몸뚱아리를 운전하는 놈이 떠나버리면 여우도 돌아보지 않는다는 인간의 냄새나는

시체, 시체는 어째서 스스로 보고 듣지 못하는가? 무엇이 그렇게도 부모 앞에서 웃고

재롱을 떨고 갔는가?

  울고 애통해하는 오늘의 이 물건은 무엇인가?

  웃을 때는 빛을 보이더니 울을 때는 어두움을 보이는 이 주인공의 정체는 무엇인가?

  죽었다느니 살았다느니 생각하는 이 주인이 어찌 죽고 살 수 있겠는가? 쓴맛 단맛을

보는 혓바닥을 어찌 본래 쓰다 달다 할 수 있는가?

  빨강 파랑을 보는 이 눈이 어찌 빨갛고 파랗다 할 수 있는가?

  한 번 자세히 살펴보고 살펴봐야 할 일이다. 목이 말라 타죽어 가는데 그제서야

우물을 팔 수는 없고, 배가 고파 다 죽어가는데 이제 볍씨를 심을 수도 없지

아니한가? 죽을 때가 다 되어서 교회가고 절에 가고 죽음과 타협에 보려하나 이미

때는 늦는다.

  예고 없는 죽음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청소년 시절부터 생사해탈의

용맹정진을 해야한다.

  보내는 자와 떠나는 자가 서로 생사를 달관한 그 소탈하고 담담한 아름다움은 도의

극치이다.

  사망보험은 산 자만의 위안이지만, 남 몰래 닦은 생사해탈의 수행은 죽은 자와

산 자의 공동 사망보험이 아니겠는가?

  염라대왕 초대받은

  귀한길손 소맷자락

  수고로이 만류마소

  법왕궁의 황제라오


@[(10) A.I.D.S소고@]

  A아! I이제는 D다 S살았구나! 시중의 풍자적인 말장난대로, 인류의 질병도 이제는

갈대로 다갔고, 올대로 다 왔다.

  후천성 면역 결핍증!

  원인불명의 꺼지지 않는 열과 체중감소와 더불어 흉칙하게 번져가는 피부의 반진,

부스럼, 출혈, 탈모 혹은 치아이탈, 기억력 감퇴, 두통 등 심지어는 전신마비까지

일으키는 이 세기말적인 A.I.D.S!

  후천성 즉 선천적이 아니라는 의미는 무엇인가?

  본래 타고날때부터 유전적이라면 부모나 선조를 원망해도 될텐데...

  후천적이라! 이것은 무슨 말인가? 잘 낳아놓고 잘 키워놓았는데, 제 스스로

잘못해서 그렇다는 말이다.

  제 스스로--자업자득 스스로 몸관리 잘못한 인과응보라는 말이다.

  어떻게 잘못했는가?

  오도되어진 의학상식은 혹시 없는가?

  인간의 가장 가까운 존재는 바로 자신의 개체인 몸이다. 일생동안 자신이

끌고다니면서도 그 신비는 오직 의사나 생물학자만이 풀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몸과 마음--몸과 맘을 멋대로 부려놓고서는 오직 치료는 의사의 영역이라고 믿으며,

또한 그렇게 믿고 싶어한다. 몸과 맘을 파괴적으로 사용하고서는 이의 회복은 오직

의사의 분야로 내맡겨 버린다.

  영국의 다이애나 황태자비가 세계 A.I.D.S대책모임에서 선물로 받은 것이 무엇인지

독자께서는 아시는가?

  놀라지 마시라!

  '콘돔'바로 이것이다.

  세계 과학자들의 모임에서 주는 선물이 겨우 이 콘돔일 수 밖에 없다는 이 현실이

아프다. 참으로 아프다.

  어느 학자의 연설--

  "우리는 결국 인간의 생활태도를 근본적으로 변혁시키는 데에서 이 A.I.D.S해결의

실머리를 풀어야 합니다!"

  이는 무엇인가? 바로 예방의학적인 차원밖에 치료방법이 없다는 말씀인데, 그 예방

의학적 차원이란 바로 인간의 윤리성 도덕성의 회복 내지는 잘못된 악습을 교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A.I.D.S병균은 곧 인간의 비자연적이고도 보기에 혐오스러운 동성연애의 산물이다.

남녀간의 정상적인(?) 성행위도 지나치면 그 가운데에서 매독과 임질이라는 고약한

질병을 불러들인다.

  인류 최초의 매독은 어디에서부터 왔겠는가? 자세히 그 근원을 조사해본다면 최초의

매독 발명자는 음탕했던 한 남녀사이였을것이 틀림 없다.

  음과 양의 접촉은 이미 하늘이 허락한 바, 서로의 부족을 보충시키고 잃어버린

반쪽과의 화합을 통해 전우주적 합일감을 느끼게 한다. 그러므로 사랑의 주제는 곧

전체성으로의 회귀본능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 과정에서 지나친 탐닉이 병으로 발전되어 탈이 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새발의 피도 안된다. 하나의 A.I.D.S는 일만종류의 성병이라도 얘기거리가

전혀되지 않는다.

  대책이 없는 이 A.I.D.S맹독병균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좀 침착하고 냉정하게 그 근원을 조사해 보아야 한다.

  A.I.D.S병균은 어디에서 왔는가? 하늘에서 왔는가? 땅에서 왔는가? 아니다! 이는

결코 인간 스스로의 몸에서, 마음에서 만들어진 창작품이다.

  최초의 비자연적인 섹스의 몰두에서 탄생한 이 위대한 악마의 탄생은 틀림없이

한 인간과 한 인간과의 접촉에서였다. 굳이 동성연애가 아닌, 이성간의 성행위라도

결함이 있는 접촉에서 생겨났을 것이라는 말이다.

  비자연적이고도 결함이 있는 성행위란 과연 어떠어떠한 것인가?

  한번 살펴보자.

  이는 성을 오직 몸의 접촉과 마찰 운동내지는 출입등의 물리적 물질적 가시적

운동이라고 착각하는 오류에 있다. 성은 양극(+)과 음극(^35^)의 만남인데 그 양극과

음극 각각인 남자와 여자라는 개체는 스스로 어차피 반쪽이므로 독자적인 개성을

지닐지언정 결코 스스로 완전할 수 없다. 더 나아가서는 동성끼리라도 서로 성격이나

취미에서부터 육체의 생김새에 이르기까지 서로 그 장단점을 나누어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그들의 우정을 긴밀하게 한다.

  그 이유는 우리의 무의식은 항상 자신의 결점을 보충하고 싶어하고 또 상대의

단점을 보충시켜 줌으로써 완전을 향한 행진을 항상 의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완전으로의 행진!

  나는 남자, 나는 여자라면 그 자아의식(Ego)으로 부터의 해방은 오직 헌신적이고

진실한 사람에서만이 가능한 것이다. 끊임없는 마찰, 헐떡거림, 피스톤같은

출입운동을 성이라 여기고 있는 관념은 저 서양의 물리학적 기반으로 세워진 허구

과학문명의 가공적 학설에 의한 착각때문이다.

  이 어마어마한 인간의 몸과 마음의 결합체인 유기체를 오직 몸 즉 물질--가시적인

물건의 조직체로 파악하는 그들의 턱없는 착각때문이다.

  사랑은 육욕적 마찰의 부딪힘 그리고 숨막히게 발광하는 행진의 연속이 아니다.

  사랑은 마음의 교환에서 출발하는 창조주와의 만남이다.

  어느 가수의 노래 '우리는'에서 처럼 마주잡은 손 끝 하나로도 모두 알 수 있는,

그런거라 할 수 있다.

  마구 부딪쳐 마찰되어지는 열이 아니라, 모든 연인의 헌신적인 사랑속에서 나'라는

조건--남자니 여자니 몸이니 마음이니 미래니 과거니 등등--이 모든 조건지워진

시공의 존재로부터 자유로와져야 하지 않겠는가?

  AIDS의 예방은 오직 참사랑의 개발에 있다.

  남자와 남자가 만나서는 강태공의 육도삼략에 있듯이 군자는 요득기지(군자는

그 동지 즉, 그 뜻을 같이하는 벗을 사귀는데 그 즐거움이 있다)라 했다.

  이 인류문명의 황폐함, 참다운 교육의 부재현상, 날로 개인주의적 찰나주의적으로

되어가는 인심, 날로 창궐하는 괴질과 도발적 테러나 전쟁...

  이 엄청나게 산적되어진 문제를 같이 고민하는데 뜻을 같이하여 토론 연구해야

하지 않겠는가?

  어떻게?! 정상으로 열려진 문이 아닌 곳에다 음행을 해대고 말초감각적 쾌락만을

조잡하고 비열하게 추구할 수 있단 말인가?

  여자와 여자와의 만남에 있어서는 자녀교육의 문제점, 가정의 화목, 날로

무너져가는 정조관념으로 인한 문란한 성충동 등등에 초점을 맞추어 반성과 수양이

이루어져서 우아하고도 정숙하고 고상한 여성적 인품의 향기를 우정으로 삼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핥고 빨고 물고 그리고는 거칠고 조잡한 기구들을 사용하여

감각적 쾌락을 탐닉하여 민감한 세포들을 파괴하고 또 파괴하고...

  천지신명이시여!

  굽어살피옵소서

  저들로 하여금 AIDS 공포로 부터의 해방은 먼저 참사랑의 개발에 있음을 알게

하소서!

  담담하나 맛이 그윽히 깊고, 간명하나 그 요점이 분명한 지혜가 있고 우아하고도

정숙함이 목련과 같고, 때로는 대쪽같은 정절로서 참사랑을 드러나게 하소서.

그리하여 스스로 몸과 맘을 잘 관리하는 지혜를 주소서.

  그래서 이 지구상에 영원히 의사는 굶어 죽게하소서.

  의사라는 직업이 아예 사라지게 하소서

  그래서 박물관에 전시되는 품목이나 되게하소서!

  @ff

@[  2. 가정을 위한 장@]

@[(1) 가정과 사랑@]

  가정이라는 제도가 과연 인류의 발전에 얼마나 이바지했으며, 영혼의 자유나 행복의

이상에 꼭 필요한 것인지 생각해 보기로 한다. 오히려 가정은 자유나 참다운 사랑을

추구하는데 구속을 주는 것일 수도 있으며, 자신의 멍에일 수도 있다. 부부는 서로

진실된 마음으로 서로에게 헌신해야 한다.

  수원지에 독을 풀어 넣으면 곧 모든 시민의 생명을 빼앗을 수 있는 것처럼 가정을

구성하는 가장 기초적 원점인 부부 사이에 사랑이 없다는 것은 자녀가 마시는 샘의

수원지에 독을 푸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러므로 서로의 소유욕과 아집을 버린

상태, 즉 속내 마음과 마음 사이의 화평한 흐름으로 서로에게 교류되어야 한다.

  단순히 서로를 필요로 하는 것은 사랑이라 할 수 없다. 또한 서로에게 기대하는

마음도 사랑일 수 없다. 서로가 기대한만큼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좌절, 실망,

짜증스러움을 자식에게 나타내는 부모에게서는 더욱더 사랑을 찾아볼 수 없다. 이러한

부모들은 자신의 희망을 위해 지나간 과거의 원한과 쌓인 불만을 차곡차곡 자식에게

들려주면서 자식이 자라서 자신의 누적된 불만을 해소해 주기를 기대한다. 이러한

억압된 교육열에 물든 자식들은 부모의 강요에 마지못해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불만을 하나하나 쌓아가는 것이다.

  사랑 없는 세대에서 참다운 결혼이 이루어질 리 없고, 참다운 결혼이 아닌 가정에서

참다운 자녀교육이 이루어질 수 없다. 이 시대의 청소년들은 특별히 주의하여 살펴야

한다. 무조건 가정이 지옥 같은 곳이라고 분노하고, 반발하는 천소년들도 위험하지만,

가정에 안락하게 의지하려는 연약하고 병적인 청소년들도 곤란하다.

  이 세대의 청년들은 날카롭게 현실을 주시해야 한다. 과연 가족이라는 제도가

진실로 행복의 원천인지 깊은 의문을 던져보아야 한다.

  남편에게 실망하여 상심해하는 어머니를 둔 자녀는 특히 민감하게 깨어 있어야

한다. 병적인 정열로 자녀를 교육시키는 힘을 사랑이라고 불러서는 곤란하다. 자녀는

아버지의 허물과 결점을 낱낱이 열거하는 어머니의 증오에 한편이 되어버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또한 어머니에게 너무 강압적인, 권위주의적인 아버지를 존경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로 경계해야 한다.

  친척 중의 부귀한 사람과 자신을 자꾸 비교하며 가슴아파하는 부모는 자식을 사랑할

권리가 없다. 자녀들에게 어릴적부터 남과 비교하는 마음을 교육시키고

시기심, 질투심을 조장시키는 부모에게는 자녀들을 설득할 아무런 명분이 없는

것이다. 이러한 부모를 둔 자녀들은 부모의 믿음과 기대를 배경 삼아 남을 멸시하는

교만한 태도를 보인다.

  그러면 눈물과, 한숨과, 감상과, 격정과, 증오와, 원한과, 무관심으로 얼룩진 이

시대의 가정에서 자녀들이 과연 무엇을 배워야 할지 진실로 어려운 일이다. 인생의

실패에서 남은 좌절과 실망의 쌓임으로 마지막 희망을 자식에게나 걸어 본다는 식의

부담스러운 관심과 기대는, 자식의 영혼을 오히려 피폐하게 만든다는 것을 부모들은

올바로 인식해야 한다.

  또한 성장하면 자연스럽게 꽃이 피는 식물과 같이, 당연히 성에 관심을 가질 때의

자녀들에 대한 교육에도 주의해야 한다. 매우 탐닉할 가치가 있는 듯이 보이는 성의

물결은 청소년들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켜, 부모들이 조장해 놓은 성이라는 것은

더럽고 추악하다는 인식과의 대립으로 청소년들을 당황하게 만든다.

  그러나 부모들은, 자신들이 성의 개념을 왜곡시킬수록 청소년들은 더욱더 성에 대해

흥미 있어 하고 성을 동경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공부하라고

성화를 하면서 자신의 행동이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강변한다. 모두 "너를

위해서이다!" 라는, 어떻게 보면 굉장히 이기적인 이 주장이 과연 청소년들에게

실감있게 사랑으로 비취지는지는 의문이다. 가문의 체통을 생각해서 행동하라는 명예

지향적인 교육이 사랑일 수는 없다. 인기 있고 돈벌이 좋은 학과의 지망을 강요하여

자녀의 미래를 걱정해 주는 듯한 배려도 사랑일 수 없다.

  자식을 키울 때 지난날의 고충을 수없이 되풀이하여 은혜의 감정을 주입시켜 놓고

자식에게 교묘하게 굴레를 씌우는 부모의 행동도 진실한 사랑의 행동이 아니다. 꼭

해보고 싶은 강렬한 정열적 충동을 부모의 고집때문에 포기해야 했던 젊은이가 훗날

자기 자식의 즐거움도 자신의 부모처럼 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그리하여

이해가 가지 않은 가문의 전통의식에 크게 반발하는 젊은이도 있다.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모험심을 꺽어버린 채 어느날 평범한 사회인으로 만족하려는

젊은이도 있다. 입만 뻥긋하면 자기 가문이나 출세한 부모 형제들의 이야기만

늘어놓는 공허한 젊은이도 있다. 애인과 만나 철학이나 고상한 이론만 늘어놓는

청년에게 사랑을 느낄 수는 없다. 또한 애간장이 끊어지는 슬픔으로 자기 동정, 자기

연민을 호소하는 사람에게서도 사랑을 느낄 수 없다. 감상과 우수에 깊이 젖은 습관을

매력으로 알고 그 습관에 도취된 여인이 사랑을 아는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다.

가족을 위해서는 몸이라도 팔겠다는 식의 갸륵한 듯한 헌신이 곧 사랑은 아니다. 좋은

옷과 신발을 신고 다니며 조그만한 희생과 봉사를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과거의 추억만을 간직한 채 하루하루 현실과 담을 쌓아가는 과거지향적인 젊은이나,

낭만이라는 미명아래 광적으로 도취적인 젊은이의 가슴에 사랑이 깃들만한 공간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천하의 고민을 다 짊어진 듯한 모습의 젊은이가 과연 사랑을 할

수 있을런지도 의문이다.

  이 세대의 젊은이는 깨어 각성해야 한다. 사랑이란 그렇게 쉽게 결론지어지는 것이

아님을 잘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오직 예민하고 감수성있게 깨어 바라보는 것 이외에

다른 도리가 없다. 여태까지의 사랑이라 이름 붙인 모든 것들, 심지어 가장 아름답게

승화된 이미지를 지닌 것들까지도 모두 의문의 눈초리로 보아야 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참사랑이라는 것은 어떠한 것에라도 의지하거나 구속을 받아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자신의 욕망이나 불만이 투시된 관계속에서는 사랑이 존재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진수태양 빙자하는

   도끼명수 암+수가

   멋모르고 태어나서

   쇳물독을 마시누나"

 

@[(2) 사랑의 개발@]

  가정으로부터 자유를 추구하려면 먼저 가족과 자신의 관계를 면밀히 주시해 보아야

한다.

가족의 관계에서 자신의 모습을 깊이 응시해야 한다. 또 깊은 관심과 정열적인

에너지를 가지고 가족의 움직임을 바라보아야 한다. 어떤 결론이나 선과 악을 구분

짓지 말고 쳐다보는 작업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깨닫더라도 포기해서는 안된다.

왜야하면 자유를 개발한다든지 사랑을 개발하는 작업은 많은 노력과 신중을 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모든 관계에 대한 이해이다.

  남녀가 서로만나 부부를 이루어 가정을 지니는 행위에 대해서도 깊은 관찰을 하면

발견되는 것이 있을 것이다. 자식을 낳고 양육하는 과정과 가정 속의 분위기나

흐름에서 느끼는 관계에 대한 이해는 청소년의 성장에 커다란 도움을 줄 것이다.

요컨대 사랑의 진실이란, 관계 속에서는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때 진실을

향한 접근이 가까와진다는 말이다.

  엄청난 의문과 분노의 정열이 젊은이의 가슴을 흔들고 지나가지만, 무심코 전통에

적응해 버리고 마는 습관을 떨쳐버리지 못하면 지루한 인생의 수레바퀴를 겉도는

원인이 될 뿐이다. 가정 속에서는 아무도 이 세상의 수많은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를 줄 사람은 없다. 만약 사랑에 대한 이해와 깨달음을 간직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분명히 가족 중심적인 사고나 이론에서 벗어나 있을 것이므로 가정에서부터

자유롭고자 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그저 묵묵히 물려받은 전통의 유산을 바라보며

진정한 탈출구를 발견하리라. 그러나 그 길은 대단히 고독하고 위험스러운 모험이

숨어 있다. 날카롭게 깨어 있어 주시하고 관찰하는 가족의 일원이 있다면 필시 그의

부모나 형제들이 이질감을 느껴서 배척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런 인물에게

어쩐지 불쾌한 감정이 일어나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인데 이는 인간의 숨길 수

없는Ego의식의 보호작용이다. 면밀하게 주시하고 살피는 힘에는 그것이 비록 초보적인

것이라 해도, 사람의 자아의식을 죽이는 힘이 있는 것이다. 그러한 응시가 각자의

안락과 보호를 위해 서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려는 습관과 전통을 파괴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은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다. 물론 인류의 개화를 위해서는 단연히

파괴되어져야 할 집단적 자아의식이지만 그 속에 안주하려는 이의 파괴가 처음에는

죽음과도 같은 고통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응시하는 눈을 가진 가족

구성원은 배척당하거나 멸시당하거나 조롱을 받을지도 모른다. 심지어는 살해당할지도

모르는 것은, 그만큼 인간의 집단의식이란 무의식적으로 깊은 유대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리의 구도자는 용감해야 한다. 뛰어난 정열과 용기가 없이는 방황하는

영혼을 구제할 수 없다. 영혼은 스스로 구제하지 않으면 안되며, 방법의 시도라는

것이 도무지 쓸 데없는 것임을 안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가정의 환경개선이나

교육방법의 개선을 통해서 구성원의 변화를 시도해보아도 그 시도 자체가 무모한

것임을 깨닫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 것도 의지하지 않는 정신적 자립이란 의외로

쉬운 작업이 아님을 철저하게 깨달아야 한다.

  한 곳의 괴로움을 잊기 위해 다른 곳으로 도피하는 교활성 역시 무의미한 것이다.

취미나 오락으로 도피하는 것뿐만 아니라 심지어 종교적 환상으로 도망치는 것까지도

비굴한 무의식적 계산이다. 문제있는 가정을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주시해 봐야 함에

도 불구하고, 자꾸 도피하려는 자신의 행동을 적극적으로 관찰해야 한다.

  무심코 받는 학습과정에서도 교육이라는 미명아래 성공을 추구하게끔 유도하는

경쟁의 충동질도 있는데 이것 또한 이해해야 한다. 자꾸 비교하여 자신을 괴롭히는

부모 형제를 신중히 관찰해야 하며, 오만과 편견 속에서 굳어진 부모 형제를 날카롭게

보아야 한다.

  만일 가족 내의 모든 관계를 깊이 깨달아 이해하면, 곧 인간세계의 깊숙한

행동동기를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특히 전쟁이라는 대량학살의 동기와, 빈곤,

권력용, 명예욕, 지식욕, 재물욕, 성욕 등 충동의 근본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가족 내의 구성원이 이루는 모든 행동의 동기나 커다란 사회집단의 행동동기는 결국

근본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감수성이 예민하고 진리에 대한 정열을 쉽게

간직할 수 있는 청소년 시절부터 깊이 각성해야 한다.

  커다란 의문과 살아 있을 눈은 스스로 개발할 수밖에 없는 문제이지만, 방향에

대해서 지도하여 주는 교사가 필요하다. 그러나 교사는 희귀하다. 이러한 교사를 만날

수 없는 청소년은 할 수 없이 스스로 깨달아 가야 한다. 무척 외롭고 괴로운 길이긴

하지만, 실로 엄청난 위력을 가질 수 있는 진리의 길이므로 필히 실천해야 한다. 댓가

없는 정열과 모험심 그리고 인내가 필요한 이 희구는 결국 추구할 것이 아무 것도

없으며 추구하려는 동기 자체가 무모한 것임을 인식하는 데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매화향기 코찌르는

  깊은사연 들어보게

  맵고시린 동지섣달

  긴긴밤을 겪었다네


@[(3) 정숙@]

  정숙이라고 하는 것은 정조관념 속의 정조 같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차분히

관조하는 마음의 힘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다.  

  터무니없는 상상으로 딸의 순수성을 의심하는 어머니를 한번 차분히 지켜본 일이

있을 것이다. 정숙해야 한다고 광적으로 떠들어대는 어머니의 흐트러진 모습이 과연

정숙한 것인지는 자못 의심스럽다. 정숙함을 설교하는 어머니가 이미 정숙함에서

벗어난 이상, 정숙함의 진실을 배울 수는 없다. 강요되어진 정숙은 마치 깎아서 만든

나무사람 같은 육체의 부동을 강조한다.

  진실한 정숙이란 마음의 요동마저 쉬고 차분히 눈을 뜨는 작업을 말한다. 광적으로

가족들에 대한 자신의 무거운 책임이라든가, 고통의 과거라든가, 자녀들의 의무를

역설하는 부모를 차분히 응시해 볼 필요가 있다. 지켜보고 있는 것을 부모가 의식했을

때 어떠한 반응을 보이는가 살펴보는 것은 매우 흥미있는 일이다. 어색한 침묵과

멋적음 등의 급격한 변화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진실로 정숙한 관조의 눈을 터득한

여성에게는 이상하고 기묘한 힘이 있다. 자신의 정숙함을 변호하는 사람일수록 오히려

자신이 정숙하지 못한 사람임을 스스로 나타내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정숙을

강조하면 할수록 더욱더 정숙과 멀어진다는 의미를 깊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런

율법의 준수, 저런 태도와 자태가 정숙의 묘법이라고 강조할수록 정숙의 진실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 여성에게 몸의 부동과 정신의 순결이

특별히 강조되어진 결과, 아무 제약이 없는 상태에서의 여성들은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고 오랫만의 휴식을 요란한 수다스러움으로 대신한다.

  휴식의 지혜가 깃든 정숙이야말로 참다운 정숙인만큼 휴식이란 모든 구별로부터의

쉼이다. 나와 남을 구별하려는 망상으로부터의 해방이다. 쉴새없이 노려보고 긴장하고

뒤돌아보고, 옆을 보고, 위를 보고 내려다보는 모든 마음의 작욕을 쉬어버린다는 것은

심히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예를 들어서, 항상 긴장된 얼굴에서는 도저히 평화를

찾아볼 수 없다.

  스스로 못난 것을 의식하는 여성은 그렇게 추할 수가 없다. 힐끗힐끗 쳐다보는

눈빛에서 우러나오는 숨길 수 없는 초조감은 무언 중에 가련한 독소를 품어내고 있다.

그러나 더욱 추악한 모습은 심하게 우쭐대는 여성의 교만합이다. 내려다 보고조소하는

듯한 교만한 여성을 어떻게 우아하고 아름답다고 할 수 있겠는가. 비교 속의

우월이라는 것은 항상 상대적인 것이어서 비교할 상대가 없으면 진실로 하찮은

것인데도 말이다. 특히 자신보다 정숙하지 못한 여성이라 생각되는 사람 앞에서는

더욱더 거만을 떨며 우쭐해하는 모습은 가히 목불인견이다. 유심히 관찰해 보면

스스로 자신을 정숙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우월감과 교만함이 오히려 더 추악해

보임을 알 수 있다.

  정숙의 "정"이란 뜻은 고요함을 이르는 것이다. 고요하다는 것은 마치 파도가 쉰

상태같은 것을 이른다. 파도가 쉰다는 것은 망상이나 구별이나 비교 같은 분별심들이

사라진 상태를 이른다. 즉 나와 남이라는 구별이 없으므로, 마음의 번놔가 끓어오르지

않는 상태이다. 즉 파도가 쉰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쉬었으므로 고요하고,

고요하므로 모든 사실을 그대로 비추이는 지혜의 덕이 있는 것이다.

  "숙"이란 죽인다는 뜻으로 자신의 Ego, 즉 자아를 죽이라는 뜻이다.

'나는 깨끗하다' '예쁘다' '지성이 있다' '재산이 있다'는 등등의 자신의 자아를